☞ 오디오쟁이에게 뽐뿌질하는 현대음악 ― 들어가며
☞ 오디오쟁이에게 뽐뿌질하는 현대음악 ― 베베른 Op.10
음색(音色)이란 무엇인가? 영어로는 'timbre'라 하고 독일어로는 'Klangfarbe'라 부르는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소리의 색깔'처럼 말만 바꾼 수준을 벗어난 뜻풀이를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음을 만드는 구성 요소의 차이로 생기는, 소리의 감각적 특색. 소리의 높낮이, 크기가 같더라도 진동체나 발음체, 진동 방법에 따라 음이 갖는 감각적 성질에는 차이가 생긴다. ≒소리맵시ㆍ음빛깔. (표준국어대사전)
- 악기 소리나 목소리가 발성이나 악기에 따라 (음높이 및 세기와 달리) 띄는 특징으로... (옥스포드 영어사전 The Oxford English Dictionary)
- 세기(loudness)와 높이(pitch)가 같은 두 소리를 듣는이가 다르다고 느끼게끔 하는 감각 속성 (미국표준협회 ANSI, 1960)
- 음높이, 음량, 음길이와는 다른 기준을 사용하여 두 소리가 다르다고 판단하게끔 하는 청감각 속성 (Pratt & Doak, 1976)
서로 다른 뜻풀이에 한 가지 닮은 곳이 있다. '음색은 무엇이다'가 아니라 '음색은 무엇 무엇이 아니다'라며 이른바 부정적 정의(negative definition)를 내린 대목이다. 음색을 결정하는 요인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음색은 배음(harmonics) 스펙트럼, 포만트(formant), 위상(phase), 엔벨로프(envelope), 비브라토 주기 및 진폭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 글은 음향학 개론이 아니므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다만, 소리를 이루는 모든 것이 음색과 엮여 있으며 위에서 음색과 구분한 음높이, 음량, 음길이 또한 음색을 결정하는 요인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자.
20세기 들어 서양음악에서 음색이 선율과 리듬과 화성 못지않게 중요해졌다는 얘기는 이미 한 바 있다. 그런데 1950년대 말부터는 음색을 뺀 나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음악마저 나타났다. 앞글에서 짧게 소개한 총열주의 음악에서 '음' 하나하나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논리와 질서를 이루었다면, 그 반발로 나타난 이른바 음향음악(Klangkomposition)에서는 음들이 모여 이룬 '음향층' 또는 '덩어리 Cluster'가 음악이 된다. 선율과 리듬은 조각조각 나뉘어 카오스 속에서 녹아버리고, 화음은 음 덩어리가 되어 '음'과 '소음' 사이를 넘나든다. 이를테면 피아노 건반을 주먹이나 팔꿈치로 '쿵' 내려쳤을 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된 '덩어리'가 음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리게티(Ligeti György Sándor, 1923-2006, 헝가리계 루마니아 사람으로 성을 앞에 쓴다)는 총열주의 음악을 비판하며 들리지 않는 '구조'가 아니라 들리는 '형상'을 음악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1년 작품 《아트모스페르》(Atmosphères)를 들어보자. 이 작품의 '구조'는 귀로 듣고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악보를 들여다보아도 음표의 카오스 속에서 정신을 잃기 쉽다. 그러나 예쁜 여자를 알아보는데 피부세포를 분석할 필요는 없는 법. 굳이 악보를 분석할 사람은 먼저 돋보기를 준비한 다음 음표가 아무리 많아도 '떡실신'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 그리고 나서 악보를 본다면 작곡가의 위대한 '노동'에 존경을 바치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