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은 동아시아 전통음악의 음 조직 원리를 20세기 서양 아방가르드 음악 어법으로 재구성한 음악으로 1960년대에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다. 이른바 ’동베를린 사건’을 겪고 나서는 자유와 평화 등의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거나, 또는 음악으로 도(道)와 해탈을 추구하는 등으로 음악 양식을 꾸준히 변화시켰다.
윤이상의 1978년 작품 ’클라리넷과 바순, 호른, 현악오중주를 위한 팔중주’는 도(道)를 말하는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동動-정靜-동動 세 부분으로 되어 있고, 각 부분이 마치 도(道)를 추구하는 세상의 세 가지 단면을 보여주는 듯한 짜임새이다.
해탈을 거쳐 다다를 수 있는 이상적 세계, 신의 세계, 도(道)의 세계를 윤이상은 ‘라’(A) 음에 특별한 상징성을 부여함으로써 표현하곤 했다. 이 작품에서 첫째 부분과 셋째 부분은 중심음이 진정으로 ‘라’(A)에 이르지 못한다는 점에서 인간적이다. 다만, ’번뇌’는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으며, 첼로 협주곡(1976)과 같은 처절함은 이 곡에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정(靜)에 해당하는 중간 부분에서는 이상적인 세계에서 도(道)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중간 부분의 마지막에 더블베이스를 제외한 모든 현악기가 차례차례 글리산도로 옥타브를 뛰어넘어, 마치 액체가 기체로 상전이(相轉移) 하듯 한순간에 '솔'에서 '라'에 이르는 대목이 압권이다. 이때 더블베이스는 피치카토 음형으로 판소리의 '고수'처럼 타악기적 음향효과를 담당한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마치 스님들이 도(道)에 관해 토론하는 내용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 클라리넷과 제1바이올린, 바순과 비올라, 호른과 첼로가 차례로 대화를 나눈다. ’대화’는 결국 난상토론이 된다.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트릴-글리산도로 위아래를 오가며 저마다 ’말’을 쏟아내는 가운데, 첼로가 마치 술대로 거문고 현을 뜯듯이 기타 피크로 현을 뜯는다. ’거문고 피치카토’가 끝나면 템포가 점점 빨라지며 난상토론이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모든 현악기가 ’솔♯’을 외칠 뿐 ’라’에 이르지 못한 채로 음악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