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에 쓴 글을 조금 고쳤습니다.
윤이상은 동아시아 전통음악의 음 조직 원리를 20세기 서양 아방가르드 음악 어법으로 재구성한 독창적인 음악으로 “동양의 사상과 음악 기법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해 완벽하게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라는 극찬을 받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윤이상 음악을 이해하는 일은 따라서 서양음악과 동양음악의 차이를 윤이상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일이 된다.
서양음악에서 개별 음은 고정되어 있어 다른 음과 관계를 맺으면서 음악적 의미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동아시아 음악에서는 음이 그 자체로 생명력을 품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음 하나만으로도 소우주를 형성한다. 또한 소우주가 모여 대우주를 형성하고, 대우주는 소우주 속에 이미 존재한다. 이렇듯 살아 움직이는 음이 모여 살아 움직이는 화음, 살아 움직이는 ’음향층’을 형성하는 것이 윤이상 음악 어법의 핵심이다.
윤이상의 1976년 작품 ‘협주적 단편’(Pièce concertante)과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서양음악이 비트(beat)에 의해 분절되는 것과 달리 한국 전통음악, 그중에서도 특히 정악(正樂)은 비트가 아닌 호흡에 의해 분절된다는 것이다. 한국 전통음악에서는 합주에 참여하는 사람마다 음의 시작이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크게 문제 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함께 ’숨’을 쉬는 일이다.
‘협주적 단편’은 서양 현대음악의 겉모습을 하는 작품이지만, 살아 움직이는 음향층을 구성하는 음들이 생장하며 쉬는 ’숨’에서 윤이상의 이전 작품인 ’낙양’(1962)이나 ‘예악’(1966)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한국적 조화로움이 느껴진다. 한국인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질 그 숨을 함께 쉬는 일은 연주자에게도 감상자에게도 중요해 보인다.
한편, 윤이상이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던 해에 이 작품을 썼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윤이상은 첼로 협주곡에서 처음으로 음악 외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기 시작했으며, 이때를 분기점으로 음악 양식 또한 큰 변화를 맞이한다. 이후 윤이상은 더 한국적인 (또는 동아시아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자신의 음악 양식을 꾸준히 변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