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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5일 금요일

윤이상 '피리' / 슈톡하우젠 '작은 어릿광대' / 메시앙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윤이상: ‘피리’ (1971)

윤이상의 ’피리’는 본디 오보에 독주를 위한 작품으로, 한국 전통악기인 피리를 연상시키는 연주법이 작품에 쓰인다. 그러나 ’피리’는 서양 악기로 한국 전통악기를 흉내 내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서양음악과 한국음악의 상호작용과 상호침투를 보여준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윤이상류 오보에(클라리넷) 산조 또는 회상(會相; 영산회상)이라 할 수 있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 윤이상을 인터뷰한 작가 루이제 린저 등에 따르면, 이 작품에서 피리는 지하 감옥에 갇힌 자의 목소리를 상징한다. 그 목소리는 감옥 속에서 정신적인 자유를 얻고자 투쟁한다. “여러 차례에 걸쳐, 언제나 새롭게 시도하는 상승은 수감자가 스스로를 영적으로 고양하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마치 대기 중으로 날아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는 새의 몸짓처럼 말이다(루이제 린저).”

이 작품은 기-승-전-결 네 부분이 아치 형식으로 되어 있고 각 부분의 셈여림이 극적으로 변화한다(f–p / p–ff / fff–ppp / p–ppp). ‘솔♯’에서 시작하는 음은 옥타브를 넘어 ’라’에 도달하고자 여러 차례 시도한다. ’라’ 음은 윤이상 작품세계에서 흔히 도(道)의 세계, 해탈을 거쳐 다다를 수 있는 이상적 세계를 상징한다. 윤이상은 자신의 작품에서 인간을 표현하는 악기는 ’라’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 클라리넷을 위한 ‘작은 어릿광대’ (1975)

슈톡하우젠의 ‘작은 어릿광대’는 클라리넷을 위한 약 45분짜리 독주곡 ’어릿광대’(1975)의 축약판이다. 연주자는 어릿광대 복장을 하고 춤을 추면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게 되는데, 이때 연주자의 발소리가 타악기적 역할을 한다. 연주자가 춤과 연주를 동시에 하기가 여의치 않다면 전문 무용수가 춤을 맡거나 또는 타악기 연주자가 발소리를 대신하는 타악기 연주를 할 수도 있다.

어릿광대는 전통적인 의미의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때때로 우스꽝스러운 ’광대놀음’을 하게 된다. 음악 또한 ’춤’과 더불어 돈다. 즉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음형에서 곡 전체가 파생한다. 나선운동에 관한 아이디어는 슈톡하우젠의 1968년 작품 ’나선’(Spiral)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고, 한 음형에서 곡 전체와 세부 요소가 파생하는 짜임새는 만트라(1970), 이노리(1973-4) 등에서 발전한 것으로 동양 사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점에서 윤이상 음악 어법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슈톡하우젠은 미국의 클라리네티스트이자 슈톡하우젠의 연인이었던 수전 스티븐스를 위해 이 작품을 썼다.

올리비에 메시앙: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 (1940-41)

메시앙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후방의 군병원에서 지원병으로 활동하다가 1940년에 독일군 포로가 되었다. 수용소의 장교는 메시앙에게 종이와 연필을 제공해 작곡을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이 시기에 ’시간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가 탄생했다.

수용소에서 고통받던 작곡가는 어느 날 천사들의 무지개와 화려한 색채의 소용돌이를 환각으로 보고 요한계시록을 떠올렸다. 작품 제목에 쓰인 ’시간의 종말’은 요한계시록 제10장에서 온 것으로, 예수 재림의 때에 시간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리라는 계시를 일컫는다.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시간이 다시 없으리니[…].”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피아노로 된 악기 편성은 수용소에서 구할 수 있는 악기를 사용하고자 그렇게 결정되었다. 그곳에 있던 첼로에는 줄이 세 개뿐이었고, 클라리넷은 일부 구멍이 녹아 없어졌고, 피아노는 건반 몇 개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1941년 1월 15일 괴를리츠 포로수용소의 5,000여 명의 포로와 장병 앞에서 메시앙 자신의 피아노와 수용소에 있던 포로들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이날 연주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고 전해지며, 음악학자 이희경은 이것을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감옥에 울려 퍼진 모차르트 오페라 아리아와 견주기도 했다.

2010년 6월 6일 일요일

메시앙 《잊혀진 제물》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라벨 《어미 거위》 《라 발스》 ― 비비아네 하그너 / 정명훈 / 서울시향

2010-05-20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정명훈
협연: Viviane Hagner

메시앙, 잊혀진 제물 Messiaen, Les Offrandes oubliées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Chin, Violin Concerto
라벨, 어미 거위 Ravel, Ma Mère l’Oye
라벨, 라 발스 Ravel, La Valse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5년을 준비해왔습니다. 이제는 유럽 무대에서도 꿀리지 않을 기량을 보여줄 자신이 있습니다.”

서울시향이 유럽 무대에서 연주한다. 억지로 만들어낸 연주회가 아니라 정식으로 초청받아 갔다고 한다. 김주호 대표 말처럼, 이제는 서울시향이 유럽에서 상품성을 인정받게 됐다는 뜻이다. 정명훈이라는 거장이 지닌 이름값만으로 악단이 덩달아 인정받기는 어렵다. 서울시향이 그만한 실력을 길렀기에 가능한 일이다.

"준비가 덜 됐을 때는 안 하는 게 나아요. 괜히 창피만 당한다고. 하지만 이젠 준비가 됐어요. 적어도, 유럽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선 겁니다.”

정명훈은 이렇게 말했단다. 지난 5년 동안 서울시향을 지켜본 글쓴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수석급 단원들은 웬만한 유럽 지방악단에서도 한 자리 차지할 만한 실력을 지녔고, 그 가운데 한둘은 유럽에서도 수석 자리를 노릴 만하다. 몇몇 외국인 단원은 유럽 악단 수석을 겸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재정적·행정적 지원이 있으면 그리 오래지 않아 이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이다. 역사와 전통 없이 현이 제대로 된 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서울시향이 유럽에 간다는 말은 현이 그만한 수준에 올랐다는 말이다. 글쓴이가 판단하기에 현악 연주자들이 보여주는 응집력이 때때로 유럽 수준을 살짝 넘보게 된 때가 지난해 즈음이다. 실수 없이 악보를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뉘앙스를 자연스럽게 살려내는 일이 지난해부터 차츰 늘고 있다. 악기군끼리 어우러짐 또한 크게 늘었다.

이날 연주회는 유럽에서 연주할 곡들을 미리 선보이는 자리였다. 그 가운데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이 가장 반가웠다. 서울시향이 이 곡을 연주한 일이 두어 차례 있지만, 글쓴이는 그때마다 다른 일 때문에 기회를 놓쳐서 실연은 이날 처음 들었다. 아직 악보를 개인에게 팔지 않고 오케스트라에 빌려주기만 하는지라 글쓴이는 이 곡을 음반으로만 알 수밖에 없었는데, 이날 연주를 들어보니 켄트 나가노가 지휘한 몬트리올 심포니 녹음은 너무 얌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은 마림바와 여러 타악기 따위를 음반보다 앞세워 가믈란(gamelan;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 또는 악기) 느낌을 조금 더 살렸고,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대등하게 어우러져 교향곡 느낌마저 들었다. 스튜디오 작업을 거친 음반이 실연과 다른 탓도 있겠으나, 그것을 헤아려도 이날 타악기가 독주 바이올린 소리를 자신 있게 치고 나올 때가 잦았다.

1악장에서 큰북이 내는 묵직한 소리가 독주 바이올린과 어우러지는 대목을 글쓴이는 참 좋아하는데, 이날 시향 타악기 연주자 김문홍이 무대 오른쪽에서 큰북을 맡아 마치 바이올린과 2중주를 하는 듯했다.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는 무대 왼쪽 벽 가운데쯤에 바짝 붙어서 글록켄슈필과 갖가지 타악기를 연주했고, 김미연은 무대 왼쪽 뒷벽에서 마림바 따위를 연주하는 등 타악기만으로도 입체감을 주었다.

여기에 다른 악기 소리가 마치 살아있는 빛알갱이처럼 뭉치고 흩어지곤 했으며, 독주 바이올린은 빛 가루를 뿌리며 무리를 이끌고 날아다니는 듯했다. 빛 요정들이 떠들썩하게 장난을 치는 모습이 이럴까. 협연을 맡은 비비아네 하그너는 어렵기로 소문난 이 곡을 마치 가볍게 몸 풀듯 아무렇지도 않게 연주하곤 했으나 개방현으로 연주하는 대목에서는 몇 차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라벨 관현악곡은 화려한 색채감을 빼면 짜임새가 단순해서 연주자의 해석이 끼어들 곳이 적으며, 음색을 얼마나 맛깔스럽게 살리느냐가 연주자에게 중요할 때가 잦다. 이날 연주된 《어미 거위》 모음곡과 《라 발스》 또한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지휘자 역할이 매우 중요하면서도 지휘자 못지않게 악단이 많은 주목을 받게 할 수 있으니 서울시향을 유럽에 알리기에 매우 훌륭한 곡이라 하겠다.

이날 연주는 시시콜콜 따질 일 없이 그저 좋았다고만 말해도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이미 여러 차례 연주한 일이 있어서 서울시향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곡이라고도 할 만한 《라 발스》는 말할 것도 없고, 《어미 거위》 모음곡 또한 심각한 표정 지을 일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곡에 나무랄 데 없는 연주였다.

메시앙 《잊혀진 제물》도 훌륭했지만, 사납게 몰아치는 가운데 부분에서 현이 조금 더 단단히 뭉친 소리를 내주었으면 싶었다. 서울시향이 앞으로 더 나아질 곳이 얼마든지 있음이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 하겠는데, 정명훈 말마따나 이번 유럽 연주 여행이 “서울시향의 단원들에게 큰 공부와 자극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자신들을 되돌아볼 기회도 생길 테고, 음향이 훌륭한 연주회장을 두루 경험해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눈이 잔뜩 높아질 서울시향 단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전용 연주회장이다. 계획에 차질 없이 하루빨리, 그러나 음향에는 배려에 모자람 없이 지어지기를 바란다.

2009년 8월 29일 토요일

2008.02.29. 메시앙 투랑갈릴라 교향곡 - 폴 김 / 하라다 다카시 / 정명훈 / 서울시향

2008년 2월 29일(금)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폴 김 (피아노), 하라다 다카시 (옹드 마르트노)

Messiaen, Turangalila-symphonie



내가 그동안 정명훈에게 갖고 있던 불만 하나는 그가 지휘하는 서울시향 연주회 프로그램에 현대음악을 거의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괜한 투정이기는 하다. 그동안 베토벤과 브람스를 거치며 단원들 기본기 쌓기 바빴고, 아직도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현대음악은 객원 지휘자들이 드물지 않게 연주하고 있고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시리즈도 있다. 그런데도 정명훈 지휘로 현대음악을 들어보고픈 욕심을 버리지 못하던 가운데, 마침내 때를 만났다. 올해가 메시앙 탄생 100주년, 정명훈이야말로 작곡가 본인에게 극찬을 받은 메시앙 전문가가 아니던가! 정명훈 못지않게 메시앙 전문가로 이름 높은 피아니스트 폴 김과 옹드마르트노(Ondes Martenot) 전문 연주자 하라다 다카시도 데려왔다. '정명훈 효과'에 힘입어 <투랑갈릴라 교향곡> 한 곡만 연주한다는데도 연주회장은 꽉꽉 찼다.

그리고 무대를 가득 메운 타악기들. <투랑갈릴라 교향곡>은 독주 악기가 둘이나 있는 작품이지만, 이날 진짜 주인공은 타악기 연주자들이었다. 시향 타악기 주자들은 실력이 정말 뛰어나다.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는 내가 전에도 몇 번 지면을 빌어 칭찬한 적이 있거니와 다른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팀파니 말고는 고전 레퍼토리에 타악기가 잘 쓰이지 않아서 실력 발휘할 기회가 자주 없었다가 드디어 이날 솜씨를 맘껏 뽐냈다. <투랑갈릴라 교향곡>은 현대음악 중에서도 타악기가 많이 쓰인 작품이다. 어지간한 마니아들도 낯설어할 만한 악기도 더러 쓰였으니 이참에 악기 이름부터 익혀보자.

객석에서 봤을 때 피아노 왼쪽에 있던 풍금(Harmonium) 닮았으면서 소리는 카랑카랑한 악기는 첼레스타(Celesta)다. 그 왼쪽에 있던 실로폰 닮은 악기 둘은 글로켄슈필(Glockenspiel)인데, 실로폰이나 마림바(Marimba)와는 달리 나무막대가 아닌 쇠막대로 되어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쓰던 장난감 실로폰은 사실은 글로켄슈필이다.) 무대 맨 왼쪽에 있던 실로폰 닮았으면서 '웅웅웅' 하는 소리를 내던 악기는 비브라폰(Vibraphone)이다. 비브라폰 바로 뒤에 있던 길쭉한 쇠막대는 차임(Chime; Tubular bell)이다.

오케스트라 맨 뒤에 있던 까만 볼링 공에 막대기를 꽂은 듯한 모양에 막대를 잡고 흔들어 '쌕쌕'하는 소리를 내던 악기는 마라카스(Maracas)다. 그 옆에 나무토막을 채로 때려서 소리 내던 악기는 말 그대로 우드블록(Woodblock)이고, 6악장에서 우드블록 대신 더 깊고 작은 소리를 내던 악기는 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목탁(Temple block)이다.

그밖에 심벌즈, 트라이앵글, 탬버린, 작은북(Snare drum), 큰북이 있었고, 9악장에 나오던 통이 긴 북은 탕부랭(Tambourin provençal)이다. 심벌즈를 눕혀놓은 악기들은 크기가 작은 순으로 터키 심벌즈(Turkish cymbals), 서스펜디드 심벌즈(suspended cymbals), 중국 심벌즈(China cymbals)다. 줄에 매달아 놓고 채로 때리면 '구아앙!'하는 매우 큰 소리를 내는 징 닮은 악기는 탐탐(Tam-tam)이다. 북 종류인 톰톰(Tom-tom)과 전혀 다른 악기이니 주의할 것.

사람들 눈길을 가장 많이 끌었을 옹드마르트노(Ondes Martenot)는 전자악기답지 않게 '클래식하게' 생겨서 더욱 신기했다. 하라다 다카시의 연주는 음반으로 듣던 다른 연주자들보다 '아날로그하게' 들리기도 했다. 왼손이 떨릴 때마다 음색이 어찌 그리 다채롭게 바뀌는지!

그런가 하면 폴 김의 피아노는 어찌 들으면 전자악기같은 음색이었다. 작곡가가 기계적이고 타악기적인 음형을 잔뜩 써놓았기 때문이겠는데, 또 어찌 들으면 마림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특히 6악장에서 피아노가 '또랑또랑'하고 글로켄슈필과 첼레스타가 '까랑까랑'하고 비브라폰이 '웅웅웅'하면서 세 가지 음색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하늘나라 꽃밭이 눈에 그려질 듯했다.

타악기 주자 못지않게 빛났던 조연은 금관 연주자들이었다. 금관이 무르고 실수가 잦은 게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이기에 나는 더더욱 이날 훌륭한 연주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특히 트럼펫 수석이 금가루 똑똑 떨어질 듯 빛나는 소리로 힘찬 연주를 들려준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다만, 욕심을 부리자면 트럼펫이 섬세한 맛을 조금만 더 살렸으면 싶었다. 이를테면 1악장 마디 59에서 트럼펫 세 대가 빠른 반복 음형을 이어가는 부분은 포르티시모(ff)에서 피아노(p)로 재빨리 바뀌면서 마치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잠자리가 갑자기 날개를 파르르 떨며 멀리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재미있는데, 이날 연주자들은 악기 사이에 음을 이어받는 것은 부드러웠으나 제1 트럼펫이 포르티시모가 아닌 메조포르테(mf) 정도로 시작한 탓에 '깜짝 효과'와 원근감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다. 피아노가 어택(attack)을 제대로 못 맞춰주는 바람에 마치 트럼펫이 반 박자 빨리 들어간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다른 연주자들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 작품이 작품이니만큼 실수가 쌓이면서 조마조마한 순간이 더러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웬걸, 작품에 어지간히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실수를 찾아낼 수 없을 만큼 완벽에 가까운 연주였다.

정명훈의 해석은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음반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5악장과 10악장 마지막 음의 늘임표(fermata)를 몹시 과장하고 심지어 어마어마한 크레셴도를 준 것이 재미있었다. 연주회장이 떠나가도록 불고 긁고 두드려대는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이런 과장은 자칫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어 위험하지만, 이날은 연주회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업고 큰 효과를 거두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연주자가 이런 '오버 액션'을 할 때에는 '클래식' 음악 연주회랍시고 점잖게만 있을 게 아니라 대중음악 연주회처럼 음악이 덜 끝났어도 박수와 환호를 보내면 어떨까. 너무 발칙한 생각인가?

연주가 끝나고 정명훈이 인사하면서 앞자리에 앉아있던 어린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아이가 고전음악을 어려워하거나 고리타분하게 생각한다면 현대음악을 먼저 들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편견이 없어서 현대음악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단, 가정용 오디오로는 현대음악의 참맛을 알기 어려우므로 연주회장에 직접 데려가는 게 좋다.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특집인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연주회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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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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