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17일 수요일

볼링 포 히틀러 (Bowling for Hitler)

- SiteLink #1 :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0811113951&s_menu=%B9%AE%C8%AD

볼링 포 히틀러 (Bowling for Hitler)

고클래식에서 다음 글을 읽고 괜히 열받아서 한 마디 씀:

서경식, 서경식의 '디아스포라 기행'<6> 바그너와 김지하. 프레시안 2005-08-11 오전 11:57:06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50811113951&s_menu=%B9%AE%C8%AD

TV를 보니 콜럼바인 참사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헤비메탈이죠. 폭력 영화. 사우스 파크. 비디오 게임. 마약. 마릴린 맨슨, 마릴린 맨슨..." 콜럼바인 참사의 주역인 에릭과 딜란의 집에서 록가수 마릴린 맨슨의 CD가 발견됐다고 하던데, 정말 마릴린 맨슨 때문일까? 그 사건을 수사중인 '스티브 데이비스' 보안관에게 물어보았다.

"걔들이 그날 아침 볼링을 했대요. 그거 밖엔 몰라요!"

- 마이클 무어, <볼링 포 콜럼바인> (DVD 소개말 중에서.)



1. 바그너가 '음악에 있어서의 유대성'[음악 속의 유대주의]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2. 바그너가 나치에 부역했다.
(나중에 덧붙임: 이 명제는 거짓임. 나치는 바그너 생전에 없었을 걸? 근데 내가 왜 이 말을 했을까...OTL 하여간 바그너의 후손들은 나치에 부역한 것 맞음)
3. 히틀러가 바그너에 심취했다.

그러므로 바그너의 음악에 "나치를 매료하는 요소, 국수주의나 파시즘에 이어지는 요소가 있음에 틀림없다."

글쓴이가 사용한 논리의 빈약함과 심지어 전제 자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습니다만, 애초에 색안경을 벗을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구구절절 떠들기 귀찮으니 생략하겠습니다. 박원철님 말씀대로 바그너의 업보이려니 하지요.

저는 그보다 글쓴이의 예술론에 아연했습니다.

예술은 감상자와 대등한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은 예술은 "파시즘에 바람직"하다. 예술을 감상할 때에는 "개인의 취향이나 취미, 의심이나 비판, 위화감이나 저항, 그와 같은 감정을"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하며, 결코 예술에 "몸을 맡"기거나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으로 예술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려는 프로크루스테스적인 태도야말로 '파시즘에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요?

글쓴이의 논리를 확장하면, 예술은 감상자와 대등해야 하기 때문에 감상자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들어서는 안 되고, 따라서 어느 정도는 공부가 필요한 클래식 음악은 그래서 좋지 않다? 더군다나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절대적으로 많은 학습량이 필요한 바그너는? 그 때문에 글쓴이는 호기심에 공연을 한 번 보기는 하되 피상적인 상식들만 나열하고 있었던 것입니까? (글쓴이에게 '음악'에 대해 객관적으로 말하려면 음악 기초이론을 조금 공부하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만약 콩나물 대가리에 알레르기가 있다면 최소한 <제3제국과 음악> 같은 책뿐만 아니라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 (안인희, 서울: 민음사 2003) 같은 책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은 바그너의 음악과 문학, 무대예술, 사상과 개인사까지 두루 공부하는 것이 좋겠지만,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다만, 플롯을 작위적으로 해석한 것을 가지고 바그너를 비판하는 근거로 삼는 궁색한 논리는 그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또 글쓴이는 같은 논리로 HOT(요즘 유명한 가수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만)에 열광하는 중고등학생들이 얼마 안 가서 파시즘에 부화뇌동할 것이라고 걱정해야 하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걸 어쩝니까, 아마도 글쓴이의 사상적 고향으로 보이는 '운동권' 쪽에서도 비슷한 '파시즘적' 선동 예술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복수에 빛나는 총탄으로 이제 고인 눈물을 닦아다오 마침내 올려진 승리의 깃발 힘차게 펄럭여다오."

"그래 너희들은 외세와 자본이 있고 폭력집단 경찰과 군대 있지만, 우리에겐 신념과 의리로 뭉친 죽음도 함께하는 동지가 있다. 보아라 연대의 깃발, 들어라 단결의 함성. 너희의 마지막 발악, 투쟁으로 화답하리라."

음악 자체가 가진 리듬과 화성 등의 선동성도 만만치 않지만, 이런 노래를 집회 현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놓아 부를 때 생기는 선동 효과가 얼마나 컸던지는 글쓴이도 잘 알 것이라 믿습니다.

서양의 선동적 예술의 전통은 그리스 비극과 바쿠스 축제(카니발), 중세 기독교의 건축과 음악 등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바그너는 예술의 선동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람이었고, 히틀러와 그 일당이 그것을 현대적 선동기법으로 확립시켰습니다. 그것은 다시 레닌 등을 거쳐 공산주의 선동기법이 되었고, 마침내 한국 운동권의 선동기법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선동적인 예술은 위험한 것입니까? 나치가 선동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까?

과학기술은 위험한 것입니까? 과학기술이 살인에 이용되기 때문에 위험한 것입니까?

바그너 마조히즘에 절어 있는 저는 파시스트입니까?

* * *

댓글 모음:

송원섭 (carl0326): 저는 바그너에 관한 저 글이 바그너의 음악을 비판하고 비난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겪어온 역사 속에서 바그너는 나치즘이 그 극단적인 모습을 보였던 래이시즘의 성향을 매우 강하게 가지고 있었던 작곡가라는 사실에 대한 지적이며, 그가 반유태주의를 부르짖고 있었다면, 바로 그런 자신의 생각을 음악에서도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혐의를 두었다는게 정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혐의를 두고 의심해보고 검증절차를 거친다는 것은 어디에서나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대로 과거 운동권(현재는 모르지만)의 문화 자체가 매우 전체주의적이고 군사문화적이었던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사실들 속에서 소규모 문화운동이나 여성운동이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것도 사실이고, 운동권 내부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추잡한 문제들도 또 적당히 권위의 체계를 이용해 덮어졌던 것도 사실이라고 봅니다.
말하자면 반성이라는 것이겠죠. 운동권이든 아니면 이미 백년도 더 된 음악가든. 그것을 의심하고, 그것이 어떤 문화에서 나와 어떤 문화를 만들어냈는가를 비판적 안목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저 글에서 받는 느낌이기를 바라며 퍼왔습니다.
05/08/17 17:23
송원섭 (carl0326): 순간 헷갈렸는데,
바그너 - 박원철님
바그네리안 - 김원철님

우연하게도 두분 성함이 같은데,
두분 모두 바그너 음악을 매우 좋아하시는 듯.
05/08/17 17:40
김원철 (wagnerian): 저는 파시즘을 경계하자는 논리에 바그너에 관한 어설픈 지식이 습관처럼 동원되고, 심지어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면 파시스트가 되기라도 할 것처럼 말하곤 하는 것에 짜증을 낸 것입니다. 이런 말처럼요:

"게다가 교양 있는 백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관객들이, 오늘날의 이른바 '아우슈비츠 이후의 세계'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바그너에 도취되어 있는 것도 나에게는 섬뜩한 것이다. 또한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도취되어있는 일본인 관객의 대부분이 아마도 이와 같은 위험성에 무지할 것이 불안해 견딜 수없는 것이다."

또, 저는 글에서 '운동권 노래'를 비판하는 뜻으로 인용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선동성이 음악을 비판하는 잣대가 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지요. 오히려 이미 낡아버린 선동 기법을 반성 없이 우려먹고 있는 요즘 운동가들이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05/08/17 17:55
김원철 (wagnerian):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를 인용한 이유를 이해 못 하는 분이 있을까 봐 링크 하나 덧붙입니다.

http://busantheater.co.kr/movieinfo/now_news_view.asp?idx=MI0000105020&rnum=4m_id=M000016482&mi_type=01
05/08/17 18:58
한아루미 (rumi82): 바그너를 상당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건 별로 참여하고 싶지 않은 논쟁이기는 한데요...:-)

바그너 자신의 '음악에 있어서의 반유대주의' 논문 사건은 이 사람이 철저한 반유대주의자였다는 증거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 기초한 상대적 박탈감과 경쟁의식, 분노 등에 근거한 무자비한 비난과 확인 사살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습니다. 바그너의 심란한 인간성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한 사례이긴 하죠. (생각해 보면 진짜 못돼먹은 사람이란 말이죠 바그너는) 바그너가 분명 자신의 미학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립항으로서의 유대 음악을 비판한 것은 사실이지만, '파르지팔'을 바이로이트에서 초연한 헤르만 레비는 랍비의 아들이잖아요.

문제는 바그너의 며느리 비니프레트 바그너나 그 사위 리처드 체임벌린, 손자 빌란트 바그너와 볼프강 바그너가 나치즘이나 히틀러 개인과 어떤 관계에 있었느냐 하는 점이 더 크겠죠. 그들이 나치와 관계를 맺을 때 바그너의 예술을 십분 활용한 것 역시 사실이고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단지 '업보'라고만 할 수 있을까요? 바그너의 예술이 나치 시대에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은 바그너 예술에 이미 그런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잖아요. 나치가 베에토펜이나 바그너를 써먹은 정도와 모차르트나 슈베르트를 써먹은 정도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점만 봐도 알 수 있고요.
05/08/17 20:10
한아루미 (rumi82): 이게 단지 '예술적 문제' 라는 이유만으로 전후 바이로이트가 어떤 행보를 걸어왔는가를 생각해 보면 상당히 불쾌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긴 하죠.

이 동호회에서도 이전에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저 고이즈미 총리는 바이로이트에서 탄호이저를 관람했죠. 그 기회에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도 슬쩍 바이로이트를 찾았고요. 독일 연방 대통령이나 바이에른 주 총리 등등이 바이로이트를 찾은 것은 그 이전부터 자주 있었던 일이지만, 주축국이었던 두 나라의 - 그것도 한 사람은 안그래도 역사 인식이 심각하게 문제 있는 사람이죠 - 총리가 나치의 성지였던 곳을 희희낙낙 찾아갔다는 것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어쩌면 그런 '예술적 문제'에 대한 관대함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그건 거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맞먹는 '정치적 행동' 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바그너의 예술 작품을 좋아하는 것과, 그것 때문에 그의 작품이 역사적으로 오용되어 온 것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가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바그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이나 불쾌한 감정을 갖는 것은 그다지 부자연스럽다거나 애써 부인해야 할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 항상 그렇더군요.
05/08/17 20:17


한아루미님의 덧글에 부침
글쓴이 김원철 (wagnerian) 날짜 2005년 8월 18일 0시 29분 추천 3 조회 123
바그너가 나치에 부역했으며 나치가 바그너의 예술을 정치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요,

(1) 우선 나치가 이용해 먹은 것은 한아루미님 말씀처럼 베토벤의 음악 역시 만만치 않으니 굳이 바그너만을 문제 삼을 것은 없겠습니다. 만약 베토벤의 음악이 파시즘을 담고 있으며 베토벤의 음악이 멀쩡한 사람을 파시스트로 만든다거나 <시계태엽 오렌지>의 주인공처럼 만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 사람과는 상종을 하지 않겠습니다.

(2) 바그너가 나치에 부역했으니 바그너는 나치주의자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제가 바그너 본인이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바그너 개인사를 살펴보면 차라리 바그너를 기회주의자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바그너는 무정부주의자이면서 바쿠닌-푸르동 계열의 낭만적 사회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이 무정부주의자이면서 사회주의자이면서 나치주의자일 수가 있습니까? 이런 엽기적인 변덕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기회주의'뿐입니다. <음악 속의 유태주의>도 마찬가지로 설명됩니다. 바그너가 그 논문에서 공격하고 있던 '유태인'이란 멘델스존과 마이어베어였다는 것이 음악사가들의 정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 바그너가 유태인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고 하거든요. 다만 멘델스존과 마이어베어 등이 자신의 출세길에 걸림돌이 되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3) 어쨌거나 바그너의 인격은 그다지 본받을 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술작품에는 작가의 얼이 담겨있으니 치사한 인격을 가진 예술가의 작품은 감상해선 안 된다는 식의 논리는 곤란합니다. 바그너의 음악이 어떻게 사람을 파시스트로 만드는지, 어설픈 추측만 늘어놓지 말고 객관적으로 설명해 보란 말입니다. 마릴린 맨슨의 음악이 어떻게 살인을 부추기는지 설명하란 말입니다. 콜럼바인 총기난사사건의 범인은 사건 당일 아침에 볼링을 쳤다니까요? 볼링 참 위험천만한 스포츠죠?

(4) 바이로이트를 나치의 상징물처럼 여기는 태도 또한 공감할 수 없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와 같은 무게를 가지는 곳은 아우슈비츠나 뉘른베르크 재판장 아닙니까? 그런 논리라면 푸르크벵글러의 베토벤 교향곡 9번 바이로이트 녹음을 들을 때에도 죄책감을 느껴 줘야 하는 겁니까? 역사 앞에 죄를 물어야 할 대상은 나치 정권이지 바그너가 아닙니다. 면죄부가 웬 말입니까? 히로시마 원폭과 관련해서 아인슈타인에게 면죄부를 주네 마네 한다면?

(5) 나치가 바그너의 음악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은 지식인이라면 알아야 할 상식입니다. 20세기 과학기술이 대재앙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예술과 과학에 책임을 물으려는 태도는 차라리 진짜 원인을 은폐하려는 비겁한 술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살인사건의 원인을 마릴린 맨슨에게 덮어씌우는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6) 텔아비브에서 바그너를 연주한 유/태/인/ 다니엘 바렌보임이야말로 존경받아 마땅한 이 시대의 지성인입니다.


김원철님의 덧글에 부침
글쓴이 한아루미 (rumi82) 날짜 2005년 8월 18일 1시 16분 추천 3 조회 159

여러 가지로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 글이 좀 두서없기는 합니다. 아마도 덧글 형식이어서 더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각각에 대해서 간단히 답변해 보겠습니다.


(1) 물론 바그너만을 문제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바그너가 나치즘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가였음이 분명하다’는 문장과 ‘나치즘은 바그너를 이용했고, 베에토펜도 이용했으니, 굳이 바그너만 문제될 건 없다.’ 는 문장은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런 문제입니다.


(2) 바그너 자신은 나치주의자가 아닙니다. 그 점은 저도 분명히 언급했습니다.


(3) 저는 바그너의 음악이 사람을 파시스트로 만든다는 주장은 한 적이 없습니다. 어설픈 추측이라니요. 예술가의 인격이 치사하니 그 작품도 감상할 가치가 없다거나 감상해서는 안된다는 주장 역시 한 바 없고요. 앞에서 다른 분들이 혹시 그런 주장을 했는지를 찾아봤는데, 찾을 수가 없더군요. (혹시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이 있다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그너 예술에 파시스트적 요소가 있고, 그것이 나치에 의해 악용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fact가 아닙니까? 그 사실을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느냐, 가볍게 받아들이냐는 문제일 뿐인 것 같습니다.


(4) 아우슈비츠나 뉘른베르크 재판장 (혹시 뉘른베르크 전당 대회장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닌지?) 이 나치의 상징인 정도만큼은 바이로이트도 그렇다고 생각하는데요. 바그너의 상당한 애호가이신 만큼, 나치 시대 도이칠란트에서 히틀러가 바이로이트를 어떻게 취급했는지는 제가 굳이 시시콜콜 설명해 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후 바이로이트를 운영한 빌란트나 볼프강의 나치 전력에 대해서도 여기서 재론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 리고, 고이즈미 총리가 아무리 오페라 애호가고 바그너의 팬이라지만 독일의 그 하고많은 유수의 오페라 극장들 중에서도 굳이 바이로이트를 찾아간 것이 정치적 행동이 아닐까요? 그 사람은 그렇게 순진하지는 않은 것 같던데요. :-) 전 당시 고이즈미 총리의 독일 방문 일정을 자세히 찾아봤는데, 유대 박물관이나 나치 수용소 같은 곳은 전혀 방문할 생각이 없었더군요. 게다가 2차 세계대전에 대한 발언은 양국의 총리 모두 한 번도 없었죠. 제가 자꾸 고이즈미 총리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은, 정치에 의한 바이로이트 악용의 문제가 어쩌면 과거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바그너에게 나치의 죄과를 물을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럼 비니프레트 바그너나 빌란트 바그너, 볼프강 바그너는 어떨까요?


히 로시마 원폭과 관련해서 아인슈타인이나 오펜하이머 같은 물리학자들은 상당히 무거운 죄책감을 남은 평생 동안 느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과연 그 정도의 자기 과거에 대한 반성을 볼프강이나 빌란트가 했었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바이로이트의 경영권은 다른 사람한테 줬겠지요. 그러고 보면 볼프강은 매년 '개인적 친분'을 이유로 헤르만 괴링의 딸이나 루돌프 헤스의 아들에게 바이로이트 입장권을 보내 주고 있지요. 에다 괴링은 1938년 생이니 전쟁이 끝났을 때 7살이었는데, 무슨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정말로 개인적 친분이 있다면, 볼프강이 전후에도 나치 지도자의 자녀들과 만나고 다녔다는 얘기가 되고요.


(5) 예술과 과학이 20세기에 어떻게 악용되었는지에 대해 분명한 역사적 인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진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예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더 나쁩니다. 그러나 ‘난 단지 예술가일 뿐이라고’는 변명 역시 20세기 같은 지독한 시절에는 그저 바보같이 이용될 뿐이었던 것도 사실이죠. 마지막으로 또 반복하자면 바그너 예술에 파시즘에 악용될 만한 요소가 있다는 것은 어차피 사실이고 전 단지 그걸 인정하자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김원철님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도 않지요. :-)


푸 르트벵글러는 순진한 예술가일 뿐이었지만, 나치에 이용당한 건 분명하고, 그건 그 사람의 경력에서 치명적인 오점이죠. 전 푸르트벵글러의 바이로이트 베에토펜 9번을 들을 때 그 정도의 생각은 합니다. 그리고 그 음반의 상황이 상당히 비극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약간 혐오스럽다 정도는 느끼는데요. 푸르트벵글러나 바그너나 참 안됐긴 안됐어요. 시대를 잘 못 타고나서 그렇지요. 그래도 푸르트벵글러는 좀 더 똑 부러지게 행동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거죠.

가령 반유대주의의 역사에서 독일못지 않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오스트리아 - 그러 고 보면 히틀러는 원래 오스트리아 사람이죠 - 가 전후 국립 극장을 복구한 뒤 거기서 칼 뵘 - 역시 나치 전력이 있죠 - 의 지휘로 '피델리오'를 상연하면서 '자유를 되찾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일본에는 히로시마 원폭 관련 사진 예술이나 회화 예술 작품이 엄청나게 많죠. 물론 대부분은 일본을 피해자의 입장으로 묘사하는 작품들이고요.


(6) 저는 바렌보임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바렌보임의 그 행동은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여지가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 바그너가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라디오 같은 데서는 바그너의 작품들이 방송되기도 하고, 음반도 버젓이 팔리고 있었죠. 바렌보임으로서는 그런 ‘민족감정’을 이용하는, 그리고 그것으로 예술까지 통제하려는 이스라엘 극우 정부에 대한 일종의 항의의 의미도 있었다는 인터뷰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나는군요. 그러니까 그것도 예술 지상주의적 행동이었다기보다는 일종의 정치적 행동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김원철 (wagnerian): (3)의 내용은 서경식씨 얘기였습니다. 해당 부분을 제가 처음에 쓴 글에 덧글로 인용했었고요. 오해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황당하셨겠어요.

바그너의 며느리와 후손들이 골수 나치주의자였던 것은 아마도 맞지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3)과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는 것이 제 댓글의 요지였습니다. 과학기술 얘기를 끌어들인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었고요. (악용 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대비는 필요하지만, 살인 기술이 싫다고 석기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죠.) 이에 대해서는 한아루미님께서도 동의한다 하셨으니, 의견차이가 생기는 부분은 바이로이트를 나치의 성지로 보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인데요... 제 의견을 철회한 생각은 없지만, 아이고, 귀찮으니 이에 대해서는 발뺌하고 도망가겠습니다. ^^

붙임. 저는 바렌보임의 행동을 예술지상주의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행동의 정치적 정당성을 지지한다는 말이었답니다. 저는 '엔카'라는 일본의 음악 장르를 몹시 싫어하지만, 냉정하게 따지면 음악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서 오는 정서가 '엔카'라는 음악 장르를 용납하기 힘들게 합니다. 바렌보임은 그러한 정서적 반감을 떨쳐버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05/08/18 02:02
한아루미 (rumi82): 그렇군요. 서경석씨의 글을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보니, 그렇게 생각할 만한 부분이 있는 것 같기는 하네요.

(3)이 '바그너의 예술에는 파시즘적 요소가 있다'는 주장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역시 서로 의견 조정이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저 역시 그 주장과 '바이로이트는 나치의 성지였다'는 주장을 철회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

바렌보임에 대해서는 거의 같은 의견인 것 같습니다.
05/08/18 12:41
김원철 (wagnerian): 저는 굳이 바그너의 예술에 파시즘적 요소가 없다고 억지 주장하지는 않았거든요. :-)

다만, 그런 식이라면 베토벤의 교향곡에서 파시즘적 요소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을 이유로 베토벤이나 바그너, 또는 마릴린 맨슨의 작품이 위험하다고 주장한다면 너무나 터무니없다는 것이 제 주장이었습니다.
05/08/18 15:07


한아루미님의 덧글에 부침
글쓴이 박원철 (wagner) 날짜 2005년 8월 18일 10시 10분 추천 3 조회 81

재미있는 토론들입니다. 미세하게 서로의 강조점들이 다른 부분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가벼운 댓글 속에서 이미 바그너 연구와 관련해서 말 많이 나오는 거의 대부분의 주제들이
다 나와 버렸습니다 : 반-유대주의와 그 이해, 나찌 시대의 바이로이트 및 그 수용사,

궁극적으로는예술과 정치의 한계점 문제 등등.....
어차피 학술 토론도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의견을 밝혀 보면,

1. 바그너 음악속에 있는 파시즘적 요소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바그너는 성공한 작곡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가 원했던 악극이라는 것이 요즘처럼 극장에 가서 얌전히 앉아서 무대에 펼쳐지는 공연을
보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일종의 제전/ 축제의 형태였다는 사실을 상기해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공동체라는 단어와 회복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이미 "선동"이라던가 "파시스트적 요소"야
당연히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 없이는 중구난방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니까요.
바그너의 반-유대주의와 독일 민족주의도 실은 이런 선상에서 이해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고이즈미 총리 건

광복절 지난지 며칠도 안되었는데 고이즈미를 옹호(?)하는 듯한 말을 하게 돼서
스스로도 몹시 불쾌합니다만, 일단 그의 바이로이트 방문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지나치게 민감한 것 아닌가 하고 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가 총리가 되기 이전에, 이미 일본 바그너 협회의 회장직을 맡았었기 때문입니다.

현재도 고문직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가 공식 방문 도중 탄호이저를 보러간 것을 가지고 "공무 도중 땡땡이 치고
극장에 갔다" 혹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구하기 힘든 표를 억지로 구했다"라고
비난하는 것은 타당할지라도, 그 이상으로 넘어가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입니다.

또한 말씀하신 주축국의 두 지도자들이 바이로이트에 있다는 묘한 느낌은 저도 느끼는바
이제는 그런 느낌에서 자유로와질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정도의 생각을 해봅니다.
그와 관련된 문제는 다른 차원에서 풀어야지, 바이로이트 혹은 바그너와의 문제로

돌아오는 것은 많이 퇴색되었다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3. 히틀러와 바그너

최근에 히틀러의 비서였던 여자가 책을 펴낸 일이 있습니다. 이 책을 바탕으로
Untergang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점에서
그 책의 인덱스를 펼쳐 바그너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단 1회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그나마 내용은 더 황당했습니다. 한번 읽고 기억을 회상한 것이니
부정확할 수 있겠지만, 그 내용은 대충 이랬습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히틀러에게 바그너의 마이스터징거가 어떻냐고 물었답니다.

이에 대해 히틀러는 별 생각없이 "응, 아주 좋아"라고 대답을 했고, 그 이후로는

그가 어디를 가던 마이스터징거만 나오더라는 히틀러의 증언(?) 내용을 싣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게 권력이고, 바이로이트가 나찌의 총본산처럼 떠오르게 되는데는
꼭 같은 메카니즘이 뒤에서 돌았으리라고 봅니다. 이 영향때문이었는지,

실제로 전쟁중에는 바이로이트에서도 마이스터징거만 죽어라고 했다는 .....

4. 아무튼 바그너는 참 시끄러운 예술가입니다.

죽은 지 약 120년 밖에 안 되었음에도 이미 온갖 논쟁과 신화의 한복판에 서 있으니 말입니다.

-- 박원철

한아루미 (rumi82): 고이즈미 총리의 경우 그가 일개 정치인이었을 때 바이로이트를 매년 찾아가서 바그너의 전 작품을 관람하더라도 그렇게까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만, (아니 사실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요) 일본국의 총리가 독일국의 총리와 손잡고 그곳을 찾아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모양새가 좋지 않지요. 일부러 의식적으로라도 그런 행동은 피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그러고 보면 이 사람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총리 자격이 아니라 개인적인 입장으로 갔다는 둥 괘변을 늘어놨었죠.

Untergang은 그 비서의 책도 참고가 되었지만 같은 제목의 요아킴 페스트의 책이 더 중요한 텍스트가 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메커니즘의 작동하여 시너지 효과가 있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히틀러가 바그너의 광팬이었던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은 사실이죠.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이 마이스터징어만으로 운영된 것은 아마 1942년부터일 텐데 (정확하지 않습니다. 1941년이나 1943년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전쟁이 어려워지면서 다른 많은 작품들을 상연할 형편이 못 되었고, 둘째는 마이스터징어가 히틀러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일 뿐 아니라 나치즘을 가장 잘 구현한 바그너의 작품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죠.
05/08/18 12:49
박원철 (wagner): 요아킴 페스트의 책이었군요. 아직 영화도 보지 못한 상태 - 아마 영원히 못 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히틀러는 바그너의 열렬한 팬입니다. 단순히 제3제국의 선전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좋아했습니다.
가끔은 만약 히틀러가 다른 작곡가를 좋아했었으면, 오늘날 세계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혹은 오늘 우리는 그 세계를 어떻게 해석하려 했을까? 상상을 해 보곤 합니다.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떠들기 좋은 주제이지요.

기록을 찾아보니, 마이스터징거만 상연된 것은 1943년과 44년 두해 뿐이었습니다. 푸르트뱅글러와 아벤트로스(Hermann Abendroth)가 지휘를 했었고, 이것이 푸르트뱅글러의 유일한 바이로이트 악극 지휘 기록(51년 베토벤 제외)입니다. 전쟁중에는 마이스터징거만 한듯한 잘못된 정보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지적하신 대로 선전 효과가 가장 높은 작품이어서 선택되었으리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또 유일한 해피 엔딩이라는 것도 고려되었겠지요.

혹시 마이스터징거 이외의 작품들, 즉 반지에서의 나찌즘적 요소라던가, 파르지팔에 나타난 히틀러의 형상 같은 주제의 글을 보신 분 계신가요? 개인적으로는 왜 모든 바그너-나찌 이야기는 맨 마지막에 마이스터징거로 돌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별로 바그너스럽지 않은 작품이라고 보고 있습니다만 .....)
05/08/18 14:23


역사적 정황
글쓴이 송원섭 (carl0326) 날짜 2005년 8월 18일 8시 11분 추천 1 조회 110

바그너에 대해 나치적이라던가, 혹은 바그너가 나치에 부역했다던가 하는 말들은 말 그대로 보다는 역사적 정황과 그 흐름으로서 의미있을 수 있는 말입니다. 독일에서 이 나찌라는 것이 만들어진 것이 20 세기가 시작되고 한참 지나서이고, 바그너는 20 세기 시작되기 한 20 년 전에 죽은 사람이니까 말입니다. 말 그대로의 '부역'이라고 한다면 바그너는 하고 싶어도 못했을 것입니다. 또 친나치적이냐 반나치적이냐 하는 말도 바그너 자신에 대해서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나치당이 존재하지도 않고 나치즘이 존재하지도 않는데 그에 대해 친-반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그너는 나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나 치즘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아마도 가장 중심적인 반인륜적 주장은 인종차별주의였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인종차별주의야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있을 것인데, 1900 년대 초반에 이르면 이런 것이 여러가지 주장들과 함께 과학으로부터도 충분히 뒷받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19 세기 후반에 불기 시작한 우생학의 유행은 세계 여러 나라에 영향을 주었고, 좀 더 나은 인종을 계속 태어나게 함으로써 더 우수한 국가를 만들고 더 우수한 세계를 이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연결되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 시대에 바그너는 인종차별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주장을 펼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가 나치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미국이 20 세기 초에 우생학이라는 학문의 와중에 파생된 생각들 때문에 행했던 여러가지 범죄행위들을 보게되면 정말 황당한 것도 있습니다. 과부3대라고 유명한 사례가 있죠. 한 여자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를 낳고 남편이 곧 죽었고, 아이가 커서 결혼을 했는데 딸을 하나 낳고 또 과부가 되었습니다. 문젠 이 딸이 커서 결혼을 할 때가 되자 논란이 된 것입니다. 이 여자의 피에는 과부가 되는 유전자가 들어있음에 틀림없다는 것이죠. 그러니 후세를 위해 이 여자가 아이를 낳지 못하게 불임을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이 주장 때문에 법정까지 갔는데 불행한 결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조금쯤 황당한 우생학의 열풍 속에서 나치는 인종차별에 의해 열등한 종족은 멸종시켜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고, 유럽에 퍼져 있던 유태인에 대한 불쾌감 뿐만 아니라, 그들을 노골적으로 비하했던 많은 사람들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유태인 대학살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바그너가 이들에 의해 이용되었다기 보다는 바그너가 바로 나치즘이 가능할 수 있도록 바탕을 깔아 놓는데 일조했다는 생각은 틀림없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하면 베토벤은 '이용당했다'라는 말이 어울리겠죠.

문제는 그의 주장이 어땠다는 사실과 그의 음악을 완벽하게 분리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인데, 음악은 예술의 양식상 주장을 싣는 것이 그리 용이한 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자신의 주장을 자신의 음악에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기 때문이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계심과 비판이라는 것은, 일제에 강점되어 30 년이 넘게 통치를 당해본 우리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박원철 (wagner): 큰 그림에서 동의합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 - 일제 치하를 겪은 우리가 가지는 경계심과 비판-에서 그렇습니다.

굳이 토를 달아보면,
일단 바그너라는 사람의 주장은 "일관된 하나의 정신으로 끝까지"가 없습니다. 반-유대주의 주장도 실은 1850년대의 몇몇 논문의 이야기입니다. 주변의 친구들이 유대인이었고, 그의 음악을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 유대인이었습니다. 후기 작품인 반지나 파지팔에서 반-유대주의적인 색채를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못 찾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때가 되면 바그너라는 사람에게 반-유대주의는 별 중요한 의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중반, 당시 분위기가 당연히 반-유대주의였기에 기회주의자인 바그너가 잘난척하려고 쓴 논문들 아닌가 하는 것이 제 솔직한 판단입니다.

한가지 더, 정말 패러독스인 것은 2차대전 이전까지 바그너 음악의 팬중 많은 사람이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시오니즘의 주창자중 하나인 Theodor Herzl이 탄호이저 공연중 시오니즘의 실마리를 발견했다는 그의 일기 이야기는 현재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비밀입니다. 즉, 우리가 걱정하는 반-유대주의 사회 분위기속에서 진작 유대인들은 바그너를 즐겼다는 거지요. 우리가 상상하기에는 유대인들과 바그너가 머리 터져라 싸웠을 듯 한데 말이지요.
05/08/18 11:15
장정일 (xtopa): 근대 시오니즘의 출발은 1894년 드레퓌스 사건에서 비롯합니다. 그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유태계 언론인 테오도르 헤르츨이 유태인 국가에 대한 소망을 담은 <유태인 국가>(1896)를 출간하게 되고, 그 이듬해 스위스 바젤에서 시오니스트들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건설할 것을 결의하지요. 바그너극을 보고 시오니즘의 실마리를 발견했다고 믿는 것은, 어린 시절, 스토우 부인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이 남북전쟁을 일으켰다고 믿고 또 더 자라서는 고리키의 <어머니>가 러시아 혁명을 일으켰다고 믿는 것이나 같습니다. 또 히틀러 여비서의 회고록에 바그너가 한번 밖에 나오지 않았고, 05/08/18 12:19
장정일 (xtopa): 졸개들이 아부를 하기 위해 바그너의 특정음악만 계속 틀었다는 이야기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히틀러에 관한 여러 책을 보면, 그는 광적인 바그네리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르츨이 바그너극을 보고 시오니즘의 실마리를 발견했다는 설은, 재미있습니다. 이 점은 바그너의 반유대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바그너의 과도하고 반성없는 민족주의 영웅주의 신화회귀적 특성이 더 문제라는 것을 암시해줍니다. 시오니스트의 생각이 점점 나치즘과 비슷해 지는 것을 보면, 헤르츨에게나 히틀러에게나 바그너는 영감의 원천이었을 수도 있겠죠.(나치가 바그너로부터 비롯했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05/08/18 12:26
박재형 (scrooge): 과부 유전자라는 말이 황당하게 들릴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존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가치판단의 몫이 우리가 아니라는 점이겠습니다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그게 유익한 상황이 있을수도 있고 그게 자연선택되어 주류가 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는거죠. ㅋ05/08/18 14:00


새메모에 연이은 글
글쓴이 장정일 (xtopa) 날짜 2005년 8월 18일 12시 44분 추천 1 조회 65

*댓글 도배를 방지하기 위해 2회 이상 새메모가 금지 되어, 이어 씁니다.

그러니 바그너 당시의 유태인이 바그너를 반대하지 않고, 도리어 바그너악극을 즐긴 이유는 대리만족 때문이기도 하겠죠. 바그너의 민족주의 영웅주의 신화회귀담을 보면서 조상들의 옛 영화를 생각하며 시오니즘을 꿈꾸었을 공산도 있죠.

우리는 시오니즘이 팔레스타인 땅에 현재와 같은 조그마한 이스라엘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정작 시오니스트들의 꿈은 이것보다 더 크죠. 중동 전체가 고대 이스라엘의 땅이라고 믿는게 그들의 생각이고, 그걸 복구해야한다는게 시오니즘의 최종 목적이라는군요.

박원철 (wagner): 댓글을 읽기 전까지, 저도 도대체 탄호이저의 어느 부분에서 Herzl이 시오니즘의 실마리를 잡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장정일님이 말씀해주신 "바그너의 과도하고 반성없는, 민족주의/영웅주의/신화 회귀적 특성이 더 문제라는 것을 암시해줍니다"라는 구절에서 그 답을 찾았다고나 할까요.

가끔씩은 바그너라는 인물이 벌려 놓은 (그리고 그는 책임지지 않는) 온갖 쓰레기 같은 발언에 우리 모두가 낚시당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유럽 지성사(知性史)가 그런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합니다만......
05/08/18 13:52
장정일 (xtopa): 송원섭님이 글을 올려주시고 박원철님이 댓글을 쓰신 바그너건으로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글감을 얻었다고 해야하겠죠). 독일 유태인이 바그너를 애청한 이유로 제가, '자신의 민족 신화와 영화를 떠올려주는 대리충족물'이었다는 댓글을 썼는데, 글을 쓴 다음, 모든 역사적 사건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반성을 다시 했습니다. '대리충족'은 너무 관념적이지요. 그 이유를 폐기하지 않으면서 또 다른 동기를 ㅊㅏㅊ아보면, 독일에 동화되고자 했던 독일 유태인 문화 탓이 아니었을까? 실재로 독일에서 반유태주의가 더욱 극성을 부린 이유는, 독일 유태인이 독일 사회에 동화하고자 했던 강도와 상관있다고 하죠. 05/08/18 14:55
장정일 (xtopa): 교육은 물론 경제적 등등으로 동화되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독일의 중산층은 '밥자리'를 빼앗기는 위협에 직면했구요. 그게 독일에서 유태인이 크게 박해받은 이유가 되었다고 합니다(이런 역사적 교훈이 뒤에, '정통 유태인됨'이라는 시오니즘을 강화하게 될테죠) 가장 독일적인 신화에 충실한 바그너를 들으며, 당대의 독일 유태인은 자신들을 독일인으로 생각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스라엘과 바그너>라는 주제로 자료를 더 찾아 봐야 겠습니다. 05/08/18 15:01


걍 지나가다가...
글쓴이 이종훈 (acadia70) 날짜 2005년 8월 18일 14시 24분 추천 0 조회 28

전 그냥 지나가는 사람입니다만..
"서경식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왜 바그너를 끌어 들였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이런 말씀을 하셔서..몇자 올립니다.

김 대중씨 대통령 되고..사회 분위기가 과거 7.80년대와는 달라지자 김지하씨도 소위 "생명사상"이라는 걸 들고 나오죠.자신 말로는 감옥에 있을때 창살에 날라온 씨앗이 싹이 터서 자라는 걸 보고 뭔 대오각성한 것처럼 말씀하시는데..김대중씨하고는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죠...

"생명과 자치(1994)""예감에 가득찬 숲그늘(1999)", 강연 모음집 『율려란 무엇인가..이런데 보면 잘 나오죠.

건 데 출옥후 지금 이승헌씨가 원장으로 있는 단학선원하고 김지하씨가 연결됩니다.단학선원은 요즘의 禪,단전호흡 관련단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국제적으로도 제법 인지도가 있는 단체인데...그런 단체의 확장전술인 유명인 포섭작전에 걸려든 것일 수도 있죠.

여튼 제가 잠깐 관련되어 봐서 아는데..그 단학선원의 강령이 소위 삼일신고,한단고기,홍익인간,동방의 등불...한민족은 선민족,인류를 구원할 사명을 가진 민족..이런 것이죠.
그 과정에서 애국가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여호와고
인 류문명의 발생지인 우르가 우리고대말 언덕이라는 구루에서 나왔고..고구려는 그 후손이고...무궁화의 학명이 샤론(유대인하고 관련잇는 말이죠)의 장미니 뭐니 하면서 유태인하고 한민족을 연관시킵니다...물론 끊임없이 외세에 침략당한 고난의 민족..남,북 분단은 유다.이스라엘 유대국 분단의 모사..그런 것 까지 끌어 드립니다...뭐 그닥 참신한 건 아니고 과거 함석헌,백기완..멀리가면 신채호 시절부터 이미 회자되던 것들이지만
상식적으로 봐도 약간 비약이죠.

김지하씨는 시인답게 어둑어둑한 그늘,햇빛에 대비되는 달빛,울나라 전통음률..소위 "율려"하는 것이죠..이라며 위의 사상을 음악,예술의 영역까지 확장을 하는데요.

바그너의 무한선율하고 연결시키자면..뭐..그다지 못할 것도 없죠.

결국 김지하씨도 단학선원과는 연을 끊고 독자적 길을 갔지만..그 과정도 명예훼손이니 말이 많았죠..심지어 테러협박에 시달리기도 하고요..

초기에는 단학선원의 강령에 깊히 경도 되었던 건 사실이죠.


아마 신경식이라는 분은 그런 모든 과정이 나찌와 바그너 음악이 결합되는 과정과 유사하게 보였나 봅니다.
실제로도 그렇죠..아무리 기계적 결정론이 헛점이 많다 해도 인간의 사고,행태가 어떤 기계적인 원리에서 전적으로 자유롭지는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현상만 다르지 원리적으론 비슷한게 많죠.

뭐 별 중요한 얘기는 이니겟습니다만,

여튼 신경식이라는 분의 글이 쓸데없이 바그너를 신화화(mystification) 하거나, 혹은 반대로 구체적인 내용없이/ 개인적인 느낌만을 근거로 잘못 전달하는 (misreprentation)하는 황당하거나 쓰레기 글은 아니죠.




pheidias 공감가는 글입니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저도 고클에서 '음악은 당연히 감상자의 감상이 제일 중요한것이고 그것이 음악이 본질' 이라는 식의 언급에 상당히 놀랬던 적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음악, 특히 클래식이라 불리는 것은 상당한 시일에 걸쳐서 공부하고 노력해도 좀체로 그 본질을 보여주지 않는 대표적인 '학문'인것 같은데, 요즘 사람들은 더 자세히, 정확하게 알려고 하지는 않고 일단 자신이 알고 있는 한에서 그것이 전부인것 마냥 재단해버리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좌우지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알지 못하면서 결론부터 내리는 것은 쉽고 빠르지만 알팍한거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이 행하는 대표적인 오류인거 같습니다...
거꾸로 음악을 알면 알게 될수록 무언가 결론을 내리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정말 음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라는 생각만 강해지더군요...
2005/08/17 18:40


김원철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를 인용한 이유를 이해 못 하는 분이 있을까 봐 링크 하나 덧붙입니다.

http://busantheater.co.kr/movieinfo/now_news_view.asp?idx=MI0000105020&rnum=4m_id=M000016482&mi_type=01
2005/08/17 19:04


김원철 pheidias님, 좋은 덧글 고맙습니다. 갑자기 오래된 우스갯소리 하나가 생각나는군요.

학사 학위: '나는 내 전공에 대해 다 알아!'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
석사 학위: '나는 내 전공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
박사 학위: '사실은 나만 모르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
교수: '그렇다면 이거 가지고 사기 쳐 먹어도 되겠구나'! 하는 사람이 택하는 직업.
2005/08/17 19:10


idios94 저는 바그너에대해 눈꼽만치도 모릅니다만, 제 느낌을 몇자 적습니다.
예술감독님과 국장님이 이번 바이로이트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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