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22일 수요일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사회가 혼란에 빠져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예술가는 그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거나 적극적으로 폭력에 저항하곤 한다. 그러나 어떤 예술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내면의 동굴 속으로 숨기도 한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러시아를 뒤흔들던 시기,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는 캅카스 산맥과 볼가 강 일대를 여행하며 격변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로 이전 작품의 자극적이고 타악기적 성향의 음악 양식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었다.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의 분석에 따르면, 이 작품에 나타나는 불협화음과 그로 인한 긴장감은 쇼스타코비치의 경우와 달리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징후적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악곡의 정교한 조형적 틀을 수놓는 ‘빛과 그림자의 유희’이며, 그와 동시에 ‘고난 없는 서정성’(untroubled lyricism)이자 ‘서정적 해방’(lyrical release)의 성격을 보인다. 피아니스트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는 이 곡을 두고 “봄날 처음 창문을 열었을 때 거리에서 솟아오르는 소리가 갑자기 밀려드는 듯한 느낌”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서정성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곡가가 몸을 숨긴 내면의 동굴 바깥에서는 러시아의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치며, 그 칼바람이 자꾸만 꿈결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동굴의 꿈결과 현실의 고통 사이에 형성되는 긴장 관계야말로 이 작품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소나타 형식으로 된 제1악장 제1주제에는 ‘꿈꾸듯이’(sognando)라는 나타냄말이 붙어 있고, 좀 더 격정적인 제2주제에는 ‘내레이션하듯이’(narrante)라는 지시가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는 작곡가로부터 “누군가를 설득하듯이 연주하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론도 형식으로 된 제2악장은 그로테스크한 스케르초이며, 느리고 몽환적인 제1악장·제3악장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음악평론가 마이클 스타인버그는 제2악장이 흉포하고 유쾌하며 무례하고, 때로는 악의적이고, 운동감 넘치고(athletic), 바이올린 기법 측면에서 기발하고 탁월하다고 평했다.

변주곡 풍의 자유로운 형식으로 이루어진 제3악장은 ‘꿈결’과 ‘현실’ 사이의 긴장 관계가 서서히 ‘꿈결’의 승리로 귀결되는 음악적 서사를 보여준다. 코다에 이르면 독주 바이올린이 제1악장 제1주제를 높은 음역에서 재현하고, 이어 목관악기가 제3악장의 주제를 이어받은 뒤, 마지막에는 마치 공기 중에 연기가 흩어지듯 사라진다.

2026년 4월 10일 금요일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예전에 썼던 글을 윤문 수준으로 수정함.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봄의 제전›은 20세기 서양음악사를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로 변화무쌍하고 강렬한 리듬, 원초적이고 주술적인 분위기, 그리고 두 가지 이상의 조성을 병치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음악 어법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1911년에서 1912년 사이에 스위스 클레랑스에서 작곡되었고, 작곡가는 처음부터 발레를 위한 관현악곡을 의도했으나 1912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악보가 먼저 출판되었다. 관현악 편성의 발레는 1913년 니진스키의 안무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고대 사회의 종교적 제의를 묘사한 작품으로, 스트라빈스키는 다음과 같은 표제와 설명을 붙였다.

제1부: 대지에 대한 경배

– 도입부

– 봄의 조짐 ― 젊은 처녀들의 춤
봄을 기념하는 행사가 언덕에서 시작된다. 한 노파가 나와 앞날을 예언한다.
– 유괴 의식
젊은 처녀들이 강에서 한 줄로 다가와 “유괴의 춤”을 춘다.
– 봄의 론도
젊은 처녀들이 둥글게 돌면서 호로보트(러시아 원무)를 춘다.
– 라이벌 부족들의 의식
사람들이 두 패로 나뉘어 라이벌 부족들의 의식을 치른다.
– 현자의 행렬
신성한 행렬이 장로들 앞으로 이어지며, 그들을 대표하는 현자가 의식을 잠시 중지시키고 대지에 축복을 내린다.
– 대지의 춤
사람들이 땅과 하나가 되고자 열광적으로 춤춘다.

제2부: 희생

– 도입부

– 젊은 처녀들의 신비로운 모임
젊은 처녀들이 둥글게 돌면서 신비로운 행사를 시작한다.
– 선택받은 이를 찬양함
처녀 가운데 하나가 둥근 행렬 속에서 두 번 붙잡히며 ’선택받은 이’로 지명되고, 그 운명을 받아들여 춤을 춘다.
– 조상의 혼령을 소환함
처녀들이 짧은 춤으로 조상의 혼령을 깨운다.
–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
선택받은 이가 장로들에게 인도되며, 장로들이 제의를 수행한다.
– 희생의 춤
장로들이 입회한 가운데 선택받은 이가 “희생의 춤”을 추면서 죽음을 맞는다.

I. Stravinsky: Le Sacre du Printemps

One of the masterpieces of twentieth-century Western music, ‹Le Sacre du Printemps› boasts an ever-changing, intense rhythm, primitive and magical atmosphere, and uses highly unconventional musical language for the time, such as juxtaposing multiple tonalities. Completed between 1911 and 1912 in Clarens, Switzerland, Stravinsky intended it from the outset as a ballet for orchestra, but published the score for two pianos beforehand in 1912. The version for orchestra premiered with Nijinsky’s choreography in 1913. This piece describes a religious ritual of an ancient pagan society. Stravinsky added the following titles and descriptions to the piece:

Part I: Adoration of the Earth

– Introduction

– Augurs of Spring ― Dance of Young Girls
The celebration of spring begins in the hills. An old woman enters and begins to foretell the future.
– Ritual of Abduction
Young girls arrive from the river in single file and begin the “Dance of Abduction.”
– Spring Rounds
The young girls dance the Khorovod (a traditional Russian round dance), known as the “Spring Rounds.”
– Ritual of the Rival Tribes
The people divide into two groups in opposition to each other and begin the “Ritual of the Rival Tribes.”
– Procession of the Sage
A holy procession leads to the wise elders, headed by the Sage who brings the ritual to a halt and blesses the earth.
– Dance of the Earth
The people break into a passionate dance, sanctifying and becoming one with the earth.

Part II: The Sacrifice

– Introduction

– Mystic Circles of the Young Girls
The young girls engage in mysterious games, walking in circles.
– Glorification of the Chosen One
One of the young girls is caught twice in the perpetual circle, and is selected by fate to be the “Chosen One.”
– Evocation of the Ancestors
The young girls invoke the ancestors.
– Ritual Action of the Ancestors
The Chosen One is presented to the elders, who enact the ritual.
– Sacrificial Dance
The Chosen One dances to death in the presence of the old men, in the great “Sacrificial Dance.”

2026년 4월 8일 수요일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 f단조

예전에 썼던 글을 윤문 수준으로 수정함.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 f단조

쇼팽 피아노 협주곡은 오케스트라 반주가 덧붙은 피아노 독주곡에 가깝다. 협주곡의 외형을 취하고 있으나, 오케스트라는 피아노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 머물며 음악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피아노에 있다.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은 제1악장이 소나타 형식, 제2악장과 제3악장이 세도막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쇼팽의 작품에서 흔히 그러하듯 이 곡의 구조를 세밀히 따지는 일은 학술적 목적이 아닌 한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이 작품은 쇼팽이 피아노로 써 내려간 시로서, 그 정서를 그대로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 특히 이 곡의 백미로 꼽히는 제2악장은 쇼팽이 당시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떠올리며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가 남몰래 품은 사랑의 감정이 잔잔한 화성 위에 절절한 피아노 선율로 스며든다.

이 협주곡은 쇼팽이 파리에서 명성을 얻기 이전, 폴란드에서 활동하던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작곡 시기는 피아노 협주곡 제1번보다 한 해 앞서지만, 출판 순서로 인해 번호가 뒤바뀌게 되었다.

F. Chopin: Piano Concerto No. 2 in F minor, Op. 21

Chopin’s piano concertos are closer in spirit to piano solos with orchestral accompaniment than to concertos conceived symphonically. Although they assume the outward form of the genre, the orchestra remains largely in a subordinate role, serving primarily to set off the piano, which clearly retains the musical initiative. Piano Concerto No. 2 in F minor follows a conventional layout — the first movement in sonata form, and the second and third movements in ternary form — but, as is often the case with Chopin, detailed formal analysis offers limited insight beyond a strictly academic context.

This work is best understood as a piano poem, to be experienced directly through its expressive atmosphere rather than dissected structurally. At its emotional center lies the second movement, traditionally believed to have been inspired by Chopin’s unspoken affection for a young student, where the quiet intensity of concealed love permeates gentle harmonies and unfolds in a piano melody of poignant lyricism.

This concerto represents the period of Chopin’s career spent in Poland, before he achieved fame in Paris. Although it was composed earlier than the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its later publication resulted in the reversal of their numbering.

2026년 4월 7일 화요일

윤이상: 예악(禮樂)

예전에 썼던 글을 윤문 수준으로 수정함.

윤이상: 예악(禮樂)

선율과 리듬과 화성은 전통적으로 서양음악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로 꼽혀 왔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 ’음색’이 그 못지않게 중요해졌다. 전통적으로 음색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작곡 기법은 관현악법(orchestration), 즉 특정 선율·리듬·화성에 악기를 배정하고 이를 다른 악기와 섞어 소리를 빚는 방법이었다. 음악학자 카를 달하우스는 현대적인 관현악법의 가능성을 제시한 말러 교향곡 제1번과 R. 슈트라우스 ‹돈 주앙›을 가리켜 음악적 모더니즘의 뿌리라고 평가한 바 있다.

1960년대에 이르면 전통적인 화음 개념을 확장한 이른바 ‘톤 클러스터’(tone cluster), 즉 음 덩어리로 선율·리듬·화성을 사실상 해체하고 음색 또는 ’음향’을 전면에 내세운 음악이 등장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쓰여서(사실은 감독이 작곡가 허락 없이 도용해서) 더욱 유명한 리게티 ‹아트모스페르›, 그리고 음악보다 제목이 더 유명한 펜데레츠키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 같은 작품이 그 예다.

음을 덩어리로 쌓아 만든 ’음향’으로 음악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작곡가 윤이상이 찾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을 응용해 동아시아 음악의 음향을 서양 악기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윤이상이 만들어 낸 ’음향’은 리게티나 펜데레츠키 같은 서양 작곡가들 것과는 사뭇 달랐다. 서양음악에서는 개별 음은 고정되어 있어 다른 음과 관계를 맺으면서 음악적 의미가 만들어지지만, 동아시아 음악에서는 음 하나만으로도 생명력을 지니고 스스로 움직이며 음악을 이룬다. 살아있는 음이 모여 살아있는 화음, 살아있는 음향층을 이루는 것이 윤이상 음악 어법의 핵심이다.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 작품이 ‹예악›(禮樂)이다. 1966년 독일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에서 이 작품이 초연되면서 윤이상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곡가로 떠오른다. 동양의 사상과 음악 미학을 서양 아방가르드 기법과 결합해 완성도 높은 음악 언어로 구현한 선구적 작곡가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작품 속에 녹아든 정중동(靜中動) 원리는 ’음 덩어리’를 조직하고 움직이는 원리를 고민하던 서양 작곡가들에게도 훌륭한 돌파구로 제시되었다.

윤이상 음악의 음향층은 주요음향 또는 중심음향(Hauptklang)이라 불린다. 이것은 그 구성요소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살리고 덜 살리느냐에 따라 한국 전통음악의 음향이 살아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점에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한국 전통음악을 모르는 서양 지휘자가 윤이상 작품을 지휘하면 서양음악 맥락에서만 이해되는 음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그 또한 정당한 해석일 수 있다.

다만, 독일 지휘자 롤란드 클루티히(Roland Kluttig)가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이 곡을 연주했을 때 글쓴이가 경험한 음향은 특히 인상 깊었다. 그가 구현한 음향이 종묘제례악이나 수제천에서 들을 수 있는 바로 그것이었던 까닭이다. 그것은 ’원류’를 모르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소리였고, 또한 내가 기억하는 가장 탁월한 ‹예악› 연주였다.

흥미롭게도, ‹예악›에 사용되는 국악기가 하나 있다. 한국 궁중음악에서 곡의 시작과 끝, 각 절의 끝에 연주되는 악기인 박(拍)이다. ‹예악›에서도 마찬가지로 곡의 처음과 끝, 그리고 주요 분기점마다 박이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한국 궁중음악에서 그러하듯이, 이 곡에서 박은 ‘공간을 가르며 침묵을 정주(停住)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악보에서 작곡가는 이것을 채찍을 뜻하는 ’Peitsche’라는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괄호 안에 ’Bak’이라고도 썼다.

Isang Yun: Réak (1966)

Melody, rhythm, and harmony have traditionally been regarded as the three fundamental elements of Western music. In the twentieth century, however, timbre emerged as an element of equal importance. In the conventional sense, the compositional technique most closely associated with timbre was orchestration — the art of assigning melodies, rhythms, and harmonies to specific instruments and blending them to shape sound. Musicologist Carl Dahlhaus described Mahler’s Symphony No. 1 and Richard Strauss’s ‹Don Juan› — works that revealed new possibilities in orchestration — as among the roots of musical modernism.

By the 1960s, composers began to expand the conventional concept of harmony into so-called tone clusters: dense aggregates of tones that effectively dismantled melody, rhythm, and harmony, placing timbre — or what might be called a “sound complex” — at the forefront. György Ligeti’s ‹Atmosphères›, made even more famous by its (unauthorized) use in Stanley Kubrick’s film ‹2001: A Space Odyssey›, and Krzysztof Penderecki’s ‹Threnody to the Victims of Hiroshima› — whose title is arguably more famous than the piece itself — are representative examples of this trend.

The idea of composing music through sound complexes built from tone clusters was precisely what Isang Yun had been seeking, for it allowed him to translate the sonic world of East Asian music into Western instruments. Yet the sound complexes Yun created differed markedly from those of Western contemporaries such as Ligeti or Penderecki. In Western music, individual tones are fixed, and musical meaning arises from their relationships with other tones. In East Asian music, by contrast, a single tone already possesses vitality: it moves, breathes, and unfolds on its own. Yun’s musical language is founded on this principle — vitalized tones gathering into vitalized harmonies and a vitalized sound complex.

‹Réak› was born from this context. Premiered in 1966 at the Donaueschingen Festival in Germany, the work brought Yun international recognition. Critics hailed Yun as a pioneering composer who brought Eastern philosophy and musical aesthetics into a fully mature synthesis with Western avant-garde technique. The principle of “movement within stillness” (靜中動) embedded in the piece was also embraced by Western composers searching for new ways to organize tone clusters within a musical work, offering them a breakthrough in tone-cluster technique.

The sound complexes in Yun’s music are often described by the term Hauptklang. Depending on which elements within this Hauptklang are emphasized or restrained, the sonority may evoke the sonic world of Korean traditional music — or not — thus allowing for a wide range of interpretations. When a Western conductor unfamiliar with Korean traditional music performs Yun’s works, the result may be music understood solely within a Western framework. Yet, as Umberto Eco famously remarked, “the author should die once he has finished writing”; such a reading, too, can therefore be considered valid.

That said, the sonic world I experienced when the German conductor Roland Kluttig led ‹Réak› with the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was particularly inspiring. What he realized was unmistakably the sound one encounters in masterpieces of Korean traditional music, such as ‹Jongmyo Jeryeak› or ‹Sujecheon›. It was a sound impossible to create without an understanding of the original source — and, for me, it remains the most outstanding performance of ‹Réak› I have heard.

Interestingly, ‹Réak› employs a traditional Korean instrument: the bak, a wooden clapper used in Korean court music to mark the beginning and end of a piece, as well as the close of each section. In ‹Réak›, the bak fulfills a similar role, appearing at the opening and conclusion and at major structural junctures. As in Korean court music, it functions as a device that “cuts through space and anchors silence.” In the score, Yun translated the instrument’s name into German as Peitsche (“whip”), adding “Bak” in parentheses.

2026년 4월 6일 월요일

모차르트: 피아노 사중주 제1번 g단조 / 드보르자크: 피아노 사중주 제2번 E♭장조

모차르트: 피아노 사중주 제1번 g단조

음악학자 데이비드 펜튼에 따르면, 피아노와 현악기 셋을 편성한 ’피아노 사중주’는 18세기 중반 이후 건반악기에 반주 악기를 더한 디베르티멘토(가벼운 파티용 음악)에서 유래했다. 또한 초기 형태의 건반악기 협주곡이 흔히 바이올린 두 대와 첼로 등을 사용한 편성으로 출판되던 관행과도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피아노 사중주는 18세기의 다른 실내악 장르와 마찬가지로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여흥을 위한 장르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본격적인 피아노 사중주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사중주 제1번 g단조(K. 478)와 제2번 E♭장조(K. 493)가 사실상 최초라 평가된다. 모차르트는 이 두 작품을 아마추어용으로 쉽게만 쓰지는 않았고, 특히 피아니스트에게 당시로서는 고난도 테크닉을 요구했다. 출판업자 호프마이스터는 모차르트에게 피아노 사중주 세 곡을 위촉했으나 g단조 사중주의 연주 난도가 높다는 이유로 결국 출판을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모차르트는 출판 계약이 취소된 이후 피아노 사중주 제2번 E♭장조를 작곡해 아르타리아 출판사를 통해 출판했다.

제1악장은 비장한 주제로 시작해 밝고 어두운 분위기를 오가며, 제2주제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유쾌한 속임수가 인상적이다. 원조성인 g단조가 제2주제의 조성 영역인 B♭장조로 옮겨간 뒤, 제2주제가 아닌 제1주제의 변형이 먼저 등장해 가짜 제2주제처럼 제시된다. 그 뒤에야 진짜 제2주제가 짧게 나왔다가 곧바로 작은종결구로 이어진다. 재현부에서는 이 가짜 제2주제 대신 속임종지가 등장한 뒤 g단조로 제2주제가 나온다. 발전부에서는 앞선 음소재를 활용하면서도 새로운 주제가 c단조로 나타나 제1주제의 비장함을 심화시킨다. 발전부와 재현부가 통째로 반복되는 구성 또한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서정적인 제2악장은 소나타 형식을 기초로 하되 발전부를 대신해 제시부를 살짝 변형한 ’중간 부분’이 삽입된다. 제3악장은 론도-소나타 형식으로, 단조 영역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경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발전부적 성격의 중간 부분에서 잠시 단조로 이탈하여 대비를 이룬다.

W. A. Mozart: Piano Quartet No. 1 in G minor, K. 478

According to musicologist David Fenton, the piano quartet — scored for piano and three string instruments — can be traced back to mid-eighteenth-century divertimenti — light social music — in some cases employing a keyboard instrument combined with accompanying strings in this specific instrumentation. It is also related to the contemporary publishing practice whereby early keyboard concertos were frequently issued in arrangements for keyboard with two violins and cello. Against this background, the piano quartet, like many other chamber music genres of the eighteenth century, was generally regarded as music intended for amateur enjoyment.

In the modern sense, however, the piano quartet is widely considered to have truly begun with Mozart’s Piano Quartet No. 1 in G minor, K. 478, and Piano Quartet No. 2 in E-flat major, K. 493. Mozart did not compose these works simply for amateur players; on the contrary, they demand a level of virtuosity — particularly from the pianist — that was exceptional for their time. The publisher F. A. Hoffmeister is said to have commissioned three piano quartets from Mozart, but ultimately declined to publish the G-minor work on account of its technical difficulty. After the contract was canceled, Mozart went on to compose the second quartet in E-flat major, which was subsequently published by Artaria.

The first movement opens with a tragic theme and alternates between light and dark moods, featuring a playful deception in the approach to the secondary theme. After the home key of G minor modulates to B-flat major — the expected key area for the secondary theme — a transformed version of the primary theme appears instead, functioning as a “false” secondary theme. Only then does the genuine secondary theme emerge briefly, followed immediately by a closing section. In the recapitulation, this false secondary theme is replaced by a deceptive cadence, after which the secondary theme finally returns in G minor. In the development, a new theme appears in C minor, derived from earlier motivic material and intensifying the tragic character of the primary theme. Also noteworthy is the large-scale repetition of both the development and the recapitulation in their entirety.

The lyrical second movement is based on sonata form, but instead of a full development section it inserts a lightly varied middle passage derived from the exposition. The third movement adopts a rondo-sonata form, maintaining an overall buoyant character in which the minor mode is scarcely felt, before briefly turning to the minor in a development-like central episode to create contrast.

드보르자크: 피아노 사중주 제2번 E♭장조

19세기 실내악은 18세기와 달리 더 이상 아마추어를 위한 장르가 아니었다. 특히 브람스 파벌과 바그너 파벌이 대립하던 시기에 브람스 진영을 옹호하는 논리로 ’고급 감상자는 실내악을 듣는다’라는 속설이 등장했으며, 이것은 오늘날에도 흔히 인용된다. 브람스를 멘토로 삼았던 드보르자크는 다양한 걸작 실내악을 남겼는데, 그중 피아노 사중주 제2번 E♭장조는 그의 성숙기에 쓰인 작품으로 브람스에 비견할 만한 치밀하고 복합적인 짜임새를 지닌다.

제1악장은 시작 직후부터 E♭장조를 벗어나 예상 밖의 조를 떠돌다가 한참 뒤에야 주조성을 확립하며,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흐름이 반복된다. 음악학자 브루스 아돌프의 분석에 따르면, 작곡가는 이 곡에서 E♭장조의 비화성음인 B와 G♭ 등을 ’돌연변이’이자 해결해야 할 ’문제’로 설정하고, 이를 원조성에서 멀리 떨어진 조로 이행하는 연결 고리로 활용함으로써 작품 전체를 조직한다. 제2주제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엉뚱한 조’인 G장조로 제시된다.

발전부는 마치 제시부가 반복되는 것처럼 시작하며, 반대로 재현부는 발전부가 계속되는 것처럼 출발한다. 발전부 직전에는 연쇄적인 감7화음과 여러 조를 경유하는 준비 과정으로 긴장감이 축적되며, 이어지는 발전부에서 제2주제는 자취를 감춘다. 재현부가 발전부의 연장이라는 인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지점에서 제2주제는 B장조로 재현되는데, 이때 첼로가 홀로 일탈적인 하행 음형을 연주한다. 브루스 아돌프는 이것을 ’장조 속의 단조’이자 ’제2주제 속의 제1주제’로, 나아가 모차르트 피아노 사중주 제1번 g단조 제1악장의 이른바 ’가짜 제2주제’에 등장하는 비올라 솔로에 대한 오마주로 분석한다.

서정적인 제2악장은 발전부가 생략된 소나타 형식이며, 다채로운 춤의 향연인 제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 경쾌하게 질주하는 제4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악장은 모두 단순함과 복잡함 사이의 균형 잡힌 구조를 보여주며, 제1악장의 현란한 짜임새를 경험한 감상자라면 비교적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A. Dvořák: Piano Quartet No. 2 in E-flat major, Op. 87

Unlike in the 18th century, chamber music in the 19th century was no longer a genre intended primarily for amateur performers. During the period marked by rivalry between the Brahms and Wagner camps, chamber music came to be framed as “a genre for discerning audiences,” a notion that functioned as a rhetorical defense of the Brahmsian aesthetic and is still frequently cited today. Dvořák, who regarded Brahms as a mentor, left behind a rich body of chamber music. Among these, the Piano Quartet No. 2 in E-flat major stands as a mature work of remarkable density and complexity, worthy of comparison with Brahms’s own chamber masterpieces.

The first movement departs from E-flat major almost immediately, wandering through unexpected keys before establishing the home tonality only much later — a pattern that recurs throughout the movement. According to musicologist Bruce Adolphe, Dvořák structures the entire work by extensively featuring tones foreign to E-flat major — such as B natural and G-flat — which he treats as “mutations” and “problems to solve,” and further as pivots to remote key areas. In this context, the secondary theme is presented in the seemingly incongruous key of G major.

The development begins as if the exposition were being repeated, while the recapitulation, conversely, sets off as though the development were continuing. Just before the development, tension is carefully accumulated through a preparatory passage featuring chains of diminished-seventh chords and multiple modulations, after which the secondary theme disappears entirely from the development section. When the music finally breaks free from the sense that the recapitulation is merely an extension of the development, the secondary theme reappears in B major, at which point the cello stands out with a wayward gesture. Bruce Adolphe interprets this cello line as “reminding you that you were in minor,” as “bringing the first theme back,” and ultimately as a reference to Mozart — specifically, the viola solo that appears in the so-called “false secondary theme” of the first movement of Mozart’s Piano Quartet No. 1 in G minor.

The lyrical second movement is cast in sonata form without a development. The third movement, a showcase of various dances, is cast in scherzo-and-trio form, while the final movement, driven forward with exuberant energy, returns to sonata form. All three movements strike a fine balance between simplicity and complexity, allowing listeners — having navigated the intricate architecture of the first movement — to enjoy them with a sense of relative ease.

2025년 12월 19일 금요일

올해 읽은 최고의 논픽션 - 티모시 가이트너 『스트레스 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는 세상을 구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당사자의 시선에서 회고한 기록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했고, 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여파가 통제 불능으로 번졌다면, 전쟁을 포함한 전면적 혼란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금융과 관련한 전문적인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이를테면 『한자와 나오키』보다 내용 이해에 요구되는 금융 지식의 수준이 더 높다. 그러나 이 책은 전문가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며, 나만 해도 전문가가 아니라 일개 개미 투자자다.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면, 문명이 붕괴 직전까지 몰렸던 상황의 스펙터클을 이 책에서 경험할 수 있다.

책에 언급된 사람들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들, 그리고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읽다 보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은 위기 상황에서 곤경에 빠진 서민들을 구제하는 일에 큰 역할을 했다. 티모시 가이트너는 서민을 직접 구제하는 일보다 그들이 사는 세상 자체가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워런은 올바른 일을 하면서 많은 존경과 찬사를 받았지만, 가이트너는 올바른 일을 하면서도, 그 대가로 비난과 오해를 견뎌야 했다.

그래서 워런의 책 『싸울 기회』를 읽기에 앞서 가이트너 책을 읽어야 당시 상황을 올바로 알 수 있게 된다. 당시에 가이트너를 이해하고 신뢰한 사람은 극소수였고, 그 가운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있었기에 인류는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위기 초반에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가 의외로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유지했다고 한다.

레리 서머스는 탁월한 경제학자이자 가이트너의 멘토, 가이트너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며, 오바마가 가이트너를 재무장관으로 영입하려 했을 때 가이트너가 제안을 거절하며 대안으로 거론한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위기에 대응하는 일을 서머스가 가이트너보다 더 잘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지적 능력이 그런 역할을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성향의 인물은 세상 모두가 자신을 비난하는 상황을 묵묵히 견디며 올바른 일을 하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가이트너 대신 재무장관이 되었다면, 그는 더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대신 자신은 다치지 않게끔 ‘정치적으로 안전한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서머스에 관한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이렇다: “나는 “서머스는 백악관 내에서 멍청한 아이디어를 기각하는 담당으로 영구보직을 받아야 한다.”는 헨리 키신저의 유명한 발언을 인용했다(이 발언은 내가 몇 년 후 기자에게 말해준 이후 처음으로 널리 알려졌다). 서머스가 명석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그의 지적인 칼에 직접 난도질당해 봐야, 그가 얼마나 명석한지를 파악할 수 있다.”

레이얼 브레이너드는 당시에 차관보로서 가이트너 휘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듯하다. 그 이후에는 내가 기억하는 연준(FRB) 이사이자 연준의 핵심 브레인으로 활약했고, 팬데믹 위기 상황에서 신속하고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금융 붕괴에 의한 문명의 붕괴를 다시 한 번 막아내게 된다. 이후 유력한 차기 연준 의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는데, 만약 그것이 실현되었다면 여성 최초 연준 의장이 탄생했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기 전의 일이다.

리처드 쿠는 가이트너 책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지만, 당시 상황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데 그의 책 『밸런스시트 불황으로 본 세계 경제』가 도움이 된다. 나는 가이트너에 대한 그의 비판이 이론적으로는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장의 압박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학자의 입장에서나 가능한 비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긴급한 상황에서 위기 대응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 의회와 언론의 공격을 받아 실행이 좌절되는 답답한 일들이 가이트너의 책에는 여러 차례 나온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현실이 아닌 소설 속의 인물이 떠오르기도 한다. 『엔더의 게임』에 나오는 엔더 위긴이다. 동명의 영화에서는 엔더가 그냥 똘똘한 어린애로만 나오지만, 원작 소설에서 그는 끝도 없이 반복되는 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피로감에 시달리게 된다. 현실의 위기를 헤쳐나갔던 가이트너의 모습이 그랬을 법하다.

내가 만약 가이트너였다면 저 상황에서 이렇게 했을 텐데 싶은 순간이 있다. 재무장관 임명 직후에 있었던 연설이다. 이것이 대실패로 끝나면서 가이트너의 고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론의 뭇매를 피할 길은 어차피 없을 것이므로, 나라면 차라리 화끈한 쇼맨십과 더불어 내 쪽에서 먼저 그들을 도발할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지금 제가 들고 있는 봉투 안에는 제 사직서가 있습니다. 이 연설이 끝나는대로 저는 사직서를 제출할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언제든 원하시는 때에 이것을 수리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 저는 어떠한 비난과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제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할 것입니다. 자세한 계획은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월가의 탐욕스러운 금융인들 편에 서 있다는 오해를 부를 것이며, 금융인들은 제가 그들을 약탈할 혁명군 사령관이라 오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해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고 결과로 증명하겠습니다.”

물론 내 상상일 뿐이다. 가이트너가 책에서 설명한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금융위기 대응에 관련하여 불편한 진실은, 옳다고 생각한 행동이 종종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자연스러운 순리는 개입 전에 가능한 한 오래 기다렸다가 점진적으로 강화하고, 납세자들 손실을 줄이고, 지원에 엄격한 조건을 달며, 위기 원인 제공자를 징벌하며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언급하는 것이다. 즉 “실패한 회사들을 망하게 내버려 둬라. 호황기에 돈을 댄 채권자들이 대가를 치르게 둬라.”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시스템의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처방일 뿐이다. 일반 국민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정의, 즉 악한들에 대한 처벌을 원할 것이다. 도덕적 해이에 대해 전통적 근본주의자들은 “무책임한 행동은 보상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한다. 만약 정책결정자들이 이러한 말에 귀를 기울이면 재앙을 불러들이게 된다. 주요회사들이 실패하게 놔두고, 도덕적 해이를 피하며,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여야 한다는 압력이 강할 것이다. 그러나 이 압력에 굴복한다면 궁극적으로 정부의 개입을 더 요구하고 더 많은 도덕적 해이를 만들어 내는 큰 규모의 위기를 가져오는 공식이다.”

2025년 4월 24일 목요일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오리지널 버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오리지널 버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차이콥스키, 브람스 등과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1903년과 1904년에 걸쳐 작곡되어 1904년 2월 8일, 시벨리우스 자신의 지휘와 빅토르 노바체크의 협연으로 초연되었다. 하지만 초연 직전까지 작품이 완성되지 않아 협연자는 준비가 부족한 채로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작곡가는 초연 이후 개정 작업에 착수하여 1905년에 악보를 출판했으며, 오늘날 보편적으로 연주되는 버전은 이 1905년 개정판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1904년의 초판이 연주된다. 시벨리우스 가문의 허락을 받아야 연주할 수 있는 이 판본은 국내에서는 지난 2023년 오스모 벤스케가 지휘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핀란드 바이올리니스트 엘레나 베헬레에 의해 처음 연주됐다. 1904년 초판은 협연자에게 좀 더 높은 수준의 기량을 요구하며, 개정판에서 삭제된 선율을 일부 포함하고 있다.

제1악장은 변형된 소나타 형식이다. 길고 어두운 선율 속에 화려하면서도 으스스한 기운을 머금은 독주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이끌고, 오케스트라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문다. 목가적인 제2주제는 첼로와 바순으로 시작하여 클라리넷과 오보에, 플루트와 바이올린이 차례로 선율을 넘겨받는다. 뒤이어 독주 바이올린이 제2주제를 이어받아, 마치 울부짖는 듯한 어조로 변주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오케스트라가 다시금 선율을 주도하는 대목은 ‘작은 종결구’(codetta), 또는 관점에 따라 제3주제라 할 수 있다. 제1주제에서 제2주제로 넘어가는 길목에 카덴차를 연상시키는 빠르고 화려한 음형이 등장하는 것에 이어,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의 발전부 자리를 길게 확장된 독주 바이올린의 카덴차가 온전히 대체한다는 점이 이 악장의 가장 큰 특징이다. 카덴차(발전부)가 끝난 뒤에는 제시부를 변형한 형태의 재현부가 이어지며, 짧은 종결구(Coda)와 함께 악장이 마무리된다.

짜임새가 복잡한 것은 제1악장까지다. 제2악장은 A-B-C 세 도막으로 되어 있고, 제3악장은 A-B-A’-B’-종결구 꼴이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어둠을 헤치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음악적 서사를 따른다. 제1악장이 현실의 고통을 복잡한 구조 속에 담아냈다면, 제2악장에서는 서럽게 울부짖는 바이올린 소리가 카타르시스를 매개한다.

제3악장에서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빠른 음형으로 쉼 없이 빛을 향해 달려 나간다. 시벨리우스는 빛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작곡가였다. 특히 이 악장에서는 북유럽의 자연을 연상시키는 서늘한 공기와 그 공기를 뚫고 쏟아지는 밝은 햇살이 음악으로 그려진다. 협연자의 화려한 기교와 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음색이 눈부신 풍경을 완성한다.

(2026. 3. 24. 수정)

J. Sibelius: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 (original version)

Sibelius’ ‹Violin Concerto› ranks among the most beloved works in the violin repertoire, alongside works by composers like Tchaikovsky and Brahms. Composed between 1903 and 1904, it premiered on February 8, 1904, with Sibelius conducting and Viktor Nováček as the soloist. However, the piece was not fully completed until just before the premiere, which meant the soloist had little time to prepare adequately.

After the premiere, Sibelius worked on revisions. The score was published in 1905, and this is the version most commonly performed today. However, for this performance, the original 1904 version is used. This version can only be performed with permission from the Sibelius family and had its Korean premiere in 2023 by the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Osmo Vänskä. The 1904 edition demands a higher level of skill from the soloist and includes some melodies that were removed in the 1905 revision.

The first movement follows a modified sonata form. The first theme is lengthy, dark, and dramatic, led by the violin solo, with the orchestra providing occasional support. The second theme, more pastoral in nature, begins with the cello and bassoon, followed by the clarinet, oboe, flute, and violin taking up the melody. The solo violin then reinterprets this theme in a mournful, pleading manner.

The passage in which the orchestra once again assumes control of the melodic line may be understood as a “codetta,” or, from another perspective, as a third theme. At the juncture between the first and second themes, a rapid and dazzling figuration evocative of a cadenza emerges. Most distinctive, however, is that the traditional development section of the sonata form is entirely supplanted by an extended cadenza for the solo violin. Once this cadenza — functioning as the development — concludes, a recapitulation appears in a varied form of the exposition, and the movement is brought to a close with a brief coda.

The structural complexity is mostly confined to the first movement. The second movement follows an A-B-C form, while the third movement adopts an A-B-A’-B’-coda structure. This concerto unfolds a musical narrative of journeying through darkness toward light. If the first movement encapsulates the struggles of reality within its intricate structure, the second movement serves as a cathartic release, carried by the violin’s sorrowful wailing.

In the third movement, the music surges forward relentlessly, propelled by rapid passages that race toward the light. Sibelius had an exceptional ability to depict light through music, and in this final movement, that quality shines with remarkable brilliance. The music evokes the crisp, cool air of the Nordic landscape, pierced by radiant beams of sunlight. The brilliance of the soloist’s virtuosity and the orchestra’s rich, varied colors further enhance this vivid musical imagery.

(Modified on March 24, 2026.)

2025년 4월 23일 수요일

드뷔시: 어린이 차지 (한스 아브라함센 편곡)

드뷔시: 어린이 차지 (한스 아브라함센 편곡)

‹어린이 차지›는 드뷔시가 3살짜리 딸 클로드-에마 드뷔시, 애칭으로는 ‘슈슈’(Chouchou)를 위해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이다. 악보에는 ’소중하고 귀여운 슈슈에게, 이어지는 내용에 대한 아빠의 다정한 사과의 마음을 담아’라는 머리말이 있다. 한스 아브라함센의 ‹어린이 차지›는 드뷔시 피아노곡을 관현악곡으로 재창작한 것으로, 드뷔시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네덜란드 라디오 체임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위촉으로 작곡되었다.

이 작품은 여섯 개의 소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곡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 박사’는 딸이 피아노를 익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은 ’파르나소스 산으로 오르는 한 걸음’이라는 뜻으로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과 통하는 바가 있다. 18세기 작곡가이자 음악이론가 J. J. 푹스는 같은 제목으로 음악이론서를 남겼고, 클레멘티와 체르니 등의 작곡가는 같은 제목의 피아노 연습곡을 썼다.

제2곡 ’짐보의 자장가’는 슈슈의 코끼리 인형 이름에서 따온 제목이며, 제3곡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는 슈슈가 아끼던 다른 인형을 소재로 한다. 제2곡이 코끼리의 묵직한 발걸음으로 묘사되는 것에 반해, 제3곡의 인형은 도자기 인형의 반짝이는 질감을 표현한다.

제4곡 ’눈송이가 춤춘다’는 창밖의 눈 내리는 풍경을 묘사하고, 제5곡 ’어린 양치기’는 양치기가 뿔피리 부는 모습을 목가적으로 표현한다. 제6곡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는 춤추는 인형을 묘사하며 래그타임 리듬이 두드러진다. 골리워그는 빨간 바지와 빨간 나비넥타이를 맨 흑인 인형이고, 케이크워크는 19세기 말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의 해학적인 춤이다.

C. Debussy: Children’s Corner (arr. by H. Abrahamsen for orchestra, 2011)

‹Children’s Corner› is a piano suite composed by Debussy for his three-year-old daughter, Claude-Emma Debussy, affectionately known as “Chouchou.” The sheet music bears the dedication: “To my dear little Chouchou, with tender apologies from her father for what follows.” Hans Abrahamsen’s ‹Children’s Corner› is a reimagining of Debussy’s piano pieces as an orchestral work, commissioned by Radio Kamer Filharmonie to celebrate Claude Debussy at 150 in 2012.

This work consists of six pieces. The first piece, “Doctor Gradus ad Parnassum”, depicts the daughter practicing the piano. “Gradus ad Parnassum” means “A Step to Parnassus,” symbolizing steady progress. The 18th-century composer and music theorist J. J. Fux wrote a seminal textbook with the same title, and composers such as Clementi and Czerny also wrote piano pieces under this name.

The second piece, “Jimbo’s Lullaby”, is named after Chouchou’s toy elephant, while the third piece, “Serenade for the Doll”, is inspired by another doll she cherished. While the second piece evokes the heavy footsteps of an elephant, the third captures the delicate, shimmering texture of a porcelain doll.

The fourth piece, “The Snow is Dancing”, depicts a snowy landscape outside the window, while the fifth, “The Little Shepherd”, presents a pastoral image of a shepherd playing a flute. The sixth piece, “Golliwogg’s Cakewalk”, portrays a dancing doll and is characterized by a lively ragtime rhythm. The Golliwogg was a Black caricature doll typically dressed in red trousers and a red bow tie, while the cakewalk was a dance that originated among enslaved African Americans in the Southern United States in the late 19th century.

2025년 4월 22일 화요일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 f단조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 f단조

차이콥스키는 서양음악 역사상 가장 탁월한 멜로디 메이커로 손꼽힌다. 문제는 베토벤에서 브람스로 이어진 교향곡 전통이 차이콥스키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은 음악적 씨앗으로 논리를 구축하고 발전시켰던 베토벤·브람스와 달리, 차이콥스키에게 중요했던 것은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의 말을 빌리자면) ’구조’가 아닌 ’드라마투르기’다. 그래서 베토벤과 브람스를 잣대로 비판받을 때면 차이콥스키는 심하게 자학하기도 했다.

교향곡 제4번은 차이콥스키가 그런 전통을 작정하고 무시해 버린 작품이다. 그는 짧은 모티프를 발전시키며 논리적 그물망을 구축하는 대신에 길게 이어지는 선율로 소나타 형식을 채웠고, 또한 춤과 노래로 음악적 서사를 구현했다. 1악장은 폭압적인 팡파르 도입부로 시작한다. 이것은 폴란드 춤곡인 폴로네즈 리듬으로 되어 있으며, 차이콥스키는 이 팡파르 주제를 ’운명의 주제’라고도 했다. 뒤이어 흐느끼듯 나타나나 음악적 서사의 주인공이 되는 제1주제는 왈츠 리듬으로 되어 있다. 타루스킨의 분석에 따르면, 폴로네즈는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왈츠보다 상류 계급을 암시했고, 쇼팽의 ‹군대 폴로네즈›로 알 수 있듯이 군악대와 친밀한 음악이었으며, 이 작품에서는 특히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춤이다. 제1악장은 폴로네즈의 폭력이 왈츠를 굴복시키는 서사구조를 따른다.

제2악장에서는 소박하고 애상적인 춤곡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제3악장에서는 러시아 민속음악이 음악을 이끄는데, 후원자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곡가는 이렇게 말했다. “술을 마시고 얼큰히 취했을 때 […] 이것은 모두 잠자는 사람의 머리 속의 상상입니다. 현실과는 관계없는 혼란입니다.” 제4악장은 찬란하게 빛나는 음악이며, 러시아 민요 선율이 곁들어진다. 넘쳐 나는 환희는 서사적 논리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작곡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 안에서 기쁨을 찾을 수 없다면,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보세요. 어떻게 그들이 기쁨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며 향락을 누리는지 보세요.”

P. I. Tchaikovsky: Symphony No. 4 in F minor, Op. 36

Tchaikovsky is regarded as one of the most outstanding melody makers in the history of Western music. The problem, however, is that the symphonic tradition that ran from Beethoven to Brahms did not suit Tchaikovsky’s artistic temperament. Unlike Beethoven and Brahms, who built and developed logical structures from small musical seeds, what mattered to Tchaikovsky, as musicologist Richard Taruskin puts it, was not “structure” but “dramaturgy.” This is why Tchaikovsky would often harshly criticize himself when judged by the standards of Beethoven and Brahms.

‹Symphony No. 4› is a work in which Tchaikovsky deliberately ignored such traditions. Instead of developing short motifs into a motivic web, he filled the sonata form with long, flowing melodies and expressed the musical narrative through dance and song. The first movement begins with a brutal fanfare introduction. This fanfare is written in the rhythm of a polonaise, and Tchaikovsky referred to it as the “Fate theme.” Following this, the first theme, which becomes the protagonist of the musical narrative, emerges with a wailing character and is set in a waltz rhythm. According to Taruskin’s analysis, the polonaise, in the context of Russian society at the time, symbolized a higher social standing than the waltz. As seen in Chopin’s ‹Military Polonaise›, it was also associated with military bands and martial music. In this work, the polonaise specifically represents impersonality. The first movement follows a narrative structure in which the violence of the polonaise subjugates the waltz.

The second movement continues the story with a simple and elegiac dance. In the third movement, Russian folk music takes the lead, and in a letter to his patroness, Madame von Meck, Tchaikovsky wrote: “When you’ve had a drink and are tipsy […] all of this is the imagination of a person who is asleep. It’s a chaos that has nothing to do with reality.” The fourth movement is radiantly brilliant music that incorporates Russian folk melodies. While its overflowing joy does not possess narrative logic, Tchaikovsky explained it as follows: “If within yourself you find no reasons for joy, then look at others. Go out among the people. See how they can enjoy themselves, surrendering themselves wholeheartedly to joyful feelings.”

2025년 4월 21일 월요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그녀는 자신의 혀와 손에서 하얗게 뽑아져나오는 거미줄 같은 문장들이 수치스러웠다. 토하고 싶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 한강, ‹희랍어 시간› 중

“나는 무기력으로 마비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어떤 것에서도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 하루의 절반이나 소파에 누워 망가진 내 삶을 한탄하며 보낼 뿐이었다.”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제1번› 초연이 대실패로 끝난 뒤 깊은 우울증과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그는 약 3년 동안 단 한 음도 작곡하지 못하는 창작적 공백기를 겪었다. 이후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박사의 최면 치료를 통해 다시 창작에 나설 수 있었고, 그 결실로 탄생한 작품이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다. 이 작품은 라흐마니노프가 달 박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헌정한 곡으로, 그의 음악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었다.

이 작품은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의 조성인 c단조로 되어 있다. 베토벤 작품 속에 운명에 맞서 투쟁하는 인간이 있다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에는 절망과 우울을 견디고 회복하는 인간이 있다. 제1악장에서 작곡가는 서럽게 흐르는 선율 속에서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듯한 음악적 서사를 담았고, 제2악장에서는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선율과 화음 속에 마치 고통이 도취적 쾌락으로 승화하는 듯한 멜랑콜리가 돋보인다. 제3악장에서는 화려한 춤곡이 절망의 찌꺼기를 조금씩 떨쳐 내며 질주한다.

이 작품은 라흐마니노프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다. 또한 에릭 카멘(Eric Carmen)의 ‹All by Myself›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Full Moon and Empty Arms› 등 대중음악에 사용되었고, 권형진 감독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와 일본 TV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등장인물이 이 곡을 연주하여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S.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Spun out white as spider’s silk from her tongue and by her hand, those sentences were shameful. She wanted to vomit. She wanted to scream.” – Han Kang, ‹The Greek Lessons›

“I was paralyzed with lethargy. I did nothing and found no pleasure in anything. I spent half of the day lying on the couch lamenting my ruined life.” – Sergei Rachmaninov

After the disastrous premiere of his ‹Symphony No. 1›, Rachmaninov fell into a deep depression and creative slump. For about three years, he was unable to compose a single note, enduring a period of profound creative stagnation. It was only through the hypnotherapy sessions of Dr. Nikolai Dahl that he regained his ability to create. The result of this recovery was his ‹Piano Concerto No. 2›, a work he dedicated to Dr. Dahl in gratitude. This composition marked a pivotal turning point in Rachmaninov’s musical career.

The concerto is set in the key of C minor, the same key as Beethoven’s ‹Symphony No. 5›. While Beethoven’s work portrays the human struggle against fate, Rachmaninov’s concerto reflects a journey of enduring and transcending despair and depression. In the first movement, the composer weaves a narrative in which a human seems to take arduous steps through sorrowful melodies. The second movement is characterized by a bittersweet melancholy, where the music seems to transform suffering into a numb euphoric transcendence. The third movement bursts into a dazzling dance, shedding the remnants of despair as it races toward a triumphant conclusion.

This work is among the most celebrated pieces in Rachmaninov’s oeuvre. Additionally, it has found a lasting presence in popular culture, resulting in derivative pieces such as Eric Carmen’s ‹All by Myself› and Frank Sinatra’s ‹Full Moon and Empty Arms›. It has also featured prominently in films such as ‹For Horowitz› (directed by Hyung-jin Kwon) and the Japanese TV drama ‹Nodame Cantabile›, where characters perform this iconic piece, further cementing its widespread appeal.

2025년 4월 17일 목요일

윤이상: 서곡 (Ouvertüre, 1973/74)

윤이상: 서곡

윤이상이 1973년에 작곡한 ‹서곡›은 윤이상 음악 양식이 큰 변화를 맞이하기 직전의 과도기적 작품이다. 윤이상은 ‘음향복합체’ 또는 ‘톤 클러스터’(Tone cluster)를 연쇄, 생장, 중첩시키는 과정에 음양의 대비와 조화, 정중동(靜中動), 제행무상(諸行無常) 등의 동아시아적 아이디어를 결합한 작품들로 1960년대에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67년 동베를린 사건으로 한국에서 옥고를 치르고 1969년 추방되면서 그 경험을 작품에 녹여 내기 시작했으며, ‹첼로 협주곡›(1975/76)을 기점으로 더 한국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음악 양식을 변화시켜 나갔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의 분석에 따르면, ‹서곡›은 ‹예악›(1966), ‹낙양›(1962) 등과 연속선상에 있는 음향복합체 시기의 작품이되 내용상으로는 자전적 성격을 보이며 암울한 분위기가 작품을 지배한다. 슈파러는 이 작품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주변적 맥락으로 초연 당시 나란히 연주된 베른트 알로이스 침머만의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모든 억압을 보았다›(1970)을 언급하기도 한다. ‹서곡›은 무지크페스트 베를린의 위촉으로 작곡되었으며, 한스 첸더가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1973년에 초연됐다.

윤이상은 1974년 출판에 앞서 이 작품의 상당 부분을 고쳤으며, 로타르 차그로제크가 지휘한 졸링겐 시립오케스트라가 개정판을 초연했다. 이 작품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각 부분이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뉘는 짜임새로 되어 있다.

Isang Yun: Ouvertüre (1973/74)

Isang Yun’s ‹Ouvertüre›, composed in 1973, marks a transitional work written before a significant transformation in his musical style. During the 1960s, Yun achieved international recognition with works that combined East Asian concepts – such as the interplay and harmony of yin and yang, motion within stillness (靜中動), and the impermanence of all things (諸行無常) – with processes involving sound planes or tone clusters, characterized by succession, growth, and overlapping. Following his abduction and imprisonment in South Korea due to the East Berlin Incident in 1967 and his release and expulsion in 1969, Yun began to integrate these experiences into his compositions, eventually transitioning to a style more deeply imbued with Korean essence, as epitomized by his ‹Cello Concerto› (1975/76).

According to musicologist Wolfgang Sparrer, ‹Ouvertüre› belongs to Yun’s epoch of “Klangcomposition,” sharing continuity with earlier works such as ‹Réak› (1966) and ‹Loyang› (1962). Sparrer also notes that the piece reveals a more autobiographical dimension, with somber tones dominating the work. As a contextual reference for the work’s atmosphere, Sparrer mentions Bernd Alois Zimmermann’s ‹Ich wandte mich und sah an alles Unrecht, das geschah unter der Sonne› (1970), which was performed at the concert where ‹Ouvertüre› was premiered. The work was commissioned by Musikfest Berlin and premiered in 1973 by the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under the baton of Hans Zender.

Yun revised much of the work for its publication in 1974, and the revised version was premiered by the Solingen City Orchestra conducted by Lothar Zagrosek. Structurally, ‹Ouvertüre› is divided into four parts, each further subdivided into two sections.

2025년 1월 9일 목요일

소프라노 임선혜 2020년 인터뷰

제가 예전에 했던 인터뷰인데 공연이 성사되지 못해서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번에 발견해서 올려 둡니다. 인터뷰에서 말한 공연은 코로나-19로 인해 2020 통영국제음악제 전체가 취소되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외트뵈시 ‹시크릿 키스›는 2024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소프라노 소피아 부르고스 협연, 바스 비허르스 지휘 클랑포룸 빈 공연으로 한국초연됐습니다.


Q. 최근에 새 음반을 내시고 서울에서 쇼케이스도 하셨습니다. 음반 자랑 좀 해주세요.

A. 새 음반은 고대의 가장 슬픈 사랑의 운명을 가진 여인이라 할 수 있는 ‘다이도’(Dido, Didone 디도, 디도네)의 노래만으로 엮은 것입니다. 권력에 눈이 먼 남동생이 그녀의 남편을 죽이고 왕의 자리를 차지하자 다른 나라로 피신해 카르타고라는 왕국을 세운 영리하고 기지가 있으며 의기당당한 다이도. 그녀는 이탈리아로 가던 길에 이곳에 당도한 전사 아에네아스와 사랑에 빠지고 행복해하지만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목표를 상기하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배를 타고 떠납니다. 돌아오라는 외침에도 답이 없는 애인의 배신으로 슬픔, 절망, 치욕을 느끼는 사이 그녀의 왕국 카르타고는 불타기 시작하고, 그녀는 자신의 고단했던 운명에 이별을 고하며 불에 뛰어들고 맙니다. ‘버림받은 다이도’는 메타스타지오의 오페라 대본가로서의 데뷔작인데 당시 너무도 인기여서 무려 60편의 음악 작품이 탄생했다지요. 이 중 18세기 이탈리아 스타일로 쓰여진 곡들만 모은 것인데, 한 평론가는 ‘노래 시작 몇 초만에 감전된 듯’ 하다며 ‘전적으로 센세이셔널, 압도적이다’라고 음반에 호평을 했네요. 서독일라디오방송에서는, 덜 유명한 작품들로 이루어졌지만 가치 높은 작품들을 알게 한 이 음반은 노래와 반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라고 극찬을, 베를린라디오에서는 ‘선혜 임은 음들을 유연하게 파도타는 노련한 비치 서퍼’ 같다며, '15년 전 음반들과 비교했을 때 이제 더 이상 기교로 지저귀는 새가 아니라 서정적이고 내적인 것을 노래하는 새로운 깃털로 갈아입은 것 같다’라는 재밌는 표현을 선물해 주었네요. 20년 만에 털갈이 한 건가요? ^^ ‘비치 서퍼’라는 새로운 별명이 이제 더 맘에 듭니다! ^^

Q. 2015년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공연, 2017년 뤼벡 합창 아카데미의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공연 이후 이번이 세 번째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하실 예정이신데요, 이번에 다시 한번 협연할 뤼벡 합창 아카데미는 임선혜 선생님께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A. 통영국제음악당은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외국 음악가들에게도 유명해진 공연장입니다. 두 번 다녀간 적이 있지만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또 다르고 특별한 기분인데요. 이제 그 역사와 전통을 조화롭게 이루어낸 이 음악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음악제로 외국에서도 유명해졌기 때문입니다.

합창에 열정이 대단한 롤프 백 지휘자님이 이끄는 이 아카데미와의 재회도 반갑습니다. 독일적 합창 전통을 이어가지만 여러 나라의 젊은 성악가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이어서 그 울림이 더 특별하지요. 더구나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드라마틱함 뿐 아니라 가사의 유머러스한 표현과 재치 있는 리듬을 선사할 ‘카르미나 부라나’로 함께 하게 되어 그들의 활약이 몹시 기대가 됩니다. 

Q. 뤼벡 합창 아카데미와 협연할 '카르미나 부라나'는 소프라노 입장에서 어떤 곡인가요? 이 곡을 전에 공연하셨던 경험도 궁금합니다. 

A. 늘 기회가 안 맞았다가 마침내 지난해 여름, 크리스토프 포펜(Christoph Poppen)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포르투갈의 ‘마르방 페스티벌’에서 역시 폐막 야외 공연을 했습니다. 저의 독일 스승 롤란트 헤르만(Roland Hermann) 선생님은 작곡가 칼 오르프의 많은 작품을 그의 지휘로 노래하고 녹음하고, 초연도 한 분이어서 이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그간 많이 들었습니다.

1936년 작품인 ‹카르미나 부라나›는 칼 오르프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임이 틀림없죠. 특히 이 작품의 첫 번째 악장인 ‘오 운명의 여신이여 (O Fortuna)’ 는 누구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만큼 영화나 TV 광고에 많이 등장하는데 영국 BBC 방송국에 따르면 2009년 말 기준으로 가장 많이 연주된 클래식 음악으로 꼽혔다는군요. 제목을 해석하면 ‘보이언의 노래’라는 뜻인데, 옛부터 베네딕토 수도원이 있는 곳의 지역 이름이 바로 보이언입니다. 11-13세기에 수도자들이나 음유시인들이 쓴 세속적인 노래를 슈멜러(Johann A. Schmeller)가 1847년에 ‘카르미나 부라나’로 엮었는데, 거기서 발췌해 오르프가 그 음악적으로 세팅을 한 것입니다. 가사는 현대 유럽인들에게도 익숙하지 않는 세속 라틴어, 중세 독일어, 고(옛) 불어로 되어있는데, 그보다 단순한 화성과 큰 다이내믹, 유머러스한 리듬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그 분위기에 금방 젖게 하는 대중성을 가지고 있지요. 

소프라노는 '사랑의 뜰’이라는 악장부터 등장해서 남녀의 사랑 에피소드를 전하는데 마침내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스런이여, 아~ 나의 모든 것을 바치리!’ 하며 클라이맥스를 만듭니다. 그 전 넘버가 노래하는 사람도 어깨춤을 추게 될 만큼 유쾌하고 재밌는 곡이기에 갑자기 그 노래를 멈추고 사랑을 고백하는 이 4마디는 분위기상으로도 좀 급작스러운데요, 지금껏 중저음을 주로 노래하다가 '높은 레(high D)’를 내야 하는 소프라노에게도 그러하지요.^^ 그 네 마디 안에 도약이 큰 널뛰기로 올라간 고음에서 페르마타로 머물며 사랑하는 이를 부르고, 기품 있게 또는 빠르게 하강하는 셋잇단음표들, 그리고 스타카토로 조심스럽게 올라 마침내 고음에 도달하여 사랑의 탄성을 완성한 후 ‘내 모든 것을 주겠다’고 강조하면 마침내 그 임무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스릴 넘치는 4마디라고 해도 될까요! ^^ 물론 임무를 잘 완성한 다음의 카타르시스는 어마어마합니다!^^

Q. 리사이틀 프로그램 중에 윤이상 초기 가곡 중 '그네'와 '달무리'가 있습니다. 어떤 곡이며 이 곡을 부를 때 어떤 발성 원칙이 필요할까요?

A. 1994년 발간된 ‹윤이상 초기 가곡집› 첫 페이지에 윤이상 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글이 있는데 이 글이 그 무엇보다 좋은 대답이 되지 않을까 싶어 적어봅니다.

“이 책을 내면서 나는 1950년에 부산에서 "달무리” 라는 가곡집을 출판한 바 있다. 책이 몇 군데 서울과 부산의 책방에 배부된 직후에 전쟁이 일어나 종적을 잃어버리고 이 곡들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 뒤에 한두 곡이 종합가곡집에 실린 일도 있으나 40년이 지난 오늘, 나는 이 5개의 가곡을 묶어 원형 그대로 출판하면서 다시 우리 민족 앞에 늦으나마 선보이고자 한다. 이 곡들 은 1945년을 전후하여 작곡되었으며, 우리 민족의 그 시기의 작곡적인 소재지를 모색,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곡들을 다시 냄에 있어서 내가 바라는 것은, 비록 성악가가 서양 발성법을 구사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약간의 우리 전통 음악이나 민요의 선적, 율동적, 색채적인 묘미를 가미해서 불러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1994년 6월 20일 베를린에서

윤이상"

“그네"는 통영 출신 시인 초정 김상억의 ‘추천(그네)’라는 시에 붙인 곡입니다. 동향인 두 분이 20대에 의기투합해 만든 다른 작품으로 ‘봉선화’ (비 오자 장독간에...)가 있는데, 남망산 공원에 그 시비가 있다고 하지요. 윤이상 선생님은 이 시를 “편지”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가곡집에 실었습니다.

시인은 시 “무궁화”를 발표한 후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함북 웅기로 유랑을 떠났다가 귀향해 ‘남원서점’을 경영하였고, 해방 후 김춘수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조직하여 예술운동을 했으며, 11월 삼천포문화동지회를 창립, 한글운동, 교가 보급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달무리”는 청록파 시인 중 한 분인 박목월의 시로 ‹청록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인 박목월은 정지용 선생이 ‹문장›에서 ‘북에는 소월이 있었으니 남에는 박목월이가 날 만하다’라고 했을 만큼 주목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필명 중 ‘월’도 존경하는 소월에서 따왔다고 하니 그에게 더없는 찬사였겠지요. 윤이상 선생님은 “달무리” 외에도 이 시인의 시 중 역시 ‹청록집›에 수록된 “나그네”에도 곡을 붙였습니다. 이 시는 이번 리사이틀에서 정태봉의 가곡으로 부를 것입니다. 

평소 윤이상 선생님의 초기 가곡을 많이 불렀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이 곡에 클라리넷과 같이 연주해 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촉망받는 작곡가, 지휘자로 평가받는 윤한결의 편곡으로 클라리네티스트 김한과 같이 이 곡들을 이번 음악제에 선보이게 되어 기쁩니다.

윤한결은 곡 자체에 한국적인 요소가 많아 클라리넷의 유연함을 이용해 대위법적인 추임새를 추가해 보았다고 말합니다. 부디 우리 전통음악과 민요의 선적, 율동적, 색체적인 묘미를 강조하신 윤이상 선생님의 뜻에 후배들이 드리는 좋은 응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Q. 김순남, 이건우, 나운영 등의 가곡은 어떤 매력이 있나요?

A. 한국 근대 현대음악사에서 1988년 납·월북음악인의 작품규제 해제조치’가 있기까지 작품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월북 음악인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역사적 평가나 연주가 외면당한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예술성을 간과할 수 없는 김순남, 이건우 두 작곡가가 있습니다. 민족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이들의 작품은 표현주의적이고 현대적인데, 우리의 전통적 리듬과 선율을 담았다는 면에서 한국 가곡이 예술가곡으로서 갖는 가치를 새롭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11년 스위스의 한 가곡 페스티벌에서 윤이상, 김순남, 이건우의 작품을 연주했을 때 청중들은 우리의 전통적 리듬과 정서로 쓰여진 가곡들의 낯선 매력에 큰 관심과 흥미, 호응을 보인 바 있지요. 이번에는  같은 시대 남쪽에서 같은 지향으로, ‘선토착화 후현대화’라는 신념으로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한 독창성을 표현하기 위해 이론 정립과 창작을 병행한 작곡가 나운영의 곡도 같이 연주합니다.   

리사이틀에서는 이외에도 작곡가 정회갑, 전인평, 이영조, 정태봉의 작품을 노래하는데, 저 개인적으로, 현대적인 음악어법에 우리의 것을 한껏 담아내어 한국 가곡의 정체성에 있어서 그 계보를 잇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곡가들의 곡들을 뽑아본 것입니다. 머지않아 한국 가곡 음반을 내고픈 소망이 있는데, 그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아주 뜻깊은 작업이 될 것으로 여깁니다. (통영국제음악제의 이번 리사이틀을 위해 특별히 클라리넷, 피아노, 소프라노 곡으로 편곡해 주신 이영조, 정태봉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Q. 페테르 외트뵈시가 지휘하는 '클랑포룸 빈' 공연에서 페테르 외트뵈시 '시크릿 키스'의 내레이션을 맡으실 예정입니다. 악보를 받으셨나요? 이 곡은 어떤 곡인가요?

A. 이번 음악제 덕분에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현대 작곡가 중 한 명인 외트뵈시 선생님과 작업하는 기회가 주어져 좋은 긴장으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악보도 보지 않고 작곡가 이름과 요염한 작품 이름에 매료되어 얼른 수락을 했는데, 엊그제 악보를 받고는 하기로 한 것이 잘한 일일까... 잠시 고민을 하긴 했습니다. ^^;; 하지만 이 작품이 탄생한 배경들을 공부하며 저로서는 큰 경험이 없는 현대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특별히 ‘내레이터’로서의 이 작품 속 역할에 큰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작가 알렉산드로 바리코(Alessandro Baricco)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한 장면을 17분 음악에 담은 이 작품은 프랑스인 종쿠르(Joncour)가 실크의 재료가 되는 좋은 누에고치를 얻기 위해 일본에 간 것으로 시작합니다. 마침내 누에고치 상인을 만나 차를 대접받은 그는 그 상인의 무릎을 베고 말없이 누워있는 여자를 힐끗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해서 차를 들이키게 되는데, 이때 그녀가 말없이 그의 찻잔을 집어 들더니 정확히 그의 입술이 닿았던 곳에 입을 대고 차를 마신 것이죠. 이에 종쿠르 역시 그 찻잔을 들어 다시 그 자리에 입을 대고 잔을 비웁니다. 그야말로 아주 애틋하고 비밀스러운 입맞춤인 것이죠. 일본의 연극 ‘노’의 유일하다시피 한 여자 배우이자 현대음악과의 협업으로 이름이 난 료코 아오키의 의뢰로 작곡된 곡이라는데, 그 가사는 외트뵈시의 부인이 직접 골랐다고 하네요. 악보는 영어와 일본어로 되어있는데, 물론 지난해 초연은 모두 일본어입니다. 이번 음악제에서는 우리말로 초연이 되는데 가사가 궁금합니다! 유튜브에서 본 그녀의 연극 창법에 견주어 저는 한국말로 된 이 내레이션을 어떻게 생동감 있고 비밀스럽게 하게 될지 저도 그 공부가 기대됩니다. 친분 있는 현대 작곡가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잘 준비해 봐야겠습니다.

Q. 안 해본 작품 가운데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A. 올해로 유럽 국제무대에 데뷔한 지 20년이 되는데, 안 해본 작품을 하는 것은 여전히 제 일상입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처음 무대에서 해보게 될 작품이 4편이나 되네요. 제가 주로 하는 고음악은 현대음악을 하는 것과 닮은 점이 있어서, 음반 등 레퍼런스가 많은 음악과는 달리 사람들 귀에 익은 잣대나 정석이 없고 그 해석이 자유롭지요. 그래서 공부하는 데에 시간이 좀 더 걸리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 실험적인 과정은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여전히 안 해본 곡이 많은데 그중에 그나마 알려진 곡을 말하라 하면 헨델의 ‹줄리오 체사레›를 꼽겠어요. 동양적인 매력을 가진 클레오파트라의 연기와 노래가 꼭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나요?

A.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와 투어를 가을에 계획하고 있습니다. 데뷔 당시 2년쯤 이러다 말겠지 했던 것이 20년이나 바쁘게 무대에 오를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맘으로 그동안 제 음악을 아껴주신 많은 분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는 마음으로, 여러 면에서 아주 특별한 음악회가 되도록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

올해 일정 중 콘서트 작품을 극으로 만드는 흥미로운 작업을 두 작품 하게 되는데, 하나는 뉴욕에서 열리는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 레퀴엠을 극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헨델이 유일하게 독일어로 남긴 작품인 ‹9개의 독일 아리아›를 Songs of Nature 라는 부제로 무대에 올리는 것입니다. 상하이, 베이징 뮤직 페스티벌, 홍콩, 뉴욕, 암스테르담 등 큰 투어를 계획하고 있어 작품이 더 견고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은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소프라노 임선혜 2017년 인터뷰

 제가 예전에 인터뷰했던 텍스트를 찾다가 이곳 블로그에 없어서 올려 둡니다. 통영국제음악재단 매거진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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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통영국제음악당 개관 전에 공연하셨던 것을 빼면, 지난 2015년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와 함께 '오르페오'를 주제로 공연한 이후로 이번이 두 번째 통영 공연입니다. 2015년 당시 통영국제음악당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A. 벌써 2년 전의 일이지만 저와 당시 함께 했던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동료들에게도 아직 선명하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뛰어난 음향을 가진 아름다운 공연장과, 바다가 보이는 대기실은 정말 잊지 못한다며 지난주 함께 베를린 무직페스트에서 연주한 그 동료들이 다시 떠올리더군요. 아마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와 더불어 세상에서 제일 그림같이 멋진 대기실이라고요. 역시 저에게도 그렇답니다. 더불어 엄청나게 맛있게 먹은 음악당 내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기억에 남네요.

Q. 거장 지휘자들과 함께 여러 음반을 녹음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시히스발트 카위컨 지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도 있는데요, 한 성부에 한 명으로 합창과 독창을 겸하게 한 편성이 독특합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이 녹음을 하기 몇 년 전 바흐의 ‹요한 수난곡›을 카위컨과 연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적어도 한 성부에 두 명씩이었어요. 프로젝트 플랜에 합창단 언급이 없어서 이번에도 그런 방식일까 했는데, 첫 연습에 도착하니 정말 소프라노라고 나와 있는 부분은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야 한다는 말에 속된 말로 ‘멘붕’이 강림했죠. 다행히 그간 연주하며 들은 풍월 덕에 하루 만에 익혀서 차질은 없게 했지만 워낙 양이 많다 보니 노래를 해도 해도 끝이 안 나던 기억이 나요. 하지만 아리아와 듀엣 몇 곡 부르던 때와 달리 정말 '예수 탄생 이야기’에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동료들과 가사를 맞추고, 또 바흐 특유의 수학 문제 풀이 같은 각 성부 진행을 함께 노래하며 엄청난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한겨울 벨기에의 한 교회에서 녹음을 했는데, 공사 중이던 옆 건물의 소음 때문에 저녁에 시작해서 자정 넘어까지 손을 호호 불어가며 목도리를 온몸에 칭칭 감고 노래했던 기억도 이제 추억으로 남았네요.

Q.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처음 공연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A. 그건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네요. 첫 공연은 아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즈음이었을까요? 오스트리아 빈에서 존 노이마이어의 연출, 안무로 함부르크 발레단과 한 공연이 기억에 아주 많이 남았어요. 베를린 도이체오퍼에서 오페라로 연출된 ‹마태오 수난곡› 프로덕션에 잠깐 참여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 있었죠. 소설을 읽으며 내 머리로만 상상하던 것이 영화로 구체화되어 나왔을 때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원래 연출되도록 만들어진 곡들이 아니고, 게다가 교회음악이기에 그 접근이 터부처럼 느껴졌던 것이 일반적 정서라, 뭔가 금지되었던 것의 안을 들여다보는 아찔함이 있었죠. 노이마이어의 발레에서 발레리노 예수가 나중에 십자가 지고 가는 장면들이 자유로의 춤으로 연출될 때 연주되는 바흐의 음악 역시 그를 따라 극장 전체를 일렁이며 춤추고 있었어요. 오페라를 넘은 종합예술의 어떤 완성점을 처음 맛보았다고 할까요? 십여 년 전에 비해 지금은 이런 시도들이 훨씬 많아졌어요. 미국 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작년에 ‹요한 수난곡›을 스테이지 프로젝트로 만들기도 했고, 지난봄에는 하이든의 ‹천지창조›를 무대연출해서 엘프필하모니에 올린 작품에 참여하기도 했지요. 한계와 무한한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 새로운 시도에 많은 연출가들이 호기심을 쏟고 있답니다. 

Q. 소프라노 성부를 맡은 솔리스트의 역할과 관련해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가 독특한 점이 있을까요? 바흐 칸타타와 비교했을 때, 바흐 수난곡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다를지 가수로서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A. 가장 큰 차이는 주제에 따른 마음의 접근이겠지요? 한 곡은 수난을 노래하니 그 의미와 구원의 역사를, 다른 한 곡은 그 계획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사실 바흐 오라토리오에서 솔리스트는 잘 차려진 음식 위에 올려지는 고명과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극의 줄거리 설명은 복음사가(Evagelist)가 하고 극은 합창이 이끌어갑니다. 그 줄거리 설명과 드라마 사이사이에 솔리스트들은 격양된 희로애락의 감정을 읊지요. 이 부분들이 잘 읊어지고 진정성을 낳으면 관객들은 다음의 줄거리와 극들을 더 기대하며 공연에 적극적인 참여를 하게 됩니다. 모든 바흐의 오라토리오들이 그런 역할을 솔리스트들에게 요구하고 제안하고 있지요. 다만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하루에 모든 곡이 연주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약간은 다른 성격이 있어요. 원래는 "크리스마스 기간” 각각 다른 날들에 연주하도록 작곡된 것이라 큰 줄거리는 우리가 아는 그 내용이지만, 6칸타타들을 하나로 만드는 큰 유기적인 결합은 덜합니다. 따라서 수난곡에서는 각 성부 아리아들의 위치와 배정을 어느 정도 계획했다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그런 큰 그림이 꼭 보이지는 않지요. 1번부터 6번까지를 하루 저녁에 연주하기도 하지만 어떤 공연들은 1, 4, 5, 6만 한다던가, 첫날은 1-3번, 두 번째 날은 3-6번 이렇게 정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에 따라 공연에서 부르는 아리아가 거의 없을 때도 있지요. 그날의 무대 위에서 정자세로 더 많이 앉아 있는 '감상의 날’이죠.

이 곡에서 또 주목할만 것은, 바흐가 자신이 세속칸타타에서 썼던 아리아들을 다시 사용했다는 것인데, 마침 그 세속 칸타타들을 연주해 본 경험이 있어서 제게도 흥미로웠던 부분입니다. 바흐가 자신이 이미 썼던 곡에 가사를 바꾸고 악기에 변화를 주어서 180도 전혀 다른 분위기가 나는 곡으로 둔갑시키는데 아주 큰 능력이 있는 작곡가임을 후대에 음악가들이 감탄해 마지않고 있습니다. 어린 헤라클레스에게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즐기라고 유혹하는 ‘쾌락’(Wohllust)의 소프라노 아리아 (BWV213)가 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서는 아기 예수에게 잘 자라는, 한없이 순수한 자장가로 등장하는데 이때는 알토의 아리아로 바뀝니다. 성부가 가사를 조금 바꿈으로써 '아주 관능적인 아리아'에서 '아주 순결한 아리아'로 바뀌는 마술이 일어난 거죠! 바흐는 알면 알수록 수수께끼 같은 매력이 드러나는 작곡가입니다. 바흐 사후 바흐를 세상에 다시 소개해 그의 작품들이 만개하게 한 멘델스존이 문득문득 참 고맙답니다.

Q. 뤼벡 합창 아카데미(Chorakademie Lübeck)는 2014년에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카르미나 부라나' 공연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합창단입니다. 뤼벡 합창 아카데미와 전에 협연하신 일이 있나요?

A. 소식은 많이 들었지만 함께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다만 지휘자 롤프 베크 선생님은 십여 년 전, 독일의 대표적 여름 페스티벌인 슐레스비히-홀스타인 페스티벌 디렉터로 계실 때 그 페스티벌 합창단과 함께 바흐의 ‹B단조 미사›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워낙 독일에서 합창 음악에 대가로 알려지셨기에 그분이 가는 곳이면 합창이 늘 특별하고 좋았지요. 오랜만에 뵙게 될 텐데 다시 바흐 음악으로 함께하게 되어 기대됩니다. 

Q. 지난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때, 페이스북으로 소프라노 황수미 • 박혜상 • 바리톤 유한승 씨를 극찬하면서 응원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신인 가수가 있나요?

A. 둘러볼 기회가 없어서 다 응원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실력 좋은 한국인 신인 가수들이 많습니다. 도밍코 콩쿠르에서 우승한 테너 김건욱도 그중 하나인데, 지난해에는 부산에서 ‹사랑의 묘약›을 같이 공연할 기회가 있었지요. 아름답고 진정성 가득한 음성과 음악을 대하는 겸손함 그리고 무대에서의 적극성이 앞으로 더 좋은 무대들을 열어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친분이 있는, 피츠버그 심포니 음악감독인 마에스트로 만프레드 호넥씨가 찾고 있는 테너 음성인 것 같아서 적극 추천을 했는데 잘 성사되어 서로 기뻐하는 모습에 저도 괜히 뿌듯했답니다. 

Q. 가수로서 느끼는 유럽 고음악계 및 오페라 극장의 최신 경향이나 판도를 국내 애호가 및 음악 전공 학생들에게 소개하자면?

A. 근 20년 전 저의 데뷔 초기에 유럽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가수들이 열 분도 채 안 되었다고 하면, 이제는 한국 출신 성악가들을 유럽의 어느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한국 출신 음악가들이 많은 국제 콩쿠르 입상으로 극장 무대에 진출한 덕이기도 하고 더 넓게는 유럽이 자신들의 음악시장을 점차 개방해서 모든 민족들과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경쟁하고 연주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어느 나라 가수는, 음악가는 대략 이렇더라 하는 편견도 많이 사라지고 있고요. 그것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새로운 세대의 젊은 음악가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테크닉뿐만 아니라 감성의 공감대를 이끌어낼 만큼 열려있고 문화 공부도 많이 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피부 색깔 등 많은 편견들과 선입견이 사라진 이상 아티스트, 연주자 개개인의 남다른 개성, 그리고 그 개성의 뚜렷함이 호감을 얻게 되면 많은 주목을 얻게 되는 것이죠. 동양인이 수석으로 앉아 있어도 이상하지 않고 동양인이 음악사 최초 서양 오페라에서 주인공이어도 거부감이 없는, 오히려 어떤 다른 색깔을 내어줄까 하는 기대를 사게 만들 수도 있는 시대. 더 이상 동양인이라 절대 안 된다는 말은 듣지 않아도 되는 '열린 세상'에서 자신의 음악을 맘껏 펼쳐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 같습니다.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지구의 많은 나라들이 서로 가깝게 느껴지는 덕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오랫동안 열정과 인내로 국제무대를 지켜내시고 좋은 이미지들을 남겨주신 여러 음악가 선배님들의 노고를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Q. 자신만의 발성법을 찾기 전에 흉내 내려 했던 가수가 있었나요?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된 과정이나 계기가 궁금합니다. 더 나은 발성법을 고민 중인 성악도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합니다.

A. 미렐라 프레니를 좋아하던 시절, 성악에 입문하고 대학 입시를 치를 때까지는 아주 고음은 잘 안 나지만 제법 굵고 큰 소리가 나는 소프라노였습니다. 상상이 어려우실 수도 있겠지만요.(웃음) 제게 지금의 목소리를 갖도록 길을 닦아주신 분이 서울대 박노경 교수님이셨어요. 자기 몸에 어울리는 소리를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국제 무대에 서기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볍고 날씬해서 고음이 잘 나는 음성이 실제 이 아이의 몸에 맞지 않을까 하고 많이 연구하셨다고 해요. 저는 그 깊은 뜻은 감히 헤아리지 못했고 그저 선생님의 음악성에 늘 감탄하던지라 선생님을 무척 따랐지요. 그래서 2-3학년 때는 하이 C가 겨우 나던 것이 4학년 때는 콩쿠르에서 E♭이 나는 ‹청교도› 의 아리아나, 루치아의 ‹광란의 아리아›들로 1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럽 데뷔 후 주로 고음악이 주 레퍼토리가 된 통에 벨칸토 레퍼토리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줄었지만,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가수로, 또 각 장르에 유연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때 선생님께서 제 몸에 무리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소리를 찾아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소리와 노래를 가장 오랫동안 들으셔서 가장 잘 아시는 분이기에 지금도 한국에 가면 레슨을 받고 조언을 구합니다.

또 성악가들은 노래하면서 자신의 소리를 듣기가 힘들기에 연습이든 공연이든 되도록 녹음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요. 자기 목소리를 듣는다는 건 때로 민망하고 쥐구멍으로 숨고 싶게 할 때도 있지만, 내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들으며 지향점과 지양점을 스스로 깨닫고 생각하는 꼭 지나야 하는 깜깜한 터널 같은 작업이지요. 덕분에 많은 음악적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하고요. 때로는 다른 성악가들의 노래를 들으며 참고할 때도 있는데, 때마다 다르지요. 지금 당장 어떤 부분이 부족하거나 넘친다는 생각이 들면 레퍼런스가 될 수 있는 소프라노들을 듣기도 합니다. 캐슬린 배틀이 될 때도 있고, 엘리 아멜링이나 알린 오거(Arleen Auger) 가 될 때도. 최근에는 마리아 바요의 이태리 레치타티보 리듬에 반해서 많이 참고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성악도들이 유학을 가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어린 나이에 무겁게 노래하지 말라는 이야기일 겁니다. 오래 건강하게 그리고 듣기 좋게 노래하기 위한 기본이 되기 때문일 테지요. 내가 잘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선생님의 좋은 귀가 한 성악가의 커리어를 함께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에 대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해봐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나요?

A. 몇몇 새 음반이 곧 출반됩니다. 파비오 비온디가 이끄는 “에우로파 갈란테”와 빈 공연 실황 녹음을 한 헨델의 오페라 ‹실라›, 그리고 B-Five라는 리코더(Blockfloete) 그룹과 지난해 녹음한 윌리엄 버드(William Byrd)의 Songs. 

요절한 유대인 작곡가 에르빈 슐호프(Erwin Schulhoff) 의 가곡 전집을 남독일방송국과 함께 녹음 중인데, 가곡 작곡가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작곡가의 다양한 면모를 세계초연 레코딩으로 소개할 수 있어 기쁩니다. 

올해 모차르트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로 내한해서 세미 스테이지 버전 모차르트 오페라의 진수를 보였던 르네 야콥스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오케스트라’가 다시 내년에는 ‘피가로의 결혼’으로 내한합니다. 영악하고 요염한 하녀에서 사랑스럽고 재치 있는 새신부, 수잔나로 함께 공연하게 되어 벌써부터 기쁩니다!


2024년 8월 8일 목요일

소설 『트러스트』 -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숭고함과 장엄함

에르난 디아스 소설 『트러스트』는 남성 작가가 여성 등장인물의 시선에 무게를 두고 서술한 점이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주요 등장인물 가운데 남자들은 되먹지 못한 인간이거나, 진실을 적극적으로 왜곡하려 들거나, 최소한 20세기 초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어울리는 가부장적 인간이다. 그에 반해 여성들은 지성과 양심을 가진 인물이며, 남자들이 왜곡한 진실을 폭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페미니즘 소설이 아니라 삶과 죽음, 지성과 양심, 그리고 학문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다.

작품을 이루는 네 가지 이야기 중 세 번째 이야기에 이르러 진실이 폭로되기 시작할 때, 독자로서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이야기는 과연 믿을 수 있는가 하는 의심이다. 그러나 그걸 믿을 수 없다고 단정짓는 역자 후기를 읽고 있자니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시발점이 바로 이 짜증이었는데, 남자인 내가 이런 정도면 여성 독자는 모멸감을 느낄 법도 하지 않은가. 이 작품은 ‹라쇼몽›과 유사한 형식을 띄고 있지만, 세 번째와 네 번째 이야기의 진실성 때문에 라쇼몽과는 다르기도 하다.

역자는 네 번째 이야기가 일기의 형식을 하고 있으면서도 뒤로 갈수록 일기의 형식을 벗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일기의 마지막 대목을 불가능하다고 단정지었지만, 그것이 딱히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역자의 단정은 명백한 사실이 아닌 가능성 있는 의견일 뿐이다.

일기를 보고 일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일기란 마땅히 이래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작품 속에서 남자들이 보이는 '여자란 마땅히 이래야 한다' 식의 고정관념을 연상시킨다. 어쩌면 역자는 네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여성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지성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은 아닌가? (물론 이것은 역자의 허술한 주장에 대한 나의 허술한 반응이다.)

세 번째 이야기의 후반부에 이르러, 나는 그간 폭로된 진실과 결정적인 복선을 바탕으로 추론한 끝에 네 번째 이야기에서 폭로될 가장 중요한 진실을 눈치채고 말았다. 그러나 이야기 전체의 가장 중요한 반전이라 할 수 있는 설정을 미리 눈치챘음에도 네 번째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진진했다. 마지막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장엄함, 역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숭엄함'이 네 번째 이야기의 백미인 까닭이다. 네 번째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기이며, 이것을 일기가 아니라 말하는 것은 이 숭엄함에 대한 모독이다.

네 번째 이야기의 제목은 '선물(先物)'이다. 남에게 선물할 때 말하는 선물(膳物)이 아니라, 금융 시장에서 거래되는 고위험 파생상품을 뜻하는 말이다. 선물은 어떤 상품을 특정 가격에 사거나 팔 권리를 증권화한 금융상품으로, 영어로는 'Futures'라고 한다. 선물은 특정 상품의 미래 가격이 폭등 또는 폭락할 것에 대비하는 보험 성격이 있는 상품인 동시에 투기적 관점에서는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을 바탕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품이기도 하다. 

금융상품을 뜻하기도 하고 '미래'를 뜻하기도 하는 영어 'Futures'가 네 번째 이야기의 제목인 점은 이야기의 숭엄함에 힘을 더한다. 작품 전체의 제목인 '트러스트'(Trust)가 가지는 다층적 의미는 '선물'(Futures)에 이르러 숭엄한 완결성을 획득한다.


2024년 5월 7일 화요일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트리오 2번 e단조, Op. 67

쇼스타코비치 음악을 설명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다면성이다. 그의 음악에는 브람스적인 논리 구조와 바그너적인 마법의 순간이 공존하고, 음악에 담긴 정서에는 기쁨과 슬픔, 쾌락과 고통이 공존한다.

피아노 트리오 2번 e단조는 작곡가의 절친이었던 이반 이바노비치 솔레르틴스키를 추모하는 곡이다. 그는 쇼스타코비치의 벗이자 멘토였고, 쇼스타코비치가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에 큰 영향을 받게끔 했던 인물이었으며, 작곡가가 1악장을 쓰던 중에 41세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독일의 러시아 침공, 유대인 학살, 스탈린 시대 러시아의 억압적인 분위기 등 암울한 사회상이 있다. 이 작품은 스탈린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받아들여져 1848년부터 스탈린 사망 직후인 1953년까지 러시아에서 금지곡이 되었다.

이 작품의 드라마투르기는 벗의 안식을 기원하는 음악으로 보기 어려운 짜임새로 되어 있다. 1악장은 마치 유령이 허공을 떠도는 듯한 푸가토로 시작해 슬픔과 울분을 축적해 나간다. 2악장은 솔레르틴스키의 누이에 따르면 솔레르틴스키의 인간적 특징을 음악으로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음악에 담긴 냉소적인 태도는 그 이면에 냉소와 울분의 원인이 되는 다른 것들이 있음을 짐작게 한다.

3악장은 파사칼리아 풍의 침울한 장송행진곡이며,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장례식에서 이 음악이 연주되기도 했다. 휴지부 없이 곧바로 이어지는 4악장은 작곡가의 표현으로 “죽음과 절망의 춤”으로, 후반부에 앞선 악장들을 인용하는 대목은 벗을 그리워하는 작곡가의 술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4악장에는 유대인 전통 음악 양식이 사용되고 있는데, 그래서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비판 의식이 음악에 담겨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쇼스타코비치 자신은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음악에 나타나는 다면성이 유대인 음악의 영향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24년 5월 4일 토요일

클라라 슈만: 세 개의 로망스, Op. 22 / 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3번 c단조, Op. 101

클라라 슈만: 세 개의 로망스, Op. 22

로망스는 낭만적·애상적 감성으로 가득한 악곡을 뜻한다. 본디 성악곡을 일컫는 말로 발라드와 동의어에 가까웠으나 18세기 이후 기악 로망스가 정착되었다. 세도막 형식 또는 론도 형식이 일반적이다. 클라라 슈만의 로망스(Op. 22)는 19세기 풍의 짙은 애수가 가득한 작품으로, 발표 당시부터 호평받았으며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

1853년에 작곡된 이 곡은 클라라 슈만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이다. 남편 로베르트 슈만은 이듬해인 1854년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르렀고, 1856년에 향년 46세로 타계했다. 남편과 사별한 이후 클라라 슈만은 작곡 활동을 중단했다.

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3번 c단조, Op. 101

19세기 유럽에서 기악 음악의 역사는 베토벤이 남긴 딜레마를 극복하려는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베토벤은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힌 작곡가였지만, 낭만주의 시대의 ‘로망스적인’ 선율이 베토벤의 주제 발전 기법과 맞지 않았던 까닭이다.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리스트 등이 저마다 ’아이디어’를 짜내 문제에 도전했고, 바그너는 음악 외적인 요소인 ’드라마’를 음악과 결합해 새로운 방향에서 혁신을 이끌었다.

브람스는 섣부른 ’꼼수’를 쓰는 대신 베토벤의 유산을 극한까지 발전시킴으로써 문제를 정면 돌파했다. 브람스 음악의 낭만적 선율의 이면에는 짧은 음형을 씨앗으로 삼아 ’논리 전개’를 이어 가는 정교한 구조가 있으며, 훗날 쇤베르크는 이것을 ’발전적 변주’라 이름 붙였다. 또한 브람스 파벌이 바그너 파벌과 대립하는 과정에서 교향곡 작곡에 신중했던 브람스를 옹호하는 논리로 ’고급 감상자는 실내악을 듣는다’는 속설이 생겨났고, 적어도 형식 논리 측면에서는 브람스가 베토벤의 진정한 계승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브람스 피아노 트리오 3번 c단조는 발전적 변주 기법이 모범적으로 나타나는 작품이다. 1악장 첫 마디에 제시되는 짤막한 음형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발전하며, 이로부터 1악장을 넘어 곡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여러 주제가 파생한다. 주제 발전은 소나타 형식의 발전부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꾸준히 나타나고, 그래서 이를테면 소나타 형식의 경과구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마치 새로운 주제가 나타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재현부는 제시부의 단순 반복이 아니라 제시부와 발전부의 음악적 논리가 전개된 결과로써 이음매 없이 등장한다.

세도막 형식으로 된 2악장과 3악장에서도 발전적 변주는 간소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소나타 형식으로 된 4악장에서 발전적 변주는 특히 리듬에 집중된다. 치밀한 음악적 논리가 이 모든 과정을 뒷받침한다.

2024년 4월 28일 일요일

페테르 외트뵈시: 스피킹 드럼스 (2012/2013)

‹스피킹 드럼스›는 타악기 협주곡이다. 그리고 제목이 시사하듯, 작곡가가 편성한 ’타악기’에는 사람의 목소리가 포함된다. 외트뵈시는 샨도르 뵈레시의 헝가리어 시와 산스크리트어 시를 뵈레시가 헝가리식 발음으로 음차한 시 등을 ’가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 시들은 의미보다는 말소리 그 자체가 핵심이며, 특히 ‹스피킹 드럼스›에서 사용된 시구(詩句)들은 타악기 소리의 일부로 승화한다. 이에 관해 음악학자 하바쿡 트라버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작품에서는 곡예에 가까운 악기 연주와 악기처럼 사용한 목소리 등이 무대에서 펼쳐지며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낸다. 이것은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음악이다. 단어가, 단어의 파편이, 말소리 또는 외침소리 등이 음악을 이루고, 마치 요술봉을 휘두른 것처럼 그것이 변화해 기악 음악의 일부가 된다. 북을 비롯한 여러 타악기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고대 인도에서 타악기와 언어를 결합해 소통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과 비슷하다. 감상자는 가장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들게 되며, 한편으로는 예술적 탐구심과 실험정신과 기량을 충분히 갖춘 작곡가만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음악적 아이디어가 이 작품에 가득하다.”

Péter Eötvös: Speaking Drums (2012/2013)

‹Speaking Drums› is a percussion concerto. As implied by the title, the composer incorporated human voices into the percussion arrangement. Eötvös utilized verses from Hungarian poems by Sándor Weöres and an ancient Sanskrit poem, which Weöres transcribed into Hungarian phonetic pronunciation. However, these poems prioritize the phonetic sound over their meanings, and the syllables used in ‹Speaking Drums› seamlessly merge with the percussion sounds. Musicologist Habakuk Traber elaborated on this aspect as follows:

“What unfolds on stage in terms of instrumental acrobatics and vocal artistry mobilizes all emotional responses. It unfolds with a dance-like quality; words and fragments of words, spoken or shouted, function as music, transforming themselves, as if touched by a magic wand, into instrumental sounds. Drums and other percussion instruments begin to speak, much like in ancient Indian culture, where percussion and language merged into a form of communication. As a listener, one is drawn into a game that is as entertaining as good entertainment can be, and at the same time, it is rich in musical ideas that only a composer with deepening artistic curiosity, experience, and skill can conceive.”

2024년 4월 26일 금요일

마르크앙드레 달바비: 플루트 협주곡 (2006/2024)

맑음과 투명함이 이 협주곡 전체를 지배한다. 오케스트라는 모차르트 양식을 따르고, 목관악기는 2관 편성으로 현악기보다 비교적 숫자가 줄었다. 교향악적인 오케스트라는 과도한 다이내믹을 의도적으로 피하게끔 소리를 빚는다. 독주 악기의 기교는 남용되지 않으며, 작곡가는 독주 플루트를 돋보이게 하기보다 오케스트라와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의도했다. 그 결과, 독주자를 우위에 두며 오케스트라를 반주에 그치게 하고 싶은 유혹은 협주곡이라는 장르의 기본 개념, 즉 독주자와 앙상블의 진실한 소통에 자리를 내어 주게 된다. 이 작품에서 독주 플루트와 오케스트라 사이에 가능한 모든 관계가 시도되었고, 때로는 이질적인 표현까지도 포용된다.

이 작품은 작곡가가 협주곡 장르로 그간 작곡했던 곡들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이보다 앞선 예로 ‹바이올린 협주곡›과 ‹통일 우주의 꿈›(The Dream of Unified Space; 악기군을 공간적으로 배치한 협주곡) 등이 있다. 단악장 작품인 ‹플루트 협주곡›은 마르크앙드레 달바비가 여러 해 동안 몰두해 온 개념인 ‘공명’(résonance)에 관해 탐구하는 작품이다. 오케스트라 전체와 독주자가 함께 연주하는 첫 음의 개시로 공명의 초기 조건이 형성되고, 이것이 작품의 출발점이 된다. 이 공명으로부터 독주 파트가 탄생하고, 이로써 작품 전체가 전개되게끔 하는 시(時)적이고 기술적인 원칙이 확립된다. 관현악법 측면에서 작곡가는 기교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둔다. 작곡가는 화성 및 음색을 완전히 개방적인 언어로 유지하며 그로부터 뽑아낸 소리의 팔레트로 악기군 사이의 섬세한 일관성을 만든다.

이 작품은 에마뉘엘 파위 협연, 데이비드 진먼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로 2006년 10월 5일 초연되었으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및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의 위촉으로 작곡되었다. (글: 비요도 출판사)

Marc-André Dalbavie: Flute Concerto (2006/2024)

Clarity and transparency dominate the discourse in this concerto. The orchestra follows a Mozartian style, with a reduced wind section compared to the strings, and the woodwinds in pairs. The symphonic orchestra is deliberately shaped to avoid overpowering dynamics. The virtuosity of the solo writing is restrained, as the composer’s intention was to explore the interplay between the flute and the orchestra rather than emphasizing solo dominance. Consequently, the temptation to showcase the soloist above an orchestra relegated to mere accompaniment has given way to a more fundamental conception of the concerto genre – a genuine dialogue between the soloist and the ensemble. Thus, all relationships between the solo flute and the orchestra are explored, including occasional heterogeneity of expression.

This work follows the composer’s contributions to the concerto genre, including the ‹Concerto for Violin› or ‹The Dream of Unified Space› (a concerto for spatially arranged instrumental groups). Comprising a single movement, the ‹Flute Concerto› delves into the concept of resonance – a notion that has been central to Marc-André Dalbavie’s work for many years. The initial attack, articulated by both the entire orchestra and the soloist, sets the discourse in motion by creating conditions for an initial resonance. This resonance immediately gives birth to the solo part and establishes a principle – both poetic and technical – that unfolds throughout the composition. In terms of orchestration, virtuosity is intentionally kept at a distance. The composer carefully weaves subtle correspondences between instrument sections, working with colors derived from timbre as well as harmony – a language that remains entirely open.

Premiere on October 5, 2006, at the Berlin Philharmonie, performed by Emmanuel Pahud (flute) and the Berliner Philharmoniker, conducted by David Zinman. Commissioned by the Berlin Philharmonie and the Tonhalle Zürich. (Éditions Billaudot)

2024년 4월 25일 목요일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예전에 썼던 글의 문체를 바꿔서 새로 쓰고 영문 번역을 추가함.


“[…] 오케스트라 전체를 감싸는 촘촘한 그물을 형성하며 매 순간 그 구조를 결정한다. […] 이러한 그물은 베토벤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과 한 가지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균형 잡힌 선율적 악절보다는 모티프의 논리에 의해 음악 형식이 이루어진다.”

음악학자 카를 달하우스가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v)를 설명한 말이다. 특정한 음악으로 인물·사건·감정 등을 떠올리게 하는 기법은 요즘에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곧잘 쓰인다. 이것을 흔히 ’라이트모티프’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연상작용만으로 라이트모티프라 할 수는 없다. 달하우스가 설명한 것은 주제를 발전시키는 방법이고, 결국 베토벤 음악 어법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엮여 있다.

라이트모티프에서 ’드라마’를 빼고 나면 세자르 프랑크가 사용한 주제 발전 기법이 된다. 주제 선율의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그물망처럼 엮어 바꿔나가면, 듣는 사람이 인지할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달라진 선율과 리듬이 자꾸만 되풀이되면서 음악의 뼈대가 형성된다. 바그너는 사실 리스트가 사용한 기법을 받아들였고, 프랑크는 리스트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기법을 개발했다. 소수 의견이지만 리스트보다 프랑크가 먼저라는 주장도 있다.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는 이런 음악 어법이 원숙한 형태로 나타나는 작품으로, 1악장에 나오는 주제 선율이 다른 악장에서 달라진 모습으로 되풀이된다. 서늘하고 쓸쓸한 바이올린 소리와 두텁게 쌓인 화음으로 신비롭게 들리는 피아노 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 악장의 즐거운 돌림노래가 백미다.

C. Franck: Violin Sonata in A major

“[…] form a dense web spread over the whole of the orchestral setting, determining its structure at any given moment. […] this web has one fundamental feature in common with thematic manipulation as practiced by Beethoven: both establish a type of musical form that emerges from motivic logic rather than residing in a balance of melodic periods.”

These words describe Wagner’s use of leitmotif, a technique of associating specific musical motifs with characters, events, or emotions, as explained by musicologist Carl Dahlhaus. This technique is widely used in modern media, such as television shows, to create thematic continuity and recall. However, leitmotif is more than just a mnemonic device; it is also a method of developing themes, which relates to the question of how to inherit Beethoven’s musical legacy.

When we strip away the dramatic elements of leitmotif, we uncover César Franck’s technique of theme development. Franck places the original theme’s melody at the core, weaving surrounding elements around it like a web. Gradual alterations to the melody and rhythm, while still retaining familiarity, create a backbone for the music. Interestingly, Wagner borrowed the technique from Liszt, around the same time Franck was also exploring similar methods. There is a minority view that Franck preceded Liszt in this regard.

Franck’s Violin Sonata serves as a testament to these musical techniques, showcasing a matured style where the thematic melody introduced in the first movement undergoes alterations in subsequent movements. The chilly and melancholic sound of the violin, the mysterious resonance of the piano, and the exuberant canon in the final movement collectively contribute to its allure.

2024년 4월 24일 수요일

베아트 푸러: 흔적(spur)

흔적, 발자취, 실마리 등을 뜻하는 독일어 ’Spur’는 때로는 어떤 악곡에서 반복되는 주제나 모티프를 뜻하기도 한다. 이것은 변화 없이 반복되거나 안정적이고 제한적인 변형만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변형 과정을 거친다.

‹spur›는 베아트 푸러가 음악적 아이디어를 변형시키는 기법을 뜻하는 제목이라 할 수 있으며, 독일어에서 명사가 대문자로 시작하는 것과 달리 작곡가가 제목을 소문자로 시작하게끔 한 까닭 또한 감상자가 그것을 단순히 ’흔적’을 뜻하는 일반명사로 이해하지 않게끔 하려는 의도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즐기기 위해 감상자에게 필요한 것은 작품에서 불분명한 음으로 반복되는 음악적 아이디어 또는 제스처가 어떤 흔적을 남기며 변형되는지에 집중하고, 그 발자취를 따라가며 변화하는 색채감과 개별 흔적들이 뒤섞이며 만드는 새로운 음향을 즐기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푸러는 이 작품에 관해 “같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순환하지만, 그 아이디어가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Beat Furrer: spur für klavier und streichquartett (1998)

Spur, a German term meaning trace, track, or clue, also connotes a motif or theme recurring throughout a musical composition. Rather than repeating without change or undergoing stable variations, it undergoes dynamic variations and transformations.

‹spur› can be interpreted as a designation for the technique of transforming musical ideas by Beat Furrer. The decision by the author to begin the title with a lowercase letter, which deviates from the German convention of capitalizing nouns, may be intended to prevent it from being perceived merely as a common noun meaning “trace.”

What the listener needs to enjoy this work is to focus on how the recurring musical idea or gesture, characterized by ambiguous notes, leaves a trace and transforms. They can also enjoy the changing timbre as they follow these traces, as well as the sonic texture produced when multiple traces are interlaced. Furrer explained, “It centers around the same idea, but one can observe it taking a completely new dir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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