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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1일 월요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그녀는 자신의 혀와 손에서 하얗게 뽑아져나오는 거미줄 같은 문장들이 수치스러웠다. 토하고 싶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 한강, ‹희랍어 시간› 중

“나는 무기력으로 마비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어떤 것에서도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 하루의 절반이나 소파에 누워 망가진 내 삶을 한탄하며 보낼 뿐이었다.”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제1번› 초연이 대실패로 끝난 뒤 깊은 우울증과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그는 약 3년 동안 단 한 음도 작곡하지 못하는 창작적 공백기를 겪었다. 이후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박사의 최면 치료를 통해 다시 창작에 나설 수 있었고, 그 결실로 탄생한 작품이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다. 이 작품은 라흐마니노프가 달 박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헌정한 곡으로, 그의 음악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었다.

이 작품은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의 조성인 c단조로 되어 있다. 베토벤 작품 속에 운명에 맞서 투쟁하는 인간이 있다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에는 절망과 우울을 견디고 회복하는 인간이 있다. 제1악장에서 작곡가는 서럽게 흐르는 선율 속에서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듯한 음악적 서사를 담았고, 제2악장에서는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선율과 화음 속에 마치 고통이 도취적 쾌락으로 승화하는 듯한 멜랑콜리가 돋보인다. 제3악장에서는 화려한 춤곡이 절망의 찌꺼기를 조금씩 떨쳐 내며 질주한다.

이 작품은 라흐마니노프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다. 또한 에릭 카멘(Eric Carmen)의 ‹All by Myself›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Full Moon and Empty Arms› 등 대중음악에 사용되었고, 권형진 감독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와 일본 TV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등장인물이 이 곡을 연주하여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S.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Spun out white as spider’s silk from her tongue and by her hand, those sentences were shameful. She wanted to vomit. She wanted to scream.” – Han Kang, ‹The Greek Lessons›

“I was paralyzed with lethargy. I did nothing and found no pleasure in anything. I spent half of the day lying on the couch lamenting my ruined life.” – Sergei Rachmaninov

After the disastrous premiere of his ‹Symphony No. 1›, Rachmaninov fell into a deep depression and creative slump. For about three years, he was unable to compose a single note, enduring a period of profound creative stagnation. It was only through the hypnotherapy sessions of Dr. Nikolai Dahl that he regained his ability to create. The result of this recovery was his ‹Piano Concerto No. 2›, a work he dedicated to Dr. Dahl in gratitude. This composition marked a pivotal turning point in Rachmaninov’s musical career.

The concerto is set in the key of C minor, the same key as Beethoven’s ‹Symphony No. 5›. While Beethoven’s work portrays the human struggle against fate, Rachmaninov’s concerto reflects a journey of enduring and transcending despair and depression. In the first movement, the composer weaves a narrative in which a human seems to take arduous steps through sorrowful melodies. The second movement is characterized by a bittersweet melancholy, where the music seems to transform suffering into a numb euphoric transcendence. The third movement bursts into a dazzling dance, shedding the remnants of despair as it races toward a triumphant conclusion.

This work is among the most celebrated pieces in Rachmaninov’s oeuvre. Additionally, it has found a lasting presence in popular culture, resulting in derivative pieces such as Eric Carmen’s ‹All by Myself› and Frank Sinatra’s ‹Full Moon and Empty Arms›. It has also featured prominently in films such as ‹For Horowitz› (directed by Hyung-jin Kwon) and the Japanese TV drama ‹Nodame Cantabile›, where characters perform this iconic piece, further cementing its widespread appeal.

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인터뷰] 피아니스트 박종훈 ― ①

글: 김원철 · 정리: 박희은

피아니스트 박종훈. 라자르 베르만 사사. KBS 1FM 〈가정음악〉 진행. 재즈나 크로스오버(crossover) 음악 쪽에도 이름이 알려짐.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이런 단편적인 것들이었다. 그런데 박종훈이 이번에 경기필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박종훈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궁금했다. 직접 만나러 갔다.

인터뷰는 2011년 8월 26일 오전 10시부터 약 1시간 20분동안, 박종훈 자택 겸 사무실에서 있었다. 매니저 없이 박종훈 혼자 인터뷰에 참석했고, 경기필에서는 김원철과 박희은이 참석했다.

첫 인상은 딱 이 모습이었다. 낮고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

그런데… 김원철은 말하기 창피한 이유로 약속 시간에 15분쯤 늦었다. 그래서 박희은 씨가 먼저 가서 사진을 찍고, 희은 씨가 생각해 놓은 질문 거리 위주로 인터뷰를 먼저 진행했다. 이 글은 짜임새가 자연스럽도록 내용을 질문 순서에 맞게 편집한 것이다.

김원철: 아, (질문지를 희은 씨가) 인쇄까지 해왔으니까 이거 보고 하면 되겠네. 이거 다 보셨어요?
박종훈: 아뇨, 안봤어요. (웃음)
김원철: 미리 보면 재미가 없어요. 이거 깜짝 질문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웃음)
박희은: 아, 그 깜짝 질문은 제가 뺐어요.

(질문 내용을 스마트폰에 담아 왔는데, 이미 진행된 질문이 표시된 종이를 보면서 하면 편하겠다는 얘기. 그런데 박종훈 씨가 질문지를 미리 봤을까 봐 걱정했다. 미리 보고 각본대로 하면 재미가 없다.)

김원철: 음, 제가 이 자리에 없었으니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할지, 그런 걸 조금 말씀해주시면…

(이 질문을 희은 씨가 먼저 했다.)

박종훈: 아, 그거는… 글쎄요. (웃음)
박희은: 워낙 또 유명한 곡이라…
박종훈: 그쵸. 근데, 그… 제가 또 러시아 선생님한테 배워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박종훈은 라자르 베르만을 사사했다.)

화려함 속에 숨은 끈적끈적한 러시아 분위기 살려야

박종훈: 러시아 사람들은 되게 자부심이 있어요. 그래서 러시아 작곡가들이 쓴 곡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제대로 연주하기 힘들다라고 항상 얘기를 해요. 근데 그거를 첨에는 기분이 나빴는데, 좀 일리가 있는게 그… 옛날에 한번 연주하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는데, 굉장히 어둡고 추우면서도 뭔가 이… 끈적끈적하고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근데 그건 거기서 사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게 있을 거 같더라고요. 근데… 뭐 제가 러시아 사람은 아니니까 100%는 힘들겠지만, 음…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부분들을 좀 해소를 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박희은: 어떤 오해를?
박종훈: 러시아 음악, 차이콥스키도 그렇고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물론 화려하지만 화려한게 가장 중요한 건 아니거든요. 화려함 내면에 숨어있는 그 러시아 특유의 우수적인 그런 거 있잖아요. 그거를 표현하고 싶어요. 될지 안 될진 잘 모르겠어요.

(조금 더 구체적인 해석 방향을 캐물었다.)

김원철: 음, 시간이 없으니까, 이거 빡센 것부터 빨리빨리…
다함께: 하하하…
김원철: 어떻게 해석할지 좀 더 구체적으로, 페달은 많이 쓰는게 좋은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
박종훈: 하하, 그런 쪽으로.
김원철: 왜냐면 그게, 라흐마니노프가 페달을 많이 안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때문에 또 어떤 평론가는 '청교도 피아니스트'라는 말도 했는데, 이게 또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런 것도 아닐 수도 있거든요.

(많고 적고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다. 라흐마니노프 시대와 오늘날은 역사적 맥락이 다르므로, 라흐마니노프가 페달을 적게 썼다는 말을 요즘 기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박종훈: 페달은… 가장 중요한 건 홀(연주회장)인 것 같아요.
다함께: 아!
박종훈: 예, 홀. 그게 사실은 어쿠스틱이 관련된 거니까, 울리는… 예술의 전당에서 독주회를 한다, 그러면 페달을 많이 못 써요.
김원철: 그렇죠. 음.
박종훈: 페달을 많이 밟고 빠른 패시지(passage; 악절 또는 악구)를 연주하면 아무것도 안 들려요. 근데 안 울리는 곳에서 연주할 때 굉장히 드라이하게(건조하게) 들릴 수 있죠. 그래서 그거는 모르겠어요. 음악적인 것보다는 홀에 따라서 좀 달라지는…

(그리고리 소콜로프가 생각났다. 연주회장 음향에 따라, 연주하는 피아노의 기계적 특성에 따라 연주법을 달리 한다는 대단한 연주자. 그런데 생각해 보니 박종훈은 음반 프로듀서이기도 하니까, 음향에 대해 전문적으로 이해하고 연주에 반영하는 일이 당연하다.)

김원철: 고양에서 한 번 연주해 보셨어요? 아람누리에서.
박종훈: 기억이 안 나요. 했는지 안 했는지.
김원철: 그러면, 루바토는 어떻게, 어느 만큼 쓰는게 좋은 것 같아요?

(※ 루바토: 박자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하는 연주법이나 창법.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인용.)

박종훈: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는 제가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연주한 것도 많이 들어봤는데, 음… 하는 곳에선 많이 하고 전반적으로는 많이 안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근데 그건 또 그 사람의 루바토니까 그걸 따라할 필요는 없는 거죠.
김원철: 그렇죠.

▲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협연한 녹음. 스토콥스키 지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1929년.

박종훈: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음악을 연주할 때 루바토라든가 뭐… 악보에 있지 않은 거를 한다는 거는 2차적이라고 생각해요.
김원철: 2차적이라는 말은 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아니면은…
박종훈: 2차적인거죠. 1차적인거는 음… 좋은 곡이 있잖아요. 좋은 곡은, 음악적으로·연주적으로 접근했을 때, 좋은 곡이라는 거는 누가 쳐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 연주가 좋다는 거는, 그 사람의 연주가 좋은 거지. 그래서 물론 표현이 더 잘되고 음악에 담겨 있는 거를 더 많이 끄집어내는 건데, 쇼팽도 그렇고 리스트도 그렇고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굉장히 낭만적인 곡들을 보면 루바토를 많이 하게 되잖아요? 근데… (한 동안 침묵) 스타일적인 요소에서 하는 루바토가 있어요. 그거는 스타일도 그렇고 꼭 루바토를 거기서 해야만 감정이 표현이 되는 게 아니고, 거기서 루바토를 하는 것이 그 시대 그 음악의 스타일이기 때문에 더 적합한 그런 부분이고, 그게 아닌데 연주자가 감정에 몰입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근데 저는 그 루바토를 통해서 음악을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매우 조심스러운 말투, 원론적이고 무난한 답변이다. 작품 해석을 묻는 질문에는 조심스럽게 답할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만족스러운 답변이 나올 때까지 좀 더 캐물어 봤다.)

김원철: 음, 그건… 일반적인 말씀을 해주셨고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는 루바토를 많이 쓰는게 좋을까요, 조금 쓰는게 좋을까요.
박종훈: 그건 모르죠. (웃음) 어떤게 좋은지 모르는데, 저는 많이 안 쓰…는 편이에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답했다. 그렇다면, 루바토를 빼놓더라도, 연주에 자의적인 해석이 어디까지 허용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김원철: 그러면요, 아까 악보에 없는 얘기, 그런 얘기도 하셨지만… 도입부에 화음 나오고… 그 부분만 보더라도, ○○○ 같은 사람은 악보대로 안 하고 아르페지오를 쓴단 말이에요.

(아르페지오=펼침화음 : 화음을 이루는 각 음들을 한꺼번에 소리 내지 않고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또는 오르내리는 꼴로 내도록 한 화음. 『표준국어대사전』)

박종훈: 아, 그 사람은 손이 작아서 그래요.
박희은: 하하하…
김원철: 아, 그런 거예요? 아~ 그렇구나! 어허허, 그런…
박종훈: 그거는 절대, 손이 크면 아르페지오를 쓰면 안돼요.
박희은: 선생님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닿으세요?
김원철: 난 옥타브를 겨우 짚는데. 흐흐…
박종훈: 도에서 미. 근데 저는, 그거는 아르페지오 안 쳐도 돼요. 그 정도는 닿는데, ○○○도 손이 컸으면 안 했을 거예요. 그거는 모든 피아니스트가 다 손이 크냐 작으냐의 문제지. (웃음)
김원철: 손이 만약에 웬만큼 큰데도 이거는… 연주자가 아르페지오로 하면 더 멋있겠다… 악보에 없는 거를 했을 때, 그게 음악적 맥락에 따라 용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박종훈: 그거는 자기 맘이죠. 평가는 딴 사람이 하는거고.

(루바토를 적게 쓰는 일과는 다른 문제다. 재즈 연주도 곧잘 하는 연주자라면 이런 대답이 자연스럽다.)

김원철: 그렇군요. 음… 그러면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러시아 작곡가들은 음악에 종소리를 표현하려고 그러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 작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도 종소리를 모방한 그런 게 많이 나오고. 그런데 러시아 종소리가 유럽에 있는 그런 종이랑, 우리가 생각하는 거랑 많이 다른 모양이더라고요. 혹시 러시아에서 직접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박종훈: 저는 그건 못 들어봤어요. 근데 저는 이탈리아에서 오래 살아서 종소리는 매일 매일 듣거든요? 근데 그 종소리라는 게 굉장히 특별한 것 같아요. 그니까 내가 여기 있다는 거를 되게 각인시켜준다 그럴까? 그냥 다른데서는 안듣는 소리를 매일 들으니까 일상적인 건데, 어… 되게 아름다워요. 녹음할 땐 좀 짜증 나는데… (웃음) 그렇긴 한데, 그거를 그냥 영상 없이 들을 때랑 음악에서 다시 표현한다고 생각했을 때, 그 느낌을 매일 매일 들었던 사람이랑 안 들었던 사람이랑은 다른 거죠.

김원철: 제가 이 질문을 왜 드렸냐면요, 러시아의 종은… 유럽은 종이 하나가 땡땡 치는 형태지만 러시아의 종은 여러 개고 크기도 제각각이고 그거를 온몸으로 막 연주를 한대요.

박종훈: 아, 다 그래요 이태리도 그래요.
김원철: 어디도 그렇다고요?
박종훈: 이태리도 그래요 대부분 다 그래요.
김원철: 어, 유럽이 그렇단 얘기는… 그게 왜 그… 어디서 특별히 다르냐면은, 그게 종소리가 여러 군데 온 몸으로 쳤을 때, 그게 말하자면 리듬의 헤테로포니, 막 이런 그…

(질문자, 당황했다.)

박종훈: 예. 그게 독일도 그렇고 스페인도 그렇구 이태리도 그렇구.
김원철: 어, 그렇군요. 난 안그렇다고 들었는데, 잘못 알았나.
박종훈: 근데 더, 더 심하겠죠. 뭐 더 심하니까 그렇게 얘기하겠죠.
김원철: 그런 음향적인 특징을… 음향적인 측면을 제일 잘 살린 거는 스트라빈스키 같은데, 라흐마니노프도 조금 그런… 이 작품만 들어 봐도 그런 게 찾아보면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그래서 그런 걸 생각을 해보셨나 궁금해서 물어봤던 거고요.

(생각해 보면, 문화적인 차이가 지역 경계선을 따라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터, 책만 읽어서 편견이 생겼던 모양이다.)


▲ 박종훈이 유학했던 이몰라 피아노 아카데미 가까이 있는 볼로냐 산피에트로 성당 종소리

▲ 라흐마니노프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 근처 노브고로드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 종소리

1악장 마지막 화음 셋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해요

김원철: 이 작품에서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딘가요?
박종훈: 하하… (고민하는 표정.)
김원철: 딱 한 군데만.
박종훈: 제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요, 1악장 젤 마지막에 딴딴딴! 하고 끝날 때 딴딴, 요거를 피아노만 쳐요. 같이 딴딴딴! 하는게 아니라 빰딴빰! 이렇게… 거기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해요.
박희은: 오!
김원철: 아, 그렇군요.
박종훈: 아무도 그렇게 쓴 적 없어요 다른 작곡가들은.
김원철: 생각해보니 굉장히 멋있습니다.


▲ 루간스키 협연, 오라모 지휘,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 ©Warner Classics

김원철: 저는 일단 깨부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알라 마르시아'(alla Marcia; 행진곡풍으로) 꽝 꽝꽝…
다함께: (웃음)

©Warner Classics

김원철: 작품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요. 음… 프로필을 보니까는 재즈도 하시고 라디오 방송도 많이 하시고, 클래식 말고 다른 것도 하셨다는 점에서는 구자범 선생님이랑도, 뭐 좀 억지로 말하자면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구자범 선생님이랑 전에 한 번 협연을 해본 적이 있나요?
박종훈: 아니요. 첨이에요. 말씀은 정말 많이 들었는데,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김원철: 구자범 선생님이 어떻다더라, 하고 소문을 들은게 있다면?
박종훈: 아뇨, 뛰어난 지휘자라는… 예, 특별하다.
김원철: 너무 아부만 하시는데.
다함께: (웃음)
박종훈: 아 제가 정말… 그런 얘기밖에 못 들었어요.
김원철: 오… 일단 좋은 소리만 들려오고 있군요. 음…

※ 이어지는 이야기:

▶ 어렸을 때 피아노 치고 놀았고, 바이올린은 싫어했어요
▶ 슬럼프로 힘들었던 줄리어드 유학 시절
▶ 줄리어드와 면도칼 괴담
▶ 라자르 베르만에게 배운 것들
▶ 라자르 베르만 선생님 돌아가실 때
▶ 박종훈의 사랑 이야기
▶ 박종훈의 첫사랑
▶ 박종훈이 부부싸움을 하면?
▶ 힘을 빼야 하느니라
▶ 인기를 얻으려면 콩쿠르 우승보다 ○○○를?
▶ 행운의 지갑?
▶ 크로스오버 음악에 도전하게 된 사연
▶ 리스트 음악이 체질에 맞아
▶ 음반 프로듀서 박종훈
▶ 라디오 진행자 박종훈
▶ 음악가가 되지 않았다면
▶ 루비스폴카, 강아지가 팔짝!

― 티켓 예매 ―

고양아람누리
http://www.artgy.or.kr/PF/PF0201V.aspx?showid=0000003323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MN=Y&GoodsCode=11010067

☞ [인터뷰] 피아니스트 박종훈 ― ②

2011년 8월 25일 목요일

지친 여름이 애수에 잠기는 9월, 《가을, 그리고 저녁》 연주회

정원이 탄식하고 있다.
차가운 빗방울이 꽃잎 속으로 떨어진다.
자신의 마지막을 향하여
여름은 조용히 몸서리친다.

황금빛으로 물든 잎 위에 또다른 잎이
높다란 아카시아 나무에서 떨어진다.
여름은 놀라고 지친 표정으로
한때 정원이었던 죽어가는 꿈을 향해 미소짓는다.

오랫동안 장미꽃 옆에 우두커니 머물러선 채로
여름은 휴식을 그리워한다.
여름은 지친 두 눈을
천천히 내려감는다.

― 헤르만 헤세, 「9월」 (장철환 옮김)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 헤르만 헤세는 죽음을 노래했습니다. 독일의 9월은 한국보다 좀 더 춥고 쓸쓸하다지만, 9월 24일이면 한국에서도 제법 찬바람이 불어오고 낙엽이 지겠지요. 이런 날,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를 들으며 애수에 잠겨 보면 어떨까요?

이번 《가을, 그리고 저녁》 연주회에서는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을 연주합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이 연주되는 이번 음악회는 가을을 맞아 애수에 잠길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될 것입니다.

서곡으로 장식될 ‘클라우스 아르프(Klaus Arp) ― 《추억》(Mémoire)’ 역시 멜랑콜리한 가을 저녁의 정서에 어울리는 작품이며 현대곡이면서도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될 수 있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작곡자 ‘클라우스 아르프’는 구자범 지휘자의 스승이기도 하며 《추억》(Mémoire)은 국내초연으로서 몽환적인 분위기의 선율 속에서 화려한 플롯 솔로가 돋보이는 곡입니다.

"가을, 그리고 저녁"

  • 2011년 9월 24일 토요일
  •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 만 7세 이상 입장가
  • 입장권: VIP 6만원 / R석 4만원 / S석 3만원 / A석 2만원 / B석 1만원
  • 할인: 장애우, 국가유공자, 학생 50% / Art plus 골드회원 40% / Art plus 일반회원, i-Plus카드 30% / KB, BC, 신한, 현대, 삼성카드, 고양문화재단, 인터파크 유료회원 20% / ‘문화 데이트’ 신청은 경기필 사무실에 문의

프로그램

  • 아르프, »Mémoire (추억)« für Flöte und Orchester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작품 18 (협연: 박종훈)
  •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작품 74, 《비창》 »Pathétique«

아르프 ― »Mémoire (추억)« für Flöte und Orchester

클라우스 아르프(Klaus Arp)는 독일 작곡가 · 지휘자이며 구자범 지휘자의 스승이기도 하다. 이번 연주회에서 국내 초연되는 《추억》(Mémoire)은 감성적인 미니멀리즘 기법을 사용한 몽환적인 작품으로, 넘실거리는 오케스트라와 화려한 플루트 독주 선율이 돋보이는 곡이다. 김일지 플루트 수석이 독주 선율을 연주한다.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작품 18

라흐마니노프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며, 이 가운데 2악장은 에릭 카멘(Eric Carmen)이 부른 〈All by Myself〉에 인용되는 등 대중음악에도 곧잘 쓰였다. 또한 권형진 감독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고, 일본 TV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제6화에서는 주인공 치아키가 이 곡을 연주한다.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 초연 때 혹평을 받고 나서 우울증과 슬럼프에 시달리다가 완쾌한 뒤인 1900년부터 1901년 사이에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했으며, 치료를 맡은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박사에게 작품을 헌정했다.

이 곡은 애수 가득한 분위기와는 달리 연주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곡이며, 한 손으로 온음 9개 간격을 눌러야 하는 등 손이 작은 사람은 연주할 수 없는 곡으로 악명 높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피아니스트 박종훈이 협연을 맡는다.

차이콥스키 ― 교향곡 6번 b단조 작품 74, "비창"

차이콥스키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교향곡이며, 그가 사망하기 9일 앞선 1893년 10월 28일 초연되었다. 이 곡은 앞서 발표된 교향곡과 달리 절망과 체념, 죽음의 정서로 가득한 가운데 쓸쓸히 끝난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에 표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으나 실제로 알려진 것은 없으며,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Richard Taruskin, b1945)은 이것을 "자살 유서와 같은 교향곡"("symphony as suicide note")이라 했다. (차이콥스키 공식 사인은 콜레라이다.)

이 곡에 '숨은 표제'의 의미와 관련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차이콥스키는 동성애 의혹이 있었고, 이것이 문제가 되자 명예로운 자살을 강요받았다는 정황증거가 있다. 이 곡은 동성애 의혹과 관련 있는 조카 블라디미르 다비도프에게 헌정되었다.

둘째, 차이콥스키가 죽기 세 해 앞서 여동생이 죽고,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과 서신 교류와 경제적 지원이 끊겼다. 폰 메크 부인은 장남이 불치병에 걸린데다 부인 자신도 건강이 악화되어 프랑스로 요양을 났는데, 차이콥스키는 그러한 사정을 몰라 큰 상실감을 느꼈다.

셋째, 당시 러시아 사람들이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던 사회상과 관련이 있다는 설이 있다. 차이콥스키는 "오늘날 우리가 겪는 이 비참한 시대에는 오직 예술만이 이 무겁고 숨막히는 현실에서 주의를 돌려줄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협연자 : 피아니스트 박종훈

이탈리아 산레모 클래식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2000년)하며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박종훈은 이후 산레모 심포니와 협연한 갈라 콘서트, 첼리스트 비토리오 체칸티와 함께 한 베토벤 콘서트(로마)가 RAI 이탈리아 국영 방송국에 의해 이탈리아 전국 생방송되기도 하였다. 서울시향, KBS 교향악단을 비롯해서 국내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정기적으로 협연 무대를 가져 왔으며 상 페테르부르그 심포니, 브루노 심포니, 슬로박 필하모닉, 아카데미아 필라르모니치 디 베로나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 하였다. 세계 50여 개의 도시에서 독주, 실내악 연주를 해 왔으며 뉴욕 타임즈의 버나드 홀란드는 그의 연주에 대해 "놀라운 개성, 우아한 음악성" 이라고 평한 바 있다.

2010년 10월 현재, 총 5장의 클래식 앨범과 9장의 재즈/크로스오버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많은 음반에 프로듀서로도 참여해왔다. 2008년 클래식&재즈 레이블 <루비스폴카>를 설립, 실력있는 국내/외 아티스트들의 음반과 공연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2009년 한국인 연주자 최초로‘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 연주회’를 예술의전당에서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2010년에도 예술의전당 크로스오버 페스티벌(1월), 호암아트홀 박종훈의 러브레터(3월), 친절한 금희씨:모차르트에 빠지다(11월) 등 활발히 활동 중이다. 2009년 4월부터 1년간 KBS-1FM의 'FM가정음악'을 진행하였고 올 5월에는 아내인 피아니스트‘치하루 아이자와’와 함께 피아노 듀오 음반을 발표하였고, 12월에는 크리스 바가(드럼), 이순용(베이스)와 함께 크로스오버 음반과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노영심과‘크로스 더 피아노’공연을 열었다. 2011년 9월에는 리스트 앨범과 공연(서울LG아트센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세대 음대에서 이경숙, 줄리어드에서 세이모르 립킨, 이탈리아 이몰라 피아노 아카데미에서 거장 라자르 베르만을 사사하였다.

지휘자 : 구자범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 철학과 재학 중 도독
독일 만하임 음대 대학원 지휘과 졸업
독일 하겐 시립 오페라 극장, 다름슈타트 국립 오페라 극장 지휘자
하노버 국립 오페라 극장 수석 지휘자
광주 시립교향악단 지휘자
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 티켓 예매 ―

고양아람누리
http://www.artgy.or.kr/PF/PF0201V.aspx?showid=0000003323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MN=Y&GoodsCode=11010067

2009년 9월 2일 수요일

2008.12.04. 코다이 갈란타 춤곡 /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춤곡 - 발렌티나 리시차 / 제임스 저드 / 서울시향

2008년 12월 4일(목)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James Judd
협연자 : Valentina Lisitsa

Kodaly, Dances of Galanta
Grieg, Piano Concerto in a, Op. 16
Rachmaninoff, Symphonic Dances, Op. 45



악기는 보통 온도와 습도 변화에 민감하며 옛날 악기일수록 더하다. 이번 연주회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데다 미리 무대에 나와서 연습하는 관악기 연주자들이 평소보다 많아서 조금 걱정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코다이 <갈란타 춤곡>에서 호른이 일찌감치 큼지막한 실수를 하더니 플루트가 실수를 이어받고 다른 악기들도 영 제소리를 못 낸다. 지휘자의 해석은 나쁘지 않은 듯했고 뒤로 갈수록 차근차근 긴장감을 쌓아나가는 모습이 멋졌으나 실수가 너무 잦아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다 함께 헤매는 가운데 클라리넷 수석 연주자 혼자서 평소처럼 야무지게 연주해서 눈에 확 띄었으며 이 곡에서 가장 비중이 큰 악기가 클라리넷이라 더욱 돋보였다. 언젠가 밝힌 바 있듯이 글쓴이는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 씨 팬이다.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 발렌티나 리시차는 늘씬한 몸매를 보아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힘과 테크닉을 자랑했다. 무시무시한 트릴과 글리산도를 듣고 있자니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이 이렇게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었던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며, 글쓴이는 음악을 듣기보다는 테크닉을 듣고 있음을 여러 차례 깨닫곤 했다. 이것이야말로 리시차가 가진 장점이자 치명적인 단점이 아닐까. 리시차가 들려준 '음악'은 눈부신 테크닉만한 깊이는 없고 그저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그나마 테크닉에 가려버리곤 했다. 이렇게 음악이 아닌 '서커스'를 들려주어서야 듣는이가 받을 수 있는 감동이 얼마나 깊을지는 뻔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듣는 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테크닉이야말로 참된 고급 테크닉이 아닐까.

그러나 앙코르에서는 맘먹고 테크닉을 뽐내는 모습이 그것대로 좋았으며 '라 캄파넬라'를 아찔한 빠르기로 연주하는 것을 듣고는 할 말을 잃었다. 관객이 좋다꾸나 손뼉을 쳐주니 빼지도 않고 커튼콜 한 번에 한 곡씩 네 곡이나 연주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자 키신이냐!'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춤곡> 연주는 악기나 사람이나 이제 몸이 다 풀린 듯 다부졌다. 특히 1악장 중간에 나오는 그윽한 색소폰 선율과 그에 딸린 목관 앙상블이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이 곡에서 은근히 멋지게 나오는 베이스클라리넷도 작품 곳곳에서 돋보였다. 3악장 마디 235 이후 또는 1악장 마디 154 이후부터 긴 호흡으로 긴장감을 쌓아가는 대목이 매우 좋았고 때때로 알맞게 터트려주는 타악기 소리도 멋졌다.

금관도 제법 잘했으나 2악장 처음을 비롯해 금관끼리 화음을 만들어내는 대목에서 데크레셴도-크레셴도가 깔끔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2악장 마디 19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루바토로 부드럽게 시작하는 연주를 글쓴이는 싫어하는데, 이날 악장을 맡은 웨인 린(?)은 악보에 있는 음가 그대로 재빠르게 연주해서 썩 마음에 들었다. 다만, 음색이 좀 더 날카로웠으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지휘자 제임스 저드는 국내 악단이 데려올 수 있는 객원 지휘자 가운데 최상급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날 <교향적 춤곡> 해석도 매우 훌륭했으며, 그 가운데 2악장에 해석이 흥미로운 곳이 많았다. 군데군데 루바토를 쓰면서도 느슨해지지 않았고, 그런 가운데 콘트라베이스가 저음을 단단하게 찍어주어 슬프면서도 퇴폐적인 '슬라브 왈츠' 느낌을 잘 살렸다. 프레이즈를 새로 시작하는 곳에서 템포를 크게 떨어트렸다가 아첼레란도를 쓰곤 했던 대목도 참신했다.

2악장 마디 119와 이어지는 대목에서 테누토와 헤어핀(hairpin; <>)을 겹쳐놓은 곳은 보통 리테누토를 써서 템포를 조였다 풀었다 한다. 그러나 제임스 저드는 갑자기 템포를 너무 떨어트린 탓에 이곳에서 템포가 바뀌는 듯 마는 듯했다. '처음 빠르기로 돌아가 조금 덜 빠르게 A tempo poco meno mosso'라는 지시가 있기는 하지만 갑자기 너무 느려지니 지루한 느낌이 들었으며, 마디 47에서 악보에 없는 리테누토를 맛깔스럽게 쓴 일과 어울리지 않아 갸우뚱했다. 아마도 프레이즈를 새로 시작할 때 템포를 떨어뜨린 다음 아첼레란도 쓰는 일에 일관성을 두려고 그러지 않았나 싶었으나 이곳에서만큼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마디 169에서 템포를 떨어뜨렸다가 마디 171에서 다시 조이라는 지시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아첼레란도를 썼는데, 조금 느슨한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법 그럴싸했다.

3악장 마디 162에는 이상한 지시가 붙어 있다. '템포 바꾸지 말고, 그러나 서두르듯이 L'istesso tempo, ma agitato'라니, 템포를 바꾸란 말인가 말란 말인가. 음반을 들어보면 이 대목에서 갑자기 빨라지기도 하고 지루하게 늘어지기도 해서 제임스 저드는 어떻게 할지 관심 있게 들어보았다. 그랬더니 아주 살짝 빨라지는 듯싶었다. 아무래도 이게 정답이 아닐까.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9월 1일 화요일

2008.10.15. 스크리아빈 몽상 / 루토스와프스키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 올가 케른 / 제임스 드프리스트 / 서울시향

2008년 10월 15일(수)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James DePreist
협연자 : Olga Kern, pf

Scriabin, Reverie, Op. 24
Lutoslawski, Concerto for Orchestra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3 in d, Op. 30



쇤베르크가 현악 사중주 2번을 발표하면서 무조음악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때는 1908년이며, 12음 기법을 고안한 때는 1921년이다. 그 뒤로 많은 작곡가가 무조음악이 대세가 되어가는 과정에 뛰어들었고, 조성을 지키고자 하는 작곡가들은 조성이 뜻하는 바를 20세기에 맞게 새로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여전히 19세기 기능화성에 기대려고 했던 '수구적인' 작곡가도 있었으나 대부분 음악사 주변으로 밀려나 잊혀야만 했으며, 라흐마니노프는 그 가운데 드문 예외에 속한다.

스크리아빈의 <몽상 Rêverie>은 1898년 작품으로 조성음악 어법이 확장되어 갈 데까지 가버린 결과 무조음악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알게 해준다. 그런가 하면 루토스와프스키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12음 기법이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나서도 조성 안에서 으뜸음을 중심으로 하는 위계질서를 지키면서 19세기 양식과는 거리를 두려는 노력 끝에 작곡가들이 어떤 답을 얻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루토스와프스키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여러모로 그보다 10여 년 먼저 발표된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과 닮은꼴이다. 이를테면 조성음악 어법을 확장하고 리듬과 박절의 규칙성을 해체하면서 그 아이디어를 많은 부분 민속음악에서 빌려왔고, 선율과 리듬을 민속음악에서 따오기도 했다. 아치(arch) 형식은 버르토크가 즐겨 쓰던 것인데 루토스와프스키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1악장이 전형적인 아치 형식으로 되어 있다. 2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로 되어 있으나 대칭 구조가 아치 형식과 맞아떨어진다. 다만, 이번 연주회 제목이 <러시아 명곡 시리즈 III>이므로 헝가리 사람인 버르토크보다는 폴란드 사람인 루토스와프스키가 조금은 더 어울린다.

이 작품을 연주할 때 민속음악과 현대음악이 작품 속에서 상생하게 하는 일은 지휘자가 많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며, 억지로 균형을 맞추기보다는 지휘자마다 어느 한 쪽에 무게를 실어주는 게 보통이다. 서울시향을 지휘한 제임스 드프리스트는 굳이 따지자면 '현대음악' 쪽에 손을 들어준 듯하다. 노래하듯 자연스러우면서도 강약이 뚜렷한 리듬을 살리는 대신 음악이 기계적으로 흘러가도록 하면서 세부를 살리는데 더 신경 쓰는 듯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타악기 소리를 크게 앞세워 표정없이 차가운 음악이 되지 않도록 했다. 결과는 매우 훌륭했다. 객원 지휘자가 서울시향으로부터 이만한 소리를 뽑아냈다면 제임스 저드나 아릴 레머라이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모자람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딱 한 가지 아쉬운 곳을 말하자면 빠른 음형으로 정신없이 달리는 곳에서 까닭 없이 템포를 느리게 잡아 맥빠진 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를테면 2악장 스케르초는 악보에서 ♩= 172 속도로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있으나 서울시향은 ♩= 140 정도로 연주했고, 3악장 토카타에서는 악보에서 지시한 ♩♩= 112 대신 ♩♩= 105 정도로 템포를 잡았다. 아마도 지휘자가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짧은 시간에 연습을 끝내느라 함부로 속도를 내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곡은 글쓴이처럼 손이 작아서 옥타브를 겨우 짚는 사람은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기에 요즘 하는 말로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같다. 그 가운데서도 피아노 협주곡 3번 하면 짐승급 남성 연주자가 큼지막한 '앞발'로 건반을 쿵쿵 내리찍는 모습이 먼저 생각난다. 연주자는 큰 손과 힘, 그리고 눈부신 테크닉을 먼저 갖추어야 하며 작품 속에 담긴 애잔한 느낌을 살리는 일은 그다음이다.

그러나 올가 케른은 어떤가? 늘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에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공주님 같은 짙은 분홍색 드레스 차림으로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한단다. 그런데 놀랍게도 연주가 너무나 훌륭하다. 힘은 좀 모자라지만 작품을 감당 못할 만큼 작지는 않으며 생김새만큼 맑고 고운 음색과 우아한 프레이징으로 마치 쉬운 곡을 연주하듯 술술 소리를 풀어낸다. 작품 속에 담긴 광기와 '다크 포스'는 동화 속 공주님에게 닥친 어려움이 되어 이를 슬기롭게 이겨나가는 공주님을 돋보이게 한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이런 라흐마니노프도 있구나. 올가 케른은 이 곡으로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했단다.

템포는 제법 빨라서 우아하되 얌전 빼는 연주는 아니었으며 건반을 세게 두드려야 할 때에는 템포를 크게 늦추기도 했다. 3악장 시작 부분에서 이런 점이 매우 두드러졌는데, 협연자가 템포를 바짝 당기는 바람에 오케스트라가 놀라서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마디 30에서 마디 31로 넘어가는 단9도 글리산도에서는 협연자도 템포를 감당하지 못해 슬쩍 미끄러지다 말았다. 마디 39에서는 갑자기 템포를 크게 늦추어 건반을 힘껏 눌러가며 연주했는데 여기서부터 제1주제에서 제2주제로 넘어가는 경과구(transition)에 해당하므로 음악이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템포가 변화무쌍하지는 않았으며 느끼한 루바토를 쓰는 일도 없었다. 셈여림과 음색에서도 과장된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곱게 갈무리하여 부드러우면서도 시원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가녀린 몸매에 비해서 때때로 꽤 큰 소리를 내는 게 신기했으나 발끝까지 가리는 기다란 드레스를 보고 한 가지 짚이는 게 있었다. 다리를 뒤로 차올리듯 재빨리 구부려 종아리와 허벅지 사이에 의자 엉덩이 받침을 단단히 감싸면 그 반동으로 잠시나마 건반을 매우 세게 두드릴 수 있다. 힘이 모자란 연주자가 쓸 수 있는 편법이라 하겠으나 남이 보기에 몹시 볼썽사나워서 마치 우아한 백조가 물속에서는 요란하게 발을 움직이는 듯하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반드시 발목까지 가리는 드레스를 입고 써야 하며, 남자는 쓸 수 없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마 올가 케른도 이러려고 일부러 긴 드레스를 입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때문에 어디서 얼마만큼 페달을 밟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페달을 살짝살짝 쓰는 것 같은데 어찌 그런 신비로운 음색이 나오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연주가 끝나고 나서 정명훈 지휘로 명연주를 펼쳤을 때라야 들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매우 훌륭한 연주였지만 이만한 박수를 받을 만큼 잘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외모 덕을 만만치 않게 보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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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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