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 음악을 설명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다면성이다. 그의 음악에는 브람스적인 논리 구조와 바그너적인 마법의 순간이 공존하고, 음악에 담긴 정서에는 기쁨과 슬픔, 쾌락과 고통이 공존한다.
피아노 트리오 2번 e단조는 작곡가의 절친이었던 이반 이바노비치 솔레르틴스키를 추모하는 곡이다. 그는 쇼스타코비치의 벗이자 멘토였고, 쇼스타코비치가 구스타프 말러의 음악에 큰 영향을 받게끔 했던 인물이었으며, 작곡가가 1악장을 쓰던 중에 41세 나이로 사망했다.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제2차 세계대전과 나치 독일의 러시아 침공, 유대인 학살, 스탈린 시대 러시아의 억압적인 분위기 등 암울한 사회상이 있다. 이 작품은 스탈린 정권에 대한 저항으로 받아들여져 1848년부터 스탈린 사망 직후인 1953년까지 러시아에서 금지곡이 되었다.
이 작품의 드라마투르기는 벗의 안식을 기원하는 음악으로 보기 어려운 짜임새로 되어 있다. 1악장은 마치 유령이 허공을 떠도는 듯한 푸가토로 시작해 슬픔과 울분을 축적해 나간다. 2악장은 솔레르틴스키의 누이에 따르면 솔레르틴스키의 인간적 특징을 음악으로 풍자하고 있다. 그러나 음악에 담긴 냉소적인 태도는 그 이면에 냉소와 울분의 원인이 되는 다른 것들이 있음을 짐작게 한다.
3악장은 파사칼리아 풍의 침울한 장송행진곡이며,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장례식에서 이 음악이 연주되기도 했다. 휴지부 없이 곧바로 이어지는 4악장은 작곡가의 표현으로 “죽음과 절망의 춤”으로, 후반부에 앞선 악장들을 인용하는 대목은 벗을 그리워하는 작곡가의 술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4악장에는 유대인 전통 음악 양식이 사용되고 있는데, 그래서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비판 의식이 음악에 담겨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쇼스타코비치 자신은 유대인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음악에 나타나는 다면성이 유대인 음악의 영향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