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James DePreist
협연자 : Olga Kern, pf
Scriabin, Reverie, Op. 24
Lutoslawski, Concerto for Orchestra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3 in d, Op. 30
쇤베르크가 현악 사중주 2번을 발표하면서 무조음악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때는 1908년이며, 12음 기법을 고안한 때는 1921년이다. 그 뒤로 많은 작곡가가 무조음악이 대세가 되어가는 과정에 뛰어들었고, 조성을 지키고자 하는 작곡가들은 조성이 뜻하는 바를 20세기에 맞게 새로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여전히 19세기 기능화성에 기대려고 했던 '수구적인' 작곡가도 있었으나 대부분 음악사 주변으로 밀려나 잊혀야만 했으며, 라흐마니노프는 그 가운데 드문 예외에 속한다.
스크리아빈의 <몽상 Rêverie>은 1898년 작품으로 조성음악 어법이 확장되어 갈 데까지 가버린 결과 무조음악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알게 해준다. 그런가 하면 루토스와프스키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12음 기법이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나서도 조성 안에서 으뜸음을 중심으로 하는 위계질서를 지키면서 19세기 양식과는 거리를 두려는 노력 끝에 작곡가들이 어떤 답을 얻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루토스와프스키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여러모로 그보다 10여 년 먼저 발표된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과 닮은꼴이다. 이를테면 조성음악 어법을 확장하고 리듬과 박절의 규칙성을 해체하면서 그 아이디어를 많은 부분 민속음악에서 빌려왔고, 선율과 리듬을 민속음악에서 따오기도 했다. 아치(arch) 형식은 버르토크가 즐겨 쓰던 것인데 루토스와프스키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1악장이 전형적인 아치 형식으로 되어 있다. 2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로 되어 있으나 대칭 구조가 아치 형식과 맞아떨어진다. 다만, 이번 연주회 제목이 <러시아 명곡 시리즈 III>이므로 헝가리 사람인 버르토크보다는 폴란드 사람인 루토스와프스키가 조금은 더 어울린다.
이 작품을 연주할 때 민속음악과 현대음악이 작품 속에서 상생하게 하는 일은 지휘자가 많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며, 억지로 균형을 맞추기보다는 지휘자마다 어느 한 쪽에 무게를 실어주는 게 보통이다. 서울시향을 지휘한 제임스 드프리스트는 굳이 따지자면 '현대음악' 쪽에 손을 들어준 듯하다. 노래하듯 자연스러우면서도 강약이 뚜렷한 리듬을 살리는 대신 음악이 기계적으로 흘러가도록 하면서 세부를 살리는데 더 신경 쓰는 듯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타악기 소리를 크게 앞세워 표정없이 차가운 음악이 되지 않도록 했다. 결과는 매우 훌륭했다. 객원 지휘자가 서울시향으로부터 이만한 소리를 뽑아냈다면 제임스 저드나 아릴 레머라이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모자람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딱 한 가지 아쉬운 곳을 말하자면 빠른 음형으로 정신없이 달리는 곳에서 까닭 없이 템포를 느리게 잡아 맥빠진 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를테면 2악장 스케르초는 악보에서 ♩= 172 속도로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있으나 서울시향은 ♩= 140 정도로 연주했고, 3악장 토카타에서는 악보에서 지시한 ♩♩= 112 대신 ♩♩= 105 정도로 템포를 잡았다. 아마도 지휘자가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짧은 시간에 연습을 끝내느라 함부로 속도를 내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곡은 글쓴이처럼 손이 작아서 옥타브를 겨우 짚는 사람은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기에 요즘 하는 말로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같다. 그 가운데서도 피아노 협주곡 3번 하면 짐승급 남성 연주자가 큼지막한 '앞발'로 건반을 쿵쿵 내리찍는 모습이 먼저 생각난다. 연주자는 큰 손과 힘, 그리고 눈부신 테크닉을 먼저 갖추어야 하며 작품 속에 담긴 애잔한 느낌을 살리는 일은 그다음이다.
그러나 올가 케른은 어떤가? 늘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에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공주님 같은 짙은 분홍색 드레스 차림으로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한단다. 그런데 놀랍게도 연주가 너무나 훌륭하다. 힘은 좀 모자라지만 작품을 감당 못할 만큼 작지는 않으며 생김새만큼 맑고 고운 음색과 우아한 프레이징으로 마치 쉬운 곡을 연주하듯 술술 소리를 풀어낸다. 작품 속에 담긴 광기와 '다크 포스'는 동화 속 공주님에게 닥친 어려움이 되어 이를 슬기롭게 이겨나가는 공주님을 돋보이게 한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이런 라흐마니노프도 있구나. 올가 케른은 이 곡으로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했단다.
템포는 제법 빨라서 우아하되 얌전 빼는 연주는 아니었으며 건반을 세게 두드려야 할 때에는 템포를 크게 늦추기도 했다. 3악장 시작 부분에서 이런 점이 매우 두드러졌는데, 협연자가 템포를 바짝 당기는 바람에 오케스트라가 놀라서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마디 30에서 마디 31로 넘어가는 단9도 글리산도에서는 협연자도 템포를 감당하지 못해 슬쩍 미끄러지다 말았다. 마디 39에서는 갑자기 템포를 크게 늦추어 건반을 힘껏 눌러가며 연주했는데 여기서부터 제1주제에서 제2주제로 넘어가는 경과구(transition)에 해당하므로 음악이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템포가 변화무쌍하지는 않았으며 느끼한 루바토를 쓰는 일도 없었다. 셈여림과 음색에서도 과장된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곱게 갈무리하여 부드러우면서도 시원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가녀린 몸매에 비해서 때때로 꽤 큰 소리를 내는 게 신기했으나 발끝까지 가리는 기다란 드레스를 보고 한 가지 짚이는 게 있었다. 다리를 뒤로 차올리듯 재빨리 구부려 종아리와 허벅지 사이에 의자 엉덩이 받침을 단단히 감싸면 그 반동으로 잠시나마 건반을 매우 세게 두드릴 수 있다. 힘이 모자란 연주자가 쓸 수 있는 편법이라 하겠으나 남이 보기에 몹시 볼썽사나워서 마치 우아한 백조가 물속에서는 요란하게 발을 움직이는 듯하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반드시 발목까지 가리는 드레스를 입고 써야 하며, 남자는 쓸 수 없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마 올가 케른도 이러려고 일부러 긴 드레스를 입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때문에 어디서 얼마만큼 페달을 밟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페달을 살짝살짝 쓰는 것 같은데 어찌 그런 신비로운 음색이 나오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연주가 끝나고 나서 정명훈 지휘로 명연주를 펼쳤을 때라야 들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매우 훌륭한 연주였지만 이만한 박수를 받을 만큼 잘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외모 덕을 만만치 않게 보았지 싶다.
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