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인터뷰] 피아니스트 박종훈 ― ①

글: 김원철 · 정리: 박희은

피아니스트 박종훈. 라자르 베르만 사사. KBS 1FM 〈가정음악〉 진행. 재즈나 크로스오버(crossover) 음악 쪽에도 이름이 알려짐.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이런 단편적인 것들이었다. 그런데 박종훈이 이번에 경기필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박종훈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궁금했다. 직접 만나러 갔다.

인터뷰는 2011년 8월 26일 오전 10시부터 약 1시간 20분동안, 박종훈 자택 겸 사무실에서 있었다. 매니저 없이 박종훈 혼자 인터뷰에 참석했고, 경기필에서는 김원철과 박희은이 참석했다.

첫 인상은 딱 이 모습이었다. 낮고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

그런데… 김원철은 말하기 창피한 이유로 약속 시간에 15분쯤 늦었다. 그래서 박희은 씨가 먼저 가서 사진을 찍고, 희은 씨가 생각해 놓은 질문 거리 위주로 인터뷰를 먼저 진행했다. 이 글은 짜임새가 자연스럽도록 내용을 질문 순서에 맞게 편집한 것이다.

김원철: 아, (질문지를 희은 씨가) 인쇄까지 해왔으니까 이거 보고 하면 되겠네. 이거 다 보셨어요?
박종훈: 아뇨, 안봤어요. (웃음)
김원철: 미리 보면 재미가 없어요. 이거 깜짝 질문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웃음)
박희은: 아, 그 깜짝 질문은 제가 뺐어요.

(질문 내용을 스마트폰에 담아 왔는데, 이미 진행된 질문이 표시된 종이를 보면서 하면 편하겠다는 얘기. 그런데 박종훈 씨가 질문지를 미리 봤을까 봐 걱정했다. 미리 보고 각본대로 하면 재미가 없다.)

김원철: 음, 제가 이 자리에 없었으니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할지, 그런 걸 조금 말씀해주시면…

(이 질문을 희은 씨가 먼저 했다.)

박종훈: 아, 그거는… 글쎄요. (웃음)
박희은: 워낙 또 유명한 곡이라…
박종훈: 그쵸. 근데, 그… 제가 또 러시아 선생님한테 배워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박종훈은 라자르 베르만을 사사했다.)

화려함 속에 숨은 끈적끈적한 러시아 분위기 살려야

박종훈: 러시아 사람들은 되게 자부심이 있어요. 그래서 러시아 작곡가들이 쓴 곡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제대로 연주하기 힘들다라고 항상 얘기를 해요. 근데 그거를 첨에는 기분이 나빴는데, 좀 일리가 있는게 그… 옛날에 한번 연주하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는데, 굉장히 어둡고 추우면서도 뭔가 이… 끈적끈적하고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근데 그건 거기서 사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게 있을 거 같더라고요. 근데… 뭐 제가 러시아 사람은 아니니까 100%는 힘들겠지만, 음…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부분들을 좀 해소를 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박희은: 어떤 오해를?
박종훈: 러시아 음악, 차이콥스키도 그렇고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물론 화려하지만 화려한게 가장 중요한 건 아니거든요. 화려함 내면에 숨어있는 그 러시아 특유의 우수적인 그런 거 있잖아요. 그거를 표현하고 싶어요. 될지 안 될진 잘 모르겠어요.

(조금 더 구체적인 해석 방향을 캐물었다.)

김원철: 음, 시간이 없으니까, 이거 빡센 것부터 빨리빨리…
다함께: 하하하…
김원철: 어떻게 해석할지 좀 더 구체적으로, 페달은 많이 쓰는게 좋은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
박종훈: 하하, 그런 쪽으로.
김원철: 왜냐면 그게, 라흐마니노프가 페달을 많이 안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때문에 또 어떤 평론가는 '청교도 피아니스트'라는 말도 했는데, 이게 또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런 것도 아닐 수도 있거든요.

(많고 적고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다. 라흐마니노프 시대와 오늘날은 역사적 맥락이 다르므로, 라흐마니노프가 페달을 적게 썼다는 말을 요즘 기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박종훈: 페달은… 가장 중요한 건 홀(연주회장)인 것 같아요.
다함께: 아!
박종훈: 예, 홀. 그게 사실은 어쿠스틱이 관련된 거니까, 울리는… 예술의 전당에서 독주회를 한다, 그러면 페달을 많이 못 써요.
김원철: 그렇죠. 음.
박종훈: 페달을 많이 밟고 빠른 패시지(passage; 악절 또는 악구)를 연주하면 아무것도 안 들려요. 근데 안 울리는 곳에서 연주할 때 굉장히 드라이하게(건조하게) 들릴 수 있죠. 그래서 그거는 모르겠어요. 음악적인 것보다는 홀에 따라서 좀 달라지는…

(그리고리 소콜로프가 생각났다. 연주회장 음향에 따라, 연주하는 피아노의 기계적 특성에 따라 연주법을 달리 한다는 대단한 연주자. 그런데 생각해 보니 박종훈은 음반 프로듀서이기도 하니까, 음향에 대해 전문적으로 이해하고 연주에 반영하는 일이 당연하다.)

김원철: 고양에서 한 번 연주해 보셨어요? 아람누리에서.
박종훈: 기억이 안 나요. 했는지 안 했는지.
김원철: 그러면, 루바토는 어떻게, 어느 만큼 쓰는게 좋은 것 같아요?

(※ 루바토: 박자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하는 연주법이나 창법.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인용.)

박종훈: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는 제가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연주한 것도 많이 들어봤는데, 음… 하는 곳에선 많이 하고 전반적으로는 많이 안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근데 그건 또 그 사람의 루바토니까 그걸 따라할 필요는 없는 거죠.
김원철: 그렇죠.

▲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협연한 녹음. 스토콥스키 지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1929년.

박종훈: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음악을 연주할 때 루바토라든가 뭐… 악보에 있지 않은 거를 한다는 거는 2차적이라고 생각해요.
김원철: 2차적이라는 말은 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아니면은…
박종훈: 2차적인거죠. 1차적인거는 음… 좋은 곡이 있잖아요. 좋은 곡은, 음악적으로·연주적으로 접근했을 때, 좋은 곡이라는 거는 누가 쳐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 연주가 좋다는 거는, 그 사람의 연주가 좋은 거지. 그래서 물론 표현이 더 잘되고 음악에 담겨 있는 거를 더 많이 끄집어내는 건데, 쇼팽도 그렇고 리스트도 그렇고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굉장히 낭만적인 곡들을 보면 루바토를 많이 하게 되잖아요? 근데… (한 동안 침묵) 스타일적인 요소에서 하는 루바토가 있어요. 그거는 스타일도 그렇고 꼭 루바토를 거기서 해야만 감정이 표현이 되는 게 아니고, 거기서 루바토를 하는 것이 그 시대 그 음악의 스타일이기 때문에 더 적합한 그런 부분이고, 그게 아닌데 연주자가 감정에 몰입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근데 저는 그 루바토를 통해서 음악을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매우 조심스러운 말투, 원론적이고 무난한 답변이다. 작품 해석을 묻는 질문에는 조심스럽게 답할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만족스러운 답변이 나올 때까지 좀 더 캐물어 봤다.)

김원철: 음, 그건… 일반적인 말씀을 해주셨고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는 루바토를 많이 쓰는게 좋을까요, 조금 쓰는게 좋을까요.
박종훈: 그건 모르죠. (웃음) 어떤게 좋은지 모르는데, 저는 많이 안 쓰…는 편이에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답했다. 그렇다면, 루바토를 빼놓더라도, 연주에 자의적인 해석이 어디까지 허용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김원철: 그러면요, 아까 악보에 없는 얘기, 그런 얘기도 하셨지만… 도입부에 화음 나오고… 그 부분만 보더라도, ○○○ 같은 사람은 악보대로 안 하고 아르페지오를 쓴단 말이에요.

(아르페지오=펼침화음 : 화음을 이루는 각 음들을 한꺼번에 소리 내지 않고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또는 오르내리는 꼴로 내도록 한 화음. 『표준국어대사전』)

박종훈: 아, 그 사람은 손이 작아서 그래요.
박희은: 하하하…
김원철: 아, 그런 거예요? 아~ 그렇구나! 어허허, 그런…
박종훈: 그거는 절대, 손이 크면 아르페지오를 쓰면 안돼요.
박희은: 선생님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닿으세요?
김원철: 난 옥타브를 겨우 짚는데. 흐흐…
박종훈: 도에서 미. 근데 저는, 그거는 아르페지오 안 쳐도 돼요. 그 정도는 닿는데, ○○○도 손이 컸으면 안 했을 거예요. 그거는 모든 피아니스트가 다 손이 크냐 작으냐의 문제지. (웃음)
김원철: 손이 만약에 웬만큼 큰데도 이거는… 연주자가 아르페지오로 하면 더 멋있겠다… 악보에 없는 거를 했을 때, 그게 음악적 맥락에 따라 용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박종훈: 그거는 자기 맘이죠. 평가는 딴 사람이 하는거고.

(루바토를 적게 쓰는 일과는 다른 문제다. 재즈 연주도 곧잘 하는 연주자라면 이런 대답이 자연스럽다.)

김원철: 그렇군요. 음… 그러면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러시아 작곡가들은 음악에 종소리를 표현하려고 그러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 작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도 종소리를 모방한 그런 게 많이 나오고. 그런데 러시아 종소리가 유럽에 있는 그런 종이랑, 우리가 생각하는 거랑 많이 다른 모양이더라고요. 혹시 러시아에서 직접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박종훈: 저는 그건 못 들어봤어요. 근데 저는 이탈리아에서 오래 살아서 종소리는 매일 매일 듣거든요? 근데 그 종소리라는 게 굉장히 특별한 것 같아요. 그니까 내가 여기 있다는 거를 되게 각인시켜준다 그럴까? 그냥 다른데서는 안듣는 소리를 매일 들으니까 일상적인 건데, 어… 되게 아름다워요. 녹음할 땐 좀 짜증 나는데… (웃음) 그렇긴 한데, 그거를 그냥 영상 없이 들을 때랑 음악에서 다시 표현한다고 생각했을 때, 그 느낌을 매일 매일 들었던 사람이랑 안 들었던 사람이랑은 다른 거죠.

김원철: 제가 이 질문을 왜 드렸냐면요, 러시아의 종은… 유럽은 종이 하나가 땡땡 치는 형태지만 러시아의 종은 여러 개고 크기도 제각각이고 그거를 온몸으로 막 연주를 한대요.

박종훈: 아, 다 그래요 이태리도 그래요.
김원철: 어디도 그렇다고요?
박종훈: 이태리도 그래요 대부분 다 그래요.
김원철: 어, 유럽이 그렇단 얘기는… 그게 왜 그… 어디서 특별히 다르냐면은, 그게 종소리가 여러 군데 온 몸으로 쳤을 때, 그게 말하자면 리듬의 헤테로포니, 막 이런 그…

(질문자, 당황했다.)

박종훈: 예. 그게 독일도 그렇고 스페인도 그렇구 이태리도 그렇구.
김원철: 어, 그렇군요. 난 안그렇다고 들었는데, 잘못 알았나.
박종훈: 근데 더, 더 심하겠죠. 뭐 더 심하니까 그렇게 얘기하겠죠.
김원철: 그런 음향적인 특징을… 음향적인 측면을 제일 잘 살린 거는 스트라빈스키 같은데, 라흐마니노프도 조금 그런… 이 작품만 들어 봐도 그런 게 찾아보면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그래서 그런 걸 생각을 해보셨나 궁금해서 물어봤던 거고요.

(생각해 보면, 문화적인 차이가 지역 경계선을 따라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터, 책만 읽어서 편견이 생겼던 모양이다.)


▲ 박종훈이 유학했던 이몰라 피아노 아카데미 가까이 있는 볼로냐 산피에트로 성당 종소리

▲ 라흐마니노프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 근처 노브고로드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 종소리

1악장 마지막 화음 셋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해요

김원철: 이 작품에서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딘가요?
박종훈: 하하… (고민하는 표정.)
김원철: 딱 한 군데만.
박종훈: 제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요, 1악장 젤 마지막에 딴딴딴! 하고 끝날 때 딴딴, 요거를 피아노만 쳐요. 같이 딴딴딴! 하는게 아니라 빰딴빰! 이렇게… 거기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해요.
박희은: 오!
김원철: 아, 그렇군요.
박종훈: 아무도 그렇게 쓴 적 없어요 다른 작곡가들은.
김원철: 생각해보니 굉장히 멋있습니다.


▲ 루간스키 협연, 오라모 지휘,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 ©Warner Classics

김원철: 저는 일단 깨부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알라 마르시아'(alla Marcia; 행진곡풍으로) 꽝 꽝꽝…
다함께: (웃음)

©Warner Classics

김원철: 작품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요. 음… 프로필을 보니까는 재즈도 하시고 라디오 방송도 많이 하시고, 클래식 말고 다른 것도 하셨다는 점에서는 구자범 선생님이랑도, 뭐 좀 억지로 말하자면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구자범 선생님이랑 전에 한 번 협연을 해본 적이 있나요?
박종훈: 아니요. 첨이에요. 말씀은 정말 많이 들었는데,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김원철: 구자범 선생님이 어떻다더라, 하고 소문을 들은게 있다면?
박종훈: 아뇨, 뛰어난 지휘자라는… 예, 특별하다.
김원철: 너무 아부만 하시는데.
다함께: (웃음)
박종훈: 아 제가 정말… 그런 얘기밖에 못 들었어요.
김원철: 오… 일단 좋은 소리만 들려오고 있군요. 음…

※ 이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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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피아니스트 박종훈 ―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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