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Seoul Philharmonic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Seoul Philharmonic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0년 2월 16일 일요일

2020. 2. 15. 오스모 반스카 &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2번

  • 지금부터 쓰는 내용은 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복기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엉성한 기억에 의존해서 쓰는 것이므로 헛소리가 섞였을 수 있음.

  • 1바와 2바를 좌우로 갈라놓는 유럽식 현악기 배치를 말러 교향곡에 쓴 걸 보고 깜놀.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1바 뒤, 비올라가 2바 뒤. 하프가 맨 오른쪽. 이래서 앙상블 제대로 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훌륭해서 놀람.

  • 가장 멋졌던 곳은 “Mit Flügeln” 이후부터 끝까지. 어지간해서는 멋있지 않기 힘든 곳이고 이날 연주도 역시 멋졌음. “zu Gott” 세 번 반복할 때 합창이 주도하는 크레셴도가 특히 멋졌고, 멋짐의 끝판왕은 파이프오르간.

  • 합창 처음 나올 때는 국내 합창단이 흔히 그러듯 메조피아노 정도로 시작한 게 아니라, 정말로 악보에 나온 피아니시모를 제대로 살림. 와, 하면 되잖아! 된다고!!

  • 5악장 중간에 목관악기가 레치타티보스러운 음형을 연주할 때 바이올린 트레몰로가 기막히게 훌륭해서 귀 쫑긋. 그때부터 행진곡 나올 때까지가 이날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 레치타티보를 금관이 이어받고, 트롬본과 튜바가 진노의 날 음형을 연주하고, 감동적인 팡파르가 나오고, 에너지가 쌓여 폭발한 다음에 행진곡이 될 때까지가 이날 서울시향이 가장 빛났던 순간. 그 뒤로도 좋았지만, 솔직히 때때로 힘이 딸리는 듯한 느낌이 있었음.

  • 2~4악장은 대체로 안정적인 앙상블이 좋았음. 이를테면 2악장에서 첼로 주선율 나오는 곳이나, 같은 주제를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곳, 그 사이 피치카토 등이 훌륭.

  • 콘트라바순 소리가 특히 3악장 마지막에 겁내 멋있었음. 악기가 참 때깔도 곱던데, 재작년엔가 새로 샀다는 헤켈 콘트라바순이었을 듯. 우리 오케스트라 공연할 때 좀 빌려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요 서울시향 님드라.

  • 솔리스트 언냐들 노래 참 찰했는데 무대 인사하러 나온 걸 보니 예쁘기까지.

  • 1악장에서는 E♭장조 주제 두 번째로 나온 뒤부터 긴 호흡으로 만들어간 크레셴도가 특히 그럴싸했고, 코다에서도 마찬가지.

  • 앙상블이 흔들린 곳이 다른 악장보다 1악장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은 아쉬운 점. 최초로 폭발하는 투티는 에너지가 임계점을 넘어 터져 나오는 느낌이 아니라 어정쩡한 크레셴도 끝에 깜짝 놀래키듯 폭발한 점이 마음에 안 들었음. 악보를 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호른이 좀 더 힘을 내줬으면 좋았을 듯.

  •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곳은 1악장 발전부 끝부분의 리듬 처리. 무시무시하게 날카롭고 사납고 절박한 리듬을 대충 부점 리듬처럼 뭉개면서 아첼레란도로 양념을 치고 속도감에 묻어 가버림.

  • 오스모 반스카 님 단원들이랑 주먹 인사한 거 힙하셨음. ㅎㅎㅎ

2019년 11월 22일 금요일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 인터뷰

서울시립교향악단 매거진 『SPO』에 실린 글입니다.
서울시향 블로그 게시글: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627279


2019년 10월 7일 월요일, 모스크바 시각 오후 1시. 올 11월에 서울시향과 협연할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짧지 않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간단한 인사말 정도를 의도한 마지막 질문을 했을 때, 그가 뜻밖에 길고 진지한 답변을 해서 나는 놀랐다. 이때 인터뷰를 녹음하던 녹음기가 오작동해서 답변의 일부가 소실되었으나, 루간스키가 한 말의 요지는 세월이 흘러도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변함없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음악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가 했던 말 곳곳에서 느껴졌다. 어떤 것에 깊이 몰입하면서 심지어 영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어쩌면 러시아 사람들의 기질인 것 같다는 생각을 루간스키의 말을 들으면서 해 보았다.


Q. 지난 2005년에 분디트 웅그랑시(Bundit Ungrangsee)가 지휘한 서울시향과 쇼팽 협주곡 2번을 협연했었다.

A. 8월 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옛날 일이 아닌 듯한데 2005년이라니 놀랍다. 서울시향의 연주가 훌륭했던 기억이 나고, 그래서 이번에 프로코피예프를 협연할 일이 기대된다.

Q.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A.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노 협주곡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프로코피예프는 20세기 작곡가인데도 이 작품은 매우 낭만주의적이고 비극적이며, 드라마틱하고 힘이 넘친다. 프로코피예프는 페달을 사용한 방식 등이 매우 낭만주의적이면서 한편으로는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다루는 등 새로운 연주법을 도입했고, 이 곡에는 여러모로 현대적인 음악 어법이 19세기 음악 양식 속에 녹아 있다. 때로는 라흐마니노프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물론 프로코피예프가 이 말을 들었다면 화를 냈을 것 같다(웃음). 그러나 프로코피예프가 이 작품을 쓸 당시에 라흐마니노프 음악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며, 그 이후에는 좀 더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Q. 이 작품과 관련한 개인적인 추억이 있다면?

A. 내가 28살쯤이었을 때 이 곡을 처음 공연했다. 아마도 오스트리아 그라츠(Graz)에서 연주했던 것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지금도 연주할 때마다 내게 큰 도전이 되는 난곡이다. 처음 익힐 때 나는 27살이었는데,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이나 브람스 협주곡 2번보다 어렵다고 느꼈지만, 결국 8일 만에 악보를 외우고 ‘가슴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은 3일 만에 익혔다.) 처음 공연했을 때 연주를 꽤 잘했던 것 같고,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젊어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곡을 한국에서 연주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이번 공연이 기대된다.

Q. 이 곡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대목이 있다면?

A. 이 작품의 모든 곳을 좋아해서 한 군데만 꼽기는 어렵다. 시작 부분의 신비롭고 영적인 느낌은 프로코피예프를 제법 아는 사람도 깜짝 놀랄 만큼 뜻밖이며 매우 아름답다. 1악장 카덴차는 아마도 모든 피아노곡을 통틀어 가장 힘 있고 거대한 카덴차일 것이다. 중간 악장과 피날레 악장도 마찬가지로 훌륭하다. 4악장에서 타악기 느낌이 강한 앞부분을 지나 중간 부분에 이르면 전형적인 러시아 민요풍 선율과 그 변형이 참 아름답게 흐른다. 4악장 카덴차는 1악장만큼은 아니지만 매우 드라마틱한 클라이맥스를 이끌어낸다.

Q. 만약 프로코피예프를 실제로 만난다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나?

A. 프로코피예프 본인은 정말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웃음). 협주곡 2번보다는 가장 어려운 협주곡 4번이 가능한지 특히 궁금하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왼손으로만 연주하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나에게도 너무나 어려운 곡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봐야 하겠지만, 아마도 프로코피예프는 생전에 협주곡 4번을 직접 연주한 일이 없을 것이다. 만약 있다면 그 경험에 관해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프로코피예프는 체스 실력이 뛰어났으므로 체스에 관한 얘기를 들어보고도 싶다.

Q. 지휘자 안드레이 보레이코(Andrey Boreyko)와 예전에 협연한 적이 있나?

A. 그와는 여러 번 협연했다. 첫 번째는 아마도 콜마르(Colmar)에서 열렸던 스피바코프 페스티벌에서였고 그 뒤로 독일,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곳곳에서 다시 만났다.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는 여러 번 협연했는데, 신기하기도 러시아에서 협연한 일은 없다. 3년 전 브뤼셀에서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협주곡 1번을 협연했던 일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서울시향과 협연하는 이번 공연은 유럽이 아닌 곳에서 보레이코와 협연하는 첫 번째 공연이다.

Q. 안드레이 보레이코는 어떤 지휘자라고 생각하나?

A. 훌륭한 지휘자다. 매우 열정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음악을 무성의하게 대하는 일이 결코 없고, 인생의 다양한 감정을 음악에 담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지휘 테크닉에 관해서는 내가 지휘자가 아니라서 별로 할 말이 없다.

Q. 세계 여러 공연장에서 공연해 왔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말한다면?

A. 하나만 꼽기는 어렵다.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빈 무지크페라인과 빈 콘체르트하우스, 뉴욕 카네기홀,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 대공연장,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아 홀, 필하모니 드 파리 등이 특히 훌륭했다.

Q.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를 사사했다. 그는 어떤 선생님이었나?

A. 선생님이기 이전에 위대한 피아니스트였고, 모범이 되는 예술가였으며, 매우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졌고 스스로 작곡을 하기도 했다. 내가 13살, 14살, 또는 15살이었을 때 그분은 몇 주일씩 연주 여행을 다니느라 나를 혼자 내버려 두기 일쑤였고, 그런 점에서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는 흔히 생각하는 선생님과는 달랐다. 뭐랄까, 예술가로서 본받아야 할 모범이면서 조언자라 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내게 해 준 조언은 몇 년 앞을 내다본 것들이었다.

Q. 니콜라예바에게 어떤 것을 배웠나?

A. 그는 음악에 관한 호기심이 많고 열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새로운 연주법을 고민하고 새로운 음반을 듣거나 새로운 악보를 공부했다.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본받은 것이야말로 가장 큰 배움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Q. 현재 차이콥스키 음악원 교수이다. 그곳의 장점은 무엇인가?

A. 나는 세르게이 도렌스키(Sergei Dorensky) 교수님을 보조하는 사람이다. 도렌스키 선생님은 스타니슬라프 부닌, 데니스 마추예프 등을 가르친 훌륭한 분이다. 나는 그분을 도와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있지만, 사실 연주 여행을 다니느라 내 제자를 따로 가르치지는 못한다.

Q. 그렇다면 교수 입장에서 학교 자랑을 하기보다 그곳 학생이었을 때를 생각해 본다면?

A. 차이콥스키 음악원은 훌륭한 음악가를 양성하는 데 필요한 총체적인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곳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차이콥스키 음악원 대공연장에서 훌륭한 공연을 자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곳은 러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공연장이며, 내가 학생이었을 때에는 그곳에서 거의 매일 공연을 봤다.

Q. 한국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달라.

A.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되도록 많이 듣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라.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다.

Q. 취미가 무엇인가?

A. 일이 없을 때 여러 가지를 하지만, 굳이 취미라 할 만한 것들을 꼽아 보자면 우선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3개국어를 하는데(러시아어, 독일어, 영어), 물론 가장 익숙한 언어는 러시아어다. 그 밖에 탁구, 배드민턴, 체스 등을 좋아한다.

Q. 한국 팬들이 관심 가질 만한 앞으로의 일정을 알려달라.

A. 파리, 브뤼셀, 예레반, 몬트리올, 취리히, 워싱턴, 런던, 베를린 등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또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 레이블로 라흐마니노프 전주곡과 베토벤 후기 소나타 등이 음반으로 발매될 예정이다.

Q. 한국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A. 한국에서 공연할 때 객석의 열띤 분위기가 좋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관객들이 언제나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기를 바란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많은 것이 바뀌지만, 음악은 여러분이 16세일 때도, 40세일 때도, 80세가 되었을 때도 변함없이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간직할 것이다. 여러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2015년 2월 13일 금요일

펌: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비윤리적으로 행동해 왔나?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가 ☞소개한 논문입니다. 내용이 너무 길어서 번역은 엄두를 못 내겠고, 제가 요즘 너무 바빠서 틈틈이 읽는 데에만 며칠이 걸렸습니다.

이 글은 박 전 서울시향 대표 스캔들 이후 사태를 정밀 분석하면서 한국 언론의 한심한 작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글이며, 향후 약 200년간 대한민국 음악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중요하게 참고해야 할 문헌이라고 판단됩니다.

Arnold C. Nielsen라는 이름은 필명으로 추측됩니다. 아마도 클래식 음악 업계 전문가, 영어권 출신 고학력자, 그리고 한국 사회에 관한 이해도가 매우 높은 사람인 듯합니다. 누군지 짐작은 갑니다만… 크흠.

PDF 파일을 웹 문서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문단 모양 같은 게 좀 깨졌습니다. 편하게 읽으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원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원저자의 블로그로 링크 대체: 2015년 2월 18일)

http://internationalmusicbusiness.blogspot.co.uk/2015/02/readers-are-being-encouraged-to_8.html

2015년 2월 17일 고침:

이영록 님께서 전문을 번역하셨습니다. 따라서 번역본 링크로 글 내용을 대체합니다.

http://fischer.egloos.com/5758873

2014년 12월 16일 화요일

2014.12.13. 서울시향-정명훈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제가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일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대전에 초청을 받아서 그쪽에서 요구했던 프로그램인 말러 교향곡 1번과 쳄린스키 《인어공주》를 연주했는데, 리허설 때까지는 그럭저럭 잘했다가 본 공연 때 체력 고갈로 급격하게 망가지더군요. 아마 구자범 시대 경기필 최악의 연주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수원에서 대전까지 차로 이동해서 당일 공연하는 일이 그만큼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겁니다.

그런데 서울시향이 무려 통영까지 와서 당일 공연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잘하더군요. 평소 연주력이야 경기필보다 당연히 낫겠지만, 체력까지 그렇게 큰 차이가 난다고는 믿기 어렵습니다. 이날 프로그램이 훨씬 가벼운 탓도 있었겠지만, 거리가 훨씬 먼 것을 생각하면 역시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날 공연장에 있었던 분은 그 이유를 대충 짐작할 겁니다. 지휘자가 관객 앞에서 직접 말한 것처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연주하니 소리가 너무 좋아서 연주에 몰입이 훨씬 잘됐을 거예요.

(나중에 붙임: 단순한 몰입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연주회장 음향 환경에 따라 체력 소모도 차이가 매우 클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부는 악기' 연주자들은 확실히 힘들어하는 기색이 있었습니다. 특히 목관 악기는 제법 망가졌죠. 괴물 같은 외국인 금관 연주자들은 그렇다 치고요. (트럼펫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 덜덜덜…) 페이스북에는 이날 공연 이후 감기몸살을 호소하는 목관악기 연주자도 있더군요. 통영 공연이 아니더라도 일정이 아주 빡빡했나 보더라고요. 우리나 그쪽이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지만, 하루 먼저 와서 다음 날 공연했으면 훨씬 좋은 연주를 들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현악기는 서울 공연과 비교해도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어쩌면 실제로는 망가졌는데 연주회장이 워낙 좋아서 전체적으로 좋게 들렸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저는 이날 관객에게 피해 주지 않고 기록용 사진을 찍으려고 5층 꼭대기까지 올라갔는데요, 전부터 통영국제음악당 5층 소리가 좋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2층 맨 앞자리와 비교해 오히려 나은 점이 있다는 생각에 새삼 놀랐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과장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서울시향 더블베이스 연주자들이 이렇게나 잘하나 싶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안 들리던 초저역대가 또렷하게 들렸고, 전체적인 음량도 더 크게 느껴졌고, 그것을 넘어 연주력 자체가 차원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서울시향 개편 이후 첫 공연부터 최근까지 서울시향의 발전 과정을 꾸준히 지켜본 사람입니다만, 10년이 다 되도록 서울시향 더블베이스 연주자들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연주회장 실내음향이 이렇게나 중요한 거였습니다.

음향 차이를 지휘자의 해석 차이로 착각할 만한 곳도 있었습니다. 특히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3악장은 서울에서 들었을 때 무시무시하게 폭력적으로 들렸지만, 통영에서는 훨씬 얌전하게 들리더라고요. 심지어 템포도 옛날보다 훨씬 빠르다고 느꼈습니다. 그동안 해석이 달라졌나 싶어서 서울 공연 방송 녹음을 확인해 봤더니 웬걸, 큰 차이가 없더라고요. 아마도 통영국제음악당 5층 꼭대기에서 아무리 미세한 소리까지 잘 들렸어도 절대적인 음량 차이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까 1층에서 들었던 분들은 서울 공연 이상의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4악장은 반대로 5층 꼭대기에서도 통영 공연이 훨씬 좋게 들렸습니다. 2008년 서울 공연 때,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기고한 리뷰에서 저는 "절망 속에서 처절하게 허우적거리는 대신 차분히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썼는데, 근거로 들었던 주요 해석 포인트는 이번 공연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미세한 소리까지 잘 들려서 그런지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어쩌면 외부적인 상황 때문에 연주자들부터 감정이입이 되었을까요?

앞서 목관악기가 망가졌다고 썼지만, 차이콥스키 1악장에서 클라리넷 부수석 임상우 씨 솔로 연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서울시향이 2008년에 아마도 처음으로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을 연주했을 때, 클라리넷 수석으로 채재일 씨가 새로 들어와서 충격적인 명연주를 들려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이날 임상우 씨 연주는 채재일 씨가 넘사벽만은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어딘가 결정적인 '한 방'이 모자라기는 했는데, 이유가 뭔지 주제 넘게 분석하려 들지는 않겠습니다. 아마 본인이 가장 잘 알 테고, 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았으니 알아서 잘하겠죠.

그리고 팀파니 객원. 이름이 롤란드 뭐시기라던데, 참 잘하더군요. 서울시향 팀파니 수석이자 라디오 프랑스 필 수석이기도 한 아드리앙 페뤼송이 라디오 프랑스 필 지휘자 대타로 지휘 대뷔를 하게 되면서 임시로 데려온 모양입니다. 온 김에 눌러 앉히려고 꼬드기는 모양이던데요. 아마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수석이라죠?

또, 트럼펫. 2008년에는 알렉상드르 바티가 없었지만, 이날에는 바티가 있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알렉상드르 바티는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수석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붙임: 여기 그만둔 지 좀 됐다네요. ㅡ,.ㅡa) 한 마디로 세계 정상급 연주자라는 말이죠. 그 전에 가레스 플라워스라는 사람이 잠시 수석으로 있다가 나가 버렸는데, 그때 사람들 많이 아쉬워했었죠. 그런데 얼마 안 가 알렉상드르 바티가 온 겁니다. 검색해 보니 2009년 일이로군요. 그 대단한 연주자가 통영에도 왔습니다. 이날 연주도 아주 뭐, 끝장이었습니다. ^^

…쓰다 보니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할 말은 많지만 여기서 줄이고, 저는 이만 잠자러 갑니다. ^^

2012년 8월 25일 토요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실연으로 듣고 이런저런 생각

요새는 연주회 리뷰 같은 거 귀찮아서 잘 안 쓰는데, 무려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실연으로 듣고 온 만큼 짧게나마 써봅니다.

바그너 작품은 영화에 비유하자면 'B급 영화'와 닮은 데가 있습니다. 저와 이름 비슷하신 박원철 님도 생전에 비슷한 말씀을 하셨죠. 정명훈 샘은 'B급' 정서를 표현하는 일에 약점이 있는 듯합니다. 옛날에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들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트리스탄과 이졸데》 들으면서 새삼 느꼈습니다. 1막 해석이 마음에 안 들어서 적당한 표현을 생각하다가 이 생각이 들더군요. 2막과 3막은 정명훈 샘의 장점으로 단점을 충분히 가릴 수 있었고, 무엇보다 3막은 끝내주게 훌륭했습니다. 3막이 좋으면 다 좋은 거다, 하는 생각이 들 만큼이요.

서울시향은 요즘 실력이면 이쯤은 할 수 있겠다고 예상은 했지만, 무려 바그너를 제대로 연주하는 걸 실제로 들으니까 이건 뭐… ㅠ.ㅠ

잉글리시 호른 연주하셨던 분, 어디서 데려온 누군지 모르겠지만, 엄청나시더군요. 이분 어떻게 서울시향에 주저앉혀 주시면…^^;

그리고 알렉상드르 바티 본좌. 말이 필요 없습니다. 바그네리안이 아니면 잘 모를 대목만 하나 설명하자면, 3막에서 배가 보이고 뿔피리 소리 바뀌는 대목은 본디 잉글리시 호른이 연주해야 합니다. 극 중에서 목동이 연주하는 그 악기거든요. 바그너는 이 대목을 '트럼펫처럼' 연주하라고 했는데, 아예 트럼펫으로 연주하기도 합니다. 저도 그게 낫다고 생각하고요. 어제는 바티 본좌가 발코니에서 이 대목을 연주했죠. 어제 연주한 악기는 일반적인 트럼펫이 아니고, 서울시향 페이스북 보니까 무슨 목제 트럼펫(?)인 모양이던데, 그래서 트럼펫 주제에 '식물성' 음색이 나더군요. 이 대목에 아주 딱이었습니다.

가수들은 브랑게네 말고는 다들 조금씩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중간 휴식이 너무 짧았던 탓이 컸지 싶네요. 1막에서는 '페이스 조절'하느라 힘을 아끼는 티가 났고, 1시간 가까이 쉴 새 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무지막지한(!) 2막을 지나 3막으로 가니까 트리스탄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이더군요. 4시쯤에 시작해서 바이로이트식으로 중간 휴식 1시간쯤 넣으면 얼마나 좋아요. 예술의 전당 님하들아, 대관 어떻게 좀!

그런데 그것까지 고려해도 트리스탄은 좀 별로였습니다. 다 죽어가는 트리스탄 목소리가 너무 멀쩡해요. 정작 질러 줄때는 힘들어하면서 말이죠. 이졸데도 딕션이 별로. 무엇보다 2막에서 "Frau Minne will"(사랑의 여신의 의지다)를 대충 얼버무린 대목은 용서가 안 됩니다. 쿠르베날은 실력이 대단한 건 알겠는데, 그 좋은 실력을 제대로 못(안) 뽑아낸 듯. 트위터 보니 몸 상태가 최상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한국에만 오면 갑자기 아픈 가수가 한둘이 아니라 뭐…-_-; 마르케 왕은 잘하기는 했지만, 연광철 샘을 비롯해서 훨씬 잘하는 한국인 가수가 여럿이라… 1막 1장에 나오는 선원은 가사의 표면만 읽고 리트처럼 부르더군요. 맥락 다 무시하고 가사의 표면만 보면 잘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전체 드라마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이 대목이 이렇게 되고 맙니다.

뭐, 무려 《트리스탄과 이졸데》였다는 점을 헤아리고 나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내년에는 니나 스템메, 린다 왓슨, 로버트 딘 스미스, 스티븐 굴드, 뭐 이런 분들 좀… 그래도 서울시향이 국내 오케스트라 중에 돈 제일 많잖아요? ^^;


나중에 붙임:

존 맥 매스터(트리스탄), 이름가르트 빌스마이어(이졸데), 예카테리나 구바노바 (브랑게네), 크리스토퍼 몰트먼(쿠르베날), 미하일 페트렌코(마르케 왕), 외

Soloists : John Mac Master(Tristan), Irmgard Vilsmaier(Isolde), Ekaterina Gubanova(Brangane), Christopher Maltman(Kurwenal), Mikhail Petrenko(Marke)

2011년 6월 28일 화요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 /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 휴 울프 / 서울시향

2011-06-03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 휘 : 휴 울프
바이올린 :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프로그램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을 15곡 남겼다. 그러나 9번 교향곡을 들어보면 쇼스타코비치가 '9번의 저주'를 의식했음을 역설적으로 알 수 있다. 베토벤 이래 교향곡 9번이라 하면 작곡가가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 진지한 작품, 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작품 등으로 여겨지곤 했다. 그런데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은 숫자가 주는 상징성과는 달리 유머로 가득하다. 웃음으로 저주를 물리치고자 했다는 뜻이다. 번스타인은 '9번'이라는 숫자 자체가 이 작품에서는 유머라고도 했다.

분위기가 가벼워서인지, 이 작품은 지휘자가 개성을 드러낼 만한 대목이 좀처럼 없다. 음반을 들어 봐도 비슷비슷한데, 지휘자 휴 울프는 그래도 나름대로 자기 색깔을 넣고자 노력하는 듯했다. 2악장 템포를 악보에서 지시한 ♩= 208보다 두 배나 느리게 잡은 대목은 그다지 특이하지 않다. 그런데 마디를 잘게 나눠 박자를 저어준 대목은 참 인상 깊었다. 템포가 이처럼 느리면 리듬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고 이른바 '만득이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 이 문제를 가장 손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휴 울프처럼 해주는 것이지만, 모양새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더 좋은 앙상블을 이끌어 내고자 지휘자가 그만큼 노력했다는 뜻이니 칭찬해 마땅하다.

휴 울프는 단원들에게 맡겨도 될 만한 독주 악구까지 지휘봉으로 모두 통제하는 듯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4악장에서 5악장으로 넘어갈 때 템포 변화였다. 악보에서 지시한 템포는 4악장 ♪ = 84, 5악장 도입부 ♩= 100이다. 4악장에서 5악장으로 곧바로 넘어가면서 바순 독주가 갑자기 템포를 바꾸고 리듬도 빨라진다. 점잖은 유머다. 그러나 휴 울프는 이 대목을 좀 더 매끄럽게 다스리고 싶었나 보다. 4악장에서 5악장으로 넘어가면서 템포 변화를 거의 주지 않았고, 주제 선율이 두 번째로 되풀이될 때에 아첼레란도를 주었다. 현악기가 주제 선율을 받을 때에는 악보에서 지시한 ♩= 100보다 좀 더 빠른 ♩= 120쯤으로 달렸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만큼 멋진 바순 독주가 있는 관현악곡은 드물다. 바순은 다른 악기와 섞이면 존재감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바순은 독주 악기라기보다는 다른 악기와 섞어서 음색에 변화를 주는 악기이며, 이런 바순에 독주를 맡기려면 다른 악기를 조심해서 써야 한다. 오케스트라 바순 주자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그런데 이날 오랜만에 곽정선 수석이 멋진 솜씨를 뽐냈다. 곽정선은 얼마 전까지 직책이 수석대행이었지만, 이번에 시향 홈페이지에 가 보니 수석으로 바뀌었다.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가 곽정선을 홀로 일으켜 세운 일만 세 차례나 되었다.

또 지금은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수석이 된 전임 트럼펫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가 오랜만에 객원으로 솜씨를 뽐냈다. 트롬본 수석 노릇을 한 객원 연주자도 훌륭했는데, 누군가 싶어서 알아보니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앙투안 가네(Antoine Ganaye)라고 한다. 2악장에서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과 함께 멋진 연주를 들려준 못 보던 클라리넷 연주자가 있어서 시향 홈페이지에 가 보니 이름이 정은원이다. 3악장에서 피콜로를 연주한 장선아도 훌륭했다.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에서는 E♭ 클라리넷을 연주한 임상우 부수석이 돋보였다. 본디 악보에는 D조 클라리넷으로 연주하라고 나오지만, 이 악기는 요즘 거의 사라진 탓에 E♭ 클라리넷으로 이조해 연주하는 일이 보통이다. 지난해 3월 스테판 애즈버리 지휘로 같은 곡을 연주했을 때에도 임상우가 E♭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이날도 그때처럼 곧고 날카롭고 빈틈없는 소리가 멋졌다.

지난해 연주와 견주자면 이날 앙상블이 좀 더 깔끔했지 싶다. 그날 몇몇 연주자들이 실수했던 대목이 이번에는 모두 말끔하기도 했다. 다만, 매끄럽고 균형 잡힌 소리 때문인지 음향 효과를 과감하게 살리는 맛은 조금 모자랐다. 템포 변화도 애즈버리와 견주면 평면적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녹음한 협주곡 음반을 들어 보면, 바이올린 소리가 작아서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지 못해 답답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티큘레이션에서도 절제가 묻어난다. 그런데 이날 브람스 협주곡을 들어보니 음반과는 달리 남들보다 소리가 아주 조금 작을 뿐이었다. 이날 연주는 모든 면에서 이성과 감성이 브람스답게 조화를 이룬 명연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악기를 온몸으로 연주하는데 소리가 저렇게밖에 안 난다고? 현대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더니 그 때문일까?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과연, 소리가 작은 악기인데 테츨라프라서 티가 덜 나는 것이란다. 현 네 줄에서 뽑아내는 음색이 테츨라프만큼 고른 연주자도 없는 듯한데, 이 또한 악기 때문일까, 아니면 연주법에 무슨 비밀이 있을까? 테츨라프가 쓰는 그라이너 바이올린이 모델로 삼았다는 과르네리 바이올린을 테츨라프가 연주하면 어떨지 궁금하다. 또는, 옛날에 썼다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으로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하면 어떨지도 궁금하다.

2011년 6월 27일 월요일

베토벤 교향곡 5번 /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 넬손 괴르너 / 성시연 / 서울시향

2011-05-19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성시연
피아노 : 넬손 괴르너

드보르자크, 사육제 서곡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베토벤, 교향곡 5번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음악을 들으면서 지휘 흉내를 낸 일이 있는가. 베토벤 교향곡 5번이야말로 '남이 보면 안 되는 지휘 생쇼'를 하기에 가장 신 나는 곡일 터. 그런데 실제로 지휘하려면 '운명 모티프'라 불리는 첫 두 마디부터 만만치 않다. 처음부터 빠른 음형이 그것도 여린박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예비박을 어찌 줘야 할까? 8분음표로 시작하므로 8분음표만큼 예비박을 주면, 비팅(beating)이 너무 날카로워서 악단이 첫 박으로 착각하기 딱 좋다. 지휘자에 따라서는 아예 예비박이 아닌 예비 '마디'를 세 마디나 넣어 헷갈리지 않게끔 하기도 하지만, 실용적이기는 해도 모양새가 영 좋지 않다.

지휘자 성시연은 지휘봉을 살짝 올렸다가 멈춘 다음 날카로운 예비박을 주는 모범적인 지휘를 했다. 그런데 아뿔싸! 몇몇 단원이 반 박자 빨리 나오는 바람에 이른바 '만득이 현상'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곡이 워낙 이러니 실연 때 이런 일이 곧잘 일어난다. 마침 이날 프라하 스메타나 홀에서는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지휘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같은 곡을 연주했는데, 방송 녹음을 들어 보니 바이올린 연주자 하나가 반 박자도 아니고 한 박자나 빨리 튀어나오는 사고 현장이 마이크에 또렷하게 잡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따따따 따안―' 할 때 긴 음에는 늘임표(fermata)가 붙어 있다. 얼마만큼 늘여야 할까? '늘임표'라는 말에 맞게 감으로 대충 늘일 수도 있겠고, 제시부 끝과 코다에서 비슷한 음형이 나올 때 늘어난 음 길이를 근거로 한 마디를 세 마디로 늘일 수도 있겠다. 음반을 들어 보면 아예 늘임표를 무시하는 연주도 있다. 성시연은 감으로 대충 늘인 듯했으며, 둘째 마디를 네 마디쯤으로 늘이고 넷째-다섯째 마디를 다섯 마디쯤으로 늘였다. 이처럼 이 곡을 들어보면 처음부터 지휘자가 여러 가지로 고민했을 흔적이 드러난다.

악기 편성도 문제다. 옛날에는 악보에서 지시한 것보다 훨씬 큰 편성으로 연주하는 일이 잦았지만, 요즘은 악보 지시를 그대로 지키는 일이 보통이다. 이날 서울시향은 호른 한 대를 더블링(doubling)한 것을 빼면 악보에서 지시한 2관 편성을 그대로 지켰다. (현악기는 글쓴이가 객석에서 세어 보니 5-5-4-4-3 편성이었다.) 이른바 '역사주의 연주'가 힘을 얻으면서 생긴 유행으로, 정명훈 지휘자도 시향 개편 초기에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면서 9번 교향곡을 뺀 모든 곡을 악보대로 편성했다. 지난해 9월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지휘한 로렌스 르네스도 비슷한 시도를 한 바 있다.

관습적으로 금관을 덧붙이는 등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던 대목을 악보 그대로 연주한 것 또한 역사주의를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1악장 제시부 제2 주제를 여는 E♭ 장조 호른 음형은 재현부에서 바순이 C 장조로 연주하는데, 이 곡이 나왔을 당시 호른으로 연주할 수 없는 음형이라서 베토벤이 할 수 없이 호른이 아닌 바순에 맡겼다는 주장이 있다. 4악장 마디 132에서는 비슷한 근거로 악보에 없는 금관 음형을 덧붙여 연주하는 관습이 있었다. 작품이 끝날 무렵에 트럼펫이 주선율을 연주하도록 고치기도 한다. 이날 서울시향은 이 대목을 모두 악보대로 연주했다.

이처럼 소편성으로 연주하고 금관을 덧붙이지도 않으면 투명한 음색과 날렵한 리듬을 살리기에 좋다. 그러나 대형 연주회장에서는 음량이 작아서 단점이 따르기도 한다. 연주회장 음향이 그다지 좋지 않으면 더욱 그렇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음향이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들 하지만, 외국에서 이름난 연주회장과 견주면 그다지 좋은 연주회장이라 하기 어렵다. 글쓴이는 이날 1층 뒷자리에 앉은 탓에 이런 단점을 크게 느꼈다. 귀로 들은 것만으로 판단하자면, 이날 연주는 소리가 둥글둥글하고 마이크로다이내믹스(micro-dynamics)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곳이 많았다. 물론 이것은 글쓴이가 음향적 왜곡을 경험한 것으로 실제 연주는 그렇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요즘 유행하는 말 가운데 '중2병'이라는 것이 있다. 사춘기 시절 과대망상을 희화화하는 말이며 맥락에 따라 욕설에 가까운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2병도 예술로 승화하면 걸작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시사평론가 한윤형은 타나카 요시키가 쓴 대하소설 『은하영웅전설』을 두고 "가장 탁월한 중2병 텍스트"라 논평하며 『삼국지』와 견주기도 했다. 게다가 어찌 보면 서양 낭만주의 시대에는 중2병이 시대정신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가장 탁월한 중2병 작곡가는 쇼팽바그너다. '자폐형 중2병'과 '민폐형 중2병'으로 성격은 거꾸로지만.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 넬손 괴르너는 가장 탁월한 '중2병 아티큘레이션'을 들려주었다. 툭 건드리면 울어버릴 듯한 표정이 묻어나는 프레이징, 때때로 너무하다 싶을 만큼 흔들리는 루바토, 그리고 물결에 되비친 햇살처럼 반짝이는 음색이 알맞게 어우러져 그야말로 '중2병스러움'이 예술로 승화했다. '중2병'이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든다면 '옴므 파탈'(Homme fatal)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2011년 5월 16일 월요일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 /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 스베틀린 루세브 / 리오 후세인 / 서울시향

2011-03-24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리오 후세인
협연: 스베틀린 루세브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1945년판)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어라? 그런데 이번에는 잘린 곳이 없는 듯? 으허허허! >_<


예술 사조를 구분 짓는 잣대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들이대는 오류를 무릅쓴다면, 드뷔시스트라빈스키모더니즘이 미처 꽃피기에 앞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씨앗을 뿌린 작곡가라 할 수 있다. 이 말을 설명하려면 20세기 모더니즘 음악을 대표할 만한 이른바 '12음 음악'의 뿌리를 캐 봐야 한다.

18세기 화성 이론을 세운 작곡가이자 이론가 장필리프 라모는 화성 진행 원리를 뉴턴 중력 이론에 빗대어 설명하며 음악이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생각을 퍼트렸다. 이에 따라 음악 이론과 계몽주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이것이 베토벤에 이르러 "고난을 거쳐 별들의 나라로"(per aspera ad astra)라는 말과 더불어 인류가 끝없이 발전하고 진보하리라는 믿음으로 발전했다.

12음 음악 또한 이러한 음악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서양음악이 '발전'하던 방향으로 미루어 볼 때 12음 음악이 나타난 일은 필연이라는 주장에 수많은 음악학자가 동의한다. 따라서 12음 음악은 오해와 달리 전통과 단절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전통을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드뷔시스트라빈스키야말로 뿌리 깊은 전통을 거부한 혁명가이다. 조성을 버리지는 않았으나 기능 화성 작법에서 벗어나 음악이 '발전'하지 않고 그저 흐르고 자라고 되돌아오게끔 했기 때문이다. 드뷔시는 이단아 취급을 받은 정도였지만, 스트라빈스키모더니즘이 힘을 얻던 때를 만나 모진 비난을 견뎌야 했다. 이를테면 아도르노는 스트라빈스키가 "지붕을 뜯어내 버렸고, 그래서 이제 그의 대머리 위로 빗물이 흐른다"라며 비꼬았다.

모더니즘이 절정에 이르며 조금씩 한계를 드러내던 때에 불레즈는 「쇤베르크는 죽었다」라는 악명 높은 글을 내놓았다. 이 글에서 불레즈는 19세기 음악을 확장·완성했을 뿐인 쇤베르크가 아니라 음색을 현대적으로 다루는 법을 알려준 베베른을 작곡가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색이 중요해지면서 드뷔시스트라빈스키말러 등과 함께 재조명 받았다.

오늘날 드뷔시스트라빈스키 곡을 연주하려면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무엇보다 《불새》는 스트라빈스키 자신이 지휘해 남긴 음반이 있어서 작품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낱낱이 알 수 있는데, 이 작품을 새로 연주하려면 그것을 그대로 따라야 할까? 스트라빈스키가 의도한 바를 멋지게 '배신'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불레즈는 음 하나하나가 낭비 없이 드러나도록 하며 베베른 음악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음색선율'(Klangfarbenmelodie)을 《불새》에서도 연상하게끔 했다. 리카르도 샤이는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라는 특급 악단의 기능성을 살리며 세련되고 균형 잘 잡힌 음색을 뽑아냈다.

서울시향을 지휘한 리오 후세인은 조금 느린 템포로 소리를 꼼꼼하게 풀어냈으며, 때때로 연주가 너무 차분해서 긴장감이 떨어진 대목은 옥에 티였다. 현 소리에 비브라토로 멋을 내어 낭만주의 냄새를 풍긴 대목은 음악에 감정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스트라빈스키가 들었다면 싫어했을 법하다. 그러나 예술의 전당이라는 대형 연주회장과 그에 걸맞은 대편성 악단이 연주할 때 이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데다가 스트라빈스키가 뜻한 바를 곧이곧대로 살리는 일이 반드시 옳지도 않다.

지휘자가 보인 작품 해석은 무난했으며, 서울시향 실력에 걸맞은 깔끔한 앙상블과 다채로운 음색을 이끌어낸 대목은 칭찬할 만했다. 도입부가 끝날 무렵 나오는 변주에서 플루트와 피콜로가 새 소리를 흉내 내고 다른 악기가 그것을 따라 하는 대목이 가장 훌륭했고, 신 나게 두드려 대는 〈코시체이 왕의 사악한 춤〉도 멋졌다. 크게 부풀어 오르며 '브라보'를 부르는 〈피날레〉도 좋았다.

첫 곡으로 연주한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에서도 모범적인 해석에 깔끔한 앙상블이 돋보였으며, 무엇보다 목관악기 연주자들이 아름다운 음색을 뽐냈다.

드뷔시는 프랑스 작곡가이고,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작곡가이나 《불새》는 목관악기 비중을 높이는 등 프랑스 청중을 고려해 작곡했다. 멘델스존은 독일 작곡가이지만, 이날 협연자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인 스베틀린 루세브였다. 서울시향 악장이기도 한 스베틀린 루세브는 사실 국적은 불가리아이나 연주에서 프랑스 느낌이 많이 묻어났다. 다른 연주자가 끊어 연주하는 곳도 웬만하면 매끄럽게 이어 연주했으며, 반드시 스타카토로 연주해야 하는 곳만 너무 거칠지 않게 끊어 연주했다. 포르타멘토는 프랑스식 포르타멘토라 불리는 B-포르타멘토를 썼다.

스베틀린 루세브는 지난 2008년 12월에 베토벤 협주곡을 협연하기도 했는데, 그때와 견주면 연주법은 비슷했으나 베토벤보다는 멘델스존이 루세브와 더 잘 맞는 듯했다. 서울시향과 함께한 시간이 더 쌓인 만큼 오케스트라와 더욱 한 몸처럼 어우러진 탓도 있겠다.

2011년 4월 7일 목요일

시벨리우스 《포흐욜라의 딸》 /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 유카페카 사라스테 / 서울시향

2011-02-24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유카페카 사라스테

시벨리우스, 포흐욜라의 딸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입니다. ㅡ,.ㅡa


역사와 전통이 있는 악단일수록 단원들 자존심도 그만큼 대단해서, 어지간한 지휘자는 말 안 듣는 단원들 때문에 골탕을 먹기 일쑤다. 그런데 서울시향은 그와 달리 지휘자가 무슨 요구를 하든 다 들어준다고 한다. 게다가 요즘 서울시향은 유럽 기준으로도 기본기는 탄탄하므로 일류 지휘자에게도 매력 있는 악단이라는 말을 글쓴이는 언젠가 한 단원에게 들은 일이 있다. 그래서 거장 샤를르 뒤투아가 객원 지휘했을 때 분위기가 그렇게나 좋았다던가.

글쓴이가 객석에서 듣기에도 일리 있는 말이다. 요즘 서울시향은 그만큼 지휘자 솜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거물급 지휘자 유카-페카 사라스테가 서울시향을 지휘했다. 이날 연주는 그 이상 말이 필요 없을 만큼 대단했다.

그런데 사라스테가 보여준 작품 해석은 조금 뜻밖이었다. 핀란드 출신 지휘자가 시벨리우스를 지휘하면 북유럽 서늘한 공기처럼 고음을 부풀릴 듯하지만, 이날 연주에서는 거꾸로 현이건 관이건 저음이 너무 두드러졌다는 불평이 나오기까지 했다. 《포흐욜라의 딸》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오케스트라를 눈부시게 뚫고 나올 때에는 역시 핀란드 지휘자라는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단단한 저음을 바탕으로 균형 잘 잡힌 소리였다.

'사라스테 사운드'는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발췌 모음곡에서 좀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 단단한 저음, 균형 잡힌 소리, 그리고 조금이라도 균형을 해칠 만한 대목은 빈틈없이 다듬어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소리가 객석을 압도했다. 정명훈이 큰 틀을 짜고 나머지는 단원들에게 맡기는 식으로 소리를 다스린다면, 사라스테는 작은 소리까지 지휘봉 끝에 휘어잡아 소리를 빚어냈다.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 곳으로 이를테면 〈몬타규 가와 카풀렛 가〉에서 '줄리엣' 모티프가 처음으로 나온 대목(마디 63)을 들 수 있다. 플루트가 연주하는 주선율은 아름답지만, 약음기 낀 비올라 음형에 글리산도(음 사이를 미끄러지듯 연주하기)가 있어서 문제다. 플루트 소리와 비올라 소리가 합쳐지면서 옥타브 하행 도약에 음산한 글리산도가 덧입혀져 주선율을 비틀어버리기 때문이다. 음반을 들어보면 지휘자에 따라 일부러 이곳에서 기괴한 느낌을 살리기도 한다.

그런데 사라스테는 글리산도 음형을 들릴 듯 말 듯하게 다스려 플루트가 주선율을 확실하게 이끌고 가게끔 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비올라 글리산도 음형이 마치 왈츠를 추는 줄리엣처럼 사뿐사뿐 했다는 대목이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음색과 셈여림, 악기 간 균형 따위가 상호작용하여 음반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마법이 일어났다.

'사라스테 사운드'가 가장 충격적으로 드러난 곡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이었다. 글쓴이는 언젠가 이 곡을 두고 '달콤한 절망과 거짓된 승리' '현실을 회피해버린 작곡가의 정신적 마스터베이션' 등으로 풀이한 바 있다. 겉보기에는 법석대며 화려하게 끝나지만 그 이면에 처절하게 궁상맞은 정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연주에서는 병든 광기가 철저하게 억눌린 대신 잘 계산된 세련미가 덧입혀져 마치 브람스가 새로 편곡이라도 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자칫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 대목은 대선율이 주선율을 치고 올라오게 하거나 악기 간 균형을 정교하게 다듬어 세련됨을 잃지 않게끔 했고, 곳곳에서 이음매가 자연스럽도록 템포를 다스리기도 했다. 그래서 사납게 몰아치는 대목에서도 절박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아니라 여유를 잃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어 마치 차이콥스키가 아닌 말러를 듣는 듯하기도 했다.

'이건 차이콥스키가 아니야!' 누군가는 이렇게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움베르토 에코)라는 말이 있듯 한 가지 해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차이콥스키는 자신이 떠올린 아름다운 선율을 베토벤이나 브람스처럼 정교한 짜임새로 풀어내는 솜씨가 모자람을 곧잘 한탄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가 이날 연주를 들었다면 자신의 약점을 없애준 연주라며 지휘자 손을 덥석 잡고 고마워하지는 않았을까.

이날 첼로 수석을 맡은 객원은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관현악단 수석인 루이지 피오바노(Luigi Piovano)로 서울시향과는 아마도 두 번째이지 싶다. 그런데 피오바노가 서울시향 객원 수석을 처음 맡았던 날을 글쓴이는 시향 개편 이후 최악의 연주회로 기억한다. 그날 시향이 연주를 망친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개편 초기 취약점을 거의 털어낸 서울시향이 이날 피오바노를 다시 만나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반갑기 때문이다.

현악 파트는 보통 수석 연주자가 활놀림을 결정한다. 가끔은 악보에 지시가 있거나 지휘자 요구가 반영되기도 하지만, 그런 예외를 빼면 수석 연주자가 누구냐에 따라 파트 음색이 확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이날 피오바노를 만난 서울시향은 평소와는 크게 달라져 고무공처럼 통통 튀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첼로 소리를 뽐냈다. 첼로를 따라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덩달아 달라지기도 했는데, 첼로와 활놀림을 맞춘 탓인 듯했다.

2010년 12월 31일 금요일

2010년 클래식 음악계 주요 사건 ③ 국내 소식

트위터로 떠들기만 했더니 정리하기 쉽지 않네요. 놓친 내용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 서울시향, 유럽에서 상품성 인정받아

저는 이것을 올해 있었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 참고: http://goo.gl/jJsJo

2. 지휘자 구자범, 광주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고도 광주시와 갈등 끝에 경기필로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54592

'구자범 신드롬'은 말러 교향곡 2번 광주 MBC 다큐멘터리를 봐도 조금 알 수 있지만, 직접 광주에 가서 《라 보엠》 공연을 보니 제대로 알 수 있겠더군요. 광주시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는 나중에 얘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3. 인천시향 음악감독 정명훈 → 금난새

인천시장 송영길이 정명훈을 자르고 금난새를 그 자리에… http://goo.gl/PQtT

금난새는 경기필 음악감독 겸임하려다 재계약 불가 통보받고는, 도의회 간담회에서 "충격과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다" http://goo.gl/j17xU

4. 지휘자 정치용, 원주시향에서 잘리다

원주시가 정치용을 일방적으로 해고, 음악감독 체제를 상임지휘자 체제로 바꾸면서 새로 지휘자를 뽑았습니다. http://goo.gl/LL4ck

지휘자 정치용이 당한 굴욕을 정명훈이 바스티유에서 쫓겨난 일에 빗댄 강원일보 사설 http://goo.gl/opqO7

5.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진, 샌드위치 사 먹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도둑맞다

도둑맞은 스트라디바리우스 연합뉴스 기사 http://goo.gl/R4ZFA

샌드위치 가게 점원은 김민진 씨가 당시 아이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고 증언 http://goo.gl/oasAC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라는 네티즌 여론.;;

절도범 3명이 잡혔는데 두 명은 미성년자. 그러나 바이올린은 못 찾았다네요. http://goo.gl/NUQW4

6. 서울시향 트럼펫 수석, RCO 수석 되다

알렉상드르 바티(Alexander Baty)는 본디 라디오 프랑스 수석입니다. 그런데 서울시향 객원으로 활동하다 서울시향 수석도 겸하게 됐습니다. 이번에 콘세르트허바우 수석이 되면서 둘 다 그만둔 모양인데요, 그러나 객원으로 서울시향에 더 자주 올 수 있다고 합니다. 어제 말러 교향곡 3번 연주회 때에도 엄청난 연주를 들려줬죠.

알렉상드르 바티가 비중 있게 활약한 연주회 리뷰 참고:
http://wagnerianwk.blogspot.com/search/label/Alexander%20Baty

7. 〈엘 시스테마〉가 국내에서도 주목받다

《엘 시스테마》 영화도 개봉되고, 여러 단체에서 일단 무늬는 비슷한 시도를 했고, 교육부에서도 나섰습니다.

처음에는 문제 학교 100개 지정 및 악기 구입비와 방음교실 설치비 지원 계획 발표. 김원철은 돈을 주고 나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는 없어서 답답하다고 논평. http://goo.gl/E9R9

무작정 도입하기만 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세우라는 한국경제 사설 http://goo.gl/GieM

뒤이어 내년 1~2월 사이에 교육부에서 베네수엘라에 시찰단을 파견한다는 반가운 소식. 일정은 곽승 지휘자 베네수엘라 연주회에 맞췄는데, 곽승은 18년째 〈엘 시스테마〉를 후원해 왔다네요! "우리나라에서는 학교 위주의 활동이면 성공 가능성이 충분할 것" http://goo.gl/DZSDC

8. 작곡가 진은숙,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시리즈 영국판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에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현대음악 프로그램 〈오늘의 음악〉(Music of Today) 예술감독 된다는 소식.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연주회가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결과라네요. http://goo.gl/sbxJ

진은숙이 '모나코 피에르 대공 작곡상'을 받았다는 소식도. 수상작은 《구갈론-거리극의 장면들》. 10월 16일 서울시향이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연주회에서 한국 초연. http://bit.ly/dcopU9

9. 모 음대 '쓰리썸' 교수 사건

좋지 않은 소식이므로 링크만: http://goo.gl/wBcIj

이런 일은 음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카더라' http://goo.gl/xl84Y

10.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2016년으로 준공 연기

이런저런 이유로 연기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므로…-_-; http://goo.gl/xJ5Uy

처음부터 딱 필요한 것만 (연주회장이라든가, 연주회장이라든가, 연주회장이라든가) 짓든가 참나.

한국일보 사설 http://bit.ly/9bI1M1

박범신 작가 한겨레 사설 "예술은 우리 모두가 함께 향유하는 것이니, 복지와 같다. […] 시의원들이 할 일은 그런 것이다." http://goo.gl/U7Jri

안태호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 연구원 반박 사설: http://goo.gl/ulMxE

2010년 12월 24일 금요일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 브람스 교향곡 1번 ― 다비트 아프캄 / 바이바 스크리데 / 서울시향

2010-11-18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다비트 아프캄 David Afkham, conductor
협연 : 바이바 스크리데 (바이올린) Baiba Skride, violin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Beethoven, Violin Concerto
브람스, 교향곡 1번 Brahms, Symphony No. 1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본디 이날 지휘자가 마크 위글스워스였는데, 이 인간이 일정 취소하고 인디애나폴리스 오케스트라로 갈아탔음. 공식 사유는 건강 문제. 잊지 않겠다. -_-^


서양음악에서 셈여림이 음악적 표현 수단으로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때는 대략 18세기 중반부터였다. 악기가 크게 개량되고 터키(오스만 튀르크)에서 타악기가 수입되었으며, 여기에 고전주의 음악 양식이 맞물려 나타났다. 오늘날 쓰이는 셈여림 기호는 대부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이 만들었다. 그리고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에도 이러한 흐름에 따른 뚜렷한 셈여림 대비가 나타난다.

협연자 바이바 스크리데는 독주 바이올린으로도 뚜렷한 셈여림 대비를 만들었고, 그 중심에 이른바 '소토 보체'(sotto voce)가 있었다. 소토 보체란 본디 성악에서 쓰는 말로 여린 목소리를 뜻한다. 그러나 '피아니시모' 등과는 달리 그저 소리를 작게 내라는 뜻이 아니라 여린 소리로도 음악적 긴장감을 잃지 말고 돋보이게 하라는 뜻이다.

바이올린으로 가장 멋진 소토 보체를 뽐내는 연주자로는 바딤 레핀이 있는데, 윗활을 곧잘 써서 매끄럽게 빛나는 음색에 어찌 들으면 능글맞은 포르타멘토를 곁들이곤 한다. 스크리데는 그와 달리 가냘프게 늘어지는 소리를 들려주었으며, '소토 보체'라는 말 그대로 연주가 아닌 '노래'를 하는 듯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1악장에서 발전부를 한참 지나 g단조로 바뀌는 마디 330부터였다. 스크리데는 이곳에서 템포를 뚝 떨어트려 여린 소리를 내다가 오케스트라가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마디 361에 이르러서야 아첼레란도 및 크레셴도를 거쳐 재현부로 돌아왔고, 그로써 재현부 으뜸화음이 눈부시게 돋보이기도 했다.

2악장에서는 둘째 변주가 끝날 무렵 쉼표와 셋잇단음이 네 차례 이어지는 대목(마디 27)에서 소토 보체와 함께 디미누엔도, 랄렌탄도, 루바토를 알맞게 섞어서 마치 울먹이는 듯한 효과를 불러온 대목이 가슴 뭉클했다.

3악장에서는 소토 보체를 빼놓더라도 곳곳에서 성악적 감수성이 묻어나는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돋보였고, 코다에서 그동안 쌓인 음악적 긴장감이 으뜸화음을 만나 폭발하면서 그 에너지가 독주 바이올린 f# 음에 집중되는 마디 331이 가장 훌륭했다.

카덴차는 크라이슬러 것을 연주했으며, 다만 2악장 카덴차는 첫 마디 아르페지오만 연주하고 넘어갔다.

지휘자 다비트 아프캄은 지난 9월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지휘한 로렌스 르네스처럼 현을 6-5-4-3-2로 편성했고, 악기 배치도 유럽식으로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좌우로 나누고 첼로 등을 가운데로 모았다. 로렌스 르네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또한 역사주의 연주에 영향받은 바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브람스 교향곡 1번에서는 현을 7-7-6-5-4로 부풀렸으며, 다만 관악기는 호른을 한 대 더블링(doubling)한 것을 빼면 2관 편성을 지켰다. 저음 현으로 갈수록 가볍게 편성한 탓에 이를테면 1악장에서 때때로 저음 현 음형이 잘 안 들리는 등 단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적으로는 장점이 되었고,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이 좌우로 나뉜 배치에서 오는 '스테레오 효과'가 두드러지게끔 했다.

이를테면 3악장 곳곳에서 '스테레오 효과'가 멋졌으며, 4악장 이른바 '알프스 호른' 대목에서는 좌우로 펼쳐진 바이올린 소리가 물결에 반짝이는 아침 햇살처럼 빛났다. 4악장 코다에서 절정을 바로 앞두고 '음 하나하나를 매우 또렷하게'(ben marcato) 지시가 있는 마디 395-406에서는 '스테레오 효과'와 함께 마치 벌판에서 말 달리는 듯한 현 소리가 가장 돋보였다.

템포는 조금 빨랐고, 그 가운데 3악장이 제법 빨랐다. 4악장에서는 '알프스 호른' 대목과 제1 주제를 지나 경과구(transition)로 넘어가기에 앞서 아첼레란도를 주었는데, 그 뒤로 웬만하면 템포를 늦추지 않고 꾸준히 달리면서 음악적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다가 마지막에 크게 터트렸다.

호른이 '알프스 호른' 대목을 비롯한 곳곳에서 깔끔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이 곡에서 제법 비중이 높은 악기인 오보에도 훌륭했다. 그 가운데 오보에 수석 이미성서울시향이 개편한 뒤로 악단과 함께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더욱 칭찬할 만하다. 이미성은 처음부터 직책이 '수석'은 아니었다. 그러나 음악적 표현력이 나날이 좋아져서, 지난해 1월 연주회 리뷰에서 글쓴이는 이미성이 "벽을 넘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성은 수석 단원이 되었으며, 이날은 더욱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다.

서울시향정명훈이 지휘할 때 가장 뛰어남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젊은 악단'이기 때문일까. 서울시향은 젊고 솜씨 있는 지휘자를 만났을 때 깜짝 놀랄 만한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또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지휘자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어서 젊고 훌륭한 지휘자가 곧잘 눈에 띈다. 그리고 1983년생 다비트 아프캄 또한 이날 연주를 들어 보니 크게 될 사람이 틀림없다. 이름을 기억해 두시라.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말러 교향곡 10번 (데릭 쿡 판본) ― 제임스 드프리스트 / 서울시향

2010-10-07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제임스 드프리스트 James DePreist, conductor

말러, 교향곡 제10번 (데릭 쿡 버전 Ⅱ)
Mahler, Symphony No. 10 (Deryck Cooke ver. 2)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입니다. 이번에는 편집을 조금 이상하게 해서 마치 김문경 씨가 지어낸 말을 제가 표절해 쓴 것처럼 되어버렸더군요. ㅠ.ㅠ 새삼 밝혀 두지만, '사나운 브람스'와 '흰 건반 베베른'은 제가 아니라 김문경 씨가 지어낸 말입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낭만주의 마지막 세대 작곡가이자 현대음악 시대를 여는데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리고 현대음악과 관련해 말러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현대적인 관현악법에서 나오는 현대적인 음색이다. 음악학자 달하우스는 말러 교향곡 1번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돈 후안》이 발표된 1889년을 음악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으며 '음악적 모더니즘'이 이때부터 비롯했다고 보는데, 현대적인 관현악법이 두 작품에서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음색이야말로 현대음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현대음악말러'가 본격적으로 재조명 받은 때는 20세기 후반부터다. 불레즈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이러한 생각을 이끌었고, 몇몇 작곡가는 지휘자로도 활동하며 새로운 말러 해석을 내놓았으며, 현대음악에 관심 있는 전문 지휘자들이 함께 하며 큰 흐름을 만들어 갔다. 오디오 기술이 발전하고 '마크 레빈슨' 등 현대적인 소리를 뽐내는 명품 오디오 브랜드가 성공을 거두면서 '현대음악말러'가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바탕 또한 마련되었다.

음악평론가 김문경은 말러를 낭만주의자로 보는 전통적인 말러 해석을 '사나운 브람스' 계열이라 이름 붙였으며, 번스타인, 텐슈테트, 바비롤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현대적인 말러 해석은 '흰 건반 베베른' 계열이라 할 수 있으며 불레즈, 길렌, 샤이, 마이클 틸슨 토머스 등을 대표적인 지휘자로 꼽을 수 있다.

이번 서울시향 연주회에서 말러 교향곡 10번을 지휘한 제임스 드프리스트는 '흰 건반 베베른' 계열 해석을 선보였다. 숨어있는 성부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드러내며 다채로운 음색을 잘 살렸다는 대목에서 그렇게 볼 수 있겠는데, 그러나 소리를 예쁘게 다듬는데 신경을 많이 써서 현대음악다운 무표정함이 묻어날 때는 드물었다.

때때로 목관 악기로 맛깔스런 앙상블을 살려내어 '식물성 음색'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를테면 2악장에서 바그너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를 인용한 듯 목관 악기가 아기자기하게 얽히는 대목이 그랬으며, 이곳에서 서울시향 목관악기 연주자들은 매우 훌륭한 앙상블을 만들어 냈다.

말러 음악에 곧잘 나오는 신경질적이고 때로 악마적이기까지 한 음형은 지휘자가 달콤쌉쌀한 느낌을 앞세우고 예쁘게 다듬은 음색 속에 녹아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클라리넷 부수석 임상우가 연주한 E♭조 클라리넷이나 부악장 웨인 린이 연주한 독주 바이올린 등이 좀 더 되바라진 소리를 내지 못한 대목은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달콤한 슬픔'이 가장 서럽게 흐르는 5악장에서 커다란 효과를 거두었으며, 마치 1악장부터 4악장까지가 모두 5악장을 돋보이게 하는 긴 전주곡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플루트 수석 박지은이 연주한 칸틸레나(cantilena) 선율은 너무나 애달팠고, 김미연이 연주한 큰북 소리는 심장을 내려치는 듯했다. 코다에 바로 앞서 칸틸레나 주제로 크게 부풀리는 대목에서는 누구라도 울컥하는 느낌을 받았으리라.

5악장 마지막에 현이 부풀어 오르는 이른바 '알므슈!'(Almsh!) 대목은 말러답지 않게 너무 단순하고 뜬금없다고 느껴진다. 이것은 말러가 남긴 스케치에 그리 쓰여 있다고 하지만, 만약 오케스트레이션까지 말러가 완성했다면 이 대목을 조금 더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어떻게든 손을 보지 않았을까. 이날 지휘자는 크레셴도를 써서 성긴 이음매를 만들었으나 서울시향이 만들어낸 크레셴도가 썩 매끄럽지는 않았다. 루바토를 좀 더 쓰거나 해서 부드럽게 다스렸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말러 교향곡 10번은 4단짜리 약식 총보로는 말러가 끝까지 완성했으며, 데릭 쿡 등이 완성한 판본에서 오케스트레이션과 대위구 첨가 수준을 넘어 완전히 새로 쓰여진 곳은 없다. 이런 까닭에 글쓴이는 이 작품을 사실상 완성된 악곡으로 보는 관점에 동의해 왔다. 그러나 말러를 '음악적 모더니즘'의 아버지로 본다면 이 작품에 '음색'이라는 핵심 요소가 미완성이라는 사실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완성판 녹음을 남긴 지휘자가 대부분 '흰 건반 베베른' 계열 지휘자인 까닭 또한 음색에 빈 곳을 메울 아이디어를 그들이 나름대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1악장만 연주해야 옳다는 뜻은 아니다. 데릭 쿡 판본을 가장 정통성 있는 '원전판'(Urtext) 악보처럼 여기되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판본이 꾸준히 시도되고 소개되어야 한다. 악보를 파기하라는 유언을 남긴 말러가 이것을 어찌 생각할지는 또 다른 문제이겠으나, 그리 따지자면 죽은 작곡가가 쓴 일기와 편지 따위를 연구하는 일 또한 죄스러운 일일 터이다. 어차피 관음증적 욕망을 떨치지 못한 동반자 의식을 지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열린 텍스트와 열린 마음이다. 카펜터, 마제티, 바르샤이, 또 다른 판본은 어떨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 베토벤 교향곡 3번 ― 김선욱 / 로렌스 르네스 / 서울시향

2010-09-16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로렌스 르네스 Lawrence Renes, conductor
협연 : 김선욱 (피아노) Sunwook Kim, piano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Mozart, Piano Concerto No. 27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Beethoven, Symphony No. 3 "Eroica"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원전연주' 또는 '정격연주'라는 말이 유행하며 격렬한 찬반 논란이 일어난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학술적 뿌리를 찾자면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한국에서만 해도 1985년에 원전연주 첫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원전'이네 '정격'이네 하는 말이 교조적이라 하여 시대 악기 연주(Period Performance) 또는 역사주의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등으로 고쳐 부른다.

그리고 요즘은 굳이 옛 악기와 옛 조율방식을 쓰지 않고도 옛 연주법 등을 현대 악기에 응용하는 연주도 드물지 않다. 아바도, 래틀, 하이팅크 등 역사주의와 관련이 없을 듯한 지휘자가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음반에서도 이러한 유행을 확인할 수 있고, 정명훈서울시향 베토벤 사이클에서 역사주의를 일부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정명훈-서울시향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할 때 4악장 도입부에서 트럼펫이 악보에 없는 주선율을 연주하는 관행을 따르지 않는 것도 역사주의와 관련이 있다.

이날 서울시향을 지휘해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연주한 로렌스 르네스 또한 역사주의 유행을 따랐다. 호른을 한 대 추가한 것을 빼면 악보에서 지시한 2관 편성을 정확히 지켰고 현악기 숫자도 평소보다 줄였다. 현악기는 글쓴이가 객석에서 세어본 바로는 6-5-4-3-2 편성이었는데, 5-5-5-5-4 등 관현악곡을 연주할 때 곧잘 쓰이는 편성과 견주면 새로웠다. 저음 현을 줄여 역사주의에 걸맞은 날렵한 소리를 노리면서도 바이올린은 오히려 더 늘여서 대형 연주회장에서도 음량이 너무 모자라지 않게끔 하려는 뜻으로 풀이되며, 결과는 썩 훌륭했다.

현악기 배치 또한 널리 쓰이는 미국식이 아니라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무대 양쪽에 펼쳐 놓고 첼로 등을 가운데로 모으는 유럽식이었다. 이런 배치는 악단 기량이 모자라면 앙상블이 엉망으로 망가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나 이날 연주는 제법 훌륭했다. 사실은 지난해 11월에 정명훈이 지휘한 모차르트구도자의 엄숙한 저녁기도》에서도 비슷한 배치를 쓴 바 있지만, 이날 연주에서는 그때보다 큰 편성으로 게다가 객원 지휘자가 지휘해도 훌륭한 앙상블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대목이 뜻깊다.

유럽식 악기 배치는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이 선율을 주고받으면서 '스테레오' 효과를 내기 좋다는 큰 장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작곡가들이 이런 배치를 고려하고 쓴 곡도 많다. 이날 연주에서는 무엇보다 푸가토에서 그 장점이 두드러졌으며, 복잡하게 얽힌 성부 하나하나가 무대 위에 고르게 늘어서서 사방으로 통통 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매우 멋있었다.

비브라토를 줄여 살짝 거칠지만 산뜻한 음색을 낸 것도 역사주의 연주가 보이는 특징인데, 이날 연주에서는 비브라토가 줄기는 했으나 '기름기'가 조금 덜 빠진 소리를 냈다. 지휘자가 의도한 바일 수도 있고, 올곧은 소편성이 아닌 탓도 있겠고, 어쩌면 서울시향이 아직 이런 연주에 익숙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연주회장 음향을 생각하면 이런 음색도 나쁘지 않았다.

템포는 빨랐다. 베토벤 시대 또는 그 이전 현악기로는 호흡이 긴 프레이즈를 만들기 어려우므로 템포가 빠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연주법이 결정될 때가 잦다. 그 느낌을 현대 악기로 연주할 때에도 살리려는 태도 또한 역사주의 연주가 보이는 중요한 특징이다. 그밖에 날렵한 리듬과 악센트 등도 이날 연주에서 나타난 역사주의적 특징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시대 악기로 연주할 때와 현대 악기로 연주할 때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을 한 곳만 꼽으라면 1악장 클라이맥스에서 제1 바이올린이 F-F♯-G-A♭-G-F 선율을 연주하는 마디 665~70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폭발하는 듯한 스포르찬도로 음악적 긴장감을 순식간에 끌어올리는 역할을 현악기가 이끌어야 하는데, 이 대목을 날렵한 맛이 떨어지는 현대 악기로 연주하면 제맛을 내기가 쉽지 않아서 호른과 트럼펫을 잔뜩 부풀린 단순한 크레셴도에 그치기 쉽다. 이날 연주는 역사주의적 방향에 힘입어 현대 악기 연주치고는 스포르찬도가 제법 훌륭했다.

김선욱이 협연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은 오케스트라가 피아노에 맞춰 준다기보다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반주를 하는 듯한 기막힌 어울림이 인상 깊었다. 김선욱은 어려서부터 학교 친구들 반주를 도맡아 하기로 이름이 높았다는데 그 덕분일까. 게다가 고전주의 시대 작품은 해석과 관련해 고민할 곳보다는 맛깔스러운 앙상블에 마음 쓸 곳이 많을 때가 잦아서 김선욱의 '반주 본능'이 더욱 빛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제 목소리 낼 곳은 다 내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 주었으니, 과연 김선욱이었다.

파야 《삼각모자 모음곡 2번》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슈만 교향곡 1번 ― 알반 게르하르트 / 헤수스 로페스-코보스 / 서울시향

2010-09-10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헤수스 로페스 코보스 Jesus Lopez-Cobos, conductor
협연 : 알반 게르하르트 (첼로) Alban Gerhardt, cello

파야, 삼각모자 모음곡 2번 Falla, El sombrero de Tres Picos: Suite No. 2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Tchaikovsky,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슈만, 교향곡 1번 "봄“ Schumann, Symphony No. 1 "Spring"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지휘자 헤수스 로페스-코보스는 마드리드 테아트로 레알 음악감독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그 레알, 축구 규칙도 잘 모르는 글쓴이도 익숙한 그 이름 탓일까. 글쓴이는 이날 서울시향 연주를 들으면서 로페스-코보스가 이끌어내는 음악이 어쩌면 축구 평론가들이 말하는 스페인 축구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파야 《삼각 모자 모음곡》 2번을 들을 때만 해도 그저 스페인 지휘자라서 스페인 음악을 잘하나 보다 싶었다. 게다가 지휘자가 쌓아온 경력이 만만치 않은 만큼 이날 연주는 객원 지휘자가 짧은 시간에 만들어낸 소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훌륭했으며, 정명훈라벨을 지휘할 때에나 들을 수 있는 정교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앙상블이 돋보였다.

그러나 슈만 교향곡 1번 연주는 그 단점까지도 스페인 축구와 닮아 있었다. 축구 얘기를 조금만 하자. 스페인에는 "멍청한 선수는 열심히 뛴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곳이 스페인이다 보니 열심히 뛰기보다 효율적으로 조금만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스페인 팀은 곧잘 상대편 체력을 갉아먹으며 경기를 지배하지만, 거꾸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생각이 많아져서 골로 연결하지 못할 때가 잦다고 한다.

이날 슈만 교향곡 1번이 그랬다. 대체로 앙상블이 깔끔하기는 했으나 결정적인 '한 방'이 빠져서 밋밋한 느낌. 이름값이 대단한 지휘자가 다스린 소리가 기대에 못 미친 까닭으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서울시향과 상성이 맞지 않았다. 로페스-코보스는 중요한 곳에서 악단을 확 잡아끌기보다는 단원들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게끔 하는 듯했으나, 서울시향은 유럽 일류 악단과는 달리 아직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하며 지휘자가 잘 이끌어줄 때에만 유럽 수준에 근접한 연주를 들려준다. 정명훈이 더없이 소중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둘째, 슈만 교향곡 1번은 연주할 때 자칫 맨송맨송해지기 쉬우며, 로페스-코보스와 서울시향 조합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것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베토벤 이후 낭만주의 교향곡 역사를 알아야 한다.

베토벤고전주의를 넘어서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혔지만, 한편으로는 낭만주의적 선율과는 맞지 않는 모티프 변형 기법을 유산으로 남겼다. '베토벤 딜레마'를 어찌할까. 슈베르트베토벤을 닮은 도입부 선율을 발전부에서 앞세워 전개시키며 베토벤을 흉내 냈다. 멘델스존은 달콤한 가락을 대위법으로 겹쳐 베토벤을 이으려 했다. 리스트와 프랑크는 모티프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네트워크로 묶어 바꿔나가는 기법을 개발했고, 바그너는 리스트를 흉내 냈다.

'모범답안'을 내놓은 사람은 브람스였으나, 슈만 교향곡 1번에는 그에 앞서 온갖 아이디어로 '사투'를 벌인 눈물겨운 흔적이 담겨 있다. 베토벤과 낭만주의가 어우러지게 하는 일에 슈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반복되는 리듬인데, 슈만이 작품 곳곳에 심어 놓은 '아이디어'를 잘 살리지 않으면 이 리듬 때문에 음악이 지루해지기 쉽다. 로페스-코보스와 서울시향은 바로 이 덫에 빠졌다. 지휘자가 '너무 조금 움직인' 탓이다. 금관 등이 몇 차례 실수도 했다.

음악에서 '로코코'라 하면 뜻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지만, 보통 바로크 양식이 고전주의 양식으로 바뀌어 가던 18세기 초·중반 양식을 가리킨다. 대위법을 바탕으로 하는 바로크 양식을 벗어나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의 화성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간결하면서도 밝고 우아한 양식으로 갈랑(galant) 양식이라고도 한다.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로코코 양식을 따르는 주제를 바탕으로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19세기 양식이며, 이러한 대목은 브람스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닮은꼴이다.

협연자 알반 게르하르트는 '로코코' 양식보다는 낭만주의 느낌을 한껏 살려 연주했으며, 곳곳에서 루바토를 두드러지게 쓰거나 때때로 매우 거친 활놀림을 보이기도 했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인지 'A' 현 상태가 좋지 않은 듯 때때로 삐끗하는 소리를 내기도 한 대목은 옥에 티였다. 앙코르로 연주한 두 곡이 모두 저음이 많아서 'A' 현을 쓰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이것을 빼면 연주는 매우 훌륭했다.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특이했던 곳으로 이를테면 마디 32~33에는 하행 음형을 중심으로 '점점 세게―세게―점점 여리게―매우 여리게' 연주하라는 지시가 있는데, 게르하르트는 도돌이표를 타고 두 번째로 연주하면서는 셈여림 지시를 무시하고 여리게(소토 보체) 루바토 섞어 연주했다.

처음에는 글쓴이도 몰랐던 사실 하나. 슈만 교향곡 1번을 연주할 때 알반 게르하르트가 슬쩍 들어와 뒷자리에 앉아 일개 객원 단원으로 연주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독주와는 달라서 수석 연주자가 정하거나 지휘자가 특별히 요구한 활놀림을 따라야 하는데, 그렇다면 게르하르트가 연습 때부터 이렇게 참여했다는 뜻이 된다. 참 성실한 연주자다.

2010년 6월 6일 일요일

메시앙 《잊혀진 제물》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라벨 《어미 거위》 《라 발스》 ― 비비아네 하그너 / 정명훈 / 서울시향

2010-05-20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정명훈
협연: Viviane Hagner

메시앙, 잊혀진 제물 Messiaen, Les Offrandes oubliées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Chin, Violin Concerto
라벨, 어미 거위 Ravel, Ma Mère l’Oye
라벨, 라 발스 Ravel, La Valse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5년을 준비해왔습니다. 이제는 유럽 무대에서도 꿀리지 않을 기량을 보여줄 자신이 있습니다.”

서울시향이 유럽 무대에서 연주한다. 억지로 만들어낸 연주회가 아니라 정식으로 초청받아 갔다고 한다. 김주호 대표 말처럼, 이제는 서울시향이 유럽에서 상품성을 인정받게 됐다는 뜻이다. 정명훈이라는 거장이 지닌 이름값만으로 악단이 덩달아 인정받기는 어렵다. 서울시향이 그만한 실력을 길렀기에 가능한 일이다.

"준비가 덜 됐을 때는 안 하는 게 나아요. 괜히 창피만 당한다고. 하지만 이젠 준비가 됐어요. 적어도, 유럽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선 겁니다.”

정명훈은 이렇게 말했단다. 지난 5년 동안 서울시향을 지켜본 글쓴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수석급 단원들은 웬만한 유럽 지방악단에서도 한 자리 차지할 만한 실력을 지녔고, 그 가운데 한둘은 유럽에서도 수석 자리를 노릴 만하다. 몇몇 외국인 단원은 유럽 악단 수석을 겸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재정적·행정적 지원이 있으면 그리 오래지 않아 이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이다. 역사와 전통 없이 현이 제대로 된 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서울시향이 유럽에 간다는 말은 현이 그만한 수준에 올랐다는 말이다. 글쓴이가 판단하기에 현악 연주자들이 보여주는 응집력이 때때로 유럽 수준을 살짝 넘보게 된 때가 지난해 즈음이다. 실수 없이 악보를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뉘앙스를 자연스럽게 살려내는 일이 지난해부터 차츰 늘고 있다. 악기군끼리 어우러짐 또한 크게 늘었다.

이날 연주회는 유럽에서 연주할 곡들을 미리 선보이는 자리였다. 그 가운데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이 가장 반가웠다. 서울시향이 이 곡을 연주한 일이 두어 차례 있지만, 글쓴이는 그때마다 다른 일 때문에 기회를 놓쳐서 실연은 이날 처음 들었다. 아직 악보를 개인에게 팔지 않고 오케스트라에 빌려주기만 하는지라 글쓴이는 이 곡을 음반으로만 알 수밖에 없었는데, 이날 연주를 들어보니 켄트 나가노가 지휘한 몬트리올 심포니 녹음은 너무 얌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은 마림바와 여러 타악기 따위를 음반보다 앞세워 가믈란(gamelan;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 또는 악기) 느낌을 조금 더 살렸고,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대등하게 어우러져 교향곡 느낌마저 들었다. 스튜디오 작업을 거친 음반이 실연과 다른 탓도 있겠으나, 그것을 헤아려도 이날 타악기가 독주 바이올린 소리를 자신 있게 치고 나올 때가 잦았다.

1악장에서 큰북이 내는 묵직한 소리가 독주 바이올린과 어우러지는 대목을 글쓴이는 참 좋아하는데, 이날 시향 타악기 연주자 김문홍이 무대 오른쪽에서 큰북을 맡아 마치 바이올린과 2중주를 하는 듯했다.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는 무대 왼쪽 벽 가운데쯤에 바짝 붙어서 글록켄슈필과 갖가지 타악기를 연주했고, 김미연은 무대 왼쪽 뒷벽에서 마림바 따위를 연주하는 등 타악기만으로도 입체감을 주었다.

여기에 다른 악기 소리가 마치 살아있는 빛알갱이처럼 뭉치고 흩어지곤 했으며, 독주 바이올린은 빛 가루를 뿌리며 무리를 이끌고 날아다니는 듯했다. 빛 요정들이 떠들썩하게 장난을 치는 모습이 이럴까. 협연을 맡은 비비아네 하그너는 어렵기로 소문난 이 곡을 마치 가볍게 몸 풀듯 아무렇지도 않게 연주하곤 했으나 개방현으로 연주하는 대목에서는 몇 차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라벨 관현악곡은 화려한 색채감을 빼면 짜임새가 단순해서 연주자의 해석이 끼어들 곳이 적으며, 음색을 얼마나 맛깔스럽게 살리느냐가 연주자에게 중요할 때가 잦다. 이날 연주된 《어미 거위》 모음곡과 《라 발스》 또한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지휘자 역할이 매우 중요하면서도 지휘자 못지않게 악단이 많은 주목을 받게 할 수 있으니 서울시향을 유럽에 알리기에 매우 훌륭한 곡이라 하겠다.

이날 연주는 시시콜콜 따질 일 없이 그저 좋았다고만 말해도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이미 여러 차례 연주한 일이 있어서 서울시향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곡이라고도 할 만한 《라 발스》는 말할 것도 없고, 《어미 거위》 모음곡 또한 심각한 표정 지을 일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곡에 나무랄 데 없는 연주였다.

메시앙 《잊혀진 제물》도 훌륭했지만, 사납게 몰아치는 가운데 부분에서 현이 조금 더 단단히 뭉친 소리를 내주었으면 싶었다. 서울시향이 앞으로 더 나아질 곳이 얼마든지 있음이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 하겠는데, 정명훈 말마따나 이번 유럽 연주 여행이 “서울시향의 단원들에게 큰 공부와 자극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자신들을 되돌아볼 기회도 생길 테고, 음향이 훌륭한 연주회장을 두루 경험해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눈이 잔뜩 높아질 서울시향 단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전용 연주회장이다. 계획에 차질 없이 하루빨리, 그러나 음향에는 배려에 모자람 없이 지어지기를 바란다.

2010년 4월 24일 토요일

하차투리안 플루트 협주곡 /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 샤론 베잘리 / 안드레아스 델프스 / 서울시향

2010-03-25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Andreas Delfs
협연 : Sharon Bezaly, flute

Kabalevsky, Colas Breugnon Overture
Khachaturian, Flute Concerto
Sibelius, Symphony No. 2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지휘자 안드레아스 델프스는 디에고 마테우스에 이은 '대타' 지휘자였다. 미코 프랑크가 몸이 아파서 잇따라 연주회를 취소했다는데, 디에고 마테우스가 대신 지휘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제법 아쉬웠다. 이날 프로그램에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코 프랑크는 핀란드 사람인데다 지난 2008년 3월에 가슴 뭉클한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을 들려준 일도 있어서 기대하고 있었으나, 대타로 나온 델프스는 호놀룰루 심포니 수석 지휘자라니 얄궂다. 오랫동안 밀워키 심포니 음악감독을 맡았다고는 하나 '하와이'라는 이름이 주는 햇볕 뜨거운 느낌이 도드라져서 시벨리우스와는 어딘가 안 맞을 듯하지 않은가!

지휘하는 품도 괄괄하고 서울시향이 내는 소리도 그다지 서늘하지 않았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뜻밖에 느리지 않은 템포에 제법 담백한 해석이었다. 그런데도 핀란드에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이 그다지 또렷하게 느껴지지 않은 까닭은 교향곡 7번과는 달리 시벨리우스가 아직 핀란드 본색(?)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교향곡 2번인 까닭이었을까. 글쓴이는 지휘자가 실력을 제대로 내보이지 않고 소리를 건성으로 다듬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만하면 연주가 꽤 훌륭해서 한두 해 앞서 이런 연주를 들었다면 잘했다고 호들갑을 떨었을지도 모르지만, 서울시향이 그동안 놀랍게 발전한 만큼 이제는 이런 정도로는 만족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지휘자는 1악장 처음에 섬세하게 바뀌는 셈여림 기호를 꼼꼼하게 살리지도 못했고, 저음 현만으로 음형을 이어받는 대목에서 소리가 갑자기 줄어들기도 했다. 뒤이어 오보에와 클라리넷이 첫째 주제를 연주할 때에는 템포를 갑자기 조여서 '꿰맨 자국'을 드러냈다.

둘째 주제에 앞서 4분음 피치카토 음형을 되풀이하는 곳에서는 차츰 빠르고 세게 연주해야 하며, 이때 시벨리우스는 둘째 주제를 알리는 관악기 소리가 첫 박을 쉬던 관성과 부딪히며 속도감을 더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날은 관악기가 한 박자 쉬고 들어가 버렸고, 이것은 말할 나위 없이 지휘자가 일부러 악보 지시를 어긴 탓이다. 1악장을 소나타 형식으로 본다면 재현부에 해당하는 대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악장에서는 절정에 해당하는 곳에서 실수가 있었다. 관악기가 포르티시모―메조포르테―포르티시시모(fff)를 오르내리며 목 놓아 울부짖다가(마디 167) 모두쉼표를 만나 살짝 숨을 돌린 다음 마지막으로 한 차례 더 울부짖는 대목(마디 182)이었다. 이 숨 막히는 마디 182에서 지휘자가 예비박을 제대로 안 준 탓에 연주자들이 멈칫해 버렸고, 선율을 이끌어야 했던 트럼펫 연주자가 실수를 저지른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이날 트럼펫 수석 노릇을 했던 연주자는 지난해 12월에도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었던 객원이었는데, 누군가 싶어 물어봤더니 알렉상드르 바티(Alexander Baty) 라디오 프랑스 수석이란다. 이 사람은 한때 서울시향 트럼펫 수석을 맡았던 가레스 플라워스 못지않게 훌륭한 연주자로 어떻게든 시향에 눌러 앉혔으면 싶은 사람이다. 이날 때때로 지휘자 등과 손발이 안 맞아 제 솜씨를 못 내는 듯싶을 때도 있었으나, 4악장에서 들려준 금빛 눈부신 팡파르는 너무나 훌륭했다.

트럼펫 못지않게 멋졌던 악기는 오보에였다. 제임스 버튼 부수석이 3악장 둘째 주제를 비롯한 곳곳에서 멋진 오보에 독주를 들려주었으며, 2악장 절정에 뒤이어 모든 악기가 소리를 차츰 줄이는 가운데 오보에가 홀로 소리를 키우는 마디 218에서는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빛이 솟아나는 듯했다.

하차투리안 플루트 협주곡은 관악기 및 타악기가 떠들썩한 데다가 본디 바이올린 협주곡이어서, 자칫 독주 악기가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혀 버리기 쉽다. 아닌 게 아니라 이날 때때로 위태로운 곳이 있었으며 1악장 맨 앞에서 더욱 그랬다. 협연을 맡은 샤론 베잘리는 처음에 한 옥타브 높여 연주하다가 마디 15에 이르러 도로 한 옥타브 낮추었고, 바로 이때 오케스트라 소리가 플루트 독주를 거의 덮다시피 했으나 지휘자와 악단이 손발이 안 맞았는지 그다지 재빨리 소리를 거두어들이지 못했다.

샤론 베잘리지난 2008년 11월에 모차르트 D 장조 협주곡 K.314서울시향과 협연한 일이 있다. 그날은 수많은 표정을 연주에 담아내어 듣는 이를 깜짝 놀라게 하더니, 이날 하차투리안 플루트 협주곡에서는 무시무시한 테크닉을 뽐냈으며 바이올린이 내는 카랑카랑한 소리가 아닌 맑은 플루트 소리로도 곡에 담긴 팽팽한 긴장감을 그럴싸하게 살려냈다.

바이올린 더블스톱(double stop) 주법이 쓰인 곳을 빠른 음형으로 메우는 등 원곡과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1악장 카덴차에서는 처음에 클라리넷과 선율을 주고받는 대목이 멋졌으며, 3악장에서는 플루트와 다른 목관 악기가 어지럽게 얽히는 마디 529에서 마치 숲 속에서 새들이 뾰로롱 뾰로롱 지저귀는 듯했다.

무엇보다 샤론 베잘리는 외모가 돋보였다. 금발에 깜찍한 얼굴이 어찌 보면 영화 《해리 포터》에 나오는 '헤르미온느' 에마 왓슨을 닮았다. 그렇게 보니 플루트는 요술 지팡이 같다. 아니, 요술피리인가?

2010년 3월 28일 일요일

R.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 하이든 첼로 협주곡 D 장조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 주연선 / 스테판 애즈버리 / 서울시향

2010년 2월 25일(목)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 Stefan Asbury
협연 : 주연선

R. Strauss, Till Eulenspiegels lustige Streiche
Haydn, Cello Concerto No. 2 in D
Shostakovich, Symphony No. 7 "Leningrad"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글쓴이는 스테판 애즈버리 팬이다. 현대음악 전문 지휘자라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을 뿐, 글쓴이는 그를 얀손스같은 스타 지휘자와 동급이라 여긴다면 믿으시겠는가? 이번 연주회에서 애즈버리가 얼마나 훌륭했는지는 첫 곡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에서부터 드러났다. 이 곡은 어지간한 유럽 지방 악단도 실황 음원을 들어보면 때때로 앙상블이 흐트러지기 일쑤일 만큼 연주하기 까다로운데, 이날 서울시향은 같은 기준으로도 썩 잘했다. 서울시향 솜씨가 그만큼 늘었기도 하겠으나, 이제껏 서울시향을 지휘한 사람 가운데 첫 곡에서 이토록 놀라운 소리를 뽑아낸 지휘자가 또 누가 있던가? 정명훈뿐이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길고 까다로운 곡이니만큼 앙상블이 살짝 흔들리는 일이 없지 않았으나, 애즈버리현대음악 전문 지휘자답게 음악 흐름에 가장 알맞은 음향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다스리는 남다른 솜씨를 보여주었다. 템포는 느린 편이었으며 3악장과 4악장 느린 대목에서는 템포를 몹시 느리게 잡아서 애달픈 느낌을 더했다. 그러나 빠른 곳에서는 악보에 있는 메트로놈 지시보다 오히려 빨라지기도 해서 굼뜬 느낌은 없었다.

가장 멋졌던 곳은 1악장 행진곡 리듬이 나오는 이른바 '침공(invasion)' 주제였다. 이 대목은 선율이 몹시 단순하고 유치해서 버르토크《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에서 패러디하며 잔뜩 비꼬기도 했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수룩한 선율이 아니라 작은북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차가운 음색이다. 이때 작은북은 마치 바이올린과 목관악기 따위가 행진곡 리듬을 연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끔 그 소리를 감싸 안아야 하는데, 애즈버리는 오케스트라 한가운데 바이올린과 비올라 사이에 작은북 한 대를 두어 자연스러운 음향을 이끌어 내었다.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가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긴 호흡으로 만들어가는 크레셴도에 마치 나치 시대 독일군이 멀리서부터 쳐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해 소름이 돋았다. 마디 365에서 심벌즈가 처음 나올 때 무대 뒤 작은북 두 대가 리듬을 이어받았으며, 에드워드 최는 이때 재빨리 무대 뒤로 가 셋이 함께 격렬한 총주와 어우러졌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던 곳을 말하자면, 이를테면 3악장 처음은 오르간 느낌이 나는 곳이나 이날 목관악기 소리가 조금 작아서 음향이 살아나지 못했다. 4악장에서 마지막 폭발을 앞두고 긴장감을 쌓아가다가 마디 566에 이르면 호른 독주가 나오는데, 이때 호른에 붙은 셈여림표는 포르테(f)이나 모든 현과 목관악기가 ff로 마치 울부짖는 듯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날 목관 악기 소리가 작아서 안타까웠다. 2악장에서 베이스 클라리넷이 선율을 이끌어가는 대목(마디 251)에서는 한 호흡에 부드럽게 이어 연주하지 않고 조각조각 끊어 연주했고 소리도 작았다. 이 대목은 악보를 보면 도대체 숨을 쉴 만한 곳이 없는데다가 이른바 '순환호흡'을 하더라도 음 하나하나가 길어서 매끄럽게 연주하기 어려워 보이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잘 연주하면 매우 멋진 곳이라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데 아쉬웠던 곳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체력이 모자란 탓이 아닐까 싶다. 금관악기는 그다지 큰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 곡이 트럼펫과 트롬본이 6대씩, 그리고 호른은 8대 또는 더블링(doubling)까지 생각하면 9대 이상 쓰이는 거대편성인 덕분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목관은 3관 편성이라 연주자들이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올해 서울시향말러 교향곡을 연주하겠다니 이참에 체력을 쌓아둘 필요가 있다. 그런데 대편성 곡을 연주하기에는 단원 수가 모자라 객원 연주자로 채워야 할 터이니 문제다.

시향 단원 가운데 이날 남달리 눈에 띈 연주자도 있었으니 E♭ 클라리넷을 연주한 임상우 부수석이다. 보통 '클라리넷' 하면 B♭ 또는 A조 클라리넷을 말하는데, 이날 클라리넷치고는 매우 높은 소리를 내던 악기가 바로 E♭ 클라리넷이며, 《틸 오일렌슈피겔》 악보에는 D조 클라리넷으로 나와있으나 요즘은 거의 사라진 악기라 보통 E♭ 클라리넷으로 연주한다. 이 곡에서는 B♭ 클라리넷보다 E♭ 클라리넷이 더 돋보이므로 채재일 수석이 아닌 임상우 부수석이 E♭ 클라리넷을 연주한 일이 이상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곡에 쓰인 무시무시한 고음은 플루트나 피콜로처럼 반짝여서도 안 되고, 오보에처럼 아련한 느낌이 들어서도 안 되며, 단단하면서도 날 선 송곳처럼 날카롭고 거침없어야 한다. 부드럽고 여린 소리를 누구보다 잘 내는 채재일이 이런 소리를 내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우며, 곧고 빈틈없는 소리를 내는 임상우야말로 이 악기에 알맞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에서도 임상우가 E♭ 클라리넷을 멋지게 연주했다.

하이든 작품은 딱히 독창적인 해석이 필요하지 않아서 연주자 기량이 민얼굴처럼 드러나므로 연주자에게는 오히려 가장 어렵다. 하이든 D 장조 첼로 협주곡을 협연한 주연선 또한 몇 군데 작은 실수를 해서 누리꾼 사이에서 혹평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 곡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터이므로 시향 수석 단원 솜씨를 뽐내려는 기획이라면 그다지 실속 없는 선곡이라 본다. 주연선이 연주하는 첼로는 비단결처럼 은은한 빛을 머금은 소리가 참으로 멋진데, 이것을 뽐내려면 19세기 곡 또는 애즈버리가 옌스 페터 마인츠와 협연해 음반을 남긴 윤이상 첼로 협주곡을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2010년 2월 24일 수요일

연주분석에 바탕을 둔 학술적 연주비평 가능성 모색: 정명훈이 지휘한 2006~2009 서울시향 정기연주회를 중심으로

제 석사 학위논문입니다.

Abstract

Performance Criticism based on Performance Analysis

- Focused on the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2006~2009 Season Concerts conducted by Myung-Whun Chung -

KIM, Won-Cheol
Department of Music, College of Music
The Graduate School
Seoul National University

Music criticism needs to be analytical, and performance criticism needs to be based on performance analysis. From this point of view, some examples of critical analysis and analytical criticism over music performances are reviewed. Subsequently, possibilities that performance criticism could be accepted as musicology are considered. Finally, the conductor Myung-Whun Chung was analytically criticized as an example of performance criticism based on performance analysis.

Theorists such as Nicholas Cook and John Rink showed recently that analytical procedures can be applied to music performances. Now that musical performances can be analyzed scientifically, they could also be criticized analytically. Therefore, possibilities are opened up that the concept of performance criticism as musicology could be accepted.

For the growth of performance criticism based on performance analysis, communications between journalistic criticism and performance analysis should be improved. Additionally, job security for critics must be provided in advance.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2009.12.30. 베토벤 교향곡 9번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2월 30일(수)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 정명훈
독창 : 이명주(소프라노) 김선정(메조소프라노) 김석철(테너) 임채준(베이스)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 d단조, 작품 125
Beethoven, Symphony No. 9 in d minor, Op.125 "Choral"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정명훈서울시향을 이끈 뒤로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는 정기연주회로는 이번이 세 번째다. 연말에 이 곡을 연주하는 일이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곡을 해마다 연주하면서 그때마다 눈에 띄게 나아진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반가운 마음이 훨씬 크다. 지난해와 견주어 수석급 연주자는 거의 바뀌지 않았으나 합주력이 두루 늘었으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휘자가 뜻한 바를 악단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날에는 지휘자의 해석이 아닌 그럴싸한 음악이 귀를 사로잡았다.

정명훈이 보여준 해석은 거의 그대로였다. 1악장 코다에 들어서며 고집저음(ostinato)이 나타나는 대목(마디 513)에서 긴 호흡으로 아첼레란도를 썼고, 4악장 처음과 2악장 둘째 주제(마디 97)에서 악보에 없는 트럼펫/호른 선율을 덧붙이는 관례를 따르지 않고 악보 그대로 연주한 일도 마찬가지였다. 3악장 마디 133에서 제2 바이올린이 악보에서 지시한 pp보다 세게 연주한 것도 비슷했는데, 다만 옛날에는 ff로 들렸으나 이날에는 mf쯤으로 들렸다. (객석 위치가 달라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악기 배치는 제법 달라졌다. 합창단을 합창석이 아닌 무대 위에 두고 팀파니를 오른쪽, 나머지 타악기를 무대 왼쪽 끝으로 몰았으며 트럼펫은 트롬본 오른쪽으로 두었다. 이 모든 일은 바로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사이에 있는 독창자를 배려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과 어우러지는 소리를 내려면 독창자를 그 사이에 두어야 옳다. 그러나 타악기와 트럼펫 등이 무대 뒷벽 쪽 음향 고약하기로 소문난 예술의 전당과 만나 독창자를 헷갈리게 하니 문제다. 바로 지난해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독창자는 뒤에 투명 반사판을 쓰고도 모자라 손을 귀에 대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나 끝내 4중창에서 화음이 자꾸만 어긋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악기 배치를 이처럼 바꾸니 마법이 일어났다. Deine Zauber binden wieder! 글쓴이는 실연을 들을 때면 처음부터 기대를 접곤 하는 4중창에서 뜻하지 않게 균형잡힌 소리를 듣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때 오케스트라는 음량을 크게 줄이기까지 했으며, 그런 가운데 4중창과 나란히 울리는 플루트 소리가 멋졌다. 다만, 이어지는 마디 305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좀 더 소리를 키웠으면 싶기도 했다.

테너 김석철은 지난 4월 말러 《대지의 노래》를 TIMF 앙상블 협연으로 멋지게 불러 글쓴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김석철은 목소리가 크고 시원시원하며, 무엇보다 리듬이 굼뜨지 않고 단단해서 앞날이 크게 기대되는 가수다. 이번 연주회도 매우 훌륭했으며, 빠른 리듬이나 화려한 멜리스마(한 음절에 많은 장식음)도 야무지게 다스렸다.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베이스나 바리톤은 많아도 훌륭한 테너는 드물어서 새삼 보물이 나타난 듯한 생각이 든다. 여린 소리를 잘 못 내고 음정이 살짝 흔들리곤 하는 단점을 이겨낸다면 세계를 뒤흔드는 가수가 될지도 모르니 기대하시라.

베이스 임채준 또한 단단한 리듬이 돋보였다. 이 곡에서 베이스(바리톤) 독창은 음역도 넓은데다가 긴 호흡으로 멜리스마를 풀어내야 해서 몹시 어려운 곡으로 꼽힌다. 그런데 임채준은 놀랍도록 깔끔한 리듬을 들려주었으며, 굳이 더 욕심을 내자면 목소리가 좀 더 묵직했으면 싶기도 했다. 또 딕션(diction)이 제법 훌륭했으나 이탈리아어 발음이 섞여 있었는데, 이를테면 'Freude'(환희)를 단모음으로 쪼개서 소리 내곤 했다.

소프라노 이명주는 맑게 빛나는 목소리로 4중창 선율을 잘 이끌었으며, 더욱이 여린 소리에서 남다른 솜씨를 뽐냈다. 목소리가 이토록 고우니 말러 교향곡 8번 제2 소프라노(그레첸)를 맡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는데, 까다로운 멜리스마에서 리듬이 살짝 늘어지는 단점을 이겨내고 고음에서도 여린 소리를 지켜낼 수 있다면 아주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조소프라노(알토) 김선정은 다른 사람보다 작은 역할이나마 균형잡힌 화음을 깔끔하게 잘 만들었다.

지난 22일 연주회 때 인상 깊었던 트럼펫 수석이 이번에도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고, 악기 특성 탓에 실수가 잦게 마련인 호른도 이날따라 현 소리와 맛깔스럽게 어우러지곤 했다. 더욱이 1악장 마디 139 또는 같은 음형이 나오는 마디 408에서 호른이 딱 알맞은 음량으로 리듬을 살린 대목이 매우 멋졌다.

이날 가장 멋졌던 곳 한 군데만 꼽자면 4악장 마디 92부터 마디 164까지였다. 첼로·콘트라베이스 레치타티보가 막 끝나고 합창 선율을 연주하면서 차근차근 소리를 키워가다가 마침내 금관이 선율을 받는 그 대목까지다. 이곳에서 이토록 긴 호흡으로 자연스러운 크레셴도를 이끌어낸 정명훈도 대단하고, 그 소리를 만들어낸 서울시향도 새삼 대단하다.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2009.12.22. 라벨 피아노 협주곡 / 《스페인 랩소디》 /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 조성진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2월 22일(화)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 정명훈
협연 : 조성진

Ravel, Rapsodie espagnole
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Op.14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조성진은 지난 11월에 만 열다섯 나이로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천재다. 이 콩쿠르는 생긴지 얼마 안 되었으나 지난 우승자가 가브륄리크, 블레하치 등 매우 화려해서 이번 우승은 대단한 사건이다. 덕분에 많은 기대를 모은 이날 연주회에서 조성진은 앳된 얼굴과는 너무도 다른 훌륭한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들려주었다.

조성진이 천재인 까닭은 자연스러운 프레이징과 루바토, 세련된 셈여림 따위로 음악을 다스릴 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품 구조와 흐름을 이해하고 음 하나하나가 그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테크닉만 앞세우면 기계처럼 딱딱해지게 마련이고,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루바토를 써 봐야 유치해질 뿐이다. 그러나 조성진은 음악에 끌려가지 않고 다스릴 줄 아는 경지에 벌써 올랐다. 그 '다스림'은 19세기 음악 패러다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했는데, 덕분에 이날 2악장이 참으로 멋졌다. 다만, 1·3악장에서는 좀 더 현대음악 느낌을 살렸으면 하는 욕심이 들 때도 더러 있었다. 음색을 제법 다채롭게 쓸 줄은 아는 듯했으니 오케스트라 협연 경험이 더 쌓이면 음색을 빚어내는 솜씨도 같이 늘어나리라 기대된다.

라벨 《스페인 랩소디》는 화려한 음향효과로 가득해서 지휘자가 소리를 얼마나 멋지게 다듬느냐와 오케스트라가 지휘자를 얼마나 따라가느냐가 중요한 곡이다. 이날 연주는 정명훈서울시향 이름에 걸맞게 참으로 멋졌다. 무엇보다 트럼펫 수석이 눈에 번쩍 띄었는데, '트럼펫' 하면 생각나는 금빛 눈부시게 번쩍이는 바로 그 소리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옛 수석이었던 가레스 플라워스가 떠난 자리가 제법 커 보이던 마당이라 이 연주자가 더욱 반가웠으며, 음색만큼은 플라워스보다 나은 듯해서 베를리오즈를 기대하게 했다.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은 영화에 빗대자면 B급 영화라 할 수 있다. 기괴한 4·5악장이 아니더라도 악보를 보면 음표 하나하나가 신경질을 부리는 듯한 느낌이 들며, 길고도 처절하게 궁상맞은 ― 차마 속된 말을 쓰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 ― 3악장은 이어지는 악장을 헤아리게끔 한다. 이러한 'B급' 정서는 음반으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잦은데, 정명훈은 바스티유 오페라와 함께 녹음한 음반에서 아예 불편한 정서를 싹 발라내고 세련된 음악으로 만들었으며 4·5악장은 사악한 느낌이 없으면서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화끈하다.

이날 서울시향 연주 또한 음반과 비슷했다.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첫 음을 살짝 늘여서 티 나지 않게 아첼레란도를 쓴 듯한 효과를 노렸으며, 첫 템포는 악보에서 지시한 ♩= 56보다 훨씬 느린 ♩= 36쯤으로 꿈처럼 어른어른한 느낌을 살렸다. 마디 17을 비롯해 이 곡에서 자주 나오는 지시어인 'animando'(생기있게)는 맥락을 보면 아첼레란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명훈은 제대로 살리면 매우 신경질적인 이 지시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러우나 무디지 않은 템포 변화를 주었다. 2악장 마디 43 등에 나오는 기괴한 바이올린 글리산도는 포르타멘토처럼 살짝만 미끄러져서 세련된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3악장에서는 이 악장이 얼마나 사랑스럽게 들릴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맑고 잔잔한 프레이징이 돋보였다.

4·5악장에서는 코넷과 트럼펫 따위를 너무 앞세우지 않고 모든 성부가 또렷이 들리게끔 균형을 맞추었다. 음반을 들어보면 무엇보다 5악장 '마녀의 론도'(Ronde du Sabbat)에서 정명훈만큼 음 하나하나를 잘 살린 녹음도 없는 듯한데, 이날은 튜바 따위가 좀 더 힘을 내었으나 코넷·트럼펫과 균형이 제법 잘 맞으면서도 좀 더 화끈했다. 4악장 코넷·트럼펫 선율은 보통 음 하나하나를 끊어(마르카토) 연주하나 정명훈은 제법 부드러운 논 레가토(non legato)로 다스렸다. 그러나 큰북과 팀파니 등이 힘껏 두드려대어서 화끈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음반과 뚜렷하게 다른 곳도 있었다. 이를테면 2악장에서 음반에서는 썼던 코넷을 이날은 쓰지 않았다. (2악장 코넷 성부는 베를리오즈가 나중에 자필 악보에 덧붙였으나 그냥 빼고 연주할 때가 잦다.) 1악장 마디 167에 있는 도돌이표 또한 음반과 달리 생략했다. 1악장 마디 198에서는 악보에 없는 아첼레란도를 썼는데, 이날은 음반처럼 가파르지 않고 아주 살짝만 빨라졌다.

라벨 《스페인 랩소디》에서 멋진 트럼펫 연주를 들려주었던 수석 연주자가 이번에는 코넷을 야무지게 연주했고,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은 장식음과 트릴로 가득해서 어렵기로 소문난 5악장 독주부를 음반과 거의 같은 빠른 템포로 나무랄 데 없이 연주했다. 3악장에서는 제임스 버튼이 연주한 잉글리시 호른과 이미성이 무대 밖에서 연주한 오보에가 마치 《라 트라비아타》 1막처럼 사랑스러운 선율을 주고받았다.

글 찾기

글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