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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4일 월요일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1번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프로코피예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재학생 시절에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썼고, 루빈스타인 피아노 콩쿠르에 이 곡을 결선 곡으로 들고 나가서 세계초연했다. 프로코피예프는 우여곡절 끝에 이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작품은 세 부분으로 된 단악장 곡이다. 짜임새가 특이하고 복잡해서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작곡가 자신이 설명한 짜임새를 바탕으로 해설한다.

이 곡은 긴 오케스트라 도입부로 시작하고, 피아노 독주는 오케스트라 도입부와 별다른 주제적 연관성이 없다. 부점 리듬이 두드러지는 제1 주제가 마침내 피아노 독주로 제시되고, 경과구를 지나 그로테스크한 제2 주제가 제시 및 변형된다. 경과구를 지나면 마치 종결구처럼 느껴지는 E장조 주제에 이어 '도입부 주제'가 재현된다.

그리고 발전부가 나와야 할 자리에 뜬금없이 새로운 주제가 마치 2악장처럼 느리게 나타나 변주된다.

템포가 다시 빨라지면서 스케르초 악장처럼 느껴지는 발전부가 시작된다. 앞서 종결구 주제처럼 나왔던 E장조 주제가 전개되고, 이어서 제1 주제가 전개되고, 카덴차로 이어진다.

재현부는 발전부의 연장인 양 슬그머니 나타난다. 오케스트라가 제2 주제를 전개하고, 이때 피아노는 제1 주제와 '리듬만 비슷하게' 나타난다. 경과구를 지나 종결구 느낌 E장조 주제가 재현되고, 도입부 주제가 마치 진정한 재현부의 시작처럼 재현되면서 곡이 끝난다.

2013년 7월 8일 월요일

작품 설명: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서곡,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책자에 실릴 글입니다.

▶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 서곡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는 성서에 나오는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왕과 바빌로니아로 끌려간 히브리 백성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나부코'라는 이름은 '느부갓네살'을 이탈리아식으로 축약한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지요. 이번에 경기필이 연주할 서곡에도 그 선율이 담겨 있습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히브리가 전쟁에서 바빌로니아에 패합니다. 예루살렘 왕의 조카인 이스마엘레는 예루살렘에 인질로 잡혀 온 바빌로니아의 페네나 공주와 사랑하는 사이로, 페네나를 탈출시키고 싶어합니다. 페네나의 언니인 아비가일레는 히브리 포로를 모두 풀어줄 테니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말하지만, 이스마엘레는 거절합니다. 자카리아는 솔로몬 성전을 파괴하려는 나부코 군대에 맞서 페네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인질극을 벌이고, 이스마엘레가 페네나를 구합니다.

아비가일레는 자신이 노예의 몸에서 태어났으며, 나부코 왕이 페네나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포로로 잡혀 온 자카리아는 페네나에게 유대교 율법을 가르치고, 페네나를 구한 이스마엘레를 히브리 사람들 앞에서 변호합니다. 한편, 나부코는 자신이 신이라고 선언했다가 벼락을 맞고 쓰러집니다. 아비가일레가 스스로 왕이 되었음을 선언하고, 페네나가 포함된 히브리 포로를 처형하고자 제정신이 아닌 나부코에게 승인 서명을 받아냅니다. 뒤늦게 사실을 깨달은 나부코가 아비가일레의 출생의 비밀을 밝히겠다고 협박하지만, 아비가일레는 증거를 없애고 나부코를 감금합니다. 노예가 된 히브리 포로들이 조국을 그리워하며 노래합니다.

페네나가 형장으로 끌려갈 때, 나부코가 제정신을 차리고 히브리 신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충신 압달로가 부하를 거느리고 나타납니다. 나부코가 앞장서며 페네나와 히브리 사람들을 구하고, 바빌로니아 신상이 저절로 부서집니다. 나부코는 히브리 사람들을 풀어 주고, 바빌로니아 백성으로 하여금 히브리 신을 찬양하게 합니다. 아비가일레는 독약을 마시고, 페네나와 이스마엘레에게 용서를 구하며, 히브리 신에게 자비를 구한 뒤 죽습니다.

▶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작곡가가 최초 구상 후 개정하는 과정에서 교향곡이 될 뻔했던 작품으로, 일반적인 협주곡과 달리 교향곡처럼 몰아치는 관현악에 피아노가 홀로 맞서야 하는 까닭에 협연자에게 엄청난 도전이 되는 작품입니다. 특히 1악장은 짜임새도 매우 길고 복잡해요.

1악장은 확장된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시부―발전부―재현부'를 기본 형태로 하는 소나타 형식에 관해 대충 아시는 분이라면, 강렬한 오케스트라 총주에 이어 여리게 흐르는 대목을 제시부 제2 주제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소나타 형식의 짜임새를 분석하려면 음 소재, 텍스처, 조성 구조 등을 복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여기서는 여러 주제로 된 '제1 주제군(thematic group)'이 한참 더 이어지고, 피아노가 처음 나올 때에도 제1 주제군을 이어가지요. 마침내 피아노 독주로 나오는 제2 주제는 느리고 달콤합니다.

▲ 1악장 제2주제

2악장은 그냥 편하게 들으면 됩니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애틋한 추억 한 자락,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보세요. "잘있나요? 저는 잘있어요!"

브람스는 자필 악보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Benedictus qui venit in nomine Dominus)"라고도 썼습니다. 시편에 나오는 말씀으로 레퀴엠 가사로도 곧잘 쓰이는 구절이지요. 이 곡을 쓰는 동안 브람스가 존경해 마지않았던 슈만이 죽음을 맞기도 했습니다.

3악장은 들뜬 분위기로 마구 달리는 즐거운 악장입니다. 론도 형식으로 A―B―A'―B'―푸가―A"―B"―카덴차―종결구 꼴 짜임새이고, 론도 주제(A)와 에피소드 주제(B)는 잘 들어보면 음악적 뿌리가 같지요. 사실은 1악장 제2 주제와도 뿌리가 같습니다. 푸가에서는 론도 주제와 에피소드 주제가 뒤섞이면서 마치 소나타 형식의 발전부와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가만 보면, 3악장 짜임새가 론도 형식이면서도 소나타 형식과 닮은꼴이기도 하지요! 종결구에서는 에피소드 주제(B)와 론도 주제(A)가 느리게 나온 다음, 곧바로 결승점으로 마구 달려갑니다. 마지막에 짧은 카덴차가 또 나옵니다.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곡을 통틀어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곡이지요. 구소련에서는 스탈린상을 받은 이 작품을 공산당을 찬양하는 걸작으로 선전해 왔지만, 오히려 이 곡은 스탈린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읽을 수 있는 양면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과 관련해 기막힌 사연이 있어요. 쇼스타코비치는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부인》을 발표했다가 스탈린 정권에 단단히 밉보입니다. 스탈린이 그 공연을 관람하고는,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서 쇼스타코비치를 직접 비판했거든요. 작품 속에 부패한 소련 경찰이 등장하는 등 스탈린의 심기를 거스르는 내용이 있기도 합니다. 서슬 퍼렇던 스탈린 정권 때 그런 일이 있었으니, 작곡가가 얼마나 큰 위협을 느꼈을지 짐작할 수 있겠죠?

그래서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4번 발표를 미루고 5번 교향곡을 작곡해 먼저 발표합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어둠에서 광명으로’ 짜임새를 사용하고, 어마어마한 승리의 팡파르로 곡을 끝맺었지요. 스탈린 정권은 이것을 '공산당의 위대한 승리'로 받아들였나 봅니다. 그러나 훗날 밝혀진 여러 증거는 예술가를 탄압하는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이 작품에 담겼음을 시사합니다.

1악장은 현악기의 돌림노래로 시작합니다. 목놓아 울부짖는 듯한 이 대목은 소나타 형식의 도입부, 그리고 바로 이어 나오는 바이올린의 느린 선율이 제1 주제라 할 수 있겠는데, 이곳에 나온 음형이 곡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제2 주제에 해당하는 음형은 도입부 음형과 뿌리가 같아요. 그러니까 첫 열두 마디쯤이 조각조각 나뉘어 1악장이 끝날 때까지 변형, 발전하는 짜임새입니다. 사실은 곡이 끝날 때까지 이 음형이 계속 변형되어 나오지요.

골치 아픈 얘기를 더 늘어놓지는 않을게요. 스탈린 시대 러시아를 상상하면서 들어 보세요.

▲ 1악장 바이올린 악보 1~14마디. 연필로 써놓은 흔적은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해석이며, 출처는 뉴욕필 디지털 도서관(http://archives.nyphil.org).

2악장에서는 무시무시한 냉소가 음악을 지배합니다. 작곡가가 일부러 듣기 싫게 잔뜩 꼬아놓은 음표로 가득해요.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대목이 없다시피 하므로, 집중해서 '시퍼렇게 날을 세워' 연주해야 제맛이 나는 악장입니다. 세상이 어딘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생각에 공감하고 분노해야만 이 악장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3악장은 현을 중심으로 서럽게 울어대는 악장입니다. 금관악기는 아예 나오지 않고, 가끔 목관악기와 하프가 거드는 정도이지요. 울다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게 아니라, 그냥 목놓아 울고 나서 허무하고 쓸쓸하게 끝납니다.

4악장은 '혁명이다!' 이 한 마디로 설명이 됩니다. 문제는 이 혁명이 어떻게 끝나느냐인데요, 앞서 이 작품이 스탈린 정권을 찬양하거나 비판하거나, 어느 쪽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양면적인 작품이라 했지요. '혁명'의 끝 또한 어느 쪽인지 애매합니다. 빛나는 승리일 수도 있겠지만, 또 어찌 들으면 그저 뜬금없고 과장되기만 한 정신승리 같기도 하거든요.

4악장 종결구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끝없이 찬란하게 쏟아지는 D 장조 으뜸화음입니다. 으뜸화음이 무려 74마디 가까이 음악을 지배하지요. 물론 중간에 화음이 조금씩 바뀌기는 하지만, 금관악기가 연주하는 주선율이 다른 화음을 불러올 때에도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거의 같은 음을 고집스럽게 연주하면서 으뜸화음의 '중력권'을 벗어나지 않게끔 합니다. 말러 교향곡 1번이 비슷하게 끝나는데, 아마도 쇼스타코비치가 말러를 흉내 냈을 거예요.

2011년 10월 5일 수요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회 (지휘: 구자범 · 협연: 장성)

poster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회

  • 2011년 10월 14일 금요일
  •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
  • 중학생 이상 입장가
  • 입장권: A석 3만원 / B석 2만원

프로그램

  • 본 윌리엄스 ―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 라벨 ― 피아노 협주곡 G장조 (협연: 장성)
  • 브람스 ― 교향곡 1번 c단조

본 윌리엄스 ―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레이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1872-1958)는 이름 표기를 주의해야 할 음악가이다. 영어 이름 "Ralph"는 '랄프' 또는 '레이프'라고 읽는데, 본 윌리엄스의 둘째 아내 우르술라가 쓴 전기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레이프'[Rayf]로 읽어야 한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은 16세기 영국 작곡가 토머스 탈리스(Thomas Tallis)가 쓴 찬송가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교회선법을 따르는 정선율(cantus firmus)과 16세기식 대위법, 아멘 종지(plagal cadence) 등으로 나타나는 고음악 양식에 영화 《반지의 제왕》에 배경음악으로 써도 어울릴 듯한 영국풍 선율이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이 모든 것이 현대적인 음악 어법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본 윌리엄스 음악 양식을 이룬다. 화성과 조성 구조는 후기 낭만주의의 반음계적 어법과 통하며, 불균등하고 불규칙한 악구(phrase) 구조는 영국 음악 전통에서 유래했으면서도 20세기 초 음악사적 흐름과도 맞닿는다.

그런가 하면 작곡가가 교회 오르간 연주자였던 만큼 16~17세기 영국 오르간 소리를 흉내 낸 대목이 작품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 작품은 현악 사중주단과 현악 오케스트라, 그리고 현악 연주자 2-2-2-2-1명으로 이루어진 제2 오케스트라로 편성되어 있고, 음악학자 에드윈 에반스(Edwin Evans)를 좇자면 이것은 영국 오르간을 이루는 서로 다른 건반들(Solo, Great, Choir)에 각각 해당한다. 본 윌리엄스는 제2 오케스트라를 제1 오케스트라와 되도록 떨어트려 놓으라고 지시했는데, 이것이 오르간 음향 효과를 얼마만큼 재현할지는 연주회장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라벨 ― 피아노 협주곡 G장조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라벨이 1929~31년 사이에 쓴 곡으로 작곡가의 후기 음악 양식이 잘 드러나 있으며, 밝고 즐거운 선율과 재즈 리듬, 화려한 음색, 바스크 지방의 민속음악적 요소 등이 특징적이다. 바스크는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걸쳐 있는 지방이며, 라벨은 바스크계 어머니에게서 음악적인 영감을 받은 듯하다. 음악학자 이내선은 이 작품을 두고 "그 음악적인 성격으로 보아서 바스크 광시곡[rhapsody]이라 해도 무방하다"라고 논평했다.

라벨은 관현악법의 대가로 화려한 색채를 음악에 담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작곡가였다. 이 곡에서는 프랑스 음악 양식과 스페인 음악 양식이 어우러진 음 소재가 화려한 관현악법을 만나 더욱 빛나며, 채찍과 우드블록(Wood Block), 탐탐, 트라이앵글 등 다양한 타악기가 쓰이기도 했다. 이 곡은 또한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 만큼 악기 하나하나에 까다로운 기교를 요구한다.

라벨이 이 작품에 재즈 리듬을 사용한 일은 재즈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으며, 이것을 두고 라벨은 “재즈는 현대 작곡가에게 매우 풍부하고 생생한 영감의 원천이며 재즈에 영향 받은 미국 작곡가들이 너무도 적다는 사실이 놀랍다”라고도 했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한국에서 영재 교육을 착실히 밟고 현재 독일에서 활동 중인 젊은 피아니스트 장성 씨가 협연을 맡는다. 지휘자 구자범이 이끄는 젊은 오케스트라 경기필이 어떤 해석으로 보여주게 될지 기대 된다.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음악 만화·드라마로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노다메 칸타빌레』 (니노미야 토모코 원작, TV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등으로도 알려짐) 전체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곡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브람스 ― 교향곡 1번 c단조 작품 68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양식적·미학적으로 베토벤 교향곡을 계승한 작품이다. 당시에 이름난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우는 이 작품을 두고 '베토벤 교향곡 10번'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말은 베토벤의 아류라는 뜻이 아니라 베토벤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극찬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피날레 주요 주제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피날레 주요 주제와 닮은꼴이며, 도입부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제1 주제와 닮은꼴이다.

베토벤은 고전주의를 완성하고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힌 작곡가이며, 그 뒤로 베토벤은 후대 작곡가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다. 따라서 베토벤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베토벤의 '후계자'라는 호칭을 얻는 일이 당시 작곡가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브람스―한슬리크 진영과 바그너 진영이 파벌 싸움을 벌인 일은 널리 알려졌으며, 오늘날까지도 이와 관련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베토벤은 고전주의를 넘어서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지만, 한편으로는 낭만주의적 선율과는 맞지 않는 모티프 변형 기법을 유산으로 남겼다. '베토벤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작곡가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닮은 도입부 선율을 발전부에서 앞세워 펼쳐 나가며 베토벤을 흉내 냈다. 멘델스존은 달콤한 가락을 대위법으로 겹쳐 베토벤을 이으려 했다. 리스트와 프랑크는 모티프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네트워크로 묶어 바꿔나가는 기법을 개발했고, 바그너는 리스트를 흉내 냈다. 슈만은 짧게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아이디어로 '사투'를 벌였다.

브람스는 '편법'에 매달리지 않고 정공법을 썼다. 베토벤의 모티프 변형 기법을 극한으로 발전시킨 것이 그것이며, 쇤베르크는 이것을 '발전적 변주'(developing variation)라 이름 붙였다. '모범답안'을 내놓은 브람스는 작곡 기법만 따진다면 누구나 인정할 만한 베토벤의 후계자가 되었다.

협연자 : 피아니스트 장성

1986년생, 현재 하노버 국립음대 실내악 석사, 피아노 최고 연주자 과정 중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피아노 전문 연주자 과정 졸업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 사사)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사 졸업 (임종필 사사)
한국예술종합학교 16세 영재 입학
예원학교 수석 입학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2011(Germany) 1등, 청중상
Valsesia Musica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taly) 1등
KIMF Competition (U.S.A) 1등
Schubert International Piano Duo Competition (Czech) 1등, 슈베르트 특별상
Nagoya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Japan)최연소 1등, 일본 엑스포협회상, 실내악상
중앙일보콩쿠르, 난파음악콩쿠르, KBS신인음악콩쿠르 1등

KBS교향악단,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대전시향, KNUA 심포니오케스트라 등 협연

지휘자 : 구자범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 철학과 재학 중 도독
독일 만하임 음대 대학원 지휘과 졸업
독일 하겐 시립 오페라 극장, 다름슈타트 국립 오페라 극장 지휘자
하노버 국립 오페라 극장 수석 지휘자
광주 시립교향악단 지휘자
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 티켓 예매 ―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MN=Y&GoodsCode=11012294

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인터뷰] 피아니스트 박종훈 ― ①

글: 김원철 · 정리: 박희은

피아니스트 박종훈. 라자르 베르만 사사. KBS 1FM 〈가정음악〉 진행. 재즈나 크로스오버(crossover) 음악 쪽에도 이름이 알려짐.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이런 단편적인 것들이었다. 그런데 박종훈이 이번에 경기필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그래서 피아니스트 박종훈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궁금했다. 직접 만나러 갔다.

인터뷰는 2011년 8월 26일 오전 10시부터 약 1시간 20분동안, 박종훈 자택 겸 사무실에서 있었다. 매니저 없이 박종훈 혼자 인터뷰에 참석했고, 경기필에서는 김원철과 박희은이 참석했다.

첫 인상은 딱 이 모습이었다. 낮고 부드럽고 차분한 목소리.

그런데… 김원철은 말하기 창피한 이유로 약속 시간에 15분쯤 늦었다. 그래서 박희은 씨가 먼저 가서 사진을 찍고, 희은 씨가 생각해 놓은 질문 거리 위주로 인터뷰를 먼저 진행했다. 이 글은 짜임새가 자연스럽도록 내용을 질문 순서에 맞게 편집한 것이다.

김원철: 아, (질문지를 희은 씨가) 인쇄까지 해왔으니까 이거 보고 하면 되겠네. 이거 다 보셨어요?
박종훈: 아뇨, 안봤어요. (웃음)
김원철: 미리 보면 재미가 없어요. 이거 깜짝 질문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웃음)
박희은: 아, 그 깜짝 질문은 제가 뺐어요.

(질문 내용을 스마트폰에 담아 왔는데, 이미 진행된 질문이 표시된 종이를 보면서 하면 편하겠다는 얘기. 그런데 박종훈 씨가 질문지를 미리 봤을까 봐 걱정했다. 미리 보고 각본대로 하면 재미가 없다.)

김원철: 음, 제가 이 자리에 없었으니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어떤 식으로 해석을 할지, 그런 걸 조금 말씀해주시면…

(이 질문을 희은 씨가 먼저 했다.)

박종훈: 아, 그거는… 글쎄요. (웃음)
박희은: 워낙 또 유명한 곡이라…
박종훈: 그쵸. 근데, 그… 제가 또 러시아 선생님한테 배워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박종훈은 라자르 베르만을 사사했다.)

화려함 속에 숨은 끈적끈적한 러시아 분위기 살려야

박종훈: 러시아 사람들은 되게 자부심이 있어요. 그래서 러시아 작곡가들이 쓴 곡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제대로 연주하기 힘들다라고 항상 얘기를 해요. 근데 그거를 첨에는 기분이 나빴는데, 좀 일리가 있는게 그… 옛날에 한번 연주하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갔는데, 굉장히 어둡고 추우면서도 뭔가 이… 끈적끈적하고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근데 그건 거기서 사는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게 있을 거 같더라고요. 근데… 뭐 제가 러시아 사람은 아니니까 100%는 힘들겠지만, 음…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부분들을 좀 해소를 시키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박희은: 어떤 오해를?
박종훈: 러시아 음악, 차이콥스키도 그렇고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물론 화려하지만 화려한게 가장 중요한 건 아니거든요. 화려함 내면에 숨어있는 그 러시아 특유의 우수적인 그런 거 있잖아요. 그거를 표현하고 싶어요. 될지 안 될진 잘 모르겠어요.

(조금 더 구체적인 해석 방향을 캐물었다.)

김원철: 음, 시간이 없으니까, 이거 빡센 것부터 빨리빨리…
다함께: 하하하…
김원철: 어떻게 해석할지 좀 더 구체적으로, 페달은 많이 쓰는게 좋은지 아니면 어떤 식으로…
박종훈: 하하, 그런 쪽으로.
김원철: 왜냐면 그게, 라흐마니노프가 페달을 많이 안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때문에 또 어떤 평론가는 '청교도 피아니스트'라는 말도 했는데, 이게 또 요즘 기준으로 보면 그런 것도 아닐 수도 있거든요.

(많고 적고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다. 라흐마니노프 시대와 오늘날은 역사적 맥락이 다르므로, 라흐마니노프가 페달을 적게 썼다는 말을 요즘 기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박종훈: 페달은… 가장 중요한 건 홀(연주회장)인 것 같아요.
다함께: 아!
박종훈: 예, 홀. 그게 사실은 어쿠스틱이 관련된 거니까, 울리는… 예술의 전당에서 독주회를 한다, 그러면 페달을 많이 못 써요.
김원철: 그렇죠. 음.
박종훈: 페달을 많이 밟고 빠른 패시지(passage; 악절 또는 악구)를 연주하면 아무것도 안 들려요. 근데 안 울리는 곳에서 연주할 때 굉장히 드라이하게(건조하게) 들릴 수 있죠. 그래서 그거는 모르겠어요. 음악적인 것보다는 홀에 따라서 좀 달라지는…

(그리고리 소콜로프가 생각났다. 연주회장 음향에 따라, 연주하는 피아노의 기계적 특성에 따라 연주법을 달리 한다는 대단한 연주자. 그런데 생각해 보니 박종훈은 음반 프로듀서이기도 하니까, 음향에 대해 전문적으로 이해하고 연주에 반영하는 일이 당연하다.)

김원철: 고양에서 한 번 연주해 보셨어요? 아람누리에서.
박종훈: 기억이 안 나요. 했는지 안 했는지.
김원철: 그러면, 루바토는 어떻게, 어느 만큼 쓰는게 좋은 것 같아요?

(※ 루바토: 박자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하는 연주법이나 창법.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인용.)

박종훈: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는 제가 (라흐마니노프) 본인이 연주한 것도 많이 들어봤는데, 음… 하는 곳에선 많이 하고 전반적으로는 많이 안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근데 그건 또 그 사람의 루바토니까 그걸 따라할 필요는 없는 거죠.
김원철: 그렇죠.

▲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협연한 녹음. 스토콥스키 지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1929년.

박종훈: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음악을 연주할 때 루바토라든가 뭐… 악보에 있지 않은 거를 한다는 거는 2차적이라고 생각해요.
김원철: 2차적이라는 말은 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아니면은…
박종훈: 2차적인거죠. 1차적인거는 음… 좋은 곡이 있잖아요. 좋은 곡은, 음악적으로·연주적으로 접근했을 때, 좋은 곡이라는 거는 누가 쳐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 연주가 좋다는 거는, 그 사람의 연주가 좋은 거지. 그래서 물론 표현이 더 잘되고 음악에 담겨 있는 거를 더 많이 끄집어내는 건데, 쇼팽도 그렇고 리스트도 그렇고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굉장히 낭만적인 곡들을 보면 루바토를 많이 하게 되잖아요? 근데… (한 동안 침묵) 스타일적인 요소에서 하는 루바토가 있어요. 그거는 스타일도 그렇고 꼭 루바토를 거기서 해야만 감정이 표현이 되는 게 아니고, 거기서 루바토를 하는 것이 그 시대 그 음악의 스타일이기 때문에 더 적합한 그런 부분이고, 그게 아닌데 연주자가 감정에 몰입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근데 저는 그 루바토를 통해서 음악을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는 생각 안 해요.

(매우 조심스러운 말투, 원론적이고 무난한 답변이다. 작품 해석을 묻는 질문에는 조심스럽게 답할 수밖에 없을 터, 그러나 만족스러운 답변이 나올 때까지 좀 더 캐물어 봤다.)

김원철: 음, 그건… 일반적인 말씀을 해주셨고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는 루바토를 많이 쓰는게 좋을까요, 조금 쓰는게 좋을까요.
박종훈: 그건 모르죠. (웃음) 어떤게 좋은지 모르는데, 저는 많이 안 쓰…는 편이에요.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답했다. 그렇다면, 루바토를 빼놓더라도, 연주에 자의적인 해석이 어디까지 허용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김원철: 그러면요, 아까 악보에 없는 얘기, 그런 얘기도 하셨지만… 도입부에 화음 나오고… 그 부분만 보더라도, ○○○ 같은 사람은 악보대로 안 하고 아르페지오를 쓴단 말이에요.

(아르페지오=펼침화음 : 화음을 이루는 각 음들을 한꺼번에 소리 내지 않고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또는 오르내리는 꼴로 내도록 한 화음. 『표준국어대사전』)

박종훈: 아, 그 사람은 손이 작아서 그래요.
박희은: 하하하…
김원철: 아, 그런 거예요? 아~ 그렇구나! 어허허, 그런…
박종훈: 그거는 절대, 손이 크면 아르페지오를 쓰면 안돼요.
박희은: 선생님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닿으세요?
김원철: 난 옥타브를 겨우 짚는데. 흐흐…
박종훈: 도에서 미. 근데 저는, 그거는 아르페지오 안 쳐도 돼요. 그 정도는 닿는데, ○○○도 손이 컸으면 안 했을 거예요. 그거는 모든 피아니스트가 다 손이 크냐 작으냐의 문제지. (웃음)
김원철: 손이 만약에 웬만큼 큰데도 이거는… 연주자가 아르페지오로 하면 더 멋있겠다… 악보에 없는 거를 했을 때, 그게 음악적 맥락에 따라 용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박종훈: 그거는 자기 맘이죠. 평가는 딴 사람이 하는거고.

(루바토를 적게 쓰는 일과는 다른 문제다. 재즈 연주도 곧잘 하는 연주자라면 이런 대답이 자연스럽다.)

김원철: 그렇군요. 음… 그러면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러시아 작곡가들은 음악에 종소리를 표현하려고 그러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 작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도 종소리를 모방한 그런 게 많이 나오고. 그런데 러시아 종소리가 유럽에 있는 그런 종이랑, 우리가 생각하는 거랑 많이 다른 모양이더라고요. 혹시 러시아에서 직접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박종훈: 저는 그건 못 들어봤어요. 근데 저는 이탈리아에서 오래 살아서 종소리는 매일 매일 듣거든요? 근데 그 종소리라는 게 굉장히 특별한 것 같아요. 그니까 내가 여기 있다는 거를 되게 각인시켜준다 그럴까? 그냥 다른데서는 안듣는 소리를 매일 들으니까 일상적인 건데, 어… 되게 아름다워요. 녹음할 땐 좀 짜증 나는데… (웃음) 그렇긴 한데, 그거를 그냥 영상 없이 들을 때랑 음악에서 다시 표현한다고 생각했을 때, 그 느낌을 매일 매일 들었던 사람이랑 안 들었던 사람이랑은 다른 거죠.

김원철: 제가 이 질문을 왜 드렸냐면요, 러시아의 종은… 유럽은 종이 하나가 땡땡 치는 형태지만 러시아의 종은 여러 개고 크기도 제각각이고 그거를 온몸으로 막 연주를 한대요.

박종훈: 아, 다 그래요 이태리도 그래요.
김원철: 어디도 그렇다고요?
박종훈: 이태리도 그래요 대부분 다 그래요.
김원철: 어, 유럽이 그렇단 얘기는… 그게 왜 그… 어디서 특별히 다르냐면은, 그게 종소리가 여러 군데 온 몸으로 쳤을 때, 그게 말하자면 리듬의 헤테로포니, 막 이런 그…

(질문자, 당황했다.)

박종훈: 예. 그게 독일도 그렇고 스페인도 그렇구 이태리도 그렇구.
김원철: 어, 그렇군요. 난 안그렇다고 들었는데, 잘못 알았나.
박종훈: 근데 더, 더 심하겠죠. 뭐 더 심하니까 그렇게 얘기하겠죠.
김원철: 그런 음향적인 특징을… 음향적인 측면을 제일 잘 살린 거는 스트라빈스키 같은데, 라흐마니노프도 조금 그런… 이 작품만 들어 봐도 그런 게 찾아보면 있는 것 같기는 해요. 그래서 그런 걸 생각을 해보셨나 궁금해서 물어봤던 거고요.

(생각해 보면, 문화적인 차이가 지역 경계선을 따라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터, 책만 읽어서 편견이 생겼던 모양이다.)


▲ 박종훈이 유학했던 이몰라 피아노 아카데미 가까이 있는 볼로냐 산피에트로 성당 종소리

▲ 라흐마니노프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 근처 노브고로드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 종소리

1악장 마지막 화음 셋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해요

김원철: 이 작품에서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딘가요?
박종훈: 하하… (고민하는 표정.)
김원철: 딱 한 군데만.
박종훈: 제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요, 1악장 젤 마지막에 딴딴딴! 하고 끝날 때 딴딴, 요거를 피아노만 쳐요. 같이 딴딴딴! 하는게 아니라 빰딴빰! 이렇게… 거기가 제일 멋있다고 생각해요.
박희은: 오!
김원철: 아, 그렇군요.
박종훈: 아무도 그렇게 쓴 적 없어요 다른 작곡가들은.
김원철: 생각해보니 굉장히 멋있습니다.


▲ 루간스키 협연, 오라모 지휘,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 ©Warner Classics

김원철: 저는 일단 깨부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알라 마르시아'(alla Marcia; 행진곡풍으로) 꽝 꽝꽝…
다함께: (웃음)

©Warner Classics

김원철: 작품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요. 음… 프로필을 보니까는 재즈도 하시고 라디오 방송도 많이 하시고, 클래식 말고 다른 것도 하셨다는 점에서는 구자범 선생님이랑도, 뭐 좀 억지로 말하자면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구자범 선생님이랑 전에 한 번 협연을 해본 적이 있나요?
박종훈: 아니요. 첨이에요. 말씀은 정말 많이 들었는데, 언젠가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김원철: 구자범 선생님이 어떻다더라, 하고 소문을 들은게 있다면?
박종훈: 아뇨, 뛰어난 지휘자라는… 예, 특별하다.
김원철: 너무 아부만 하시는데.
다함께: (웃음)
박종훈: 아 제가 정말… 그런 얘기밖에 못 들었어요.
김원철: 오… 일단 좋은 소리만 들려오고 있군요. 음…

※ 이어지는 이야기:

▶ 어렸을 때 피아노 치고 놀았고, 바이올린은 싫어했어요
▶ 슬럼프로 힘들었던 줄리어드 유학 시절
▶ 줄리어드와 면도칼 괴담
▶ 라자르 베르만에게 배운 것들
▶ 라자르 베르만 선생님 돌아가실 때
▶ 박종훈의 사랑 이야기
▶ 박종훈의 첫사랑
▶ 박종훈이 부부싸움을 하면?
▶ 힘을 빼야 하느니라
▶ 인기를 얻으려면 콩쿠르 우승보다 ○○○를?
▶ 행운의 지갑?
▶ 크로스오버 음악에 도전하게 된 사연
▶ 리스트 음악이 체질에 맞아
▶ 음반 프로듀서 박종훈
▶ 라디오 진행자 박종훈
▶ 음악가가 되지 않았다면
▶ 루비스폴카, 강아지가 팔짝!

― 티켓 예매 ―

고양아람누리
http://www.artgy.or.kr/PF/PF0201V.aspx?showid=0000003323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MN=Y&GoodsCode=11010067

☞ [인터뷰] 피아니스트 박종훈 ― ②

2011년 6월 27일 월요일

베토벤 교향곡 5번 /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 넬손 괴르너 / 성시연 / 서울시향

2011-05-19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성시연
피아노 : 넬손 괴르너

드보르자크, 사육제 서곡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베토벤, 교향곡 5번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음악을 들으면서 지휘 흉내를 낸 일이 있는가. 베토벤 교향곡 5번이야말로 '남이 보면 안 되는 지휘 생쇼'를 하기에 가장 신 나는 곡일 터. 그런데 실제로 지휘하려면 '운명 모티프'라 불리는 첫 두 마디부터 만만치 않다. 처음부터 빠른 음형이 그것도 여린박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예비박을 어찌 줘야 할까? 8분음표로 시작하므로 8분음표만큼 예비박을 주면, 비팅(beating)이 너무 날카로워서 악단이 첫 박으로 착각하기 딱 좋다. 지휘자에 따라서는 아예 예비박이 아닌 예비 '마디'를 세 마디나 넣어 헷갈리지 않게끔 하기도 하지만, 실용적이기는 해도 모양새가 영 좋지 않다.

지휘자 성시연은 지휘봉을 살짝 올렸다가 멈춘 다음 날카로운 예비박을 주는 모범적인 지휘를 했다. 그런데 아뿔싸! 몇몇 단원이 반 박자 빨리 나오는 바람에 이른바 '만득이 현상'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곡이 워낙 이러니 실연 때 이런 일이 곧잘 일어난다. 마침 이날 프라하 스메타나 홀에서는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지휘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같은 곡을 연주했는데, 방송 녹음을 들어 보니 바이올린 연주자 하나가 반 박자도 아니고 한 박자나 빨리 튀어나오는 사고 현장이 마이크에 또렷하게 잡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따따따 따안―' 할 때 긴 음에는 늘임표(fermata)가 붙어 있다. 얼마만큼 늘여야 할까? '늘임표'라는 말에 맞게 감으로 대충 늘일 수도 있겠고, 제시부 끝과 코다에서 비슷한 음형이 나올 때 늘어난 음 길이를 근거로 한 마디를 세 마디로 늘일 수도 있겠다. 음반을 들어 보면 아예 늘임표를 무시하는 연주도 있다. 성시연은 감으로 대충 늘인 듯했으며, 둘째 마디를 네 마디쯤으로 늘이고 넷째-다섯째 마디를 다섯 마디쯤으로 늘였다. 이처럼 이 곡을 들어보면 처음부터 지휘자가 여러 가지로 고민했을 흔적이 드러난다.

악기 편성도 문제다. 옛날에는 악보에서 지시한 것보다 훨씬 큰 편성으로 연주하는 일이 잦았지만, 요즘은 악보 지시를 그대로 지키는 일이 보통이다. 이날 서울시향은 호른 한 대를 더블링(doubling)한 것을 빼면 악보에서 지시한 2관 편성을 그대로 지켰다. (현악기는 글쓴이가 객석에서 세어 보니 5-5-4-4-3 편성이었다.) 이른바 '역사주의 연주'가 힘을 얻으면서 생긴 유행으로, 정명훈 지휘자도 시향 개편 초기에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면서 9번 교향곡을 뺀 모든 곡을 악보대로 편성했다. 지난해 9월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지휘한 로렌스 르네스도 비슷한 시도를 한 바 있다.

관습적으로 금관을 덧붙이는 등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던 대목을 악보 그대로 연주한 것 또한 역사주의를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1악장 제시부 제2 주제를 여는 E♭ 장조 호른 음형은 재현부에서 바순이 C 장조로 연주하는데, 이 곡이 나왔을 당시 호른으로 연주할 수 없는 음형이라서 베토벤이 할 수 없이 호른이 아닌 바순에 맡겼다는 주장이 있다. 4악장 마디 132에서는 비슷한 근거로 악보에 없는 금관 음형을 덧붙여 연주하는 관습이 있었다. 작품이 끝날 무렵에 트럼펫이 주선율을 연주하도록 고치기도 한다. 이날 서울시향은 이 대목을 모두 악보대로 연주했다.

이처럼 소편성으로 연주하고 금관을 덧붙이지도 않으면 투명한 음색과 날렵한 리듬을 살리기에 좋다. 그러나 대형 연주회장에서는 음량이 작아서 단점이 따르기도 한다. 연주회장 음향이 그다지 좋지 않으면 더욱 그렇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음향이 국내 최고 수준이라고들 하지만, 외국에서 이름난 연주회장과 견주면 그다지 좋은 연주회장이라 하기 어렵다. 글쓴이는 이날 1층 뒷자리에 앉은 탓에 이런 단점을 크게 느꼈다. 귀로 들은 것만으로 판단하자면, 이날 연주는 소리가 둥글둥글하고 마이크로다이내믹스(micro-dynamics)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곳이 많았다. 물론 이것은 글쓴이가 음향적 왜곡을 경험한 것으로 실제 연주는 그렇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요즘 유행하는 말 가운데 '중2병'이라는 것이 있다. 사춘기 시절 과대망상을 희화화하는 말이며 맥락에 따라 욕설에 가까운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2병도 예술로 승화하면 걸작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시사평론가 한윤형은 타나카 요시키가 쓴 대하소설 『은하영웅전설』을 두고 "가장 탁월한 중2병 텍스트"라 논평하며 『삼국지』와 견주기도 했다. 게다가 어찌 보면 서양 낭만주의 시대에는 중2병이 시대정신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가장 탁월한 중2병 작곡가는 쇼팽바그너다. '자폐형 중2병'과 '민폐형 중2병'으로 성격은 거꾸로지만.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 넬손 괴르너는 가장 탁월한 '중2병 아티큘레이션'을 들려주었다. 툭 건드리면 울어버릴 듯한 표정이 묻어나는 프레이징, 때때로 너무하다 싶을 만큼 흔들리는 루바토, 그리고 물결에 되비친 햇살처럼 반짝이는 음색이 알맞게 어우러져 그야말로 '중2병스러움'이 예술로 승화했다. '중2병'이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든다면 '옴므 파탈'(Homme fatal)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 베토벤 교향곡 3번 ― 김선욱 / 로렌스 르네스 / 서울시향

2010-09-16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로렌스 르네스 Lawrence Renes, conductor
협연 : 김선욱 (피아노) Sunwook Kim, piano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Mozart, Piano Concerto No. 27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Beethoven, Symphony No. 3 "Eroica"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원전연주' 또는 '정격연주'라는 말이 유행하며 격렬한 찬반 논란이 일어난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학술적 뿌리를 찾자면 수십 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한국에서만 해도 1985년에 원전연주 첫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요즘은 '원전'이네 '정격'이네 하는 말이 교조적이라 하여 시대 악기 연주(Period Performance) 또는 역사주의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등으로 고쳐 부른다.

그리고 요즘은 굳이 옛 악기와 옛 조율방식을 쓰지 않고도 옛 연주법 등을 현대 악기에 응용하는 연주도 드물지 않다. 아바도, 래틀, 하이팅크 등 역사주의와 관련이 없을 듯한 지휘자가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음반에서도 이러한 유행을 확인할 수 있고, 정명훈서울시향 베토벤 사이클에서 역사주의를 일부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정명훈-서울시향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할 때 4악장 도입부에서 트럼펫이 악보에 없는 주선율을 연주하는 관행을 따르지 않는 것도 역사주의와 관련이 있다.

이날 서울시향을 지휘해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연주한 로렌스 르네스 또한 역사주의 유행을 따랐다. 호른을 한 대 추가한 것을 빼면 악보에서 지시한 2관 편성을 정확히 지켰고 현악기 숫자도 평소보다 줄였다. 현악기는 글쓴이가 객석에서 세어본 바로는 6-5-4-3-2 편성이었는데, 5-5-5-5-4 등 관현악곡을 연주할 때 곧잘 쓰이는 편성과 견주면 새로웠다. 저음 현을 줄여 역사주의에 걸맞은 날렵한 소리를 노리면서도 바이올린은 오히려 더 늘여서 대형 연주회장에서도 음량이 너무 모자라지 않게끔 하려는 뜻으로 풀이되며, 결과는 썩 훌륭했다.

현악기 배치 또한 널리 쓰이는 미국식이 아니라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무대 양쪽에 펼쳐 놓고 첼로 등을 가운데로 모으는 유럽식이었다. 이런 배치는 악단 기량이 모자라면 앙상블이 엉망으로 망가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나 이날 연주는 제법 훌륭했다. 사실은 지난해 11월에 정명훈이 지휘한 모차르트구도자의 엄숙한 저녁기도》에서도 비슷한 배치를 쓴 바 있지만, 이날 연주에서는 그때보다 큰 편성으로 게다가 객원 지휘자가 지휘해도 훌륭한 앙상블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는 대목이 뜻깊다.

유럽식 악기 배치는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이 선율을 주고받으면서 '스테레오' 효과를 내기 좋다는 큰 장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작곡가들이 이런 배치를 고려하고 쓴 곡도 많다. 이날 연주에서는 무엇보다 푸가토에서 그 장점이 두드러졌으며, 복잡하게 얽힌 성부 하나하나가 무대 위에 고르게 늘어서서 사방으로 통통 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매우 멋있었다.

비브라토를 줄여 살짝 거칠지만 산뜻한 음색을 낸 것도 역사주의 연주가 보이는 특징인데, 이날 연주에서는 비브라토가 줄기는 했으나 '기름기'가 조금 덜 빠진 소리를 냈다. 지휘자가 의도한 바일 수도 있고, 올곧은 소편성이 아닌 탓도 있겠고, 어쩌면 서울시향이 아직 이런 연주에 익숙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연주회장 음향을 생각하면 이런 음색도 나쁘지 않았다.

템포는 빨랐다. 베토벤 시대 또는 그 이전 현악기로는 호흡이 긴 프레이즈를 만들기 어려우므로 템포가 빠를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연주법이 결정될 때가 잦다. 그 느낌을 현대 악기로 연주할 때에도 살리려는 태도 또한 역사주의 연주가 보이는 중요한 특징이다. 그밖에 날렵한 리듬과 악센트 등도 이날 연주에서 나타난 역사주의적 특징이었다.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시대 악기로 연주할 때와 현대 악기로 연주할 때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곳을 한 곳만 꼽으라면 1악장 클라이맥스에서 제1 바이올린이 F-F♯-G-A♭-G-F 선율을 연주하는 마디 665~70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폭발하는 듯한 스포르찬도로 음악적 긴장감을 순식간에 끌어올리는 역할을 현악기가 이끌어야 하는데, 이 대목을 날렵한 맛이 떨어지는 현대 악기로 연주하면 제맛을 내기가 쉽지 않아서 호른과 트럼펫을 잔뜩 부풀린 단순한 크레셴도에 그치기 쉽다. 이날 연주는 역사주의적 방향에 힘입어 현대 악기 연주치고는 스포르찬도가 제법 훌륭했다.

김선욱이 협연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은 오케스트라가 피아노에 맞춰 준다기보다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반주를 하는 듯한 기막힌 어울림이 인상 깊었다. 김선욱은 어려서부터 학교 친구들 반주를 도맡아 하기로 이름이 높았다는데 그 덕분일까. 게다가 고전주의 시대 작품은 해석과 관련해 고민할 곳보다는 맛깔스러운 앙상블에 마음 쓸 곳이 많을 때가 잦아서 김선욱의 '반주 본능'이 더욱 빛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제 목소리 낼 곳은 다 내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 주었으니, 과연 김선욱이었다.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2009.12.22. 라벨 피아노 협주곡 / 《스페인 랩소디》 /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 조성진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2월 22일(화)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 정명훈
협연 : 조성진

Ravel, Rapsodie espagnole
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Op.14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조성진은 지난 11월에 만 열다섯 나이로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천재다. 이 콩쿠르는 생긴지 얼마 안 되었으나 지난 우승자가 가브륄리크, 블레하치 등 매우 화려해서 이번 우승은 대단한 사건이다. 덕분에 많은 기대를 모은 이날 연주회에서 조성진은 앳된 얼굴과는 너무도 다른 훌륭한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들려주었다.

조성진이 천재인 까닭은 자연스러운 프레이징과 루바토, 세련된 셈여림 따위로 음악을 다스릴 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품 구조와 흐름을 이해하고 음 하나하나가 그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테크닉만 앞세우면 기계처럼 딱딱해지게 마련이고,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루바토를 써 봐야 유치해질 뿐이다. 그러나 조성진은 음악에 끌려가지 않고 다스릴 줄 아는 경지에 벌써 올랐다. 그 '다스림'은 19세기 음악 패러다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했는데, 덕분에 이날 2악장이 참으로 멋졌다. 다만, 1·3악장에서는 좀 더 현대음악 느낌을 살렸으면 하는 욕심이 들 때도 더러 있었다. 음색을 제법 다채롭게 쓸 줄은 아는 듯했으니 오케스트라 협연 경험이 더 쌓이면 음색을 빚어내는 솜씨도 같이 늘어나리라 기대된다.

라벨 《스페인 랩소디》는 화려한 음향효과로 가득해서 지휘자가 소리를 얼마나 멋지게 다듬느냐와 오케스트라가 지휘자를 얼마나 따라가느냐가 중요한 곡이다. 이날 연주는 정명훈서울시향 이름에 걸맞게 참으로 멋졌다. 무엇보다 트럼펫 수석이 눈에 번쩍 띄었는데, '트럼펫' 하면 생각나는 금빛 눈부시게 번쩍이는 바로 그 소리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옛 수석이었던 가레스 플라워스가 떠난 자리가 제법 커 보이던 마당이라 이 연주자가 더욱 반가웠으며, 음색만큼은 플라워스보다 나은 듯해서 베를리오즈를 기대하게 했다.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은 영화에 빗대자면 B급 영화라 할 수 있다. 기괴한 4·5악장이 아니더라도 악보를 보면 음표 하나하나가 신경질을 부리는 듯한 느낌이 들며, 길고도 처절하게 궁상맞은 ― 차마 속된 말을 쓰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 ― 3악장은 이어지는 악장을 헤아리게끔 한다. 이러한 'B급' 정서는 음반으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잦은데, 정명훈은 바스티유 오페라와 함께 녹음한 음반에서 아예 불편한 정서를 싹 발라내고 세련된 음악으로 만들었으며 4·5악장은 사악한 느낌이 없으면서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화끈하다.

이날 서울시향 연주 또한 음반과 비슷했다.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첫 음을 살짝 늘여서 티 나지 않게 아첼레란도를 쓴 듯한 효과를 노렸으며, 첫 템포는 악보에서 지시한 ♩= 56보다 훨씬 느린 ♩= 36쯤으로 꿈처럼 어른어른한 느낌을 살렸다. 마디 17을 비롯해 이 곡에서 자주 나오는 지시어인 'animando'(생기있게)는 맥락을 보면 아첼레란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명훈은 제대로 살리면 매우 신경질적인 이 지시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러우나 무디지 않은 템포 변화를 주었다. 2악장 마디 43 등에 나오는 기괴한 바이올린 글리산도는 포르타멘토처럼 살짝만 미끄러져서 세련된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3악장에서는 이 악장이 얼마나 사랑스럽게 들릴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맑고 잔잔한 프레이징이 돋보였다.

4·5악장에서는 코넷과 트럼펫 따위를 너무 앞세우지 않고 모든 성부가 또렷이 들리게끔 균형을 맞추었다. 음반을 들어보면 무엇보다 5악장 '마녀의 론도'(Ronde du Sabbat)에서 정명훈만큼 음 하나하나를 잘 살린 녹음도 없는 듯한데, 이날은 튜바 따위가 좀 더 힘을 내었으나 코넷·트럼펫과 균형이 제법 잘 맞으면서도 좀 더 화끈했다. 4악장 코넷·트럼펫 선율은 보통 음 하나하나를 끊어(마르카토) 연주하나 정명훈은 제법 부드러운 논 레가토(non legato)로 다스렸다. 그러나 큰북과 팀파니 등이 힘껏 두드려대어서 화끈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음반과 뚜렷하게 다른 곳도 있었다. 이를테면 2악장에서 음반에서는 썼던 코넷을 이날은 쓰지 않았다. (2악장 코넷 성부는 베를리오즈가 나중에 자필 악보에 덧붙였으나 그냥 빼고 연주할 때가 잦다.) 1악장 마디 167에 있는 도돌이표 또한 음반과 달리 생략했다. 1악장 마디 198에서는 악보에 없는 아첼레란도를 썼는데, 이날은 음반처럼 가파르지 않고 아주 살짝만 빨라졌다.

라벨 《스페인 랩소디》에서 멋진 트럼펫 연주를 들려주었던 수석 연주자가 이번에는 코넷을 야무지게 연주했고,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은 장식음과 트릴로 가득해서 어렵기로 소문난 5악장 독주부를 음반과 거의 같은 빠른 템포로 나무랄 데 없이 연주했다. 3악장에서는 제임스 버튼이 연주한 잉글리시 호른과 이미성이 무대 밖에서 연주한 오보에가 마치 《라 트라비아타》 1막처럼 사랑스러운 선율을 주고받았다.

2009년 9월 5일 토요일

2009.04.29. 릴번 아오테아로아 서곡 /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 - 시몬 트릅체스키 / 피에타리 인키넨 / 서울시향

2009년 4월 29일(수)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Pietari Inkinen
협연자 : Simon Trpčeski (Pf)

Lilburn, Aotearoa Overture
Grieg, Piano Concerto in a, Op.16
Sibelius, Symphony No.5 in E flat, Op.82



시벨리우스는 20세기 초에 활동한 작곡가답지 않게 19세기 음악 어법을 이어가고자 했으며, 그러한 대목은 브람스를 닮았다. 그러나 시벨리우스를 '핀란드로 간 브람스'쯤으로만 여긴다면 그 참모습을 알기 어렵다. 그런데도 많은 음악학자가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을 분석하면서 틀에 박힌 생각으로 소나타 형식에 끼워 맞추고자 했으며, 맞지도 않는 틀에 억지로 맞추려다 보니 저마다 엇갈린 의견을 내놓았다.

이를테면 1악장에서 '재현부'는 어디인가? 곡 첫머리에 나오는 모티프가 힘차게 '재현되는' 곳은 마디 106이다. 그러나 템포가 빨라지고 스케르초 음형이 나타나는 곳은 마디 114이다. 그런가 하면 E♭ 장조가 '재현되는' 곳은 마디 158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더 뒤로 가야 재현부가 나타난다고도 한다. 그러나 글쓴이는 지난해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 연주회 리뷰에서 이런 말을 쓴 바 있다. "독일 음악 논리로 따지는 조성과 화성으로 된 '뼈대'가 아니라 그 겉을 둘러싼 피와 살, 그 주변의 서늘하면서도 싱그러운 공기와 그 공기를 타고 너울너울 날아오르는 눈송이야말로 시벨리우스 음악의 참모습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교향곡 5번 1악장은 해 뜨는 모습을 담은 교향시다. 곡 첫머리에서 호른이 연주하는 모티프는 막 동틀 무렵이고, 이 모티프가 '재현되는' 마디 106부터 해가 조금씩 보인다. 그러나 해는 전등 켜지듯이 한순간에 떠오르지 않으며, 조금씩 조금씩 날이 밝다가 언제부터인가 해는 떠 있다. 1악장에서 '재현부'를 이루는 알맹이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음반을 들어보면 지휘자에 따라 마치 '여기부터 재현부!'라고 선언하듯이 템포를 갑자기 빠르게 하거나 음색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서울시향을 지휘한 피에타리 인키넨은 '꿰맨 자국' 없이 매끄럽게 해 뜨는 모습을 연출했으며, 핀란드 어느 경치 좋은 곳에 온 듯이 맑고 서늘한 공기가 피부로 느껴질 듯했다. 브람스에 어울리는 묵직한 소리가 아니라 야무지고 시원시원한 소리를 내었으며 쓸데없는 루바토를 쓰지도 않았다. 옥에 티 하나만 말하자면 곡이 끝날 무렵인 'Piu Presto (마디 555)'에서 금관 소리가 너무 커서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눈부신 으뜸 화음이 조금은 빛이 바래버렸다.

2악장에서는 콘트라베이스가 뒤로 물러나지 않고 다른 악기와 함께 당당하게 선율을 이끌어간 대목이 썩 마음에 들었다. 콘트라베이스답지 않게 리듬이 굼뜨거나 하지도 않고 나무랄 데 없었다.

3악장에서 저 가슴 벅찬 '백조 주제'가 나올 때에는 백조떼 대신 거위를 타고 날아오르는 꼬마 닐스와 기러기떼를 떠올렸다. 템포가 조금 빨랐고 호른 소리가 생각보다 커서 해질 무렵에 하늘을 날아오르는 듯 들뜬 기분은 좀 덜했으나 그 대신 하늘을 날면서 온몸으로 바람을 맞는 듯한 속도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호른 네 대가 끊임없이 화음을 연주하는데 눈에 띄는 실수 없이 깔끔하게 잘해서 놀랐다.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가 호른 연주자를 일으켜 세우면 '브라보!' 하고 외쳐주려고 마음먹었으나 웬걸, 1악장에서 멋진 바순 독주를 들려준 곽정선 수석대행만을 일으켜 세웠다. 호른이 이만하면 꽤 훌륭했는데 지휘자가 눈이 너무 높았던 탓일까. 곡이 끝날 무렵에는 트럼펫이 '백조 주제'를 이끌고 트롬본이 뒤를 받치는데, 이날 트럼펫 수석이 없어서 조금은 걱정했으나 생각보다 연주가 제법 훌륭했다.

피에타리 인키넨은 지휘 동작이 크고 시원시원해서 참 친절하게 지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인지 정명훈이 지휘하지 않는 서울시향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앙상블이 훌륭했다. 협주곡에서 오케스트라 반주가 이토록 뛰어난 연주는 처음이라는 의견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줄을 잇기도 했다. 시향 연주회 일정을 보면 연습할 시간이라고는 뻔한데 이렇게까지 악단을 휘어잡았다면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런 훌륭한 지휘자는 자주 객원 지휘자로 데려왔으면 좋겠다.

인키넨은 뉴질랜드 심포니 음악감독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첫 곡으로 뉴질랜드 작곡가 릴번의 아오테아로아 서곡을 연주했다. 현이 이끌어가는 선율과 리듬이 산뜻하면서도 힘찬 느낌이 들었으며, 뉴질랜드 어느 낯선 들판에서 소떼가 신나게 달리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했다. 프로그램 노트를 보니 "어떻게 들으면 본 윌리엄스시벨리우스의 남반구 버전"이라 했는데 그 말이 참으로 옳다.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 시몬 트릅체스키는 맑고 시원한 음색이 매우 멋졌다. 루바토를 떠벌리듯 쓰거나 파토스를 억지스럽게 앞세우는 일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주했고, 그러면서도 서늘하고 투명한 음색과 자연스러운 호흡만으로 입 안에서 녹는 듯 새콤달콤한 맛을 내었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다크 포스'도 달콤한 맛에 쌉쌀한 맛을 더하는 데 그쳤다. 건반 위로 통통 튀어 올라 햇볕에 반짝이는 듯한 소리는 마치 쇼팽 피아노 협주곡 같았고, 2악장뿐 아니라 1악장과 3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맑게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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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4일 금요일

2009.03.05.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 피닌 콜린즈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3월 5일(목)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Finghin Collins (Pf)

Borodin, Polovtsian Dances
Mozart, Piano Concerto No.24 in C minor, K.491
Stravinsky, The Rite of Spring (Le Sacre du Printemps)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에 감정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어둠을 뚫고 빛을 찾아가는 '베토벤스러운' 믿음과 그 얼개를 이루는 낭만주의 기능화성을 싫어했다.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조성이 없거나 희미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얼핏 보면 쇤베르크로 대표되는 12음 음악과 닮았으나 바탕에 깔린 마음가짐은 거꾸로다. 쇤베르크 음악은 조성과 화성이 발전 끝에 해체하고서 맺은 열매이지만, 스트라빈스키 음악은 목표를 향해 발전한다는 오랜 가치관을 뿌리째 뽑아낸 자리에서 자라난 새싹이다. 요즘 눈으로 보면 모더니즘이 꽃피기에 앞서 포스트모던한 생각을 한 셈인데, 그 때문에 스트라빈스키는 모더니스트들에게 모진 말을 들어야 했으며, 이를테면 아도르노는 "그는 지붕을 뜯어내 버렸고, 그래서 이제 그의 대머리 위로 빗물이 흐른다."라고 했다.

낭만주의를 물리치면서도 모더니즘과도 거리를 둔 음악은 어떠해야 할까? <봄의 제전>에서는 현대적인 음향과 원시적인 울림이라는 '남남'을 얄궂게 엮어놓은 엉뚱함과 그 안에 담긴 비선형성(non-linearity)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또 스트라빈스키가 직접 지휘한 녹음이 남아 있어 이 작품을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낱낱이 알 수 있다. 러시아 교회 종소리를 닮아 이곳저곳에서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스트라빈스키 폴리포니, 비브라토를 되도록 쓰지 않아 몹시 메마른 음색, 원시 부족이 멋대로 노래하는 듯 고약한 선율과 화음이 연주에서 잘 살아난다.

그러나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고 했다. 많은 지휘자가 스트라빈스키를 배신해 왔으며 그것이 옳지 않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카라얀은 두텁고 기름진 비브라토로 잔뜩 멋을 내어 낭만주의와 닿아 있는 녹음을 남겼고(스트라빈스키는 몹시 화를 냈다고 한다.), 불레즈는 마치 총열주의 음악인 양 차갑고 딱딱한 질서를 연주에 담아냈다. 정명훈은 이럴 때 보통 중용을 지키는데, 카라얀을 '우파'라 하고 불레즈를 '좌파'라 한다면 정명훈은 중도우파이며 아바도와 살로넨 사이 어딘가에 있다.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은 '스트라빈스키 폴리포니'를 날것 그대로 살리기보다는 주선율을 뚜렷이 살려 쏟아지는 선율과 리듬 속에서 관객이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도록 했다. 현악기는 이를테면 1부 4곡 '봄의 론도'나 2부 2곡 '젊은이의 신비한 모임'에서도 음색이 너무 까슬까슬하지 않도록 비브라토를 알맞게 썼고, 1부 4곡 마디 331에서 비올라가 비브라토를 아낀 일처럼 드물게 메마른 음색을 살렸다. 2부 서곡에서는 제2 바이올린 플래절렛(개방현 하모닉스) 화음이 너무 고약하게 들리지 않게끔 소리를 줄였고, 하모닉스 주법으로 연주하는 독주 바이올린은 글리산도를 되도록 얌전하게 갈무리했다.

타악기는 너무 앞으로 나서지 않고 다른 악기 소리에 감칠맛을 더할 때가 잦았고, 이를테면 살로넨 녹음에서 큰북이 매우 큰 소리를 내는 1부 5곡 '적대관계에 있는 부족들의 의식' 마디 439에서도 악보에서 지시한 '메조포르테'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러나 꼭 필요한 곳에서는 연주회장이 무너질 듯한 소리를 터트리기도 했다. 1부 마지막 네 마디에서는 큰북이 무시무시한 크레셴도를 들려주었고, 2부 3곡 '선택된 처녀에게 영광을'에 들어서기 바로 앞서 나오는 4분음 11연타 때에는 큰북과 팀파니가 현 소리를 누르고 마구 두드려댔다. 2부 끝 곡 '희생의 춤'에서는 타악기끼리 어질어질한 폴리리듬을 주고받았다.

관악기 연주자들도 저마다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자주 보기 어려운 악기인 알토 플루트와 베이스 클라리넷 따위도 곳곳에서 돋보였다. 베이스 클라리넷은 이 곡에서 은근히 멋있게 나와서 이를테면 1부 서곡에서 좀 더 튀는 연주를 들려주었으면 싶었으나 그냥 다른 악기와 알맞게 어울려서 조금은 아쉬웠다. 바순은 다른 악기와 쉽게 섞여버리는 악기 특성 탓에 좀처럼 눈길을 얻기 어려운데 이날 곡 첫머리부터 곽정선 수석대행이 멋진 독주를 들려주었다. 문득 시향 수석 연주자들만 놓고 보면 이제는 웬만한 유럽 악단과 견주어도 크게 뒤지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으며, 유럽으로 연주 여행을 가겠다더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을 협연한 피닌 콜린스는 모차르트치고는 페달을 제법 많이 쓰는 듯했고, 모차르트보다는 초기 베토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덴차는 아예 19세기 음악이라 해도 믿길 만했다. 이 작품이 모차르트 작품 가운데서도 파토스를 꽤 겉으로 들어내는 까닭에 이런 연주도 그럴싸하다 싶었다. 그런가 하면 연주자 나이에 어울리는 풋풋한 젊음과 조금 나쁘게 말하면 치기가 이곳저곳에서 느껴지기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3악장 세 번째 변주(마디 65)였는데, 첫머리에 나오는 뒤집힌 c단조 화음을 사납게 풀어낼 줄 알았더니 뜻밖에 화음보다 선율선을 살려 여린 느낌으로 가다가 마디 81에 이르면서 좀 더 화음을 살렸다. 앙코르로 슈만 곡을 듣고 나니 모차르트베토벤도 아닌 슈만에 가장 어울리는 연주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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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3일 목요일

2009.02.19. 시벨리우스 포흐욜라의 딸 /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 / 버르토크 이상한 중국 관리 - 알렉산드르 가브릴뤼크 / 성시연 / 서울시향

2009년 2월 19일(목)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성시연
협연자 : Alexander Gavryluk (Pf)

Sibelius, Pohjola's Daughter, Op.49
Prokofiev, Piano Concerto No. 2 in g, Op.16
Bartok, The Miraculous Mandarin, Op.19

알렉산드르 가브릴뤼크(x) → 올렉산드르 가브릴류크(o) http://goo.gl/7Lmwm


성시연이 지난해 1월과 9월에 이어 세 번째로 서울시향을 지휘했다. 그가 나라 밖에서 걸어온 놀라운 발자취를 생각하면 그동안 한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다. '나이 어린 여자'라는 약점 아닌 약점을 생각하면 꽤 훌륭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으나 그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를 그저 '지휘자 성시연'으로 바로 말할 때가 왔다. 이날 연주회에서 드디어 참된 솜씨를 제법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솜씨를 펼쳤다 하기는 어려우며 기대에 못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볼 때마다 한 걸음 나아간 모습을 놓치지 마시라. 성시연은 젊으며 앞날은 밝다.

지난 연주회보다 나아진 티가 가장 잘 드러난 곡은 시벨리우스 <포흐욜라의 딸>이었다. 첫 곡이라 그만큼 연습이 모자라기도 했겠거니와 때마침 수석 연주자들이 거의 자리에 없었는데도 제법 무난한 연주를 이끌어내었다. 앙상블이 이따금 흔들리다가 '알레그로' 대목에서는 '프레스토'에 가까운 아찔한 템포로 마구 달리는 바람에 더욱 삐걱거렸지만, 그래도 끝까지 큰 줄기를 놓치지 않고 '물량공세'로 뚝심 있게 밀어붙여서 이 곡이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실수를 눈치 채기 어렵게 잘 다스렸다. 지난 9월 연주회 첫 곡에 견주면 놀랄 만한 발전이다.

버르토크 <이상한 중국 관리>는 성시연서울시향을 지휘해 어디까지 소리를 뽑아낼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악단을 확 휘어잡지는 못하지만 구석구석 열심히 다듬어 노력파 모범생 같은 연주를 이끌어낸 대목은 지난 연주회에서 보여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 흐름을 탄탄하게 다스리고 템포와 리듬과 음색을 맛깔스럽게 다듬는 솜씨는 더 나아졌다. 때때로 결정적인 '한 방'이 아쉽기는 했으나 수석 연주자들 빈자리가 작지 않았음을 헤아리면 받아들이지 못할 바는 아니며 그 때문에라도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수석 연주자가 자리를 비운 틈에 솜씨를 마음껏 뽐낸 연주자도 있었으니 바로 클라리넷 부수석 임상우다. 채재일 수석이 따듯한 음색, 부드러운 레가토, 그윽한 소토보체를 곧잘 뽐낸다면, 임상우는 겉모습부터 딱 클라리넷 연주자처럼 생겨서는 그 소리 또한 곧고 매끄럽고 빈틈없는 클라리넷 그 자체다. 무엇보다 남자를 꼬드기는 대목에서 빠르고 어지러운 음형을 나무랄 데 없이 잘 다스렸다. 여자가 중국 관리를 처음 보고 두려워하는 대목에서는 지휘자가 중국풍 트롬본 소리를 일부러 줄이고 클라리넷 소리를 크게 하여 마치 카메라가 여자를 가까이 중국 관리를 멀리 잡은 듯한 원근감을 살렸는데, 이때 클라리넷 소리가 몹시 사나워서 마치 무서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부짖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했다.

이날 가장 돋보인 사람은 타악기 연주자들이었다. 시향 타악기 연주자들은 매우 뛰어난데도 현대 음악이 아니면 좀처럼 솜씨를 뽐낼 때를 만나기 어려운데, 이날 모처럼 오케스트라 음색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중국 관리가 집 안으로 들어서는 대목(Maestoso)이 가장 멋졌고, 쫓고 쫓기는 대목(Sempre vivace)에서는 지휘자가 긴 호흡으로 놀랍도록 폭넓은 크레셴도를 이끌어내는 동안 소리에 탄탄한 뼈대를 이루었다. 이날 연주된 판본은 초연과 출판 과정에서 지워진 대목을 모두 되살린 2000년 개정판으로 판단된다. 중국 관리가 숨 막혀 죽는 대목(Pesante)부터 어딘가 낯설다고 느꼈다면 바로 판본이 달랐던 탓이며, 인기 있는 음반이 대부분 2000년 이전 녹음이라 사정을 아는 사람은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을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타악기가 가장 훌륭했다.

트롬본은 수석 연주자가 빠졌어도 탄탄한 연주로 오케스트라 무게 중심을 잘 잡았다. 그러나 트럼펫은 소리가 너무 작을 때가 잦아 안타까웠다. 이를테면 중국 관리가 칼 맞는 대목(Ritenuto)에서 트럼펫은 약음기를 꼈어도 포르티시모로 연주해야 하지만 트롬본 메조포르테보다 훨씬 작게 들렸다. 죽지 않는 중국 관리를 여자가 안아준 다음에 나오는 트롬본 마르카토 음형은 뜻밖에 소리가 너무 작아서 갸우뚱했다. 아마도 지휘자가 목관악기 소리를 살리느라 일부러 트롬본 소리를 작게 한 모양인데, 중국 관리가 처음 나타나는 대목도 그렇지만 지휘자는 중국 관리를 조연으로 물리고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려 했나 보다. 그래서 성욕에 빠져 죽음마저 물리친 징그러운 중국 관리보다는 불쌍하게 이용당하는 여자에게 관객이 더 마음을 쏟기를 바랐나 보다. 지휘자가 여자이기 때문일까?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알렉산드르 가브릴뤼크는 큰 힘으로 두드려대면서도 루바토를 꽤 달콤하게 써서 음색이 차갑거나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솜씨가 인상 깊었다. 그래서 프로코피예프 음악에서 스크리아빈이나 때로는 쇼팽 같은 느낌마저 우러나왔으며, 힘이 넘쳐도 우락부락하지 않았고 아찔한 테크닉을 드러낼 때에도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었다. 힘과 테크닉을 음악 속에 갈무리할 줄 아는 훌륭한 연주자가 1984년생이라니, 우리는 이날 거장의 젊었을 적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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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브루크너 교향곡 7번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 알렉산다르 마자르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월 22일(목)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Aleksandar Madzar (Pf)

Mozart, Piano Concerto No.27 in B flat, K.595
Bruckner, Symphony No. 7 in E (Ed. Nowak)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한 서울시향은 유럽 악단 수준에 조금씩 다가가는 요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으며 무엇보다 금관악기가 깔끔한 연주를 해주어 반가웠다. 편성은 현악기를 크게 늘여 여섯 짝씩이었고 콘트라베이스도 열두 대를 썼다. 관악기는 호른과 트럼펫을 하나씩 더블링한 것을 빼면 악보 지시를 따랐다.

트럼펫이 가장 인상깊었으며 트럼펫 수석 가레스 플라워스가 이날도 돋보였다. 음량이 튀지 않고 다른 악기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도 선율선과 부점리듬을 깔끔하게 살려주었다. 3악장 처음에 나오는 독주는 음반을 들으면서도 마음에 안 들 때가 잦아 이날 연주를 귀담아들었는데, 플라워스는 악센트를 또렷이 살리면서도 그 때문에 소리가 뚝뚝 끊어지는 일 없이 딱 알맞은 논레가토를 들려주었다.

바그너튜바는 우리나라에 전문 연주자가 없어서 제대로 된 연주를 듣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며, 이 때문에 음색을 희생해 바그너튜바 대신 호른을 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날은 웬일인가 싶을 만큼 큰 실수 없이 깔끔하게 잘해서 놀랐다. 옥에 티를 하나 말하자면 2악장 클라이맥스를 지나 마디 184에서 테너 바그너튜바 둘 가운데 하나가 티 나게 비브라토를 썼다. 이곳은 바그너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애달픈 마음을 나타낸 곳이라 비브라토는 '장송곡' 분위기와 맞지 않았으며 '오르간 소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탄탄하게 중심을 잡아준 호른 또한 매우 훌륭했다. 1악장 마디 114부터 트롬본 및 튜바와 함께 부점 리듬을 주고받는 대목에서도 아귀가 딱딱 맞았고, 국내 악단이라면 반드시 실수를 하는 마디 163 호른 합주에서도 어택이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았으나 제법 깔끔하게 잘했다. 2악장 마디 190부터 f에서 fff로 가파르게 커졌다가 마지막 울부짖음이 pp로 재빨리 사그라진 대목에서는 브루크너가 목놓아 우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했으며, 호른 네 대를 쓰면서도 한 악기처럼 잘 맞았다.

트롬본 또한 큰 소리를 내는 곳에서도 사납게 으르렁거리지 않고 화음을 살려 깊은 울림을 내주었으며, 국내 악단이 마치 관행처럼 얼렁뚱땅 넘어가곤 하는 부점리듬도 잘 살렸다. 4악장에서 트롬본, 호른, 바그너튜바, 콘트라베이스튜바가 유니슨으로 나오는 마디 267에서는 세 겹 부점 리듬이 몹시 까다롭기도 하거니와 대충 2분음표로 연주해도 그다지 티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날 어떻게 하는지 조금은 짓궂은 마음으로 귀담아들었더니 트롬본은 나무랄 데 없었고, 호른과 바그너튜바는 아리송하고, 콘트라베이스튜바는 트롬본에 슬쩍 묻어가더라. 그래도 주선율은 트롬본에 있었으므로 전체적으로는 썩 좋았다.

이날 주인공은 금관악기였으나 목관악기도 훌륭했다. 무엇보다 2악장 클라이맥스와 장송곡에 이어 나오는 플루트 독주가 마치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듯 너무나 애달팠으며, 말러 교향곡 10번 5악장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작지만 안타까운 실수도 있었는데, 1악장 제2주제 전위형이 나오는 마디 185에서 저음 현이 갑자기 치고 나오도록 지휘자가 첼로 쪽으로 예비박을 세게 주었더니 플루트 연주자가 잘못 알아듣고 마지막에 얼버무리는 바람에 느닷없이 울음이 터지는 듯한 효과가 멋질 뻔하다 말았다.

정명훈은 3, 4악장 템포를 조금 빠르게 잡아 전체적으로 밝고 희망찬 브루크너를 연출했으며 4악장에서 템포를 자연스럽게 조였다 풀었다 하는 대목이 돋보였다. 1악장 마디 391부터 팀파니를 앞세운 크레셴도도 멋졌고 이어지는 코다에서 크레셴도와 아첼레란도를 같이 쓴 대목도 제법 그럴싸했다. 4악장 코다에서는 '처음 빠르기로'와 호른에 붙은 '경건하게'라는 나타냄말이 서로 어울리지 못할까 봐 귀담아들었더니 정명훈은 템포를 살짝 늦추었다가 조금씩 조이며 고양감을 높이는 솜씨를 보여주었다.

1악장 스트레토(마디 233)에서는 금관이 너무 나서지 않고 균형을 잘 맞춘 대목은 참 좋았으나 그 때문에 '마르텔라토'가 죽어버려 안타까웠다. 현이 테누토 지시를 너무 곧이곧대로 지킨 탓이다. 이 테누토는 마르텔라토를 살리느라 소리가 너무 딱딱 끊어지면 안 된다는 뜻일 뿐 금관 텍스처와 따로 놀라는 뜻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서울시향은 현이 레가토에 가깝게 연주하면서 금관과 나란히 음악을 이끌어버려 앙상블이 훌륭했는데도 어정쩡한 스트레토가 되고 말았다.

2악장 처음에는 저음 현이 바그너튜바 소리를 묻어버려 아쉬웠고 처음부터 음량이 너무 커서 조금 부담스러웠다. 마디 4에서는 메조포르테가 아니라 포르티시모에 가까웠다. 바이올린 여섯잇단음 오스티나토가 나오는 마디 157부터 긴장감을 쌓아가는 대목이 훌륭했으며 클라이맥스에서도 총주를 뚫고 나오는 바이올린 소리가 매우 멋있었다. 다만, 마디 169와 마디 171 넷째 박 포르타토는 너무 레가토에 가까워서 조금 어색했다.

3악장 마디 52에서는 c단조로 넘어가기에 앞서 스타카티시모 음형이 치고 나오는 대목이 멋지다. 그러나 독일6화음을 살려야 제맛이 나므로 트롬본 등이 너무 큰 소리를 내면 좋지 않은데, 서울시향 금관은 이곳에서 딱 알맞은 소리를 내었으나 현이 좀 더 튀어나오지 않아 살짝 아쉬웠다.

알렉산다르 마자르가 협연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은 맑고 부드럽고 달콤한 모차르트였으며 들을수록 마냥 행복해지는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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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6.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 라르스 포크트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월 16일(금)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Lars Vogt (Pf)

Debussy, "Pelleas et Melisande" Concert Suite (arranged by Erich Leinsdorf)
Mozart, Piano Concerto No. 21 in C major, K. 467
Rimsky-Korsakov, Symphonic Suite "Scheherazade" Op. 35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프랑스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음악처럼 들리곤 한다.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커서 마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도전해 보지만 이내 음반을 중고 장터에 내놓고, 그 음반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신세가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기 일쑤다. 그래서 이날 연주된 것과 같은 관현악 발췌곡도 나왔으나 드뷔시다운 어른어른하고 어슴푸레한 소리는 그대로이다. 그런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음향이 묘하게 그와 어울리는 데가 있었다. 반쯤 잠에 빠진 듯 흐리멍덩한 느낌이 그럴싸했으며, 어찌 보면 지휘자가 원성 자자한 연주회장에서 장점을 이끌어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저음 현 긁는 소리가 좀 더 살아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어렵지 싶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무려 라르스 포크트가 협연을 맡아도 세종 대극장 음향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듯했으나 맑고도 그윽한 소리를 이끌어내는 해석이 그럴싸하기도 했다. 더욱이 2악장에서 페달을 많이 쓰면서도 소리가 뭉치지 않게 잘 다듬은 대목이 매우 훌륭했다.

드뷔시모차르트에서 연주회장에 순응하는 연주를 들었다면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에서는 때때로 연주회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소리가 들려와 놀라웠다. 세종 대극장에서는 여간해서는 소리가 피부로 와 닿지 않아서 프레이징 따위를 머리로만 듣게 될 때가 잦은데 이날 참으로 오랜만에 화끈한 느낌을 받았다. 정명훈의 해석은 음반으로도 나와 있는 바스티유 오페라 연주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그 때문에 정명훈보다는 수석 연주자들이 독주 때 보여준 개인기에 더욱 눈길이 갔다.

악장 데니스 김이 들려준 독주는 '셰에라자드'라는 인물이 살아 숨 쉬는 듯해서 매우 인상 깊었다. 셰에라자드는 어떤 사람일까? 무서운 임금님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여장부? 임금님을 유혹하는 요녀? 마음 깊은 곳 상처를 달래는 어머니? 데니스 김이 그려낸 셰에라자드는 곳곳에서 두려움을 내비치지만 때로는 허세를 부릴 줄도 아는 순진하고도 용감한 소녀 같았다.

첫 독주는 요염함과 두려움과 허세가 넉넉한 루바토와 에스프레시보로 알맞게 버무려진 연주였고, 마디 94에서는 첫 음과 이어지는 셋잇단음 사이를 포르타토치고는 매우 뚜렷이 나누어 연주해서 마치 선생님 앞에서 두 손 모아 열심히 노래하는 듯했다. 3악장 마디 145에 나오는 스타카토 분산화음은 이야기 속 왕자와 공주를 셰에라자드 부부에 빗대어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때 데니스 김은 A 음을 늘이고 나머지는 장식음처럼 휘리릭 재빨리 다루어 마치 마음속에 감춘 두려움이 드러나는 듯했으며, 그래서 이어지는 칸타빌레 선율은 더욱 애달팠다. 4악장 마디 29에서는 힘주어 연주하라는 지시를 매우 잘 살려 어느 때보다 활을 거칠게 썼다. 이때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는 매우 여리게 연주하게 되어 있으나 정명훈은 음반에서 했던 것처럼 매우 세게 연주해서 '짠!' 효과를 내도록 했다. 그런가 하면 마디 641에서는 마치 자장가처럼 매우 여리게 속삭이듯 했다.

목관악기 연주자들도 독주 때마다 눈부신 연주를 뽐냈으며, 그 가운데 오보에 수석 이미성이 가장 돋보였다. 글쓴이가 보기에 이미성은 악보에 있는 지시를 아주 작은 곳까지 꼼꼼하게 지키는 남다른 솜씨를 가졌으나 '모범생 연주'를 넘어서는 '끼'를 보여주지는 못하는 단점 또한 안고 있다. 그런데 이날 드디어 벽을 넘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어 몹시 반가웠으며, 그 때문에 옛날부터 글쓴이 마음을 사로잡은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보다도 더 인상 깊었다. 정명훈은 연주가 끝나고 악장에 이어 두 번째로 이미성을 일으켜 세웠다.

글쓴이가 가장 추겨 세우고 싶은 연주자는 트럼펫 수석 가레스 플라워스(Gareth Flowers)이다. 이 곡에서 트럼펫은 목관악기처럼 눈에 확 띄는 솔로 악구는 없으나 티 안 나게 하는 고생이 만만치 않으며, 그러면서도 작은 실수로도 곧잘 연주를 망쳐버릴 수 있어서 호른 못지않게 까다롭다. 이날 때때로 살짝 불안한 대목이 없지는 않았고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가 일으켜 세웠을 때 금방 도로 앉아버린 일에 미루어 보면 연주자 자신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듣기에는 매우 야무진 연주였으며, 더욱이 4악장에서 빠른 음형이 계속 나오는 곳에서는 깜짝 놀랄 만큼 훌륭했다. 나는 정명훈이 아찔한 템포로 마구 달릴 때에도 트럼펫이 조금도 뒤처지지 않고 바짝 따라오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이럴 수가! 이런 연주자가 있으면 베토벤 교향곡 7번을 해줘야 한다. 마침 올 10월 정기연주회 때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연주할 모양이니 기대가 된다.

호른과 트롬본 또한 다부진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1악장 시작을 비롯해 여러 차례 나오는 부점 리듬을 날카롭게 다스린 대목이 매우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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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일 수요일

2008.12.04. 코다이 갈란타 춤곡 /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춤곡 - 발렌티나 리시차 / 제임스 저드 / 서울시향

2008년 12월 4일(목)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James Judd
협연자 : Valentina Lisitsa

Kodaly, Dances of Galanta
Grieg, Piano Concerto in a, Op. 16
Rachmaninoff, Symphonic Dances, Op. 45



악기는 보통 온도와 습도 변화에 민감하며 옛날 악기일수록 더하다. 이번 연주회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데다 미리 무대에 나와서 연습하는 관악기 연주자들이 평소보다 많아서 조금 걱정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코다이 <갈란타 춤곡>에서 호른이 일찌감치 큼지막한 실수를 하더니 플루트가 실수를 이어받고 다른 악기들도 영 제소리를 못 낸다. 지휘자의 해석은 나쁘지 않은 듯했고 뒤로 갈수록 차근차근 긴장감을 쌓아나가는 모습이 멋졌으나 실수가 너무 잦아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다 함께 헤매는 가운데 클라리넷 수석 연주자 혼자서 평소처럼 야무지게 연주해서 눈에 확 띄었으며 이 곡에서 가장 비중이 큰 악기가 클라리넷이라 더욱 돋보였다. 언젠가 밝힌 바 있듯이 글쓴이는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 씨 팬이다.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한 발렌티나 리시차는 늘씬한 몸매를 보아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힘과 테크닉을 자랑했다. 무시무시한 트릴과 글리산도를 듣고 있자니 그리그 피아노 협주곡이 이렇게 연주하기 어려운 곡이었던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며, 글쓴이는 음악을 듣기보다는 테크닉을 듣고 있음을 여러 차례 깨닫곤 했다. 이것이야말로 리시차가 가진 장점이자 치명적인 단점이 아닐까. 리시차가 들려준 '음악'은 눈부신 테크닉만한 깊이는 없고 그저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그나마 테크닉에 가려버리곤 했다. 이렇게 음악이 아닌 '서커스'를 들려주어서야 듣는이가 받을 수 있는 감동이 얼마나 깊을지는 뻔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듣는 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테크닉이야말로 참된 고급 테크닉이 아닐까.

그러나 앙코르에서는 맘먹고 테크닉을 뽐내는 모습이 그것대로 좋았으며 '라 캄파넬라'를 아찔한 빠르기로 연주하는 것을 듣고는 할 말을 잃었다. 관객이 좋다꾸나 손뼉을 쳐주니 빼지도 않고 커튼콜 한 번에 한 곡씩 네 곡이나 연주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자 키신이냐!'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춤곡> 연주는 악기나 사람이나 이제 몸이 다 풀린 듯 다부졌다. 특히 1악장 중간에 나오는 그윽한 색소폰 선율과 그에 딸린 목관 앙상블이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이 곡에서 은근히 멋지게 나오는 베이스클라리넷도 작품 곳곳에서 돋보였다. 3악장 마디 235 이후 또는 1악장 마디 154 이후부터 긴 호흡으로 긴장감을 쌓아가는 대목이 매우 좋았고 때때로 알맞게 터트려주는 타악기 소리도 멋졌다.

금관도 제법 잘했으나 2악장 처음을 비롯해 금관끼리 화음을 만들어내는 대목에서 데크레셴도-크레셴도가 깔끔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2악장 마디 19에서 독주 바이올린이 루바토로 부드럽게 시작하는 연주를 글쓴이는 싫어하는데, 이날 악장을 맡은 웨인 린(?)은 악보에 있는 음가 그대로 재빠르게 연주해서 썩 마음에 들었다. 다만, 음색이 좀 더 날카로웠으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지휘자 제임스 저드는 국내 악단이 데려올 수 있는 객원 지휘자 가운데 최상급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날 <교향적 춤곡> 해석도 매우 훌륭했으며, 그 가운데 2악장에 해석이 흥미로운 곳이 많았다. 군데군데 루바토를 쓰면서도 느슨해지지 않았고, 그런 가운데 콘트라베이스가 저음을 단단하게 찍어주어 슬프면서도 퇴폐적인 '슬라브 왈츠' 느낌을 잘 살렸다. 프레이즈를 새로 시작하는 곳에서 템포를 크게 떨어트렸다가 아첼레란도를 쓰곤 했던 대목도 참신했다.

2악장 마디 119와 이어지는 대목에서 테누토와 헤어핀(hairpin; <>)을 겹쳐놓은 곳은 보통 리테누토를 써서 템포를 조였다 풀었다 한다. 그러나 제임스 저드는 갑자기 템포를 너무 떨어트린 탓에 이곳에서 템포가 바뀌는 듯 마는 듯했다. '처음 빠르기로 돌아가 조금 덜 빠르게 A tempo poco meno mosso'라는 지시가 있기는 하지만 갑자기 너무 느려지니 지루한 느낌이 들었으며, 마디 47에서 악보에 없는 리테누토를 맛깔스럽게 쓴 일과 어울리지 않아 갸우뚱했다. 아마도 프레이즈를 새로 시작할 때 템포를 떨어뜨린 다음 아첼레란도 쓰는 일에 일관성을 두려고 그러지 않았나 싶었으나 이곳에서만큼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마디 169에서 템포를 떨어뜨렸다가 마디 171에서 다시 조이라는 지시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아첼레란도를 썼는데, 조금 느슨한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제법 그럴싸했다.

3악장 마디 162에는 이상한 지시가 붙어 있다. '템포 바꾸지 말고, 그러나 서두르듯이 L'istesso tempo, ma agitato'라니, 템포를 바꾸란 말인가 말란 말인가. 음반을 들어보면 이 대목에서 갑자기 빨라지기도 하고 지루하게 늘어지기도 해서 제임스 저드는 어떻게 할지 관심 있게 들어보았다. 그랬더니 아주 살짝 빨라지는 듯싶었다. 아무래도 이게 정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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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일 화요일

2008.10.15. 스크리아빈 몽상 / 루토스와프스키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 올가 케른 / 제임스 드프리스트 / 서울시향

2008년 10월 15일(수)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James DePreist
협연자 : Olga Kern, pf

Scriabin, Reverie, Op. 24
Lutoslawski, Concerto for Orchestra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 3 in d, Op. 30



쇤베르크가 현악 사중주 2번을 발표하면서 무조음악 시대를 활짝 열어젖힌 때는 1908년이며, 12음 기법을 고안한 때는 1921년이다. 그 뒤로 많은 작곡가가 무조음악이 대세가 되어가는 과정에 뛰어들었고, 조성을 지키고자 하는 작곡가들은 조성이 뜻하는 바를 20세기에 맞게 새로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여전히 19세기 기능화성에 기대려고 했던 '수구적인' 작곡가도 있었으나 대부분 음악사 주변으로 밀려나 잊혀야만 했으며, 라흐마니노프는 그 가운데 드문 예외에 속한다.

스크리아빈의 <몽상 Rêverie>은 1898년 작품으로 조성음악 어법이 확장되어 갈 데까지 가버린 결과 무조음악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알게 해준다. 그런가 하면 루토스와프스키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12음 기법이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나서도 조성 안에서 으뜸음을 중심으로 하는 위계질서를 지키면서 19세기 양식과는 거리를 두려는 노력 끝에 작곡가들이 어떤 답을 얻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루토스와프스키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은 여러모로 그보다 10여 년 먼저 발표된 버르토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과 닮은꼴이다. 이를테면 조성음악 어법을 확장하고 리듬과 박절의 규칙성을 해체하면서 그 아이디어를 많은 부분 민속음악에서 빌려왔고, 선율과 리듬을 민속음악에서 따오기도 했다. 아치(arch) 형식은 버르토크가 즐겨 쓰던 것인데 루토스와프스키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1악장이 전형적인 아치 형식으로 되어 있다. 2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로 되어 있으나 대칭 구조가 아치 형식과 맞아떨어진다. 다만, 이번 연주회 제목이 <러시아 명곡 시리즈 III>이므로 헝가리 사람인 버르토크보다는 폴란드 사람인 루토스와프스키가 조금은 더 어울린다.

이 작품을 연주할 때 민속음악과 현대음악이 작품 속에서 상생하게 하는 일은 지휘자가 많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며, 억지로 균형을 맞추기보다는 지휘자마다 어느 한 쪽에 무게를 실어주는 게 보통이다. 서울시향을 지휘한 제임스 드프리스트는 굳이 따지자면 '현대음악' 쪽에 손을 들어준 듯하다. 노래하듯 자연스러우면서도 강약이 뚜렷한 리듬을 살리는 대신 음악이 기계적으로 흘러가도록 하면서 세부를 살리는데 더 신경 쓰는 듯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타악기 소리를 크게 앞세워 표정없이 차가운 음악이 되지 않도록 했다. 결과는 매우 훌륭했다. 객원 지휘자가 서울시향으로부터 이만한 소리를 뽑아냈다면 제임스 저드나 아릴 레머라이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모자람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딱 한 가지 아쉬운 곳을 말하자면 빠른 음형으로 정신없이 달리는 곳에서 까닭 없이 템포를 느리게 잡아 맥빠진 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를테면 2악장 스케르초는 악보에서 ♩= 172 속도로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있으나 서울시향은 ♩= 140 정도로 연주했고, 3악장 토카타에서는 악보에서 지시한 ♩♩= 112 대신 ♩♩= 105 정도로 템포를 잡았다. 아마도 지휘자가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짧은 시간에 연습을 끝내느라 함부로 속도를 내지 못한 탓이 아닐까 싶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곡은 글쓴이처럼 손이 작아서 옥타브를 겨우 짚는 사람은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기에 요즘 하는 말로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같다. 그 가운데서도 피아노 협주곡 3번 하면 짐승급 남성 연주자가 큼지막한 '앞발'로 건반을 쿵쿵 내리찍는 모습이 먼저 생각난다. 연주자는 큰 손과 힘, 그리고 눈부신 테크닉을 먼저 갖추어야 하며 작품 속에 담긴 애잔한 느낌을 살리는 일은 그다음이다.

그러나 올가 케른은 어떤가? 늘씬한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에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공주님 같은 짙은 분홍색 드레스 차림으로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한단다. 그런데 놀랍게도 연주가 너무나 훌륭하다. 힘은 좀 모자라지만 작품을 감당 못할 만큼 작지는 않으며 생김새만큼 맑고 고운 음색과 우아한 프레이징으로 마치 쉬운 곡을 연주하듯 술술 소리를 풀어낸다. 작품 속에 담긴 광기와 '다크 포스'는 동화 속 공주님에게 닥친 어려움이 되어 이를 슬기롭게 이겨나가는 공주님을 돋보이게 한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이런 라흐마니노프도 있구나. 올가 케른은 이 곡으로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했단다.

템포는 제법 빨라서 우아하되 얌전 빼는 연주는 아니었으며 건반을 세게 두드려야 할 때에는 템포를 크게 늦추기도 했다. 3악장 시작 부분에서 이런 점이 매우 두드러졌는데, 협연자가 템포를 바짝 당기는 바람에 오케스트라가 놀라서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마디 30에서 마디 31로 넘어가는 단9도 글리산도에서는 협연자도 템포를 감당하지 못해 슬쩍 미끄러지다 말았다. 마디 39에서는 갑자기 템포를 크게 늦추어 건반을 힘껏 눌러가며 연주했는데 여기서부터 제1주제에서 제2주제로 넘어가는 경과구(transition)에 해당하므로 음악이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템포가 변화무쌍하지는 않았으며 느끼한 루바토를 쓰는 일도 없었다. 셈여림과 음색에서도 과장된 감정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곱게 갈무리하여 부드러우면서도 시원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가녀린 몸매에 비해서 때때로 꽤 큰 소리를 내는 게 신기했으나 발끝까지 가리는 기다란 드레스를 보고 한 가지 짚이는 게 있었다. 다리를 뒤로 차올리듯 재빨리 구부려 종아리와 허벅지 사이에 의자 엉덩이 받침을 단단히 감싸면 그 반동으로 잠시나마 건반을 매우 세게 두드릴 수 있다. 힘이 모자란 연주자가 쓸 수 있는 편법이라 하겠으나 남이 보기에 몹시 볼썽사나워서 마치 우아한 백조가 물속에서는 요란하게 발을 움직이는 듯하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반드시 발목까지 가리는 드레스를 입고 써야 하며, 남자는 쓸 수 없는 방법이기도 하다. 아마 올가 케른도 이러려고 일부러 긴 드레스를 입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때문에 어디서 얼마만큼 페달을 밟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페달을 살짝살짝 쓰는 것 같은데 어찌 그런 신비로운 음색이 나오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연주가 끝나고 나서 정명훈 지휘로 명연주를 펼쳤을 때라야 들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매우 훌륭한 연주였지만 이만한 박수를 받을 만큼 잘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외모 덕을 만만치 않게 보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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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9. 시벨리우스 렘민캐이넨의 귀향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 데얀 라지치 / 성시연 / 서울시향

2008년 9월 19일(금)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성시연
협연자 : Dejan Lazic, pf

Sibelius, Lemminkainen's Return
Beethoven, Piano Concerto No. 4 in G, Op. 58
Mussorgsky, Pictures at an Exhibition (arr. Ravel)



성시연은 지난 1월 9일에 서울시향을 이끌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등을 연주한 바 있다. 그러나 화려한 콩쿠르 성적과 보스턴 심포니 부지휘자라는 놀라운 경력에 비해 그때 보여준 연주는 기대에 많이 못 미쳤던 터라 이번에야말로 성시연의 참된 실력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이번에는 연주회장이 세종문화회관이 아닌 예술의 전당이라 더욱 좋았다. 이날 연주를 돌이켜보면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으나 지난 연주회보다 뚜렷이 나아진 모습을 보여 반가웠다. 나이 어린 여자라는 약점은 유럽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클 테니 이만하면 제법 잘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이 어린 '남자'인 구자범 또한 독일 하노버 국립 오페라 극장 제1 카펠마이스터 자리를 거머쥐고도 지난 2006년 2월 27일 연주회에서는 그만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시벨리우스 <렘민캐이넨의 귀향>을 연주할 때만 해도 도무지 잘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지휘자의 해석을 따지기에 앞서 연주자들이 초견으로 연주하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앙상블에 꽉 짜인 맛이 없고 어수선했다. 각 파트 수석 연주자와 타악기 연주자를 뺀 나머지는 다른 사람이 내는 소리에 적당히 묻어가려는 듯했고 지휘자의 지시에 재빨리 반응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이 신나는 작품을 연주하는데 도무지 신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수준이 낮은 악단일수록 연주회 첫 곡을 잘하는 일이 드문 법이며, 서울시향처럼 제법 수준 높은 악단이라면 지휘자가 단원들을 얼마나 잘 이끌 수 있는지와 단원들이 지휘자를 얼마만큼 대우해주는지를 연주회 첫 곡을 들어보면 웬만큼 알 수 있다. 객원 연주자가 악단을 데리고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뻔하므로 첫 곡 준비에 가장 적은 시간을 들이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의 첫 곡은 성시연의 약점과 한계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훨씬 나았다. 현 소리부터 알차서 이제야 서울시향 연주를 듣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편성을 크게 잡은 것은 뜻밖이었다. 이런 묵직한 베토벤은 요즘 유행과도 맞지 않아 구식이라는 느낌이 들었을 뿐 아니라 협연자 데얀 라지치의 날렵한 연주와 음색이 어울리지도 못했다. 협연자가 루바토를 과장해서 써댄 탓에 음색뿐 아니라 리듬과 템포가 안 맞을 때도 더러 있었다. 지난 1월 9일 연주회 때에도 슈만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했던 세르히오 티엠포가 별난 루바토를 써서 성시연이 정신없이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번에는 끌려다니는 대신 과감한 템포 변화로 협연자를 마주하며 '콘체르토'다운 한 판 겨루기를 연출했다.

데얀 라지치는 맑고 날렵한 음색에 어찌 들으면 꽤 느끼한 루바토를 어우러지게 한 점이 재미났다. 티엠포와 닮은꼴이라 하겠으나 가볍게 통통 튀어오르던 티엠포에 비해 라지치는 제법 힘 있고 단단한 소리를 냈고 페달도 더 많이 썼으며 루바토는 티엠포보다는 훨씬 얌전했다. 성시연과 협연한 두 사람 모두 연주가 능글맞은 데가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더욱 재미있게도 성시연은 다소곳하거나 나긋나긋하지 않고 씩씩한 여장부 같았다. 그런데 머리 모양은 귀엽더라.

라지치는 베토벤이 작곡한 카덴차를 쓰지 않고 직접 쓴 카덴차를 연주한 점이 남달랐다. 1악장과 3악장 모두 카덴차 바로 앞에 나온 선율을 되풀이하면서 차츰 주요 음 소재를 활용해 변주하는 솜씨가 매우 훌륭했으며, 베토벤 양식과 라지치 색깔이 모두 살아있는 참신한 카덴차였다.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연주는 썩 훌륭했다. 물론 앙상블이 갑자기 매우 좋아지거나 하지는 않아서 숨을 죽이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은 없었다. 그러나 구석구석 소리를 열심히 다듬어 얼핏 들으면 나무랄 데 없는 깔끔한 연주라 할만했으며 마치 노력파 모범생 같은 느낌이 들었다. 라벨의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다양한 음색이 돋보이는 작품이라 그런지 지난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목관악기와 타악기가 맛깔스럽게 어우러진 제5곡 '달걀 껍데기 속 병아리의 발레'가 특히 훌륭했고, 타악기 소리가 앞으로 나서며 긴장과 폭발을 이끌어간 제9곡 '닭다리 위 오두막집'도 멋졌다. 제10곡 '키예프의 대문'에서는 아침 햇살이 쏟아지듯 찬란하게 빛나는 금관과 힘차게 두드려대는 타악기가 연주회장을 압도하며 환호로 가득한 박수를 이끌어내었다.

그런가 하면 제7곡 '리모쥬 장터'에서는 악센트를 좀 더 또렷하게 살렸으면 싶었고, 제3곡 '튀를리 공원'이나 제6곡 '사무엘 골덴베르크와 슈밀레'는 현악기가 좀 더 나은 앙상블을 만들어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제2곡 '옛 성'에서는 서늘하고 쓸쓸한 느낌이 좀 더 살아났으면 싶었고, 제8곡 '카타콤'은 스산한 화음을 잘 살렸으나 시간이 멈춘 듯한 음향을 좀 더 살리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제1곡 '난쟁이'와 제4곡 '비들로'에서는 타악기가 느슨한 앙상블을 가리며 제법 분위기를 잘 살렸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객석이 유난히 소란스러웠다. 휴대전화 소리가 몇 번이나 울렸고, 여기저기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는가 하면 떠드는 사람도 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주로 고주파 음이라 나이 지긋하신 분들께는 잘 안 들리는 듯하다. 또 요즘에는 이어폰을 끼고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젊은 사람 가운데서도 노인성 난청이라 할 만한 사람이 제법 되는 것 같다. 이런 분들은 자기도 모르게 주위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서울시향 월간지 <SPO> 페이지 넘기는 소리, 숙제하러 온 학생들이 연주는 안 듣고 열심히 필기하는 소리, 가방 여닫는 소리, 그리고 가장 고약한 비닐봉지 만지는 소리까지 모두 주위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소리다. 휴대전화 소리를 진동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안 들릴 거라는 착각도 매우 곤란하다. 클래식 음악의 진짜 아름다움은 여린 소리에서 나올 때가 잦다. 그 소리를 객석 소음 탓에 놓쳐버린다면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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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1일 월요일

2008.07.05.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 니콜라스 안겔리치 / 정명훈 / 서울시향

서울시향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이 무대를 휘어잡아 《비창 교향곡》 바순 독주를 빛바래게 해버린 연주회. 어마어마한 '포스'를 뿜어내는 진줏빛 소토 보체(sotto voce)에 깜짝 놀랐으나 정명훈이 뿜어내는 존재감이 이날따라 워낙 대단해서 채재일한테 논점을 모아주기 어려웠다. 이 일이 못내 아쉬워서 다음 연주회 때 맘먹고 칭찬한다는 게 고작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4악장 2주제... -_-; 이날 숨은 주인공은 채재일이었다. 완소 채재일 씨 짱 드셈. >_<


2008년 7월 5일(토)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니콜라스 안겔리치(피아노)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in E-flat, Op. 73 "Emperor"
Tchaikovksy, Symphony No. 6 in b, Op. 74 "Pathetique"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지휘할 때면 앙상블이 갑자기 크게 좋아지곤 한다. 정명훈이 지휘를 잘하기도 하고 대가의 존재감 때문에 단원들이 열심히 연주하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름난 외국 악단에서 객원 연주자를 데려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객원 덕에 앙상블이 좋아졌으니 진짜 서울시향 실력이 아니라고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객원 연주자의 수준 높은 연주를 시향 단원들이 듣고 배울 테니 말이다. 서울시향은 그 뒤로도 '찾아가는 연주회' 등으로 같은 곡을 '복습'하면서 배운 것을 바로 써먹을 수 있다. 또 객원으로 왔다가 단원으로 눌러앉는 사람도 더러 있다.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나 팀파니 수석 아드리앙 페루숑이 그렇다. 옛날에는 시향 단원이 객원 연주자를 따라가지 못해서 객원들만 두드러질 때가 잦았지만, 요즘은 크게 나아져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함께 성장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날 연주는 그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큼 훌륭했다.

니콜라스 안겔리치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은 무척 낯설게 들렸다. 서울시향은 대편성으로 묵직하게 밀어붙였지만 안겔리치는 오케스트라에 팽팽하게 맞서지 않고 살짝 흘리면서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연주했다. 또 마치 쇼팽을 연주하듯 루바토를 과장해서 쓰고 곳곳에서 소토 보체(sotto voce)로 연주하는가 하면 페달을 너무한다 싶을 만큼 잔뜩 써댔다. 무대로 걸어나올 때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던 생각이 겹치면서 협연자가 몸이 아프지는 않은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엉터리 연주라고 화를 내야 할까. 생각 끝에 나는 참신한 해석이라고 좋게 여기기로 했다.

우리는 어쩌면 '황제'라는 표제 때문에 생각이 틀에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표제는 악보 출판업자가 장삿속으로 붙였을 뿐 작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작품은 그저 피아노 협주곡일 뿐이며 '황제'와 관련한 상상을 보태어 그에 걸맞은 웅장함을 바라는 것은 잘못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봐, 그래도 안겔리치는 너무하지 않아? 저게 쇼팽이지 어딜 봐서 베토벤이라는 거야?" 그 말대로 안겔리치가 한 연주는 베토벤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꼭 베토벤다워야 할 까닭이 있는가? 움베르토 에코는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라고 했다. 작가가 의도한 것만을 고이 받들어 모실 게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열린 해석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까지 알고 있던 '황제 협주곡'은 잠시 잊어버리고 연주자가 내놓은 색다른 해석을 기꺼이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연주는 오늘따라 더욱 뛰어난 서울시향의 앙상블과 '다크 포스' 넘치는 정명훈의 해석이 맞물린 명연주였다. 1악장에서 음악에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거대한 크레셴도를 만드는 솜씨가 훌륭했고 바순과 클라리넷 독주 또한 표정이 잘 살아있는 뛰어난 연주였다. 마디 161에서 터져 나온 총주는 어찌나 사나운지 바로 앞에서 울다 지쳐 잠드는 듯하던 클라리넷 소리를 갈가리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부 러시아 지휘자가 남긴 녹음과는 달리 트럼펫을 앞세워 귀 따갑게 으르렁거리지 않고 악기 사이에 균형을 잘 맞췄다.

3악장에서는 빠른 템포로 달리면서도 앙상블이 흐트러지지 않은 점이 매우 훌륭했다. 긴장감을 조금씩 쌓아올리다 마디 229에서 크게 터트릴 때에는 특히 현이 몹시 날카롭게 끊어 긁어대며 섬뜩한 소노리티를 만들어내었다. 차갑게 비웃는 듯한 행진곡 리듬이 내가 이제껏 들어본 그 어떤 연주보다도 폭력적이고 무시무시했다. 마치 나치 시대 독일군 사열식을 보는 것처럼, 또는 스탈린 시대 러시아 군대처럼, 또는….

4악장은 슬프고도 슬펐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현이 울부짖지 않고 왠지 차갑게 가라앉은 것 같았고, 절망 속에서 처절하게 허우적거리는 대신 차분히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디 81에서는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를 생각보다 가볍게 다루어 바로 뒤이어 목놓아 울어대는 바이올린과 첼로에 무게를 실어주지 않았다. 곡이 끝날 때 콘트라베이스가 연주하는 셋잇단음 리듬은 심장이 조금씩 느려지다가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날 연주는 여기에서도 생각보다 담담했다. 정명훈이 표현하는 절망이 이만큼밖에 깊지 않다고 믿기는 어렵다. 정명훈은 왜 그랬을까?

답은 앙코르에서 드러났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4악장을 앙코르로 연주한 것이다! (4악장을 통째로 연주하지는 않고 마디 60부터 148까지를 건너뛰었다.) 정명훈은 차이콥스키가 교향곡 5번 4악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짜 승리'라도 억지로 '5악장'으로 덧붙여 절망과 체념 속에 주저앉지 않으려고 했나 보다. 심벌즈를 세 대나 그러모아 요란하게 쳐댄 것은 더더욱 교향곡 5번 4악장 같은 역설을 만들어내었다. 그러고 보니 '앞선 악장'에서 정명훈이 절망과 체념 대신 담으려고 했던 것은 커다란 분노가 아니었을까. 정명훈이 옛날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요즘 들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궁금하다.

이날 연주가 끝나고 누리꾼 사이에 박수 예절을 놓고 논란이 되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3악장이야 워낙 '뿜빰빰'하고 법석을 피우며 끝나니 박수가 터져 나오는 일은 이제 당연한 일(?)이기도 하며 더군다나 알면서 일부러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4악장은 죽어가듯이 천천히 여리게 끝나기 때문에 여운을 주는 '침묵 악장'이 매우 중요하다. 이날은 잔향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 나오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잔향이 없어지고 채 5초가 지나지 않아 끝내 성급한 박수가 나왔다. 그때까지 지휘봉을 높이 들고 있던 정명훈은 김 샜다는 듯이 팔을 내리고 말았다. 잔향이 없어지기에 앞서 치는 손뼉을 '안다 박수'라고 하여 비꼬아 말하기도 하는데, 이날 박수는 '안다 박수'는 아니고 '깬다 박수'라고 하더라. 성급한 박수는 여운을 즐기려는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주니 곡이 조용히 끝날수록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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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9일 토요일

2008.03.21. 라우타바라 북극의 노래 / 스트라빈스키 피아노 협주곡 / 카프리치오 / 시벨리우스 교향곡 7번 - 알렉산더 토라제 / 미코 프랑크 / 서울시향

2008년 3월 21일(금)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미코 프랑크
협연자 : 알렉산더 토라제

Rautavaara, Cantus Arcticus
Stravinsky, Concerto for Piano & Wind Instruments
Stravinsky, Capriccio for Piano & Orchestra
Sibelius, Symphony No. 7 in C, Op 105



러시아 교회 종은 유럽 교회 종과는 달리 흔들어 소리 내지 않고 두드려 소리 낸다. 종지기는 온몸으로 도구를 조작하여 종 여러 개를 동시에 두드릴 수 있으며, 이때 음색도 음높이도 다른 종들이 어울려 신비로운 폴리리듬을 이룬다. 이러한 종소리와 두드림의 미학은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를 두고 역동적인 고요함(calme dynamique)이라 했고, 음악학자 크리스티안 카덴은 진동하는 고요함(schwingende Ruhe)이라 고쳐 말했다.

이는 박절과 마디 구분을 무시하며 끊임없이 바뀌는 리듬, 어택(attack)을 강조한 음형과 느닷없는 악센트, 이 악기 저 악기 두서없이 치고 나오는 듯한 관현악법 등으로 나타나며, 더 나아가서는 음악 형식과 미학이 가지는 순환적, 대칭적 속성, 다시 말해 스트라빈스키 음악에서 자주 나타나는 아치(arch) 형식이나 발전과 진화보다는 순환과 갱생을 추구했던 미학관 또한 '진동하는 고요함'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리듬과 음형과 관현악법 등이 종소리를 닮았다면, 형식과 미학은 종이 흔들리는 모양을 닮았다.

<피아노와 목관 악기를 위한 협주곡>과 <카프리치오>를 협연한 피아니스트 알렉산더 토라제는 러시아 사람답게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숨어있는 '종소리'를 본능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피아노 건반을 쿵쿵 신나게 두드려대며 음악의 '진동'을 제대로 이끌어냈으며, 때때로 그것이 지나쳐 선율 윤곽을 망가트려 옥에 티가 되기도 했다. 페달을 밟을 때도 만만치 않게 힘차서 온몸으로 소리 내는 종지기 이미지가 스머프 같은 외모와 겹쳐 희극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때로는 몹시 여린 소리로 '고요함'을 '진동' 못지않게 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서울시향은 '러시아 종'을 치는데 그다지 익숙지 못한 듯했다. 리듬이 깔끔하지 못할 때가 잦았고, 악센트는 충분히 살리지 못했으며, 어택(attack)을 살려야 할 곳에서 부드럽게 연주할 때가 잦았다. 국내 악단이 으레 그렇듯 금관이 취약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지휘자가 잘만 이끌었다면 이날 연주보다는 훨씬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코 프랑크는 뛰어난 지휘자이지만 나이가 어린 만큼 경험이 모자랐던 것인지 스트라빈스키는 그다지 시원찮았다.

핀란드 출신 지휘자가 제 실력을 발휘한 것은 역시 핀란드 작곡가들의 작품에서였다. 라우타바라의 <북극의 노래>는 무엇보다 핀란드 늪지대에서 채록했다는 새 소리가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지는 것이 재미있다. 관악기가 흉내 내는 새 소리, 지저분하고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만 그래서 더 정겨울 것 같은 진짜 새 소리, 그리고 다큐멘터리 배경음악처럼 차분히 깔리는 음악이 서로 다른 시간과 역할에 따라 흘러가는 것은 아이브스의 <대답 없는 질문>을 연상시킨다. 관악기 여러 대가 어지럽게 얽히며 새 소리를 흉내 내는 곳에서 지휘자가 비팅을 하지 않고 악기마다 일일이 예비박을 주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지휘자가 솜씨를 가장 잘 뽐낸 것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7번에서였다. 몇몇 거장 지휘자들이 브람스 풍으로 묵직한 해석을 보여준 것과는 달리 미코 프랑크는 북유럽의 서늘한 공기가 피부로 느껴질 듯한 분위기를 제대로 살린 점이 마음에 들었다. 군데군데 템포가 너무 빠른 듯싶어서 갸우뚱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젊은 지휘자의 패기로 좋게 볼 수도 있겠다 싶었으며, 오히려 이것으로 지휘자가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브람스'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하는 듯싶기도 했다.

이 곡은 1924년에 작곡, 초연되었다. 이미 1908년에 쇤베르크가 현악 사중주 2번을 내놓으면서 무조음악 시대를 활짝 열어젖혔음을 생각해보면, 화성과 조성의 해체라는 새 흐름을 따르지 않고 전통적인 기능 화성 작법을 고집한 시벨리우스는 브람스의 망령에 사로잡힌 퇴행적 작곡가라 비난받을 만도 하다. 그러나 독일 중심 음악사에서 뽑아낸 틀을 유럽 역사의 변두리에 머물렀던 나라 작곡가에게 그대로 뒤집어씌우는 것이 옳은가. 시벨리우스에게 브람스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는 것이 과연 옳은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독일 음악 논리로 따지는 조성과 화성으로 된 '뼈대'가 아니라 그 겉을 둘러싼 피와 살, 그 주변의 서늘하면서도 싱그러운 공기와 그 공기를 타고 너울너울 날아오르는 눈송이야말로 시벨리우스 음악의 참모습이 아닐까. 지휘자 미코 프랑크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날 서울시향이 가장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던 곳은 빠르기말이 프레스토(매우 빠르게)로 바뀌는 마디 449부터였다. 현악기가 빠른 반복 하행 음형으로 거대한 크레셴도(점점 크게)를 만들며 열다섯 마디를 더 지나면서는 랄렌탄도(점점 느리게)가 더해져 마법 같은 고양감을 이끌어내다가 마침내 빠르기말이 아다지오로 바뀌면서 나오는 그윽하고 애틋한 트롬본 선율은 이 작품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여기서 긴 호흡으로 커다란 고양감을 제대로 이끌어내는 연주는 흔치 않다. 크레셴도의 폭이 너무 좁거나, 랄렌탄도 지시를 만나고도 별로 느려지지 않거나, 프레스토가 프레스토답지 않고 너무 느리거나 하는 연주가 많다. 오케스트라 연주력이 어지간히 뛰어나지 않고는 감당이 안 되는 모양이다. 크레셴도와 랄렌탄도를 동시에 잘 살리고도 앙상블이 흐트러져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노리티가 엉망이 되기도 한다.

서울시향은 크레셴도와 랄렌탄도를 꽤 잘 살렸다. 지휘자는 마디 449에서 과감하게 템포를 빠르게 잡고도 그 속도에 무너지지 않도록 영리하게 안전장치를 해두었다. 현의 크레셴도 폭이 좀 작았지만 그 대신 호른의 단음계 가락을 앞세워 모자란 부분을 채우는 동시에 현의 앙상블이 흐트러지지 않게 가려준 것이다.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트롬본 연주도 썩 좋았다. 아쉬운 데가 없지는 않았지만 서울시향이 이보다 잘하기는 어렵지 싶었다.

미코 프랑크가 서울시향을 지휘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에는 미처 몰랐는데, 가만 보니 젊은 지휘자와 젊은 악단이 닮았다. 서로 좌충우돌하면서 거장이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들을 많이 배웠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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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8일 금요일

2008.01.09. 쿠르타그 '스틸리' / 슈만 피아노 협주곡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 세르히오 티엠포 / 성시연 / 서울시향

2008년 1월 9일(수)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성시연
협연자 : 세르히오 티엠포 Sergio Tiempo, 피아노

Kurtag, Stele
Schumann, Piano Concerto in a, Op. 54
Shostakovich, Symphony No. 5 in d, Op. 47



쿠르타그(Kurtág György; 1926-)의 <스틸리 Stele>는 버르토크와 베베른과 리게티를 합쳐놓은 듯한 텍스처와 낯설고 신비롭고 꿈처럼 몽롱한 음향이 인상깊은 작품이다. 서울시향의 연주를 들으면서 나는 마치 크게 앓다가 혼이 잠시 몸을 벗어나 흐느적거리며 떠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높은 곳에 떠서 제 몸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끈적끈적하고 찝찝한 느낌에 몸서리치다 집 밖으로 나오면 떠들썩하게 돌아가는 세상과 그로부터 동떨어진 자신이 이상의 소설 <날개>의 한 장면처럼 어지럽다. "이때 뚜우 하고 정오 사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덕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마침내 뒤죽박죽 세상으로부터 눈과 귀를 닫아버리면 물속 깊은 곳을 천천히 흘러다니는 듯한 느낌에 편안해진다. 서울시향의 연주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곡 끝머리에서 되풀이되는 다섯잇단음의 물결 치는 듯한 느낌이 좀 자연스럽지 못했다는 것인데, 사실 그런 섬세한 음향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음향 환경에서는 기대하기 어렵기도 하다.

세르히오 티엠포가 협연한 슈만 피아노 협주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파격 또 파격이었다. 첫 타건부터 톡톡 튀는 것이 심상치 않더니, 이어지는 독주에서는 셈여림 표시가 p인데 아예 ppp로 터무니 없이 여리게 연주하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뒤로도 오케스트라가 나서지 않을 때마다 마치 연인이 속삭이듯 여리게 여리게 연주하는 솜씨가 남달랐다. 그냥 여린 소리와 여리면서도 멀리 퍼져 나가는 소리는 하늘과 땅 차이인데, 여리고 멀리 퍼지는 소리를 내려면 손가락을 오히려 크게 움직여야 한다더니 과연…. 그런데 티엠포는 큰 소리를 낼 때에도 비슷한 손놀림을 한다. 피아노 소리가 빠르고 가볍게 통통통 튀어오른다! 화음을 쿵쿵 두드려댈 때에는 갑자기 아찔한 빠르기로 달린다. 세상에, 이건 슈만이 아냐! 장난꾸러기처럼 종잡을 수 없는 다이내믹과 '제비 본색'으로 어르고 달래는 루바토는 차라리 감정 과잉 슈만을 놀리는 듯하다. 오케스트라는 피아노에 정신없이 끌려다니기만 한다. 제멋대로도 이런 제멋대로가 없으니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학생이 이렇게 연주했다면 틀림없이 선생님께 크게 꾸지람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 슈만 망령을 날려버리고 나니 티엠포의 연주에 설득당하고 만다. 그래, 슈만은 없었다. 오직 티엠포, 티엠포! 나 그대에게 불타는 팬심(fan心)을 바칠 테야요!

지휘자 성시연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해석은 특별히 모난 데 없이 무난했다. 템포는 대부분 악보의 메트로놈 지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악기 간 밸런스에도 무리가 없었다. 므라빈스키의 과장된 해석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지만, 듣자 하니 이날 연주된 작품 모두 처음 지휘해본 것이라 악보에 충실한 것이 당연하다. 나는 앞서 티엠포의 장난질에 열광하고 말았지만 편법으로 정공법을 이기기는 어렵다.

다만, 4악장 시작 부분의 템포는 ♩= 115 정도로 악보에서 지시한 ♩= 88에 비해 너무 빨랐고, 아첼레란도를 거쳐 마디 11에 이르렀을 때에는 악보에서 지시한 ♩= 104가 아니라 거의 ♩= 140 가까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당장에라도 폭발할 듯한 분위기에 비해 악보에서 지시한 템포가 너무 느리다고 느낄 수 있으므로 성시연의 해석이 틀렸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템포가 빨라진 만큼 앙상블이 흐트러졌으며, 특히 트럼펫이 힘들어했다는 점은 생각해볼 문제다. 3악장 마디 129와 마디 130 사이의 짧은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를 무시하고 넘어간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서울시향의 앙상블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특히 1악장 앞부분에서 템포와 리듬이 흔들리면서 음악이 지루해지곤 했는데, 템포가 느리다고 풀어질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집중해서 얼음장 같은 긴장감을 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그러나 피아노의 묵직한 스타카토 음형을 업고 호른이 전면에 나서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었다. 앙상블이 흐트러지는 것은 여전했지만 연주자들 사이에 묘한 열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디 188에서는 심벌즈의 제대로 된 '한 방'과 함께 팀파니와 작은북이 신나게 두드려댔고, 트럼펫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2악장에서는 단조로운 템포에 힘입어 앙상블도 꽤 좋았으며, 3악장에서 목놓아 울부짖는 듯한 현도 훌륭했다. 4악장에서는 앙상블은 가장 나빴지만 그것을 덮을 만한 열기로 연주회장을 압도했다. 곡을 끝맺는 큰북의 무시무시한 타격 일곱 번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흥분을 이끌어내었다.

나는 서울시향이 이토록 미쳐 날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정명훈이 지휘할 때에는 집중력은 높아도 오히려 단원들이 너무 긴장한 듯한 느낌을 받곤 했지만, 성시연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은 군데군데 삐걱거리기는 했어도 단원들이 뿜어내는 열기만큼은 정명훈 때보다 더했다. 물론 작품 특성 탓도 있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 코랄 팡파르는 '브라보'를 이끌어내는 보증수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휘자의 역할이 작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성시연은 여자이고 나이도 어리다. 그가 주로 활동해온 유럽에서는 유색인종이다. 얕잡아 보이기 딱 좋은 처지에서 악단을 이끌어야 하는 어려움이 오죽할까. 그러나 그는 한 발 잘못 디디면 엉망진창이 되어버릴 위험을 살살 헤치고 단원들 스스로 음악에 몰입하게 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뼈대를 탄탄하게 살리는 솜씨도 돋보였다. 화려한 콩쿠르 입상 경력이 어떤 바탕에서 나왔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웃지 못할 일화 하나. 성시연이 국내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구스타프 말러 지휘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에 입상하면서부터다. 그런데 이미 그보다 한 해 앞서 그가 게오르그 솔티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마침 김선욱이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음악계가 온통 김선욱 소식으로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김선욱은 뜻하지 않은 피해자 성시연에게 협주곡 협연으로 보상해야 한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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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7.12.27.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 교향곡 4번 - 넬손 프레이리 / 정명훈 / 서울시향

2007년 12월 27일(목)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넬손 프레이리 (Nelson Freire, 피아노)

Brahms : Piano Concerto No. 2 in Bb Major, Op.83 (44')
Brahms : Symphony No. 4 in e minor, Op.98 (39')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협주곡 1번과 마찬가지로 협주곡이라기보다는 교향곡에 가깝다. 이 때문에 협연자는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음량에 맞서 일단 살아남아야 하며, 연주 테크닉 또한 매우 뛰어나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브람스 음악이 가진 치밀하고 논리적인 구성을 풍부한 감성으로 풀어내는 일도 만만치 않다. 이처럼 연주자가 삼중고를 떠안아야 하는 까닭에 매우 유명한 작품인데도 국내에서 연주되는 일이 거의 없다.

넬손 프레이리의 피아노 연주는 여러모로 지난 5월 18일에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개리 그래프만을 떠올리게 했다. 커다란 밑그림이나 악상의 자연스러운 흐름, 다양하고 적절한 음색 등은 훌륭했으며, 이 점에서는 지난 2005년 11월에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여 음반으로도 나온 명연과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실수가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리듬이 곧잘 망가지곤 하는 것이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다 싶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손가락 골절 때문에 제 실력을 내지 못했단다.

아픈 손가락으로 이렇게까지 연주해낸 것을 보면 역시 일류 연주자라 하겠지만, 아무래도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뒷감당하느라 고생이었다. 오케스트라 소리를 되도록 작게 내려고 벌서는 듯 연주하기 일쑤였고, 어택(attack)을 죽이고 여린 음에 크레셴도를 주는 식으로 협연자를 배려하기도 했다. 피아노 리듬이 망가질 때마다 정명훈이 재빨리 수습하려고는 했으나 서울시향은 아직 그런 돌발사태에 재빨리 대처하는 능력은 충분히 기르지 못한 모양이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발목을 잡기도 했다. 3악장 첼로 독주가 매우 뛰어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출신 객원이었다고 한다.

앙코르로 연주한 글룩의 "멜로디"(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가운데 '정령들의 춤'을 스감바티(Giovanni Sgambati)가 피아노곡으로 편곡)는 여린 음만으로 그윽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어 손가락 골절을 손쉽게 감추어주는 영리한 선곡이었다.

브람스 교향곡 4번은 특히 1악장에서 여러 성부가 조각조각 정교하게 맞물리는 독특한 텍스처 때문에 앙상블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멍덩한 소리가 되어버릴 위험이 있는데, 이날 연주가 이따금 그랬다.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기운이 빠져버렸던 것일까. 결코 졸연은 아니었지만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치고는 뭔가 좀 모자란 듯했다. 물론 이것은 연주회장 탓도 크다. 소리가 무뎌지곤 했던 것은 단원들이 큰 실수를 해서가 아니라 미세하게 리듬이 서로 어긋나거나 순간적으로 밸런스가 안 맞거나 했기 때문인데, 이것은 연주회장의 음향이 개선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팀파니 소리가 이날따라 이상했으며, 악기에 이상이 생긴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을 만큼 평소 실력에 못 미치는 연주였다. 오케스트라 총주를 휘감아 올라 결정적인 '한 방'으로 터트리지 못하고 자신감 없이 뒤로 빠질 때도 더러 있었다(이를테면, 마디 129). 저음 현 또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왠지 끌려다니는 듯했다. 작품에 담긴 '다크 포스'를 4악장에 몰아서 '거대한 크레셴도'를 만들어내려고 지휘자가 의도한 것은 아닐까도 잠깐 생각해보았으나, 또 달리 생각하면 마에스트로가 1악장을 그렇게 간단히 희생시키려고 했을 리는 없다.

2악장은 템포가 대략 ♪= 60 정도로 꽤 느렸는데, 3악장의 빠른 템포와 대비시키는 것은 크게 보면 타당한 해석이라 하겠으나 느린 만큼 집중력 있는 앙상블이 뒷받침되지 못해서 설득력을 충분히 얻지는 못했다. 마디 84에서는 힘없는 클라이맥스가 되었고, 마디 88에서는 바이올린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는 좋았으나 두터운 화음을 이루지는 못했다. 다만, 현악기군의 피치카토 음형은 깔끔했으며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3악장부터는 명쾌한 리듬을 업고 썩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반복되는 16분음 스타카토 음형을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하게 일치시켜 놀라운 소노리티(sonority)를 만들어내었고, 서울시향의 앙상블이 사실은 뛰어난데 작품이 작품이라 이제껏 고전했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돌이켜보건대 이토록 훌륭한 앙상블을 이룰 수 있는 악단인데도 음형이 복잡하게 얽힐 때에는 영 제 실력을 내지 못했다면 연주회장의 음향이 요술을 부린 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려우며, 이것만 보아도 시향 전용 연주회장이 절실히 필요함을 알 수 있다.

템포는 ♩= 135 정도로 꽤 빠른 편이었고, 군데군데 리타르단도를 써서(이를테면, 마디 5) 뚜렷한 템포 대비를 준 것이 인상깊었다. 앙코르로 3악장을 다시 한 번 연주했는데, 이때는 가운데 부분(마디 35-223)을 생략하고 템포 변화도 거의 없이 신나게 달려서 그야말로 앙코르다웠다.

4악장은 3악장에서 되찾은 기운을 살리고 파사칼리아(passacaglia) 특유의 반복과 점층 구조에 힘입어 마치 예고된 파국처럼 한 발 또 한 발 무게를 더해가는 거대한 크레셴도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마디 33에서 바이올린의 비장한 선율도 훌륭했고, 마디 193의 셋잇단음은 절망에 빠져 목놓아 부르짖는 듯했다. 다만, 마디 97의 플루트 독주는 기술적으로는 흠 잡을 데 없이 깔끔했으나 너무 무덤덤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름대로 루바토를 쓰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일부러 무표정한 연주를 의도한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구슬프게 흐느끼는 연극적인 표현이 낯 간지러웠던 게 아닐까 싶다.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이끈 지도 벌써 두 해가 지났다. 그동안 서울시향은 눈부신 성장을 보였지만, 세계적인 악단을 목표로 했던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친다. 정명훈이나 시향 단원들이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처음부터 목표가 너무 컸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시향 전용 연주회장도 없이 '남의 집 살이'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정명훈과 계약하면서 시향 전용 연주회장을 마련하기로 약속했음을 잊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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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5일 화요일

2007.08.19.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 브람스 교향곡 3번 - 김선욱 / 정명훈 / 서울시향

2007년 8월 19일(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김선욱, pf.

Brahms, Piano Concerto No. 1 in d minor, Op. 15
Brahms, Symphony No. 3 in F major, Op. 90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최초 구상이 교향곡이었다고 잘못 알려지곤 하는데, 원래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였다. 다만, 수차례의 전면적 개정 과정에서 교향곡이 될 뻔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 흔적이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다. 특히 1악장에 그러한 특징이 뚜렷한데, 일반적인 협주곡과는 달리 독주 악기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해서 피아노 협연자에게는 연주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테크닉 문제를 떠나 우선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음량에 맞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부 표현은 그다음 일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강력한 타건으로 협주곡으로는 흔치 않은 대 편성으로 위압하는 서울시향과 팽팽히 맞섰으며, 그러면서도 정교한 테크닉과 섬세한 감성을 놓치지 않아 과연 유명세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1악장에서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의견도 더러 있었으나, 내 생각에는 이 정도면 이제 약관에 이른 연주자라 믿기 어려울 만큼 훌륭했다. 작품이 워낙 까다로우니만큼 이보다 더 잘한다면 차라리 대가라 불러야 할 것이다.

김선욱의 피아노는 단단했으며 확신에 차 있었다. 때때로 살짝 쇼팽을 연상시키면서도 밝은 톤을 잃지 않는 루바토를 드러내기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나이 어린 연주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의식 과잉으로 유치해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오케스트라와 교묘하게 줄다리기를 해가며 음악에 긴장감을 더해가는 솜씨가 특히 놀라웠는데, 이것은 혼자 연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역시! 김선욱은 평소에 실내악 연주를 너무 좋아해서 주위에서 말릴 정도란다. 남다른 '앙상블 내공'을 쌓게 해준 것이 다름 아닌 실내악 연주일 테니 말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권장할 일이 아닐까.

서울시향의 연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악장 마디 66부터 비올라를 유난히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열악한 음향 환경이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지는 못했다. 마디 190에 아첼레란도를 쓴 것은 차분한 상태에서 재빨리 긴장감을 끌어올리기에는 좋았으나, 그 폭이 너무 커서 약간은 어색한 감이 있었다. (나중에 라디오로 들었던 22일 연주회에서는 아첼레란도의 폭을 약간 좁혀서 딱 적당했다.) 2악장은 4분 음표의 연속에 따르는 두터운 화성이 피아노와 상승작용을 하는 것이 매력적이지만, 서울시향은 투명한 현의 칸타빌레로 두터운 화성을 희석시키며 피아노와 미묘한 음색 대비를 이룬 것이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3악장이 특히 훌륭했으며, 기대했던 푸가토(마디 238) 역시 좋았다. 다만, 약간 더 욕심을 부리자면 악센트를 좀 더 분명하게 살렸으면 싶었다.

교향곡 3번은 '자유롭게 그러나 즐겁게(Frei aber Froh)'라는 모토에서 머리글자를 따온 것으로 알려진 F-A♭-F 모티프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사실관계는 학술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일단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전체 악곡의 조성 계획 또한 이 모티프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원 조성은 F 장조이며, 2악장과 3악장은 C 음을 으뜸음으로 하는 장·단조인데 여기서 C 음은 F 음의 딸림음(dominant)에 해당한다. 결국, 전체 악곡은 F-C-F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F-A♭-F라는 F 단조 화음에 생략된 5음인 C가 악곡의 전개에 중요한(dominant)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4악장에는 F-C-F라는 거시적인 구조가 다시 한 번 축약되어 있기도 해서 전체 악곡이 4악장을 향한 강한 추진력을 가진다.

정명훈의 해석은 이러한 목표지향적 구조를 매우 잘 드러내었으며, 그런 의도는 1악장에서부터 드러난다. 우선 템포가 꽤 빨랐고(시작 부분의 템포는 대략 ♩♩ = 85), 그런데도 1악장의 제시부 반복을 생략했다. 교향곡 1악장의 제시부 반복 생략은 19세기 작품을 연주할 때 흔히 있는 일이지만, 브람스 교향곡 3번과 같은 짤막한 곡에는 그런 경우가 흔치 않다.

2악장은 아기자기한 맛을 잘 살렸으며, 3악장은 감정의 낭비를 자제하여 4악장을 향한 방향성을 분명히 밝혔다. 유명한 3악장은 자칫 신파조가 될 위험이 있는데, 이것은 브람스답지 않을 뿐만 아니라 4악장의 무게감을 줄일 위험이 있어 좋지 않다. 서울시향은 첼로의 부점 리듬을 약간 무디게 연주했으며, 바이올린의 부선율을 적당히 살렸고, 목관 등의 투명한 음색을 놓치지 않아 신파조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무표정하지는 않도록 중용의 묘를 보여주었다.

4악장의 재현부에 해당하는 마디 172 이후는 전체 조성 구조가 절정에 이르는 곳이라 할 수 있는데, F-C-F로 이어지는 조성 구조에서 F 장조로 마침내 해결되기 직전에 이제껏 쌓인 긴장이 선명한 f 단조에 의해 폭발하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의 집중력 또한 이 부분에서 절정을 이루었으며, 객석에 전달된 긴장감은 연주회장의 열악한 음향으로 상당 부분 무뎌지고도 여전히 강력했다.

이날 연주에서는 모든 악기가 훌륭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강력한 집중력을 보여준 현의 역할이 컸다고 판단된다.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악장 출신인 스베틀린 루세브(Svetlin Roussev)가 서울시향의 악장을 맡은 것이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일까.

4악장이 진정한 F 장조를 회복하는 것은 코다에 이르러서인데, 이미 f 단조 부분에서 모든 긴장을 폭발시켰으므로 일반적인 교향곡과는 달리 조용하게 끝난다. 그런데 곡이 차분히 끝나는 만큼 연주가 완전히 멈춘 뒤의 마지막 몇 초의 여운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열광적인 '브라보'에 익숙한 관객이 그 몇 초를 견디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날 연주에서는 고작 3-4초 정도의 여운을 바리톤 음성의 '브라보'가 깨트렸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아직 지휘자가 팔을 내리기 전이었다. 며칠 뒤에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연주회에서는 아예 연주가 끝나자마자 이른바 '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앙코르로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을 연주하기 전에 정명훈이 했던 말이 걸작이었다. "한국에서는 음악이 조용히 끝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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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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