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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15일 수요일

멘델스존 팔중주 E♭장조 Op. 20 / 베토벤 칠중주 E♭장조 Op. 20

멘델스존: 현악팔중주 E♭장조 Op. 20

E♭장조는 거룩한 음악에 곧잘 쓰이던 조이다. 베토벤 이후에는 이것이 좀 더 특별한 상징성을 갖게 되었는데, 바로 교향곡 3번 E♭장조 ‘에로이카’ 때문이다. 특히 4악장에서 베토벤은 발레 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피날레 주제를 재활용했으며, 음악학자 베리 쿠퍼는 원작 발레의 ‘폭풍 → 진흙상 → 생명을 얻음 → 신격을 얻음’ 짜임새가 ‘에로이카’ 4악장에 비슷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베토벤 이후 작곡가들은 E♭장조로 곡을 쓸 때 ’베토벤의 E♭장조’를 의식해야 했다. 멘델스존 또한 마찬가지다. 현악팔중주 E♭장조는 조성 구조,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음악적 서사 구조, 모티프 발전 기법 등 여러 면에서 ’에로이카’를 닮았다. 음악학자 베네딕트 테일러는 멘델스존 팔중주를 분석하면서 헤겔과 괴테로부터 멘델스존이 받은 영향을 지적하기도 했는데, 인류가 무한히 발전해 신의 광휘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던 당시 유럽인의 세계관과 통하는 말이기도 하다.

멘델스존 팔중주는 E♭장조의 틀 속에 g단조와 c단조 등이 ’안티테제’처럼 나타나는 음악적 서사 구조가 특징이다. 1악장 제1주제는 순수하게 밝은 느낌이지만, 제2주제가 나타나기에 앞서 제1주제가 한 번 더 나오면서 f단조를 거쳐 g단조로 바뀌고, B♭장조로 된 제2주제를 지나면 음악이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발전부에서 다시 단조의 어둠이 침투하고 c단조가 승리하는 듯 보이지만, 제2주제가 마치 어둠 속의 탄식처럼 나타나 빛을 회복해 나가고, E♭의 딸림음인 B♭ 음이 길게 이어지면서 마치 태양이 솟아오르듯 밝아진 끝에 재현부로 이어진다.

변종 소나타 형식으로 된 2악장은 c단조이다. 1악장 발전부에 나왔던 c단조이고, 첫머리에 나오는 음형 또한 1악장 발전부에 나오는 음형과 비슷하다. 그러니까 1악장에서 두 번째로 나오는 제1주제가 앞선 제1주제에 대한 안티테제, 발전부는 제시부에 대한 안티테제라면, 2악장은 1악장에 대한 안티테제라 할 수 있겠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멘델스존은 어려서부터 헤겔을 포함한 당대 명사들과 친분이 있었고, 대학에서 헤겔의 강의를 듣기도 했다. 다만, 멘델스존이 헤겔의 예술관에 완전히 동의했던 것은 아니다.

3악장은 g단조다. 악장 제목이 ‘스케르초’이고 내용적으로도 스케르초가 맞지만, 형식상으로는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이 아닌 소나타 형식이다. 말을 타고 달리는 듯한 리듬이 악마적인 선율 및 화성과 만나 마치 공포에 질려 도망치는 듯하다가 악장이 끝나기 조금 전부터 음악이 밝아진다. 멘델스존의 누나인 파니 멘델스존의 증언에 따르면, 특히 마지막 부분은 작곡가가 괴테 “파우스트”에 나오는 ’발푸르기스의 밤’ 마지막 대목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파우스트”에서는 귀신이 나온다는 ‘발푸르기스의 밤’에 마녀를 비롯한 온갖 군상들이 나타나 한 마디씩 한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귀신이 나오는 마지막 부분은 이렇다. “오케스트라: (피아니시모) 흘러가는 구름도 자욱한 안개도 점점 위로부터 밝아오는구나. 나뭇잎에 부는 바람, 갈대 숲에 부는 바람,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도다.”

4악장은 다시 E♭장조이다. 말 타고 달리는 듯한 리듬이 3악장과 비슷하지만, 여기서는 마치 아침 햇살을 받은 듯 눈부신 느낌으로 시원하게 속도를 낸다. 그리고 헨델 “메시아” 중 ’할렐루야 합창’에 나오는 선율 한 조각이 나온다. “또한 주께서 영원토록 다스리시리.”(And he shall reign forever and ever.) 이 선율이 반복되며 정교한 푸가로 발전하고, 앞선 악장에 나왔던 음형들이 스쳐 지나간다. E♭장조의 찬란한 빛 속에서 음악이 끝난다.

베토벤: 칠중주 E♭장조 Op. 20

칠중주나 팔중주 등은 본디 디베르티멘토, 즉 파티에서 가볍게 즐기기 위한 음악 형태였다. 베토벤 칠중주 E♭장조 또한 디베르티멘토라 할 수 있는데, 그러나 ’즐거운 음악’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기법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3번 E♭장조 ’에로이카’를 작곡하기 3년 앞선 1800년에 이 작품을 완성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베토벤의 E♭장조’가 특별한 의미를 갖기 이전의 작품이다. 다만 굳이 그 의미를 소급해서 생각해 본다면, 칠중주 E♭장조는 인류가 ’파르나소스 산’으로 상징되는 유토피아에 도달한 이후의 평화로운 일상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1·2·6악장은 소나타 형식, 3악장은 미뉴에트와 트리오 형식, 4악장은 변주곡 형식, 5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악곡의 형식에 대단한 파격은 없고, 1악장부터 6악장까지 모두 장조로 되어 있으며, 해학적인 맥락에서 짧게 단조로 일탈하는 것을 제외하면 음악에 ’그늘’이 사실상 없는 것이 특징이다.

2018년 10월 30일 화요일

베토벤: 현악사중주 4번 c단조 Op. 18-4 / 드보르자크: 현악사중주 12번 F장조 "아메리카" / 멘델스존: 현악사중주 6번 f단조 Op. 80

베토벤: 현악사중주 4번 c단조 Op. 18-4

베토벤은 1798년부터 1800년까지 작곡한 현악사중주 6곡을 'Op. 18'로 묶어 1801년에 발표했다. 작곡 시기는 작품번호와 별개이며, c단조 현악사중주는 작곡 시기가 명확하지 않으나 가장 나중에 작곡했을 가능성이 크다. Op. 18로 묶인 다른 곡들에 하이든과 모차르트 등의 영향이 뚜렷한 것과 견주면, c단조 현악사중주는 베토벤의 초기 양식에서 중기 양식으로 변화하는 과도기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좀 더 특별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1악장에서 제2주제로 나아가는 과정의 복잡함이다. 제1주제에 이어지는 경과구는 '허수아비' 경과구로서 제2주제의 조성인 E플랫 장조를 슬쩍 내비치는 수준에 그치고, E플랫 장조 딸림화음(V₇/IV)으로 시작해 E플랫 장조 으뜸화음으로 나아가는 진짜 조바꿈이 마치 제2주제처럼 등장하는 '제2경과구'에서 일어난다.

제1주제의 변형처럼 등장하는 제2주제는 제2경과구와 그다지 뚜렷하게 대비되지 않을 뿐 아니라 B플랫장조로 변화했다가 다시 E플랫장조로 나아가는 경과구적 성격마저 보인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 제2주제'라고 선언하는 듯한 음형이 나타나 자연스럽게 소종결구로 이어진다. 발전부에서는 '두 번째 제2주제'가 아닌 '첫 번째 제2주제'가 나온다. 제시부의 복잡함에 비해 발전부는 단순한 편이다.

'스케르초 같은 안단테'(Andante scherzoso)라는 나타냄말이 붙은 2악장은 간소화된 소나타 형식으로, 스케르초답지 않게 느린 템포와 푸가에 가까운 정교한 대위법이 특징적이다. 3악장은 미뉴에트이면서도 내용은 스케르초에 가깝다. 론도 형식으로 된 4악장은 빠른 음형으로 마구 달리는 가운데 c단조의 어둠에서 C장조의 빛으로 나아가는 짜임새이다.

드보르자크: 현악사중주 12번 F장조 "아메리카"

드보르자크는 뉴욕에 있던 아메리카 국립음악원의 초청으로 그곳 학장이 되었다. 채용 조건으로 미국 오페라 부흥에 힘쓸 것과 특히 롱펠로 서사시 ‹하이아와사의 노래›(The Song of Hiawatha)에 바탕을 둔 작품을 쓸 것 등이 있었다. 드보르자크는 아메리카 토착민의 영웅 '하이아와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작품의 체코어 번역판을 읽고 감명받았다고 하며, 이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쓰기에 앞서 실험적인 작품으로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했다. (그러나 오페라는 결국 쓰지 못했다.)

그 직후 드보르자크는 '아메리카' 사중주를 작곡하고 악보에 "아메리카에서 작곡한 두 번째 작품"이라 썼다. 이 곡은 '신세계' 교향곡과 달리 ‹하이아와사의 노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듯하지만, 작곡 시기와 양식 등에서 '신세계' 교향곡과 사실상 쌍둥이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메리카 느낌'은 작곡가가 '신대륙' 문물과 자연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결과라 할 수 있다. 흑인 영가 또는 아메리카 토착민 음악과의 관련성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많은 지지를 받지는 못하며, 작품에 두드러지는 5음 음계는 세계 각국 민요에 흔히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선율과 리듬으로 가득하다. 악곡의 구조를 파악하는 일은 학술적 목적이 아닌 이상 굳이 필요 없고, 감상자에게는 그저 음악에 몸을 맡기는 것으로 충분하다. 19세기 말 미국의 드넓은 자연과 싱그러운 공기가 음악과 공명하며 감동을 더한다.

멘델스존: 현악사중주 6번 f단조 Op. 80

멘델스존 음악에는 대개 그늘이 없다. 모차르트가 밝은 웃음 속에 슬픔을 감추는 것과 달리 멘델스존은 순수하게 해맑다. 그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남부럽지 않게 자랐고, 천재적인 음악 재능을 타고나 어려서부터 음악가로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누나의 죽음은 멘델스존에게도 커다란 시련이었던 듯하다. 두 달쯤 뒤에 그가 작곡한 현악사중주 6번 f단조는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를 연상시키는 염세적인 정서와 악마적인 광기로 가득해 그의 해맑음을 아는 모든 사람을 충격에 빠트렸다. 그리고 과로 등으로 몇 년새 악화하던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멘델스존은 몇 달 뒤 향년 38세로 요절했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 3악장은 세도막 형식, 4악장은 론도-소나타 형식이다. 1악장에서 빠른 트레몰로 음형으로 박박 긁어대는 현이 악마적인 쾌(快)를 보여준다면, 2악장에서는 기괴한 화성과 리듬 등이 악마적인 냉소를 보여준다. 3악장에서는 느리고 애잔한 선율이 통곡으로 변하고, 4악장에서는 쫓기는 듯 달려가는 음형이 절박함을 더해 가던 끝에 슈베르트 같은 '죽음의 춤'으로 귀결된다.

2011년 5월 16일 월요일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 /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 스베틀린 루세브 / 리오 후세인 / 서울시향

2011-03-24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리오 후세인
협연: 스베틀린 루세브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1945년판)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어라? 그런데 이번에는 잘린 곳이 없는 듯? 으허허허! >_<


예술 사조를 구분 짓는 잣대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들이대는 오류를 무릅쓴다면, 드뷔시스트라빈스키모더니즘이 미처 꽃피기에 앞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씨앗을 뿌린 작곡가라 할 수 있다. 이 말을 설명하려면 20세기 모더니즘 음악을 대표할 만한 이른바 '12음 음악'의 뿌리를 캐 봐야 한다.

18세기 화성 이론을 세운 작곡가이자 이론가 장필리프 라모는 화성 진행 원리를 뉴턴 중력 이론에 빗대어 설명하며 음악이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생각을 퍼트렸다. 이에 따라 음악 이론과 계몽주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이것이 베토벤에 이르러 "고난을 거쳐 별들의 나라로"(per aspera ad astra)라는 말과 더불어 인류가 끝없이 발전하고 진보하리라는 믿음으로 발전했다.

12음 음악 또한 이러한 음악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서양음악이 '발전'하던 방향으로 미루어 볼 때 12음 음악이 나타난 일은 필연이라는 주장에 수많은 음악학자가 동의한다. 따라서 12음 음악은 오해와 달리 전통과 단절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전통을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드뷔시스트라빈스키야말로 뿌리 깊은 전통을 거부한 혁명가이다. 조성을 버리지는 않았으나 기능 화성 작법에서 벗어나 음악이 '발전'하지 않고 그저 흐르고 자라고 되돌아오게끔 했기 때문이다. 드뷔시는 이단아 취급을 받은 정도였지만, 스트라빈스키모더니즘이 힘을 얻던 때를 만나 모진 비난을 견뎌야 했다. 이를테면 아도르노는 스트라빈스키가 "지붕을 뜯어내 버렸고, 그래서 이제 그의 대머리 위로 빗물이 흐른다"라며 비꼬았다.

모더니즘이 절정에 이르며 조금씩 한계를 드러내던 때에 불레즈는 「쇤베르크는 죽었다」라는 악명 높은 글을 내놓았다. 이 글에서 불레즈는 19세기 음악을 확장·완성했을 뿐인 쇤베르크가 아니라 음색을 현대적으로 다루는 법을 알려준 베베른을 작곡가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색이 중요해지면서 드뷔시스트라빈스키말러 등과 함께 재조명 받았다.

오늘날 드뷔시스트라빈스키 곡을 연주하려면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무엇보다 《불새》는 스트라빈스키 자신이 지휘해 남긴 음반이 있어서 작품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낱낱이 알 수 있는데, 이 작품을 새로 연주하려면 그것을 그대로 따라야 할까? 스트라빈스키가 의도한 바를 멋지게 '배신'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불레즈는 음 하나하나가 낭비 없이 드러나도록 하며 베베른 음악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음색선율'(Klangfarbenmelodie)을 《불새》에서도 연상하게끔 했다. 리카르도 샤이는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라는 특급 악단의 기능성을 살리며 세련되고 균형 잘 잡힌 음색을 뽑아냈다.

서울시향을 지휘한 리오 후세인은 조금 느린 템포로 소리를 꼼꼼하게 풀어냈으며, 때때로 연주가 너무 차분해서 긴장감이 떨어진 대목은 옥에 티였다. 현 소리에 비브라토로 멋을 내어 낭만주의 냄새를 풍긴 대목은 음악에 감정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스트라빈스키가 들었다면 싫어했을 법하다. 그러나 예술의 전당이라는 대형 연주회장과 그에 걸맞은 대편성 악단이 연주할 때 이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데다가 스트라빈스키가 뜻한 바를 곧이곧대로 살리는 일이 반드시 옳지도 않다.

지휘자가 보인 작품 해석은 무난했으며, 서울시향 실력에 걸맞은 깔끔한 앙상블과 다채로운 음색을 이끌어낸 대목은 칭찬할 만했다. 도입부가 끝날 무렵 나오는 변주에서 플루트와 피콜로가 새 소리를 흉내 내고 다른 악기가 그것을 따라 하는 대목이 가장 훌륭했고, 신 나게 두드려 대는 〈코시체이 왕의 사악한 춤〉도 멋졌다. 크게 부풀어 오르며 '브라보'를 부르는 〈피날레〉도 좋았다.

첫 곡으로 연주한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에서도 모범적인 해석에 깔끔한 앙상블이 돋보였으며, 무엇보다 목관악기 연주자들이 아름다운 음색을 뽐냈다.

드뷔시는 프랑스 작곡가이고,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작곡가이나 《불새》는 목관악기 비중을 높이는 등 프랑스 청중을 고려해 작곡했다. 멘델스존은 독일 작곡가이지만, 이날 협연자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인 스베틀린 루세브였다. 서울시향 악장이기도 한 스베틀린 루세브는 사실 국적은 불가리아이나 연주에서 프랑스 느낌이 많이 묻어났다. 다른 연주자가 끊어 연주하는 곳도 웬만하면 매끄럽게 이어 연주했으며, 반드시 스타카토로 연주해야 하는 곳만 너무 거칠지 않게 끊어 연주했다. 포르타멘토는 프랑스식 포르타멘토라 불리는 B-포르타멘토를 썼다.

스베틀린 루세브는 지난 2008년 12월에 베토벤 협주곡을 협연하기도 했는데, 그때와 견주면 연주법은 비슷했으나 베토벤보다는 멘델스존이 루세브와 더 잘 맞는 듯했다. 서울시향과 함께한 시간이 더 쌓인 만큼 오케스트라와 더욱 한 몸처럼 어우러진 탓도 있겠다.

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2009.10.13. 홍성지 〈귀천〉 / 〈Gloria〉-《Missa 'Lumen de Lumine'》 etc ― 박치용 / 서울모테트합창단 /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2009년 10월 13일 오후 8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지휘자: 박치용
협연자: 김영미/sop 유소영/sop 박은주/alt 송기창/bar 김현정/org

Mendelssohn - ‘Magnificat(한국초연)’ ‘Psalm42 op.42’ ‘Hör mein Bitten’
홍성지 - 〈귀천〉, 《Missa 'Lumen de Lumine'》 가운데 〈Gloria〉
박성춘 - 〈눈이 오는 밤〉, 〈바람의 시〉


※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연예술창작기금지원사업으로 기획한 국민평가단 평가 자료를 겸하는 글이며, 평가서 항목에 맞추어 썼음을 밝힙니다.

▶ 공연작품의 예술적 수월성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외국 일류 합창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합창단이 아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가장 훌륭한 합창단이라 할 수 있고, 열악한 환경까지 생각하면 이런 훌륭한 합창단이 20주년을 맞았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이날 연주회는 국내 합창단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 내에서 가장 훌륭한 연주회였으며, 박치용 지휘자의 뛰어난 역량이 돋보였다. 그러나 일부 창작곡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 공연계획 실행의 충실성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은 음향이 제법 훌륭한 연주회장이다. 그러나 홍성지 작품은 일반적인 연주회장이 아니라 잔향이 긴 성당에서 연주했더라면 좋았겠다. 멘델스존 작품도 종교곡인 만큼 잔향이 길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하며, 전자오르간 소리는 성당에서 울리는 진짜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박성춘 곡은 음악 양식이 다른 작품과 어울린다 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연주회 내내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서 짜증이 났다. 관객이 그랬으리라 믿기는 어렵고 합창단 또는 연주회장 관계자 아니면 기자였을 터인데, 합창단·연주회장 관계자라면 반성이 필요하겠고 기자였다면 감히 '기자님'을 나무라기는 어려웠을 터이니 합창단 측에 위로를 보낼 일이다.

▶ 공연성과 및 해당분야 발전에의 기여도

합창단이 자생하기 어려운 국내 환경을 고려할 때 더 많은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서울시향처럼 독립 재단 형태로 지원하는 것이 가장 좋겠으나 예술위원회 차원에서도 서울모테트합창단은 공연창작기금을 지원할 가치가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

▶ 총평

작곡가 홍성지는 서울시향이 7개 악기를 위한 〈Beethoven Frieze〉와 피아노 협주곡 〈Prismatic〉을 연주한 일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호감을 느낀다. 홍성지 작품에서는 마치 공기 속에서 빛 알갱이가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하는데, 마침 프로그램을 보니 인용해 놓은 평들이 모두 '빛'과 관련이 있다. 이날 연주된 〈귀천〉과 제목부터 빛이 나는 듯한 《Missa 'Lumen de Lumine'》 가운데 〈Gloria〉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네 곡 모두 '빛깔'은 제각각이었으며, 〈귀천〉이 무지갯빛 뿌연 알갱이가 구름 위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라면 〈Gloria〉는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들어온 빛이 요정처럼 교회 안을 날아다니는 듯했다.

〈귀천〉과 〈Gloria〉는 원래 합창곡이 아니라 각각 여성 4명과 3명이 부르도록 작곡되었으며, 음악 양식을 보면 잔향이 긴 교회 음향에 알맞다고 할 수 있다. 이날 연주회 주체가 서울모테트합창단이므로 합창단이 이 곡을 부른 일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연주회장이 교회가 아니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이었던 점은 못내 아쉽다. 이곳은 잔향 시간이 관현악곡에 알맞게 맞춰져 있어서 마치 영화관에 햇볕이 쏟아지는 듯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또 작품이 주는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에는 합창단 기량이 모자라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특히 〈귀천〉에서 여린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 대목이 답답했다. 나는 국내 합창단이 'pp'(매우 여리게)를 제대로 내는 모습을 본 일이 없는데, 〈귀천〉은 'pp'보다 더 여린 'ppp'를 정교하게 다스리지 못하면 절반은 실패한 연주라 본다.

매우 느린 템포(♪ = 80) 때문에 길어진 호흡을 합창단원들이 견디지 못하는 듯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는 있는 듯 없는 듯했고, 여린 음을 제대로 내지 못해서인지 모두쉼표(Generalpause)는 무시되었다. 곡을 끝맺는 음에서는 셈여림표가 ppp인 마당에 몇몇 사람이 중간에 숨을 쉬었다 새로 부르는 바람에 '만득이 현상'마저 나타났다.

이런 문제는 일차적으로 합창단원 개개인에게 원인이 있다 하겠으나 더 따지고 보면 결국 돈 문제, 시스템 문제다. 성악 전공자가 실력이 어느 이상 되면 합창을 하건 오페라 가수로 나서건 유럽으로 가려고 할 뿐 한국에 머무르려 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들에게 매력적인 직업이 한국에는 없기 때문이다.

〈Gloria〉에서는 여린 음과 느린 호흡보다는 리듬과 화음이 중요한 까닭에 〈귀천〉과 달리 약점이 드러나지 않고 합창단 솜씨가 돋보였다. 이 곡은 만약 14세기 교회 음악 양식이 새로운 기법을 매우 보수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중세·르네상스 양식에 현대음악 어법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데,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안정된 화음을 바탕으로 화려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장식음들을 잘 살렸으며, 이날 연주회를 통틀어 이 곡이 가장 인상 깊었다. 옥에 티 한 가지만 말하자면, 마디 52―66에서 종소리를 흉내 내도록 지시하고 있으나 이날 연주에서는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나중에 고침: 2010년 4월 26일 최종 수정. 박성춘 작품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썼으나 다음과 같은 사정으로 내용을 지웠습니다. 〈바람의 시〉 등은 서울시구립여성합창단에서 의뢰한 작품으로, 합창단에서는 대중성 있는 조성음악을 의뢰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합창 음악 수요가 매우 적은 현실을 고려할 때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창작곡이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저 또한 진심으로 공감하며, 그러한 사정을 헤아리고 나면 박성춘 작품은 흥행성 있는 작품이라고 판단됩니다.

제가 비평문을 쓸 때에는 이러한 맥락을 알지 못했으므로 음악사에 비추어 작품을 판단할 때 양식적·기법적·미학적으로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어 예술적 가치가 낮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박성춘 작품과 다른 합창 음악에 대해 판단 기준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단락 전체를 지웁니다. 다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는 이미 삭제되지 않은 전문을 전달했음을 밝힙니다.)

소프라노 김영미는 발성과 딕션이 매우 뛰어나서 반가웠다. 음색이 깊고 어두우며 이탈리아 오페라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는데, 요즘 유행하는 역사주의 연주와는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라서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고, 목소리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다면 바그너를 하면 좋겠으나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소프라노 유소영은 김영미 같은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으나 알토 박은주 목소리가 너무 작고 부드러워서 상대적으로 '강성' 이미지처럼 두드러졌다. 둘이 맡은 성부를 생각할 때 그 반대보다는 훨씬 낫다 하겠으나 좀 더 균형 있는 앙상블이 아쉬웠다.

바리톤 송기창은 묵직하면서도 맑고 단단한 목소리로 멜리스마(melisma; 모음 하나에 장식적인 음형이 길게 이어지는 선율)를 날렵하고 깔끔하게 살려서 매우 인상 깊었다. 소프라노 김영미와 마찬가지로 폭발적인 에너지는 없어서 바그너를 부르기에는 알맞지 않아 개인적으로 아쉬웠으며, 모차르트를 부르면 매우 멋질 듯했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는 이름에서 짐작게 하는 탄탄한 재정 때문인지 연주력이 웬만한 지방 시향보다 나아 보였다. 트럼펫과 팀파니가 매우 돋보였고 다른 관악기도 훌륭했다. 단점 하나만 말하자면 현악기 연주자들이 숫자에 적당히 묻어가려는 이른바 '안전빵 보잉'을 들 수 있겠는데, 이것은 한국 오케스트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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