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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 22일 화요일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 f단조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 f단조

차이콥스키는 서양음악 역사상 가장 탁월한 멜로디 메이커로 손꼽힌다. 문제는 베토벤에서 브람스로 이어진 교향곡 전통이 차이콥스키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은 음악적 씨앗으로 논리를 구축하고 발전시켰던 베토벤·브람스와 달리, 차이콥스키에게 중요했던 것은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의 말을 빌리자면) ’구조’가 아닌 ’드라마투르기’다. 그래서 베토벤과 브람스를 잣대로 비판받을 때면 차이콥스키는 심하게 자학하기도 했다.

교향곡 제4번은 차이콥스키가 그런 전통을 작정하고 무시해 버린 작품이다. 그는 짧은 모티프를 발전시키며 논리적 그물망을 구축하는 대신에 길게 이어지는 선율로 소나타 형식을 채웠고, 또한 춤과 노래로 음악적 서사를 구현했다. 1악장은 폭압적인 팡파르 도입부로 시작한다. 이것은 폴란드 춤곡인 폴로네즈 리듬으로 되어 있으며, 차이콥스키는 이 팡파르 주제를 ’운명의 주제’라고도 했다. 뒤이어 흐느끼듯 나타나나 음악적 서사의 주인공이 되는 제1주제는 왈츠 리듬으로 되어 있다. 타루스킨의 분석에 따르면, 폴로네즈는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왈츠보다 상류 계급을 암시했고, 쇼팽의 ‹군대 폴로네즈›로 알 수 있듯이 군악대와 친밀한 음악이었으며, 이 작품에서는 특히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춤이다. 제1악장은 폴로네즈의 폭력이 왈츠를 굴복시키는 서사구조를 따른다.

제2악장에서는 소박하고 애상적인 춤곡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제3악장에서는 러시아 민속음악이 음악을 이끄는데, 후원자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곡가는 이렇게 말했다. “술을 마시고 얼큰히 취했을 때 […] 이것은 모두 잠자는 사람의 머리 속의 상상입니다. 현실과는 관계없는 혼란입니다.” 제4악장은 찬란하게 빛나는 음악이며, 러시아 민요 선율이 곁들어진다. 넘쳐 나는 환희는 서사적 논리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작곡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 안에서 기쁨을 찾을 수 없다면,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보세요. 어떻게 그들이 기쁨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며 향락을 누리는지 보세요.”

P. I. Tchaikovsky: Symphony No. 4 in F minor, Op. 36

Tchaikovsky is regarded as one of the most outstanding melody makers in the history of Western music. The problem, however, is that the symphonic tradition that ran from Beethoven to Brahms did not suit Tchaikovsky’s artistic temperament. Unlike Beethoven and Brahms, who built and developed logical structures from small musical seeds, what mattered to Tchaikovsky, as musicologist Richard Taruskin puts it, was not “structure” but “dramaturgy.” This is why Tchaikovsky would often harshly criticize himself when judged by the standards of Beethoven and Brahms.

‹Symphony No. 4› is a work in which Tchaikovsky deliberately ignored such traditions. Instead of developing short motifs into a motivic web, he filled the sonata form with long, flowing melodies and expressed the musical narrative through dance and song. The first movement begins with a brutal fanfare introduction. This fanfare is written in the rhythm of a polonaise, and Tchaikovsky referred to it as the “Fate theme.” Following this, the first theme, which becomes the protagonist of the musical narrative, emerges with a wailing character and is set in a waltz rhythm. According to Taruskin’s analysis, the polonaise, in the context of Russian society at the time, symbolized a higher social standing than the waltz. As seen in Chopin’s ‹Military Polonaise›, it was also associated with military bands and martial music. In this work, the polonaise specifically represents impersonality. The first movement follows a narrative structure in which the violence of the polonaise subjugates the waltz.

The second movement continues the story with a simple and elegiac dance. In the third movement, Russian folk music takes the lead, and in a letter to his patroness, Madame von Meck, Tchaikovsky wrote: “When you’ve had a drink and are tipsy […] all of this is the imagination of a person who is asleep. It’s a chaos that has nothing to do with reality.” The fourth movement is radiantly brilliant music that incorporates Russian folk melodies. While its overflowing joy does not possess narrative logic, Tchaikovsky explained it as follows: “If within yourself you find no reasons for joy, then look at others. Go out among the people. See how they can enjoy themselves, surrendering themselves wholeheartedly to joyful feelings.”

2019년 5월 19일 일요일

하이든 현악사중주 29번 Op. 33-5 Hob. III:41, 보로딘 현악사중주 2번, 차이콥스키: 현악사중주 1번

하이든: 현악사중주 29번 G장조 Op. 33-5 Hob. III:41

하이든은 1781년에 작곡한 현악사중주 6곡을 작품번호 33번으로 묶어 파벨 페트로비치 러시아 대공에게 헌정했다. 이에 따라 흔히 '러시아 사중주'라 불리는 Op. 33 연작 가운데 G장조로 된 제5번 사중주는 'How Do You Do'(반갑습니다) 사중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별명은 1악장 시작 부분이 마치 당시 귀족들이 한쪽 발을 내밀고 다른 쪽 발을 뒤로하여 무릎을 굽히는 정중한 인사법을 연상시키는 것에서 유래했다. 음악적으로 이 음형은 곡을 끝맺을 때나 나올 법한 것이라는 점에서 18세기식 유머라 할 수 있는데, 현대 한국인이 약 250년 전 서양 유머에 굳이 웃을 필요는 없으며 그저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같은 낡은 유머와 통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따라갈 수 있다. 제1주제와 제2주제의 구분이 명확하고 발전부에서 주제가 확장된다. 다만, 재현부에서 제시부를 단순 반복하기보다 추가적인 '발전'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2악장은 느리고 우울한 단조 선율이 음악을 이끌어가며 마치 오페라 아리아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음악학자 도널드 토비 등은 글루크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 나오는 아리아를 인용 또는 표절한 것으로 본다. 3악장은 흔히 미뉴엣이 올 자리에 스케르초를 쓴 선구적인 사례라 할 수 있고, 4악장은 복잡하지 않은 변주곡 짜임새로 시칠리아풍 선율이 음악을 이끌어간다.

보로딘: 현악사중주 2번 D장조

보로딘이 아내에게 헌정한 곡으로, 일설에 따르면 아내와 만난 지 2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며 아내와의 추억을 음악에 담았다고 한다. 베토벤의 영향이 뚜렷한 현악사중주 1번과 달리 이 작품은 1악장부터 매우 서정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발전부가 제시부의 반복에 가깝고, 그 대신 제2주제가 세 도막으로 확장된 것이 독특하다. 조성구조상 제2주제의 시작에 해당하는 선율은 제1주제와 그다지 뚜렷한 대조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제2주제 둘째 도막이 '진짜 제2주제'처럼 들린다.

2악장은 간소화된 소나타 형식으로, 발전부는 1악장과 마찬가지로 제시부의 반복에 가깝다. 가장 유명한 3악장은 달콤한 선율이 변주되던 끝에 '사랑의 2중창'을 연상시키는 돌림노래로 변하는 대목이 백미라 할 수 있다. 소나타 형식으로 된 4악장은 바이올린이 묻고 비올라와 첼로가 답하는 듯한 짧은 도입부에 이어 빠른 음형으로 신나게 달리며 흥분을 더해 나가는 짜임새이다.

차이콥스키: 현악사중주 1번 D장조

차이콥스키는 서양음악 역사상 가장 탁월한 멜로디 메이커로 손꼽힌다. 문제는 이전 시대의 거인이었던 베토벤이 남긴 음악 유산이 차이콥스키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은 음악적 씨앗으로 논리를 구축하고 발전시켰던 베토벤과 달리, 차이콥스키에게 중요했던 것은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의 말을 빌리자면) '구조'가 아니라 '드라마투르기'다. 그래서 베토벤을 잣대로 비판받을 때면 차이콥스키는 심하게 자학하기도 했다.

현악사중주 1번은 차이콥스키를 비판한 사람마저도 인정했을 만큼 뛰어난 형식 논리를 보여주는 예외적인 작품으로, 특히 유려한 선율 뒤에서 현란하게 변화하는 박절 구조는 규칙적인 네 박자의 단조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이 작품은 젊은 차이콥스키에게 출세의 발판이 되어 주었는데, 다만 후기 걸작들과 견주면 단점이 사라진 만큼 장점이 함께 억눌려 있다고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이 곡에도 차이콥스키의 탁월한 선율이 위력을 보이는 대목이 제법 있으며, 특히 2악장은 초연 당시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이 선율은 우크라이나 민요를 인용한 것이라고 전해지며 중간 부분의 선율은 차이콥스키가 새로 작곡한 것이다. 2악장뿐 아니라 다른 악장 또한 그냥 선율을 귀로 듣고 따라가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굳이 형식을 따지자면 1악장과 4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세도막 형식, 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이다.

2017년 7월 25일 화요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이 교향곡은 너무나 화려하고, 거창하고, 가식적이고, 장황하며, 전체적으로 매몰찹니다. 저는 참말로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실력을 잃었을까요? 그렇다면 끔찍한 일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후견인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교향곡 5번을 발표한 뒤에 전문가들의 반응이 좋지 않아 자학하는 말이다. 교향곡의 종주국인 독일-오스트리아에서는 작은 음악적 씨앗으로 논리를 구축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 왔지만, 차이콥스키는 그러한 전통을 일정 부분 수용하면서도 논리와 구조에 매달리는 일이 자신의 '체질'에 맞지 않아 괴로워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에는 딱히 표제나 음악 외적인 내용 설명이 없다. 1악장과 4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과 3악장은 세도막 형식으로 19세기 작품치고는 깔끔하게 분석된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에 불과하며, 음악을 듣고 있으면 어떤 이야기의 흐름이 느껴진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의 말을 빌리자면, 차이콥스키 교향곡에서 중요한 것은 '구조'가 아니라 '드라마투르기'이고, 작곡 방식이 교향곡보다는 오페라를 닮았다.

1악장은 고통을 이야기한다. 2악장에서는 억눌린 슬픔이 달콤한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3악장에서는 고독이 우아한 왈츠 속에서 질식한다. 4악장에서는 승리의 팡파르가 요란하게 울리지만, 그 승리는 작곡가 자신의 말처럼 너무나 화려하고, 거창하고, 가식적이고, 장황하다. 그래서 팡파르가 찬란할수록 작곡가의 자존감이 바닥을 기고 있음이 느껴진다. '승리'는 거짓이다. 정신적 마스터베이션이다.

이 곡을 감상하려면 작곡가의 불안정한 정신세계에 휩쓸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작곡가와 함께 고통에 몸부림쳐야 한다. 그러나 음악이 끝나고 나면 달콤한 절망에 너무 취해 있지도 말고 거짓 승리에 속지도 말자. 이 곡은 위험하다.

영문 번역 추가: 2024. 4. 23.

P. I. Tchaikovsky: Symphony No. 5 in E minor, Op. 64

“This symphony is too brilliant, grandiose, pretentious, verbose, and overall suffocating. Have I really lost my talent as they say? That would be terrible.”

This is what Tchaikovsky wrote in a letter to his benefactress, Nadezhda von Meck, following the premiere of Symphony No. 5, which received unfavorable reactions from experts. In the homeland of symphonies, Germany-Austria, it has been deemed virtuous to construct and develop logic from a small musical seed. However, Tchaikovsky, while partially embracing such tradition, agonized over adhering to logic and structure, which did not align with his ‘nature’.

There is no title or extra-musical explanation for Tchaikovsky’s Symphony No. 5. The first and fourth movements follow a sonata form, while the second and third movements adhere to a ternary form, which is neatly analyzed for a 19th-century work. However, this is merely surface-level, and upon listening to the music, one can discern the flow of a narrative. To borrow the words of musicologist Richard Taruskin, the significance of Tchaikovsky’s symphony lies not in its ‘structure’ but in its ‘dramaturgy’, with the compositional style resembling opera more than a symphony.

The first movement depicts pain. In the second movement, suppressed sorrow sways within sweet despair, and in the third movement, loneliness suffocates amidst an elegant waltz. In the fourth movement, the fanfare of victory rings loudly, yet the victory is overly brilliant, grandiose, pretentious, and verbose, as the composer himself stated. Thus, the more the fanfare shines, the more it reveals a palpable erosion of the composer’s self-esteem. The ‘victory’ is a falsehood. It is mental indulgence.

To appreciate this piece, one must be prepared to be swept away by the composer’s unstable psyche. One must endure the pain alongside the composer. However, after the music concludes, do not become too intoxicated by the sweet despair, nor be deceived by the false victory. This piece is perilous.

2015년 8월 19일 수요일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책자에 실릴 프로그램 노트입니다. 헛소리가 있다거나 맞춤법이 틀렸다거나 등등 마구 지적해 주세요. ^^


베를리오즈: 로마의 사육제 서곡

이 곡은 오페라 〈벤베누토 첼리니〉에 나오는 사육제 길거리 장면과 사랑의 이중창 등을 따와 쓴 관현악곡입니다. 오페라에서 사람들이 "아! 트럼펫 분다, 백파이프 분다, 탬버린 두드린다." 광대들이 "재주꾼 보러 오세요!" 하고 외치는 대목이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지요. 이 대목의 리듬은 이탈리아 춤곡 리듬인 살타렐로(Saltarello),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4악장에 나오는 그 광란의 리듬입니다.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와 더불어 특히 "재주꾼 보러 오세요!" 할 때 저음 하행 음형이 매력적이고, "베네 부아, 베네 부아, 라빌 옴므!"(Venez voir, venez voir, l’habile homme!) 하는 원어 가사와도 기막히게 어울리지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차이콥스키는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에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스페인 교향곡〉은 제목과 달리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할 수 있는데, 차이콥스키는 무엇보다 랄로가 "심오함을 담으려 집착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뻔한 곡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며, 독일 사람처럼 확립된 전통을 답습하는 대신에 음악적인 아름다움을 더 많이 생각한다"고 평가했습니다.

통영국제음악당에 자주 오시는 분이라면 제가 다른 글에서 몇 차례 설명한 이른바 '베토벤 딜레마'를 기억하실 겁니다. 베토벤이 고전주의를 해체하고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혔지만, 베토벤이 남긴 음악적 유산이 낭만주의 시대정신과 썩 잘 들어맞지는 않았다고요. 베토벤의 '논리적'이고 심오한 음악 어법과 '어둠에서 광명으로' 패러다임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았던 차이콥스키에게 이 딜레마는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였지요. 차이콥스키가 '독일 전통'에 반감을 보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차이콥스키가 '베토벤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대안을 제시하려 애썼던 사정을 헤아릴 때, 그가 남긴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바로 이 곡을 꼽을 만합니다. 차이콥스키가 〈스페인 교향곡〉을 칭찬한 말을 이 작품에 그대로 돌려줄 수 있을 듯해요. 1악장에서 3악장까지 쉼 없이 이어지며 처음부터 끝까지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선율과 리듬으로 가득한 이 곡은, 그래서 그냥 음악에 몸을 맡기고 연주자의 화려한 불꽃 테크닉을 즐기는 것이 가장 훌륭한 감상법이 아닐까 합니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드보르자크 '신세계 교향곡' 4악장의 저 유명한 주제는 클래식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익숙하다고 느낄 만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를테면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4악장에 나오는 이른바 '환희의 송가'와 견줄 수 있겠고요. 곡 제목만 보고 갸우뚱할 사람이라도 스포츠 경기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고 이종범 선수 응원가로도 유명한 바로 그 선율, 또 386세대는 '전대협 팡파르'(?!)로 기억한다는 바로 그 선율을 듣는 순간 바로 알아챌 수 있을 테지요.

"신세계로부터"(From the New World)라는 표제는 당시에 '신대륙'이라 불리던 아메리카를 말합니다. 이 곡을 쓸 때 드보르자크는 뉴욕에 있던 아메리카 국립음악원 원장이었는데, 그 전에 프라하 음악원 작곡과 교수로 있다가 파격적인 조건으로 음악원장 자리를 제의받아 미국에 갔고, 덕분에 '신대륙' 문물과 자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메리카 국립음악원은 안타깝게도 드보르자크 퇴임 이후 쇠퇴하다가 대공황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네요.)

한편, 이 작품은 롱펠로 서사시 『하이아와사의 노래』(The Song of Hiawatha)를 원작으로 하는 오페라 또는 칸타타를 쓰기 위한 실험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이아와사는 아메리카 토착민 부족(국가) 연합체인 이로쿼이 연맹(Iroquois League)을 만들어 이끌었다는 사람이지요. 그리고 저넷 서버(Jeanette Thurber)가 드보르자크를 국립음악원장으로 초빙하면서 미국 오페라 부흥에 힘쓸 것과 특히 『하이아와사의 노래』에 바탕을 둔 작품을 쓸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끝내 오페라/칸타타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작곡가가 밝히기를, 3악장은 『하이아와사의 노래』에 나오는 축제 장면을 소재로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악장의 강렬한 리듬은 '인디언의 춤'을 상상하면서 썼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음악학자 마이클 베커만의 의견을 좇자면, 저 유명한 2악장 잉글리시 호른 선율은 하이아와사의 구애 장면 또는 신부로 맞이한 '민네하하'와 함께 여행하는 장면에 해당합니다. 2악장이 구슬프게 바뀌는 중간 대목은 민네하하의 죽음 및 장례와 관련 있고,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2악장 선율이 중간에 살짝 끊겼다 이어지곤 하는 대목을 베토벤 교향곡 3번 2악장 '장송행진곡' 끝 부분과 견주기도 했습니다.

'신세계 교향곡'은 클래식 음악 초심자용으로 곧잘 추천되지요. 선율과 리듬이 귀에 쏙쏙 들어오고 형식 또한 깔끔하기 때문입니다. 1악장과 4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겹세도막 형식, 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이고, 관련 지식이 있는 분은 머릿속으로 짜임새를 그려 가면서 감상하시면 좋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은 그냥 편하게 들어도 좋아요.

2015년 1월 30일 금요일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Pathétique)

2014년 12월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렸던 글입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생각나서 올립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모차르트는 시대를 앞서간 '프리랜서' 음악가였습니다. 예술가를 후원했던 권력자들이 그때만 해도 예술가를 하인 취급했고, 모차르트는 그것을 참지 못했거든요. 심지어 대주교한테 대들고는 "엉덩이를 걷어차여" 쫓겨나기까지 했다지요.

성공한 프리랜서 음악가였던 베토벤과 달리, 모차르트는 헤픈 씀씀이만큼 수입이 따르지 않아 고생했습니다. 겨울에 난방을 못 해서 밤새 아내와 함께 춤을 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예요. 모차르트가 겪었던 가난과 관련해 과장도 있지만, 모차르트의 삶이 평탄치 않았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모차르트 작품은 이러한 속사정과 달리 대부분 티 없이 해맑지요. 교향곡 40번은 모차르트가 죽기 약 3년 전에 쓴 곡으로 모차르트 작품치고는 비교적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는 편인데, 그러나 그마저도 조금 내비치다 말지요. 고전주의 시대 음악은 베토벤 이전까지 이랬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사람은 알 겁니다. 해맑은 음악 속에 커다란 슬픔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요.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도 음악을 듣다 보면 깨달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이번 공연은 모차르트 교향곡이 차이콥스키 비창 교향곡과 함께 묶였으니, 이번 공연의 숨은 주제는 '슬픔'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악장, 2악장, 4악장은 소나타 형식이고, 3악장은 세도막 형식의 일종인 '미뉴엣과 트리오' 형식입니다. 고전적인 교향곡 짜임새를 깔끔하게 따르고 있어서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소나타 형식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아주 간단하게만 설명할게요.

소나타 형식은 크게 보아 제시부―발전부―재현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시부는 제1 주제, 그와 대비되는 제2 주제, 그리고 경과구 따위로 이루어져 있고, 발전부는 제시부 주제가 자유롭게 '발전'하는 곳입니다. 재현부는 제시부를 그대로 또는 비슷하게 되새기는 곳이고요. 때로는 앞뒤로 서주(intro)와 종결구(coda)가 덧붙을 수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다 잊어버리고 그냥 들으셔도 됩니다. 모차르트 음악은 듣기 좋은 선율과 리듬이 계속 이어지니까, 소나타 형식을 모르고 그냥 들어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거예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Pathétique)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은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작품으로 작곡가가 죽기 9일 전에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그리고 초연 21일 만에 열린 두 번째 연주회는 차이콥스키 추모 공연이 되었지요. 두 번째 공연 이후 차이콥스키 자살설이 나돌았고, 차이콥스키가 사실은 동성애자였으며 명예를 지키라는 강권에 따라 자살했다는 설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차이콥스키의 유서로 보는 시각이 힘을 얻었습니다. 곡 전체에 흐르는 비극적인 정서와 1악장 절정 부분에서 인용한 러시아 정교회 레퀴엠 음형, 그리고 무엇보다 작곡가의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정황 때문이지요. 그러나 리처드 타루스킨을 비롯한 저명한 음악학자들은 이 작품을 유서로 보는 관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 정황 때문에 사람들이 음악에서 듣고싶은 것을 들었을 뿐이라고요.

'비창'(Pathétique; Патетическая)이라는 표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비창'에서 따온 듯합니다. 차이콥스키에게 '비창'이라는 표제를 제안한 사람은 작곡가의 동생이자 극작가였던 모데스트였지만, 차이콥스키가 '비창 소나타' 도입부 음형을 살짝 바꾸어 '비창 교향곡' 도입부에서 인용하고 작품의 주요 주제로 사용했다는 사실에서 작곡가 자신이 '비창 소나타'를 어느 정도 의식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 13 '비창' 1악장 도입부


▲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 1악장 도입부 (바순 독주)

차이콥스키의 다른 작품처럼, 이 곡은 구조를 분석하기보다는 작품 속에 숨은 '이야기'에 집중하면 좋습니다. 마음씨 여린 작곡가가 폭력적인 현실 앞에서 괴로워하는 듯한 1악장, 슬픔을 애써 감추고 춤을 추는 듯한 2악장, 거짓 승리에 도취되어 현실에서 눈 돌리는 3악장, 그리고 '죽어가듯이'(morendo)라는 나타냄말과 더불어 절망과 체념 속으로 침잠하는 4악장. 음악을 들으면 슬픈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를 듯합니다.

그런데 3악장이 워낙 화려하고 과장되게 뿜빰거리면서 끝나기 때문에, 대개 3악장이 끝나자 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곤 합니다. 교향곡이 다 끝난 줄 알고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줄 알면서 일부러 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예요. 개인적으로는 악장 사이에 손뼉을 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객의 박수가 3악장에 가득한 반어적 음악 어법의 일부라 볼 수도 있을 듯해요.

진짜 문제는 4악장입니다. 흐느끼듯 시작해서 목놓아 울부짖다가, 나중에는 죽어가듯이 천천히 여리게 끝나는 짜임새 때문이지요. 그래서 연주가 끝난 뒤에도 여운을 즐길 수 있게끔 하는 '침묵 악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성급한 박수가 이 '침묵 악장'을 망쳐놓곤 하지요. 지난 2008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이 곡을 연주했을때,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기고한 글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날은 잔향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 나오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잔향이 없어지고 채 5초가 지나지 않아 끝내 성급한 박수가 나왔다. 그때까지 지휘봉을 높이 들고 있던 정명훈은 김 샜다는 듯이 팔을 내리고 말았다. 잔향이 없어지기에 앞서 치는 손뼉을 '안다 박수'라고 하여 비꼬아 말하기도 하는데, 이날 박수는 '안다 박수'는 아니고 '깬다 박수'라고 하더라.

이날 공연은 서울시향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꼽을 수 있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이후로 '비창 교향곡'은 서울시향이 외국에 나가서도 즐겨 연주할 만큼 서울시향의 대표곡이 되기도 했지요. 정명훈 지휘자의 충격적인 작품 해석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어떻게 연주할지, 이번 통영 공연을 기대해 주세요!

2015년 1월 22일 목요일

차이콥스키 환상 서곡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2014년 10월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렸던 글입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생각나서 올립니다.


▶ 차이콥스키 환상 서곡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Francesca da Rimini)는 13세기 실존 인물로,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등장해 더욱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프란체스카는 이탈리아 리미니 지방 영주 아들인 조반니 말라테스타와 정략결혼했다가 조반니의 동생이자 유부남인 파올로와 불륜을 저지르고 조반니에게 살해당했다고 하지요.

『신곡』에서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는 욕정에 무절제하게 휩쓸린 죄로 지옥 2층 '색욕 지옥'에서 끝없이 폭풍에 휩쓸려 다니는 형벌을 받습니다. 단테는 두 사람에게 동정을 표시하기도 했고, 시인 보카치오는 프란체스카의 아버지 귀도 다 폴렌타가 '못생긴 절름발이' 조반니 대신 파올로를 결혼 전까지 조반니로 속였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차이콥스키는 프란체스카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낭만주의적 음악 어법으로 표현했습니다. 음악 속에 줄거리가 다 담겨 있지만, 무엇보다 '색욕 지옥'의 폭풍을 휘몰아치는 반음계로 묘사한 대목이 흥미롭습니다.

▶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표제가 없는 기악곡에 관해 말하려면 아무래도 작품의 짜임새가 중심적인 내용이 됩니다. 그런데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의 짜임새를 해설하는 일은 참 쓸모없다고 느껴집니다. 학자나 연주자가 필요해서 스스로 분석하는 일은 의미가 있겠지만, 감상이 목적이라면 그냥 선율 속에 몸을 맡기는 게 낫지 않나 싶어요. 왜 그런지 설명하려면 베토벤 얘기부터 해야 합니다.

베토벤은 고전주의 음악 양식을 확장, 완성하고 그 한계를 깨트려 낭만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던 사람입니다. 베토벤이 서양음악 역사에 남긴 유산은 너무나 거대해서, 19세기 작곡가에게 마치 넘을 수 없는 산과도 같았지요.

문제는 그 유산이 낭만주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베토벤을 계승하면서도 낭만주의 시대정신을 잃지 않는 일은, 그래서 작곡가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슈베르트, 슈만, 멘델스존, 리스트, 바그너 등이 저마다 아이디어를 짜내어 해결책을 내놓았고, 베토벤의 작곡 기법을 극한까지 발전시켜버림으로써 문제를 정면 돌파한 브람스가 (적어도 형식적인 측면에서) 베토벤의 가장 훌륭한 계승자로 평가받습니다.

차이콥스키는 '베토벤 딜레마'와 관련해서라면 낙제점을 면하기 어려운 작곡가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작품의 짜임새가 엉성하고 장황하다는 평을 받아왔고, 그 점에서 피아노 협주곡 1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차이콥스키는 이 문제로 몹시도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차이콥스키가 이 작품을 헌정하려 했던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빈시테인이 곡을 완전히 다시 써야 한다며 혹평했고, 차이콥스키는 이 말에 격분하여 '한 음도 고칠 수 없다'며 악보를 지휘자 한스 폰 뷜로우에게 보내 세르게이 타네예프 협연으로 런던에서 초연해 버렸다는 일화는 유명하지요(나중에 결국 고치기는 했습니다.) 저는 이 일이 '베토벤 딜레마'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차이콥스키는 서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멜로디 메이커라고 하지요. 그 자체로 작곡가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선율들이 음악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악곡을 지배합니다. 작품을 이루는 '뼈대'는 아름다운 선율로 된 '피와 살'에 묻혀 존재감을 잃고 맙니다. 이것이 차이콥스키 음악의 장점이자 단점이 됩니다.

이 작품의 형식을 굳이 말하자면, 1악장은 도입부가 비정상적으로 긴 자유로운 소나타 형식, 2악장은 세도막 형식, 3악장은 론도 형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전통적인 악곡 형식에 작품을 끼워 맞춘 결과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분석하는 일은 '베토벤 패러다임'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일이 되고, 그래서 이 작품의 장점보다 단점에 집중하기 쉽습니다. 제가 제안하는 감상법은 '숲보다 나무'에 집중하면서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 그리고 연주자의 화려한 불꽃 테크닉을 즐기는 것입니다. 쉬운 얘기를 길고 어렵게 써버렸지만, '배토벤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려면 필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2014년 11월 22일 토요일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책자에 실린 글입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g단조

모차르트는 시대를 앞서간 '프리랜서' 음악가였습니다. 예술가를 후원했던 권력자들이 그때만 해도 예술가를 하인 취급했고, 모차르트는 그것을 참지 못했거든요. 심지어 대주교한테 대들고는 "엉덩이를 걷어차여" 쫓겨나기까지 했다지요.

성공한 프리랜서 음악가였던 베토벤과 달리, 모차르트는 헤픈 씀씀이만큼 수입이 따르지 않아 고생했습니다. 겨울에 난방을 못 해서 밤새 아내와 함께 춤을 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예요. 모차르트가 겪었던 가난과 관련해 과장도 있지만, 모차르트의 삶이 평탄치 않았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모차르트 작품은 이러한 속사정과 달리 대부분 티 없이 해맑지요. 교향곡 40번은 모차르트가 죽기 약 3년 전에 쓴 곡으로 모차르트 작품치고는 비교적 슬픔이 겉으로 드러나는 편인데, 그러나 그마저도 조금 내비치다 말지요. 고전주의 시대 음악은 베토벤 이전까지 이랬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사람은 알 겁니다. 해맑은 음악 속에 커다란 슬픔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요.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도 음악을 듣다 보면 깨달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이번 공연은 모차르트 교향곡이 차이콥스키 비창 교향곡과 함께 묶였으니, 이번 공연의 숨은 주제는 '슬픔'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악장, 2악장, 4악장은 소나타 형식이고, 3악장은 세도막 형식의 일종인 '미뉴엣과 트리오' 형식입니다. 고전적인 교향곡 짜임새를 깔끔하게 따르고 있어서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소나타 형식을 모르시는 분을 위해 아주 간단하게만 설명할게요.

소나타 형식은 크게 보아 제시부―발전부―재현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시부는 제1 주제, 그와 대비되는 제2 주제, 그리고 경과구 따위로 이루어져 있고, 발전부는 제시부 주제가 자유롭게 '발전'하는 곳입니다. 재현부는 제시부를 그대로 또는 비슷하게 되새기는 곳이고요. 때로는 앞뒤로 서주(intro)와 종결구(coda)가 덧붙을 수도 있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다 잊어버리고 그냥 들으셔도 됩니다. 모차르트 음악은 듣기 좋은 선율과 리듬이 계속 이어지니까, 소나타 형식을 모르고 그냥 들어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을 거예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Pathétique)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은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작품으로 작곡가가 죽기 9일 전에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습니다. 그리고 초연 21일 만에 열린 두 번째 연주회는 차이콥스키 추모 공연이 되었지요. 두 번째 공연 이후 차이콥스키 자살설이 나돌았고, 차이콥스키가 사실은 동성애자였으며 명예를 지키라는 강권에 따라 자살했다는 설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차이콥스키의 유서로 보는 시각이 힘을 얻었습니다. 곡 전체에 흐르는 비극적인 정서와 1악장 절정 부분에서 인용한 러시아 정교회 레퀴엠 음형, 그리고 무엇보다 작곡가의 죽음이라는 결정적인 정황 때문이지요. 그러나 리처드 타루스킨을 비롯한 저명한 음악학자들은 이 작품을 유서로 보는 관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 정황 때문에 사람들이 음악에서 듣고싶은 것을 들었을 뿐이라고요.

'비창'(Pathétique; Патетическая)이라는 표제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비창'에서 따온 듯합니다. 차이콥스키에게 '비창'이라는 표제를 제안한 사람은 작곡가의 동생이자 극작가였던 모데스트였지만, 차이콥스키가 '비창 소나타' 도입부 음형을 살짝 바꾸어 '비창 교향곡' 도입부에서 인용하고 작품의 주요 주제로 사용했다는 사실에서 작곡가 자신이 '비창 소나타'를 어느 정도 의식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 13 '비창' 1악장 도입부


▲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비창' 1악장 도입부 (바순 독주)

차이콥스키의 다른 작품처럼, 이 곡은 구조를 분석하기보다는 작품 속에 숨은 '이야기'에 집중하면 좋습니다. 마음씨 여린 작곡가가 폭력적인 현실 앞에서 괴로워하는 듯한 1악장, 슬픔을 애써 감추고 춤을 추는 듯한 2악장, 거짓 승리에 도취되어 현실에서 눈 돌리는 3악장, 그리고 '죽어가듯이'(morendo)라는 나타냄말과 더불어 절망과 체념 속으로 침잠하는 4악장. 음악을 들으면 슬픈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를 듯합니다.

그런데 3악장이 워낙 화려하고 과장되게 뿜빰거리면서 끝나기 때문에, 대개 3악장이 끝나자 마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곤 합니다. 교향곡이 다 끝난 줄 알고 손뼉을 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줄 알면서 일부러 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예요. 개인적으로는 악장 사이에 손뼉을 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객의 박수가 3악장에 가득한 반어적 음악 어법의 일부라 볼 수도 있을 듯해요.

진짜 문제는 4악장입니다. 흐느끼듯 시작해서 목놓아 울부짖다가, 나중에는 죽어가듯이 천천히 여리게 끝나는 짜임새 때문이지요. 그래서 연주가 끝난 뒤에도 여운을 즐길 수 있게끔 하는 '침묵 악장'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성급한 박수가 이 '침묵 악장'을 망쳐놓곤 하지요. 지난 2008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이 곡을 연주했을때,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기고한 글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날은 잔향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 나오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잔향이 없어지고 채 5초가 지나지 않아 끝내 성급한 박수가 나왔다. 그때까지 지휘봉을 높이 들고 있던 정명훈은 김 샜다는 듯이 팔을 내리고 말았다. 잔향이 없어지기에 앞서 치는 손뼉을 '안다 박수'라고 하여 비꼬아 말하기도 하는데, 이날 박수는 '안다 박수'는 아니고 '깬다 박수'라고 하더라.

이날 공연은 서울시향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로 꼽을 수 있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이후로 '비창 교향곡'은 서울시향이 외국에 나가서도 즐겨 연주할 만큼 서울시향의 대표곡이 되기도 했지요. 정명훈 지휘자의 충격적인 작품 해석으로도 유명한 이 작품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어떻게 연주할지, 이번 통영 공연을 기대해 주세요!

2011년 9월 22일 목요일

힘겨워하는 연인을 위하여 ― 차이콥스키 환상 서곡 《로미오와 쥴리엣》

※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원본 출처: http://g-phil.kr/?p=224

이 작품은 짜임새를 따지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있는 교향시라 할 수 있고, 소나타 형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등에서 보이는 비극적 흐름이 이 곡에서도 나타나며, 차이콥스키는 셰익스피어 희곡 줄거리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슬픈 사랑 이야기를 차이콥스키다운 방식으로 풀어냈다고 할 수 있다.

프롤로그는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프란체스코 수도회 로렌스 수사를 나타내는 듯 슬프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이며, 비극을 들려주는 화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 프롤로그 주제: A조 클라리넷. ©Public Domain

뒤이어 격렬한 음악이 튀어나온다. 소나타 형식 제1 주제에 해당하며, 심벌즈가 끼어들면 '칼싸움' 느낌이 난다. 이번 청소년 커플을 위한 음악회에서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칼싸움'을 얼마나 실감 나게 하는지 귀담아들어 보자. 차이콥스키는 이 대목에서 사람이 죽고 사는 심각한 싸움을 그렸지만, 너무 어둡고 진지한 음악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록 음악 듣듯이 가벼운 '헤드 뱅잉' 정도는 해도 좋지 않을까. (그러나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을 잊지 말자!)

▲ '칼싸움' 주제: 제1 바이올린.

'칼싸움' 주제가 지나가면 소나타 형식 제2 주제에 해당하는 아름다운 선율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사랑의 주제'라 부른다. 이 대목은 TV 드라마 《세서미스트리트》,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 영화 《재즈 싱어》(1927) 등 TV와 영화에서 곧잘 쓰여서 널리 알려졌다. 영화평론가 '듀나'는 이 음악이 너무나 자주 쓰인 까닭에 빛이 바랜 느낌이 있다며, "두 코믹한 연인들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들의 눈에 핑크색 하트를 달아주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틀면 됩니다."라고도 했다.

▲ 사랑의 주제: 잉글리시 호른.

'사랑의 주제' 사이에 나오는, 마치 연인이 속삭이는 듯한 선율도 기억해둘 만하다. 그러나 악보를 인용한 세 주제만 기억해도 좋다. '칼싸움'이 더욱 사나워지고, '사랑의 주제'가 더욱 가슴 아프게 이어지고, '프롤로그' 주제가 곳곳에 나타나며 흘러가는 음악을 따라가 보자.

파국을 지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대목에 이르면 팀파니 소리가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무겁게 들려 온다. 장례식 장면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뒤이어 목관악기가 같은 선율을 나란히 연주할 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면, 당신은 이미 음악에 흠뻑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은 힘겨운 사랑을 해보았을지도 모른다.

2011년 8월 25일 목요일

지친 여름이 애수에 잠기는 9월, 《가을, 그리고 저녁》 연주회

정원이 탄식하고 있다.
차가운 빗방울이 꽃잎 속으로 떨어진다.
자신의 마지막을 향하여
여름은 조용히 몸서리친다.

황금빛으로 물든 잎 위에 또다른 잎이
높다란 아카시아 나무에서 떨어진다.
여름은 놀라고 지친 표정으로
한때 정원이었던 죽어가는 꿈을 향해 미소짓는다.

오랫동안 장미꽃 옆에 우두커니 머물러선 채로
여름은 휴식을 그리워한다.
여름은 지친 두 눈을
천천히 내려감는다.

― 헤르만 헤세, 「9월」 (장철환 옮김)

여름이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 헤르만 헤세는 죽음을 노래했습니다. 독일의 9월은 한국보다 좀 더 춥고 쓸쓸하다지만, 9월 24일이면 한국에서도 제법 찬바람이 불어오고 낙엽이 지겠지요. 이런 날, 라흐마니노프와 차이콥스키를 들으며 애수에 잠겨 보면 어떨까요?

이번 《가을, 그리고 저녁》 연주회에서는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을 연주합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이 연주되는 이번 음악회는 가을을 맞아 애수에 잠길 수 있는 좋은 자리가 될 것입니다.

서곡으로 장식될 ‘클라우스 아르프(Klaus Arp) ― 《추억》(Mémoire)’ 역시 멜랑콜리한 가을 저녁의 정서에 어울리는 작품이며 현대곡이면서도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될 수 있는 아름다운 곡입니다. 작곡자 ‘클라우스 아르프’는 구자범 지휘자의 스승이기도 하며 《추억》(Mémoire)은 국내초연으로서 몽환적인 분위기의 선율 속에서 화려한 플롯 솔로가 돋보이는 곡입니다.

"가을, 그리고 저녁"

  • 2011년 9월 24일 토요일
  •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 만 7세 이상 입장가
  • 입장권: VIP 6만원 / R석 4만원 / S석 3만원 / A석 2만원 / B석 1만원
  • 할인: 장애우, 국가유공자, 학생 50% / Art plus 골드회원 40% / Art plus 일반회원, i-Plus카드 30% / KB, BC, 신한, 현대, 삼성카드, 고양문화재단, 인터파크 유료회원 20% / ‘문화 데이트’ 신청은 경기필 사무실에 문의

프로그램

  • 아르프, »Mémoire (추억)« für Flöte und Orchester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작품 18 (협연: 박종훈)
  •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b단조 작품 74, 《비창》 »Pathétique«

아르프 ― »Mémoire (추억)« für Flöte und Orchester

클라우스 아르프(Klaus Arp)는 독일 작곡가 · 지휘자이며 구자범 지휘자의 스승이기도 하다. 이번 연주회에서 국내 초연되는 《추억》(Mémoire)은 감성적인 미니멀리즘 기법을 사용한 몽환적인 작품으로, 넘실거리는 오케스트라와 화려한 플루트 독주 선율이 돋보이는 곡이다. 김일지 플루트 수석이 독주 선율을 연주한다.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작품 18

라흐마니노프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며, 이 가운데 2악장은 에릭 카멘(Eric Carmen)이 부른 〈All by Myself〉에 인용되는 등 대중음악에도 곧잘 쓰였다. 또한 권형진 감독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피아니스트 김정원이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나오고, 일본 TV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 제6화에서는 주인공 치아키가 이 곡을 연주한다.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 초연 때 혹평을 받고 나서 우울증과 슬럼프에 시달리다가 완쾌한 뒤인 1900년부터 1901년 사이에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작곡했으며, 치료를 맡은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박사에게 작품을 헌정했다.

이 곡은 애수 가득한 분위기와는 달리 연주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곡이며, 한 손으로 온음 9개 간격을 눌러야 하는 등 손이 작은 사람은 연주할 수 없는 곡으로 악명 높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피아니스트 박종훈이 협연을 맡는다.

차이콥스키 ― 교향곡 6번 b단조 작품 74, "비창"

차이콥스키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교향곡이며, 그가 사망하기 9일 앞선 1893년 10월 28일 초연되었다. 이 곡은 앞서 발표된 교향곡과 달리 절망과 체념, 죽음의 정서로 가득한 가운데 쓸쓸히 끝난다. 차이콥스키는 이 곡에 표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으나 실제로 알려진 것은 없으며,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Richard Taruskin, b1945)은 이것을 "자살 유서와 같은 교향곡"("symphony as suicide note")이라 했다. (차이콥스키 공식 사인은 콜레라이다.)

이 곡에 '숨은 표제'의 의미와 관련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차이콥스키는 동성애 의혹이 있었고, 이것이 문제가 되자 명예로운 자살을 강요받았다는 정황증거가 있다. 이 곡은 동성애 의혹과 관련 있는 조카 블라디미르 다비도프에게 헌정되었다.

둘째, 차이콥스키가 죽기 세 해 앞서 여동생이 죽고, 후원자인 폰 메크 부인과 서신 교류와 경제적 지원이 끊겼다. 폰 메크 부인은 장남이 불치병에 걸린데다 부인 자신도 건강이 악화되어 프랑스로 요양을 났는데, 차이콥스키는 그러한 사정을 몰라 큰 상실감을 느꼈다.

셋째, 당시 러시아 사람들이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던 사회상과 관련이 있다는 설이 있다. 차이콥스키는 "오늘날 우리가 겪는 이 비참한 시대에는 오직 예술만이 이 무겁고 숨막히는 현실에서 주의를 돌려줄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협연자 : 피아니스트 박종훈

이탈리아 산레모 클래식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2000년)하며 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박종훈은 이후 산레모 심포니와 협연한 갈라 콘서트, 첼리스트 비토리오 체칸티와 함께 한 베토벤 콘서트(로마)가 RAI 이탈리아 국영 방송국에 의해 이탈리아 전국 생방송되기도 하였다. 서울시향, KBS 교향악단을 비롯해서 국내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정기적으로 협연 무대를 가져 왔으며 상 페테르부르그 심포니, 브루노 심포니, 슬로박 필하모닉, 아카데미아 필라르모니치 디 베로나 등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 하였다. 세계 50여 개의 도시에서 독주, 실내악 연주를 해 왔으며 뉴욕 타임즈의 버나드 홀란드는 그의 연주에 대해 "놀라운 개성, 우아한 음악성" 이라고 평한 바 있다.

2010년 10월 현재, 총 5장의 클래식 앨범과 9장의 재즈/크로스오버 앨범을 발표하였으며 많은 음반에 프로듀서로도 참여해왔다. 2008년 클래식&재즈 레이블 <루비스폴카>를 설립, 실력있는 국내/외 아티스트들의 음반과 공연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2009년 한국인 연주자 최초로‘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 연주회’를 예술의전당에서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2010년에도 예술의전당 크로스오버 페스티벌(1월), 호암아트홀 박종훈의 러브레터(3월), 친절한 금희씨:모차르트에 빠지다(11월) 등 활발히 활동 중이다. 2009년 4월부터 1년간 KBS-1FM의 'FM가정음악'을 진행하였고 올 5월에는 아내인 피아니스트‘치하루 아이자와’와 함께 피아노 듀오 음반을 발표하였고, 12월에는 크리스 바가(드럼), 이순용(베이스)와 함께 크로스오버 음반과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노영심과‘크로스 더 피아노’공연을 열었다. 2011년 9월에는 리스트 앨범과 공연(서울LG아트센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연세대 음대에서 이경숙, 줄리어드에서 세이모르 립킨, 이탈리아 이몰라 피아노 아카데미에서 거장 라자르 베르만을 사사하였다.

지휘자 : 구자범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 철학과 재학 중 도독
독일 만하임 음대 대학원 지휘과 졸업
독일 하겐 시립 오페라 극장, 다름슈타트 국립 오페라 극장 지휘자
하노버 국립 오페라 극장 수석 지휘자
광주 시립교향악단 지휘자
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 티켓 예매 ―

고양아람누리
http://www.artgy.or.kr/PF/PF0201V.aspx?showid=0000003323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MN=Y&GoodsCode=11010067

2011년 4월 7일 목요일

시벨리우스 《포흐욜라의 딸》 /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 유카페카 사라스테 / 서울시향

2011-02-24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유카페카 사라스테

시벨리우스, 포흐욜라의 딸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모음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입니다. ㅡ,.ㅡa


역사와 전통이 있는 악단일수록 단원들 자존심도 그만큼 대단해서, 어지간한 지휘자는 말 안 듣는 단원들 때문에 골탕을 먹기 일쑤다. 그런데 서울시향은 그와 달리 지휘자가 무슨 요구를 하든 다 들어준다고 한다. 게다가 요즘 서울시향은 유럽 기준으로도 기본기는 탄탄하므로 일류 지휘자에게도 매력 있는 악단이라는 말을 글쓴이는 언젠가 한 단원에게 들은 일이 있다. 그래서 거장 샤를르 뒤투아가 객원 지휘했을 때 분위기가 그렇게나 좋았다던가.

글쓴이가 객석에서 듣기에도 일리 있는 말이다. 요즘 서울시향은 그만큼 지휘자 솜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거물급 지휘자 유카-페카 사라스테가 서울시향을 지휘했다. 이날 연주는 그 이상 말이 필요 없을 만큼 대단했다.

그런데 사라스테가 보여준 작품 해석은 조금 뜻밖이었다. 핀란드 출신 지휘자가 시벨리우스를 지휘하면 북유럽 서늘한 공기처럼 고음을 부풀릴 듯하지만, 이날 연주에서는 거꾸로 현이건 관이건 저음이 너무 두드러졌다는 불평이 나오기까지 했다. 《포흐욜라의 딸》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오케스트라를 눈부시게 뚫고 나올 때에는 역시 핀란드 지휘자라는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는 단단한 저음을 바탕으로 균형 잘 잡힌 소리였다.

'사라스테 사운드'는 프로코피예프 《로미오와 줄리엣》 발췌 모음곡에서 좀 더 또렷하게 드러났다. 단단한 저음, 균형 잡힌 소리, 그리고 조금이라도 균형을 해칠 만한 대목은 빈틈없이 다듬어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소리가 객석을 압도했다. 정명훈이 큰 틀을 짜고 나머지는 단원들에게 맡기는 식으로 소리를 다스린다면, 사라스테는 작은 소리까지 지휘봉 끝에 휘어잡아 소리를 빚어냈다.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 곳으로 이를테면 〈몬타규 가와 카풀렛 가〉에서 '줄리엣' 모티프가 처음으로 나온 대목(마디 63)을 들 수 있다. 플루트가 연주하는 주선율은 아름답지만, 약음기 낀 비올라 음형에 글리산도(음 사이를 미끄러지듯 연주하기)가 있어서 문제다. 플루트 소리와 비올라 소리가 합쳐지면서 옥타브 하행 도약에 음산한 글리산도가 덧입혀져 주선율을 비틀어버리기 때문이다. 음반을 들어보면 지휘자에 따라 일부러 이곳에서 기괴한 느낌을 살리기도 한다.

그런데 사라스테는 글리산도 음형을 들릴 듯 말 듯하게 다스려 플루트가 주선율을 확실하게 이끌고 가게끔 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비올라 글리산도 음형이 마치 왈츠를 추는 줄리엣처럼 사뿐사뿐 했다는 대목이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음색과 셈여림, 악기 간 균형 따위가 상호작용하여 음반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마법이 일어났다.

'사라스테 사운드'가 가장 충격적으로 드러난 곡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이었다. 글쓴이는 언젠가 이 곡을 두고 '달콤한 절망과 거짓된 승리' '현실을 회피해버린 작곡가의 정신적 마스터베이션' 등으로 풀이한 바 있다. 겉보기에는 법석대며 화려하게 끝나지만 그 이면에 처절하게 궁상맞은 정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연주에서는 병든 광기가 철저하게 억눌린 대신 잘 계산된 세련미가 덧입혀져 마치 브람스가 새로 편곡이라도 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자칫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 대목은 대선율이 주선율을 치고 올라오게 하거나 악기 간 균형을 정교하게 다듬어 세련됨을 잃지 않게끔 했고, 곳곳에서 이음매가 자연스럽도록 템포를 다스리기도 했다. 그래서 사납게 몰아치는 대목에서도 절박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아니라 여유를 잃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어 마치 차이콥스키가 아닌 말러를 듣는 듯하기도 했다.

'이건 차이콥스키가 아니야!' 누군가는 이렇게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움베르토 에코)라는 말이 있듯 한 가지 해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차이콥스키는 자신이 떠올린 아름다운 선율을 베토벤이나 브람스처럼 정교한 짜임새로 풀어내는 솜씨가 모자람을 곧잘 한탄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가 이날 연주를 들었다면 자신의 약점을 없애준 연주라며 지휘자 손을 덥석 잡고 고마워하지는 않았을까.

이날 첼로 수석을 맡은 객원은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관현악단 수석인 루이지 피오바노(Luigi Piovano)로 서울시향과는 아마도 두 번째이지 싶다. 그런데 피오바노가 서울시향 객원 수석을 처음 맡았던 날을 글쓴이는 시향 개편 이후 최악의 연주회로 기억한다. 그날 시향이 연주를 망친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개편 초기 취약점을 거의 털어낸 서울시향이 이날 피오바노를 다시 만나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반갑기 때문이다.

현악 파트는 보통 수석 연주자가 활놀림을 결정한다. 가끔은 악보에 지시가 있거나 지휘자 요구가 반영되기도 하지만, 그런 예외를 빼면 수석 연주자가 누구냐에 따라 파트 음색이 확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이날 피오바노를 만난 서울시향은 평소와는 크게 달라져 고무공처럼 통통 튀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첼로 소리를 뽐냈다. 첼로를 따라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덩달아 달라지기도 했는데, 첼로와 활놀림을 맞춘 탓인 듯했다.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파야 《삼각모자 모음곡 2번》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슈만 교향곡 1번 ― 알반 게르하르트 / 헤수스 로페스-코보스 / 서울시향

2010-09-10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헤수스 로페스 코보스 Jesus Lopez-Cobos, conductor
협연 : 알반 게르하르트 (첼로) Alban Gerhardt, cello

파야, 삼각모자 모음곡 2번 Falla, El sombrero de Tres Picos: Suite No. 2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Tchaikovsky,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슈만, 교향곡 1번 "봄“ Schumann, Symphony No. 1 "Spring"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지휘자 헤수스 로페스-코보스는 마드리드 테아트로 레알 음악감독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그 레알, 축구 규칙도 잘 모르는 글쓴이도 익숙한 그 이름 탓일까. 글쓴이는 이날 서울시향 연주를 들으면서 로페스-코보스가 이끌어내는 음악이 어쩌면 축구 평론가들이 말하는 스페인 축구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파야 《삼각 모자 모음곡》 2번을 들을 때만 해도 그저 스페인 지휘자라서 스페인 음악을 잘하나 보다 싶었다. 게다가 지휘자가 쌓아온 경력이 만만치 않은 만큼 이날 연주는 객원 지휘자가 짧은 시간에 만들어낸 소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훌륭했으며, 정명훈라벨을 지휘할 때에나 들을 수 있는 정교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앙상블이 돋보였다.

그러나 슈만 교향곡 1번 연주는 그 단점까지도 스페인 축구와 닮아 있었다. 축구 얘기를 조금만 하자. 스페인에는 "멍청한 선수는 열심히 뛴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곳이 스페인이다 보니 열심히 뛰기보다 효율적으로 조금만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스페인 팀은 곧잘 상대편 체력을 갉아먹으며 경기를 지배하지만, 거꾸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생각이 많아져서 골로 연결하지 못할 때가 잦다고 한다.

이날 슈만 교향곡 1번이 그랬다. 대체로 앙상블이 깔끔하기는 했으나 결정적인 '한 방'이 빠져서 밋밋한 느낌. 이름값이 대단한 지휘자가 다스린 소리가 기대에 못 미친 까닭으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서울시향과 상성이 맞지 않았다. 로페스-코보스는 중요한 곳에서 악단을 확 잡아끌기보다는 단원들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게끔 하는 듯했으나, 서울시향은 유럽 일류 악단과는 달리 아직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하며 지휘자가 잘 이끌어줄 때에만 유럽 수준에 근접한 연주를 들려준다. 정명훈이 더없이 소중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둘째, 슈만 교향곡 1번은 연주할 때 자칫 맨송맨송해지기 쉬우며, 로페스-코보스와 서울시향 조합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것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베토벤 이후 낭만주의 교향곡 역사를 알아야 한다.

베토벤고전주의를 넘어서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혔지만, 한편으로는 낭만주의적 선율과는 맞지 않는 모티프 변형 기법을 유산으로 남겼다. '베토벤 딜레마'를 어찌할까. 슈베르트베토벤을 닮은 도입부 선율을 발전부에서 앞세워 전개시키며 베토벤을 흉내 냈다. 멘델스존은 달콤한 가락을 대위법으로 겹쳐 베토벤을 이으려 했다. 리스트와 프랑크는 모티프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네트워크로 묶어 바꿔나가는 기법을 개발했고, 바그너는 리스트를 흉내 냈다.

'모범답안'을 내놓은 사람은 브람스였으나, 슈만 교향곡 1번에는 그에 앞서 온갖 아이디어로 '사투'를 벌인 눈물겨운 흔적이 담겨 있다. 베토벤과 낭만주의가 어우러지게 하는 일에 슈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반복되는 리듬인데, 슈만이 작품 곳곳에 심어 놓은 '아이디어'를 잘 살리지 않으면 이 리듬 때문에 음악이 지루해지기 쉽다. 로페스-코보스와 서울시향은 바로 이 덫에 빠졌다. 지휘자가 '너무 조금 움직인' 탓이다. 금관 등이 몇 차례 실수도 했다.

음악에서 '로코코'라 하면 뜻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지만, 보통 바로크 양식이 고전주의 양식으로 바뀌어 가던 18세기 초·중반 양식을 가리킨다. 대위법을 바탕으로 하는 바로크 양식을 벗어나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의 화성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간결하면서도 밝고 우아한 양식으로 갈랑(galant) 양식이라고도 한다.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로코코 양식을 따르는 주제를 바탕으로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19세기 양식이며, 이러한 대목은 브람스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닮은꼴이다.

협연자 알반 게르하르트는 '로코코' 양식보다는 낭만주의 느낌을 한껏 살려 연주했으며, 곳곳에서 루바토를 두드러지게 쓰거나 때때로 매우 거친 활놀림을 보이기도 했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인지 'A' 현 상태가 좋지 않은 듯 때때로 삐끗하는 소리를 내기도 한 대목은 옥에 티였다. 앙코르로 연주한 두 곡이 모두 저음이 많아서 'A' 현을 쓰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이것을 빼면 연주는 매우 훌륭했다.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특이했던 곳으로 이를테면 마디 32~33에는 하행 음형을 중심으로 '점점 세게―세게―점점 여리게―매우 여리게' 연주하라는 지시가 있는데, 게르하르트는 도돌이표를 타고 두 번째로 연주하면서는 셈여림 지시를 무시하고 여리게(소토 보체) 루바토 섞어 연주했다.

처음에는 글쓴이도 몰랐던 사실 하나. 슈만 교향곡 1번을 연주할 때 알반 게르하르트가 슬쩍 들어와 뒷자리에 앉아 일개 객원 단원으로 연주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독주와는 달라서 수석 연주자가 정하거나 지휘자가 특별히 요구한 활놀림을 따라야 하는데, 그렇다면 게르하르트가 연습 때부터 이렇게 참여했다는 뜻이 된다. 참 성실한 연주자다.

2009년 8월 31일 월요일

2008.07.05.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 니콜라스 안겔리치 / 정명훈 / 서울시향

서울시향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이 무대를 휘어잡아 《비창 교향곡》 바순 독주를 빛바래게 해버린 연주회. 어마어마한 '포스'를 뿜어내는 진줏빛 소토 보체(sotto voce)에 깜짝 놀랐으나 정명훈이 뿜어내는 존재감이 이날따라 워낙 대단해서 채재일한테 논점을 모아주기 어려웠다. 이 일이 못내 아쉬워서 다음 연주회 때 맘먹고 칭찬한다는 게 고작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4악장 2주제... -_-; 이날 숨은 주인공은 채재일이었다. 완소 채재일 씨 짱 드셈. >_<


2008년 7월 5일(토)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니콜라스 안겔리치(피아노)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in E-flat, Op. 73 "Emperor"
Tchaikovksy, Symphony No. 6 in b, Op. 74 "Pathetique"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지휘할 때면 앙상블이 갑자기 크게 좋아지곤 한다. 정명훈이 지휘를 잘하기도 하고 대가의 존재감 때문에 단원들이 열심히 연주하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름난 외국 악단에서 객원 연주자를 데려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객원 덕에 앙상블이 좋아졌으니 진짜 서울시향 실력이 아니라고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객원 연주자의 수준 높은 연주를 시향 단원들이 듣고 배울 테니 말이다. 서울시향은 그 뒤로도 '찾아가는 연주회' 등으로 같은 곡을 '복습'하면서 배운 것을 바로 써먹을 수 있다. 또 객원으로 왔다가 단원으로 눌러앉는 사람도 더러 있다.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나 팀파니 수석 아드리앙 페루숑이 그렇다. 옛날에는 시향 단원이 객원 연주자를 따라가지 못해서 객원들만 두드러질 때가 잦았지만, 요즘은 크게 나아져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함께 성장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날 연주는 그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큼 훌륭했다.

니콜라스 안겔리치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은 무척 낯설게 들렸다. 서울시향은 대편성으로 묵직하게 밀어붙였지만 안겔리치는 오케스트라에 팽팽하게 맞서지 않고 살짝 흘리면서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연주했다. 또 마치 쇼팽을 연주하듯 루바토를 과장해서 쓰고 곳곳에서 소토 보체(sotto voce)로 연주하는가 하면 페달을 너무한다 싶을 만큼 잔뜩 써댔다. 무대로 걸어나올 때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던 생각이 겹치면서 협연자가 몸이 아프지는 않은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엉터리 연주라고 화를 내야 할까. 생각 끝에 나는 참신한 해석이라고 좋게 여기기로 했다.

우리는 어쩌면 '황제'라는 표제 때문에 생각이 틀에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표제는 악보 출판업자가 장삿속으로 붙였을 뿐 작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작품은 그저 피아노 협주곡일 뿐이며 '황제'와 관련한 상상을 보태어 그에 걸맞은 웅장함을 바라는 것은 잘못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봐, 그래도 안겔리치는 너무하지 않아? 저게 쇼팽이지 어딜 봐서 베토벤이라는 거야?" 그 말대로 안겔리치가 한 연주는 베토벤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꼭 베토벤다워야 할 까닭이 있는가? 움베르토 에코는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라고 했다. 작가가 의도한 것만을 고이 받들어 모실 게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열린 해석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까지 알고 있던 '황제 협주곡'은 잠시 잊어버리고 연주자가 내놓은 색다른 해석을 기꺼이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연주는 오늘따라 더욱 뛰어난 서울시향의 앙상블과 '다크 포스' 넘치는 정명훈의 해석이 맞물린 명연주였다. 1악장에서 음악에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거대한 크레셴도를 만드는 솜씨가 훌륭했고 바순과 클라리넷 독주 또한 표정이 잘 살아있는 뛰어난 연주였다. 마디 161에서 터져 나온 총주는 어찌나 사나운지 바로 앞에서 울다 지쳐 잠드는 듯하던 클라리넷 소리를 갈가리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부 러시아 지휘자가 남긴 녹음과는 달리 트럼펫을 앞세워 귀 따갑게 으르렁거리지 않고 악기 사이에 균형을 잘 맞췄다.

3악장에서는 빠른 템포로 달리면서도 앙상블이 흐트러지지 않은 점이 매우 훌륭했다. 긴장감을 조금씩 쌓아올리다 마디 229에서 크게 터트릴 때에는 특히 현이 몹시 날카롭게 끊어 긁어대며 섬뜩한 소노리티를 만들어내었다. 차갑게 비웃는 듯한 행진곡 리듬이 내가 이제껏 들어본 그 어떤 연주보다도 폭력적이고 무시무시했다. 마치 나치 시대 독일군 사열식을 보는 것처럼, 또는 스탈린 시대 러시아 군대처럼, 또는….

4악장은 슬프고도 슬펐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현이 울부짖지 않고 왠지 차갑게 가라앉은 것 같았고, 절망 속에서 처절하게 허우적거리는 대신 차분히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디 81에서는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를 생각보다 가볍게 다루어 바로 뒤이어 목놓아 울어대는 바이올린과 첼로에 무게를 실어주지 않았다. 곡이 끝날 때 콘트라베이스가 연주하는 셋잇단음 리듬은 심장이 조금씩 느려지다가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날 연주는 여기에서도 생각보다 담담했다. 정명훈이 표현하는 절망이 이만큼밖에 깊지 않다고 믿기는 어렵다. 정명훈은 왜 그랬을까?

답은 앙코르에서 드러났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4악장을 앙코르로 연주한 것이다! (4악장을 통째로 연주하지는 않고 마디 60부터 148까지를 건너뛰었다.) 정명훈은 차이콥스키가 교향곡 5번 4악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짜 승리'라도 억지로 '5악장'으로 덧붙여 절망과 체념 속에 주저앉지 않으려고 했나 보다. 심벌즈를 세 대나 그러모아 요란하게 쳐댄 것은 더더욱 교향곡 5번 4악장 같은 역설을 만들어내었다. 그러고 보니 '앞선 악장'에서 정명훈이 절망과 체념 대신 담으려고 했던 것은 커다란 분노가 아니었을까. 정명훈이 옛날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요즘 들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궁금하다.

이날 연주가 끝나고 누리꾼 사이에 박수 예절을 놓고 논란이 되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3악장이야 워낙 '뿜빰빰'하고 법석을 피우며 끝나니 박수가 터져 나오는 일은 이제 당연한 일(?)이기도 하며 더군다나 알면서 일부러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4악장은 죽어가듯이 천천히 여리게 끝나기 때문에 여운을 주는 '침묵 악장'이 매우 중요하다. 이날은 잔향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 나오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잔향이 없어지고 채 5초가 지나지 않아 끝내 성급한 박수가 나왔다. 그때까지 지휘봉을 높이 들고 있던 정명훈은 김 샜다는 듯이 팔을 내리고 말았다. 잔향이 없어지기에 앞서 치는 손뼉을 '안다 박수'라고 하여 비꼬아 말하기도 하는데, 이날 박수는 '안다 박수'는 아니고 '깬다 박수'라고 하더라. 성급한 박수는 여운을 즐기려는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주니 곡이 조용히 끝날수록 조심하자.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30일 일요일

2008.04.16.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 교향곡 5번 - 미하일 시모냔 / 이고리 그루프만 / 서울시향

2008년 4월 16일(수)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이고르 그루프만
협연자 : 미하일 시모냔(바이올린)

Shostakovich, Festive Overture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Op. 35
Tchaikovsky, Symphony No. 5 in c, Op. 64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유명한 외국 연주회장의 1.5배에서 2배 규모로 연주회장치고는 비정상적으로 크다. 음향이 나쁘다는 원성이 큰 것도 주로 이 때문이다. 연주회장 음향은 연주자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데, 거대한 연주회장은 특히 협주곡을 연주할 때 협연자에게 크나큰 고난으로 다가온다. 이럴 때 협연자는 보통 셋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큰 장소에 맞는 큰 소리를 내려고 무리하다가 크기만 할 뿐 듣기 싫은 소리를 내버리거나, 그 반대로 모기 소리가 나든 말든 평소대로 연주해버리거나, 또는 갑자기 아파서 연주를 할 수 없게 되거나. 그러나 솜씨 있는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연주자가 예술가로서 어떤 자세를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시험대가 될 수도 있겠다.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미하일 시모냔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낸 훌륭한 연주자였다. 큰 소리를 내려고 활놀림을 힘차게 하면서도 연주를 망칠 만큼 무리하지는 않고 중용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힘을 적게 들이면서 큰 소리를 내는 '보잉 내공'도 꽤 훌륭했다. 솜씨 좋은 연주자일수록 활이 현에 찰싹 달라붙는 듯 단단한 소리를 잘 내는데, 시모냔은 바로 이 '찰싹 달라붙는 소리'를 곧잘 냈다. 다만, 큰 소리 내는 데 신경 쓰는 만큼 군데군데 삐걱거리는 곳도 있었는데 이를테면 1악장 카덴차 직전에 음정이 꽤 크게 어긋났다.

1악장 템포를 느릿하게 잡아서 긴장감이 조금 떨어졌던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주회장 음향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템포를 조금 늦추면 실수 없이 큰 소리를 내기 쉽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1악장 독주 부분이 몹시 길고 쉬는 곳도 잘 없어서 마라톤 뛰듯이 페이스 조절을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 다만, 1악장 마지막에 D 음을 반복하며 긴장감을 높여갈 때에는 그래도 좀 더 빠르게 몰아쳤으면 하는 아쉬움을 버릴 수 없었다.

3악장 마디 565 또는 그 앞서 같은 음형이 나오는 마디 314에서는 관현악 합주로 이어지는 4분 음표에서 호흡이 끊기는 데다 그 간격도 일정하지 않고 절뚝거려서 오케스트라가 맞춰주느라 애를 먹었던 점이 옥에 티였다. 협연자가 활을 어떻게 쓰는가 살펴봤더니 활 아래쪽 1/3 부근에서 힘차게 긁어대다가 4분 음표에서 활 아래쪽 끝으로 폴짝 옮겨서 거의 풀 보잉(full bowing)을 한다. 이때 활을 옮기느라 호흡이 끊겼던 것이다. 상행 음형을 끝맺는 4분 음표를 과장해서 크레셴도 효과를 내려고 했던 모양으로 아마도 연주회장 음향을 생각해 좀 더 힘차게 연주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다고 본다. 마디 565는 작품의 절정에 해당하는 곳인데 호흡이 끊긴 만큼 긴장감이 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케스트라가 이때 썩 잘해주어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연주를 끝맺을 수 있었다.

3악장에서는 군데군데 반복구를 생략하는 관습이 있는데, 이를테면 마디 71-82, 마디 259-270, 마디 420-427 등은 생략할 때가 잦다. 그런데 요즘은 또 생략 없이 그대로 연주하는 게 유행인 모양이다. 역사주의 연주가 널리 힘을 얻은 것과도 관련이 있을까 싶지만, 또 알고 보면 이 유행은 그보다 역사가 오래된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음반 녹음을 하면서 다른 작품을 같이 넣고도 CD 용량을 넘어서지 않도록 연주시간을 줄이려는 목적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그런데 마하일 시모냔은 이날 반복구를 생략하고 연주했다. 왜 그랬을까?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연주는 금관의 강력한 소리와 팀파니의 묵직한 두드림을 앞세워 커다란 연주회장에 걸맞았다. 지휘자 이고리 그루프만이 러시아 사람이라 그런지 금관 악기 음색이 더욱 거칠게 느껴졌는데, 그러면서도 므라빈스키처럼 주선율이 다른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미쳐 날뛰는 게 아니라 저음을 제법 묵직하게 깔고 그것을 바탕으로 두터운 화음을 만들며 부선율을 놓치지 않는 등 뛰어난 균형감각을 보여주었다.

3악장에서 중간에 그로테스크한 면을 살리지 않고 세련되기만 하게 연주한 것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 마디 56 이후에 나오는 바순 독주에서는 마치 잔치에 갑자기 불청객이 끼어든 듯 낯설고 갑작스러운 느낌을 살리지 않고 그저 말끔하게 연주했다. 피아노(p)에서 포르테(f)로 재빨리 크레셴도를 하도록 악보에서 지시한 것을 지키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메조포르테 정도로 연주했으며 A# 음의 악센트도 살리지 않았다. 헤미올라(hemiola) 리듬 역시 매끄럽게만 연주해서 3박자 리듬의 단절에 따른 긴장감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작품을 지배하는 정서는 '달콤한 절망과 거짓된 승리'라 할 수 있다. 많은 평론가가 지적하고 차이콥스키 자신도 인정한 것처럼 이 작품이 끝맺는 방식은 솔직하지 못하고 과장되었다. 차이콥스키는 고통을 이겨내려는 의지를 작품에 담아내지 못한 듯 보이며, 그래서 이 작품은 끝내 현실을 회피해버린 작곡가의 정신적 마스터베이션이다. 교향곡 6번에 끝없는 절망과 체념이 담긴 까닭도 이것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

그런데 이날 서울시향의 연주는 사납게 몰아치면서도 감정의 기복은 지나치게 크지 않고 어느 정도 절제되고 안정되어 있었다. 피날레는 진짜 승리 또는 적어도 자신을 철저히 속이는 가짜 승리인 것처럼 느껴졌다. 병든 광기는 즐거운 축제가 되었다. 그것대로 듣기 좋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관이 그토록 사납게 울부짖었고 템포 또한 악보에 있는 메트로놈 지시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느꼈을까? 고민 끝에 나는 연주회장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연주회장 음향 특성에 따라 소리의 심리적인 거리가 매우 멀게 느껴져서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새로 짓는다던 시향 전용 연주회장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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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23일 일요일

2007.04.29. 첸이 '모멘텀' / 로드리고 아랑후에즈 협주곡 /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 시엔 장 / 서울시향

2007년 4월 29일(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Xian Zhang
협연자 : Xuefei Yang(Guitar)

Chen Yi: Momentum (13')
Joaquin Rodrigo: Concierto de Aranjuez (21')
Tchaikovsky: Symphony No. 5 in e minor, Op.64 (50')



나중에 붙임:

'张弦'은 '장셴'
'陈怡'는 '천이'
'杨雪霏'는 '양쉐페이'가 올바른 외래어 표기법인 듯.



첸이(Chen Yi; 陈怡; 1953-)는 중국 음악의 유산을 서양음악 어법과 결합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윤이상과 비교될 수 있는 작곡가다. <모멘텀>은 만리장성으로 대변되는 거대한 이미지와 중국음악 특유의 '앵~' 하는 선율적 특성, 그리고 부분적으로 사용된 클러스터 기법 등이 특징적이었는데, 중국적인 음 소재가 서양 사람들에게 어필할지는 모르지만 기법적 측면에서 그다지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은 아쉬웠다. 특히 중국적 특징이 선율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점은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느껴졌으며, 중국 민속 선율을 노골적으로 사용한 부분은 유치하기까지 했다면 이는 과문한 나의 편견 탓일까, 아니면 윤이상이라는 거장과 나란히 비교한 탓일까. 외람되지만 민족적 정체성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냥 한 명의 예술가로서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통해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곡가도 있지 않던가? 진은숙 말이다.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즈 협주곡>을 연주한 쉬에페이 양(Xuefei Yang; 杨雪霏; 1977-)은 '양설비'라는 한국식 발음이 예쁜데, 외모 또한 늘씬한 것이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기타 연주는 정열적이라기보다는 단단하고 또랑또랑했으며, 선이 가늘면서도 시원시원했다. 잘 다듬어져 세련된 음색은 어떤 면에서는 지난 1월에 내한했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재미있게도 두 사람 다 앙코르로 타레가(Francisco Tárrega)의 알함브라의 추억을 연주했다. 쉬에페이 양은 첫 번째 앙코르로 로드리게스(Gerardo Matos Rodríguez)의 라쿰파르시타(La Cumparsita)를 들려주었다.

이번 연주회의 키워드가 '중국 여성'이라면, 이날 소개된 작곡가와 독주자와 지휘자 중에 가장 돋보인 중국 여성은 지휘자 시앤 장(Xian Zhang; 张弦)이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연주는 감정 변화의 폭이 상당히 큰 편이었는데, 그러면서도 일부 러시아 지휘자들처럼 광포한 금관이 다른 성부를 압도해버리는 식이 아니라 템포와 다이내믹의 계산된 변화를 통해 그러한 효과를 불러왔다. 고백하건대 나는 차이콥스키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슬라브 풍의 감상주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날 팀파니 주자가 앞장서서 오케스트라의 전체 음색을 묵직하게 이끌어나가곤 했던 것은 매우 마음에 들었다. 말하자면 팀파니는 이날 연주를 '러시아 음악'이 아닌 '유럽 음악'으로 만드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으며, 연주가 끝난 다음 지휘자가 팀파니 주자를 일으켜 세우지 않은 것으로 보아 팀파니에 대한 나의 찬사는 지휘자가 아닌 팀파니 주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템포는 다소 빠른 편이었으며, 특히 2악장 마디 39(Poco più animato)에서 경사가 가파른 아첼레란도를 사용하여 클라이맥스로 가는 강한 흥분을 유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2악장 마디 128(Più mosso)에서 콘트라베이스의 '뽕짝 리듬'을 강조한 것은 이날 보여준 해석 가운데 가장 참신하다고 느꼈다. 말러적인 반어법을 생각나게 하는 이 부분은 사실 악보에 뻔히 있는 지시를 따른 것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내가 그동안 음반으로 접해본 연주들에서는 이 부분의 베이스 리듬을 이렇게까지 강조하지 않았던 것은 신기하다. 지휘자는 이 부분에서 콘트라베이스 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린 채로 지휘하여 시각적인 효과도 훌륭했다.

3악장에서 중간의 그로테스크한 면을 부각시키지 않고 세련되게만 연주한 것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바순의 헤미올라(hemiola) 리듬에 의한 독주(마디 56)는 시작 부분에서 템포를 일시적으로 살짝 늦추었고, 피아노(p)에서 포르테(f)로 가는 크레셴도의 폭이 약했으며, A# 음의 악센트는 하행 도약으로 말미암아 소리가 작아지는 것을 막는 정도로만 처리하는 등, 왈츠 리듬 사이에 마치 파티의 불청객처럼 갑자기 끼어든 이질성을 중화시키기 위한 장치를 사용했다. 이어지는 현악기군의 스피카토 음형 또한 세련되고 유쾌한 해석으로 일관했다. 1악장 마디 119와 135 등의 옥타브 하행 음형에서 플루트(바이올린) 소리만 또렷하게 들리고 클라리넷-바순(비올라-첼로)으로 갈수록 음량이 약해진 것은 옥에 티였다. 이것은 악기의 음역에 따른 음향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고음은 좀 더 줄이고 저음으로 갈수록 음량이 커질 필요가 있다.

이날 가장 돋보인 악기는 2악장 첫머리에서 멋진 독주를 들려준 호른이었다. 지휘자는 연주가 끝난 직후 가장 먼저 호른 수석 주자를 일으켜 세웠으며, 호른 파트 전체가 안정된 연주를 들려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4악장 코다의 템포가 느려지는 부분(마디 472)에서 음량 조절에 실패한 것은 아쉬웠다. <아랑후에즈 협주곡>에서도 호른이 엉뚱하게 돌출된 부분이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매우 훌륭한 연주를 했으면서도 이렇게 옥에 티를 남기는 것은 호른 연주자들의 얄궂은 운명이기도 하다.

이날 연주회는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악장인 스베틀린 루세브(Svetlin Roussev)가 데니스 김과 함께 서울시향의 공동 악장으로 선임된 이후 악장을 맡은 첫 정기연주회였다. 그래서인지 현 소리가 좀 달라지기는 했는데, 아직은 두고 볼 일이다. 프랑스인(원래는 불가리아인이라고 한다.)이 한국 악단의 악장을 맡은 것은 리더쉽의 측면에서 단점이 될 소지도 있겠지만, 단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호 신뢰를 높임으로써 루세브가 지닌 장점이 서울시향에 최대한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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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1일 금요일

2007.02.07. 스트라빈스키 디베르티멘토, 터니지 트럼펫 협주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 산토라 / 하르덴베리에르 / 서울시향

서울시립교향악단 정기 연주회
2007년 2월 7일(수)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Stravinsky: Divertimento from Fairy's Kiss (22')
Turnage: Trumpet Concerto (15')
Tchaikovsky: Symphony No. 6 in b minor, Op.74 'Pathetique' (46')

Misha Santora (cond.)
Håkan Hardenberger (tp)



올해 서울시향의 정기연주회 레퍼토리는 놀랍다. 현대음악이 고전-낭만 시대 작품과 비슷한 비중으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미 '고전'으로 자리 잡은 20세기 작품뿐 아니라 아직 개인이 악보를 구할 수 없는 최신작도 꽤 있으며, 서울시향이 국내 작곡가에게 위촉한 작품도 연주될 모양이니 더욱 놀랍다. 그동안 현대곡이 자주 연주되지 않은 것은 대중에게 외면받아온 탓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검증된 작품만을 연주하는 것은 클래식 음악을 점차 박제로 만드는 악순환을 낳을 뿐이다. 외국 유수 악단의 공연에서는 현대음악이 심심치 않게 연주되며, 독일에서는 신작이 발표되는 연주회 티켓이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빨리 매진된다니 그에 비하면 우리 음악계는 얼마나 낙후되어 있는가. 그런데 이제 서울시향이 (적어도 연주회 프로그램으로는) 외국 유수 악단과 발맞추게 된 것이다. 세계적인 작곡가 진은숙이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가 되고서 약 일 년만의 일이다.

2월 7일 있었던 정기연주회에서도 마찬가지로 19세기 작품(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과 20세기 작품(스트라빈스키 디베르티멘토), 그리고 21세기 작품(터니지 트럼펫 협주곡)이 함께 연주되었다. 터니지(Mark-Anthony Turnage)의 트럼펫 협주곡 "난파의 잔해로부터 From the Wreckage"는 재작년에 세계 초연된 작품으로 이날 협연을 맡은 호칸 하르덴베리에르(Håkan Hardenberger)를 위해 작곡되었다. 작품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 듯했고, 플뤼겔혼(flügelhorn), C조 트럼펫, 피콜로 트럼펫이 각 부분의 독주에 사용되었다. 이 곡은 원래 작곡가의 어두운 시절에 대한 회상이며 '난파선'과의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첫째와 셋째 부분의 음울한 블루스 리듬은 묘하게 바다의 심상을 떠올리게 했다. 흐린 날 저녁 바다에 낡은 배 한 척이 파도에 흔들리고, 붉게 물든 하늘에 갈매기 한 마리가 외로이 날아가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이렇게 보면 사나운 둘째 부분은 바다에 몰아치는 폭풍우 같고, 타악기와 금관의 뒤뚱거리는 부점 리듬은 거친 파도에 흔들리는 배 같기도 하다.

이날 연주회의 하이라이트는 하르덴베리에르가 반주 없이 들려준 두 곡의 앙코르였다. 첫 곡은 리처드 로저스(Richard Rodgers) 작곡의 저 유명한 재즈곡 "My Funny Valentine"이었고, 두 번째 곡은 원래 스웨덴 민요라고 하나 정확한 곡명은 알려지지 않았다. 두 곡 모두 쳇 베이커(Chet Baker)나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를 닮은 재즈 양식이었는데, 어떤 면에서는 터니지의 트럼펫 협주곡과 통하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터니지가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하르덴베리에르가 여기서 사용한 약음기는 스템(stem)을 제거한 하몬 뮤트(harmon mute)라고 하는데, 이것은 바로 마일스 데이비스가 즐겨 쓰던 종류의 약음기다. 약음기를 사용한 곡을 연주한 것은 사실 이날 하르덴베리에르의 윗입술 쪽에 상처가 있어서라고도 하는데, 그럼에도 마일스 데이비스의 트럼펫 연주가 시시하게 느껴질 만큼 감동적인 연주를 들려준 것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극도로 여리면서도 거짓말처럼 또렷하게 귀에 감기는 소리, 꿈결처럼 잔잔한 비브라토, 홀린 듯한 관객들…. 유치하게도 나는 은은한 조명 아래서 와인이라도 마셔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휴식 시간에 지인이 말했다. 이 분위기에서 '비창 교향곡'이 웬 말이냐!

서울시향의 앙상블은 뜻밖에 실망스러웠다. 터니지 트럼펫 협주곡이야 생소한 작품이니 일단 좋은 연주였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은 서울시향의 평소 실력을 고려할 때 아쉬움이 많았고, 스트라빈스키 디베르티멘토는 기껏해야 평균적인 국내 악단 수준이었다. 어쩌면 미샤 산토라(Misha Santora)의 지휘에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지휘하는 품이 영 수상한 것이 연주자들과 사인이 맞지 않아 박자가 곧잘 어긋나기도 했다. 또 어쩌면 실력은 뛰어나지만 아직 젊어서 경험이 부족한 지휘자가 외국 유수 악단보다 많이 부족한 서울시향을 이끄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까? 아니. 상당수 단원이 지휘자에게 눈길도 잘 주지 않고 악보를 따라가기에 급급해 보였다. 그러면서도 악보에 뻔히 있는 악센트나 헤어핀(hairpin; <>) 등은 제대로 지키지 않고 밋밋하게 연주할 때가 많았다. 무시해도 좋을 '사소한' 실수들은 쌓이고 쌓여서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혹시 그동안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연습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나는 이른바 '찾아가는 음악회'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정기연주회에 지장을 줄 정도라면 곤란하다.

한국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자신의 연주를 스스로 즐기지 못하는 듯하다. 서울시향도 예외가 아니다. 이해하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연주가 관객을 감동시키기는 어렵다. 그런데 단원들과 동떨어져 홀로 연주를 즐기는 듯한 사람이 한 사람 있기는 했다. 객원으로 보이는 첼로 수석이다. 듣자 하니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첼로 수석 루이지 피오바노인 모양인데, 이탈리아인 기질인지 과장된 몸짓과 앙상블을 무시하는 제멋대로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 첼로 파트를 혼자 맡은 것처럼 튀는 음량 등이 마냥 듣기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시향은 그의 연주를 배워야 한다. 악장을 가볍게 압도하고 때로는 지휘자마저 이끌어 가던 카리스마, 그러면서도 악보 못지않게 지휘자를 열심히 올려다보면서 지휘자의 지시를 실시간으로 연주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던 성실함은 악장을 비롯한 각 파트 수석들이 본받아야 한다.

전부터 느끼던 것이지만 시향의 트롬본 주자들은 부점 리듬에 취약한 것 같다. 이날 연주에서도 이를테면 스트라빈스키 디베르티멘토 2악장 마디 9에서 제3 트롬본이 부점 리듬을 처리하느라 갑자기 템포가 눈에 띄게 느려지고 말았다. 몇 마디 뒤에 같은 음형을 연주하는 제1 트롬본의 템포 또한 살짝 느려졌으며 부점 리듬도 썩 깔끔하지는 않았다. 트롬본이라는 악기 특성상 재빠른 음형을 연주하기 곤란하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세계적인 수준을 지향하는 악단이라면 그 정도의 어려움은 일찌감치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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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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