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30일 일요일

2008.04.16.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 교향곡 5번 - 미하일 시모냔 / 이고리 그루프만 / 서울시향

2008년 4월 16일(수)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이고르 그루프만
협연자 : 미하일 시모냔(바이올린)

Shostakovich, Festive Overture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Op. 35
Tchaikovsky, Symphony No. 5 in c, Op. 64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유명한 외국 연주회장의 1.5배에서 2배 규모로 연주회장치고는 비정상적으로 크다. 음향이 나쁘다는 원성이 큰 것도 주로 이 때문이다. 연주회장 음향은 연주자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데, 거대한 연주회장은 특히 협주곡을 연주할 때 협연자에게 크나큰 고난으로 다가온다. 이럴 때 협연자는 보통 셋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큰 장소에 맞는 큰 소리를 내려고 무리하다가 크기만 할 뿐 듣기 싫은 소리를 내버리거나, 그 반대로 모기 소리가 나든 말든 평소대로 연주해버리거나, 또는 갑자기 아파서 연주를 할 수 없게 되거나. 그러나 솜씨 있는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연주자가 예술가로서 어떤 자세를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시험대가 될 수도 있겠다.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미하일 시모냔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낸 훌륭한 연주자였다. 큰 소리를 내려고 활놀림을 힘차게 하면서도 연주를 망칠 만큼 무리하지는 않고 중용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힘을 적게 들이면서 큰 소리를 내는 '보잉 내공'도 꽤 훌륭했다. 솜씨 좋은 연주자일수록 활이 현에 찰싹 달라붙는 듯 단단한 소리를 잘 내는데, 시모냔은 바로 이 '찰싹 달라붙는 소리'를 곧잘 냈다. 다만, 큰 소리 내는 데 신경 쓰는 만큼 군데군데 삐걱거리는 곳도 있었는데 이를테면 1악장 카덴차 직전에 음정이 꽤 크게 어긋났다.

1악장 템포를 느릿하게 잡아서 긴장감이 조금 떨어졌던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주회장 음향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템포를 조금 늦추면 실수 없이 큰 소리를 내기 쉽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1악장 독주 부분이 몹시 길고 쉬는 곳도 잘 없어서 마라톤 뛰듯이 페이스 조절을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 다만, 1악장 마지막에 D 음을 반복하며 긴장감을 높여갈 때에는 그래도 좀 더 빠르게 몰아쳤으면 하는 아쉬움을 버릴 수 없었다.

3악장 마디 565 또는 그 앞서 같은 음형이 나오는 마디 314에서는 관현악 합주로 이어지는 4분 음표에서 호흡이 끊기는 데다 그 간격도 일정하지 않고 절뚝거려서 오케스트라가 맞춰주느라 애를 먹었던 점이 옥에 티였다. 협연자가 활을 어떻게 쓰는가 살펴봤더니 활 아래쪽 1/3 부근에서 힘차게 긁어대다가 4분 음표에서 활 아래쪽 끝으로 폴짝 옮겨서 거의 풀 보잉(full bowing)을 한다. 이때 활을 옮기느라 호흡이 끊겼던 것이다. 상행 음형을 끝맺는 4분 음표를 과장해서 크레셴도 효과를 내려고 했던 모양으로 아마도 연주회장 음향을 생각해 좀 더 힘차게 연주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다고 본다. 마디 565는 작품의 절정에 해당하는 곳인데 호흡이 끊긴 만큼 긴장감이 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케스트라가 이때 썩 잘해주어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연주를 끝맺을 수 있었다.

3악장에서는 군데군데 반복구를 생략하는 관습이 있는데, 이를테면 마디 71-82, 마디 259-270, 마디 420-427 등은 생략할 때가 잦다. 그런데 요즘은 또 생략 없이 그대로 연주하는 게 유행인 모양이다. 역사주의 연주가 널리 힘을 얻은 것과도 관련이 있을까 싶지만, 또 알고 보면 이 유행은 그보다 역사가 오래된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음반 녹음을 하면서 다른 작품을 같이 넣고도 CD 용량을 넘어서지 않도록 연주시간을 줄이려는 목적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그런데 마하일 시모냔은 이날 반복구를 생략하고 연주했다. 왜 그랬을까?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연주는 금관의 강력한 소리와 팀파니의 묵직한 두드림을 앞세워 커다란 연주회장에 걸맞았다. 지휘자 이고리 그루프만이 러시아 사람이라 그런지 금관 악기 음색이 더욱 거칠게 느껴졌는데, 그러면서도 므라빈스키처럼 주선율이 다른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미쳐 날뛰는 게 아니라 저음을 제법 묵직하게 깔고 그것을 바탕으로 두터운 화음을 만들며 부선율을 놓치지 않는 등 뛰어난 균형감각을 보여주었다.

3악장에서 중간에 그로테스크한 면을 살리지 않고 세련되기만 하게 연주한 것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 마디 56 이후에 나오는 바순 독주에서는 마치 잔치에 갑자기 불청객이 끼어든 듯 낯설고 갑작스러운 느낌을 살리지 않고 그저 말끔하게 연주했다. 피아노(p)에서 포르테(f)로 재빨리 크레셴도를 하도록 악보에서 지시한 것을 지키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메조포르테 정도로 연주했으며 A# 음의 악센트도 살리지 않았다. 헤미올라(hemiola) 리듬 역시 매끄럽게만 연주해서 3박자 리듬의 단절에 따른 긴장감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작품을 지배하는 정서는 '달콤한 절망과 거짓된 승리'라 할 수 있다. 많은 평론가가 지적하고 차이콥스키 자신도 인정한 것처럼 이 작품이 끝맺는 방식은 솔직하지 못하고 과장되었다. 차이콥스키는 고통을 이겨내려는 의지를 작품에 담아내지 못한 듯 보이며, 그래서 이 작품은 끝내 현실을 회피해버린 작곡가의 정신적 마스터베이션이다. 교향곡 6번에 끝없는 절망과 체념이 담긴 까닭도 이것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

그런데 이날 서울시향의 연주는 사납게 몰아치면서도 감정의 기복은 지나치게 크지 않고 어느 정도 절제되고 안정되어 있었다. 피날레는 진짜 승리 또는 적어도 자신을 철저히 속이는 가짜 승리인 것처럼 느껴졌다. 병든 광기는 즐거운 축제가 되었다. 그것대로 듣기 좋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관이 그토록 사납게 울부짖었고 템포 또한 악보에 있는 메트로놈 지시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느꼈을까? 고민 끝에 나는 연주회장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연주회장 음향 특성에 따라 소리의 심리적인 거리가 매우 멀게 느껴져서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새로 짓는다던 시향 전용 연주회장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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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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