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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2일 금요일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 인터뷰

서울시립교향악단 매거진 『SPO』에 실린 글입니다.
서울시향 블로그 게시글: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627279


2019년 10월 7일 월요일, 모스크바 시각 오후 1시. 올 11월에 서울시향과 협연할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짧지 않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간단한 인사말 정도를 의도한 마지막 질문을 했을 때, 그가 뜻밖에 길고 진지한 답변을 해서 나는 놀랐다. 이때 인터뷰를 녹음하던 녹음기가 오작동해서 답변의 일부가 소실되었으나, 루간스키가 한 말의 요지는 세월이 흘러도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변함없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음악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은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가 했던 말 곳곳에서 느껴졌다. 어떤 것에 깊이 몰입하면서 심지어 영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어쩌면 러시아 사람들의 기질인 것 같다는 생각을 루간스키의 말을 들으면서 해 보았다.


Q. 지난 2005년에 분디트 웅그랑시(Bundit Ungrangsee)가 지휘한 서울시향과 쇼팽 협주곡 2번을 협연했었다.

A. 8월 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옛날 일이 아닌 듯한데 2005년이라니 놀랍다. 서울시향의 연주가 훌륭했던 기억이 나고, 그래서 이번에 프로코피예프를 협연할 일이 기대된다.

Q.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A.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노 협주곡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프로코피예프는 20세기 작곡가인데도 이 작품은 매우 낭만주의적이고 비극적이며, 드라마틱하고 힘이 넘친다. 프로코피예프는 페달을 사용한 방식 등이 매우 낭만주의적이면서 한편으로는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다루는 등 새로운 연주법을 도입했고, 이 곡에는 여러모로 현대적인 음악 어법이 19세기 음악 양식 속에 녹아 있다. 때로는 라흐마니노프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물론 프로코피예프가 이 말을 들었다면 화를 냈을 것 같다(웃음). 그러나 프로코피예프가 이 작품을 쓸 당시에 라흐마니노프 음악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며, 그 이후에는 좀 더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Q. 이 작품과 관련한 개인적인 추억이 있다면?

A. 내가 28살쯤이었을 때 이 곡을 처음 공연했다. 아마도 오스트리아 그라츠(Graz)에서 연주했던 것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지금도 연주할 때마다 내게 큰 도전이 되는 난곡이다. 처음 익힐 때 나는 27살이었는데,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이나 브람스 협주곡 2번보다 어렵다고 느꼈지만, 결국 8일 만에 악보를 외우고 ‘가슴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은 3일 만에 익혔다.) 처음 공연했을 때 연주를 꽤 잘했던 것 같고,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젊어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곡을 한국에서 연주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이번 공연이 기대된다.

Q. 이 곡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대목이 있다면?

A. 이 작품의 모든 곳을 좋아해서 한 군데만 꼽기는 어렵다. 시작 부분의 신비롭고 영적인 느낌은 프로코피예프를 제법 아는 사람도 깜짝 놀랄 만큼 뜻밖이며 매우 아름답다. 1악장 카덴차는 아마도 모든 피아노곡을 통틀어 가장 힘 있고 거대한 카덴차일 것이다. 중간 악장과 피날레 악장도 마찬가지로 훌륭하다. 4악장에서 타악기 느낌이 강한 앞부분을 지나 중간 부분에 이르면 전형적인 러시아 민요풍 선율과 그 변형이 참 아름답게 흐른다. 4악장 카덴차는 1악장만큼은 아니지만 매우 드라마틱한 클라이맥스를 이끌어낸다.

Q. 만약 프로코피예프를 실제로 만난다면 어떤 질문을 하고 싶나?

A. 프로코피예프 본인은 정말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웃음). 협주곡 2번보다는 가장 어려운 협주곡 4번이 가능한지 특히 궁금하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왼손으로만 연주하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나에게도 너무나 어려운 곡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봐야 하겠지만, 아마도 프로코피예프는 생전에 협주곡 4번을 직접 연주한 일이 없을 것이다. 만약 있다면 그 경험에 관해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프로코피예프는 체스 실력이 뛰어났으므로 체스에 관한 얘기를 들어보고도 싶다.

Q. 지휘자 안드레이 보레이코(Andrey Boreyko)와 예전에 협연한 적이 있나?

A. 그와는 여러 번 협연했다. 첫 번째는 아마도 콜마르(Colmar)에서 열렸던 스피바코프 페스티벌에서였고 그 뒤로 독일,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 곳곳에서 다시 만났다.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는 여러 번 협연했는데, 신기하기도 러시아에서 협연한 일은 없다. 3년 전 브뤼셀에서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협주곡 1번을 협연했던 일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서울시향과 협연하는 이번 공연은 유럽이 아닌 곳에서 보레이코와 협연하는 첫 번째 공연이다.

Q. 안드레이 보레이코는 어떤 지휘자라고 생각하나?

A. 훌륭한 지휘자다. 매우 열정적이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음악을 무성의하게 대하는 일이 결코 없고, 인생의 다양한 감정을 음악에 담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지휘 테크닉에 관해서는 내가 지휘자가 아니라서 별로 할 말이 없다.

Q. 세계 여러 공연장에서 공연해 왔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말한다면?

A. 하나만 꼽기는 어렵다.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빈 무지크페라인과 빈 콘체르트하우스, 뉴욕 카네기홀,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 대공연장,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니아 홀, 필하모니 드 파리 등이 특히 훌륭했다.

Q.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를 사사했다. 그는 어떤 선생님이었나?

A. 선생님이기 이전에 위대한 피아니스트였고, 모범이 되는 예술가였으며, 매우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졌고 스스로 작곡을 하기도 했다. 내가 13살, 14살, 또는 15살이었을 때 그분은 몇 주일씩 연주 여행을 다니느라 나를 혼자 내버려 두기 일쑤였고, 그런 점에서 타티아나 니콜라예바는 흔히 생각하는 선생님과는 달랐다. 뭐랄까, 예술가로서 본받아야 할 모범이면서 조언자라 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내게 해 준 조언은 몇 년 앞을 내다본 것들이었다.

Q. 니콜라예바에게 어떤 것을 배웠나?

A. 그는 음악에 관한 호기심이 많고 열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새로운 연주법을 고민하고 새로운 음반을 듣거나 새로운 악보를 공부했다. 그런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본받은 것이야말로 가장 큰 배움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Q. 현재 차이콥스키 음악원 교수이다. 그곳의 장점은 무엇인가?

A. 나는 세르게이 도렌스키(Sergei Dorensky) 교수님을 보조하는 사람이다. 도렌스키 선생님은 스타니슬라프 부닌, 데니스 마추예프 등을 가르친 훌륭한 분이다. 나는 그분을 도와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있지만, 사실 연주 여행을 다니느라 내 제자를 따로 가르치지는 못한다.

Q. 그렇다면 교수 입장에서 학교 자랑을 하기보다 그곳 학생이었을 때를 생각해 본다면?

A. 차이콥스키 음악원은 훌륭한 음악가를 양성하는 데 필요한 총체적인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곳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차이콥스키 음악원 대공연장에서 훌륭한 공연을 자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곳은 러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공연장이며, 내가 학생이었을 때에는 그곳에서 거의 매일 공연을 봤다.

Q. 한국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달라.

A.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되도록 많이 듣고,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라.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다.

Q. 취미가 무엇인가?

A. 일이 없을 때 여러 가지를 하지만, 굳이 취미라 할 만한 것들을 꼽아 보자면 우선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3개국어를 하는데(러시아어, 독일어, 영어), 물론 가장 익숙한 언어는 러시아어다. 그 밖에 탁구, 배드민턴, 체스 등을 좋아한다.

Q. 한국 팬들이 관심 가질 만한 앞으로의 일정을 알려달라.

A. 파리, 브뤼셀, 예레반, 몬트리올, 취리히, 워싱턴, 런던, 베를린 등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또 아르모니아 문디(Harmonia Mundi) 레이블로 라흐마니노프 전주곡과 베토벤 후기 소나타 등이 음반으로 발매될 예정이다.

Q. 한국 관객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A. 한국에서 공연할 때 객석의 열띤 분위기가 좋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관객들이 언제나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기를 바란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서 많은 것이 바뀌지만, 음악은 여러분이 16세일 때도, 40세일 때도, 80세가 되었을 때도 변함없이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간직할 것이다. 여러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2015년 2월 13일 금요일

펌: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비윤리적으로 행동해 왔나?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가 ☞소개한 논문입니다. 내용이 너무 길어서 번역은 엄두를 못 내겠고, 제가 요즘 너무 바빠서 틈틈이 읽는 데에만 며칠이 걸렸습니다.

이 글은 박 전 서울시향 대표 스캔들 이후 사태를 정밀 분석하면서 한국 언론의 한심한 작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글이며, 향후 약 200년간 대한민국 음악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중요하게 참고해야 할 문헌이라고 판단됩니다.

Arnold C. Nielsen라는 이름은 필명으로 추측됩니다. 아마도 클래식 음악 업계 전문가, 영어권 출신 고학력자, 그리고 한국 사회에 관한 이해도가 매우 높은 사람인 듯합니다. 누군지 짐작은 갑니다만… 크흠.

PDF 파일을 웹 문서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문단 모양 같은 게 좀 깨졌습니다. 편하게 읽으시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원문을 읽으시기 바랍니다. (원저자의 블로그로 링크 대체: 2015년 2월 18일)

http://internationalmusicbusiness.blogspot.co.uk/2015/02/readers-are-being-encouraged-to_8.html

2015년 2월 17일 고침:

이영록 님께서 전문을 번역하셨습니다. 따라서 번역본 링크로 글 내용을 대체합니다.

http://fischer.egloos.com/5758873

2012년 8월 25일 토요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실연으로 듣고 이런저런 생각

요새는 연주회 리뷰 같은 거 귀찮아서 잘 안 쓰는데, 무려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실연으로 듣고 온 만큼 짧게나마 써봅니다.

바그너 작품은 영화에 비유하자면 'B급 영화'와 닮은 데가 있습니다. 저와 이름 비슷하신 박원철 님도 생전에 비슷한 말씀을 하셨죠. 정명훈 샘은 'B급' 정서를 표현하는 일에 약점이 있는 듯합니다. 옛날에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들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트리스탄과 이졸데》 들으면서 새삼 느꼈습니다. 1막 해석이 마음에 안 들어서 적당한 표현을 생각하다가 이 생각이 들더군요. 2막과 3막은 정명훈 샘의 장점으로 단점을 충분히 가릴 수 있었고, 무엇보다 3막은 끝내주게 훌륭했습니다. 3막이 좋으면 다 좋은 거다, 하는 생각이 들 만큼이요.

서울시향은 요즘 실력이면 이쯤은 할 수 있겠다고 예상은 했지만, 무려 바그너를 제대로 연주하는 걸 실제로 들으니까 이건 뭐… ㅠ.ㅠ

잉글리시 호른 연주하셨던 분, 어디서 데려온 누군지 모르겠지만, 엄청나시더군요. 이분 어떻게 서울시향에 주저앉혀 주시면…^^;

그리고 알렉상드르 바티 본좌. 말이 필요 없습니다. 바그네리안이 아니면 잘 모를 대목만 하나 설명하자면, 3막에서 배가 보이고 뿔피리 소리 바뀌는 대목은 본디 잉글리시 호른이 연주해야 합니다. 극 중에서 목동이 연주하는 그 악기거든요. 바그너는 이 대목을 '트럼펫처럼' 연주하라고 했는데, 아예 트럼펫으로 연주하기도 합니다. 저도 그게 낫다고 생각하고요. 어제는 바티 본좌가 발코니에서 이 대목을 연주했죠. 어제 연주한 악기는 일반적인 트럼펫이 아니고, 서울시향 페이스북 보니까 무슨 목제 트럼펫(?)인 모양이던데, 그래서 트럼펫 주제에 '식물성' 음색이 나더군요. 이 대목에 아주 딱이었습니다.

가수들은 브랑게네 말고는 다들 조금씩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중간 휴식이 너무 짧았던 탓이 컸지 싶네요. 1막에서는 '페이스 조절'하느라 힘을 아끼는 티가 났고, 1시간 가까이 쉴 새 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무지막지한(!) 2막을 지나 3막으로 가니까 트리스탄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이더군요. 4시쯤에 시작해서 바이로이트식으로 중간 휴식 1시간쯤 넣으면 얼마나 좋아요. 예술의 전당 님하들아, 대관 어떻게 좀!

그런데 그것까지 고려해도 트리스탄은 좀 별로였습니다. 다 죽어가는 트리스탄 목소리가 너무 멀쩡해요. 정작 질러 줄때는 힘들어하면서 말이죠. 이졸데도 딕션이 별로. 무엇보다 2막에서 "Frau Minne will"(사랑의 여신의 의지다)를 대충 얼버무린 대목은 용서가 안 됩니다. 쿠르베날은 실력이 대단한 건 알겠는데, 그 좋은 실력을 제대로 못(안) 뽑아낸 듯. 트위터 보니 몸 상태가 최상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한국에만 오면 갑자기 아픈 가수가 한둘이 아니라 뭐…-_-; 마르케 왕은 잘하기는 했지만, 연광철 샘을 비롯해서 훨씬 잘하는 한국인 가수가 여럿이라… 1막 1장에 나오는 선원은 가사의 표면만 읽고 리트처럼 부르더군요. 맥락 다 무시하고 가사의 표면만 보면 잘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전체 드라마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이 대목이 이렇게 되고 맙니다.

뭐, 무려 《트리스탄과 이졸데》였다는 점을 헤아리고 나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내년에는 니나 스템메, 린다 왓슨, 로버트 딘 스미스, 스티븐 굴드, 뭐 이런 분들 좀… 그래도 서울시향이 국내 오케스트라 중에 돈 제일 많잖아요? ^^;


나중에 붙임:

존 맥 매스터(트리스탄), 이름가르트 빌스마이어(이졸데), 예카테리나 구바노바 (브랑게네), 크리스토퍼 몰트먼(쿠르베날), 미하일 페트렌코(마르케 왕), 외

Soloists : John Mac Master(Tristan), Irmgard Vilsmaier(Isolde), Ekaterina Gubanova(Brangane), Christopher Maltman(Kurwenal), Mikhail Petrenko(Marke)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2009.12.30. 베토벤 교향곡 9번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2월 30일(수)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 정명훈
독창 : 이명주(소프라노) 김선정(메조소프라노) 김석철(테너) 임채준(베이스)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 d단조, 작품 125
Beethoven, Symphony No. 9 in d minor, Op.125 "Choral"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정명훈서울시향을 이끈 뒤로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는 정기연주회로는 이번이 세 번째다. 연말에 이 곡을 연주하는 일이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곡을 해마다 연주하면서 그때마다 눈에 띄게 나아진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반가운 마음이 훨씬 크다. 지난해와 견주어 수석급 연주자는 거의 바뀌지 않았으나 합주력이 두루 늘었으며, 지난해까지만 해도 지휘자가 뜻한 바를 악단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날에는 지휘자의 해석이 아닌 그럴싸한 음악이 귀를 사로잡았다.

정명훈이 보여준 해석은 거의 그대로였다. 1악장 코다에 들어서며 고집저음(ostinato)이 나타나는 대목(마디 513)에서 긴 호흡으로 아첼레란도를 썼고, 4악장 처음과 2악장 둘째 주제(마디 97)에서 악보에 없는 트럼펫/호른 선율을 덧붙이는 관례를 따르지 않고 악보 그대로 연주한 일도 마찬가지였다. 3악장 마디 133에서 제2 바이올린이 악보에서 지시한 pp보다 세게 연주한 것도 비슷했는데, 다만 옛날에는 ff로 들렸으나 이날에는 mf쯤으로 들렸다. (객석 위치가 달라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악기 배치는 제법 달라졌다. 합창단을 합창석이 아닌 무대 위에 두고 팀파니를 오른쪽, 나머지 타악기를 무대 왼쪽 끝으로 몰았으며 트럼펫은 트롬본 오른쪽으로 두었다. 이 모든 일은 바로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사이에 있는 독창자를 배려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과 어우러지는 소리를 내려면 독창자를 그 사이에 두어야 옳다. 그러나 타악기와 트럼펫 등이 무대 뒷벽 쪽 음향 고약하기로 소문난 예술의 전당과 만나 독창자를 헷갈리게 하니 문제다. 바로 지난해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독창자는 뒤에 투명 반사판을 쓰고도 모자라 손을 귀에 대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나 끝내 4중창에서 화음이 자꾸만 어긋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악기 배치를 이처럼 바꾸니 마법이 일어났다. Deine Zauber binden wieder! 글쓴이는 실연을 들을 때면 처음부터 기대를 접곤 하는 4중창에서 뜻하지 않게 균형잡힌 소리를 듣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때 오케스트라는 음량을 크게 줄이기까지 했으며, 그런 가운데 4중창과 나란히 울리는 플루트 소리가 멋졌다. 다만, 이어지는 마디 305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좀 더 소리를 키웠으면 싶기도 했다.

테너 김석철은 지난 4월 말러 《대지의 노래》를 TIMF 앙상블 협연으로 멋지게 불러 글쓴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김석철은 목소리가 크고 시원시원하며, 무엇보다 리듬이 굼뜨지 않고 단단해서 앞날이 크게 기대되는 가수다. 이번 연주회도 매우 훌륭했으며, 빠른 리듬이나 화려한 멜리스마(한 음절에 많은 장식음)도 야무지게 다스렸다.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베이스나 바리톤은 많아도 훌륭한 테너는 드물어서 새삼 보물이 나타난 듯한 생각이 든다. 여린 소리를 잘 못 내고 음정이 살짝 흔들리곤 하는 단점을 이겨낸다면 세계를 뒤흔드는 가수가 될지도 모르니 기대하시라.

베이스 임채준 또한 단단한 리듬이 돋보였다. 이 곡에서 베이스(바리톤) 독창은 음역도 넓은데다가 긴 호흡으로 멜리스마를 풀어내야 해서 몹시 어려운 곡으로 꼽힌다. 그런데 임채준은 놀랍도록 깔끔한 리듬을 들려주었으며, 굳이 더 욕심을 내자면 목소리가 좀 더 묵직했으면 싶기도 했다. 또 딕션(diction)이 제법 훌륭했으나 이탈리아어 발음이 섞여 있었는데, 이를테면 'Freude'(환희)를 단모음으로 쪼개서 소리 내곤 했다.

소프라노 이명주는 맑게 빛나는 목소리로 4중창 선율을 잘 이끌었으며, 더욱이 여린 소리에서 남다른 솜씨를 뽐냈다. 목소리가 이토록 고우니 말러 교향곡 8번 제2 소프라노(그레첸)를 맡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는데, 까다로운 멜리스마에서 리듬이 살짝 늘어지는 단점을 이겨내고 고음에서도 여린 소리를 지켜낼 수 있다면 아주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조소프라노(알토) 김선정은 다른 사람보다 작은 역할이나마 균형잡힌 화음을 깔끔하게 잘 만들었다.

지난 22일 연주회 때 인상 깊었던 트럼펫 수석이 이번에도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고, 악기 특성 탓에 실수가 잦게 마련인 호른도 이날따라 현 소리와 맛깔스럽게 어우러지곤 했다. 더욱이 1악장 마디 139 또는 같은 음형이 나오는 마디 408에서 호른이 딱 알맞은 음량으로 리듬을 살린 대목이 매우 멋졌다.

이날 가장 멋졌던 곳 한 군데만 꼽자면 4악장 마디 92부터 마디 164까지였다. 첼로·콘트라베이스 레치타티보가 막 끝나고 합창 선율을 연주하면서 차근차근 소리를 키워가다가 마침내 금관이 선율을 받는 그 대목까지다. 이곳에서 이토록 긴 호흡으로 자연스러운 크레셴도를 이끌어낸 정명훈도 대단하고, 그 소리를 만들어낸 서울시향도 새삼 대단하다.

2009년 9월 4일 금요일

2009.03.05.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 피닌 콜린즈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3월 5일(목)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Finghin Collins (Pf)

Borodin, Polovtsian Dances
Mozart, Piano Concerto No.24 in C minor, K.491
Stravinsky, The Rite of Spring (Le Sacre du Printemps)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에 감정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며, 어둠을 뚫고 빛을 찾아가는 '베토벤스러운' 믿음과 그 얼개를 이루는 낭만주의 기능화성을 싫어했다. 스트라빈스키 음악에 조성이 없거나 희미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얼핏 보면 쇤베르크로 대표되는 12음 음악과 닮았으나 바탕에 깔린 마음가짐은 거꾸로다. 쇤베르크 음악은 조성과 화성이 발전 끝에 해체하고서 맺은 열매이지만, 스트라빈스키 음악은 목표를 향해 발전한다는 오랜 가치관을 뿌리째 뽑아낸 자리에서 자라난 새싹이다. 요즘 눈으로 보면 모더니즘이 꽃피기에 앞서 포스트모던한 생각을 한 셈인데, 그 때문에 스트라빈스키는 모더니스트들에게 모진 말을 들어야 했으며, 이를테면 아도르노는 "그는 지붕을 뜯어내 버렸고, 그래서 이제 그의 대머리 위로 빗물이 흐른다."라고 했다.

낭만주의를 물리치면서도 모더니즘과도 거리를 둔 음악은 어떠해야 할까? <봄의 제전>에서는 현대적인 음향과 원시적인 울림이라는 '남남'을 얄궂게 엮어놓은 엉뚱함과 그 안에 담긴 비선형성(non-linearity)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또 스트라빈스키가 직접 지휘한 녹음이 남아 있어 이 작품을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낱낱이 알 수 있다. 러시아 교회 종소리를 닮아 이곳저곳에서 두서없이 튀어나오는 스트라빈스키 폴리포니, 비브라토를 되도록 쓰지 않아 몹시 메마른 음색, 원시 부족이 멋대로 노래하는 듯 고약한 선율과 화음이 연주에서 잘 살아난다.

그러나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고 했다. 많은 지휘자가 스트라빈스키를 배신해 왔으며 그것이 옳지 않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카라얀은 두텁고 기름진 비브라토로 잔뜩 멋을 내어 낭만주의와 닿아 있는 녹음을 남겼고(스트라빈스키는 몹시 화를 냈다고 한다.), 불레즈는 마치 총열주의 음악인 양 차갑고 딱딱한 질서를 연주에 담아냈다. 정명훈은 이럴 때 보통 중용을 지키는데, 카라얀을 '우파'라 하고 불레즈를 '좌파'라 한다면 정명훈은 중도우파이며 아바도와 살로넨 사이 어딘가에 있다.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은 '스트라빈스키 폴리포니'를 날것 그대로 살리기보다는 주선율을 뚜렷이 살려 쏟아지는 선율과 리듬 속에서 관객이 어지럼증을 느끼지 않도록 했다. 현악기는 이를테면 1부 4곡 '봄의 론도'나 2부 2곡 '젊은이의 신비한 모임'에서도 음색이 너무 까슬까슬하지 않도록 비브라토를 알맞게 썼고, 1부 4곡 마디 331에서 비올라가 비브라토를 아낀 일처럼 드물게 메마른 음색을 살렸다. 2부 서곡에서는 제2 바이올린 플래절렛(개방현 하모닉스) 화음이 너무 고약하게 들리지 않게끔 소리를 줄였고, 하모닉스 주법으로 연주하는 독주 바이올린은 글리산도를 되도록 얌전하게 갈무리했다.

타악기는 너무 앞으로 나서지 않고 다른 악기 소리에 감칠맛을 더할 때가 잦았고, 이를테면 살로넨 녹음에서 큰북이 매우 큰 소리를 내는 1부 5곡 '적대관계에 있는 부족들의 의식' 마디 439에서도 악보에서 지시한 '메조포르테'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러나 꼭 필요한 곳에서는 연주회장이 무너질 듯한 소리를 터트리기도 했다. 1부 마지막 네 마디에서는 큰북이 무시무시한 크레셴도를 들려주었고, 2부 3곡 '선택된 처녀에게 영광을'에 들어서기 바로 앞서 나오는 4분음 11연타 때에는 큰북과 팀파니가 현 소리를 누르고 마구 두드려댔다. 2부 끝 곡 '희생의 춤'에서는 타악기끼리 어질어질한 폴리리듬을 주고받았다.

관악기 연주자들도 저마다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자주 보기 어려운 악기인 알토 플루트와 베이스 클라리넷 따위도 곳곳에서 돋보였다. 베이스 클라리넷은 이 곡에서 은근히 멋있게 나와서 이를테면 1부 서곡에서 좀 더 튀는 연주를 들려주었으면 싶었으나 그냥 다른 악기와 알맞게 어울려서 조금은 아쉬웠다. 바순은 다른 악기와 쉽게 섞여버리는 악기 특성 탓에 좀처럼 눈길을 얻기 어려운데 이날 곡 첫머리부터 곽정선 수석대행이 멋진 독주를 들려주었다. 문득 시향 수석 연주자들만 놓고 보면 이제는 웬만한 유럽 악단과 견주어도 크게 뒤지지 않으리라는 생각도 들었으며, 유럽으로 연주 여행을 가겠다더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을 협연한 피닌 콜린스는 모차르트치고는 페달을 제법 많이 쓰는 듯했고, 모차르트보다는 초기 베토벤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덴차는 아예 19세기 음악이라 해도 믿길 만했다. 이 작품이 모차르트 작품 가운데서도 파토스를 꽤 겉으로 들어내는 까닭에 이런 연주도 그럴싸하다 싶었다. 그런가 하면 연주자 나이에 어울리는 풋풋한 젊음과 조금 나쁘게 말하면 치기가 이곳저곳에서 느껴지기도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3악장 세 번째 변주(마디 65)였는데, 첫머리에 나오는 뒤집힌 c단조 화음을 사납게 풀어낼 줄 알았더니 뜻밖에 화음보다 선율선을 살려 여린 느낌으로 가다가 마디 81에 이르면서 좀 더 화음을 살렸다. 앙코르로 슈만 곡을 듣고 나니 모차르트베토벤도 아닌 슈만에 가장 어울리는 연주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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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1일 월요일

2008.06.25. 슈베르트 로자문데 서곡 / 호프마이스터 비올라 협주곡 / 다케미쓰 영화음악 / 슈베르트 교향곡 4번 - 유리 바시메트 / 서울시향

2008년 6월 25일(수)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Yuri Bashmet
협연자 : Yuri Bashmet (va)

Schubert, Rosamunde Overture
Hoffmeister, Viola Concerto in D
Takemitsu, Three Film Scores for Strings : "Music of Training and Rest", "Funeral Music", "Waltz"
Schubert, Symphony No. 4 in c, D. 417 "Tragic"



화성법이나 대위법 같은 음악 이론을 다룰 때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말 번역어에 '법'자를 붙여 쓰지만 그것은 법칙이 아니다. 화성 진행 규칙은 성경에 기록된 것도 아니고 전설로 내려오는 것도 아니며 음악가 협회에서 신중한 논의를 거쳐 만들어 못박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름난 작곡가가 쓴 작품들을 음악학자가 두루 살펴보고 공통점을 뽑아 정리한 것일 뿐이다. 이론보다 작품이 먼저라는 말이다. 바흐나 모차르트가 쓴 작품에서도 '규칙'에 어긋나는 곳이 드물지 않게 있으며, 알고 보면 '규칙'을 어긴 곳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이 피어나곤 한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규칙에만 매달린다면 낡아빠진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

18세기 만하임 음악 전문가 이성률 박사는 카를 요제프 토에스키(C. J. Toeschi)의 실내악을 다룬 논문을 발표하면서 토에스키 작품에 지긋지긋하게 나오는 이른바 갈랑 종지(cadence galante)는 "귀에 한 번 꽂혀버리면 그 뒤로는 고문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서울시향이 연주하는 호프마이스터 비올라 협주곡 D 장조를 듣던 나는 갈랑 종지를 비롯한 틀에 박힌 기법들에 진저리를 치며 이성률 박사가 했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대가 연주자 유리 바시메트의 테크닉이 워낙 뛰어나서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작품이 비올라 연주자들에게 주요 레퍼토리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비올라 작품이 얼마나 궁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20세기에는 좋은 비올라 작품이 많이 나왔는데 이왕이면 버르토크, 슈니트케, 또는 구바이둘리나의 비올라 협주곡을 연주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약 바시메트가 한국 관객 수준을 얕잡아보고 현대음악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 여긴 것이라면 화낼 일이다. 이날 연주한 <현을 위한 세 개의 영화음악>만해도 그렇다. 다케미쓰는 이름난 현대음악 작곡가이지만 하필 이 작품은 현대음악이라 부르기 민망한 그저 '영화음악'이다. 여보세요, 한국 관객이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연주회도 듣고 하면서 얼마나 현대음악에 단련되어 있는데!

슈베르트의 로자문데 서곡과 교향곡 4번은 호프마이스터, 다케미쓰와 마찬가지로 '지휘자' 바시메트에게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바시메트는 비올라 연주자답게 서울시향의 현악기 소리를 예쁘게 다듬는 솜씨가 남달라서 그윽한 파스텔 빛깔 현 소리를 뽐냈다.

그러나 예쁜 소리만으로는 그다지 훌륭한 연주가 되지 못했다. 주선율만이 너무 두드러져 평면적인 음악이 되었고, 관과 현과 팀파니가 어쩐지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교향곡 4번 1악장에서 늘임표(fermata)는 있는지 없는지 표시가 안 났고 '매우 느리게(Adagio molto)'와 '빠르고 활기차게(Allegro vivace)'가 그다지 뚜렷한 차이가 없는 등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했다. 악보에 따로 지시가 없을 때에는 템포가 거의 바뀌지도 않았는데, 그렇다고 '돌아온 토스카니니'같은 확신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이건 그냥 나이브(naive)한 거다. 변함없는 템포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적어도 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무궁동(Perpetuum Mobile)이 주선율 뒤에 숨어서는 안 되었다.

1악장과 4악장 도돌이표를 따르지 않고 생략해버린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요즘 유행하는 역사주의 연주 경향을 따른 것도 아니었다. 슈베르트 음악에서 반복은 그냥 관습에 따르는 단순 반복이 아니라 긴장과 갈등을 되먹여 키우는 과정이며, 특히 후기 작품에서는 음악 칼럼니스트 이정엽의 말을 빌자면 "고독의 자가증식"이다. 역사주의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더라도 슈베르트의 반복 지시는 웬만하면 지키는 것이 좋다고 본다.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 했으니 대가 연주자의 교향곡 해석도 평범하지는 않을 것인데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아마도 지휘 테크닉이 모자란 탓이 아닐까 싶다. 지휘봉을 들지 않고 맨손으로 지휘한 것은 모자란 테크닉을 감추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또 박자를 놓친 듯 손으로 동그라미를 자꾸 그려대었던 것은 세모, 네모를 그리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휘자가 시향 단원들과 손짓과 눈빛과 표정으로 대화한다는 느낌이 도무지 와 닿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단순한 템포로도 이따금 박자가 어긋나곤 했다. 교향곡 4번 1악장 서주에서 제1 주제로 넘어갈 때(마디 29) 지휘자가 예비박을 헷갈리기 딱 좋도록 아리송하게 주어서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버벅거리며 '만득이 사운드'를 냈던 것은 그 가운데서도 대형 사고에 가까웠다. 이런 실수는 지휘 전공 학부생도 하지 않는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같은 초일류 악단은 지휘자가 마음에 안 들면 알아서 지시한 것보다 더 아름답게 연주해버리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국내 오케스트라는 그런 수준이 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어서 지휘자 능력에 따라 연주 수준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이른바 '말러 교향곡 2번 사건'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아주는 어떤 오케스트라가 아마추어이지만 이름난 음악학자이자 말러 교향곡 2번 전문 지휘자를 모셔다 말러 교향곡 2번을 연주했다. 결과는 끔찍했다. 연주자들은 마치 시장바닥인 양 꽥꽥거렸고 나중에는 팀파니마저 박자를 놓치고 헤매기도 했다. 작품 해석이 아무리 훌륭해도 지휘 솜씨가 엉터리라면 이렇게 된다.

유리 바시메트는 비올라 연주자로 그동안 쌓아온 어마어마한 이름값을 이용해 손쉽게 지휘자 수업을 받으려는 것은 아닌가. 물론 가진 것을 써먹겠다는데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러나 관객으로 하여금 연주가 아닌 연주자 이름에 박수 치게 만든다면 그것은 관객을 속이는 짓이므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진심으로 훌륭한 지휘자가 되고 싶다면 콘서바토리로 가서 차근차근 수업을 받는 게 어떨까. 무엇보다 그 엉성한 지휘 동작부터 좀 고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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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0일 일요일

2008.04.16.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 교향곡 5번 - 미하일 시모냔 / 이고리 그루프만 / 서울시향

2008년 4월 16일(수)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이고르 그루프만
협연자 : 미하일 시모냔(바이올린)

Shostakovich, Festive Overture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Op. 35
Tchaikovsky, Symphony No. 5 in c, Op. 64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유명한 외국 연주회장의 1.5배에서 2배 규모로 연주회장치고는 비정상적으로 크다. 음향이 나쁘다는 원성이 큰 것도 주로 이 때문이다. 연주회장 음향은 연주자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데, 거대한 연주회장은 특히 협주곡을 연주할 때 협연자에게 크나큰 고난으로 다가온다. 이럴 때 협연자는 보통 셋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큰 장소에 맞는 큰 소리를 내려고 무리하다가 크기만 할 뿐 듣기 싫은 소리를 내버리거나, 그 반대로 모기 소리가 나든 말든 평소대로 연주해버리거나, 또는 갑자기 아파서 연주를 할 수 없게 되거나. 그러나 솜씨 있는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연주자가 예술가로서 어떤 자세를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시험대가 될 수도 있겠다.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미하일 시모냔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낸 훌륭한 연주자였다. 큰 소리를 내려고 활놀림을 힘차게 하면서도 연주를 망칠 만큼 무리하지는 않고 중용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힘을 적게 들이면서 큰 소리를 내는 '보잉 내공'도 꽤 훌륭했다. 솜씨 좋은 연주자일수록 활이 현에 찰싹 달라붙는 듯 단단한 소리를 잘 내는데, 시모냔은 바로 이 '찰싹 달라붙는 소리'를 곧잘 냈다. 다만, 큰 소리 내는 데 신경 쓰는 만큼 군데군데 삐걱거리는 곳도 있었는데 이를테면 1악장 카덴차 직전에 음정이 꽤 크게 어긋났다.

1악장 템포를 느릿하게 잡아서 긴장감이 조금 떨어졌던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주회장 음향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템포를 조금 늦추면 실수 없이 큰 소리를 내기 쉽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1악장 독주 부분이 몹시 길고 쉬는 곳도 잘 없어서 마라톤 뛰듯이 페이스 조절을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 다만, 1악장 마지막에 D 음을 반복하며 긴장감을 높여갈 때에는 그래도 좀 더 빠르게 몰아쳤으면 하는 아쉬움을 버릴 수 없었다.

3악장 마디 565 또는 그 앞서 같은 음형이 나오는 마디 314에서는 관현악 합주로 이어지는 4분 음표에서 호흡이 끊기는 데다 그 간격도 일정하지 않고 절뚝거려서 오케스트라가 맞춰주느라 애를 먹었던 점이 옥에 티였다. 협연자가 활을 어떻게 쓰는가 살펴봤더니 활 아래쪽 1/3 부근에서 힘차게 긁어대다가 4분 음표에서 활 아래쪽 끝으로 폴짝 옮겨서 거의 풀 보잉(full bowing)을 한다. 이때 활을 옮기느라 호흡이 끊겼던 것이다. 상행 음형을 끝맺는 4분 음표를 과장해서 크레셴도 효과를 내려고 했던 모양으로 아마도 연주회장 음향을 생각해 좀 더 힘차게 연주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다고 본다. 마디 565는 작품의 절정에 해당하는 곳인데 호흡이 끊긴 만큼 긴장감이 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케스트라가 이때 썩 잘해주어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연주를 끝맺을 수 있었다.

3악장에서는 군데군데 반복구를 생략하는 관습이 있는데, 이를테면 마디 71-82, 마디 259-270, 마디 420-427 등은 생략할 때가 잦다. 그런데 요즘은 또 생략 없이 그대로 연주하는 게 유행인 모양이다. 역사주의 연주가 널리 힘을 얻은 것과도 관련이 있을까 싶지만, 또 알고 보면 이 유행은 그보다 역사가 오래된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음반 녹음을 하면서 다른 작품을 같이 넣고도 CD 용량을 넘어서지 않도록 연주시간을 줄이려는 목적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그런데 마하일 시모냔은 이날 반복구를 생략하고 연주했다. 왜 그랬을까?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연주는 금관의 강력한 소리와 팀파니의 묵직한 두드림을 앞세워 커다란 연주회장에 걸맞았다. 지휘자 이고리 그루프만이 러시아 사람이라 그런지 금관 악기 음색이 더욱 거칠게 느껴졌는데, 그러면서도 므라빈스키처럼 주선율이 다른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미쳐 날뛰는 게 아니라 저음을 제법 묵직하게 깔고 그것을 바탕으로 두터운 화음을 만들며 부선율을 놓치지 않는 등 뛰어난 균형감각을 보여주었다.

3악장에서 중간에 그로테스크한 면을 살리지 않고 세련되기만 하게 연주한 것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 마디 56 이후에 나오는 바순 독주에서는 마치 잔치에 갑자기 불청객이 끼어든 듯 낯설고 갑작스러운 느낌을 살리지 않고 그저 말끔하게 연주했다. 피아노(p)에서 포르테(f)로 재빨리 크레셴도를 하도록 악보에서 지시한 것을 지키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메조포르테 정도로 연주했으며 A# 음의 악센트도 살리지 않았다. 헤미올라(hemiola) 리듬 역시 매끄럽게만 연주해서 3박자 리듬의 단절에 따른 긴장감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작품을 지배하는 정서는 '달콤한 절망과 거짓된 승리'라 할 수 있다. 많은 평론가가 지적하고 차이콥스키 자신도 인정한 것처럼 이 작품이 끝맺는 방식은 솔직하지 못하고 과장되었다. 차이콥스키는 고통을 이겨내려는 의지를 작품에 담아내지 못한 듯 보이며, 그래서 이 작품은 끝내 현실을 회피해버린 작곡가의 정신적 마스터베이션이다. 교향곡 6번에 끝없는 절망과 체념이 담긴 까닭도 이것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

그런데 이날 서울시향의 연주는 사납게 몰아치면서도 감정의 기복은 지나치게 크지 않고 어느 정도 절제되고 안정되어 있었다. 피날레는 진짜 승리 또는 적어도 자신을 철저히 속이는 가짜 승리인 것처럼 느껴졌다. 병든 광기는 즐거운 축제가 되었다. 그것대로 듣기 좋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관이 그토록 사납게 울부짖었고 템포 또한 악보에 있는 메트로놈 지시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느꼈을까? 고민 끝에 나는 연주회장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연주회장 음향 특성에 따라 소리의 심리적인 거리가 매우 멀게 느껴져서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새로 짓는다던 시향 전용 연주회장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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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9일 토요일

2008.02.29. 메시앙 투랑갈릴라 교향곡 - 폴 김 / 하라다 다카시 / 정명훈 / 서울시향

2008년 2월 29일(금)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폴 김 (피아노), 하라다 다카시 (옹드 마르트노)

Messiaen, Turangalila-symphonie



내가 그동안 정명훈에게 갖고 있던 불만 하나는 그가 지휘하는 서울시향 연주회 프로그램에 현대음악을 거의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괜한 투정이기는 하다. 그동안 베토벤과 브람스를 거치며 단원들 기본기 쌓기 바빴고, 아직도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현대음악은 객원 지휘자들이 드물지 않게 연주하고 있고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시리즈도 있다. 그런데도 정명훈 지휘로 현대음악을 들어보고픈 욕심을 버리지 못하던 가운데, 마침내 때를 만났다. 올해가 메시앙 탄생 100주년, 정명훈이야말로 작곡가 본인에게 극찬을 받은 메시앙 전문가가 아니던가! 정명훈 못지않게 메시앙 전문가로 이름 높은 피아니스트 폴 김과 옹드마르트노(Ondes Martenot) 전문 연주자 하라다 다카시도 데려왔다. '정명훈 효과'에 힘입어 <투랑갈릴라 교향곡> 한 곡만 연주한다는데도 연주회장은 꽉꽉 찼다.

그리고 무대를 가득 메운 타악기들. <투랑갈릴라 교향곡>은 독주 악기가 둘이나 있는 작품이지만, 이날 진짜 주인공은 타악기 연주자들이었다. 시향 타악기 주자들은 실력이 정말 뛰어나다.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는 내가 전에도 몇 번 지면을 빌어 칭찬한 적이 있거니와 다른 사람들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팀파니 말고는 고전 레퍼토리에 타악기가 잘 쓰이지 않아서 실력 발휘할 기회가 자주 없었다가 드디어 이날 솜씨를 맘껏 뽐냈다. <투랑갈릴라 교향곡>은 현대음악 중에서도 타악기가 많이 쓰인 작품이다. 어지간한 마니아들도 낯설어할 만한 악기도 더러 쓰였으니 이참에 악기 이름부터 익혀보자.

객석에서 봤을 때 피아노 왼쪽에 있던 풍금(Harmonium) 닮았으면서 소리는 카랑카랑한 악기는 첼레스타(Celesta)다. 그 왼쪽에 있던 실로폰 닮은 악기 둘은 글로켄슈필(Glockenspiel)인데, 실로폰이나 마림바(Marimba)와는 달리 나무막대가 아닌 쇠막대로 되어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쓰던 장난감 실로폰은 사실은 글로켄슈필이다.) 무대 맨 왼쪽에 있던 실로폰 닮았으면서 '웅웅웅' 하는 소리를 내던 악기는 비브라폰(Vibraphone)이다. 비브라폰 바로 뒤에 있던 길쭉한 쇠막대는 차임(Chime; Tubular bell)이다.

오케스트라 맨 뒤에 있던 까만 볼링 공에 막대기를 꽂은 듯한 모양에 막대를 잡고 흔들어 '쌕쌕'하는 소리를 내던 악기는 마라카스(Maracas)다. 그 옆에 나무토막을 채로 때려서 소리 내던 악기는 말 그대로 우드블록(Woodblock)이고, 6악장에서 우드블록 대신 더 깊고 작은 소리를 내던 악기는 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목탁(Temple block)이다.

그밖에 심벌즈, 트라이앵글, 탬버린, 작은북(Snare drum), 큰북이 있었고, 9악장에 나오던 통이 긴 북은 탕부랭(Tambourin provençal)이다. 심벌즈를 눕혀놓은 악기들은 크기가 작은 순으로 터키 심벌즈(Turkish cymbals), 서스펜디드 심벌즈(suspended cymbals), 중국 심벌즈(China cymbals)다. 줄에 매달아 놓고 채로 때리면 '구아앙!'하는 매우 큰 소리를 내는 징 닮은 악기는 탐탐(Tam-tam)이다. 북 종류인 톰톰(Tom-tom)과 전혀 다른 악기이니 주의할 것.

사람들 눈길을 가장 많이 끌었을 옹드마르트노(Ondes Martenot)는 전자악기답지 않게 '클래식하게' 생겨서 더욱 신기했다. 하라다 다카시의 연주는 음반으로 듣던 다른 연주자들보다 '아날로그하게' 들리기도 했다. 왼손이 떨릴 때마다 음색이 어찌 그리 다채롭게 바뀌는지!

그런가 하면 폴 김의 피아노는 어찌 들으면 전자악기같은 음색이었다. 작곡가가 기계적이고 타악기적인 음형을 잔뜩 써놓았기 때문이겠는데, 또 어찌 들으면 마림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특히 6악장에서 피아노가 '또랑또랑'하고 글로켄슈필과 첼레스타가 '까랑까랑'하고 비브라폰이 '웅웅웅'하면서 세 가지 음색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하늘나라 꽃밭이 눈에 그려질 듯했다.

타악기 주자 못지않게 빛났던 조연은 금관 연주자들이었다. 금관이 무르고 실수가 잦은 게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이기에 나는 더더욱 이날 훌륭한 연주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특히 트럼펫 수석이 금가루 똑똑 떨어질 듯 빛나는 소리로 힘찬 연주를 들려준 것이 마음에 쏙 들었다. 다만, 욕심을 부리자면 트럼펫이 섬세한 맛을 조금만 더 살렸으면 싶었다. 이를테면 1악장 마디 59에서 트럼펫 세 대가 빠른 반복 음형을 이어가는 부분은 포르티시모(ff)에서 피아노(p)로 재빨리 바뀌면서 마치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잠자리가 갑자기 날개를 파르르 떨며 멀리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재미있는데, 이날 연주자들은 악기 사이에 음을 이어받는 것은 부드러웠으나 제1 트럼펫이 포르티시모가 아닌 메조포르테(mf) 정도로 시작한 탓에 '깜짝 효과'와 원근감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다. 피아노가 어택(attack)을 제대로 못 맞춰주는 바람에 마치 트럼펫이 반 박자 빨리 들어간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다른 연주자들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했다. 작품이 작품이니만큼 실수가 쌓이면서 조마조마한 순간이 더러 있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웬걸, 작품에 어지간히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실수를 찾아낼 수 없을 만큼 완벽에 가까운 연주였다.

정명훈의 해석은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음반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5악장과 10악장 마지막 음의 늘임표(fermata)를 몹시 과장하고 심지어 어마어마한 크레셴도를 준 것이 재미있었다. 연주회장이 떠나가도록 불고 긁고 두드려대는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이런 과장은 자칫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어 위험하지만, 이날은 연주회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업고 큰 효과를 거두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연주자가 이런 '오버 액션'을 할 때에는 '클래식' 음악 연주회랍시고 점잖게만 있을 게 아니라 대중음악 연주회처럼 음악이 덜 끝났어도 박수와 환호를 보내면 어떨까. 너무 발칙한 생각인가?

연주가 끝나고 정명훈이 인사하면서 앞자리에 앉아있던 어린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아이가 고전음악을 어려워하거나 고리타분하게 생각한다면 현대음악을 먼저 들려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편견이 없어서 현대음악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단, 가정용 오디오로는 현대음악의 참맛을 알기 어려우므로 연주회장에 직접 데려가는 게 좋다.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특집인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연주회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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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8일 금요일

2007.12.27.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 교향곡 4번 - 넬손 프레이리 / 정명훈 / 서울시향

2007년 12월 27일(목)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넬손 프레이리 (Nelson Freire, 피아노)

Brahms : Piano Concerto No. 2 in Bb Major, Op.83 (44')
Brahms : Symphony No. 4 in e minor, Op.98 (39')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협주곡 1번과 마찬가지로 협주곡이라기보다는 교향곡에 가깝다. 이 때문에 협연자는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음량에 맞서 일단 살아남아야 하며, 연주 테크닉 또한 매우 뛰어나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브람스 음악이 가진 치밀하고 논리적인 구성을 풍부한 감성으로 풀어내는 일도 만만치 않다. 이처럼 연주자가 삼중고를 떠안아야 하는 까닭에 매우 유명한 작품인데도 국내에서 연주되는 일이 거의 없다.

넬손 프레이리의 피아노 연주는 여러모로 지난 5월 18일에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개리 그래프만을 떠올리게 했다. 커다란 밑그림이나 악상의 자연스러운 흐름, 다양하고 적절한 음색 등은 훌륭했으며, 이 점에서는 지난 2005년 11월에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여 음반으로도 나온 명연과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실수가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리듬이 곧잘 망가지곤 하는 것이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다 싶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손가락 골절 때문에 제 실력을 내지 못했단다.

아픈 손가락으로 이렇게까지 연주해낸 것을 보면 역시 일류 연주자라 하겠지만, 아무래도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뒷감당하느라 고생이었다. 오케스트라 소리를 되도록 작게 내려고 벌서는 듯 연주하기 일쑤였고, 어택(attack)을 죽이고 여린 음에 크레셴도를 주는 식으로 협연자를 배려하기도 했다. 피아노 리듬이 망가질 때마다 정명훈이 재빨리 수습하려고는 했으나 서울시향은 아직 그런 돌발사태에 재빨리 대처하는 능력은 충분히 기르지 못한 모양이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발목을 잡기도 했다. 3악장 첼로 독주가 매우 뛰어났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출신 객원이었다고 한다.

앙코르로 연주한 글룩의 "멜로디"(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가운데 '정령들의 춤'을 스감바티(Giovanni Sgambati)가 피아노곡으로 편곡)는 여린 음만으로 그윽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어 손가락 골절을 손쉽게 감추어주는 영리한 선곡이었다.

브람스 교향곡 4번은 특히 1악장에서 여러 성부가 조각조각 정교하게 맞물리는 독특한 텍스처 때문에 앙상블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리멍덩한 소리가 되어버릴 위험이 있는데, 이날 연주가 이따금 그랬다.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기운이 빠져버렸던 것일까. 결코 졸연은 아니었지만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치고는 뭔가 좀 모자란 듯했다. 물론 이것은 연주회장 탓도 크다. 소리가 무뎌지곤 했던 것은 단원들이 큰 실수를 해서가 아니라 미세하게 리듬이 서로 어긋나거나 순간적으로 밸런스가 안 맞거나 했기 때문인데, 이것은 연주회장의 음향이 개선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고 본다.

팀파니 소리가 이날따라 이상했으며, 악기에 이상이 생긴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을 만큼 평소 실력에 못 미치는 연주였다. 오케스트라 총주를 휘감아 올라 결정적인 '한 방'으로 터트리지 못하고 자신감 없이 뒤로 빠질 때도 더러 있었다(이를테면, 마디 129). 저음 현 또한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왠지 끌려다니는 듯했다. 작품에 담긴 '다크 포스'를 4악장에 몰아서 '거대한 크레셴도'를 만들어내려고 지휘자가 의도한 것은 아닐까도 잠깐 생각해보았으나, 또 달리 생각하면 마에스트로가 1악장을 그렇게 간단히 희생시키려고 했을 리는 없다.

2악장은 템포가 대략 ♪= 60 정도로 꽤 느렸는데, 3악장의 빠른 템포와 대비시키는 것은 크게 보면 타당한 해석이라 하겠으나 느린 만큼 집중력 있는 앙상블이 뒷받침되지 못해서 설득력을 충분히 얻지는 못했다. 마디 84에서는 힘없는 클라이맥스가 되었고, 마디 88에서는 바이올린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는 좋았으나 두터운 화음을 이루지는 못했다. 다만, 현악기군의 피치카토 음형은 깔끔했으며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3악장부터는 명쾌한 리듬을 업고 썩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반복되는 16분음 스타카토 음형을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하게 일치시켜 놀라운 소노리티(sonority)를 만들어내었고, 서울시향의 앙상블이 사실은 뛰어난데 작품이 작품이라 이제껏 고전했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돌이켜보건대 이토록 훌륭한 앙상블을 이룰 수 있는 악단인데도 음형이 복잡하게 얽힐 때에는 영 제 실력을 내지 못했다면 연주회장의 음향이 요술을 부린 것 말고는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려우며, 이것만 보아도 시향 전용 연주회장이 절실히 필요함을 알 수 있다.

템포는 ♩= 135 정도로 꽤 빠른 편이었고, 군데군데 리타르단도를 써서(이를테면, 마디 5) 뚜렷한 템포 대비를 준 것이 인상깊었다. 앙코르로 3악장을 다시 한 번 연주했는데, 이때는 가운데 부분(마디 35-223)을 생략하고 템포 변화도 거의 없이 신나게 달려서 그야말로 앙코르다웠다.

4악장은 3악장에서 되찾은 기운을 살리고 파사칼리아(passacaglia) 특유의 반복과 점층 구조에 힘입어 마치 예고된 파국처럼 한 발 또 한 발 무게를 더해가는 거대한 크레셴도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마디 33에서 바이올린의 비장한 선율도 훌륭했고, 마디 193의 셋잇단음은 절망에 빠져 목놓아 부르짖는 듯했다. 다만, 마디 97의 플루트 독주는 기술적으로는 흠 잡을 데 없이 깔끔했으나 너무 무덤덤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름대로 루바토를 쓰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일부러 무표정한 연주를 의도한 것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구슬프게 흐느끼는 연극적인 표현이 낯 간지러웠던 게 아닐까 싶다.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이끈 지도 벌써 두 해가 지났다. 그동안 서울시향은 눈부신 성장을 보였지만, 세계적인 악단을 목표로 했던 것을 생각하면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친다. 정명훈이나 시향 단원들이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처음부터 목표가 너무 컸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시향 전용 연주회장도 없이 '남의 집 살이'를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정명훈과 계약하면서 시향 전용 연주회장을 마련하기로 약속했음을 잊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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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5일 화요일

2007.08.19.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 / 브람스 교향곡 3번 - 김선욱 / 정명훈 / 서울시향

2007년 8월 19일(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김선욱, pf.

Brahms, Piano Concerto No. 1 in d minor, Op. 15
Brahms, Symphony No. 3 in F major, Op. 90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최초 구상이 교향곡이었다고 잘못 알려지곤 하는데, 원래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였다. 다만, 수차례의 전면적 개정 과정에서 교향곡이 될 뻔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 흔적이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다. 특히 1악장에 그러한 특징이 뚜렷한데, 일반적인 협주곡과는 달리 독주 악기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해서 피아노 협연자에게는 연주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테크닉 문제를 떠나 우선 오케스트라의 거대한 음량에 맞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부 표현은 그다음 일이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강력한 타건으로 협주곡으로는 흔치 않은 대 편성으로 위압하는 서울시향과 팽팽히 맞섰으며, 그러면서도 정교한 테크닉과 섬세한 감성을 놓치지 않아 과연 유명세가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1악장에서 다소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의견도 더러 있었으나, 내 생각에는 이 정도면 이제 약관에 이른 연주자라 믿기 어려울 만큼 훌륭했다. 작품이 워낙 까다로우니만큼 이보다 더 잘한다면 차라리 대가라 불러야 할 것이다.

김선욱의 피아노는 단단했으며 확신에 차 있었다. 때때로 살짝 쇼팽을 연상시키면서도 밝은 톤을 잃지 않는 루바토를 드러내기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나이 어린 연주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의식 과잉으로 유치해지는 일은 결코 없었다. 오케스트라와 교묘하게 줄다리기를 해가며 음악에 긴장감을 더해가는 솜씨가 특히 놀라웠는데, 이것은 혼자 연습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역시! 김선욱은 평소에 실내악 연주를 너무 좋아해서 주위에서 말릴 정도란다. 남다른 '앙상블 내공'을 쌓게 해준 것이 다름 아닌 실내악 연주일 테니 말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권장할 일이 아닐까.

서울시향의 연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악장 마디 66부터 비올라를 유난히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의 열악한 음향 환경이 뉘앙스를 제대로 살리지는 못했다. 마디 190에 아첼레란도를 쓴 것은 차분한 상태에서 재빨리 긴장감을 끌어올리기에는 좋았으나, 그 폭이 너무 커서 약간은 어색한 감이 있었다. (나중에 라디오로 들었던 22일 연주회에서는 아첼레란도의 폭을 약간 좁혀서 딱 적당했다.) 2악장은 4분 음표의 연속에 따르는 두터운 화성이 피아노와 상승작용을 하는 것이 매력적이지만, 서울시향은 투명한 현의 칸타빌레로 두터운 화성을 희석시키며 피아노와 미묘한 음색 대비를 이룬 것이 내 취향에는 맞지 않았다. 3악장이 특히 훌륭했으며, 기대했던 푸가토(마디 238) 역시 좋았다. 다만, 약간 더 욕심을 부리자면 악센트를 좀 더 분명하게 살렸으면 싶었다.

교향곡 3번은 '자유롭게 그러나 즐겁게(Frei aber Froh)'라는 모토에서 머리글자를 따온 것으로 알려진 F-A♭-F 모티프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사실관계는 학술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일단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전체 악곡의 조성 계획 또한 이 모티프와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원 조성은 F 장조이며, 2악장과 3악장은 C 음을 으뜸음으로 하는 장·단조인데 여기서 C 음은 F 음의 딸림음(dominant)에 해당한다. 결국, 전체 악곡은 F-C-F의 구조로 되어 있으며, F-A♭-F라는 F 단조 화음에 생략된 5음인 C가 악곡의 전개에 중요한(dominant)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4악장에는 F-C-F라는 거시적인 구조가 다시 한 번 축약되어 있기도 해서 전체 악곡이 4악장을 향한 강한 추진력을 가진다.

정명훈의 해석은 이러한 목표지향적 구조를 매우 잘 드러내었으며, 그런 의도는 1악장에서부터 드러난다. 우선 템포가 꽤 빨랐고(시작 부분의 템포는 대략 ♩♩ = 85), 그런데도 1악장의 제시부 반복을 생략했다. 교향곡 1악장의 제시부 반복 생략은 19세기 작품을 연주할 때 흔히 있는 일이지만, 브람스 교향곡 3번과 같은 짤막한 곡에는 그런 경우가 흔치 않다.

2악장은 아기자기한 맛을 잘 살렸으며, 3악장은 감정의 낭비를 자제하여 4악장을 향한 방향성을 분명히 밝혔다. 유명한 3악장은 자칫 신파조가 될 위험이 있는데, 이것은 브람스답지 않을 뿐만 아니라 4악장의 무게감을 줄일 위험이 있어 좋지 않다. 서울시향은 첼로의 부점 리듬을 약간 무디게 연주했으며, 바이올린의 부선율을 적당히 살렸고, 목관 등의 투명한 음색을 놓치지 않아 신파조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무표정하지는 않도록 중용의 묘를 보여주었다.

4악장의 재현부에 해당하는 마디 172 이후는 전체 조성 구조가 절정에 이르는 곳이라 할 수 있는데, F-C-F로 이어지는 조성 구조에서 F 장조로 마침내 해결되기 직전에 이제껏 쌓인 긴장이 선명한 f 단조에 의해 폭발하기 때문이다. 서울시향의 집중력 또한 이 부분에서 절정을 이루었으며, 객석에 전달된 긴장감은 연주회장의 열악한 음향으로 상당 부분 무뎌지고도 여전히 강력했다.

이날 연주에서는 모든 악기가 훌륭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강력한 집중력을 보여준 현의 역할이 컸다고 판단된다.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악장 출신인 스베틀린 루세브(Svetlin Roussev)가 서울시향의 악장을 맡은 것이 효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일까.

4악장이 진정한 F 장조를 회복하는 것은 코다에 이르러서인데, 이미 f 단조 부분에서 모든 긴장을 폭발시켰으므로 일반적인 교향곡과는 달리 조용하게 끝난다. 그런데 곡이 차분히 끝나는 만큼 연주가 완전히 멈춘 뒤의 마지막 몇 초의 여운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열광적인 '브라보'에 익숙한 관객이 그 몇 초를 견디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날 연주에서는 고작 3-4초 정도의 여운을 바리톤 음성의 '브라보'가 깨트렸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아직 지휘자가 팔을 내리기 전이었다. 며칠 뒤에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연주회에서는 아예 연주가 끝나자마자 이른바 '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앙코르로 베르디의 <운명의 힘> 서곡을 연주하기 전에 정명훈이 했던 말이 걸작이었다. "한국에서는 음악이 조용히 끝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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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4일 월요일

2007.06.27. 브람스 이중협주곡 / 교향곡 2번 - 김수빈 / 지안 왕 / 정명훈 / 서울시향

2007년 6월 27일(수)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김수빈(vn), Jian Wang(vc)

Brahms: Double Concerto in a minor, Op. 102 (32')
Brahms: Symphony No. 2 in D major, Op. 73 (40')



정명훈이 지휘를 맡는 연주회에 대해 내가 개인적으로 품은 불만 한 가지는 대부분 연주회장이 세종문화회관이라는 것이다. 객석이 많은 만큼 수익성이 높다는 장점을 무시하기는 어렵겠지만, 연주회장의 음향이 열악한 만큼 마니아들의 반응도 차가운 법이라 세종문화회관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수익에도 악영향을 끼치리라는 점 또한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연주회가 드물게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것이 반갑다. 과연 소리 자체가 주는 감동의 깊이가 달랐다.

오케스트라의 전체적인 음량 또한 기대 이상으로 컸다. 이는 연주회장의 음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명훈 표 브람스'라서 더욱 그랬지 싶다. 이것은 협연자로서는 그다지 반가운 일만은 아닐 것인데, 지안 왕과 김수빈은 특히 1악장에서 오케스트라의 육중한 소리에 대적하려고 현과 활의 강력한 텐션을 만들어 내느라 고생하는 듯했다. 김수빈은 이 때문인지 아니면 평소 습관인지 유난히 풀 보잉(full bowing)을 자주 사용했고, 지켜보기에 불안할 만큼 뻣뻣한 자세를 자주 보였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연주는 상당히 훌륭했으며, 뒤로 갈수록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2악장에서의 서정미도 뛰어났고, 3악장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얽히고설키는 스타카토 음형에서 보여준 두 협연자의 정교한 앙상블이 백미였다.

3악장 첫머리에서 나는 지안 왕의 운지법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레가토로 연주하면서 무려 5도 도약을 해야 하는 난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무리한 '손가락 찢기' 대신에 현을 바꾸어 연주하는 속 편한 방법을 택했으며, 결과적으로 5도 도약은 논 레가토(non legato)가 되었다. 김수빈 역시 마찬가지로 논 레가토로 처리했다. 외람된 의견이지만 이 음형의 도발적인 매력을 살리려면 포르타멘토를 써서라도 현을 바꾸지 않고 최대한 레가토의 느낌을 살리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 경우 L-포르타멘토, 즉 도약을 먼저 한 다음 미끄러지는 방법이 적당하다.)

브람스 교향곡 2번에서는 국내 오케스트라의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인 악기군 간의 앙상블 문제가 상당히 해결된 듯해 보였다는 점이 놀라웠다. 서울시향은 특히 개인적으로 앙상블 난조를 예상했던 2악장 푸가토(마디 17) 부분에서 매우 깔끔한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그 가운데 호른의 역할이 유난히 돋보였다. 1악장 마디 137의 D조 호른과 마디 144의 E조 호른 역시 적당한 밸런스에 호른끼리 꼬이는 일도 없이 안정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날따라 금관이 전반적으로 훌륭했으며, 객원으로 보이던 팀파니 주자의 깔끔한 연주도 기억에 남는다.

악기군 간의 앙상블이 좋으니 이제는 악기군 내의 앙상블에 더 욕심을 부릴 만하다. 특히 현악기군의 앙상블이 유럽 수준으로 발전하기를 희망해 본다. 이날 연주에서 아쉬웠던 부분으로는, 이를테면 3악장 트리오 부분에서 악센트가 두드러지지 않아 심심한 연주가 되어버렸다.

정명훈의 해석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1악장의 템포를 상당히 느리게 잡았다가 2악장부터 차츰 빠르게 함으로써 거대한 아첼레란도를 구현한 것이었다. 게다가 4악장 코다에서는 이음매마다 가속하여 곡이 끝날 무렵에는 ♩♩= 120 정도의 아찔한 템포로 광란의 토카타를 연출했다. 4악장 마디 118에서 E조 호른의 포르테를 제대로 살린 것도 색달랐다.

관객의 반응 또한 대단했다. 예전에는 정명훈의 이름값에 혹해 과장된 환호를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나, 이날 연주회에서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정명훈이 아닌 '음악'에 진심으로 감동한 듯한 우렁찬 박수가 연주회장을 뒤흔들었으며, 기립박수 등 과시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정명훈에게는 그것이 불만이었나 보다. 몇 번의 커튼콜에 화답하던 그가 갑자기 객석을 향해 기립 사인을 보냈던 것이다. 정명훈의 연주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객 전원 기립 사태가 발생했다. 물론 나는 정명훈의 '정치적인' 제스처와 그 바탕의 자신감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는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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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2일 토요일

2007.04.06. 윤이상 '융단' / 브루흐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협주곡 Op. 88 / 슈만 교향곡 4번 - 스코트 유 / 서울시향

2007년 4월 6일(금) 오후 8시
LG 아트센터
    
지휘자 : Scott Yoo
협연자 : Dennis Kim (vn), Hung-Wei Hwang (va)

Isang Yun: Tapis (8')
Bruch: Concerto for Violin and Viola, Op. 88 (19')
Schumann: Symphony No.4 in d minor, Op.120 (25')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이 독일 음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축구 선수 차범근에 비할 만하다. 그는 이른바 '클러스터(cluster)' 기법을 사용한 '음향음악(Klangkomposition)' 작곡가로서 리게티, 펜데레츠키 등의 당대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현대음악의 시류에 맞으면서도 동아시아의 음악적 전통을 바탕으로 하는 양식적 독자성을 크게 인정받았다. '주요음(Hauptton)' 또는 '주요음향(Hauptklang)' 기법 등의 용어로 설명되는 그의 음악 양식은 유럽 작곡가들의 클러스터 기법과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면서도 그 짜임새에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윤이상은 "유럽 음악에서 음 하나하나는 추상적이며, 음들의 연속이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 그러나 우리 음악에서는 '음' 그 자체에 이미 고유한 의미가 있다."라고 지적했으며, 이것을 펜 글씨와 붓글씨의 차이에 비유하기도 했다. 윤이상의 음악에서 '주요음', 또는 몇 개의 음이 결합한 '주요음향'은 한국의 전통 음악과 유사한 원리로 유연하게 흐르듯이 변화하며, 이때 트릴, 장식음, 글리산도 등의 서양음악의 어법이 사용된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음악 양식이 윤이상에 의해 당대의 유럽 사정에 맞게 '번역'된 결과이며, 그의 음악은 동양적이기는 하나 엄연히 서양음악에 속한다.

윤이상의 음악은 1975/76년을 기점으로 전환점을 맞았는데, 1967년 간첩 혐의로 한국 정부에 의해 납치되었다가 외교적 압력에 의해 풀려나는 경험과 그로 말미암은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이 그러한 변화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 뒤로 그는 타계할 때까지 고국 땅을 밟을 수 없었으며, 타계 후 12년이 지난 2006년에 이르러서야 국정원 진실위의 과거사 규명으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음악에 정치적인, 또는 인류애적인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으며, 메시지 전달이 용이하도록 양식적으로 좀 더 유연한 음악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음악학자 홍은미의 말을 빌리자면 "그 이전의 엄격하고 복잡한 음악구조가 차츰 완화되어 그 직조과정에서 개별음들의 화성관계가 보다 부드럽고 명료하게 처리"되었다.

<융단 Tapis pour cordes>은 1987년 작품으로,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제2 창작기의 작품답게 현대음악치고는 상당히 듣기 쉽다. 곡 첫머리에 등장하는 단3도 상행 모티프가 지속적으로 활용되었으며 또한 이것이 명확하게 지각된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음향음악적 특성 또한 여전히 나타나는데, 그 음향이 생장하고 변화하는 양상은 작품 제목인 '융단'의 느낌과 매우 그럴싸하게 닮았다. 특히 이날 연주된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은 날실과 씨실이 얽히는 느낌보다는 실의 양태를 벗어난 완성된 천의 느낌이 강했다. 지휘자 스코트 유(Scott Yoo)는 작품의 핵심이 되는 음향을 상당히 안정감 있게 살려 서울시향의 평소 실력을 상회하는 연주를 이끌어내었으며, 다소 아담한 크기의 LG 아트센터는 이런 소편성 작품도 소리를 섬세하게 전달해주었다.

브루흐의 <이중 협주곡 Op.88>은 서울시향의 간판급 단원인 데니스 김(악장)과 헝웨이 황(비올라 수석)의 독주자로서의 기량을 뽐내기에 좋은 작품이었다. 음을 끄는 듯 살짝 기름진 데니스 김의 연주와 빈틈없이 야무진 헝웨이 황의 연주가 흥미로운 대비를 이루었으며, 그러면서도 호흡은 썩 잘 맞아서 두 가지 음색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다. 다소 느린 듯한 템포로 그윽한 향취가 묻어난 것은 좋았는데, 다만 템포를 풀고 조임이 너무 무른 감이 있어서 지루한 느낌이 든 것은 옥에 티였다. 앙코르로 헨델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모음곡 7번 G 단조 중에서 파사칼리아(J. Halvorsen 편곡)를 연주하여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슈만의 교향곡 4번은 커다란 정서적 기복과 현장의 열기로 승부를 겨루기보다는 매끄럽게 다듬어진 앙상블과 계산된 음악적 연출로 클라이맥스를 향해 완만한 템포로 한 걸음씩 꾸준히 나아가는 스타일이었다. 지휘자 스코트 유는 청중의 귀를 현혹하는 트릭을 쓰거나 하지는 않아서 다소 고지식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작년 초에 같은 곡을 지휘했던 구자범이 이를테면 2악장 독주 바이올린 사이의 짧은 경과구(마디 34-38) 부분에서 트럼본의 음량을 최대한 줄여 영화적인 화면 전환 효과를 노린다거나, 4악장 마디 243 이후 등에서 금관에 의한 두터운 화성과 점층 효과를 과장한다거나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것은 안정된 앙상블을 구현하는 힘이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거시적인 추진력을 위해 세부를 희생시켜 다소 지루한 느낌을 주는 단점도 있었다. 특히 금관의 음량을 지나치게 억제하여 전체적인 다이내믹을 손실시킨 것이 양날의 칼처럼 작용했는데, 이를테면 1악장 마디 122에서 모든 악기가 포르티시모로 연주해야 하는데도 금관이 뒤로 숨어버린 것이나 4악장 마디 291 이후의 호른과 트럼펫의 음량이 너무 작아서 목관과 금관의 강약 대비를 살리지 못한 것 등은 수긍하기 어려웠다.

앙코르는 베토벤의 로망스 2번 F 장조 Op.50을 연주했다. 지휘자 스코트 유가 직접 연주한 바이올린 솔로는 작품 특성 때문인지 서늘하거나 찬란하지 않은 대신에 부드럽고 따스한 광택을 뽐냈으며, 활이 바이올린 줄에 쫄깃하게 붙으면서도 소리가 거칠지 않고 미끈했다. 이것은 본 프로그램의 연주와도 일맥상통하는 특징이었는데, 어쩌면 지휘자의 성격도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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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1일 금요일

2007.02.27.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Op. 108, 현악 오중주 1번 Op. 88, 현악 육중주 1번 Op. 18 - 서울시향

서울시향 브람스 스페샬 실내악 시리즈 1
2007년 2월 27일(화) 오후 7시30분
세종 체임버 홀

Violin Sonata No. 3 in d minor, Op. 108 (21')
String Quintet No. 1 in F Major, Op. 88 (26')
String Sextet No. 1 in Bb Major, Op. 18 (33')

Op. 108: Marko Komonko(vn), Park, Jong-Wha(pf)
Op. 88 : Violin 임가진,유미나 / Viola 진민호, 안톤 강 / Cello 강찬욱
Op. 18: Violin 데니스 김, 김효경 / Viola 헝웨이 황 , 임요섭 / Cello 박은주, 김민경



한국의 음악계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각은 그들이 독주자로 성공할 능력이 없어서 오케스트라를 한다는 것이다. 스타 시스템과 콩쿠르 위주의 교육제도 때문에 이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며, 심지어 오케스트라 단원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하다. 이것은 물론 한국만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유명 오케스트라 단원이 독주자나 실내악 활동을 겸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모양이니 오케스트라 단원의 위상이 한국보다는 훨씬 높다 하겠다. 이런 현실에서 서울시향의 브람스 실내악 시리즈가 가지는 의의는 실로 크다. 실내악 연주회는 단순히 시향 단원들의 직업 만족도를 높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연주력 향상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첫째로 현재의 열악한 음향 환경에서 수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쾌적한 조건에서 파트별로 호흡을 맞출 기회가 제도적으로 확보되고(세종문화회관 체임버 홀의 음향은 꽤 훌륭했다), 둘째로 지휘자에 의존하던 작품 해석을 스스로 해보는 경험을 바탕으로 지휘자의 의도를 능동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 연주자 개개인이 주인공이 될 기회와 연주자 간에 더욱 친밀해진 교감을 통해 단원들 스스로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연주에서는 아무래도 이들이 실내악 전문 연주자가 아닌 탓인지 다소 미숙함을 보이기도 했다.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Op. 108을 연주한 Marko Komonko는 긴장이 심했는지 특히 초반에 실수가 많았고, 전체적으로 자신감이 부족해 보였다. 곡 해석이 특별히 모난 곳은 없었지만 4악장 마디 104에서 스타카토 음형을 또렷하게 살린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어지는 레가토 음형과의 구분도 필요하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데타셰로도 충분하다. 문제의 스타카토 음은 내림박이기도 하거니와 다섯 마디에 이르는 딸림화음의 긴장감이 마침내 해결되는 음이기 때문에 종지감(終止感)을 충분히 살리려면 지나치게 짧게 연주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게다가 레가토 음을 시작하는 E 음은 비화성음은 아니지만 선율 진행상 보조음(neighboring tone)에 가깝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많았던 연주였지만, 실내악 시리즈는 이제부터 시작이니 앞으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또 있을 것이다.

글머리의 논점에 비추어 가장 큰 칭찬과 격려를 보내고 싶은 연주자들은 현악 오중주 1번 Op.88을 연주한 임가진 등이었다. 물론 이들의 앙상블이 썩 훌륭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으며, 이날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훌륭한 연주를 들려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때때로 어수선한 앙상블과 다소 밋밋한 곡 해석을 뜨거운 열정으로 보완했다. 이들의 연주에는 실황 연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이 생생하게 살아있었고, 특히 제1 바이올린과 첼로의 교감이 보기 좋았다. 두터운 화음이 강조되는 부분(이를테면 1악장 마디 20)에서 템포를 일시적으로 늦추곤 했던 것은 갑자기 눈에 띄게 변한 템포가 음악적 긴장감을 떨어뜨렸던 까닭에 그 자체로는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그것을 기회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마음을 새로 모으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이들은 진심으로 자신의 연주를 즐기는 듯했고, 얼굴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앙상블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을 기회는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날의 초심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현악 육중주 1번 Op.18을 연주한 데니스 김 등은 각 파트의 수석급 연주자들로 과연 서울시향의 뛰어난 앙상블에 이들의 역할이 컸음을 이날 연주로 새삼 알 수 있었다. 세련된 바이올린과 열정적인 비올라의 대립구도가 흥미진진했으며, 특히 유명한 2악장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임가진 등보다 열기는 부족했으니 두 팀이 서로 장점을 본받으면 좋겠다. 해석상의 옥에 티 한 가지를 지적하자면, 스타카토 음형의 분절적 느낌을 맥락에 따라 좀 더 다채롭게 표현했더라면 더욱 훌륭한 연주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브람스 작품의 스타카토는 보통은 데타셰 주법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좋은 경우가 많은데, 앞서 지적한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의 경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때로는 스타카토를 또렷하게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때도 있다. 이를테면 1악장 발전부 렌틀러(ländler) 주제 직전의 스타카토 음형(마디 190)이 그렇다. 이날 마디 189에서 템포를 살짝 늦추면서 마디 190으로 이어지며 데타셰로 부드럽게 넘어간 것은 앞 마디의 으뜸화음이 이어지면서 화성적 긴장이 해소되는 국면인데다가 데크레셴도까지 동반했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마디 190의 스타카토가 지나치게 불명확하면 마디 188에서 190에 이르는 동안 음가(音價)가 점점 늘어나면서 자칫 음을 질질 끄는 느낌이 들 수 있다. 또한, 마디 189에서 텍스처가 갑자기 엷어진 것은 오히려 음악적 긴장감을 살짝 높임으로써 전체적인 이완이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음악적 긴장이 극에 달했을 때 갑자기 텍스처를 엷게 함으로써 특별한 효과를 일으키는 것은 19세기 이후의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마디 190의 스타카토 음형은 데타셰 주법을 사용하더라도 분절적인 느낌을 충분히 살리는 것이 좋으며, 템포 변화도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2악장 마디 79는 2악장 전체의 클라이맥스로 볼 수 있으므로 스타카토 음형을 좀 더 날카롭게 처리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4악장에서는 첼로와 바이올린이 같은 모티프를 연주하면서도 첼로(마디 3 등)는 스타카토를 또렷이 처리했지만 바이올린(마디 19 등)은 부드럽게 넘어감으로써 일관성을 잃었던 것이 옥에 티였다.

지난 정기연주회 리뷰를 쓰면서 나는 서울시향이 타성에 젖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그래서 단원들에게 그들이 연주하는 작품을 진심으로 사랑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브람스 실내악 시리즈야말로 현재 서울시향에 가장 훌륭한 처방일지 모른다. 서울시향의 브람스 시리즈에 실내악이 들어간 것은 브람스가 기본적으로 실내악 작곡가이기 때문일 것인데, 어쩌면 시향의 공연기획자는 지금의 상황마저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실내악 시리즈의 시작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시향은 진정한 기본기를 쌓아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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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0일 목요일

2007.01.09. 브람스 대학축전서곡,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1번 - 카바코스 / 정명훈 / 서울시향

브람스 스페샬 관현악 시리즈 1
2007년 1월 9일 오후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Brahms: Academic Festival Overture in c minor, Op.80(10')
Brahms: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77 (38')
Brahms: Symphony No.1 in c minor, Op.68 (45')
 
정명훈 지휘
Leonidas Kavakos (Vn.)



브람스에 대해 얘기하려면 그에 앞서 언급해야만 하는 작곡가가 있다. 베토벤! 그는 고전주의 양식을 완성한 사람이면서 스스로 그것을 해체하여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힌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목표지향적 주제 발전 기법, 리듬과 화성에 담긴 역동적인 에너지,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어둠에서 광명으로" 나아가려는 영웅적 정신은 후대 작곡가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 이상은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기도 했다. 그 자체로 완벽한 것에는 새로운 것을 덧붙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낭만주의 음악의 분수령이었던 베토벤의 양식은 본격적인 낭만주의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음악학자 달하우스(Karl Dahlhaus)에 따르면 이 아이러니를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슈베르트는 <미완성 교향곡>에서 베토벤적인 도입부(intro) 주제를 발전부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멘델스존은 <스코틀랜드 교향곡>에서 리트(Lied)적인 주제를 부분적으로 병치시키면서 대위법적인 효과를 노렸으며, 베를리오즈는 <환상교향곡>에서 온음계적 주제선율의 배경에 반음계적 시퀀스(동형진행)를 사용해 주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들은 근본적인 해답이 되지 못했으며, 마침내 모범답안을 내놓은 사람은 낭만주의라는 시류와 다소 거리를 두고 베토벤이라는 근본적인 화두로 고민한 브람스였다.

그는 베토벤의 주제 발전 기법을 극한까지 확장하여 단일 음정마저도 모티프(motif) 변형의 단위로 삼았고, 원 주제의 마디 구조와 화성, 리듬 등을 끊임없이 변형시켰으며, 이러한 기법을 전체 악곡의 진행 원리로 삼았다. 이렇게 변형된 모티프의 조각들은 베토벤보다 훨씬 촘촘한 그물망을 이루었으며, 나아가 전체 악곡의 구조를 지탱하는 정교한 논리가 되었다. 20세기 작곡가 쇤베르크가 "발전적 변주(developing variations)"라 부른 이 기법은 베토벤의 후계자를 자처하던 바그너(또는 리스트)의 기법보다도 세련된 것이었으며, 이로써 적어도 음악 형식에는 브람스야말로 베토벤의 진정한 후계자라는 데에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게 되었다. (사견을 말하자면, 베토벤의 정신적 계승자는 바그너라 할 수 있다.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도 많겠지만, 이 글의 주제는 바그너가 아니므로 더 자세한 내용은 나중을 기약하기로 하자.)

베토벤과 브람스의 이러한 관계를 살펴볼 때, 기본기부터 확실히 쌓겠다며 작년 한 해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한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다음 목표로 브람스를 택한 것은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정통 레퍼토리에 도전하는 서울시향의 자세는 베토벤을 정면으로 마주한 끝에 베토벤의 적통이라는 월계관을 거머쥔 브람스와 통하기도 한다.

대학축전 서곡은 폴란드 브로츠와프(Wrocław; 당시는 프로이센의 영토였으며 독일식 이름은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브람스에게 수여한 명예박사 학위에 대한 답례로 작곡되었으며, 브람스가 괴팅겐(Göttingen)에서 배운 4곡의 학생가를 인용하고 있다. 대학축전 서곡은 브람스의 여느 작품과는 달리 유쾌한 분위기로 가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브람스 시리즈를 여는 서곡의 역할로 제격이었다. 이날 연주에서는 브람스의 유머를 정명훈 특유의 세련된 감성으로 살려냈다. 마디 24에서 바이올린의 피치카토(현을 손끝으로 튕기는 연주법)를 솔로 바이올린으로 강조한 것도 흥미로웠고, 학생가 가운데 "신입생의 노래 Was kommt dort von der Höhe"가 인용된 마디 157에서 템포를 관습적인 수준보다 더 빠르게 변화시킨 것도 좋았으며, 여기서 목관과 현의 아기자기한 앙상블도 훌륭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신입생의 노래"와 또 다른 음악적 모티프의 조각들이 섞이면서 거대하게 부풀었다가 갑자기 멈추면서 약음기를 낀 호른이 우스꽝스러운 음색으로 '빼액' 하는 부분(마디 259)이었다. 몇몇 음반에서는 이 부분이 무표정하거나 심지어 화난 듯한 음색이어서 실망하곤 하는데, 이날 연주에서는 천박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익살스러웠다. 이런 식의 유머는 이를테면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 제2막에서 꼬마가 "나팔이랑 말 사줘! Vo' la tromba, il cavallin!" 하면서 떼쓰는 장면과도 닮았다. 관악기의 리듬이 엇갈리는 부분(이를테면 마디 91 등)은 그 리듬을 기계적으로 살리면 우스꽝스럽게 들리기도 하는데, 다수의 녹음에서는 내림박에 확실한 주도권을 주지만 이날 연주에서는 이것을 그대로 살렸다. "기쁨의 노래 Gaudeamus igitur"가 인용된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금관의 숨겨진 리듬을 살렸는데(특히 마디 387-390), 대부분의 녹음에서는 "기쁨의 노래"의 고양감을 높이도록 주선율을 강하게 부각시키기 때문에 이날 연주를 낯설게 느끼거나 심지어 서울시향의 금관 앙상블이 엉터리였다고 생각한 관객도 더러 있었을 것이다. 이 리듬을 특히 잘 살린 녹음으로는 아르농쿠르-베를린필의 것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대한 연주회장에서 낼 수 있는 음량의 한계를 절실히 드러내어 전용 연주회장의 마련이 시급함을 새삼 일깨우기도 했다. 특히 스타카토(한 음씩 끊음) 음형으로 큰 폭의 크레셴도(점점 세게)를 이루는 마디 41-45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물론 음반에서 들을 수 있는 과장된 다이내믹에 익숙한 탓도 있겠고, 서울시향 현악기 주자들 실력이 유럽 일류 악단에 비하면 손색이 있기도 하겠지만, 적어도 여기서 힘이 많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기쁨의 노래"에서 금관이 찬가처럼 부풀렸다가 현과 목관으로 선율을 넘겨주는 순간(마디 383) 전체 앙상블이 어이없이 힘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이날 연주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이날 악기 편성은 호른을 한 대 추가한 것을 제외하면(호른 수석의 보조 역할) 악보의 지시를 정확하게 지켰다.

... 대략 여기까지 썼을 때 편집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먼저 보낸 베토벤 연주회 리뷰가 너무 길다면서 이번에는 원고지 15장 이내로 해달란다. 그때까지 써놓은 것을 보니 벌써 20장...;; 게다가 연주회 다음날이 원고 마감일이라니... OTL

결국 날림으로 쓴 게 아래 글이다. 정말이지 이따위로 쓰고 싶지는 않았다. 홈페이지에나마 쓰고 싶은 말 다 쓰려고도 생각했다가... 귀찮다. -_-; 다음 연주회나 준비해야겠다. 어, 근데 프로그램이 바뀌었잖아? OTL

브람스는 베토벤의 음악적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맞는 새로움을 담아내야 하는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들의 과제에 대해 일체의 편법을 거부하고 베토벤이라는 근본적인 화두로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베토벤의 적통이라는 월계관을 거머쥐었다. 이것은 기본기부터 확실히 쌓겠다며 정통 레퍼토리에 도전하고 있는 서울시향의 태도와도 통하며, 서울시향이 베토벤에 이어 브람스 시리즈를 택한 것은 이러한 음악사적 맥락을 생각할 때 거의 필연적이라 할 수 있다.

대학축전 서곡은 브람스의 여느 작품과는 달리 유쾌한 분위기로 가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브람스 시리즈를 여는 서곡의 역할로 제격이었다. 이날 연주에서는 브람스의 음악적 유머를 정명훈 특유의 세련된 감성으로 살려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거대한 연주회장에서 낼 수 있는 음량의 한계를 절실히 드러내어 전용 연주회장의 마련이 시급함을 새삼 일깨우기도 했다. 특히 스타카토(한 음씩 끊음) 음형으로 큰 폭의 크레셴도(점점 세게)를 이루는 마디 41-45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한 카바코스(Leonidas Kavakos)는 매끄럽게 다듬어진 음색과 특별히 모나지 않으면서도 참신한 프레이징(phrasing)을 들려주었다. 비브라토의 속도와 폭은 자연스럽고 적절하여 아름다운 음색을 만들어냈으며 트릴의 속도는 때때로 느린 편이었다. 그러나 힘없이 매끄럽기만 한 것도 아니어서 마르카토(강한 악센트로 끊어 연주함)의 '긁는 맛'을 세련미를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충분히 살렸고, 관현악 도입부의 템포가 느린 편이었는데도 독주를 시작하면서 날카로움을 잃지 않았다. 카덴차는 가장 널리 쓰이는 요아힘의 것이었고, 앙코르는 타레가(Francisco Tárrega)의 <알함브라의 추억>이었다. 이 곡은 원래 기타 독주곡으로 카바코스는 활을 현 위에서 여러 번 튕기는 이른바 리코셰(Ricochet; flying spiccato) 주법을 사용하며 정교한 테크닉을 과시했다.

교향곡 1번은 장중한 템포 속에 브람스의 좌절과 분노와 우수와 환희 등을 모두 담아내면서도 정명훈의 특유의 세련된 열정을 잃지 않았다. 템포가 빠른 곳과 느린 곳의 대비를 뚜렷이 살리면서도 이음매를 자연스럽게 처리하는 한편, 프레이즈마다 은근한 템포 변화를 주어 악곡 전체를 조망하는 유려하면서도 정교한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브람스 교향곡 1번 해석의 가장 큰 지표가 되는 것은 1악장 도입부(intro)와 종결부(coda)의 템포다. 1악장 도입부의 나타냄 말(expression mark)은 "Un poco sostenuto 음을 조금 늘여서"이고, 제1주제가 시작되는 마디 38에서는 "Allegro 빠르게"가 되었다가 종결부 마디 495에서는 "Meno Allegro 덜 빠르게"가 된다. 결국 느림-빠름-느림의 대칭 구조가 되는데, 브람스는 원래 마디 495의 나타냄 말도 도입부와 같은 "Un poco sostenuto"라 했다가 당시 연주 관습으로 도입부의 템포가 너무 느려지곤 했던 탓에 1악장 처음과 끝을 정확히 같은 템포로 설정한 것은 "멍청한 실수"라 하면서 "Meno Allegro"로 고쳤다.

이날 연주에서는 ‘♪ = 75’ 정도의 템포로 시작하여 제1주제(마디 38 이후)에서는 대략 ‘♩. = 90’으로 변하며 오히려 템포가 빠른 편이 되었지만 자연스러운 이음매로 처음의 장중한 이미지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반음계적 스타카토 하강 음형이 시작되는 마디 160에서는 ‘♩. = 100’ 정도로 더욱 빨라졌다. 1악장 종결부에서 현의 피치카토(현을 튕기는 연주법) 음형이 아르코(활로 긋는 연주법) 음형으로 변하는 마디 478에서 서서히 템포를 늦추어 "Meno Allegro"에서는 대략 ‘♪ = 110’이 되었다. 결국 ‘느림-빠름-느림’의 대칭 구조를 뚜렷이 살리면서도 "Meno Allegro"의 참뜻을 매우 잘 살렸다. 베토벤의 '운명' 리듬과 반음계적 음형이 점차 거대하게 확장되기 시작하는 마디 293에서 템포가 크게 느려졌다가 팀파니의 강력한 타격과 함께 폭발하는 마디 321까지 서서히 가속한 것도 참신했다.

2악장과 3악장의 템포 대비가 컸던 것도 신선했다. 2악장은 상당히 느렸는데, 그 탓에 오보에가 긴 호흡의 독주를 하는 마디 38에서 16분음 음형이 시작되기 전에 숨을 한 번 들이쉰 것은 옥에 티였다. 원래는 끊지 않고 연주해야 하지만, 레가토로 이어지는 부분만 네 마디가 넘고 이후로도 쉼표 없이 한 마디를 더 연주하면서 숨도 들이쉬지 않고 이어지는 소리를 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클라리넷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길게 늘어지는 F#(실제 음은 E♭) 음 중간에 아주 살짝 숨을 쉬고 다시 이었다가 16분음 음형으로 들어갔다. 이것이 더 자연스럽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오보에는 악기의 음색과 음악적 맥락 때문에 이런 트릭을 쓸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오보에 수석은 이날 가장 빛나는 연주를 해준 단원 가운데 하나였다.

3악장 시작은 ‘♩ = 90’ 정도로 상당히 빠른 템포를 사용했으며, 클라리넷의 반음계적 하행에 이어 8분음 대신 16분음이 전체 텍스처를 지배하기 시작하는 마디 45에서는 템포가 살짝 더 빨라지면서 속도감을 준 것이 참신했다.

4악장도 1악장과 마찬가지로 도입부, 특히 4악장 곳곳에 활용되는 이른바 ‘알프스 호른’ 모티프의 느린 템포와 주부(主部)의 비교적 빠른 템포를 뚜렷하게 대비시키면서도 이음매를 자연스럽게 처리하여 장중함 속에 폭발적 추진력을 담아냈다.

한편, 이번 연주회에서도 연주회장의 음향 문제가 심각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베토벤 교향곡 8번과 9번 연주회 때보다는 소리가 많이 나아졌다고 느꼈다. 그것은 첫째로 베토벤보다는 브람스가 편성이 더 크고, 둘째로 베토벤 교향곡 9번과는 달리 순수 관현악곡이라 성악 파트와의 불균형 문제도 없었고, 셋째로 베토벤 교향곡 9번과는 달리 악보 가필(加筆) 여부에 따른 생소한 음향이 터무니없는 실수로 오해받는 일도 없었으며, 마지막으로 악장을 비롯한 몇몇 수석 단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불 수교 12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라디오 프랑스 등의 유수 악단의 단원이 일부 객원으로 이번 연주회에 참여한 모양인데, 그 가운데 팀파니 주자의 실력이 발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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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6.12.27. 베토벤 교향곡 8번, 9번 - 정명훈 / 서울시향

정명훈과 서울시향, 베토벤 심포니 싸이클4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베토벤 교향곡 제8, 9번
 
소프라노 유현아,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테너 정의근, 베이스 양희준, 연합합창단



※ 음악 용어는 국어사전에 나오는 것들은 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분만 원어 표기했습니다. 또 아스키 텍스트만으로는 점 4분 음표와 점 2분 음표의 표현이 불가능해서 편법을 썼습니다.
♩. = 점 4분 음표
♩♩. = 점 2분 음표
 


"오로지 예술과 학문만이 인간을 신의 경지로 들어올린다." "우리에게는 도덕규범이 그리고 우리 위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이! 칸트!!"
- 베토벤
 
베토벤은 만인이 신 앞에 평등함을 굳게 믿었으며, 인류의 발전과 진보를 무한히 신뢰하는 당대의 가치관에 누구보다도 강한 영향을 받고 음악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고난을 거쳐 별들의 나라로 per aspera ad astra"라는 경구로 흔히 대변되는 이러한 정신은 베토벤에게 거인의 이미지를 부여하였고, 그 이미지는 19세기 후반부터 악기들이 현대적으로 개량되면서 더욱 거대하게 부풀려졌다. 악기 편성은 베토벤이 지시한 것보다 훨씬 큰 규모로 늘어났고, 템포는 느리고 장중해졌다.
 
그러나 그동안의 학술적 성과에 힘입어 작곡 당시의 악기와 관습을 되살리려는 이른바 '원전 연주'가 유행하면서 베토벤 해석의 패러다임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베토벤이 지시한 악기 편성과 템포를 최대한 지키려는 노력이 나타났으며, 현대 악기를 사용하더라도 베토벤 당시 악기의 장점을 살리는 연주법이 시도되었다. 특히 1997년 베렌라이터(Bärenreiter) 출판사에서 이른바 "원전판" (Urtextausgabe; 이하 베렌라이터 판) 악보를 출판한 이후 이것은 새로운 대세로 굳어지는 추세이다. 원전판 악보란 무엇인가. 음악학자 홍정수의 설명을 빌리자면 원전, 즉 "작곡가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한 기록물이나 출판물"을 바탕으로 "한 음악이 여러 악보들을 통해 전해 내려오면서 변질되는 과정을 밝혀내고 원래의 음악을 재구성"한 학술적 성과물인 이른바 "비평판(Kritische Ausgabe) 악보를 실용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또한, 원전판은 "원 작곡가가 쓰지 않은, 후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첨가된 부분들을 원칙적으로 피한다. 그리고 원전과 다른 내용을 기록해야 할 경우에는 학술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부분들만을 첨가한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베토벤 시리즈도 이러한 추세를 부분적으로 수용했다. 즉, 악보의 지시를 따라 소규모 오케스트라를 사용해 베토벤 시대의 투명하고 아기자기한 앙상블의 장점을 살리려 했다. 객석에서 관찰한 바에 따르면 교향곡 8번에서는 악보가 지시한 관악기 수를 정확하게 지켰고, 현악기 수도 그에 맞게 줄였다. 교향곡 9번에서는 목관 악기와 호른을 두 배로 늘인 듯하다. 그밖에 몇몇 부분에서 베렌라이터 판 이전 시대와는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신 전통적인 베토벤 연주에 익숙한 관객이 낯설어할 만한 템포는 피했다. 반복 기호도 정확히 지키지는 않았는데, 교향곡 8번에서는 3악장 두 번째 미뉴에트에서 반복을 생략했고, 교향곡 9번에서는 2악장 트리오 직전의 반복을 생략했다.
 
그러나, 아아! 정명훈의 중용적인 해석과 서울시향의 잘 다듬어진 앙상블을 망쳐놓은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터무니없이 거대한 연주회장이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외국 연주자들이 왔다가 다들 깜짝 놀랄 정도로 연주회장으로는 비정상적으로 크다. 어떤 가수는 세종문화회관을 보고서 목 상하겠다며 공연을 취소해버리기도 했단다. 세종문화회관 홈페이지에 따르면 대극장의 객석 수는 3,075석으로 외국 유수 공연장의 약 1.5배에서 2배 정도다. 이런 곳에서는 어지간한 대편성 오케스트라도 제 기능을 못하는데 19세기 초 규모의 소편성 오케스트라로 연주를 했으니, 그 결과는 원래 의도했을 "투명하고 아기자기한 앙상블"이 아니라 저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목욕탕 사운드'였다. 특히 여러 성부가 복잡하게 얽히는 부분, 이를테면 교향곡 9번 1악장 발전부 이중 푸가(double fugue; 마디 218 이후)는 모든 성부가 흐리멍덩하게 하나로 뭉쳐져서 듣고 있기 괴로울 지경이었다. 대편성을 사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내가 정명훈이라면 낡은 해석을 고집하는 수구파 지휘자의 낙인을 찍히느니 다 관두고 서울시향을 떠나고 말겠다.
 
지금 서울시향에 가장 시급한 것은 제대로 된 전용 연주회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남의 집 살이'로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연주회 프로그램을 짤 수도 없고, 연습 때와는 전혀 다른 음향 환경에서 본 실력을 발휘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음향적으로 열악한 현재의 연습실에서 연습한다고 제대로 된 실력이 쌓일 리가 없다. (서울시향의 리허설을 참관해보고 하는 얘기다.) 서울시향은 개편 이후 비약적인 연주력 향상을 이루어내었고 지금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지만, 장담하건대 그리 머지않아 정체가 온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악단을 만들겠다고? 미안하지만 제대로 된 전용 홀을 지을 때까지는 어림도 없다! 정명훈이 아니라 카라얀이 살아 돌아와 서울시향을 이끌어도 절대로 불가능하다. 축구 선수들이 잔디 구장은커녕 바닷가에서 연습하고 있는데 히딩크만 데려온다고 유럽 수준의 강팀이 되나?
 
사정이 이러니 이날 연주회는 솔직히 말해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머리로는 정명훈의 해석과 서울시향의 앙상블이 뛰어남을 수긍할 수 있었다. 교향곡 8번에 대한 정명훈의 해석의 키워드는 우아함과 세련됨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주로 느긋한 템포 때문인데, 특히 미뉴에트(Menuet) 악장이 그랬다. 악보에 나타난 메트로놈 지시는 '♩= 126'인데, 이 템포는 실제로 미뉴에트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에는 너무 빠른 감이 있다. 베토벤은 작품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음악적 유머의 하나로 이런 템포를 사용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단지 교향곡 악장 구성의 관습을 따라 미뉴에트 악장을 넣었을 뿐일 수도 있다. 정명훈은 '♩= 100' 정도의 템포로 충분히 춤을 출 수 있을 만한 음악을 만들어내었다. 다른 악장도 마찬가지로 템포를 느리게 잡았고, 작품 속의 여러 가지 유머는 우아함을 잃지 않는 범위 내로 통제되었다. (여기서 음악적 유머란 이를테면 1악장 시작부터 종지형(終止形)을 사용했다는 것(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등이 있겠는데, 19세기 초 유럽의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고 단지 작품의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느끼는 정도면 충분하다.) 정명훈의 템포 설정이 진부하다는 의견도 더러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교향곡 8번은 템포가 더 빠른 연주를 좋아한다. 그러나 만약 연주회장의 음향이 소편성 오케스트라의 장점과 서울시향의 세련된 프레이징을 뚜렷하게 살려주었더라면 누구나 이날 연주의 참맛을 알 수 있었으리라.
 
베토벤 교향곡 8번은 바이올린의 활 사용과 관련해서 특히 첫째 마디에 난점이 있다. 바이올린은 첫 세 음을 레가토, 즉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고 다음 두 음을 스타카토, 즉 짧게 끊어서 연주하여 둘째 마디로 넘어간다. (여기서 '스타카토'는 바이올린 주법의 일종이 아닌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했으며, 베렌라이터 판 악보에서는 스타카티시모, 즉 아주 짧게 연주하도록 고쳐졌다.) 그런데 셈여림 등의 음악적 맥락을 고려하면 활을 현 위에서 가볍게 튕기는 이른바 스피카토 등의 주법을 쓰기에 마땅치 않다. 내가 여러 음반을 확인해본 결과 모두 활을 현에서 떼지 않은 상태로 분절적인 느낌을 주는 이른바 데타셰 주법을 사용했지만 스타카토의 분절적 느낌은 모두 달랐다. (활을 현에서 떼는 특수한 데타셰도 있지만 얘기가 너무 복잡해지므로 넘어가자.) 여기서 결국 중요한 것은 보잉(bowing)의 방향 설정인데, 서울시향은 레가토 부분에 내림활을 쓰고 스타카토 부분에서 방향을 바꿔주는(내림-올림-내림) 무난한 보잉을 택했고 스타카토의 분절적인 느낌도 잘 살렸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둘째 마디 첫 음이 올림활이 되는 것이다. 마디 첫 음은 내림활을 쓰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며, 특히 둘째 마디 첫 음은 앞서 말한 바 있는 음악적 유머로서의 종지형이므로 더더욱 내림활이 좋다. 어떤 음반에서는 여기서 올림활 특유의 소리가 커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서울시향은 둘째 마디 첫 음을 충분한 음가로 연주하지 않고 중간에 살짝 끊음으로써 난점을 교묘하게 피했다. 같은 패턴의 리듬이 사용된 마디 162와 1악장 끝인 마디 372에서도 같은 보잉을 사용했다. 이 부분의 보잉이 특이한 영상물로는 번스타인-빈필과 아바도-베를린필의 것이 있다.
 
교향곡 9번은 종악장 도입부의 이른바 '공포의 팡파르'가 음반으로 듣던 것과 너무 달라 당황한 관객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향이 특별히 큰 실수를 한 것은 아니고 사실은 악보에 적힌 그대로 연주하면 그렇게 된다. 베토벤 당시의 트럼펫은 현대의 트럼펫과는 달라서 구조적으로 낼 수 없는 음이 많은데, 그 때문에 베토벤은 주요 선율을 목관 악기에 맡기고 트럼펫 등의 금관 악기는 단지 보조적인 역할만 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목관 악기의 작은 음량을 금관 악기가 가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며, 결국 '공포의 팡파르'라 부르기에는 다소 밋밋한 소리가 된다. 악기가 현대적으로 개량된 뒤에는 트럼펫 파트를 가필(加筆)하는 것이 관행이 되었고, 금관 악기의 압도적인 음량을 앞세운 진정한 '공포의 팡파르'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베렌라이터 판 악보의 영향으로 요즘은 이 부분을 원래대로 가필 없이 연주하는 경우가 많으며, 정명훈 역시 그렇게 했다. 사견으로는 다른 곳도 아닌 세종문화회관에서 가필 없이 연주한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그나마 팀파니의 활약이 아니었으면 정말 심심한 연주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터키 행진곡 부분과 이어지는 테너의 독창도 베렌라이터 판 악보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곳의 메트로놈 지시는 원래 '♩. = 84'였다. 그러나 이것은 첫째로 행진곡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느린 템포이며, 둘째로 갑자기 느려진 템포가 4악장을 크게 양분해버림으로써 음악의 구조에 큰 결함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심각한 오류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대개는 악보의 지시보다 더 빠른 템포로 시작한 다음 가속을 하여 문제를 해결해 왔다. 초기 원전연주 음반에는 악보의 템포 지시를 그대로 지킴으로써 시행착오를 보이기도 했는데, 베렌라이터 판 악보에서는 '♩. = 84'를 '♩♩. = 84'의 오기로 보아 수정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한편, '♩♩. = 84'의 템포는 행진곡으로는 적당하지만 테너 독창으로는 너무 낯설게 들려서 이것을 충실히 지킨 가디너(Gardiner) 지휘의 연주는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이날 연주에서는 '♩♩. = 65' 정도의 템포를 사용했는데, 전반적인 템포 설정을 악보의 지시보다 느리게 잡았으므로 여기서 템포가 갑자기 크게 느려진 것도 아니었고, 행진곡으로도 무리가 없었으며, 이어지는 테너의 독창이 너무 빠르지도 않아 모든 면에서 중용을 지킨 템포였다. 이중 푸가(마디 655 이후)에서도 같은 템포를 사용하여 해석의 일관성을 유지했다. (이 부분의 메트로놈 지시는 '♩♩. = 84'로 베렌라이터 판 악보의 행진곡 부분에서 수정된 지시와 정확히 같다.)
 
이날 연주에서 해석이 가장 참신했던 부분은 3악장 마디 133에서 제2 바이올린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 부분은 원래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로 연주해야 하지만 반대로 포르티시모(매우 세게)로 연주했다. 활의 사용도 상당히 거칠어서 눈을 감고 들으면 비올라 소리로 착각할 정도였다. 나는 교향곡 9번 3악장에서 베토벤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차이가 있는 상처받은 가녀린 영혼을 느끼곤 하는데, 정명훈은 여기서도 비탄에 잠긴 영웅 베토벤의 모습을 발견한 듯하다. 1악장 종결구(코다)의 저음 오스티나토(basso ostinato)가 시작되는 마디 513에서 템포를 크게 늦춘 다음 1악장이 끝날 때까지 가속한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다.
 
베토벤 교향곡 9번은 교향곡에 합창을 도입한 최초의 작품이며, 바그너는 이것을 콜럼버스에 비유했다. 쉴러의 <환희의 송가 Ode „An die Freude“>가 가사로 사용된 이 작품이 오페라나 가곡이 아니라 교향곡이라는 사실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이 작품이 단순히 성악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교향곡을 형식적, 음향적으로 확장하고 음악적 표현력을 높이도록 가사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음악학자 주대창은 (1) 음악의 전개와 시의 진행이 불일치하고, (2) 가사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기보다는 특정 단어, 이를테면 모든 사람들(alle Menschen), 환희(Freude), 형제들(Brüder) 등을 반복하거나 독립적 제창으로 사용하여 또렷하게 들리도록 함으로써 전체적인 의미를 승화적으로 전달하려 했으며, (3) 이러한 가사의 성격적 사용이 선율 주제의 음악적 처방과 맞물려 있는 등 성악을 기악적으로 사용했음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성악에 익숙한 한국의 가수들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주회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좋은 발성을 위해 자의적으로 고쳐진 리듬과 템포, 흔들리는 음정 등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 오페라 등에서는 관현악이 가수들에게 맞춰줄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베토벤의 "교향곡" 9번에서는 가수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의 '악기'인 것이다. 특히 나는 베이스 양희준에게서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그가 타고난 목소리만큼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탁월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번 연주회에서는 정명훈의 수완이 좋았는지 예전에 흔히 봐왔던 것보다는 꽤 나아지기는 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독창자들이 무대 앞으로 나오지 않고 오케스트라와 섞여서 노래한 것도 음향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훌륭한 선택이었다. 독창자들이 '주인공' 의식을 가지고 앞으로 나오겠다고 우기느라 정명훈과 갈등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독창진이 연주 도중에 입장하느라 오케스트라를 방해한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고 나니 정명훈과 독창진 사이에 일종의 타협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만약 정명훈이 모든 것을 양보했다면 4악장 전체가 망했을 것이다. 정명훈 선생님,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차라리 공개 오디션으로 학생들에게 등용의 기회를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합창단은 소리가 우렁찬 것은 참 좋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좋았던 것은 그것뿐이었다. 음량 조절을 못해서 오케스트라 소리를 묻어버리기 일쑤였고,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는 메조 포르테(약간 세게)가 되어버렸다. 화음이 썩 잘 맞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서울시향과 같이 연주하기에는 수준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은 이것이 국내 합창단의 현주소인 것 같다. 아직은 먼 훗날의 일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서울시향과 마찬가지로 재단 차원에서 합창단을 관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우수한 합창 지휘자를 영입해야 함은 물론이다.
 
관객의 수준은 꽤 높았다. 다만, 교향곡 8번 1악장 종결구 직전 모든 악기가 여리고 부드럽게 가는 부분에서 누군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벨 소리가 아니라 진동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혹시나 진동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 심각한 방해가 됨을 일깨워주고 싶다. 미국의 어느 연주회장에서는 연주회 시작 직전 방송으로 전화 벨 소리를 크게 들려주면서 전원을 끄기를 부탁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니 공연장 관계자 분들은 참고 바란다.
 
정명훈의 베토벤 해석은 전통과 새로운 패러다임 사이에서 중용을 보였고, 서울시향의 뛰어난 앙상블이 그것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연주회장의 음향은 이들에게 걸림돌이 되었으며 전용 연주회장의 마련이 시급함을 역설적으로 알려주었다. 성악진에도 많은 아쉬움이 있었다. 정명훈과 함께한 서울시향은 지난 일 년간 베토벤이라는 정통 레퍼토리로 악단의 기초를 다져왔다. 이제 베토벤에 이어 브람스로 그간 다져온 기초를 공고히 할 때다. 2007년에도 서울시향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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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9일 수요일

2006.02.27.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1막 전주곡, 힌데미트 《화가 마티스》 - 구자범, 서울시향

구자범 / 서울시향의 <화가 마티스>
2006년 2월 27일(수) 저녁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바그너,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1막 전주곡
힌데미트, <화가 마티스>
슈만, <교향곡 4번>



내가 구자범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바그너 가수 사무엘 윤을 통해서였다. 다름슈타트에 구자범이라는 뛰어난 지휘자가 있다고 했는데, 그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다가 2003년 8월 30일에 사무엘 윤 등과 함께 내한하여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반주로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오케스트라의 연습 부족 탓인지 별볼일없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사무엘 윤이 노래했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중 네덜란드인의 아리아 "때가 되었다. 세월은 흘러 또다시 7년이 지났도다. Die Frist ist um, und abermals verstrichen sind sieben Jahr'"에서는 특히 오케스트라가 악보를 따라가는 데 급급해서 지휘자의 해석이 반영될 여지도 없어 보였는데, 유일하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총주 도중에 수비토 피아노로 잠시 긴장을 늦춘 다음 다시 크레셴도를 사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사전에 충분한 음악적 긴장감이 뒷받침되지 않은 탓에 공허한 트릭이 되고 말았다. 그날 내가 쓴 감상문에는 "오케스트라의 역량이 확실하게 받쳐주었다면 어떤 대단한 효과를 거두었을지는 모르겠"다고 쓰여 있다. 그 "대단한 효과"는 약 3년이 지나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는 작년 4월 9일 부천 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피아노: 주희성)을 연주했다는데, 그날 연주회에는 가지 못했다. 또 그해 5월 31일 교향악 축제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할 예정이었다는데, 무슨 사정에서인지 지휘자가 바뀌었다.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있었던 국립오페라단의 <투란도트>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지 못했다.)

이번 연주회도 사실은 예정에 없던 것으로 정명훈의 입김에 의해 급히 만들어졌다고 한다. 듣자 하니 연주회 프로그램도 구자범이 원한 것이 아니었단다. 결정적으로 연주회장이 저 악명 높은 세종문화회관이다. 단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오케스트라가 최근 개편을 통해 비약적인 연주력 향상을 이룬 서울시향이라는 것이다. 결국 이날 연주는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다듬지는 못한 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많은 부분에서 감탄할 만한 해석을 보여주었으며, (내가 앉았던 자리가 너무 앞쪽이라 부정확한 판단일 수 있지만) 전체적인 밸런스도 매우 뛰어났다. 순간적인 아고긱(Agogik)과 뒤나믹(Dynamik)의 변화들은 3년 전과는 달리 연주의 완성도를 높이는 효과를 거두었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1막 전주곡은 선이 가는 편이었다. 지휘자는 리허설 도중 이 작품은 원래 '작은 마을에서의 전국노래자랑' 얘기이므로 지나치게 장엄하게 연주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는데, 그 말을 듣고 개인적으로 상당한 우려를 가졌지만 결과는 이해할 만한 수준의 '현대적' 해석이었다. 다만, 저 주장에 대해서만 굳이 반박을 하자면 이렇다. 바그너는 '작은 마을에서의 전국노래자랑'에 빗대어 독일의 예술과 장인 문화의 전통과 독일 민족을 얘기한 것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초등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한 성장소설이라고만 말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마이스터징어'는 작품 전체를 보면 확실히 그랜드 오페라는 아니다. ('악극' 얘기는 넘어가기로 하자.) 그러나 발터의 우승이 결정되고 한스 작스가 장인 가수들의 전통과 '독일의 진실한 정신'과 '위대한 독일 예술'을 얘기할 때의 음악은 매우 장엄하다. 이것이 1막 전주곡에 링크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무리일까?

기름기를 뺀 해석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대위 선율이 실내악적으로 얽히는 부분의 앙상블이 정교해야 한다. 이날 연주는 과연 내가 이제까지 들어본 국내 오케스트라에 의한 '마이스터징어' 가운데 최고라 할 만큼 좋았다. 파트별로 긴밀하게 교환하는 호흡과 안정된 밸런스가 돋보였고, 목관악기군과 현악기군이 주고받는 부분의 이음매도 자연스러웠다. 이른바 '다비트 왕 모티프'가 재현되는 "Sehr gewichtig."(마디 196)에서 템포가 잠시 느려졌다가 다시 빨라지는 이른바 '왕자병 템포'는 독특한 방식으로 바그너다운 것이었다. 세 번의 C 장조 화음으로 된 콘서트 버전의 통상적인 축제적 끝맺음 대신 마지막 화음을 길게 늘여 이어지는 1막의 교회 오르간을 연상시킨 시도도 참신했다.

한편, 급히 마련된 연주회의 서곡에 불과한 작품에 많은 연습 시간을 투자했을 리는 없으니 뛰어났던 앙상블의 상당 부분은 서울시향 단원들의 기본 테크닉에서 우러나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지휘자가 작은 부분까지 꼼꼼히 다듬지는 못했음은 마디 178에서 팀파니 주자가 저지른 사소한 실수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서 팀파니의 첫 타격이 갑자기 두드러졌다가 급히 음량을 줄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팀파니의 음량이 큰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트럼펫이 그에 대등한 음량을 내지 못했던 것이 문제가 된다. 이것은 트럼펫 또는 팀파니의 단순 실수일 수도 있지만, 정황을 보아 두 연주자 사이에 사전 이견 조율이 부족했던 탓이 아닐까 싶다.

국내 오케스트라가 바그너를 연주할 때 항상 드러나는 문제는 현악기군의 이른바 '안전빵 보잉'이다. 이날 연주에서는 그나마 내가 들어본 중에서는 양호한 수준이었으나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바이올린은 특히 곡의 후반부에서 더 강하게 긁어대었으면 좋았을 것이고, 마디 18-25와 마디 [] 등에서는 마르카토의 느낌을 더 살려서 관악기군과 주법상의 동질성을 높였으면 싶었다.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는 이번 연주회에서 시향 단원들에게 가장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제한된 시간에 수준 높은 연주를 이끌어내야 했을 지휘자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쩌면 단원들로 하여금 이 작품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일개 객원지휘자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시향의 연주는 전체적으로 균형잡혀 있었으나 음악적 긴장감이 썩 높지는 않았다. 연습기호 2에서는 글로켄슈필 소리가 너무 크다고 느꼈다. 연습기호 11을 여는 두터운 화음은 앞뒤 부분과의 음량 대비가 약했다. 이 부분은 텍스쳐의 일탈적 변화를 동반한 데다가 메조포르테가 피아니시모에 둘러싸인 형국이라 상대적으로 크게 두드려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악장은 투명하게 정제된 연주였으며 포르티시모로 치달을 때에도 낭만주의적 과장은 없었다.

3악장 연습기호 1의 "Sehr lebhaft" 직전 32분음표는 악마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가능한 한 날카롭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특히 바이올린과 비올라) 시향은 그냥 부드럽게 처리했다. 이것은 내가 들어본 다섯 종의 음반 가운데서도 썩 만족스러운 것은 없고 그나마 블롬슈테트-샌프란시스코심포니(데카)의 연주가 나은 편이다. 아무래도 앙상블을 맞추기가 힘들기 때문일까? 시향의 연주에서는 대신 바이올린 및 비올라와 나머지 악기군 사이에 주고받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점은 좋았다. "Sehr lebhaft"에서는 트럼펫 소리가 너무 커서 주선율을 침해했으며, 이 때문에 첼로는 바로 앞 마디의 C♮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못했다.

연습기호 13에서는 현악기군이 충분히 강력하지 못한 탓에 상승 음형을 끝맺는 바이올린 트릴의 절정감이 부족했다. 이것은 상당 부분 연주회장 탓이기도 하다고 생각되며, 연습기호 16에서 현에 의한 점층효과가 크지 못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연습기호 27 "Sehr lebhaft"에서는 템포가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 푸가토의 정교함을 살릴 목적이었다면 이는 서울시향의 연주력이 부족함을 반증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호른과 클라리넷이 멈춤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나온 것은 썩 좋았다. 연습기호 35에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가 있었는데, 힌데미트가 단 하나의 악기로 곡의 긴장감을 극에 이르도록 했던 탓에 그 실수는 가히 치명적이었다. 차마 그 악기의 이름을 여기에 쓰기는 미안하지만, 언제든 이런 실수가 일어날 수 있고 그것이 매우 큰 실수인 만큼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라도 정황을 기록해둘 필요는 있겠다. 바로 뒤에 두 가지 악기에 의해 동형진행처럼 나타나는 부분에서도 실수가 있었다.

슈만 교향곡 4번 (작성중)

이번 연주회 프로그램은 어쩐지 지휘자 콩쿠르에 쓰일 법한 구성이다. 오케스트라의 기능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작품, 리듬과 음색에 대한 지휘자의 감각을 시험할 수 있는 작품, 그리고 쉽고도 어려운 낭만주의 작품. 정명훈이 어떤 식으로든 구자범을 시험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어떤 면에서는 박사 학위보다 학사 학위의 권위가 더 큰 대한민국에서 구자범의 특이한 이력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지휘자로서의 활동에 커다란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미 독일에서 성공한 그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신경 쓸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데 어쩌면 가장 큰 도움을 줄 사람이 정명훈이기도 하다. 정명훈은 구자범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내가 정명훈이라면 A 학점에 준하는 평가를 내리겠다.

2006년 2월 28일 씀.
2006년 3월 6일 고침.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6.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15일 토요일

2005.06.13. 《탄호이저》 -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 / 서울시향

이 글은 2005년 6월 14일에 쓴 글이며, 누리꾼에게 ☞ '구제불능' 판정을 받았던 서울시향이 재단법인으로 거듭나면서 사실상 재창단되고 나서 처음으로 열렸던 공연을 보고 쓴 리뷰입니다. 당시 개혁안을 밀어붙인 사람은 다름 아닌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었으며, 그 때문에 이 글에는 무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칭찬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익명의 관계자(?)에 따르면 이 글이 보고서에 인용되어 이름을 세 번 쓰려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그분께 올라갔다고 합니다. 글을 읽기에 앞서 임산부와 노약자, 심장이나 복장이 약한 사람은 마음을 단단히 먹으시기를 권하지 않는다 하지 않을 수 없다기보다는 있지 않을까 싶다가도 아닌 듯하기도 하다 하기에는 뭣하지는 아니하여 지금 시방 장난치느냐면 바로 그렇습니다.



탄호이저 -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 / 서울시향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 휘 : 오카쓰, 슈야 OKATSU, Shuya
연 출 : 스즈끼, 게이스깨 SUZUKI, Keisuk
무대디자이너 : GRASSI, Italo
의상디자이너 : ALMERIGHI, Steve
조명디자이너 : MUROFUSHI, Ikuo
안 무 : 이시이 준 ISHI, Jun
무 대 감 독 : 오오구리, 대쓰야 OGURI, Tetsuya / 고이스미, 고지 KOIZUMI,Koji
총 감 독 : 다까다, 다다시 TAKADA,Tadashi
이 사 장 : 기까와다, 마고도 KIKAWADA,Makoto

6월 11일(토), 13일(월)
Tannhauser (Ten) 나리따, 가쓰미 Narita, Katsumi
Hermann (Bar)   기가와다, 기요시 KIKAWADA, Kiyoshi
Elisabeth (Sop)  기까하나, 유오꼬 KAKIHANA, Youko
Wolfram (Bar)    하지와라, 히로아끼 HAGIWARA, Hiroaki
Venus (Sop)      고니시,준꼬 KONSHI, Junko

6월 12일(일)
Tannhauser (Ten) 네기, 시게루 NEGI, Shigeru
Hermann (Bar)    기가와다, 마고도 KIKAWADA, Makoto
Elisabeth (Sop) 하다다, 히로미 HATADA, Hiromi
Wolfram (Bar)    후지무라, 마사도 FUJIMURA, Masato
Venus (Sop)      고니시,준꼬 KONSHI, Junko



처음이었다. 바그너의 오페라 전곡을 실연으로 감상한 것도 처음이었고,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가 아닌 세종문화회관에서 오페라를 본 것도 처음이었고, 세종문화회관에서 3층이 아닌 1층에 앉아본 것도 처음이었다. 11일 공연을 보고 싶었지만 학회 날짜와 겹치는 바람에 12일 공연으로 일찌감치 R석을 예매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12일 출연진이 다른 날과 달랐다. 12일에 출연한 가수들은 베누스 역의 고니시 준꼬를 빼고 다들 바그너 경력이 일천한 2진 가수들이었고, 11일과 13일의 가수들이 진짜였던 것이다. 맙소사! 약이 올라 혼자 앓다가 결국 13일 공연을 3층에서 다시 보고 왔다. 원래는 13일에도 시간이 안 되는 것이었는데 운이 좋아서 여유가 생겼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는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작았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보다는 가로로 조금 더 넓은 것 같았지만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이 때문에 오는 9월에 게르기예프가 키로프 오페라를 이끌고 와도 압도적인 스케일의 음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노들섬에 짓는다는 새 오페라하우스가 유일한 희망이란 말인가. 제발 전시용에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작을 때 음량 면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 현일 것이다. 바그너는 <탄호이저>를 오케스트레이션할 때 대규모 현악 파트를 염두에 두었으며, 극장의 현악 주자의 수를 정규인원보다 더 많이 둘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서 서울시향의 현은 부족한 인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음량을 내주었다. 12일 공연에서는 현이 금관과 합창 등에 묻혀 버리는 때가 종종 있었지만 13일에는 훨씬 나았다. 이것이 단순히 연주자들이 13일에 더욱 분발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극장 1층과 3층의 음향의 요술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12일 2층에서 들었던 어떤 사람도 "좀 오버하자면 다이나믹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밋밋함의 연속이었"다고 평한 것을 보면 12일보다 13일의 연주가 더 좋았다는 내 느낌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역시 소편성으로는 표현할 수 있는 다이내믹의 폭에 한계가 있었다. 이를테면, 서곡 마디 32에서부터 비올라-제2 바이올린-첼로-제1 바이올린-콘트라바스로 연이어 점층하는 셋잇단 리듬의 크레셴도는 그 폭이 충분히 크지 못했으며, 마디 37에서 마침내 트롬본이 이른바 ☞ '순례자의 합창' 모티프를 찬가처럼 크게 부풀려 연주할 때 현과 같은 리듬으로 힘을 보태는 호른 등은 바이올린의 음량에 제약을 받아 제 힘을 내지 못했다. 2막 4장의 이른바 '입당행진곡' 부분에서는 무대 위에 배치된 12대의 트럼펫이 들려주는 압도적인 소리가 큰 매력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역시 '절제'를 위해 트럼펫 주자들이 무대 뒤편으로 숨어 버리고는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연출을 했다.


2막 4장, 입당행진곡 중 트럼펫 팡파르. 그림을 누르면 미디 음악이 연주됩니다. ©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탄호이저>는 네 개의 판본이 있는데, 이 가운데 '드레스덴 판'이라 불리는 두 번째 개정판과 '파리 판'이라 불리는 네 번째 개정판이 흔히 사용된다. 팜플렛에 따르면 "간사이 니키카이는 1989년에는 드레스덴 판을 사용하였으나[역대 공연 연보에 따르면 이 오페라단은 이때 처음으로 <탄호이저>를 무대에 올렸으며 지난 5월 21일과 22일 공연이 두 번째였다. (팜플렛 43쪽.)] 이번에는 양치기 소년이 나오는 일부분만을 파리 판으로 할 뿐 나머지 부분은 전 공연과 같다." (33쪽.) 이 부분에서 드레스덴 판과의 차이는 파리 판에서 양치기가 노래를 하다 중간에("mein Auge begehrte zu schauen." 직후) 세 마디 동안 뿔피리(대본상으로 샬마이, 악보상으로는 잉글리쉬 호른)를 연주한다는 것이다.

지휘자 오카쓰 슈야는 프레이즈 사이사이를 살짝 늘여주는 등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악보의 지시에 충실한 해석을 들려주었다. 특히 서곡 마디 145에서 바이올린과 플루트의 A# 음을 8분음이 아닌 16분음으로 대충 넘어가듯이 처리하는 녹음이 많아서 평소에 불만스럽게 생각하던 터였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악보대로 연주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까닭은 이 부분의 리듬과 강약을 정확하게 지켜주어야 특유의 선동적인 느낌이 잘 살아나기 때문이다. 마디 145 첫 박 C# 음의 강세 표시는 세게 연주하라는 뜻이지 결코 길게 늘이라는 뜻이 아니다. 음가는 이미 바그너가 충분히 늘여놓았다.


서곡 마디 142-145. 그림을 누르면 미디 음악이 연주됩니다. © 1997-2002 by Fabrizio Calzaretti.

그러나 피날레의 템포는 지나치게 빨랐다. 서곡과 3막 순례자의 귀향 장면("Beglückt darf nun dich"), 그리고 피날레 합창("Der Gnade Heil")은 모두 ☞ '순례자의 합창' 모티프로 링크되어 있고, 그 템포는 메트로놈 템포 50으로 모두 동일하다. 그러나 내가 제대로 들었다면 지휘자는 세 부분 모두에서 바그너가 지시한 것보다 빠른 템포를 선택했다. 앞선 두 곳에서는 그렇다 쳐도 피날레에서만큼은 템포를 정확히 지켜야 제맛이 살아난다. 피날레의 템포 변화를 좀 더 살펴보자. 볼프람이 엘리자베트의 이름을 외치는 부분(리허설 번호 H)의 템포는 50, 탄호이저가 죽은 직후 젊은 순례자들의 합창이 시작되는 부분("Heil! Heil!")의 템포는 88, 마지막으로 다 함께 노래하는 부분("Der Gnade Heil")에서 템포는 다시 50으로 끝난다. 그러나 지휘자가 설정한 템포는 88이 되어야 할 곳에서 120 이상으로 들렸고, 마지막 부분에서도 60 이상으로 들렸다. 갑자기 크게 변한 템포는 단절감을 불러일으켜 피날레의 느낌을 강화시키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빠른 템포는 영적 고양감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 지휘자라서 바그너 식 왕자병 사운드에 닭살이 돋았던 것일까? 이상하다, 자민당과 나치는 통하지 않던가?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서울시향의 연주력은 깜짝 놀랄 만한 것이었다. 사실 이번 공연을 맡은 오케스트라가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 전속이 아닌 서울시향이라는 사실 때문에 목돈을 투자하기에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서울시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버릴 때가 된 것이다. 물론, 대편성일 때에도 마찬가지로 뛰어난 연주를 들려줄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서울시향은 이를 증명하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연주하여 입지를 확고히 하라. 마침 브루크너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또는 옛 오명의 핵이 되어 버린 작품인 말러 교향곡 5번은 어떤가?

서곡 리허설 번호 G(마디 309)에서부터 시작하는, 바이올린이 크게 상행 도약 후 반음계적으로 하행하는 16분음 동형진행(이것이 이후 서곡이 끝나기 직전까지 100마디 이상 고집스럽게 지속된다!)은 바이올린 연주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바그너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보이는 부분이며, 실제 연주를 들어보면 여기서 음형과 리듬과 강약이 흐트러지면서 전체 연주가 산만해지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 (공교롭게도 이것이 리허설 번호 H(마디 379)에 이를 때까지는 텍스쳐의 전면에 노출되는 까닭에 적당히 뒤에 숨지도 못한다.) 그런데 서울시향은 놀랍게도 이것을 상당히 깔끔하게 연주해냈다. 국내 오케스트라가 이 부분을 이토록 훌륭하게 연주하는 것을 듣기는 처음이다. 2막 전주곡 마디 38에서부터 시작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셋잇단음 스타카토 동형진행에서도 자칫 앙상블이 무너지기 쉬운데, 서울시향은 12일 공연에서는 다소 불안함을 보였지만 13일에는 훨씬 안정된 연주를 들려주었다.


서곡 마디 309-312. 그림을 누르면 미디 음악이 연주됩니다. © 김원철.


작은 실수도 전면에 노출되기 쉬운 트럼펫과 트롬본, 호른 등도 거짓말같이 안정된 소리를 내주었다. 특히 1막 4장 팡파르와 2막 '입당행진곡', 3막 전주곡 등에서 이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12일에는 입당행진곡에서 호른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악보대로 내추럴 호른을 썼기 때문인지 궁금하다. 모르기는 해도 그냥 밸브 호른을 써도 될 것 같은데, 이조 문제가 생각보다 까다로운 것일까?) 13일에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3막 전주곡의 찬가풍 섹션에서는 트럼펫과 트롬본이 좀 더 크게 부풀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목관의 치밀한 앙상블이 돋보인 3막 엘리자베트의 기도 장면은 특히 13일 공연 최고의 명장면이라 할 만했다. 탄호이저는 뿜빰거리기만 하는 작품이 아니며 이렇게 섬세한 대목도 있는 것이다.

최근 있었던 서울시향 재창단 과정에서 이명박 서울시장이 시향의 개혁에 큰 역할을 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와 시향 단원들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생기기도 했고, 모 국회의원은 이 문제를 일반 노동문제로 파악하고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결국 약간의 타협을 거쳐 개혁을 단행했다. 나는 서울시향의 오디션 과정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문화라는 것은 누구 말마따나 건물 짓듯이 밀어붙인다고 육성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시향에 대한 서울시의 개혁이 적어도 껍데기뿐인 전시행정만은 아니었음을 서울시향은 연주로 말해주었다. 나는 정치인으로서의 이명박을 싫어한다. 그리고 그가 속한 정당은 더더욱 싫어한다. 그러나 내가 지지하는 정당에 음악애호가로서의 이해관계에 이토록 부합하는 정치인이 있었던가? 아무래도 나는 다음 대선 때 나의 정치적 이상과 음악 애호가로서의 실리를 놓고 고민하게 될 것 같다. 물론 나는 이상주의자에 가깝기는 하다.

간사이 니키카이 합창단은 과연 일본이 바그너 강국임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만했다. (일본 바그너협회가 올해로 25주년이란다.) '입당행진곡'과 '순례자의 합창'에서는 전율을 느끼게 하였으며, 2막 노래경연대회 시작부터 탄호이저가 로마행을 외치는 부분까지의 집중력도 대단했다. 1막 3장과 4장에서의 중후한 남성합창도 빼놓을 수 없는 명장면을 이루었다. 옥에 티 하나를 말하자면, 테너 파트의 누군가는 때때로 독창자 수준의 비브라토를 억제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버렸다. 그 바람에 주위 사람의 발성이 그에 동화되는 현상이 생기기도 했다. 비브라토는 음색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이며, 따라서 합창에서는 소리가 한 덩어리로 뭉치도록 하기 위해 가능한 비브라토를 억제하는 것이 기본이라 한다.

솔로 가수들에게는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마침 12일 공연 때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일본인인 것 같아서 엉터리 영어로 말을 걸었었다. '영어나 한국어 할 줄 아느냐? 일본 가수들이 바그너를 잘하느냐? 바이로이트 무대에 서본 사람은 있나?'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가수들 노래 잘한다. 간사이 니키카이 오페라단 유명하다. 그런데 바이로이트가 뭐냐? 오늘 베누스 역으로 출연한 고니시 준코가 내 동생이다. 너는 음악 하는 사람이냐?' 별로 영양가 있는 대답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확인한 가수들의 수준은 생각보다 매우 높았다.

탄호이저 역의 나리따 가쓰미는 팜플렛에 따르면 탄호이저, 로엔그린, 지크문트, 발터 등 바그너 경력이 화려한 가수이다. 그의 강한 목소리는 과연 바그너 가수다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발성에 고음 쪽으로 치우치는 음고 비브라토가 짙게 묻어나오는 점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러한 비브라토는 음정을 흐릿하게 만들어버리며, 때때로는 정확하지 않은 음정을 지저분하게 가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동양계 테너에게 강한 목소리와 폭이 큰 음고 비브라토는 트레이드-오프(trade off) 관계일까? 이와 유사한 발성을 하는 가수로 귀네스 존스가 있다. 3막 '로마 이야기'에서는 의외로 강렬함과 사악함이 부족한 목소리를 내었다. 딕션은 양호한 편이었으며, /n/ 발음과 /m/ 발음 등을 과장하여 부족한 점을 가린 것이 특징적이었다. 12일 공연에서의 네기 시게루는 나리따 가쓰미와 달리 깔끔하고 담백한 발성이 좋았지만, 바그너 가수가 아니라서 그런지 탄호이저치고는 목소리가 너무 물렀다. 그래도 '로마 이야기'에서 억지로 가장한 사악함은 어색하기는 했어도 나리따 가쓰미보다 차라리 듣기 좋았다. 딕션은 별로였고, 1막에서 베누스를 향해 "Göttin"이라고 외칠 때에는 일본어로 말하는 듯한 발음에 웃음이 나왔다.

헤르만 영주 역의 기카와다 기요시는 당장 바이로이트 무대에 서도 될 것 같은 탁월한 바그너 가수였다. 파프너, 구르네만츠 등의 배역을 맡은 바 있다는데 내가 듣기로 구르네만츠에 딱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어, 그런데 이 사람, 일본 바그너협회 회장이란다! 공연이 끝나고 가수들이 하나씩 무대로 나와 인사할 때 그에게 뭐라고 찬사를 보낼까 생각하다가 '브라보'와 함께 'Gurnemanz, Heil!'이라고 외쳤다. 12일 공연의 기카와다 마코토 역시 훌륭했다. 음색 또한 구르네만츠에 어울렸는데, 이름을 봐도 두 명의 헤르만은 형제 사이가 아닐까 싶다.

베누스 역의 고니시 준코는 바그너 가수가 귀했던 12일 공연에서는 탄호이저를 압도하고 주인공급으로 부각되었으나, 13일에는 다른 쟁쟁한 가수들에 밀려 다소 빛이 바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12일과 13일의 가수들의 수준 차이를 단적으로 느끼게 한 부분이라 하겠다.) 나리타 가쓰미와 유사한 음고 비브라토를 구사했지만 그 폭이 아주 크지는 않아서 양호했다. 고니시 준코는 <라인의 황금>에서 벨군데 역으로 데뷔했고, 쿤드리(팜플렛에는 "<퍼시발>에서 마법의 딸로 출연"했다고 되어있는데, 이것이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아 갸우뚱했었다. 정황으로 보아 <파르지팔>의 쿤드리가 맞지 싶다.), <발퀴레> 중 브륀힐데, <살로메> 중 살로메 역을 맡은 바 있다고 한다. 내가 듣기로 쿤드리 역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드레스덴 판이 아닌 파리 판 <탄호이저>였다면 고니시 준코가 더욱 돋보였을 텐데 아쉽다. (파리 판 <탄호이저>는 1막 베누스의 독창 부분에서 화성적으로나 관현악법으로나 훨씬 두터운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후의 양식이 나타나며, 그래서 파리 판의 베누스는 <파르지팔>의 쿤드리를 예견하게 한다. 그에 비하면 드레스덴 판의 베누스는 평범한 화성과 단출한 반주로 평면적인 성격을 보인다.) 한 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12일 공연에서는 역시 사람들이 1막을 꽤 지루하게 느꼈던 것인지, 아니면 지각한 사람이 많아서였는지(2, 3층 사정이 어땠는지 모르겠다. 1층은 오히려 1막이 끝나고 이른바 '싸장님' '싸모님'들이 꽤 빠져나가고 없었다.), 그도 아니면 야한 의상 때문에 민망해서 그랬는지, 1막이 끝난 뒤에 객석의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는 것이다. 조연이 하나씩 나와서 인사를 하고 난 뒤에 주인공이랍시고 베누스가 나왔는데, 무대의 분위기는 당연히 '브라바'가 나와야 할 것 같았지만 객석이 워낙 '얌전'해서 내가 감히 '브라바'를 외칠 수가 없었다. 대신 13일 공연에서는 1막과 3막이 끝나고 한 번씩 '브라바'를 외쳐주었다.

엘리자베트 역의 가키하나 요코는 맑고 고운 음색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파르지팔>의 꽃처녀(팜플렛에는 '마법의 을녀1'이라고 되어 있다. '갑남을녀' 할 때 을녀?)를 맡은 적이 있단다. 3막 엘리자베트의 기도 장면에서 목관과 너무나 잘 어울렸던 목소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2막에서 성난 기사들 앞을 막아서는 장면에서는 상당히 힘있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객석으로부터 가장 열광적인 환호를 받은 가수가 아닐까 싶다. 12일 공연의 하타다 히로미도 배역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볼프람 역의 하기와라 히로아키는 경력을 보면 바그너 가수가 아닌 모양이지만, 조금 다듬으면 본격적으로 바그너를 해도 될 것 같다. 힘을 좀 더 키우면 보탄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12일 공연의 후지무라 마사토는 암포르타스 역을 맡은 적이 있단다. 그래도 하기와라에 비하면 한 수 아래라고 느꼈다.

양치기 소년은 노회한 양치기의 목소리라 영 어색했다. 역시 일본에서도 보이 소프라노가 귀한 모양이다. 오카모토 스미는 팜플렛의 사진을 보면 꽤 귀엽게 생겼지만 목소리는 그다지 맑지 않았고 비브라토는 깊고 둔중했다. 그런데 연기는 또 어린아이 연기를 제대로 하니 민망한 부조화가 느껴졌다. 막이 내리고 인사를 하러 나올 때에도 폴짝 폴짝 뛰어나오는 것이 귀엽다기보다는 부담스러웠다. 네 명의 시동은 단역임에도 썩 훌륭했다. "Wolfram von Eschenbach, beginne!" 하는 대목이 너무나 맛깔스러워 아직까지도 귀에 맴돈다.

<탄호이저>를 국내 초연한 것은 1979년 국립오페라단이며 고(故) 홍연택 선생이 지휘를 맡았다 한다. 1974년에는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1976년에는 <로엔그린>을 초연했으며, 세 작품 모두 한글로 번역해 공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이 네 번째로 바그너 오페라 전막을 공연한 것이며, 원어로는 초연인 셈이다. 다음 차례는 오는 9월, <니벨룽의 반지>다. 반지의 권능이 한국을 향했나니!

2005년 6월 14일 씀.
2005년 6월 15일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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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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