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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0일 일요일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19세기 협주곡 중에는 차라리 교향곡에 가까운 짜임새를 보이는 작품이 더러 있다. 브람스 협주곡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이야말로 그 효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협주곡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특히 1악장을 이루는 주제들이 그물처럼 긴밀하게 얽혀 있으며, 그 긴밀함은 베토벤의 다른 협주곡을 압도하는 수준이다. 그리고 1악장을 시작하는 팀파니의 네 음 음형이 악장 전체의 씨앗이 된다.

독주 바이올린은 교향악적 짜임새의 중심적 역할을 맡는다. 특히 3악장 코다에서 그동안 쌓인 음악적 긴장이 으뜸화음을 만나 폭발하는 대목(마디 329)이 압권인데, 베토벤은 D장조 으뜸화음을 길게 늘인 화성 진행(I-VI-I-ii-V-I)을 되풀이하면서 마치 '승리의 팡파르' 같은 분위기를 내되 그 고양감을 독주 바이올린 선율에 집중시켜 놓았다. 독주 바이올리니스트는 이곳을 작품 전체의 절정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하며, 그래서 화려한 음형을 뽐내는 여느 협주곡과 사뭇 다른 음악적 역량이 필요하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변주곡 형식, 3악장은 론도 형식이다.

2013년 5월 23일 목요일

작품 설명: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림스키-코르사코프 《세헤라자데》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 팸플릿과 웹매거진에 실은 글입니다.

☞ 원문 링크 : http://g-phil.kr/?p=1507

▶ 베르디 《운명의 힘》 서곡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은 서곡이 가장 유명하지요. 이 글에서는 음악에 관해 자세히 얘기하기보다 줄거리를 알려드릴 테니 상상하면서 들어 보세요.

레오노라는 잉카 제국 왕족인 돈 알바로와 사랑하는 사이이지만, 레오노라의 아버지인 칼라트라바 후작이 그것을 반대합니다. 레오노라는 망설인 끝에 알바로를 따라 몰래 도망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칼라트라바 후작이 칼을 들고 막아서고, 알바로는 총기 오발로 후작을 죽이게 됩니다. 두 사람은 따로 갈라져 도망칩니다.

레오노라의 오빠인 돈 카를로가 두 사람을 추적합니다. 레오노라는 알바로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먼 친척인 수도원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수도원 근처에 있는 작은 동굴에서 홀로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알바로는 레오노라가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기를 바랍니다. 카를로가 전쟁터에서 알바로를 만나고, 두 사람은 서로 알아보지 못한 채 영원한 우정을 맹세합니다.

알바로는 부상을 당해 후송됩니다. 알바로는 카를로에게 비밀 상자를 건네며 열지 말고 태워 달라 부탁하지만, 카를로는 상자를 열어 알바로의 정체를 알고 복수를 다짐합니다. 알바로가 완쾌된 뒤 카를로가 결투를 신청했다가 무산되는 과정에서 알바로는 레오노라가 살아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알바로는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고 수도사가 되어 '라파엘'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카를로는 알바로를 찾아내고 결투를 벌인 끝에 중상을 입습니다. 카를로는 죽기 전 종부성사를 간청하고, 알바로는 가까운 동굴에 사는 수녀를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레오노라를 만납니다. 카를로는 레오노라를 칼로 찌른 뒤 죽고, 레오노라는 카를로를 용서한 뒤 죽습니다. 수도원장이 달려와 세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판본에 따라 알바로가 자살하기도 합니다.)

▶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딱히 표제가 없는 작품이므로, 음악 외적인 설명을 늘어놓는 대신에 조금 딱딱하더라도 악곡의 짜임새를 설명하겠습니다. 이른바 '소나타 형식'에 관해서는 많이들 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을 위해 간략하게나마 설명할게요.

소나타 형식은 크게 보아 제시부―발전부―재현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제시부는 제1 주제, 그와 대비되는 제2 주제, 그리고 경과구 따위로 이루어져 있고, 발전부는 제시부 주제가 자유롭게 '발전'하는 곳입니다. 재현부는 제시부를 그대로 또는 비슷하게 되새기는 곳이고요. 때로는 앞뒤로 서주(intro)와 종결부(Coda)가 덧붙을 수도 있습니다. 소나타 형식을 제대로 설명하려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지만, 여기서 복잡한 얘기는 더 하지 않겠습니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은 변형된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지요. 제1 주제는 길고 어둡고 화려하지만 으스스한 바이올린 독주가 이끌고, 오케스트라는 때로 거드는 식입니다. 목가적인 제2 주제는 첼로와 바순으로 시작하고 클라리넷, 오보에, 플루트와 바이올린이 선율을 받아 뒤따릅니다. 그리고 독주 바이올린이 제2 주제를 애달프게 울부짖는 느낌으로 고쳐 연주합니다. 오케스트라가 다시금 선율을 이끄는 대목은 '작은 종결부'(codetta), 또는 관점에 따라 제3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 1악장 제2주제

▲ 1악장 제2주제의 변형(독주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악장이 끝나기 직전에 협연자가 홀로 화려하게 연주하는 대목을 카덴차(cadenza)라고 하지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제1 주제에서 제2 주제로 넘어가기 직전에 카덴차를 닮은 빠르고 화려한 음형이 나오고, 1악장 발전부가 통째로 카덴차를 대신합니다.

발전부가 끝나면, 제시부가 변형된 재현부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짧은 종결구(Coda)와 함께 1악장이 끝납니다.

짜임새가 복잡한 것은 1악장까지입니다. 2악장은 A-B-C 세 도막으로 되어 있지만, 이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음악을 들으면서 저마다 슬픈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서럽게 울부짖는 바이올린 소리와 함께 쓰라린 마음을 그러모았다가 쓸쓸한 선율 속에 떠내려 보내세요.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3악장은 A-B-A'-B'-종결구 꼴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빠른 음형으로 쉼 없이 달리는 짜임새입니다. 듣기 좋은 선율과 다채로운 음색, 북유럽의 자연을 연상시키는 서늘한 공기, 그 공기를 뚫고 쏟아지는 밝은 햇빛처럼 화려한 독주 바이올린이 멋진 악장입니다. 협연자가 기교를 마음껏 뽐내는 모습이 더욱 멋지지요.

▶ 세헤라자데, 셰에라자드, 샤흐르자드

《세헤라자데》는 『천일야화』에 나오는 왕비 칭호를 가리키는 제목입니다. 원작 『천일야화』는 페르시아어이고, 프랑스 작가 앙투안 갈랑이 프랑스어로 옮겨서 유럽에 알려졌으며, 영국 작가 리처드 프랜시스 버튼이 옮긴 영어판이 가장 유명합니다. 판본이 복잡한 만큼 표기법도 복잡해요.

『천일야화』에 나오는, 페르시아 왕비를 부르는 이름은 본디 샤흐르자드(شهرزاد‎)입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에서는 페르시아어 한글 표기법을 아직 정하지 않았고, 『천일야화』 관련 표기는 프랑스어를 기준으로 할 것을 권장합니다. 그래서 셰에라자드(Shéhérazade)가 되지요.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러시아 작곡가이므로 러시아어 표기까지 참고하자면 셰헤레자다(Шехерезада)가 됩니다.

그러나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헤라자데'라 쓰기로 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표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다른 이름은 페르시아어를 기준으로 쓸게요. 이를테면 왕은 '샤흐르야르'입니다. 또 《세헤라자데》 악장마다 붙은 표제에도 페르시아어를 바탕으로 '신드바드'와 '칼란다르' 등으로 썼습니다.

▶ 림스키-코르사코프 《세헤라자데》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교향적 모음곡 《세헤라자데》는 각 악장이 『천일야화』의 특정 에피소드를 묘사한 곡은 아닙니다. 다만, 작곡가가 나중에 다음과 같은 표제를 덧붙였다고 하지요.

1. 바다와 신드바드의 배

2. 칼란다르 왕자

3. 왕자님과 공주님

4. 바그다드의 축제. 바다. 청동 기병으로 둘러싸인 절벽에서 배가 난파함

작곡가가 자서전에 쓴 설명에 따르면, 《세헤라자데》 1악장 처음에 나오는 짧고 묵직한 음형은 샤흐르야르, 그러니까 왕을 뜻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나오는 바이올린 독주가 '세헤라자데'를 뜻하지요. '세헤라자데' 음형은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조금씩 달라진 모습으로 계속 나오니까 잘 기억해 두세요.

뒤이어서 첼로가 같은 음형을 고집스럽게 되풀이하기 시작합니다. 비올라가 때때로 거듭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느낌이 '파도'를 닮았지요. 바이올린이 그 위에서 '샤흐르야르' 음형을 살짝 고친 '바다' 음형을 연주합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 샤흐르야르의 사나운 성격은 거친 바다의 이미지와 겹치지요. 바다는 때로 거칠고, 때로 잔잔합니다.

2악장 '칼란다르 왕자'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헤라자데는 더 화려하고, 어찌 들으면 요염합니다. '칼란다르'는 종교지도자에게 붙이는 칭호인데, 2악장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칼란다르도 신드바드처럼 배를 타고 있는 듯해요. 햇볕 따사로운 나른한 오후에 갑판에서 무언가 흥미진진한 '사건'이 일어나는 모습이 떠오르거든요.

3악장 '왕자님과 공주님'은 달콤한 사랑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제까지와 달리 음악이 한참 흐르고 나서야 '세헤라자데' 바이올린 독주가 나옵니다. 펼침화음으로 마치 협주곡의 카덴차처럼 화려한 음형을 연주하더니 오케스트라의 사랑 노래를 이끌어 버리지요. 마치 '왕자님과 공주님'은 다름 아닌 '샤흐르야르와 세헤라자데'라고 속삭이는 듯합니다! '세헤라자데'를 달리 쓰면 '샤흐르자드'라 했지요. '샤흐르야르와 샤흐르자드'는 '아사달과 아사녀' 또는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사랑 노래가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4악장에서는 살타렐로(Saltarello), 타란텔라(tarantella) 등 빠른 춤곡 리듬으로 마구 달리는 가운데 앞선 악장에서 나온 음형들이 이 리듬과 엇갈리고 뒤섞입니다. 살타렐로와 타란텔라는 거의 비슷하므로 이 글에서 머리 아프게 차이를 설명하지는 않을게요. 둘 다 이탈리아 춤곡 양식이라는 대목이 얄궂은데요, 생각해 보면 아라비아 사람들이 춤추고 놀 때 무슨 음악을 듣는지 머릿속에 얼른 떠오르나요? 설마 '뚫흙 뚫흙 뚫 따다다?'

신 나는 축제 분위기는 '바다' 음형을 만나고 배가 난파하면서 파국을 맞습니다. 바다가 잔잔해지면 '세헤라자데'(바이올린)와 '서툴게 다정해진 샤흐르야르'(첼로 및 더블베이스)가 여운을 주는 대화를 나누면서 음악이 끝납니다.

세헤라자데는 어떤 사람일까요? 무서운 임금님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여장부? 임금님을 유혹하는 요녀? 마음 깊은 곳 상처를 달래는 어머니? 경기필 정하나 악장님이 바이올린으로 들려주는 세헤라자데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하세요!

※ 티켓 예매 바로가기 :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GoodsCode=13004033

2011년 6월 28일 화요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 /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 휴 울프 / 서울시향

2011-06-03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 휘 : 휴 울프
바이올린 :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프로그램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을 15곡 남겼다. 그러나 9번 교향곡을 들어보면 쇼스타코비치가 '9번의 저주'를 의식했음을 역설적으로 알 수 있다. 베토벤 이래 교향곡 9번이라 하면 작곡가가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 진지한 작품, 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작품 등으로 여겨지곤 했다. 그런데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은 숫자가 주는 상징성과는 달리 유머로 가득하다. 웃음으로 저주를 물리치고자 했다는 뜻이다. 번스타인은 '9번'이라는 숫자 자체가 이 작품에서는 유머라고도 했다.

분위기가 가벼워서인지, 이 작품은 지휘자가 개성을 드러낼 만한 대목이 좀처럼 없다. 음반을 들어 봐도 비슷비슷한데, 지휘자 휴 울프는 그래도 나름대로 자기 색깔을 넣고자 노력하는 듯했다. 2악장 템포를 악보에서 지시한 ♩= 208보다 두 배나 느리게 잡은 대목은 그다지 특이하지 않다. 그런데 마디를 잘게 나눠 박자를 저어준 대목은 참 인상 깊었다. 템포가 이처럼 느리면 리듬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고 이른바 '만득이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 이 문제를 가장 손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휴 울프처럼 해주는 것이지만, 모양새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더 좋은 앙상블을 이끌어 내고자 지휘자가 그만큼 노력했다는 뜻이니 칭찬해 마땅하다.

휴 울프는 단원들에게 맡겨도 될 만한 독주 악구까지 지휘봉으로 모두 통제하는 듯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4악장에서 5악장으로 넘어갈 때 템포 변화였다. 악보에서 지시한 템포는 4악장 ♪ = 84, 5악장 도입부 ♩= 100이다. 4악장에서 5악장으로 곧바로 넘어가면서 바순 독주가 갑자기 템포를 바꾸고 리듬도 빨라진다. 점잖은 유머다. 그러나 휴 울프는 이 대목을 좀 더 매끄럽게 다스리고 싶었나 보다. 4악장에서 5악장으로 넘어가면서 템포 변화를 거의 주지 않았고, 주제 선율이 두 번째로 되풀이될 때에 아첼레란도를 주었다. 현악기가 주제 선율을 받을 때에는 악보에서 지시한 ♩= 100보다 좀 더 빠른 ♩= 120쯤으로 달렸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만큼 멋진 바순 독주가 있는 관현악곡은 드물다. 바순은 다른 악기와 섞이면 존재감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바순은 독주 악기라기보다는 다른 악기와 섞어서 음색에 변화를 주는 악기이며, 이런 바순에 독주를 맡기려면 다른 악기를 조심해서 써야 한다. 오케스트라 바순 주자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그런데 이날 오랜만에 곽정선 수석이 멋진 솜씨를 뽐냈다. 곽정선은 얼마 전까지 직책이 수석대행이었지만, 이번에 시향 홈페이지에 가 보니 수석으로 바뀌었다.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가 곽정선을 홀로 일으켜 세운 일만 세 차례나 되었다.

또 지금은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수석이 된 전임 트럼펫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가 오랜만에 객원으로 솜씨를 뽐냈다. 트롬본 수석 노릇을 한 객원 연주자도 훌륭했는데, 누군가 싶어서 알아보니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앙투안 가네(Antoine Ganaye)라고 한다. 2악장에서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과 함께 멋진 연주를 들려준 못 보던 클라리넷 연주자가 있어서 시향 홈페이지에 가 보니 이름이 정은원이다. 3악장에서 피콜로를 연주한 장선아도 훌륭했다.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에서는 E♭ 클라리넷을 연주한 임상우 부수석이 돋보였다. 본디 악보에는 D조 클라리넷으로 연주하라고 나오지만, 이 악기는 요즘 거의 사라진 탓에 E♭ 클라리넷으로 이조해 연주하는 일이 보통이다. 지난해 3월 스테판 애즈버리 지휘로 같은 곡을 연주했을 때에도 임상우가 E♭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이날도 그때처럼 곧고 날카롭고 빈틈없는 소리가 멋졌다.

지난해 연주와 견주자면 이날 앙상블이 좀 더 깔끔했지 싶다. 그날 몇몇 연주자들이 실수했던 대목이 이번에는 모두 말끔하기도 했다. 다만, 매끄럽고 균형 잡힌 소리 때문인지 음향 효과를 과감하게 살리는 맛은 조금 모자랐다. 템포 변화도 애즈버리와 견주면 평면적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녹음한 협주곡 음반을 들어 보면, 바이올린 소리가 작아서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지 못해 답답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티큘레이션에서도 절제가 묻어난다. 그런데 이날 브람스 협주곡을 들어보니 음반과는 달리 남들보다 소리가 아주 조금 작을 뿐이었다. 이날 연주는 모든 면에서 이성과 감성이 브람스답게 조화를 이룬 명연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악기를 온몸으로 연주하는데 소리가 저렇게밖에 안 난다고? 현대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더니 그 때문일까?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과연, 소리가 작은 악기인데 테츨라프라서 티가 덜 나는 것이란다. 현 네 줄에서 뽑아내는 음색이 테츨라프만큼 고른 연주자도 없는 듯한데, 이 또한 악기 때문일까, 아니면 연주법에 무슨 비밀이 있을까? 테츨라프가 쓰는 그라이너 바이올린이 모델로 삼았다는 과르네리 바이올린을 테츨라프가 연주하면 어떨지 궁금하다. 또는, 옛날에 썼다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으로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하면 어떨지도 궁금하다.

2011년 5월 16일 월요일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 /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 스베틀린 루세브 / 리오 후세인 / 서울시향

2011-03-24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리오 후세인
협연: 스베틀린 루세브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스트라빈스키, 불새 모음곡 (1945년판)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어라? 그런데 이번에는 잘린 곳이 없는 듯? 으허허허! >_<


예술 사조를 구분 짓는 잣대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들이대는 오류를 무릅쓴다면, 드뷔시스트라빈스키모더니즘이 미처 꽃피기에 앞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씨앗을 뿌린 작곡가라 할 수 있다. 이 말을 설명하려면 20세기 모더니즘 음악을 대표할 만한 이른바 '12음 음악'의 뿌리를 캐 봐야 한다.

18세기 화성 이론을 세운 작곡가이자 이론가 장필리프 라모는 화성 진행 원리를 뉴턴 중력 이론에 빗대어 설명하며 음악이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는 생각을 퍼트렸다. 이에 따라 음악 이론과 계몽주의 사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이것이 베토벤에 이르러 "고난을 거쳐 별들의 나라로"(per aspera ad astra)라는 말과 더불어 인류가 끝없이 발전하고 진보하리라는 믿음으로 발전했다.

12음 음악 또한 이러한 음악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서양음악이 '발전'하던 방향으로 미루어 볼 때 12음 음악이 나타난 일은 필연이라는 주장에 수많은 음악학자가 동의한다. 따라서 12음 음악은 오해와 달리 전통과 단절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전통을 완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드뷔시스트라빈스키야말로 뿌리 깊은 전통을 거부한 혁명가이다. 조성을 버리지는 않았으나 기능 화성 작법에서 벗어나 음악이 '발전'하지 않고 그저 흐르고 자라고 되돌아오게끔 했기 때문이다. 드뷔시는 이단아 취급을 받은 정도였지만, 스트라빈스키모더니즘이 힘을 얻던 때를 만나 모진 비난을 견뎌야 했다. 이를테면 아도르노는 스트라빈스키가 "지붕을 뜯어내 버렸고, 그래서 이제 그의 대머리 위로 빗물이 흐른다"라며 비꼬았다.

모더니즘이 절정에 이르며 조금씩 한계를 드러내던 때에 불레즈는 「쇤베르크는 죽었다」라는 악명 높은 글을 내놓았다. 이 글에서 불레즈는 19세기 음악을 확장·완성했을 뿐인 쇤베르크가 아니라 음색을 현대적으로 다루는 법을 알려준 베베른을 작곡가들이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색이 중요해지면서 드뷔시스트라빈스키말러 등과 함께 재조명 받았다.

오늘날 드뷔시스트라빈스키 곡을 연주하려면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까? 무엇보다 《불새》는 스트라빈스키 자신이 지휘해 남긴 음반이 있어서 작품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낱낱이 알 수 있는데, 이 작품을 새로 연주하려면 그것을 그대로 따라야 할까? 스트라빈스키가 의도한 바를 멋지게 '배신'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불레즈는 음 하나하나가 낭비 없이 드러나도록 하며 베베른 음악에서 볼 수 있는 이른바 '음색선율'(Klangfarbenmelodie)을 《불새》에서도 연상하게끔 했다. 리카르도 샤이는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라는 특급 악단의 기능성을 살리며 세련되고 균형 잘 잡힌 음색을 뽑아냈다.

서울시향을 지휘한 리오 후세인은 조금 느린 템포로 소리를 꼼꼼하게 풀어냈으며, 때때로 연주가 너무 차분해서 긴장감이 떨어진 대목은 옥에 티였다. 현 소리에 비브라토로 멋을 내어 낭만주의 냄새를 풍긴 대목은 음악에 감정이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스트라빈스키가 들었다면 싫어했을 법하다. 그러나 예술의 전당이라는 대형 연주회장과 그에 걸맞은 대편성 악단이 연주할 때 이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닌데다가 스트라빈스키가 뜻한 바를 곧이곧대로 살리는 일이 반드시 옳지도 않다.

지휘자가 보인 작품 해석은 무난했으며, 서울시향 실력에 걸맞은 깔끔한 앙상블과 다채로운 음색을 이끌어낸 대목은 칭찬할 만했다. 도입부가 끝날 무렵 나오는 변주에서 플루트와 피콜로가 새 소리를 흉내 내고 다른 악기가 그것을 따라 하는 대목이 가장 훌륭했고, 신 나게 두드려 대는 〈코시체이 왕의 사악한 춤〉도 멋졌다. 크게 부풀어 오르며 '브라보'를 부르는 〈피날레〉도 좋았다.

첫 곡으로 연주한 드뷔시 《목신의 오후 전주곡》에서도 모범적인 해석에 깔끔한 앙상블이 돋보였으며, 무엇보다 목관악기 연주자들이 아름다운 음색을 뽐냈다.

드뷔시는 프랑스 작곡가이고,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 작곡가이나 《불새》는 목관악기 비중을 높이는 등 프랑스 청중을 고려해 작곡했다. 멘델스존은 독일 작곡가이지만, 이날 협연자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인 스베틀린 루세브였다. 서울시향 악장이기도 한 스베틀린 루세브는 사실 국적은 불가리아이나 연주에서 프랑스 느낌이 많이 묻어났다. 다른 연주자가 끊어 연주하는 곳도 웬만하면 매끄럽게 이어 연주했으며, 반드시 스타카토로 연주해야 하는 곳만 너무 거칠지 않게 끊어 연주했다. 포르타멘토는 프랑스식 포르타멘토라 불리는 B-포르타멘토를 썼다.

스베틀린 루세브는 지난 2008년 12월에 베토벤 협주곡을 협연하기도 했는데, 그때와 견주면 연주법은 비슷했으나 베토벤보다는 멘델스존이 루세브와 더 잘 맞는 듯했다. 서울시향과 함께한 시간이 더 쌓인 만큼 오케스트라와 더욱 한 몸처럼 어우러진 탓도 있겠다.

2010년 12월 24일 금요일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 브람스 교향곡 1번 ― 다비트 아프캄 / 바이바 스크리데 / 서울시향

2010-11-18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다비트 아프캄 David Afkham, conductor
협연 : 바이바 스크리데 (바이올린) Baiba Skride, violin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Beethoven, Violin Concerto
브람스, 교향곡 1번 Brahms, Symphony No. 1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본디 이날 지휘자가 마크 위글스워스였는데, 이 인간이 일정 취소하고 인디애나폴리스 오케스트라로 갈아탔음. 공식 사유는 건강 문제. 잊지 않겠다. -_-^


서양음악에서 셈여림이 음악적 표현 수단으로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때는 대략 18세기 중반부터였다. 악기가 크게 개량되고 터키(오스만 튀르크)에서 타악기가 수입되었으며, 여기에 고전주의 음악 양식이 맞물려 나타났다. 오늘날 쓰이는 셈여림 기호는 대부분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이 만들었다. 그리고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에도 이러한 흐름에 따른 뚜렷한 셈여림 대비가 나타난다.

협연자 바이바 스크리데는 독주 바이올린으로도 뚜렷한 셈여림 대비를 만들었고, 그 중심에 이른바 '소토 보체'(sotto voce)가 있었다. 소토 보체란 본디 성악에서 쓰는 말로 여린 목소리를 뜻한다. 그러나 '피아니시모' 등과는 달리 그저 소리를 작게 내라는 뜻이 아니라 여린 소리로도 음악적 긴장감을 잃지 말고 돋보이게 하라는 뜻이다.

바이올린으로 가장 멋진 소토 보체를 뽐내는 연주자로는 바딤 레핀이 있는데, 윗활을 곧잘 써서 매끄럽게 빛나는 음색에 어찌 들으면 능글맞은 포르타멘토를 곁들이곤 한다. 스크리데는 그와 달리 가냘프게 늘어지는 소리를 들려주었으며, '소토 보체'라는 말 그대로 연주가 아닌 '노래'를 하는 듯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1악장에서 발전부를 한참 지나 g단조로 바뀌는 마디 330부터였다. 스크리데는 이곳에서 템포를 뚝 떨어트려 여린 소리를 내다가 오케스트라가 피치카토로 연주하는 마디 361에 이르러서야 아첼레란도 및 크레셴도를 거쳐 재현부로 돌아왔고, 그로써 재현부 으뜸화음이 눈부시게 돋보이기도 했다.

2악장에서는 둘째 변주가 끝날 무렵 쉼표와 셋잇단음이 네 차례 이어지는 대목(마디 27)에서 소토 보체와 함께 디미누엔도, 랄렌탄도, 루바토를 알맞게 섞어서 마치 울먹이는 듯한 효과를 불러온 대목이 가슴 뭉클했다.

3악장에서는 소토 보체를 빼놓더라도 곳곳에서 성악적 감수성이 묻어나는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돋보였고, 코다에서 그동안 쌓인 음악적 긴장감이 으뜸화음을 만나 폭발하면서 그 에너지가 독주 바이올린 f# 음에 집중되는 마디 331이 가장 훌륭했다.

카덴차는 크라이슬러 것을 연주했으며, 다만 2악장 카덴차는 첫 마디 아르페지오만 연주하고 넘어갔다.

지휘자 다비트 아프캄은 지난 9월 베토벤 교향곡 3번을 지휘한 로렌스 르네스처럼 현을 6-5-4-3-2로 편성했고, 악기 배치도 유럽식으로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좌우로 나누고 첼로 등을 가운데로 모았다. 로렌스 르네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또한 역사주의 연주에 영향받은 바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브람스 교향곡 1번에서는 현을 7-7-6-5-4로 부풀렸으며, 다만 관악기는 호른을 한 대 더블링(doubling)한 것을 빼면 2관 편성을 지켰다. 저음 현으로 갈수록 가볍게 편성한 탓에 이를테면 1악장에서 때때로 저음 현 음형이 잘 안 들리는 등 단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적으로는 장점이 되었고,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이 좌우로 나뉜 배치에서 오는 '스테레오 효과'가 두드러지게끔 했다.

이를테면 3악장 곳곳에서 '스테레오 효과'가 멋졌으며, 4악장 이른바 '알프스 호른' 대목에서는 좌우로 펼쳐진 바이올린 소리가 물결에 반짝이는 아침 햇살처럼 빛났다. 4악장 코다에서 절정을 바로 앞두고 '음 하나하나를 매우 또렷하게'(ben marcato) 지시가 있는 마디 395-406에서는 '스테레오 효과'와 함께 마치 벌판에서 말 달리는 듯한 현 소리가 가장 돋보였다.

템포는 조금 빨랐고, 그 가운데 3악장이 제법 빨랐다. 4악장에서는 '알프스 호른' 대목과 제1 주제를 지나 경과구(transition)로 넘어가기에 앞서 아첼레란도를 주었는데, 그 뒤로 웬만하면 템포를 늦추지 않고 꾸준히 달리면서 음악적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다가 마지막에 크게 터트렸다.

호른이 '알프스 호른' 대목을 비롯한 곳곳에서 깔끔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이 곡에서 제법 비중이 높은 악기인 오보에도 훌륭했다. 그 가운데 오보에 수석 이미성서울시향이 개편한 뒤로 악단과 함께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더욱 칭찬할 만하다. 이미성은 처음부터 직책이 '수석'은 아니었다. 그러나 음악적 표현력이 나날이 좋아져서, 지난해 1월 연주회 리뷰에서 글쓴이는 이미성이 "벽을 넘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성은 수석 단원이 되었으며, 이날은 더욱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다.

서울시향정명훈이 지휘할 때 가장 뛰어남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젊은 악단'이기 때문일까. 서울시향은 젊고 솜씨 있는 지휘자를 만났을 때 깜짝 놀랄 만한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다. 또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지휘자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어서 젊고 훌륭한 지휘자가 곧잘 눈에 띈다. 그리고 1983년생 다비트 아프캄 또한 이날 연주를 들어 보니 크게 될 사람이 틀림없다. 이름을 기억해 두시라.

2010년 6월 6일 일요일

메시앙 《잊혀진 제물》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라벨 《어미 거위》 《라 발스》 ― 비비아네 하그너 / 정명훈 / 서울시향

2010-05-20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정명훈
협연: Viviane Hagner

메시앙, 잊혀진 제물 Messiaen, Les Offrandes oubliées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Chin, Violin Concerto
라벨, 어미 거위 Ravel, Ma Mère l’Oye
라벨, 라 발스 Ravel, La Valse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5년을 준비해왔습니다. 이제는 유럽 무대에서도 꿀리지 않을 기량을 보여줄 자신이 있습니다.”

서울시향이 유럽 무대에서 연주한다. 억지로 만들어낸 연주회가 아니라 정식으로 초청받아 갔다고 한다. 김주호 대표 말처럼, 이제는 서울시향이 유럽에서 상품성을 인정받게 됐다는 뜻이다. 정명훈이라는 거장이 지닌 이름값만으로 악단이 덩달아 인정받기는 어렵다. 서울시향이 그만한 실력을 길렀기에 가능한 일이다.

"준비가 덜 됐을 때는 안 하는 게 나아요. 괜히 창피만 당한다고. 하지만 이젠 준비가 됐어요. 적어도, 유럽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선 겁니다.”

정명훈은 이렇게 말했단다. 지난 5년 동안 서울시향을 지켜본 글쓴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수석급 단원들은 웬만한 유럽 지방악단에서도 한 자리 차지할 만한 실력을 지녔고, 그 가운데 한둘은 유럽에서도 수석 자리를 노릴 만하다. 몇몇 외국인 단원은 유럽 악단 수석을 겸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재정적·행정적 지원이 있으면 그리 오래지 않아 이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이다. 역사와 전통 없이 현이 제대로 된 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서울시향이 유럽에 간다는 말은 현이 그만한 수준에 올랐다는 말이다. 글쓴이가 판단하기에 현악 연주자들이 보여주는 응집력이 때때로 유럽 수준을 살짝 넘보게 된 때가 지난해 즈음이다. 실수 없이 악보를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뉘앙스를 자연스럽게 살려내는 일이 지난해부터 차츰 늘고 있다. 악기군끼리 어우러짐 또한 크게 늘었다.

이날 연주회는 유럽에서 연주할 곡들을 미리 선보이는 자리였다. 그 가운데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이 가장 반가웠다. 서울시향이 이 곡을 연주한 일이 두어 차례 있지만, 글쓴이는 그때마다 다른 일 때문에 기회를 놓쳐서 실연은 이날 처음 들었다. 아직 악보를 개인에게 팔지 않고 오케스트라에 빌려주기만 하는지라 글쓴이는 이 곡을 음반으로만 알 수밖에 없었는데, 이날 연주를 들어보니 켄트 나가노가 지휘한 몬트리올 심포니 녹음은 너무 얌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은 마림바와 여러 타악기 따위를 음반보다 앞세워 가믈란(gamelan;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 또는 악기) 느낌을 조금 더 살렸고,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대등하게 어우러져 교향곡 느낌마저 들었다. 스튜디오 작업을 거친 음반이 실연과 다른 탓도 있겠으나, 그것을 헤아려도 이날 타악기가 독주 바이올린 소리를 자신 있게 치고 나올 때가 잦았다.

1악장에서 큰북이 내는 묵직한 소리가 독주 바이올린과 어우러지는 대목을 글쓴이는 참 좋아하는데, 이날 시향 타악기 연주자 김문홍이 무대 오른쪽에서 큰북을 맡아 마치 바이올린과 2중주를 하는 듯했다.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는 무대 왼쪽 벽 가운데쯤에 바짝 붙어서 글록켄슈필과 갖가지 타악기를 연주했고, 김미연은 무대 왼쪽 뒷벽에서 마림바 따위를 연주하는 등 타악기만으로도 입체감을 주었다.

여기에 다른 악기 소리가 마치 살아있는 빛알갱이처럼 뭉치고 흩어지곤 했으며, 독주 바이올린은 빛 가루를 뿌리며 무리를 이끌고 날아다니는 듯했다. 빛 요정들이 떠들썩하게 장난을 치는 모습이 이럴까. 협연을 맡은 비비아네 하그너는 어렵기로 소문난 이 곡을 마치 가볍게 몸 풀듯 아무렇지도 않게 연주하곤 했으나 개방현으로 연주하는 대목에서는 몇 차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라벨 관현악곡은 화려한 색채감을 빼면 짜임새가 단순해서 연주자의 해석이 끼어들 곳이 적으며, 음색을 얼마나 맛깔스럽게 살리느냐가 연주자에게 중요할 때가 잦다. 이날 연주된 《어미 거위》 모음곡과 《라 발스》 또한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지휘자 역할이 매우 중요하면서도 지휘자 못지않게 악단이 많은 주목을 받게 할 수 있으니 서울시향을 유럽에 알리기에 매우 훌륭한 곡이라 하겠다.

이날 연주는 시시콜콜 따질 일 없이 그저 좋았다고만 말해도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이미 여러 차례 연주한 일이 있어서 서울시향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곡이라고도 할 만한 《라 발스》는 말할 것도 없고, 《어미 거위》 모음곡 또한 심각한 표정 지을 일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곡에 나무랄 데 없는 연주였다.

메시앙 《잊혀진 제물》도 훌륭했지만, 사납게 몰아치는 가운데 부분에서 현이 조금 더 단단히 뭉친 소리를 내주었으면 싶었다. 서울시향이 앞으로 더 나아질 곳이 얼마든지 있음이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 하겠는데, 정명훈 말마따나 이번 유럽 연주 여행이 “서울시향의 단원들에게 큰 공부와 자극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자신들을 되돌아볼 기회도 생길 테고, 음향이 훌륭한 연주회장을 두루 경험해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눈이 잔뜩 높아질 서울시향 단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전용 연주회장이다. 계획에 차질 없이 하루빨리, 그러나 음향에는 배려에 모자람 없이 지어지기를 바란다.

2010년 3월 31일 수요일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 1번 ― 김소옥 / 피오트르 보르코프스키 / 서울바로크합주단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45주년 기념 특별정기연주회Ⅰ

2010년 3월 16일(화) 저녁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지휘: 피오트르 보르코프스키 Piotr Borkowski
• 바이올린: 김소옥
• 색소폰: 그렉 바나스작 Greg Banaszak
• 오보에: 사토 키아오야마 Satoki Aoyama
• 클라리넷: 히데미 미카이 Hidemi Mikai
• 호른: 마코토 가나보시 Makoto Kanaboshi
• 바순: 모토코 가와무라 Motoko Kawamur

• A.Vivaldi - Concerto for 2 violins & 2 cellos in G major F.IV/1
• F.Chopin - Suite Chopiniana (이윤국 편곡) 한국초연
• Pierre Max Dubois - Concerto for Alto Saxophone & Orchestra
• W.A.Mozart - Sinfonia Concertante for Winds in E-flat Major, K.297b
• 류재준 - Violin Concerto No.1 Op.10 한국초연


※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연예술창작기금지원사업으로 기획한 국민평가단 평가 자료를 겸하는 글이며, 평가서 항목에 맞추어 썼음을 밝힙니다.

▶ 공연작품의 예술적 수월성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문화예술위원회 평가 대상 공연에서 연주된 다른 창작곡과 견주어 압도적인 예술성을 자랑했다.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연주는 훌륭했으나 악단이 그동안 쌓아온 역사와 전통에 걸맞은 수준에는 조금 못 미쳤으며,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현대음악에 어울리는 음향을 충분히 살려냈다 하기 어려웠다.

▶ 공연계획 실행의 충실성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원주의(Pluralism) 양식을 보이며, 이러한 대목에서 이날 연주된 곡들과 관련성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빼면 다른 곡들과 연결고리가 탄탄하다 하기 어려우며, 이날 전체 공연 구성은 '다양성'이라는 말로 미화하기에는 난잡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 공연성과 및 해당분야 발전에의 기여도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이미 낙소스(Naxos)에서 음반으로 발매했을 만큼 뛰어난 곡임이 이미 증명되었으며, 이 곡을 한국 초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공연은 그 가치가 높다.

▶ 총평

※ 공연 관계자와 김원철의 친분 관계 요약

김원철은 공연 관계자와 이렇다 할 친분관계가 없다. 그러나 서울바로크합주단 음악감독 김민은 한국바그너협회를 만든 사람으로 자칭·타칭 바그네리안인 김원철이 김민의 업적과 영향력을 존경해 마지 않음을 밝혀 둔다.

작곡가 류재준이 대표이사로 있는 ㈜오푸스에서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류재준 음악을 두고 "네오 바로크시즘이라는 장르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한 성과"라 했다는 마리안 보르코프스키(Marian Borkowski) 폴란드 쇼팽 음악원 교수의 평이 눈길을 끈다. 원문을 확인해 보아야 하겠지만, '네오 바로크시즘'이라는 말은 류재준을 알리는 데 알맞은 말이라 보기 어려우며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첫째, '바로크'(Baroque)라는 말에 '―ism'을 붙이려면 '바로키즘'(Baroquism)이라 해야 옳다. 'Classicism'(고전주의)와 'Romanticism'(낭만주의)를 흉내 내느라 별생각 없이 '바로크시즘'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모양이나, 음운론에 비추어 보면 무지를 드러내는 말일 뿐이다.

둘째, 고전주의 및 낭만주의와는 달리 바로크 양식에는 본디 '주의(―ism)'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고전주의·낭만주의를 '―주의'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것이 계몽주의 및 시민사회 담론과 얽힌 사회 이념 또는 운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크 양식은 예술 양식일 뿐이므로 이념을 뜻하는 '주의(―ism)'라는 말을 붙일 까닭이 없다. 다만, 20세기 예술사를 헤아린다면 '네오바로키즘'이라는 말을 어떤 예술사조를 뜻하는 말로 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생긴다.

셋째, '네오바로키즘'이라는 말은 바로크 양식에서 무엇인가를 되살렸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서양음악 작곡가들이 바로크 양식을 끌어다 쓴 일은 드물지 않으며, 그러한 작품을 모두 '네오바로키즘'이라 불러야 하는가 하는 물음이 뒤따른다.

'네오바로키즘'이라는 말은 아마도 류재준 스승인 펜데레츠키 후기 양식을 일컬어 때때로 '신낭만주의'(Neo-Romanticism)라 하는 일과 관련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류재준 음악이 '신낭만주의'와 구분되는 특징을 찾던 마리안 보르코프스키는 류재준 음악이 펜데레츠키보다 바로크 양식과 닮은 곳이 더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으리라 짐작된다. 자세한 맥락을 알려면 펜데레츠키 음악 양식 변화를 20세기 음악사에 비추어 살펴보아야 한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인류가 무한히 발전하리라는 믿음을 바탕에 두었으며, 이것이 모더니즘으로까지 이어졌다. 19세기 기능화성이 12음 기법으로 옮겨갔을 때에도 이러한 패러다임은 바뀌지 않았고, 이른바 총열주의(Total Serialism) 음악은 그것이 발전한 끝에 나타난 결과라 할 수 있다. 드뷔시와 스트라빈스키를 비롯한 몇몇 작곡가가 일찍이 이러한 믿음에 의문을 던지기는 했으나 포스트모더니즘이 나타나고 나서야 이것이 뿌리부터 흔들리게 되었다.

1960년대에 이르러 리게티와 펜데레츠키 등이 내놓은 이른바 '음향음악'(Klangkomposition)은 '구조'와 '발전'을 따지던 패러다임을 비틀어 놓았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새롭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 음악 전통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펜데레츠키는 1965/66년 《누가 수난곡》에서부터 20세기 작곡가들이 일부러 벗어나고자 했던 전통적 음악 어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이른바 '신낭만주의'를 거쳐 다원주의(Pluralism) 양식으로까지 이어졌다.

펜데레츠키는 1982년 『첼로협주곡 2번』으로 신낭만적 음악경향에서 벗어났다. 낭만적 이상과 연결시킴에 따라 때때로 펜데레츠키는 자신의 초기 양식을 부정했어야만 했다면, 여기서 벗어나 자유로운 다원주의를 추구함에 따라 즉 "옛" 펜데레츠키를 다시 새롭게 복원하게 된다. 이 시기부터는 펜데레츠키는 양식의 연속성을 확고히 하고(즉 작곡 양식 발전의 단절을 없애고), 또한 양식의 다원주의를 찾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다원주의 Pluralismus〉는 한편으로 순수한 조성을 사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초기의 소음적 양식을 연결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더 나아가 보다 폭 넓은 차원의 양식을 수용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 오희숙, 『20세기 음악 I: 역사·미학』 (서울: 심설당, 2006). 314쪽.

음악이 발전하리라는 믿음을 펜데레츠키는 이렇게 무너뜨렸다.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이러한 역사를 잇는 작품이며, 많은 곳에서 펜데레츠키 후기 음악 양식이 엿보인다. 펜데레츠키가 즐겨 썼다는 단2도 음형인 이른바 '탄식' 모티프가 작품에 뿌리를 이루고 있으며, 악보 맨 앞에는 이 곡을 펜데레츠키에게 헌정한다는 말이 나온다. 펜데레츠키가 류재준을 후계자로 선언했다고도 한다.

예술 작품이 다른 사람이 쓴 작품과 비슷하다는 말은 으레 칭찬이 아니다. 그러나 베베른과 베르크를 쇤베르크의 아류라 하지 않듯이, 류재준 음악이 펜데레츠키와 닮았다고 해서 류재준 음악을 낮추어 볼 까닭은 없다.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 1번에는 펜데레츠키 작품에서 곧잘 나타나는 탄식과 절망도 있으나 그 못지않게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뚜렷하게 나타나며, 힘찬 리듬이 얽히는 대위법과 "말러처럼 강렬한 클라이맥스"(exquisitely scored, almost Mahler-like climaxes; 마리안 보르코프스키), 정교한 관현악법 등에서 독창성을 찾을 수 있다.

펜데레츠키, 루토스와프스키, 구레츠키와 류재준 등을 묶어서 '바르샤바 악파'라 부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바르샤바' 하면 쇼팽이 먼저 생각나니 '신 바르샤바 악파'라 해도 좋겠다. 신빈악파와 닮은 말이라 더욱 좋다. '신 바르샤바 악파'의 음악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양식적 다양성을 보이면서 무엇보다 오래 듣기 부담스러울 만큼 진지하고 엄숙하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억지스러운가?

서울바로크합주단의 연주는 그저 무난했으며, 다른 작품을 제법 훌륭하게 연주한 일과 견주어 보면 류재준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곳곳에서 리듬이 뭉개지거나 현대음악다운 음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대목에 아쉬움이 남았다. 지휘자 피오트르 보르코프스키는 세계초연 지휘자이자 낙소스(Naxos)에서 발매한 음반에서도 지휘를 맡은 바 있으니, 아무래도 현대음악 전문 앙상블이 연주했다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 곡에서 가장 멋진 곳이 'Misterioso'(마디 428)부터 끝까지라고 생각한다.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엇갈린 리듬으로 마치 미니어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텍스처를 만들어 내는 가운데 글록켄슈필이 두 차례 맑게 울린 다음, 팀파니와 탐탐 따위가 갑자기 '빠바밤 빠바밤' 하고 세게 두드려대면서 음악이 끝난다. 그러나 이날 연주에서는 마치 사람들이 웅성거리듯 현이 두루뭉술한 리듬을 만들어낸 데다가 글록켄슈필이 이끌어 내는 음색 대비도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으며, 끝내 타악기가 조금은 뜬금없이 쿵쾅거리다 끝나버리고 말았다. 세계초연자이기도 한 김소옥의 협연은 훌륭했다.

2009년 9월 2일 수요일

2008.12.30.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9번 - 스베틀린 루세브 / 정명훈 / 서울시향

※ 나중에 고침: 니키친 → 니키틴(Никитин)

원래 ☞《파르지팔》 2막이었다가 프로그램이 바뀌어버린 연주회. 실바스티, 네메스, 니키틴이 각각 파르지팔, 쿤드리, 클링조르였는데 뒤늦게 인드라 토마스가 끼어들어 앙상블을 망쳐놓은, 그러나 그것만 빼면 참 좋았던 연주회.


2008년 12월 30일(화)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Svetlin Roussev/vn, Indra Thomas/sop, Judit Nemeth/mez, Jorma Silvasti/ten, Evgeny Nikitin/bar, 서울시합창단, 국립합창단, 서울모테트합창단

Beethoven,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61
Beethoven, Symphony No. 9 in d minor, Op. 125 "Choral"


정명훈 지휘자는 서울시향을 맡고서 그 이듬해부터 악단 기본기를 닦겠다며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2년 만에 다시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하게 되었으니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다를까. 먼저 단원들이 저마다 더 나은 솜씨를 길렀고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와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 등 훌륭한 연주자를 새로 뽑기도 했다. 악단이 함께 만들어내는 소리도 더욱 좋아졌다. 또 지지난해와는 달리 연주회장이 세종문화회관이 아니라 예술의 전당이라 더욱 듣기 좋은 소리가 되었다.

정명훈의 해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편성 악단을 쓰고 템포를 대체로 느리게 잡으면서도 금관을 뒤로 물려서 소리에 기름기를 빼는 등 역사주의 연주 경향을 중용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옛날 녹음에만 익숙한 사람에게는 맥빠진 연주라고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특히 4악장 도입부에서는 트럼펫이 주선율을 연주하는 옛 관습을 버리고 악보 그대로 연주하는 유행을 따랐으며, 그 때문에 목관악기가 주선율을 연주하고 트럼펫은 목관악기를 살짝 거들기만 하면서 투명한 소리를 내었다. 지지난해에는 연주회장이 저 거대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라 이 대목에서 마치 앙상블이 갑자기 와르르 무너진 것처럼 들렸으나 올해에는 제법 그럴싸한 소리가 났다. 2악장 둘째 주제(마디 93)에서도 마찬가지로 호른이 주선율을 이끄는 대신 뒤로 물러나 악보대로 연주했다.

1악장 종결구 저음 오스티나토(ostinato)가 시작되는 마디 513에서 템포를 크게 늦춘 다음 1악장이 끝날 때까지 속도를 높인 것도 여전했다. 3악장 마디 133에서는 제2 바이올린이 피아니시모로 연주해야 하지만 서울시향은 일부러 포르티시모에 마르카토로 꾹꾹 눌러 마치 비올라처럼 들리게 했다. 시향이 연주한 3악장은 밝고 포근했으나 이 대목만큼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느낌을 올해에도 받았다. 그래, 따듯한 위로를 받았으니 한 번쯤 목놓아 울기도 해야겠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하면서 독창자들이 연주를 망치지 않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없다. 가수들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를 때에는 잘해도 교향곡에서 다른 악기에 녹아드는 데에는 익숙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외국에서 제법 잘 나가는 가수들을 모셔와서 기대했는데 소프라노만 아니었으면 참 좋았을 뻔했다. 소프라노 인드라 토마스가 노래할 때마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화음이 망가지곤 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고음 처리가 까다로운 마디 841에서는 억지로 소리를 쥐어짜느라 리듬엔블루스처럼 되어버렸다. 연주가 끝나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소프라노를 탓하는 소리가 컸다. '오 벗이여, 이 소리가 아니야!'

가수들이 무대 앞으로 나오지 않고 금관악기와 나란히 서서 노래한 탓도 있었을 것이다. 목소리가 다른 악기와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하려면 이렇게 하는 게 좋으며 지지난해에도 그렇게 했다. 그러나 금관악기와 타악기 소리 때문에 가수들이 제 목소리를 듣기 어려워지는 게 문제다. 게다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은 무대 위 음향이 매우 나쁘다고 한다. 가수 바로 뒤에 투명한 반사판을 두었으나 그것만으로는 한참 모자랐던 모양이라 베이스바리톤 예프게니 니키틴은 노래할 때마다 오른손을 귀에 갖다대기도 했다. 나는 그래도 가수를 뒤에 두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대에 적응할 시간을 좀 더 주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예프게니 니키틴은 지난 2005년 바그너 <니벨룽의 반지> 국내 초연 때 보탄(방랑자)을 맡았던 가수다. 그때는 목소리가 꽤 단단했는데 3년 만에 다시 보니 조금 부드러워진 대신 깊은 소리로 바뀌었다. 그러나 작품 성격이 다른 만큼 고약한 독일어 발음이 더 자주 발목을 잡았고 이것이 좋지 않은 루바토로 이어져 선율이 느슨해지곤 했다. 특히 /r/ 발음에 굳이 모음 하나 음표 하나를 더 넣어 부르는 게 마음에 안 들었으며,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 할 때 엉뚱하게도 "Wo" 바로 뒤에 숨을 쉬어버려 가사 전달과 선율 흐름을 모두 망치기도 했다. 다만, 중창 때에는 다른 가수와 어울려 훌륭한 앙상블을 이루었다.

테너 요르마 실바스티는 경력을 보면 상대적으로 다른 가수들에 밀리는 듯싶지만 이날 노래를 들어보니 오히려 가장 뛰어났다. 맑고 탱글탱글하면서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악단과 하나가 되었고 딕션 또한 나무랄 데 없었다. 메조소프라노 유디트 네메스는 비중이 작아서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으나 테너와 함께 화음에 탄탄한 기둥을 만들어 내는 솜씨가 매우 훌륭했으며 딕션도 좋았다.

합창단은 이날 진짜 주인공이었다 할 만큼 멋졌다. 우리나라 합창단 어려운 사정은 안 봐도 뻔한데 이렇게 좋은 연주를 해내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시향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는 부드럽고 우아한 '프랑스풍' 연주를 들려주었다. 베토벤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싫어할 사람도 있을 듯싶지만, 편견을 버리고 들으면 매우 훌륭한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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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1일 월요일

2008.08.12.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 프랑크 페터 침머만 / 정명훈 / 서울시향

2008년 8월 12일(화)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프랑크 페터 침머만 (바이올린)

Beethoven, Violin Concerto in D, Op. 61
Dvorak, Symphony No. 9 in e, Op. 95 "From the New World"



음식 재료를 여러 가지 많이 쓴다고 아무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러나 여러 재료를 두루 잘 쓰는 요리사는 재료가 다양할수록 더 맛있는 음식을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셈여림, 빠르고 느림, 거친 소리와 매끈한 소리 등 표현할 수 있는 재료가 많을수록 좋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프랑크 페터 치머만은 가지가지 재료를 적절히 쓰는 재주가 남달랐다. 이를테면 빠른 음형에서 윗활로 긁으면서 매끄러운 소리를 내다가도 다른 부분에서는 아랫활로 날카로운 소리를 내기도 했고, 때때로 발까지 굴러가며 힘차게 활을 그어댔으며 여린 소리는 또 매우 여리게 내서 뒤쪽에 앉은 사람은 잘 안 들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연주회장이 세종문화화관이 아니라면 좋았으련만.

치머만의 연주가 딱딱했다는 의견이 더러 있던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음향 탓에 소리가 좀 메마르게 들리기도 했고 연주자가 독일 사람이라 그런지 잔꾀를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연주해서 무뚝뚝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딱딱하다는 말은 너무 한쪽만 보고 한 말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데 가만 보니 <SPO> 연주자 소개말에 이런 말이 있다.

"그는 매우 냉철하면서 객관적으로 음악을 대하는 연주자다. 감정보다는 이성을, 흥분하여 말하기보다는 논리적으로 표현하려 하고 디테일 또한 절대 대충 처리하는 법이 없다."

이 말은 치머만이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만 연주하는 메마른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믿는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 말에 절대 동의하지 않는다. 저 말에서 '그'를 '브람스'로, '연주자'를 '작곡가'로 바꿔보면 어떨까? 작곡 기법을 따지자면 참말로 옳다. 브람스만큼 논리적으로 작곡한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브람스 음악이 '머리로 듣는' 음악인가?

치머만은 브람스 같은 연주자다. 가지가지 재료를 적절히 쓰는 방법에는 치밀한 계산이 뒷받침하는 듯했지만, 그 소리에는 깊은 감성이 우러나왔다. 그에게 이성과 감성 가운데 어느 하나가 먼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중용'이라는 말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연주자가 또 있을까.

치머만이 들려준 연주는 다 좋았지만 딱 한 군데 내가 싫어하는 해석을 보여준 곳이 있었다. 3악장 마디 331에 나오는 F# 음을 너무 짧게 끊어버린 것이다. 이곳은 작품 전체의 절정에 해당하는 곳으로 D 장조 으뜸화음을 길게 늘인 'I-VI-I-ii-V-I'꼴 화성 진행을 되풀이하면서 마치 '승리의 팡파르'같은 분위기를 내되 그 고양감을 독주 바이올린 선율에 집중시켜 놓았다. 여기서 F# 음에 따라붙는 화음은 버금가온화음(VI)이고 앞 마디의 선율 D-C#-D-E-F#에 이어져 화성과 선율 모두 F# 음에 고양감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치머만은 이 중요한 음을 악보에서 지시한 것보다도 훨씬 짧게 지나가듯 연주했다. 소리를 좀 더 늘여서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는 금빛 반짝이는 소리를 들려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앙코르로 연주한 파가니니의 <신이여 왕을 지켜 주소서> 변주곡은 치머만의 왼손 테크닉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소름 끼치도록 잘 보여주었다. 하긴, 테크닉이 이쯤 되고 보면 감성적인 연주자라는 소리를 듣기 어렵기도 하겠다.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은 '응원 교향곡'이라고도 불릴 만큼 4악장 제1 주제가 응원가로 자주 쓰이기도 하고 또 386세대에게는 '전대협 팡파르'로 기억되기도 한다. 이런 지나친 명성은 자칫 음악이 선정적으로 흐르게 할 위험이 있으며, 더군다나 이 작품에 자주 나타나는 민요풍 선율과 리듬을 잘못 살리면 자칫 촌스러워지기 쉽다. 정명훈은 템포를 제법 느리게 잡고 저음 현을 두드러지게 한 '거장풍' 해석으로 위험을 비켜갔다.

특히 1악장 도입부에서는 악보에 있는 메트로놈 지시보다 두 배 이상 느린 템포로 시작해 음형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빨라지도록 했으며, 코다에 유난히 힘을 실어주고 템포도 바짝 조여서 마치 1악장 전체에 크레셴도와 아첼레란도를 준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4악장 도입부에서도 느린 템포로 시작해 아첼레란도를 썼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을 따르지만 제2 주제가 나오기 앞선 마디 91에서 플루트와 오보에가 연주하는 '사이비' 제2 주제가 나오는 점이 특이하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브루크너가 그렇게 한 것처럼 주제 셋을 거느린 별난 소나타 형식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전통적인 형식에 맞추어 보면 이 주제는 제2 주제가 될 수 없다. 이 작품이 e 단조를 따르므로 제2 주제는 e 단조의 관계장조인 G 장조라야 하지만 이 주제는 g 단조이기 때문이다. 정명훈은 진짜 제2 주제가 나오는 마디 149에서 템포를 크게 늦추어 제1 주제 및 '사이비' 제2 주제와 뚜렷이 구분하고 전통적인 형식미를 살렸다.

2악장에서는 잉글리시 호른 독주도 멋있었지만, 마디 54부터 나오는 콘트라베이스 피치카토와 마디 78부터 나오는 첼로 트레몰로를 주선율처럼 앞세운 것이 이날 연주 가운데 가장 멋있었다. 다만, 마디 107부터 109까지 세 번 나오는 모두쉼표(Generalpause)를 느린 템포에 비해 가볍게 다룬 것이 조금은 뜻밖이었다. 3악장이 끝나기 바로 앞서 나오는 모두쉼표 또한 과장없이 가볍게 처리했다. 3악장 템포는 악보 지시보다 빠른 편이었고 금관과 팀파니의 활약이 돋보였다.

4악장에서는 저 유명한 제1 주제도 좋았지만 제2 주제(마디 66) 클라리넷 선율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객원인지 단원인지 헷갈리는 이 연주자는(나중에 붙임: 서울시향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 얼마 전부터 시향 정기연주회에서 좋은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데, 나는 이제 완전히 팬이 되어버렸다. 마디 320에서 곡을 끝맺기 전에 잠시 힘을 빼며 호른과 팀파니가 폭풍전야처럼 긴장감을 쌓아가는 것도 나무랄 데 없었다.

이 작품은 '신세계로부터'라는 표제가 말해주듯이 미국을 노골적으로 찬양한 작품이다. 그러나 정명훈은 앙코르로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 4악장 '환희'를 연주하기에 앞서 올림픽 출전 선수를 응원하는 말을 해서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또한 '응원 교향곡'으로 만들었다. 어쨌거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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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0일 일요일

2008.05.27. 랄로 스페인 교향곡 / 생상스 교향곡 3번 - 유진 우고르스키 / 폴 메이어 / 서울시향

2008년 5월 27일(화)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폴 메이어
협연자 : 유진 우고르스키 (바이올린) / 이한나 (오르간)

Chabrier, España
Lalo, Symphonie espagnol
Saint-Saens, Symphony No. 3 in c minor, Op. 78 "Organ"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은 제목과 달리 바이올린 협주곡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보통 협주곡과는 달리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주거니 받거니 하기보다는 독주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달린다고 하는 게 더 옳다. 협연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무지 쉴 틈도 없이 마구 달려야 하며 절대로 오케스트라에 뒤처지면 안 된다. 협연자는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 "나를 따르라!" 그런데 문제가 있다. 빨리 달려야 하는데 음표가 너무 많다. 빠른 음표가 끝도 없이 나온다. 3악장짜리가 아니라 5악장짜리라 갈 길이 먼데 막판으로 갈수록 더 까다롭다. 발 한 번 삐끗하면 꼴사납게 넘어지게 생겼다. 음악에 긴장감을 잔뜩 쌓아 놨다가 크게 터트리는 맛도 없이 그저 얌전히 생글거리다 끝나버리니 고생한 것을 관객이 알아주지도 않는다.

이번 연주회에서 협연을 맡은 유진 우고르스키는 이 까다로운 곡을 큰 실수 없이 차분히 잘 연주했다. 이것만으로도 크게 칭찬해 줄 만하다. 이 작품을 실연으로 이만큼 연주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커도 너무 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오케스트라에 파묻히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낸 것도 대단하다. 그 때문인지 음 하나하나를 함부로 다루지 않고 꾹꾹 깊이 눌러 연주했다. 때때로 남다른 활놀림으로 색다른 맛을 내었고, 고음 현은 밝고 저음 현은 어둡게 하여 뚜렷한 음색 대비를 주기도 했다. 다만, 저음 현과 고음 현을 오가면서 음색이 차츰 바뀌지 않고 느닷없이 바뀌어 어색하게 들리곤 한 것은 옥에 티였다.

5악장에서 탬버린 대신 작은북(snare drum)을 쓴 것이 매우 참신했다. 악보 지시를 지키지 않은 것은 원칙적으로 좋지 않지만, 연주회장이 너무 커서 모든 악기 소리가 밋밋해지는 마당이라 오히려 작은북이 음악에 양념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탬버린보다 더 크고 찰기 있는 소리로 마치 고수가 판소리꾼 이끌듯 흥을 돋웠다.

1악장 마디 253에서 플루트가 악보에서 지시한 것보다 더 나서서 독주 바이올린과 완전히 대등하게 주고받은 것도 재미있었다. 악보에는 독주 바이올린이 매우 세고 또렷하게(ff ben marcato) 연주하는 동안 플루트와 클라리넷이 나란히 매우 여리게 연주하도록 지시하고 있지만, 플루트가 좀 더 앞으로 나서주면 독주 바이올린과 선율이 얽히면서 감칠맛을 낼 수도 있다. 서울시향 플루트 주자는 이것을 더욱 과장하고 협연자는 살짝 뒤로 물러나서 플루트가 살짝 선율을 이끌어가기까지 했다. 지휘자 폴 메이어가 관악기 연주자라 일부러 그렇게 시켰을까?

생상스 교향곡 3번은 실연으로 좋은 연주를 듣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바로 파이프 오르간 때문이다. 파이프 오르간은 원래 교회 음향에 어울리는 악기인데, 연주회장은 교회와는 음향이 많이 다르며 특히 잔향 시간이 짧다. 이런 까닭에 음반에 담을 때에는 파이프 오르간을 따로 녹음하곤 한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은 전문가가 인정하는 매우 훌륭한 악기이지만 연주회장 잔향이 너무 짧아서 장난감 같은 소리를 냈다. 중저음에 비해 중고음이 너무 세다는 인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것 또한 잔향 좋은 성당에서라면 알맞게 들렸을 듯싶다. 다만, 오르간이 아니면 낼 수 없는 극저음은 아주 좋았다. 특히 1악장에서 달콤한 화음에 극저음을 더한 오르간 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오르간은 역시 극저음이 제맛이다.

오르간 음량이 너무 커서 오케스트라 소리가 묻혀 버린 것도 불만이었다. 오르간을 연주한 이한나에게 물어봤더니 오르간 소리가 큰 게 낫다는 의견이 많아서 그렇게 했단다. 하긴, 잔향도 짧은 데다가 파이프가 연주회장 오른쪽에 있어서 오케스트라와 어울리지 못하고 따로 노는 마당이라면 차라리 오르간이 소리를 꽉 움켜쥐고 끌고 가버리는 게 나을 것 같다.

파이프와 콘솔이 멀리 떨어져 있고 그 사이를 오케스트라가 가로막고 있어서 오르간 주자가 박자 맞추는 데 애를 먹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케스트라 소리가 커질수록 더 그랬는데, 건반을 눌러 소리가 날 때까지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것 같았다. 오르간 주자가 박자를 미리 계산해서 한참 먼저 건반을 눌러야 했다는 말이다. 콘솔이 파이프 가까이 있었다면 이 문제는 해결되었겠지만, 지휘자와 멀리 떨어져 의사전달에 어려움이 생길 테니 그것도 좋지 않다. 연습실이 따로 있어서 연주회 당일에서야 부랴부랴 오르간 특성에 적응해야 했다니 지휘자가 예비박을 주기도 곤란했을 터다. 시향 전용 연주회장이 있어서 연주회장과 연습실이 다르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고약한 것을 생각하면 오르간 주자는 사실 박자를 매우 잘 맞췄다. 오르간 전문 연주자들은 박자감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생상스 오르간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논 레가토(non legato), 즉 끊어치기다. 19세기 프랑스에는 이어치기가 크게 유행했는데, 생상스는 이것이 앞선 세대에 유행했던 과장된 끊어치기(détaché)에서 나온 반작용이며 좋지 않다고 보았다. 교향곡 3번은 오르간 곡이 아닌 오르간이 들어간 교향곡이므로 논 레가토를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으며, 필요할 때는 오르간 대신 오케스트라가 끊어 연주하도록 악보에서 지시하고 있다. 그러나 2악장 마디 392 같은 곳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오르간 소리에 완전히 묻혀버렸기 때문에 오르간이 끊어 연주한 것이 매우 적절했다. 마디 419에서는 긴장감 넘치는 화성에 맑은 음색으로 너무 끊어 연주하니 뿅뿅거리는 소리가 되어버렸다. 잔향 탓이 크겠지만 음색을 좀 더 거칠게 만들어줬더라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생상스는 빠른 음형을 논 레가토로 연주하는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2악장 마에스토소 바로 뒤에 피아노 고음이 반짝반짝하는 음형(마디 384)도 원래는 오르간 논 레가토를 의도했다가 아예 피아노에 맡긴 것이 아닐까 싶은데, 실제로 잔향을 넉넉하게 잡고 녹음한 음반을 들어보면 오르간 소리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날 피아노는 오르간 콘솔 가까이 있어서 파이프와는 멀리 떨어졌는데다가 오케스트라 소리에 묻혀서 잘 들리지도 않았던 점이 안타까웠다. 피아노를 오르간 파이프 가까이 두려면 콘트라베이스를 밀어내야 할 판이라 오케스트라 배치가 엉망이 될 테니 그것도 문제다.

만약에 연주회장이 명동 성당이었다면 어땠을까. 글쎄, 오케스트라가 곤란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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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6.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 교향곡 5번 - 미하일 시모냔 / 이고리 그루프만 / 서울시향

2008년 4월 16일(수)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이고르 그루프만
협연자 : 미하일 시모냔(바이올린)

Shostakovich, Festive Overture
Tchaikovsky, Violin Concerto in D, Op. 35
Tchaikovsky, Symphony No. 5 in c, Op. 64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유명한 외국 연주회장의 1.5배에서 2배 규모로 연주회장치고는 비정상적으로 크다. 음향이 나쁘다는 원성이 큰 것도 주로 이 때문이다. 연주회장 음향은 연주자에게도 큰 영향을 주는데, 거대한 연주회장은 특히 협주곡을 연주할 때 협연자에게 크나큰 고난으로 다가온다. 이럴 때 협연자는 보통 셋 가운데 하나를 고른다. 큰 장소에 맞는 큰 소리를 내려고 무리하다가 크기만 할 뿐 듣기 싫은 소리를 내버리거나, 그 반대로 모기 소리가 나든 말든 평소대로 연주해버리거나, 또는 갑자기 아파서 연주를 할 수 없게 되거나. 그러나 솜씨 있는 목수는 연장 탓을 하지 않는다 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연주자가 예술가로서 어떤 자세를 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시험대가 될 수도 있겠다.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미하일 시모냔은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낸 훌륭한 연주자였다. 큰 소리를 내려고 활놀림을 힘차게 하면서도 연주를 망칠 만큼 무리하지는 않고 중용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힘을 적게 들이면서 큰 소리를 내는 '보잉 내공'도 꽤 훌륭했다. 솜씨 좋은 연주자일수록 활이 현에 찰싹 달라붙는 듯 단단한 소리를 잘 내는데, 시모냔은 바로 이 '찰싹 달라붙는 소리'를 곧잘 냈다. 다만, 큰 소리 내는 데 신경 쓰는 만큼 군데군데 삐걱거리는 곳도 있었는데 이를테면 1악장 카덴차 직전에 음정이 꽤 크게 어긋났다.

1악장 템포를 느릿하게 잡아서 긴장감이 조금 떨어졌던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주회장 음향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거니와 템포를 조금 늦추면 실수 없이 큰 소리를 내기 쉽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1악장 독주 부분이 몹시 길고 쉬는 곳도 잘 없어서 마라톤 뛰듯이 페이스 조절을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쉽다. 다만, 1악장 마지막에 D 음을 반복하며 긴장감을 높여갈 때에는 그래도 좀 더 빠르게 몰아쳤으면 하는 아쉬움을 버릴 수 없었다.

3악장 마디 565 또는 그 앞서 같은 음형이 나오는 마디 314에서는 관현악 합주로 이어지는 4분 음표에서 호흡이 끊기는 데다 그 간격도 일정하지 않고 절뚝거려서 오케스트라가 맞춰주느라 애를 먹었던 점이 옥에 티였다. 협연자가 활을 어떻게 쓰는가 살펴봤더니 활 아래쪽 1/3 부근에서 힘차게 긁어대다가 4분 음표에서 활 아래쪽 끝으로 폴짝 옮겨서 거의 풀 보잉(full bowing)을 한다. 이때 활을 옮기느라 호흡이 끊겼던 것이다. 상행 음형을 끝맺는 4분 음표를 과장해서 크레셴도 효과를 내려고 했던 모양으로 아마도 연주회장 음향을 생각해 좀 더 힘차게 연주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다고 본다. 마디 565는 작품의 절정에 해당하는 곳인데 호흡이 끊긴 만큼 긴장감이 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케스트라가 이때 썩 잘해주어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연주를 끝맺을 수 있었다.

3악장에서는 군데군데 반복구를 생략하는 관습이 있는데, 이를테면 마디 71-82, 마디 259-270, 마디 420-427 등은 생략할 때가 잦다. 그런데 요즘은 또 생략 없이 그대로 연주하는 게 유행인 모양이다. 역사주의 연주가 널리 힘을 얻은 것과도 관련이 있을까 싶지만, 또 알고 보면 이 유행은 그보다 역사가 오래된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음반 녹음을 하면서 다른 작품을 같이 넣고도 CD 용량을 넘어서지 않도록 연주시간을 줄이려는 목적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그런데 마하일 시모냔은 이날 반복구를 생략하고 연주했다. 왜 그랬을까?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연주는 금관의 강력한 소리와 팀파니의 묵직한 두드림을 앞세워 커다란 연주회장에 걸맞았다. 지휘자 이고리 그루프만이 러시아 사람이라 그런지 금관 악기 음색이 더욱 거칠게 느껴졌는데, 그러면서도 므라빈스키처럼 주선율이 다른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미쳐 날뛰는 게 아니라 저음을 제법 묵직하게 깔고 그것을 바탕으로 두터운 화음을 만들며 부선율을 놓치지 않는 등 뛰어난 균형감각을 보여주었다.

3악장에서 중간에 그로테스크한 면을 살리지 않고 세련되기만 하게 연주한 것은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특히 마디 56 이후에 나오는 바순 독주에서는 마치 잔치에 갑자기 불청객이 끼어든 듯 낯설고 갑작스러운 느낌을 살리지 않고 그저 말끔하게 연주했다. 피아노(p)에서 포르테(f)로 재빨리 크레셴도를 하도록 악보에서 지시한 것을 지키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메조포르테 정도로 연주했으며 A# 음의 악센트도 살리지 않았다. 헤미올라(hemiola) 리듬 역시 매끄럽게만 연주해서 3박자 리듬의 단절에 따른 긴장감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 작품을 지배하는 정서는 '달콤한 절망과 거짓된 승리'라 할 수 있다. 많은 평론가가 지적하고 차이콥스키 자신도 인정한 것처럼 이 작품이 끝맺는 방식은 솔직하지 못하고 과장되었다. 차이콥스키는 고통을 이겨내려는 의지를 작품에 담아내지 못한 듯 보이며, 그래서 이 작품은 끝내 현실을 회피해버린 작곡가의 정신적 마스터베이션이다. 교향곡 6번에 끝없는 절망과 체념이 담긴 까닭도 이것으로 미루어 헤아릴 수 있다.

그런데 이날 서울시향의 연주는 사납게 몰아치면서도 감정의 기복은 지나치게 크지 않고 어느 정도 절제되고 안정되어 있었다. 피날레는 진짜 승리 또는 적어도 자신을 철저히 속이는 가짜 승리인 것처럼 느껴졌다. 병든 광기는 즐거운 축제가 되었다. 그것대로 듣기 좋았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관이 그토록 사납게 울부짖었고 템포 또한 악보에 있는 메트로놈 지시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느꼈을까? 고민 끝에 나는 연주회장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연주회장 음향 특성에 따라 소리의 심리적인 거리가 매우 멀게 느껴져서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새로 짓는다던 시향 전용 연주회장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을까?

정보공유라이선스

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22일 토요일

2007.03.22, 25.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 리게티 추모 연주회

진은숙의 Ars Nova 1
2007년 3월 22일(목)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Pascal Rophé
협연자 : 강혜선(바이올린)

Unsuk Chin: Allegro ma non troppo for percussion and tape (13')
György Ligeti: Atmosphères (9')
Conlon Nancarrow (1912-1997) Tango
Claude Debussy (1862-1918) Le matin d’un jour de fête [The morning of the festival day] (from: Ibéria; 1905-1908)
Igor Stravinsky (1882-1971) Quatre Etudes
György Ligeti (1923-2006) Violin Concerto
 
진은숙의 Ars Nova 2
2007년 3월 25일(일) 오후 6시
세종 체임버 홀
    
지휘자 : Pascal Rophé
 
Conlon Nancarrow : Toccata for xylophone, marimba, piano and violin (1935)
György Ligeti: Chamber Concerto (19'15")
Hans Abrahamsen: Märchenbilder (Fairy Tale Pictures) (14')
Chris Paul Harman: Theme and Variations for eight musicians (18')
György Ligeti: Poème symphonique for 100 metronomes (20')



리게티(Ligeti György Sándor, 1923-2006)는 20세기 후반 서양음악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그가 작년에 타계했으니 추모의 물결이 이는 것이 마땅하지만, 사실 진은숙이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가 되지 않았다면 이번 추모 음악회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한국 음악계의 역량이 아직 현대음악 작곡가를 추모할 정도가 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는 한국 음악계에 복이다.

'현대음악'이라는 말은 대중에게 '이해불가'와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그 뿌리깊은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에서 사용하는 장치는 일종의 당의정(糖衣錠)이다. 드뷔시, 스트라빈스키 등 대중에게 비교적 익숙한 작곡가들의 작품으로 현대음악의 뿌리를 엿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날 첫 곡으로 연주된 진은숙의 타악기 주자와 테이프를 위한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Allegro ma non troppo>는 한발 더 나아가 대중이 가진 고정관념의 근본을 뒤흔들어줄 한 수로 적절했다. 이 작품은 구체음악(musique concrète)으로 분류되는데, 그 원류는 1948년 셰퍼(Pierre Schaeffer)에서 찾을 수 있지만 소음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1913년 루솔로(Luigi Russolo)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미 100년 가까이 지난 낡은 생각이고 대중음악에서도 종종 '새로운 시도'로 소개되어온 아이디어이지만, 현대음악에 익숙지 않은 사람에게 이것은 여전히 새롭다. 그러나 고정관념을 한 꺼풀 벗겨내고 나면 사실은 새로울 것도 없다. 우리는 물소리, 바람소리, 새 소리 등을 가리켜 '자연의 음악'이라 말하곤 한다. 작곡가는 이런 소리를 입맛에 맞게 모아놓고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그것이 작곡가의 의도대로 조직되었다면 피아노 등의 '보통' 악기를 사용한 음악과 다를 것도 없다. 음악 별거 있나.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는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라는 뜻으로 고전-낭만주의 시대 교향곡 등에서 즐겨 쓰이던 나타냄 말이다. 진은숙은 왜 이 작품에 이런 엉뚱한 제목을 붙였을까? 각종 타악기와 소음이 어우러진 이 작품도 알고 보면 '보통' 교향곡과 다를 것도 없다는 뜻은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이 작품은 종이를 바스락거리는 등의 퍼포먼스에 의해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으니 이것을 그대로 소나타 형식에 대입시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발전부'에 해당하는 가운데 부분에서는 특히 동굴에 들어온 듯한 음향과 그에 어울리는 탐탐(tam-tam) 소리 등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각종 타악기가 한꺼번에 '쾅' 하고 바로 이어 들리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특히 짜릿했다.

리게티의 <아트모스페르 Atmosphères>는 '대기(大氣)'와 '분위기'의 이중적인 의미가 있으며, 이른바 클러스터(cluster) 기법을 사용한 '미크로폴리포니(micropolyphony)'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클러스터 기법은 12 음 음악이 청자에게 지각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비판에 기초하면서 선율, 화성, 리듬의 구조를 모두 해체하여 순수한 음향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기법으로 '소음의 해방'과 비슷한 시기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아트모스페르>를 이루는 선율과 리듬과 화성은 미립자(微粒子)처럼 존재하며 실제로 귀에 들리는 소리는 각각이 덩어리, 즉 클러스터가 되어 '얼어붙은 시간'(리게티의 용어) 속에서 정지한 듯 흘러간다. 지휘자 파르칼 로페(Pascal Rophé)는 '나무'와 '숲' 가운데 나무를 살리는 데 좀 더 치중하는 듯했으며, 미시적인 움직임 속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음색을 전율할 만큼 섬세하게 살려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미세한 소리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이 감당하기 어려워 보였으며, 뒷자리에 앉은 수많은 청중에게는 단지 흐리멍덩하게 뭉쳐진 지루한 음향의 연속일 따름이었을 것이다.

낸캐로우(Conlon Nancarrow)의 작품은 복잡하고 비주기적인 박절과 리듬 구조를 사용하는 이른바 '폴리리듬(polyrhythm)'과 '폴리템포(polytempo)'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것은 '미크로폴리포니' 이후에 리게티가 추구하던 '다차원적 폴리포니'(이희경)와도 통하며, 리게티는 낸캐로우의 양식이 "베베른과 아이브스 이후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 했다. <탱고?>는 낸캐로우가 리게티에 의해 유명해진 이후인 1983년 작품인데, 그의 다른 작품보다 텍스처가 상당히 엷으면서도 폴리리듬적 특징이 살아있는 것이 흥미롭다. 이 곡은 원래 자동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이날 연주된 것은 Yvar Mikhashoff의 앙상블 편곡 작품이었는데, 작품 제목의 물음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얼핏 들으면 탱고라기보다는 래그타임(ragtime)처럼 들렸으며, 폴리리듬적 반주 음형 속에 탱고 음악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드뷔시와 스트라빈스키가 리게티의 선배 작곡가로서 가지는 공통점은 계몽주의 사상과 기능화성 작법에 기초한 음악 구성의 목표지향적인 발전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생장하지만 발전하지 않는 유동적인 짜임새(드뷔시)와 순환을 통한 갱신, "선(線)적인 시간이 아니라, 순환하는 그리고 무(無)시간적이고 신화적인 시간 안에서 선조의 음악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스트라빈스키; C. Kaden의 표현)은 "고난을 거쳐 별들의 나라로 per aspera ad astra"라는 경구로 대변되는 베토벤적 가치관에 반대되는 특징이다. 이 부동의 가치는 20세기 초 쇤베르크 등에 의해 "일종의 역사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비약적인 발전"(C. Kaden)을 맞았는데, 그 때문에 특히 스트라빈스키가 사회 각계로부터 받은 비난은 격렬했다. "그는 지붕을 뜯어내 버렸고, 그래서 이제 그의 대머리 위로 빗물이 흐른다"(아도르노), "진실성 없는 음악" "속이 비어 있는 것으로는 피리를 불기 쉽다"(E. 블로흐), "근심이 없는 작곡가"(A. 베르크) 등이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게 하는 말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 작곡가이자 영원한 타자(他者)였던 리게티에게는 오히려 이런 점이 창조적 자극이 되었으니 드뷔시와 스트라빈스키는 얼마나 시대를 앞서간 것인가.

음악학자 이희경에 따르면 리게티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서 특히 관현악법에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파스칼 로페는 이날 연주에서 <아트모스페르>에서와 마찬가지로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음색을 생생하게 살려내어 작년 10월에 뤼디거 본이 들려준 모더니즘의 무기질적 특징과는 또 다른 현대성을 보여주었다. 드뷔시의 "축젯날 아침 Le matin d'un jour de fête"은 악보의 지시(♩= 112)보다 훨씬 느린 템포(대략♩= 85)를 사용하여 마디 11 이후의 아첼레란도 등의 템포 변화의 폭을 크게 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때문인지 가끔 앙상블이 어긋나곤 했던 것은 옥에 티였다.

리게티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1989년에서 1993년 사이에 작곡되었으며, 낸캐로우의 음악과 중앙아프리카 음악, 14세기 말의 다성음악(Ars subtilior) 등 다양한 양식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다차원적 폴리포니'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다. 여전히 클러스터 기법을 응용하면서도 <아트모스페르>에서 나타난 미크로폴리포니와는 달리 선율과 리듬의 윤곽이 뚜렷하게 존재하며, "상이한 리듬층을 상상의 음향 공간 속에 다양하게 배치"(이희경)한 결과 "리듬적으로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폴리포니"(신인선)가 되었다. 현란한 기교를 보여준 강혜선의 연주는 훌륭했지만, 다채로운 음색을 연주회장이 감당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은 아쉬웠다. 특히 1악장에서 피아니시모 또는 그보다 여린 소리를 낼 때에는 앞자리에 앉았는데도 소리가 너무 작아서 심심한 연주로 둔갑해버렸다. 2악장 이후부터는 조금 나아졌으며, 특히 호케투스(Hoquetus) 부분에서 셋잇단음 리듬으로 텍스처를 치고 나오는 바이올린 소리(마디 84 이후)가 짜릿했다. 카덴차는 이 곡의 초연자인 가브릴로프(Saschko Gawriloff)의 것을 사용했으며, 앙코르로 3악장을 다시 한 번 연주했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 홀에서 연주된 리게티의 <실내 협주곡>은 1969년에서 1970년 사이에 작곡되었으며, 그의 작품세계에서 60년대의 미크로폴리포니가 80년대 이후의 다차원적 폴리포니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적인 설명들은 이제 잊어버려도 좋다. 아니, 음악에 대한 일체의 편견을 버리고 낯설지만 신비로운 소리 그 자체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면 이런 것은 애초에 몰랐어도 좋다. 리게티의 음악은 엄격한 구성과는 별개로 감성과 직관에 호소하는 음악이며, 이론적 설명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울시향의 연주는 편하게 들어도 귀가 즐거웠으며, 특히 모든 악기가 스타카토 및 피치카토 음형으로 타악기 같은 소리를 내는 3악장에서는 전율을 느꼈다. 5악장에서는 화학반응으로 미립자들이 활발히 움직이듯 촘촘하고도 빠르게, 또 다양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음형이 오묘했다. 2악장에서 목관악기의 절규하는 듯한 마르카토 음형(마디 40)은 악기별 어택(attack)이 잘 맞아떨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낸캐로우의 <토카타>는 1935년 작품으로 낸캐로우 음악의 일반적인 특징인 빠르고 기계적인 리듬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바이올린을 연주한 박제희는 기술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었지만, 특유의 점잖은 '양반 보잉'은 <토카타>처럼 신나고 어떤 면에서는 경박한(?) 곡에는 단점이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음량이 너무 작았으며, 그에 비하면 마림바와 실로폰 소리는 너무 컸다.

아브라함센(Hans Abrahamsen)의 <동화 그림 Märchenbilder>은 슈만의 <동화 그림>에서 소재를 빌렸다는데, 슈만의 작품이 19세기 동화를 그린 회화 같다면 아브라함센의 작품은 차라리 3D 컴퓨터 그래픽이 난무하는 SF 또는 판타지 영화처럼 느껴졌다. 또한, 다차원적이면서도 그물망같이 연결된 성부 진행에서는 리게티의 영향을 찾을 수 있었다.

하만(Chris Paul Harman)의 <행렬 풍자극 Procession Burlesque>은 4종 대위법(fourth species counterpoint)을 연상시키는 피아노 음의 배음(harmonics)이 만들어내는 야릇한 음향과 그것을 오케스트라가 흉내 내는 것이 신선했는데, 이것은 마치 악보에는 존재하지 않는 배음끼리의 클러스터 같았다. 그리고 이것이 나중에는 여러 층위를 이루면서 폴리포니 아닌 폴리포니를 이루는 것이 리게티와 닮았으면서도 또 달랐다. 변화무쌍하면서도 뒤로 갈수록 묘하게 선동적인 리듬과 다이내믹 또한 흥미진진했다.

리게티의 <100개의 메트로놈을 위한 교향시>는 '해프닝' 성격이 강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연주 그 자체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으며, 폴리리듬과 폴리템포에 대한 리게티의 화두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만, 이날 벌어진 고유한 사건들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겠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까지 작동을 멈추지 않고 남아있던 두어 개의 메트로놈이 도무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진은숙이 그 끈질긴 녀석들을 손으로 멈춘 다음 태엽을 4번 감아야 할 것을 한 번 더 감았던 모양이라며 사과의 말씀을 전했다. '연주자'들은 예닐곱 명의 어린이들이었으며, 아마도 역사상 최연소 리게티 연주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새로움에 대한 화두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만, 리게티에게는 이것이 다양한 문화 양태가 "접속과 횡단"(이희경)을 통해 전혀 새로운 속성을 획득하는 식으로 구현되었다. 그는 평생 어느 한 곳에 소속되기를 거부하고 항상 외부를 향해 열려있었으며, 이방인의 시선을 대상의 새로운 측면을 조명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이것이 단순한 '혼혈'과는 다른 까닭은 "손에 잡히는 듯한 섬세한 음향 감각과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아주 명료하게 형상화하는 탁월한 형식 감각"(이희경)을 바탕으로 철저한 자기비판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장은 죽어서 숙제를 남겼다. 이제 음악은 어떤 식으로 변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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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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