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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6일 화요일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예전에 썼던 글에 영문 번역을 추가함.


이 작품은 라벨이 1929~31년 사이에 쓴 곡으로 작곡가의 후기 음악 양식이 잘 드러나 있으며, 밝고 즐거운 선율과 재즈 리듬, 화려한 음색, 바스크 지방의 민속음악적 요소 등이 특징적이다. 바스크는 에스파냐와 프랑스 사이에 걸쳐 있는 지방으로, 라벨은 바스크계 어머니에게서 음악적인 영감을 받은 듯하다. 음악학자 이내선은 이 작품을 두고 “그 음악적인 성격으로 보아서 바스크 광시곡[rhapsody]이라 해도 무방하다”라고 논평했다.

라벨은 관현악법의 대가로 화려한 색채를 음악에 담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작곡가였다. 이 곡에서는 프랑스 음악 양식과 에스파냐 음악 양식이 어우러진 음 소재가 화려한 관현악법을 만나 더욱 빛나며, 채찍과 우드블록(Wood Block), 탐탐, 트라이앵글 등 다양한 타악기가 쓰이기도 했다. 이 곡은 또한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 만큼 악기 하나하나에 까다로운 기교를 요구한다.

라벨이 이 작품에 재즈 리듬을 사용한 일은 재즈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으며, 이것을 두고 라벨은 “재즈는 현대 작곡가에게 매우 풍부하고 생생한 영감의 원천이며 재즈에 영향 받은 미국 작곡가들이 너무도 적다는 사실이 놀랍다”라고도 했다.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음악 만화·드라마로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노다메 칸타빌레› (니노미야 토모코 원작, TV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등으로도 알려짐) 전체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곡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M. 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Written between 1929 and 1931, this piece exemplifies Ravel’s musical style in his later years. Bright and cheerful melodies, jazzy rhythms, flamboyant tones, and folk music elements of the Basque Country characterize this composition. The Basque Country is a region between Spain and France, and it appears that Ravel was influenced by his mother’s Basque heritage. Musicologist Naesun Lee commented on this piece as follows: “Assessing by its musical character, it’s safe to call this piece a Basque rhapsody.”

Ravel was a master of orchestration and had a talent for infusing his music with extravagant colors. In this piece, French and Spanish musical styles harmonically blend to showcase Ravel’s splendid orchestration, incorporating various percussion instruments such as the whip, woodblock, tam-tam, and triangle. As sumptuous colors are the key characteristic of this piece, it demands great technical abilities from all players.

Incorporating jazz rhythm into his music was a move few others followed at the time in America, the birthplace of jazz. Ravel remarked on this matter by saying, “Jazz is a very rich and vital source of inspiration for modern composers and I am astonished that so few Americans are influenced by it.”

Ravel’s Piano Concerto in G major became hugely popular in Asia through ‹Nodame Cantabile› (original story by Ninomiya Tomoko, produced as animation and TV drama), well known in Korea through its music, animation, and TV drama.

2023년 5월 23일 화요일

바흐-부소니: 샤콘 / 쇼팽: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즈 / 발라키레프: 이슬라메이 / 라벨: 밤의 가스파르 / 리스트: 노르마 회상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d단조 중 ‘샤콘’ (부소니 편곡)

샤콘은 변주곡의 한 형태를 뜻하는 말로 ’파사칼리아’와 혼용되기도 한다. 바로크 시대 춤곡에서 유래했으며 주로 저음에서 반복되는 음형이 특징이다. 바흐의 샤콘이 바이올린 한 대로 마치 건축물을 쌓듯이 여러 성부를 입체적으로 쌓아가며 때로는 오르간 음향을 흉내 내기도 하는 작품이라면, 부소니가 피아노곡으로 편곡한 작품은 수직적 화음을 음향적으로 더 두텁게 쌓아 ’건축물’의 규모를 키우고 오르간 효과 또한 강화하며 코랄의 경건함마저 담아내는 등으로 피아노의 장점을 적극 활용한 곡이다.

쇼팽: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즈

‘스피아나토’(spianato)는 표면이 고르고 평평함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는 말 그대로 느리고 편안하게 흘러가는 음악이며 ’녹턴’ 또는 자장가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어지는 폴로네즈는 사냥 나팔을 연상시키는 힘찬 음형으로 시작해 편안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폴로네즈는 3박자 계열의 폴란드 춤곡으로 ’♪♬♪♪♪♪’꼴 리듬 패턴을 특징으로 한다.

발라키레프: 이슬라메이 - 피아노를 위한 동양적 환상곡

밀리 발라키레프는 ’러시아 5인조’라 불리던 작곡가들의 맏형이었던 민족주의자였다. ’이슬라메이’는 본디 발라키레프가 캅카스 지방을 여행하면서 인상 깊게 들었던 민속음악이었는데,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이 음악에서 주요 음소재와 제목을 따와 자신의 곡을 썼다. 이 곡은 빠름-느림-빠름 세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느린 가운데 부분에서는 타타르 민속 선율이 사용되었다. 고난도 테크닉을 요구하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라벨: 밤의 가스파르

라벨은 알루아시위스 베르트랑의 ’밤의 가스파르, 렘브란트와 카로 풍의 환상시집’에서 영감을 받아 ’밤의 가스파르’를 작곡했다. ’가스파르’란 페르시아어로 ’보물을 지키는 사람’을 뜻한다. 1악장의 ’옹딘’은 물의 요정을 뜻하는 ’운디네’의 프랑스식 표현으로, 옹딘은 가스파르를 유혹하며 자신의 남편이자 호수의 왕이 되라고 한다. 2악장 ’교수대’는 베르트랑의 시구 중 “그것은 지평선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그리고 석양으로 새빨갛게 물든 목 매달린 시체이다.”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듯한 곡이다. 3악장의 ’스카르보’는 장난꾸러기 요정을 뜻한다. 라벨은 요정의 변덕을 변화무쌍한 악센트와 고난도 연주기법 등으로 표현했고,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보다 더 어려운 곡을 쓰고자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리스트: 노르마 회상

리스트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피아노 곡으로 편곡했다. 그 중에는 오페라의 주요 대목을 따서 환상곡풍으로 재창작한 곡도 있는데, 리스트는 이런 작품에 회상(Réminiscences)이라는 제목을 붙였으며 ’노르마 회상’이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 벨리니 오페라 ’노르마’를 재창작한 이 작품은 원작에 나오는 사랑과 배신, 갈등과 희생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동시에 무시무시한 난이도와 극적인 짜임새로 피아니스트에게 도전이 되는 곡이다.

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라벨: 쿠프랭의 무덤

예전에 썼던 글 ☞ 「쿠프랭의 무덤과 고구려의 무덤」의 일부를 따와서 조금 고친 글입니다. 2023. 4. 추가: 영문 번역


라벨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공군에 자원입대하려다 실패하고는 운전병으로 입대해서 군용 화물 트럭을 운전했다. 라벨이 배치된 곳은 끔찍하기로 유명했던 베르됭 전투의 최전방 바로 뒤에 있는 곳이었다. 독일군과 프랑스군을 합쳐 무려 240만 명 가까운 군인들이 동원되었고, 양측의 소모전으로 사상자가 80만 명 가까이 되었다. 한 프랑스 군인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지옥도 이보다 더 참혹할 수는 없다. 여기에 있는 우리는 모두 미쳤다.”

어느 날 라벨은 폐허가 된 마을에 버려진 성에서 에라르 피아노를 발견하고는 쇼팽 곡을 연주해 보았다.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가 지적한 것처럼, 라벨은 적막한 폐허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경험으로 ‹쿠프랭의 무덤›을 작곡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름다운 음악이 만들어내는 환상이 폐허로 변한 현실에 덧씌워지는 것은 ‹쿠프랭의 무덤›이라는 작품이 주는 느낌 바로 그것이다. 알렉스 로스는 또한 이렇게 썼다:

“그러나 라벨 음악이 항상 그렇듯이, 아름답게 세공된 표면 아래에서는 감정이 타들어 간다. 각 악장은 전투에서 사망한 벗들에게 헌정되었다.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흘러가는 음악은 마치 유령의 행진처럼 느껴진다. 근육에 대한 암시와 금속의 번뜩임에 대한 암시도 있다. 글렌 왓킨스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의 음악에 관한 연구에서, 라벨이 토카타 악장의 카랑카랑한 음으로 전투기의 곡예비행을 연상시키려 했다고 주장했다. 라벨은 창공을 홀로 비행하는 영웅이 되기를 꿈꿨다.”

‹쿠프랭의 무덤›이라는 제목은 바로크 시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 Couperin)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작품의 선율과 리듬과 화성 등은 바로크 시대의 우아함을 간직하면서도 어딘가 조금씩 비틀려 있고, 때로는 음산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알렉스 로스가 말한 것처럼,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흘러가는 음악은 마치 유령의 행진처럼 느껴진다.”

이 작품의 악장 구성은 바로크 시대 모음곡과 비슷하면서도 진짜 바로크 시대의 표준에서는 벗어나 있다. 이를테면 바흐 모음곡의 악장 구성이 ① 전주곡 ② 알르망드 ③ 쿠랑트 ④ 사라방드, ⑤ 가보트·미뉴에트·부레 등 ⑥ 지그 순서라면, ’쿠프랭의 무덤’은 ① 전주곡 ② 푸가 ③ 포를랑 ④ 리고동 ⑤ 미뉴에트 ⑥ 토카타 순으로 되어 있다.

M. Ravel: Le Tombeau de Couperin

Ravel endeavored to join the air force during World War I but was unsuccessful, thus serving as a truck driver, transporting military cargo. His station was positioned just behind the frontline of the infamous Battle of Verdun, where nearly 2.4 million soldiers from both the German and French sides were mobilized, resulting in casualties approaching 800,000 due to attrition. A French soldier expressed in his diary, “I cannot find words to convey my impressions. Hell cannot be so terrible. Men are mad!”

One day, Ravel stumbled upon an Érard piano in an abandoned castle within the ruined village and attempted to play Chopin’s compositions. As noted by music critic Alex Ross, Ravel appeared to draw inspiration for ‹Le Tombeau de Couperin› from his experience playing the piano amidst the silent ruins. The juxtaposition of the beautiful music against the backdrop of devastation encapsulates the essence of ‹Le Tombeau de Couperin›. Alex Ross elaborated:

“But, as ever with Ravel, emotion smolders under the exquisite surface. Each piece is dedicated to a friend who died in battle; the old styles pass by like a procession of ghosts. There are also hints of muscle, glints of steel. Glenn Watkins, in his study of music during the Great War, argues that the metallic stream of tone in the Toccata is meant to suggest the twisting motion of a fighter plane. Ravel dreamed of being an aviator, a solitary hero in the sky.”

The title ‹Le Tombeau de Couperin› pays homage to François Couperin, a prominent composer of the French Baroque era. The melody, rhythm, and harmony of this work maintain the elegance of the Baroque period while incorporating some twisted elements, occasionally delving into melancholic territories. As Alex Ross observed, “the old styles pass by like a procession of ghosts.”

The structural composition of this piece resembles Baroque suites but diverges from traditional Baroque standards. For instance, while a Bach suite typically comprises a Prelude, Allemande, Courante, Sarabande, Gavotte·Menuet·Bourree, and Gigue, ‹Le Tombeau de Couperin› is structured with a Prelude, Fugue, Forlane, Rigaudon, Menuet, and Toccata.

2020년 6월 8일 월요일

쿠프랭의 무덤과 고구려의 무덤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그러나 라벨 음악이 항상 그렇듯이, 아름답게 세공된 표면 아래에서는 감정이 타들어 간다. 각 악장은 전투에서 사망한 벗들에게 헌정되었다.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흘러가는 음악은 마치 유령의 행진처럼 느껴진다. 근육에 대한 암시와 금속의 번뜩임에 대한 암시도 있다. 글렌 왓킨스는 제1차 세계대전 시기의 음악에 관한 연구에서, 라벨이 토카타 악장의 카랑카랑한 음으로 전투기의 곡예비행을 연상시키려 했다고 주장했다. 라벨은 창공을 홀로 비행하는 영웅이 되기를 꿈꿨다.”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가 쓴 책 “나머지는 소음이다”에 나오는 말입니다. 모리스 라벨의 걸작 ‘쿠프랭의 무덤’ 얘기지요. (제가 가진 책이 번역서가 아니라서 인용문은 그냥 제가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김병화 선생의 훌륭한 번역서도 있어요.) 라벨은 제1차 세계대전 기간에 공군에 자원입대하려다 실패하고는 운전병으로 입대해서 군용 화물 트럭을 운전했습니다. 글렌 왓킨스가 했다는 주장은 그래서였을 겁니다.

라벨이 배치된 곳은 끔찍하기로 유명했던 베르됭 전투의 최전방 바로 뒤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독일군과 프랑스군을 합쳐 무려 240만 명 가까운 군인들이 동원되었고, 양측의 소모전으로 사상자가 80만 명 가까이 났다는 끔찍한 전투였지요. 한 프랑스 군인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지옥도 이보다 더 참혹할 수는 없다. 여기에 있는 우리는 모두 미쳤다.”

어느 날 라벨은 폐허가 된 마을에 버려진 성에서 에라르 피아노를 발견하고는 쇼팽 곡을 연주해 보았다고 합니다. 알렉스 로스는 라벨이 적막한 폐허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경험으로 ’쿠프랭의 무덤’을 작곡하게 되었을 거라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이 만들어내는 환상이 폐허로 변한 현실에 덧씌워지는 것은 ’쿠프랭의 무덤’이라는 작품이 주는 느낌 바로 그것이지요.

’쿠프랭의 무덤’이라는 제목은 바로크 시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 프랑수아 쿠프랭(François Couperin)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작품의 선율과 리듬과 화성 등은 바로크 시대의 우아함을 간직하면서도 어딘가 조금씩 비틀려 있고, 때로는 음산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알렉스 로스가 말한 것처럼, “고풍스러운 양식으로 흘러가는 음악은 마치 유령의 행진처럼 느껴”집니다.

이 작품의 악장 구성은 바로크 시대 모음곡과 비슷하면서도 진짜 바로크 시대의 표준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이를테면 바흐 모음곡의 악장 구성이 ① 전주곡 ② 알르망드 ③ 쿠랑트 ④ 사라방드, ⑤ 가보트·미뉴에트·부레 등 ⑥ 지그 순서라면, ’쿠프랭의 무덤’은 ① 전주곡 ② 푸가 ③ 포를랑 ④ 리고동 ⑤ 미뉴에트 ⑥ 토카타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무덤, 현실과 환상의 병치, 옛 음악 양식의 현대적 비틀림 등에서 떠오르는 음악이 있습니다. 윤이상 선생의 1968년 작품 ‘영상’(Images)입니다. 윤이상은 강서고분, 그러니까 ’무덤’에 있는 벽화 ’사신도’를 보고 영감을 받아 이 곡을 썼다고 하지요. 고구려 무덤을 지키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어둠 속에서 강렬한 색채로 빛났고, 넷이면서 동시에 하나로 어우러져 있었다고 합니다.

윤이상은 강서고분벽화를 보러 평양에 갔다가 그만 간첩 혐의를 받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곳에서 자살 시도까지 했다가 서울대학병원에 이송되어 그곳에서 ’영상’을 작곡했다고 하지요. 음악학자이자 국제윤이상협회장인 볼프강 슈파러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캄캄한 방은 감옥이다. 이것이 음악적으로는 저음, 경직됨과 움직임 없음으로 시작해 조금씩 움직임과 활기가 늘어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음악이 완전히 멈춘 뒤에 모든 성부가 터져 나와 흩어지며 두 번째 부분이 시작되고, 이것이 함께 울리는 명확한 화음으로 합쳐지며 위로 솟아오른다. 조화를 향해 상승하는 움직임은 불안정한 것으로 드러나며 다시 한번 흩어진다. 점점 더 위를 향하는 화음은 감옥 벽을 향해 외치는 절규로 해석되었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쿠프랭의 무덤’과 ’영상’ 등을 7월에 공연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상황이 어찌 될지 몰라서 걱정입니다. 7월이 되면 전 세계에 창궐한 바이러스가 잠잠해지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쿠프랭의 무덤’과 ’영상’을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8년 8월 27일 월요일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E♭장조 Op. 70-2 / 라벨: 피아노 트리오 a단조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E♭장조 Op. 70-2


E플랫 장조는 전통적으로 거룩한 음악에 곧잘 쓰이던 조성이다. 베토벤은 교향곡 3번 '영웅'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E플랫 장조 화음으로 신의 광휘를 표현하기도 했다. '영웅 교향곡'에서 인류가 신에게 다가가는 과정에 장대한 투쟁이 필요했던 것과 견주면, 피아노 트리오 E플랫 장조 Op. 70-2에서는 음악에 갈등이 없다시피 한 것이 특이하다. 이 작품에서 인류는 이미 파르나소스 산에 올라 있는 것 같다.

1악장은 c단조로 된 도입부로 시작하지만, '어둠'은 얼마 안 가서 사라진다. E플랫 장조로 된 주제는 세 악기가 주도권을 바꿔 가는 과정에서 '주제군'(thematic group)이 된다. 여전히 E플랫 장조 영역에 속하지만 제2 주제로 착각하기 쉬운 주제가 나오고, B플랫 장조로 된 제2 주제군은 제1 주제군과 딱히 대조적이지 않은 까닭에 마치 1악장 전체가 하나의 주제군으로 된 것처럼 느껴진다. 다만, 제2 주제군에 앞서 나오는 도입부 주제가 음악의 흐름을 살짝 끊으며 변화를 매개한다.

2악장은 C장조 주제와 c단조 주제가 교차하는 이중 변주곡이고, 3악장은 미뉴엣과 트리오 짜임새이다. 4악장에서는 얼핏 짧은 도입부에 이어 주제 선율이 나타나는 듯하지만, 사실은 '도입부' 주제가 실질적으로 음악을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한다. 이 도입부 주제는 마치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밟는 듯한, 또는 베토벤 시대에 맞게 말하자면 마차의 속력을 빠르게 높이는 듯한 느낌이며, 그와 견주면 '제1 주제'는 관성 위주로 안정감 있게 달리는 듯한 느낌이다. 제2 주제는 더욱 속도를 높여 마구 달려나가는 듯하고, 그렇게 끝을 향해 달리는 길에 E플랫 장조의 고양감이 함께한다.


라벨: 피아노 트리오 a단조


라벨은 에스파냐와 프랑스 사이에 걸쳐 있는 바스크 지방의 민속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파리에서 작곡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느낄 때마다 바스크의 시골 마을인 생장드뤼에 갔으며, 어머니가 바스크계이기도 했다. 그리고 피아노 트리오 a단조에서 처음부터 나오는 특이한 리듬이 바스크 춤곡 리듬이다.

1악장과 4악장은 바스크풍 리듬, 피아노로 된 저음 반복음형(오스티나토)이 '발전부'를 대신하는 짜임새, 제시부-발전부-재현부의 경계를 일부러 흐려 놓으며 몽환적인 느낌을 더한 기법 등이 닮은꼴이다. 3악장은 파사칼리아이며, 변주되는 주제가 절정을 향해 나아갔다가 조금씩 긴장감을 해소해 나가는 아치(arch)형 짜임새이기도 하다.

2악장 제목으로 쓰인 '판툼'(Pantoum)은 본디 말레이 지방의 정형시를 뜻한다. 4행 1연을 기본으로 하여 앞선 연의 2행과 4행이 다음 연의 1행과 3행으로 되풀이되고, 마지막 연 마지막 행에서 1행 1연을 되풀이하며, 이를테면 'ABCD BEDF EGFH GCHA'와 같은 짜임새이다. 라벨은 두 가지 독립된 악구를 나란하고도 어긋나게 진행함으로써 '판툼'을 음악으로 옮겼다. 그 결과 리듬이 매우 복잡해졌고, 중간 부분에서는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3/4박자, 피아노가 4/2박자로 마디 구조마저 독립적으로 움직힌다. 전체적으로는 스케르초와 트리오 짜임새로 되어 있다.

2011년 10월 5일 수요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회 (지휘: 구자범 · 협연: 장성)

poster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회

  • 2011년 10월 14일 금요일
  •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
  • 중학생 이상 입장가
  • 입장권: A석 3만원 / B석 2만원

프로그램

  • 본 윌리엄스 ―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 라벨 ― 피아노 협주곡 G장조 (협연: 장성)
  • 브람스 ― 교향곡 1번 c단조

본 윌리엄스 ―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레이프 본 윌리엄스(Ralph Vaughan Williams, 1872-1958)는 이름 표기를 주의해야 할 음악가이다. 영어 이름 "Ralph"는 '랄프' 또는 '레이프'라고 읽는데, 본 윌리엄스의 둘째 아내 우르술라가 쓴 전기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레이프'[Rayf]로 읽어야 한다.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은 16세기 영국 작곡가 토머스 탈리스(Thomas Tallis)가 쓴 찬송가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교회선법을 따르는 정선율(cantus firmus)과 16세기식 대위법, 아멘 종지(plagal cadence) 등으로 나타나는 고음악 양식에 영화 《반지의 제왕》에 배경음악으로 써도 어울릴 듯한 영국풍 선율이 더해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이 모든 것이 현대적인 음악 어법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본 윌리엄스 음악 양식을 이룬다. 화성과 조성 구조는 후기 낭만주의의 반음계적 어법과 통하며, 불균등하고 불규칙한 악구(phrase) 구조는 영국 음악 전통에서 유래했으면서도 20세기 초 음악사적 흐름과도 맞닿는다.

그런가 하면 작곡가가 교회 오르간 연주자였던 만큼 16~17세기 영국 오르간 소리를 흉내 낸 대목이 작품에 나타나기도 한다. 이 작품은 현악 사중주단과 현악 오케스트라, 그리고 현악 연주자 2-2-2-2-1명으로 이루어진 제2 오케스트라로 편성되어 있고, 음악학자 에드윈 에반스(Edwin Evans)를 좇자면 이것은 영국 오르간을 이루는 서로 다른 건반들(Solo, Great, Choir)에 각각 해당한다. 본 윌리엄스는 제2 오케스트라를 제1 오케스트라와 되도록 떨어트려 놓으라고 지시했는데, 이것이 오르간 음향 효과를 얼마만큼 재현할지는 연주회장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라벨 ― 피아노 협주곡 G장조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라벨이 1929~31년 사이에 쓴 곡으로 작곡가의 후기 음악 양식이 잘 드러나 있으며, 밝고 즐거운 선율과 재즈 리듬, 화려한 음색, 바스크 지방의 민속음악적 요소 등이 특징적이다. 바스크는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에 걸쳐 있는 지방이며, 라벨은 바스크계 어머니에게서 음악적인 영감을 받은 듯하다. 음악학자 이내선은 이 작품을 두고 "그 음악적인 성격으로 보아서 바스크 광시곡[rhapsody]이라 해도 무방하다"라고 논평했다.

라벨은 관현악법의 대가로 화려한 색채를 음악에 담아내는 능력이 탁월한 작곡가였다. 이 곡에서는 프랑스 음악 양식과 스페인 음악 양식이 어우러진 음 소재가 화려한 관현악법을 만나 더욱 빛나며, 채찍과 우드블록(Wood Block), 탐탐, 트라이앵글 등 다양한 타악기가 쓰이기도 했다. 이 곡은 또한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 만큼 악기 하나하나에 까다로운 기교를 요구한다.

라벨이 이 작품에 재즈 리듬을 사용한 일은 재즈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으며, 이것을 두고 라벨은 “재즈는 현대 작곡가에게 매우 풍부하고 생생한 영감의 원천이며 재즈에 영향 받은 미국 작곡가들이 너무도 적다는 사실이 놀랍다”라고도 했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한국에서 영재 교육을 착실히 밟고 현재 독일에서 활동 중인 젊은 피아니스트 장성 씨가 협연을 맡는다. 지휘자 구자범이 이끄는 젊은 오케스트라 경기필이 어떤 해석으로 보여주게 될지 기대 된다.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는 음악 만화·드라마로 국내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노다메 칸타빌레』 (니노미야 토모코 원작, TV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등으로도 알려짐) 전체 이야기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곡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브람스 ― 교향곡 1번 c단조 작품 68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양식적·미학적으로 베토벤 교향곡을 계승한 작품이다. 당시에 이름난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우는 이 작품을 두고 '베토벤 교향곡 10번'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말은 베토벤의 아류라는 뜻이 아니라 베토벤의 진정한 계승자라는 극찬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피날레 주요 주제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피날레 주요 주제와 닮은꼴이며, 도입부는 베토벤 교향곡 5번 제1 주제와 닮은꼴이다.

베토벤은 고전주의를 완성하고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힌 작곡가이며, 그 뒤로 베토벤은 후대 작곡가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다. 따라서 베토벤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베토벤의 '후계자'라는 호칭을 얻는 일이 당시 작곡가에게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브람스―한슬리크 진영과 바그너 진영이 파벌 싸움을 벌인 일은 널리 알려졌으며, 오늘날까지도 이와 관련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베토벤은 고전주의를 넘어서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지만, 한편으로는 낭만주의적 선율과는 맞지 않는 모티프 변형 기법을 유산으로 남겼다. '베토벤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작곡가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닮은 도입부 선율을 발전부에서 앞세워 펼쳐 나가며 베토벤을 흉내 냈다. 멘델스존은 달콤한 가락을 대위법으로 겹쳐 베토벤을 이으려 했다. 리스트와 프랑크는 모티프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네트워크로 묶어 바꿔나가는 기법을 개발했고, 바그너는 리스트를 흉내 냈다. 슈만은 짧게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아이디어로 '사투'를 벌였다.

브람스는 '편법'에 매달리지 않고 정공법을 썼다. 베토벤의 모티프 변형 기법을 극한으로 발전시킨 것이 그것이며, 쇤베르크는 이것을 '발전적 변주'(developing variation)라 이름 붙였다. '모범답안'을 내놓은 브람스는 작곡 기법만 따진다면 누구나 인정할 만한 베토벤의 후계자가 되었다.

협연자 : 피아니스트 장성

1986년생, 현재 하노버 국립음대 실내악 석사, 피아노 최고 연주자 과정 중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피아노 전문 연주자 과정 졸업 (블라디미르 크라이네프 사사)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사 졸업 (임종필 사사)
한국예술종합학교 16세 영재 입학
예원학교 수석 입학

Chopin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2011(Germany) 1등, 청중상
Valsesia Musica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Italy) 1등
KIMF Competition (U.S.A) 1등
Schubert International Piano Duo Competition (Czech) 1등, 슈베르트 특별상
Nagoya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Japan)최연소 1등, 일본 엑스포협회상, 실내악상
중앙일보콩쿠르, 난파음악콩쿠르, KBS신인음악콩쿠르 1등

KBS교향악단,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대전시향, KNUA 심포니오케스트라 등 협연

지휘자 : 구자범

연세대학교 철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 철학과 재학 중 도독
독일 만하임 음대 대학원 지휘과 졸업
독일 하겐 시립 오페라 극장, 다름슈타트 국립 오페라 극장 지휘자
하노버 국립 오페라 극장 수석 지휘자
광주 시립교향악단 지휘자
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 티켓 예매 ―

인터파크
http://ticket.interpark.com/Ticket/Goods/GoodsInfo.asp?MN=Y&GoodsCode=11012294

2010년 6월 6일 일요일

메시앙 《잊혀진 제물》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라벨 《어미 거위》 《라 발스》 ― 비비아네 하그너 / 정명훈 / 서울시향

2010-05-20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정명훈
협연: Viviane Hagner

메시앙, 잊혀진 제물 Messiaen, Les Offrandes oubliées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Chin, Violin Concerto
라벨, 어미 거위 Ravel, Ma Mère l’Oye
라벨, 라 발스 Ravel, La Valse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5년을 준비해왔습니다. 이제는 유럽 무대에서도 꿀리지 않을 기량을 보여줄 자신이 있습니다.”

서울시향이 유럽 무대에서 연주한다. 억지로 만들어낸 연주회가 아니라 정식으로 초청받아 갔다고 한다. 김주호 대표 말처럼, 이제는 서울시향이 유럽에서 상품성을 인정받게 됐다는 뜻이다. 정명훈이라는 거장이 지닌 이름값만으로 악단이 덩달아 인정받기는 어렵다. 서울시향이 그만한 실력을 길렀기에 가능한 일이다.

"준비가 덜 됐을 때는 안 하는 게 나아요. 괜히 창피만 당한다고. 하지만 이젠 준비가 됐어요. 적어도, 유럽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선 겁니다.”

정명훈은 이렇게 말했단다. 지난 5년 동안 서울시향을 지켜본 글쓴이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수석급 단원들은 웬만한 유럽 지방악단에서도 한 자리 차지할 만한 실력을 지녔고, 그 가운데 한둘은 유럽에서도 수석 자리를 노릴 만하다. 몇몇 외국인 단원은 유럽 악단 수석을 겸하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재정적·행정적 지원이 있으면 그리 오래지 않아 이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이다. 역사와 전통 없이 현이 제대로 된 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서울시향이 유럽에 간다는 말은 현이 그만한 수준에 올랐다는 말이다. 글쓴이가 판단하기에 현악 연주자들이 보여주는 응집력이 때때로 유럽 수준을 살짝 넘보게 된 때가 지난해 즈음이다. 실수 없이 악보를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뉘앙스를 자연스럽게 살려내는 일이 지난해부터 차츰 늘고 있다. 악기군끼리 어우러짐 또한 크게 늘었다.

이날 연주회는 유럽에서 연주할 곡들을 미리 선보이는 자리였다. 그 가운데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이 가장 반가웠다. 서울시향이 이 곡을 연주한 일이 두어 차례 있지만, 글쓴이는 그때마다 다른 일 때문에 기회를 놓쳐서 실연은 이날 처음 들었다. 아직 악보를 개인에게 팔지 않고 오케스트라에 빌려주기만 하는지라 글쓴이는 이 곡을 음반으로만 알 수밖에 없었는데, 이날 연주를 들어보니 켄트 나가노가 지휘한 몬트리올 심포니 녹음은 너무 얌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명훈이 지휘한 서울시향은 마림바와 여러 타악기 따위를 음반보다 앞세워 가믈란(gamelan;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 또는 악기) 느낌을 조금 더 살렸고,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대등하게 어우러져 교향곡 느낌마저 들었다. 스튜디오 작업을 거친 음반이 실연과 다른 탓도 있겠으나, 그것을 헤아려도 이날 타악기가 독주 바이올린 소리를 자신 있게 치고 나올 때가 잦았다.

1악장에서 큰북이 내는 묵직한 소리가 독주 바이올린과 어우러지는 대목을 글쓴이는 참 좋아하는데, 이날 시향 타악기 연주자 김문홍이 무대 오른쪽에서 큰북을 맡아 마치 바이올린과 2중주를 하는 듯했다.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는 무대 왼쪽 벽 가운데쯤에 바짝 붙어서 글록켄슈필과 갖가지 타악기를 연주했고, 김미연은 무대 왼쪽 뒷벽에서 마림바 따위를 연주하는 등 타악기만으로도 입체감을 주었다.

여기에 다른 악기 소리가 마치 살아있는 빛알갱이처럼 뭉치고 흩어지곤 했으며, 독주 바이올린은 빛 가루를 뿌리며 무리를 이끌고 날아다니는 듯했다. 빛 요정들이 떠들썩하게 장난을 치는 모습이 이럴까. 협연을 맡은 비비아네 하그너는 어렵기로 소문난 이 곡을 마치 가볍게 몸 풀듯 아무렇지도 않게 연주하곤 했으나 개방현으로 연주하는 대목에서는 몇 차례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라벨 관현악곡은 화려한 색채감을 빼면 짜임새가 단순해서 연주자의 해석이 끼어들 곳이 적으며, 음색을 얼마나 맛깔스럽게 살리느냐가 연주자에게 중요할 때가 잦다. 이날 연주된 《어미 거위》 모음곡과 《라 발스》 또한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지휘자 역할이 매우 중요하면서도 지휘자 못지않게 악단이 많은 주목을 받게 할 수 있으니 서울시향을 유럽에 알리기에 매우 훌륭한 곡이라 하겠다.

이날 연주는 시시콜콜 따질 일 없이 그저 좋았다고만 말해도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이미 여러 차례 연주한 일이 있어서 서울시향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곡이라고도 할 만한 《라 발스》는 말할 것도 없고, 《어미 거위》 모음곡 또한 심각한 표정 지을 일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곡에 나무랄 데 없는 연주였다.

메시앙 《잊혀진 제물》도 훌륭했지만, 사납게 몰아치는 가운데 부분에서 현이 조금 더 단단히 뭉친 소리를 내주었으면 싶었다. 서울시향이 앞으로 더 나아질 곳이 얼마든지 있음이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 하겠는데, 정명훈 말마따나 이번 유럽 연주 여행이 “서울시향의 단원들에게 큰 공부와 자극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유럽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자신들을 되돌아볼 기회도 생길 테고, 음향이 훌륭한 연주회장을 두루 경험해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눈이 잔뜩 높아질 서울시향 단원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전용 연주회장이다. 계획에 차질 없이 하루빨리, 그러나 음향에는 배려에 모자람 없이 지어지기를 바란다.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2009.12.22. 라벨 피아노 협주곡 / 《스페인 랩소디》 /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 ― 조성진 / 정명훈 / 서울시향

2009년 12월 22일(화)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 정명훈
협연 : 조성진

Ravel, Rapsodie espagnole
Ravel, Piano Concerto in G major
Berlioz, Symphonie Fantastique, Op.14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조성진은 지난 11월에 만 열다섯 나이로 하마마쓰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천재다. 이 콩쿠르는 생긴지 얼마 안 되었으나 지난 우승자가 가브륄리크, 블레하치 등 매우 화려해서 이번 우승은 대단한 사건이다. 덕분에 많은 기대를 모은 이날 연주회에서 조성진은 앳된 얼굴과는 너무도 다른 훌륭한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들려주었다.

조성진이 천재인 까닭은 자연스러운 프레이징과 루바토, 세련된 셈여림 따위로 음악을 다스릴 줄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작품 구조와 흐름을 이해하고 음 하나하나가 그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테크닉만 앞세우면 기계처럼 딱딱해지게 마련이고,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 루바토를 써 봐야 유치해질 뿐이다. 그러나 조성진은 음악에 끌려가지 않고 다스릴 줄 아는 경지에 벌써 올랐다. 그 '다스림'은 19세기 음악 패러다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했는데, 덕분에 이날 2악장이 참으로 멋졌다. 다만, 1·3악장에서는 좀 더 현대음악 느낌을 살렸으면 하는 욕심이 들 때도 더러 있었다. 음색을 제법 다채롭게 쓸 줄은 아는 듯했으니 오케스트라 협연 경험이 더 쌓이면 음색을 빚어내는 솜씨도 같이 늘어나리라 기대된다.

라벨 《스페인 랩소디》는 화려한 음향효과로 가득해서 지휘자가 소리를 얼마나 멋지게 다듬느냐와 오케스트라가 지휘자를 얼마나 따라가느냐가 중요한 곡이다. 이날 연주는 정명훈서울시향 이름에 걸맞게 참으로 멋졌다. 무엇보다 트럼펫 수석이 눈에 번쩍 띄었는데, '트럼펫' 하면 생각나는 금빛 눈부시게 번쩍이는 바로 그 소리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옛 수석이었던 가레스 플라워스가 떠난 자리가 제법 커 보이던 마당이라 이 연주자가 더욱 반가웠으며, 음색만큼은 플라워스보다 나은 듯해서 베를리오즈를 기대하게 했다.

베를리오즈 《환상교향곡》은 영화에 빗대자면 B급 영화라 할 수 있다. 기괴한 4·5악장이 아니더라도 악보를 보면 음표 하나하나가 신경질을 부리는 듯한 느낌이 들며, 길고도 처절하게 궁상맞은 ― 차마 속된 말을 쓰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 ― 3악장은 이어지는 악장을 헤아리게끔 한다. 이러한 'B급' 정서는 음반으로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잦은데, 정명훈은 바스티유 오페라와 함께 녹음한 음반에서 아예 불편한 정서를 싹 발라내고 세련된 음악으로 만들었으며 4·5악장은 사악한 느낌이 없으면서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화끈하다.

이날 서울시향 연주 또한 음반과 비슷했다.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첫 음을 살짝 늘여서 티 나지 않게 아첼레란도를 쓴 듯한 효과를 노렸으며, 첫 템포는 악보에서 지시한 ♩= 56보다 훨씬 느린 ♩= 36쯤으로 꿈처럼 어른어른한 느낌을 살렸다. 마디 17을 비롯해 이 곡에서 자주 나오는 지시어인 'animando'(생기있게)는 맥락을 보면 아첼레란도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명훈은 제대로 살리면 매우 신경질적인 이 지시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러우나 무디지 않은 템포 변화를 주었다. 2악장 마디 43 등에 나오는 기괴한 바이올린 글리산도는 포르타멘토처럼 살짝만 미끄러져서 세련된 분위기를 잃지 않았다. 3악장에서는 이 악장이 얼마나 사랑스럽게 들릴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맑고 잔잔한 프레이징이 돋보였다.

4·5악장에서는 코넷과 트럼펫 따위를 너무 앞세우지 않고 모든 성부가 또렷이 들리게끔 균형을 맞추었다. 음반을 들어보면 무엇보다 5악장 '마녀의 론도'(Ronde du Sabbat)에서 정명훈만큼 음 하나하나를 잘 살린 녹음도 없는 듯한데, 이날은 튜바 따위가 좀 더 힘을 내었으나 코넷·트럼펫과 균형이 제법 잘 맞으면서도 좀 더 화끈했다. 4악장 코넷·트럼펫 선율은 보통 음 하나하나를 끊어(마르카토) 연주하나 정명훈은 제법 부드러운 논 레가토(non legato)로 다스렸다. 그러나 큰북과 팀파니 등이 힘껏 두드려대어서 화끈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음반과 뚜렷하게 다른 곳도 있었다. 이를테면 2악장에서 음반에서는 썼던 코넷을 이날은 쓰지 않았다. (2악장 코넷 성부는 베를리오즈가 나중에 자필 악보에 덧붙였으나 그냥 빼고 연주할 때가 잦다.) 1악장 마디 167에 있는 도돌이표 또한 음반과 달리 생략했다. 1악장 마디 198에서는 악보에 없는 아첼레란도를 썼는데, 이날은 음반처럼 가파르지 않고 아주 살짝만 빨라졌다.

라벨 《스페인 랩소디》에서 멋진 트럼펫 연주를 들려주었던 수석 연주자가 이번에는 코넷을 야무지게 연주했고,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은 장식음과 트릴로 가득해서 어렵기로 소문난 5악장 독주부를 음반과 거의 같은 빠른 템포로 나무랄 데 없이 연주했다. 3악장에서는 제임스 버튼이 연주한 잉글리시 호른과 이미성이 무대 밖에서 연주한 오보에가 마치 《라 트라비아타》 1막처럼 사랑스러운 선율을 주고받았다.

2009년 12월 31일 목요일

2009.11.29. 리아도프 《마법의 호수》 《바바야가》 《키키모라》 / 라벨 《셰에라자드》 /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7번 ― 미샤 브뤼거고스먼 / 루도비크 모를로 / 서울시향

2009년 11월 29일(일)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루도비크 모를로
협연자 : 미샤 브뤼거고스먼(소프라노)

리아도프, 마법의 호수, 바바야가, 키키모라
A. Liadov, The Enchanted Lake / Baba-Yaga, Kikimora
라벨, 셰에라자드
M. Ravel, Scheherazade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제7번 c#단조, 작품131
S. Prokofiev, Symphony No. 7 in c#minor, Op.131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7번은 주선율이 은근히 까다롭게 조각나 이 악기 저 악기에 흩어져 있어서, 어찌 들으면 베베른이 썼던 기법인 이른바 '음색선율'(Klangfarbenmelodie)프로코피예프식으로 바꿔놓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휘자는 그 선율 조각들을 잘 모아서 하나로 꿰는데 적지 않게 마음을 쏟아야 한다. 음반을 들어보면 일류 지휘자와 일류 악단 녹음에서도 '꿰맨 자국'이 곧잘 드러나기도 하며, 작품 해석 차이는 다른 작품과 견주면 덜 나는 편이다.

다시 말하면 이 곡은 서울시향한테 '위험한'(?) 작품이어서 유럽 악단 수준을 꾸준히 좇아가는 서울시향이 가장 모자란 곳을 숨김없이 드러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휘자 루도비크 모를로는 '꿰맨 자국'을 없애고 소리를 예쁘게 다듬는 솜씨가 남달랐다. 객원 지휘자가 악단을 데리고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그런데도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7번을 짧은 시간에 이렇게까지 말끔하게 다듬었다면, 서울시향이 날이 갈수록 연주 솜씨가 좋아진다고는 해도 지휘자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소리를 다듬는데 너무 마음을 쏟다 보면 과감한 해석을 하지 못해서 자칫 연주가 맨송맨송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날 연주에서는 작품에 담긴 화끈한 소리와 아기자기한 소리 따위가 제법 그럴싸하게 살아났으며, 이때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타악기 연주자들이었다. 그리고 타악기 가운데 하나만 꼽으라면 '큰북'이 이날 가장 멋졌다.

오케스트라용 36인치 큰북이 내는 소리는 웬만큼 세게 두드려대지 않으면 평범한 가정용 오디오로는 잘 들리지 않는다. 글쓴이 방에 있는 중급 오디오로는 큰북 소리가 잘 들리기는 하는데 음색이 연주회장에서 듣던 것과는 좀 다르다. 최고급 오디오 가운데서도 설치가 잘된 놈들만 그럴싸한 소리를 내는데, 글쓴이는 오디오로 제대로 된 36인치 큰북 소리를 딱 한 번 들어보았다. 그런데 이날 연주회에서 큰북이 들려주는 '오디오스러운'(?) 음향적 쾌감이 매우 컸다.

이를테면 2악장에서 가파른 아첼레란도에 이은 마디 18과 마디 239, 또는 크레셴도를 업은 총주에 이어지는 마디 134에서 그랬으며, 이때 큰북이 '쿵쿵' 두드려대는 단단하면서도 묵직한 소리가 그야말로 '악마의 쾌(快)'라 할 만했다. 2악장이 끝날 무렵인 마디 476부터는 2악장 가운데 가장 멋진 곳이어서 조금 앞선 마디 431부터 나중에 앙코르로 연주하기도 했는데, 여기서도 이를테면 마디 484에서 큰북이 '쿵쿵쿵' 하는 소리가 참으로 멋졌다.

3악장에서는 마디 17에서 하프, 피아노, 플루트, 현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마치 겨울철 난롯가처럼 따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들릴락말락 큰북 소리가 얹어지니 첫눈이 내리는 듯한 설렘도 느껴졌다. 또 '난롯가' 음형이 총주로 나오는 마디 39에서는 마디 43부터 나오는 큰북 소리에 맞추어 심장이 덩달아 두근거리는 듯했다. 지휘자는 악보에서 지시한 '느리고 풍부한 표정으로'(Andante expressive)와 견주어 3악장 템포를 제법 빨리 잡았으며, 덕분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미리 느껴지기까지 했다.

큰북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1악장에서도 마디 84 같은 곳에서 큰북이 멋진 소리를 들려주었고, 작은북과 글록켄슈필 따위가 더욱 두드러지는 4악장에서도 마디 274 또는 마디 387에서 큰북 소리가 음향적인 쾌감을 주었다. 4악장 마지막은 글록켄슈필 등이 앙증맞은 소리를 내면서 끝낼 수도 있고 또는 오케스트라 총주로 법석대며 끝낼 수도 있다. 이날 서울시향은 어찌할까 귀담아들었더니 글록켄슈필 등으로 얌전하게 끝내더라. 겨울에는 이게 낫다.

이날 큰북을 연주한 사람은 Raul Vergara였던 듯하다. 그런데 이날 첫 곡으로 연주한 리아도프 《마법의 호수》, 《바바야가》, 《키키모라》에서는 김미연이 큰북을 연주했다. 이때에도 큰북이 제법 멋져서 《마법의 호수》에서는 저 깊은 곳에서 북받쳐 오르는 땅 울림 같은 소리를 들려주었고, 《바바야가》에서는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7번 2악장 못지않은 '악마의 쾌(快)'를 들려주었다.

라벨 《셰에라자드》를 협연한 소프라노 미샤 브뤼거고스먼은 노랫말에 담긴 퇴폐적인 느낌을 흑인이 아니면 따라 하기도 어려울 듯한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매우 잘 살렸다. 또 블루스 음악 등에서 금관 악기를 흉내 내거나 할 때 성대를 떨면서 내는 콧소리와 비슷한 발성법을 이따금 쓰기도 했다. 다른 가수가 녹음한 음반을 들어보면 소녀 같거나 너무 정직한(?) 목소리가 노랫말이나 음악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있는데, 미샤 브뤼거고스먼은 그야말로 노래에 딱 맞았다. 목소리에 힘과 '독기'가 좀 더 있었더라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살로메》에서 '살로메' 역을 하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2009년 9월 6일 일요일

2009.06.05. 라벨 어릿광대의 새벽노래 / 히그던 타악기 협주곡 / 프랑크 교향곡 d단조 - 콜린 커리 / 성시연 / 서울시향

2009년 6월 5일(금)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성시연
협연자 : Colin Currie (percussion)

Ravel, Alborada del Gracioso
Higdon, Percussion Concerto
Franck, Symphony in d minor, Op. 48



성시연은 이미 여러 차례 서울시향을 객원 지휘했으며, 이번에 마침내 서울시향 부지휘자가 되어 이날 첫선을 보였다. 글쓴이는 지난 2월 19일 연주회 때부터 성시연이 참된 솜씨를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쓴 바 있는데, 이날 라벨 <어릿광대의 새벽 노래>를 듣고 나서 내 생각이 맞았다는 믿음이 생겼다. 연주회 첫 곡을 이만큼 다듬었다면 시향 부지휘자로 모자람이 없다.

히그던 타악기 협주곡은 협주곡답지 않게 타악기와 오케스트라가 나란하지 않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끝까지 타악기가 음악을 이끌어가는 동안 오케스트라는 '반주' 노릇에 그치며, 그 때문에 협주곡이라기보다는 '타악기를 위한 오페라 아리아'에 가까워 보였다. 더군다나 카덴차에 이르니 이제까지는 카덴차를 맞이하는 전주곡이었을 따름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작곡가가 뒤로 물러난 만큼 협연자를 앞세우고 있으니 콜린 커리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곡이라 하겠다. 콜린 커리는 지난 2007년 5월 24일에 제임스 맥밀런 <베니, 베니, 엠마누엘>을 협연하여 큰 박수를 받았는데, 이날도 현대음악치고는 듣기 어렵지 않고 음 소재가 적당히 신기한 곡으로 객석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프랑크 D 단조 교향곡이 초연된 1889년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돈 후안>과 말러 교향곡 1번이 초연된 해이기도 하며, 두 해 앞서 브루크너는 교향곡 9번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바그너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내놓은 지는 스무 해도 넘었다. 20세기 음악이 얼추 이 무렵부터 비롯하였음을 생각할 때 이 작품은 몹시 보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프랑크는 브람스만큼 꼼꼼한 논리를 이 곡에 담아내지도 못했다. 차이콥스키처럼 귀에 쏙쏙 들어오는 선율도 없다. 그럼에도 프랑크 교향곡이 훌륭한 곡임은 틀림없다. 다만, 곡이 여러모로 무뚝뚝한 만큼 연주마저 어정쩡하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글쓴이는 또한 지난 글에서 성시연이 '노력파 모범생'같은 지휘자라 여러 차례 쓴 바 있다. 이 말은 성시연이 잔꾀를 쓰기보다는 정직하게 음악을 풀어나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날 프랑크 교향곡이 자칫 너무 맨송맨송할까 걱정했다. 그러나 웬걸, 잔꾀 없이 올곧은 해석만으로도 음악은 너무나 훌륨했다. 지휘자나 악단이나 기초 '내공'이 탄탄하여 소리를 야무지게 다듬어 풀어냈는데다가 연주회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동감 또한 적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성시연의 정직함이 드러난 곳, 거꾸로 말하면 '꼼수'를 쓰기 좋은 곳을 몇 군데 살펴보자. 1악장 느린 도입부에서는 악보에 없는 아첼레란도를 크레셴도에 얹어서 '베토벤스러운' 도움닫기를 할 수 있으며 푸르트벵글러가 바로 그렇게 했다. 첫째 주제가 나타나는 마디 29에서는 도입부가 사나울수록 마르카토에 가깝게 박박 긁어댈 수 있다. 그러나 성시연은 넉넉하되 사납지 않은 크레셴도와 가파르지 않은 템포로 처음부터 '발작'하지는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보여주었다. 첫째 주제를 연주할 때에는 활놀림을 눈여겨보았더니 내림-내림-올림으로 모나지 않고 부드럽게 연주했다. 트롬본과 트럼펫 및 코넷이 선율을 되풀이해 주고받는 마디 331에서는 울부짖듯이 사납게 연주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서울시향은 떠벌리지 않고 알맞은 파토스를 뿜어냈다.

2악장 첫머리에서는 현 소리를 줄이고 하프를 앞세우면 맑은 하프 음색에 달콤쌉쌀한 감화음이 어우러져 '게르만스러운' 무뚝뚝함을 한결 부드럽게 녹여낼 수 있으며 첼리비다케와 몽퇴가 바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성시연은 하프와 현이 딱 알맞게 어울리도록 했다. 음반을 들어 봐도 이 대목에서 이토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고른 소리를 내는 연주는 드문 듯한데 어쩌면 음반으로는 살리기 어려운 현장감 때문이었을까.

이 곡은 대위법이 썩 훌륭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서 부선율이나 장식음 따위를 잘못 살리면 그야말로 얕은꾀가 되기 쉽다. 그러나 이를테면 2악장 마디 49 같은 곳에서 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 16분음 음형을 잘 살리면 음악이 더욱 다채로워지기도 하며 몽퇴가 바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성시연은 제1 바이올린 주선율을 뚜렷이 살리고 16분음 음형은 뒤에서 어른어른하게 다스렸다.

딱 한 군데 갸우뚱했던 곳이 있다. 3악장 마디 227에는 늘임표가 있는데, 그 앞서 몇 차례 나오는 늘임표와는 달리 "매우 길게 très long"라는 나타냄말이 더 붙어 있다. 마지막 음을 매우 길게 늘일 수도 있겠고, 숨이 모자란다면 브루크너 음악에 곧잘 나오는 모두쉼표처럼 멈췄다 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성시연은 앞서 나오는 다른 늘임표와 그다지 다르지 않게 적당히 늘여주고 넘어갔다.

화장은 한 듯 안 한 듯 티 나지 않게 하기가 어렵다 했던가. 성시연의 올곧은 마음가짐은 나이를 생각하면 매우 알맞으나 또한 피 끓는 나이에는 지키기 어렵기도 하다. 경험을 쌓을수록 융통성이 늘어날 테고, 그럴수록 성시연은 '화장발'에도 마음을 쏟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일구어놓은 바탕을 잊지만 않는다면 그 또한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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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9.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2009년 8월 24일 월요일

2007.05.18. 라벨 팡파르 /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K364 / 라벨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 드뷔시 바다 - 미코 프랑크 / 서울시향

2007년 5월 18일(금)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지휘자 : 미코 프랑크 Mikko Franck
협연자 : Gary Graffman(Pf), Roberto Diaz(Va), Elissa lee Koljonen(Vn)

Ravel: Fanfare
Mozart: Sinfonia Concertante, K364 (30')
Ravel: Concerto for Left Hand (19')
Debussy: La Mer (23')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연주회장으로는 너무 커서 좋은 소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모차르트 이전 시대의 소편성 작품은 이 연주회장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이날 연주회 첫 곡이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 서곡에서 라벨의 <팡파르>로 갑자기 바뀐 것은 지휘자 미코 프랑크가 연주회장을 둘러보고는 이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라벨의 <팡파르>는 금관과 타악기 위주의 매우 짧은 작품으로 '급한 불'을 끄기에 더없이 적절한 작품이었다. 지휘자는 영리했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의 경우 사전 이견 조율 없이 지휘자 마음대로 프로그램을 바꾸지는 못했을 터. 대신에 울림이 많은 연주회장에 맞게 템포를 느긋하게 잡았다. 독주자들은 음량을 충분히 확보하려고 현과 활의 텐션에 유난히 신경 쓴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그래서인지 미세한 보잉 실수가 잦았다. 엘리사 리 콜조넨은 바이올린의 까랑까랑한 음색을 적극적으로 살려 매우 섹시한 연주를 들려주었고, 비올리스트 로베르토 디아즈는 한발 양보해서 콜조넨을 부각시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그런가 하면 두 연주자 모두 비슷한 루바토를 구사하여 역시나 이들이 부부 사이임을 자랑하는 듯했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게리 그래프만은 80세를 바라보는 나이로 노익장을 과시했으나, 역시 나이를 속이지는 못하는 듯 음량이 거대한 연주회장을 감당하기에는 힘겨워 보였다. 다만, 음량이 부족한 것과 터치가 날렵하지 못한 것 등을 빼면 커다란 밑그림이나 악상의 자연스러운 흐름, 다양하고 적절한 음색 등은 그의 연륜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었다. 음악성은 거장인데 기술적인 부분이 따라주지 않으니, 얼핏 들으면 엉터리 연주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대단한 깊이가 묻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피아노의 음량이 부족한 부분은 라벨의 화려한 관현악이 메워주었으며, 특히 스네어 드럼(snare drum)이 필요 이상으로 전면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드뷔시의 <바다>에서는 앞서 스네어 드럼을 연주했던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가 이번에는 글록켄슈필(Glockenspiel)을 연주했는데, 역시 딱 밉지 않을 만큼만 튀어서 음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특히 2악장에서 울림이 지나치게 풍부한 연주회장의 음향 환경과 군데군데 앙상블 난조로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연주에 글록켄슈필의 활약이 유난히 돋보였다. 이것은 음색에 대한 탁월한 상상력과 더불어 뛰어난 밸런스 감각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되며, 그런 점에서 에드워드 최의 센스에 경의를 표한다.

지휘자 미코 프랑크는 젊은이다운 패기로 서울시향의 자잘한 실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모습이 멋졌다. 연주회장의 음향 환경에 영리하게 적응한 것도 훌륭했다. 그러나 단원들 개개인의 기량을 합주력으로 온전히 이끌어내는 데에는 다소 미숙함을 보였으며, 현대적인 음색을 다채롭게 살리지도 못했다. 서울시향은 외국 유수 악단에 비해 아직은 지휘자의 역량에 따라 연주의 완성도에 커다란 기복을 보이는 연륜이 짧은 악단이다. 젊고 뛰어나지만 경험이 부족한 지휘자는 서울시향에는 그다지 맞지 않음을 이번 연주회로 알 수 있었다.

세종문화회관을 찾을 때마다 대극장의 열악한 음향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시청 본관 건물을 시향의 연주회장으로 활용한다는 소식이 들리니 이보다 반가운 일이 없다. 아무쪼록 공사 초기부터 음향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 없는 뛰어난 연주회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나중에 붙임: 원고 보낸지 하루만에 계획 백지화 발표됨. 아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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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9일 수요일

2006.10.13. 진은숙의 Ars Nova Ⅱ - 뤼디거 본 / 서울시향

LG 생활건강과 함께하는 서울시향 정기 연주회 진은숙의 Ars Nova Ⅱ
2006년 10월 13일 8:00 PM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J.S. 바흐 / A. 베베른, 6성부 리체르카레(<음악의 헌정> 중)
A. 베베른, 오케스트라를 위한 5개의 모음곡 작품
N. 그리니 / G. 벤자민, 3도 독주(17세기 오르간 곡)
브레트 딘, <카를로>
M. 라벨, <쿠프랭의 무덤>
작자 미상 / 진은숙, ‘나는 사랑에 빠졌답니다’ (14세기 사이프러스 섬의 사랑노래 중)
G. 벤자민, 소프라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겨울의 마음>
A. 비발디, '두 줄기 바람이 몰아치고' (오페라 <그리셀다> 중)
I. 스트라빈스키, <풀치넬라> 모음곡
 
뤼디거 본(Rüdiger Bohn) 지휘
소프라노 서예리



아르스 노바(Ars Nova)는 원래 14세기 다성음악을 일컫는 음악용어로, 13세기 다성음악을 아르스 안티쿠아(Ars Antiqua)라 하여 이와 대비시킨 말이다. 그러나 이날 연주회 제목은 진은숙의 편곡 작품을 제외하고는 아르스 노바 양식과 별 관련이 없고, 다만 '새로운 예술'이라는 말뜻을 빌렸을 뿐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이 기존 작품과 비교해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관념은 신께 드리는 봉헌으로써 익명성이 장려되던 중세가 끝나면서부터 오늘날까지도 굳건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이데올로기다. Avant garde, Neue Musik, Música Nova 등이 이를 반영하는데, 모두 아르스 노바와 관련이 없는 20세기 음악 용어들이지만 새로움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아르스 노바와 통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진은숙은 고음악 양식을 뜻하는 용어를 20세기 작품 위주의 연주회 프로그램 제목으로 사용함으로써 연주회의 특색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효과를 노린 듯하다. 즉, 새로움을 지향하면서도 전통과의 연결고리는 유지하려는 현대음악의 이상이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라는 제목으로 표현된 것이다. 연주회의 부제로 사용된 "EarlyNew"라는 조어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연주회 프로그램에서도 나타난다. 바흐와 그 이전 시대 작품이 현대 작품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것이다. 비슷한 구성의 연주회를 라디오로 들어본 적도 있는데, 2001년 브레멘 음악 축제에서는 리게티(György Ligeti)와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의 작품 사이에 바흐의 작품들을 연주했다. 이번 연주회는 바흐뿐 아니라 비발디, 그리니, 심지어 아르스 노바 시대의 작품까지도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유명 작곡가와의 연계성만이 아닌 시대가 낳은 전통 자체와의 연결고리를 부각시켰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현대음악과 시대적으로 인접한 낭만주의 및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과의 연계성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10월 17일에 <色다른 베토벤> 연주회가 있었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이날 연주된 작품 가운데 베토벤과의 양식적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홍성지의 작품뿐이며 나머지는 패러디나 콜라주 등의 기법을 위한 소재로만 베토벤을 다루었다. 20세기 이후의 음악이 바로크 시대 이전 양식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이는 그것이 낭만주의 시대와 단절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러나 음악학 논문이 아닌 연주회 프로그램으로 이것을 보여주기는 곤란해 보이며, 따라서 <色다른 베토벤> 연주회 프로그램은 이러한 고민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음악의 3요소'로 선율, 리듬, 화성을 꼽는다. 그런데 20세기 이후의 음악에서는 여기에 음색을 더해서 '4요소'라고 한다. 그만큼 현대음악에 음색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뜻이다. 다양한 음색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거대 편성보다는 고전주의 시대 이전과 같은 소편성이 어울린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의 연주회장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처럼 울림이 많은 곳은 현대음악의 다양한 음색을 표현하기에는 재앙과도 같은 환경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번 연주회를 통해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사정이 이러니 귀로 전달된 느낌이 지휘자의 해석 때문인지 연주회장의 음향 탓인지도 헷갈릴 지경이었고, 이 때문에 시향의 연주에 대한 내 느낌은 그에 따른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바흐의 6성부 리체르카레가 너무 밋밋하게 들렸던 것, 베베른의 작품 10에서 베베른다운 음색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특히 3곡에서 특유의 리듬이 흐리멍덩하게 뭉쳐져 들렸던 것,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 모음곡> 피날레 연습기호 104와 114에 나타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롤러코스터 같은 상승 음형과 크레셴도가 영 제맛이 안 났던 것 등은 모두 일차적으로 연주회장 탓이라고 판단된다. 이날 연주회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대신에 LG 아트센터에서 열렸다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色다른 베토벤> 연주회가 있었던 체임버홀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베베른(Anton Webern)이 편곡한 바흐의 <음악의 헌정> 중 6성부 리체르카레는 옛것과 새것이 교차하는 이번 연주회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리체르카레(ricercare; ricercar, ricercata, etc.)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있는 용어이지만, 여기서는 하나의 주제로 된 푸가(fugue) 정도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쉽게 말해 이 작품은 바흐 음악 양식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베베른의 편곡에서는 베베른 특유의 음색이 녹아들어 있어서 모르고 들으면 베베른이 쓴 조성음악으로 오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날 연주에서는 베베른의 그림자는 옅게 하고 바흐의 느낌을 더 살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앞서 말한 연주회장 문제도 있겠지만, 나중에 지휘자로부터 직접 들은 바로는 일부러 그렇게 해석한 측면도 있다고 한다. 나는 베베른보다 바흐의 특색을 더 살리는 것만이 연주회 성격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약 정반대의 해석을 했다면 연주회장의 음향 때문에 소리가 듣기 싫게 뭉쳐서 오히려 난장판이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안톤 베베른은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베르크(Alban Berg)와 함께 이른바 '제 2 빈 악파 (Second Viennese School)'의 일원으로('원조' 빈 악파는 물론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다), 무조(無調; atonal)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본격적인 20세기 음악의 분수령이었으며, 현대음악이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대중의 머릿속에 단단히 심어놓은 장본인이다. 서양음악의 음계를 이루는 12개의 음을 모두 평등하게 다룬다는 이른바 '12음 기법'은 이후 현대음악의 절대적인 패러다임이 되었으며, 그 영향은 20세기 후반 이후 12음 기법이 작곡가들에게 극복의 대상이 되고 난 뒤에도 여전히 망령처럼 남아 있다. 한편, 인간이 12음 음악을 지각하고 인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혹은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지각심리학과 정보이론 등 과학적 연구 방법에 의해 12음 음악을 구조적으로 지각하는 것은 특별한 훈련이나 타고난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함을 시사하는 증거들이 제시되기도 했다.
 
베베른의 음악을 처음 접하고 나서 (너무나 당연하게도) 몹시 당황했던 기억을 또렷이 간직하고 있던 나는 그래서 이번 연주회를 앞두고 베베른의 작품 10의 악보를 거의 외우다시피 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나만큼 열심히 연주회 감상 준비를 하지 않았을 대부분의 관객은 이 작품의 역사적인 한국 초연이 듣기 괴롭다는 의사를 온몸으로 표현했고, '요술의 전당'의 안타까운 음향 환경과 유난히 심했던 관객의 소음을 힘겹게 뚫고 아련히 들려오는 소리에 귀기울이느라 나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 탓에 이른바 '음색선율(Klangfarbenmelodie)'이라는 말로도 표현되는 베베른 특유의 다양한 색채는 결국 내 귀에 이르기도 전에 흐릿하게 뭉쳐지는 비극을 맞았다. 그러나 소실된 소리를 상상해가며 들어본 결과 연주 자체는 매우 훌륭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 나는 음반으로는 느낄 수 없던 신비로운 공간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마치 요정이 빛을 뿌리면서 무대 위를 날아다니는 듯했다. 이런 식의 3차원적 공간감은 정상적인 가정용 2채널 오디오로는 재생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며, 나중에 고가의 오디오를 감상할 기회가 생기면 이 작품을 꼭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지 벤자민(George Benjamin)이 편곡한 그리니(Nicolas de Grigny)의 오르간 곡은 악기 편성이 특이했다. 트롬본 등의 저음 악기와 고음 목관악기를 사용하면서 중간 성부를 담당할 만한 악기를 쏙 빼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신기하게도 실제 오르간 소리와 매우 비슷했다. 연주회 프로그램에 나오는 하바쿡 트라버(이희경 옮김)의 설명을 보자. "옛 오르간 제작자들은 이미 한 음의 음색이 근음과 특정한 배음 스펙트럼에서 나온 혼합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오르간 제작에 적용했다. 그래서 단지 배음만을 포함하는 레지스터를 제작하여, 그것이 기본 레지스터와 함께 연주될 때 독특한 음색을 낳을 수 있도록 했다. 이 레지스터의 하나가 '티어스(tierce)', 제 5부분음인 '3도'다. 조지 벤자민의 편곡은 바로 이러한 오르간 음향구성을 토대로 한다. 우선 트롬본이 주 성부를 연주하고, 고음 목관들이 제2부분음에서 제9부분음에 이르는 배음스펙트럼을 연주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보자. 오보에가 4옥타브의 '라'를 불었을 때 이에 해당하는 소리의 주파수는 약 440헤르츠다. 그러나 실제 오보에 소리는 440헤르츠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그 두 배(즉, 880헤르츠), 네 배, 여덟 배 등에 해당하는 소리가 섞여 있다. (귀가 예민한 사람은 피아노로 '도'를 눌렀을 때 '솔'이나 '미' 소리가 섞여 있는 것을 듣기도 한다.) 여기서 실제 음고에 해당하는 440헤르츠 성분을 '근음(fundamental)'이라 하고 그 배수열을 이루는 성분들을 '배음(harmonics; 인용된 설명에서는 '부분음')'이라 한다. 같은 음고로 소리를 냈을 때 악기마다 음색이 다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배음의 구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지 벤자민은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고음 목관악기가 트롬본의 배음을 연주하도록 함으로써 오르간 음향을 흉내 냈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로 오르간 소리를 흉내 내기를 즐겼던 19세기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Anton Bruckner)가 이것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음악 이론가 카츠(Jonathan Howard Katz)는 "당신이 음악 이론 광(狂; geek)임을 나타내는 75가지 징후"라는 우스개 글에서 다음을 그러한 '징후'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과제물 등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한 것에 대해) '하지만 제수알도는 이렇게 했었단 말이에요!' 하고 자신을 변호한 적이 있다." 음대생이라면 누구나 배우는 16세기 및 18세기 화성법과 대위법에서 금기로 여기는 선율 및 화성 진행을 16세기 작곡가인 제수알도(Carlo Gesualdo)는 곧잘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런 우스갯소리가 가능한데, 당시로써는 이것이 대단한 파격이었겠으나 요즘 시각으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19세기를 지나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전통적 조성체계의 해체를 경험한 뒤로는 대중음악에도 특이한 불협화음이 곧잘 쓰이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브레트 딘(Brett Dean)은 제수알도의 마드리갈 <나를 고통 속에 죽게 내버려 두오 Moro, lasso al mio duolore>의 녹음을 샘플링하고 20세기 음악 어법으로 관현악을 더해 새로운 작품 <카를로>를 썼다. 그 결과는 제수알도가 살인을 저지르던 날을 소재로 하는 공포영화에 어울릴 만한 음악이었는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샤이닝 The Shining>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큐브릭은 이 영화에 리게티와 펜데레츠키 등의 음악을 사용했지만, 만약 그가 <카를로>를 알았다면 틀림없이 영화의 주요 장면, 특히 긴장감이 절정을 향해 치달아가는 후반부에 효과적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카를로>는 이 영화가 나온 지 17년 뒤인 1997년에 발표되었다. 가만, 혹시 브레트 딘은 차라리 이 영화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었고 제수알도는 단지 소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라벨(Maurice Ravel)의 <쿠프랭의 무덤 Le tombeau de Couperin>은 바로크 시대 작곡가 쿠프랭(François Couperin, II)을 추모하는 작품이다. 원래는 여섯 악장으로 된 피아노곡이지만, 라벨은 이중 네 곡을 나중에 관현악으로 편곡해 발레 음악으로 만들었다. "tombeau"는 '무덤'을 뜻하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추모하는 예술작품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라벨은 원곡을 구성하는 6곡을 자신이 참전했던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전우들에게 바치면서 그들의 이름을 부제로 사용했으므로 추모의 뜻을 이중으로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양식적 특징을 살펴보면, 모음곡 형식과 장식음 등이 바로크 시대의 것을 빌어온 것이고, 선율과 화성 등은 라벨 고유의 것이다. 이 작품은 20세기 초에 쓰였지만, 20세기 음악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므로 낭만주의 시대 작품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연주는 지휘자 뤼디거 본(Rüdiger Bohn)이 현대음악 전문가인 만큼 현대음악적 특징을 강조하는 해석을 보였다. 즉, 주선율 뒤에 숨어있는 선율들을 전면으로 부각시켜 색다른(또는, 무기질적인) 소리의 질감을 이끌어내곤 했다. 템포는 다소 빠른 편이었다. 이런 식의 해석은 자칫 어수선하게 들리기 쉬우며, 특히 예술의 전당의 음향 환경에서는 그러한 위험도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다행히 이날 연주는 지휘자가 의도한 독특한 매력을 잃지 않는 데 성공했다.
 
진은숙이 편곡한 "나는 사랑에 빠졌답니다 Je sui trestout d'amour raimpli"는 14세기 키프로스 지역의 노래다. 키프로스는 터키 남쪽에 있는 나라로 다양한 문화권으로부터 지배를 받은 기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종교 및 정치적 알력에 따라 네 지역으로 분단되어 있다. 14세기에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자연히 프랑스의 다성음악, 즉 아르스 노바 양식이 이곳에도 전해졌으며, "나는 사랑에 빠졌답니다"는 그 가운데 비를레(Virelai)라는 형식에 속한다. 곡을 이루는 세 개의 성부가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탓에 매우 복잡한 곡이지만, 성악과 반주의 관계 때문에 사실은 편하게 들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진은숙의 편곡은 1999년 작품인 <시간의 거울 Miroirs des Temps> 중 다섯 번째 곡으로 쓰였는데, 베베른이나 딘의 편곡 작품과는 달리 편곡자의 색채가 옅은 것이 특이했다. 프로그램에 있는 트라버의 해설을 인용하자면, "옛 것을 우리 시대로 끌어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의 거리를 유지한 채, 그 고유한 본질은 그대로 남겨둔 채" 현대 악기로 키프로스의 특색을 살렸다.
 
진은숙의 편곡보다 더욱 눈에 띈 것은 소프라노 서예리의 엄청난 실력이었다. 그녀는 비브라토를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정확한 음정과 투명하고도 풍부한 음색을 유지하여 고음악에 매우 잘 어울리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런가 하면 벤자민의 <겨울의 마음>에서는 폭이 좁고 빠른 비브라토를 소름이 돋을 만큼 정교하게 구사했으며, 비발디의 "두 줄기 바람이 몰아치고 Agitata da due venti"에서는 발성구의 탄력을 이용하여 여러 음을 빠르게 오르내리는 이른바 아질리타(agilita) 창법을 그야말로 바람이 몰아치는 것처럼 빠른 템포로 정교하게 소화했다. 성량이 그리 큰 편은 아니라는 것이 옥에 티라 하겠으나, 이 역시 고음악 스페셜리스트에게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한국에 이런 가수가 있었나 했더니 웬걸, 진은숙이 독일에서 발굴했단다. 프로필을 보니 깜짝 놀랄 만큼 화려한데, 이 정도면 고음악 마니아들은 이미 서예리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도 같다.
 
조지 벤자민(George Benjamin)의 <겨울의 마음 Mind of Winter>은 월리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 1879-1955)의 시 <눈 사람 The Snow Man>에서 제목과 가사를 따온 작품이다. '눈사람(The Snowman)'이 아니라 '눈 사람(The Snow Man)'인 까닭은 겨울 풍경의 클리셰(Cliché)로서의 눈사람이 아니라 "겨울 마음"을 가지고 눈 덮인 겨울 풍경을 바라보는 가운데 눈과 사람의 경계가 무너지고 겨울의 공허(空虛) 그 자체가 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육사가 인식한 겨울의 모습이 "강철로 된 무지개"와 "매운 계절의 채찍"과 "서릿발 칼날" 등이었다면, 스티븐스가 그린 겨울의 모습은 앙상한 나뭇가지와 황량한 대지와 그 속의 공허(空虛)함이다.
 

The Snow Man
 
One must have a mind of winter
To regard the frost and the boughs
Of the pine-trees crusted with snow;
 
And have been cold a long time
To behold the junipers shagged with ice,
The spruces rough in the distant glitter
 
Of the January sun; and not to think
Of any misery in the sound of the wind,
In the sound of a few leaves,
 
Which is the sound of the land
Full of the same wind
That is blowing in the same bare place
 
For the listener, who listens in the snow,
And, nothing himself, beholds
Nothing that is not there and the nothing that is.
 
- Wallace Stevens (1879~1955)

눈 사람
 
우리는 겨울 마음을 가져야 한다
눈 속에 단단해진 소나무의
서리와 가지를 헤아리기 위하여.
 
그리고 오랫동안 추위를 견뎌야 한다
얼음에 엉겨붙은 로뎀나무와
저 멀리 빛나는 1월의 태양 아래
 
거칠어진 전나무를 응시하기 위하여.
얼마 남지 않은 이파리를 스치는
바람소리에 괴로워하지 않기 위하여.
 
귀 기울이는 이에게 그것은
변함없는 바람으로 가득한
변함없이 황량한 땅의 소리
 
눈 속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그 자신 무(無)가 되어
그곳에 없는 무(無)와 그곳에 있는 무(無)를 응시하는 이를 위한.
 
- 월리스 스티븐스 (김원철 옮김)


그런가 하면 조지 벤자민이 그린 겨울의 모습은 날카로운 고음의 불협화음과 음산한 글리산도, 심벌즈의 차가운 울림 등으로 가득한 음악이었으며, 차라리 "강철로 된 무지개"의 심상과 더 잘 어울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요술의 전당'에서 흐릿하게 뭉쳐진 음향 때문에 뜻하지 않게 스티븐스의 겨울에 더 어울리는 부분도 많았다. 또 끝 부분의 시간이 정지한 듯한 느낌은 시의 마지막 연과 매우 잘 맞았다. 그러나 영어 가사가 한국의 정가(正歌; 가곡, 가사, 시조)처럼 느릿하게 흘러나오는 탓인지 내용을 알아듣기는 몹시 힘들었다.
 
비발디의 "두 줄기 바람이 몰아치고 Agitata da due venti"는 오페라 <그리셀다 Griselda> 중에서 그리셀다의 딸 코스탄자가 부르는 아리아로, 아버지 구알티에로의 명령과 연인 로베르토와의 사랑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자신의 처지와 폭풍을 만나 흔들리는 배를 동일시하는 내용이다. 이 곡은 이날 연주된 작품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곡인 동시에 서예리의 기교를 뽐내기에 매우 적당한 곡이라 할 수 있으며, 지휘자는 역시 빠른 템포로 몰아쳐서 서예리의 눈부시게 아찔한 테크닉을 유감없이 드러낼 수 있게 했다. 그런가 하면 "임무 때문에 사랑 때문에 Dal dovere da l'amore" 대목에서는 템포를 충분히 늦추어 계속되는 속도감에 청중이 숨 막혀 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앞뒤 부분과의 속도감의 대비를 극대화하기도 했다.
 
스트라빈스키의 <풀치넬라 모음곡>은 발레 곡으로 작곡한 <풀치넬라> 중에서 일부를 발췌하고 성악 부분을 기악으로 고친 작품이다. <풀치넬라>는 페르골레지(Giovanni Battista Pergolesi)를 비롯한 18세기 작곡가들의 작품을 바탕으로 하는데, 스트라빈스키는 발레단 단장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로부터 새로 발견된 페르골레지의 자필 악보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퍼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이며, 실제로는 사진으로 복사된 인쇄 악보였다고 한다. 다만 스트라빈스키가 페르골레지 등의 작품에 매료되었던 것은 분명해 보이며, 남의 작품을 인용하고 개작하는 것은 스트라빈스키 작품세계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독일의 음악학자 크리스티안 카덴(Christian Kaden)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스트라빈스키가 추구했던 것은 자기 변신(Selbstverwandlung)이었다. 그는 발전과 진보, "목표지향적인 발전, 고난과 역경을 딛고 별에 다가가는 것, 어둠을 뚫고 빛으로 나아가는 것"을 지향하는 당시의 지배적인 가치관을 거부했으며, 대신 순환을 통한 갱신, "선(線)적인 시간이 아니라, 순환하는 그리고 무(無)시간적이고 신화적인 시간 안에서 선조의 음악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것"을 추구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이루는 것은 이러한 순환의 속성을 가진 "흔들리는 고요함, 역동적인 고요함, 프랑스어로 calme dynamique"이다. <결혼 Les Noces> 등의 작품에서는 이것이 종소리의 정적인 울림으로 나타나며, <풀치넬라>에서는 진동하는 형식 모델(schwingende Formmodell)로 나타난다. 조성과 악장 배치, 템포와 박자 등이 순환적/대칭적 속성을 가지며, 고전적 양식과 새로운 기악적 테크닉이 진동하는 형식 모델 속에서 갱생한다.
 
이날 연주에서는 주선율과 부선율을 차별하지 않는 뤼디거 본의 '무정부주의적' 해석이 신선한 매력을 주었으며, 스트라빈스키의 정교한 대위법이 그에 의해 입체적 "진동"으로 나타났다. 템포는 빠른 편이었고, 이것이 독특한 악기 간 밸런스가 주는 매력을 더욱 잘 살렸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빠른 템포 때문에 세부적인 프레이징에 나타난 연주자의 표정들이 다소 흐릿해진 감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7악장 "비보 Vivo"에서 콘트라베이스의 매력이 충분히 살아나지 못했던 것이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연주회장의 음향이 충분히 좋았다면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르는 단점이다. 한편, 2악장 세레나데에서는 오보에 주자가 템포를 다소 느긋하게 잡고 솔로 연주를 하다가 두 번째 박에서 지휘자의 비팅을 보고 재빨리 템포를 수정하는 광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가엾은 연주자는 6악장 가보트에서는 반대로 템포를 너무 빠르게 잡았다가 역시 둘째 박 비팅을 보고 템포를 늦추기도 했다.
 
커튼콜로 연주된 곡은 파헬벨의 <캐논과 지그>였는데, 조지 윈스턴의 피아노 연주로 잘 알려진 바로 그 곡이다. 조지 윈스턴의 늘어지는 템포 대신 매우 빠른 템포로 연주되었고, 모든 성부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해체적인 성격도 여전했다. 다시 말해 '정격적인' 템포와 '현대적인' 밸런스가 절묘하게 만한, 이날 연주회 성격에 매우 잘 어울리는 연주였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는 낭만주의 시대의 끝자락에 있는 작곡가로, 쇤베르크와 베베른 등에게 많은 영향을 준 현대음악으로 향하는 다리와도 같은 사람이다. 그의 음악은 당시 대중으로부터 외면받았지만, 지금은 그의 작품이 베토벤보다 더 자주 연주되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말러의 대중화 과정이 오디오의 발전과정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러 시대부터 점차 음색이 선율이나 화성 못지않게 음악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기 시작했지만, 오디오의 재생능력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이후의 음악은 아직도 평범한 가정용 오디오로는 제대로 된 감상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오디오 기술이 더 발전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아니. 그보다 전에 연주회장에서 현대음악을 자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연주회처럼 '현대음악 특집'도 필요하지만, 대중에게 사랑받는 레퍼토리와 함께 현대음악이 나란히 연주회 프로그램에 들어가야 한다. 사람들이 브람스나 말러를 들으러 왔다가 버르토크나 리게티, 펜데레츠키를 '우연히' 알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인 진은숙의 작품이 더 자주 '보통 연주회(?)' 프로그램에 들어갔으면 좋겠다. 터놓고 말하자면, 그래서 나는 진은숙이 많은 돈을 벌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작품활동만으로도 많은 수입을 올리는 작곡가가 생기기를 바란다. 그래서 작곡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그를 보고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 야구 선수 지망생들이 박찬호나 이승엽을 꿈꾸는 것처럼.


2006년 10월 28일 씀.
2006년 10월 30일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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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6.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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