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7일 목요일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제1막 전주곡

예전에 썼던 글의 논지를 다듬어 새로 씀.


짝사랑을 앓아보았는가. 사랑하는 임과 어쩌다 눈 마주쳤을 때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아보았는가. 또는 연인을 처음 본 순간 머릿속에 벼락이 치는 듯한 느낌을 받아보았는가. 바그너는 그러한 눈맞춤의 순간을 ‹트리스탄과 이졸데› 첫 화음으로 나타낸 듯하다. 이와 관련해 바그너가 직접 언급한 일은 없다. 그러나 극 중에서 이 화음과 엮인 모티프는 눈맞춤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이 모티프는 때때로 영화에서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 패러디되기도 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금지된 사랑을 다루고 있으며, 이야기의 흐름을 추동하는 갈망을 청자의 감각에 효과적으로 주입하는 장치가 바로 이 화음이다. ‘트리스탄 화음’(Tristan Chord)이라 부르는 이것은 음악이 이어지는 동안 형태를 달리하며 계속해서 나타난다.

트리스탄 화음이 서양음악사에 준 충격은 화음 자체의 낯섦보다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에 있다. 바그너는 불협화음을 통상적인 예비 없이 제시한 뒤, 마땅히 따라와야 할 해결을 끊임없이 유예함으로써 기존의 문법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것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려면 화성법에 관한 선행 지식이 필요하다. 그것을 짧은 지면에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선행 지식이 없는 이는 다음 단락을 큰 흐름만 따라가며 흘려 읽어도 좋다.

트리스탄 화음은 F―B―D♯―G♯ 또는 단3도, 감5도, 단7도 음정으로 쌓거나 이것을 전위시킨 화음이며, 따라서 변종 반감7화음이다. 모차르트를 비롯한 이전 작곡가도 썼던 이것이 바그너의 발명품처럼 불리는 까닭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쓰인 맥락 때문이다. 음악이 으뜸화음으로 시작하지 않고 조성이 분명하지 않은 단선율로 시작하는 대목부터 문제다. 이것을 얼렁뚱땅 A단조로 보면 트리스탄 화음은 프랑스 6화음이라 할 수 있고, G♯ 음은 전타음이 된다. 그런데 전타음이 비정상적으로 길다. 더군다나 이 음이 해결되어야 할 A 음은 A♯ 음으로 가는 ‘경과음’처럼 쓰였다. 주객전도다. 게다가 이 화음과 얽힌 모티프는 딸림7화음으로 끝나지만, 어떻게든 해결되어야 하는 이것이 다른 조성 영역으로 곧바로 옮겨가 버린다. 같은 패턴이 되풀이된다.

조성을 A단조가 아닌 A♭단조 등으로 보면 트리스탄 화음은 또 달리 해석된다. 그러나 설명이 길어지니 여기서 줄이자. 중요한 것은 이 화음으로 말미암아 조성이 확립되지 않은 채로 화성이 선율 속을 둥둥 떠다니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반음계적인 조바꿈이 일탈이 아닌 본질처럼 바뀌었으니 음계음과 변화음, 화성음과 비화성음을 구분하는 일이 큰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 청자는 더 이상 음악이 흘러가는 방향과 도착점을 예감할 수 없게 되었다. 조성이 제공하던 안정적인 방향감이 흔들리면서 청자는 끊임없이 유예되는 욕망의 흐름 속에 놓인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이러한 상태를 ‘화성의 바다’(Sea of Harmony)라 부르며, 이것이 듣는 이를 최면적이고 초월적인 감정 상태로 이끈다고 분석했다. 훗날 무조음악으로 이어지는 흐름도 바로 이러한 균열 위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트리스탄 화음의 모호성은 연주 현장에서 흥미로운 미학적 선택을 요구한다. 화음이 전달하는 갈망의 여러 얼굴 중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여기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조성적 중심이 사라지고 화성이 둥둥 떠다니면서 나타나는 몽환적인 느낌을 살리는 해석이다. 음 하나하나를 서로 부딪히게 하기보다 차라리 부드럽게 스쳐 지나가게끔 하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트리스탄 화음은 불협화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꿈결을 신비로운 음향으로 나타낸 것이 된다. 이후로도 꿈처럼 어른어른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방향이 어울린다. 지휘자 대다수가 이 해석을 따른다고 할 수 있으며, 글쓴이가 판단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꿈결을 빚어낸 지휘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다.

둘째는 짝사랑하는 임과 어쩌다 눈 마주쳤을 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강조하는 해석이다. 강력한 불협화음에서 나오는 음향적 충격을 되도록 날것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목관악기의 어택(attack)을 날카롭게 살리고 그에 앞서 나오는 현악기의 크레셴도를 가파르게 다스린다. 이어지는 음악에서는 이졸데를 절정으로 이끈 노랫말처럼 “파도치는 물결 속에”(In dem wogenden Schwall) 몸을 내던지는 듯한 격정을 밀어붙인다. 이 방향을 택한 지휘자로는 카를 뵘, 한스 크나퍼츠부슈, 마리스 얀손스 등이 있다.

트리스탄 화음을 어떻게 연주하느냐 하는 것은 이 작품의 중요한 감상 포인트다. 아름다운 꿈결인가, 파도치는 물결인가. 그러나 트리스탄 화음의 힘은 바로 그 대답의 유예 속에서 해소되지 않는 욕망의 떨림을 붙들어 두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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