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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16일 화요일

2014.12.13. 서울시향-정명훈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제가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일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대전에 초청을 받아서 그쪽에서 요구했던 프로그램인 말러 교향곡 1번과 쳄린스키 《인어공주》를 연주했는데, 리허설 때까지는 그럭저럭 잘했다가 본 공연 때 체력 고갈로 급격하게 망가지더군요. 아마 구자범 시대 경기필 최악의 연주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수원에서 대전까지 차로 이동해서 당일 공연하는 일이 그만큼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겁니다.

그런데 서울시향이 무려 통영까지 와서 당일 공연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잘하더군요. 평소 연주력이야 경기필보다 당연히 낫겠지만, 체력까지 그렇게 큰 차이가 난다고는 믿기 어렵습니다. 이날 프로그램이 훨씬 가벼운 탓도 있었겠지만, 거리가 훨씬 먼 것을 생각하면 역시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날 공연장에 있었던 분은 그 이유를 대충 짐작할 겁니다. 지휘자가 관객 앞에서 직접 말한 것처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연주하니 소리가 너무 좋아서 연주에 몰입이 훨씬 잘됐을 거예요.

(나중에 붙임: 단순한 몰입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연주회장 음향 환경에 따라 체력 소모도 차이가 매우 클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부는 악기' 연주자들은 확실히 힘들어하는 기색이 있었습니다. 특히 목관 악기는 제법 망가졌죠. 괴물 같은 외국인 금관 연주자들은 그렇다 치고요. (트럼펫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 덜덜덜…) 페이스북에는 이날 공연 이후 감기몸살을 호소하는 목관악기 연주자도 있더군요. 통영 공연이 아니더라도 일정이 아주 빡빡했나 보더라고요. 우리나 그쪽이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지만, 하루 먼저 와서 다음 날 공연했으면 훨씬 좋은 연주를 들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현악기는 서울 공연과 비교해도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어쩌면 실제로는 망가졌는데 연주회장이 워낙 좋아서 전체적으로 좋게 들렸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저는 이날 관객에게 피해 주지 않고 기록용 사진을 찍으려고 5층 꼭대기까지 올라갔는데요, 전부터 통영국제음악당 5층 소리가 좋은 걸 알고는 있었지만,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2층 맨 앞자리와 비교해 오히려 나은 점이 있다는 생각에 새삼 놀랐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과장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서울시향 더블베이스 연주자들이 이렇게나 잘하나 싶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안 들리던 초저역대가 또렷하게 들렸고, 전체적인 음량도 더 크게 느껴졌고, 그것을 넘어 연주력 자체가 차원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서울시향 개편 이후 첫 공연부터 최근까지 서울시향의 발전 과정을 꾸준히 지켜본 사람입니다만, 10년이 다 되도록 서울시향 더블베이스 연주자들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연주회장 실내음향이 이렇게나 중요한 거였습니다.

음향 차이를 지휘자의 해석 차이로 착각할 만한 곳도 있었습니다. 특히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3악장은 서울에서 들었을 때 무시무시하게 폭력적으로 들렸지만, 통영에서는 훨씬 얌전하게 들리더라고요. 심지어 템포도 옛날보다 훨씬 빠르다고 느꼈습니다. 그동안 해석이 달라졌나 싶어서 서울 공연 방송 녹음을 확인해 봤더니 웬걸, 큰 차이가 없더라고요. 아마도 통영국제음악당 5층 꼭대기에서 아무리 미세한 소리까지 잘 들렸어도 절대적인 음량 차이는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까 1층에서 들었던 분들은 서울 공연 이상의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4악장은 반대로 5층 꼭대기에서도 통영 공연이 훨씬 좋게 들렸습니다. 2008년 서울 공연 때,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기고한 리뷰에서 저는 "절망 속에서 처절하게 허우적거리는 대신 차분히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썼는데, 근거로 들었던 주요 해석 포인트는 이번 공연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미세한 소리까지 잘 들려서 그런지 느낌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어쩌면 외부적인 상황 때문에 연주자들부터 감정이입이 되었을까요?

앞서 목관악기가 망가졌다고 썼지만, 차이콥스키 1악장에서 클라리넷 부수석 임상우 씨 솔로 연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서울시향이 2008년에 아마도 처음으로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을 연주했을 때, 클라리넷 수석으로 채재일 씨가 새로 들어와서 충격적인 명연주를 들려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이날 임상우 씨 연주는 채재일 씨가 넘사벽만은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어딘가 결정적인 '한 방'이 모자라기는 했는데, 이유가 뭔지 주제 넘게 분석하려 들지는 않겠습니다. 아마 본인이 가장 잘 알 테고, 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았으니 알아서 잘하겠죠.

그리고 팀파니 객원. 이름이 롤란드 뭐시기라던데, 참 잘하더군요. 서울시향 팀파니 수석이자 라디오 프랑스 필 수석이기도 한 아드리앙 페뤼송이 라디오 프랑스 필 지휘자 대타로 지휘 대뷔를 하게 되면서 임시로 데려온 모양입니다. 온 김에 눌러 앉히려고 꼬드기는 모양이던데요. 아마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수석이라죠?

또, 트럼펫. 2008년에는 알렉상드르 바티가 없었지만, 이날에는 바티가 있었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알렉상드르 바티는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수석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붙임: 여기 그만둔 지 좀 됐다네요. ㅡ,.ㅡa) 한 마디로 세계 정상급 연주자라는 말이죠. 그 전에 가레스 플라워스라는 사람이 잠시 수석으로 있다가 나가 버렸는데, 그때 사람들 많이 아쉬워했었죠. 그런데 얼마 안 가 알렉상드르 바티가 온 겁니다. 검색해 보니 2009년 일이로군요. 그 대단한 연주자가 통영에도 왔습니다. 이날 연주도 아주 뭐, 끝장이었습니다. ^^

…쓰다 보니 시간이 너무 늦었네요. 할 말은 많지만 여기서 줄이고, 저는 이만 잠자러 갑니다. ^^

2011년 6월 28일 화요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 /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 휴 울프 / 서울시향

2011-06-03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 휘 : 휴 울프
바이올린 :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프로그램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을 15곡 남겼다. 그러나 9번 교향곡을 들어보면 쇼스타코비치가 '9번의 저주'를 의식했음을 역설적으로 알 수 있다. 베토벤 이래 교향곡 9번이라 하면 작곡가가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운 진지한 작품, 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작품 등으로 여겨지곤 했다. 그런데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은 숫자가 주는 상징성과는 달리 유머로 가득하다. 웃음으로 저주를 물리치고자 했다는 뜻이다. 번스타인은 '9번'이라는 숫자 자체가 이 작품에서는 유머라고도 했다.

분위기가 가벼워서인지, 이 작품은 지휘자가 개성을 드러낼 만한 대목이 좀처럼 없다. 음반을 들어 봐도 비슷비슷한데, 지휘자 휴 울프는 그래도 나름대로 자기 색깔을 넣고자 노력하는 듯했다. 2악장 템포를 악보에서 지시한 ♩= 208보다 두 배나 느리게 잡은 대목은 그다지 특이하지 않다. 그런데 마디를 잘게 나눠 박자를 저어준 대목은 참 인상 깊었다. 템포가 이처럼 느리면 리듬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고 이른바 '만득이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 이 문제를 가장 손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휴 울프처럼 해주는 것이지만, 모양새가 그다지 좋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더 좋은 앙상블을 이끌어 내고자 지휘자가 그만큼 노력했다는 뜻이니 칭찬해 마땅하다.

휴 울프는 단원들에게 맡겨도 될 만한 독주 악구까지 지휘봉으로 모두 통제하는 듯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4악장에서 5악장으로 넘어갈 때 템포 변화였다. 악보에서 지시한 템포는 4악장 ♪ = 84, 5악장 도입부 ♩= 100이다. 4악장에서 5악장으로 곧바로 넘어가면서 바순 독주가 갑자기 템포를 바꾸고 리듬도 빨라진다. 점잖은 유머다. 그러나 휴 울프는 이 대목을 좀 더 매끄럽게 다스리고 싶었나 보다. 4악장에서 5악장으로 넘어가면서 템포 변화를 거의 주지 않았고, 주제 선율이 두 번째로 되풀이될 때에 아첼레란도를 주었다. 현악기가 주제 선율을 받을 때에는 악보에서 지시한 ♩= 100보다 좀 더 빠른 ♩= 120쯤으로 달렸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9번만큼 멋진 바순 독주가 있는 관현악곡은 드물다. 바순은 다른 악기와 섞이면 존재감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바순은 독주 악기라기보다는 다른 악기와 섞어서 음색에 변화를 주는 악기이며, 이런 바순에 독주를 맡기려면 다른 악기를 조심해서 써야 한다. 오케스트라 바순 주자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그런데 이날 오랜만에 곽정선 수석이 멋진 솜씨를 뽐냈다. 곽정선은 얼마 전까지 직책이 수석대행이었지만, 이번에 시향 홈페이지에 가 보니 수석으로 바뀌었다.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가 곽정선을 홀로 일으켜 세운 일만 세 차례나 되었다.

또 지금은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수석이 된 전임 트럼펫 수석 알렉상드르 바티가 오랜만에 객원으로 솜씨를 뽐냈다. 트롬본 수석 노릇을 한 객원 연주자도 훌륭했는데, 누군가 싶어서 알아보니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앙투안 가네(Antoine Ganaye)라고 한다. 2악장에서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과 함께 멋진 연주를 들려준 못 보던 클라리넷 연주자가 있어서 시향 홈페이지에 가 보니 이름이 정은원이다. 3악장에서 피콜로를 연주한 장선아도 훌륭했다.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에서는 E♭ 클라리넷을 연주한 임상우 부수석이 돋보였다. 본디 악보에는 D조 클라리넷으로 연주하라고 나오지만, 이 악기는 요즘 거의 사라진 탓에 E♭ 클라리넷으로 이조해 연주하는 일이 보통이다. 지난해 3월 스테판 애즈버리 지휘로 같은 곡을 연주했을 때에도 임상우가 E♭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이날도 그때처럼 곧고 날카롭고 빈틈없는 소리가 멋졌다.

지난해 연주와 견주자면 이날 앙상블이 좀 더 깔끔했지 싶다. 그날 몇몇 연주자들이 실수했던 대목이 이번에는 모두 말끔하기도 했다. 다만, 매끄럽고 균형 잡힌 소리 때문인지 음향 효과를 과감하게 살리는 맛은 조금 모자랐다. 템포 변화도 애즈버리와 견주면 평면적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녹음한 협주곡 음반을 들어 보면, 바이올린 소리가 작아서 오케스트라를 뚫고 나오지 못해 답답하다는 느낌이 든다. 아티큘레이션에서도 절제가 묻어난다. 그런데 이날 브람스 협주곡을 들어보니 음반과는 달리 남들보다 소리가 아주 조금 작을 뿐이었다. 이날 연주는 모든 면에서 이성과 감성이 브람스답게 조화를 이룬 명연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악기를 온몸으로 연주하는데 소리가 저렇게밖에 안 난다고? 현대 바이올린을 연주한다더니 그 때문일까?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과연, 소리가 작은 악기인데 테츨라프라서 티가 덜 나는 것이란다. 현 네 줄에서 뽑아내는 음색이 테츨라프만큼 고른 연주자도 없는 듯한데, 이 또한 악기 때문일까, 아니면 연주법에 무슨 비밀이 있을까? 테츨라프가 쓰는 그라이너 바이올린이 모델로 삼았다는 과르네리 바이올린을 테츨라프가 연주하면 어떨지 궁금하다. 또는, 옛날에 썼다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으로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하면 어떨지도 궁금하다.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말러 교향곡 10번 (데릭 쿡 판본) ― 제임스 드프리스트 / 서울시향

2010-10-07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제임스 드프리스트 James DePreist, conductor

말러, 교향곡 제10번 (데릭 쿡 버전 Ⅱ)
Mahler, Symphony No. 10 (Deryck Cooke ver. 2)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입니다. 이번에는 편집을 조금 이상하게 해서 마치 김문경 씨가 지어낸 말을 제가 표절해 쓴 것처럼 되어버렸더군요. ㅠ.ㅠ 새삼 밝혀 두지만, '사나운 브람스'와 '흰 건반 베베른'은 제가 아니라 김문경 씨가 지어낸 말입니다.


구스타프 말러는 낭만주의 마지막 세대 작곡가이자 현대음악 시대를 여는데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리고 현대음악과 관련해 말러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현대적인 관현악법에서 나오는 현대적인 음색이다. 음악학자 달하우스는 말러 교향곡 1번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돈 후안》이 발표된 1889년을 음악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으로 꼽으며 '음악적 모더니즘'이 이때부터 비롯했다고 보는데, 현대적인 관현악법이 두 작품에서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음색이야말로 현대음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현대음악말러'가 본격적으로 재조명 받은 때는 20세기 후반부터다. 불레즈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이러한 생각을 이끌었고, 몇몇 작곡가는 지휘자로도 활동하며 새로운 말러 해석을 내놓았으며, 현대음악에 관심 있는 전문 지휘자들이 함께 하며 큰 흐름을 만들어 갔다. 오디오 기술이 발전하고 '마크 레빈슨' 등 현대적인 소리를 뽐내는 명품 오디오 브랜드가 성공을 거두면서 '현대음악말러'가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바탕 또한 마련되었다.

음악평론가 김문경은 말러를 낭만주의자로 보는 전통적인 말러 해석을 '사나운 브람스' 계열이라 이름 붙였으며, 번스타인, 텐슈테트, 바비롤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현대적인 말러 해석은 '흰 건반 베베른' 계열이라 할 수 있으며 불레즈, 길렌, 샤이, 마이클 틸슨 토머스 등을 대표적인 지휘자로 꼽을 수 있다.

이번 서울시향 연주회에서 말러 교향곡 10번을 지휘한 제임스 드프리스트는 '흰 건반 베베른' 계열 해석을 선보였다. 숨어있는 성부 하나하나를 또렷하게 드러내며 다채로운 음색을 잘 살렸다는 대목에서 그렇게 볼 수 있겠는데, 그러나 소리를 예쁘게 다듬는데 신경을 많이 써서 현대음악다운 무표정함이 묻어날 때는 드물었다.

때때로 목관 악기로 맛깔스런 앙상블을 살려내어 '식물성 음색'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를테면 2악장에서 바그너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를 인용한 듯 목관 악기가 아기자기하게 얽히는 대목이 그랬으며, 이곳에서 서울시향 목관악기 연주자들은 매우 훌륭한 앙상블을 만들어 냈다.

말러 음악에 곧잘 나오는 신경질적이고 때로 악마적이기까지 한 음형은 지휘자가 달콤쌉쌀한 느낌을 앞세우고 예쁘게 다듬은 음색 속에 녹아서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클라리넷 부수석 임상우가 연주한 E♭조 클라리넷이나 부악장 웨인 린이 연주한 독주 바이올린 등이 좀 더 되바라진 소리를 내지 못한 대목은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달콤한 슬픔'이 가장 서럽게 흐르는 5악장에서 커다란 효과를 거두었으며, 마치 1악장부터 4악장까지가 모두 5악장을 돋보이게 하는 긴 전주곡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플루트 수석 박지은이 연주한 칸틸레나(cantilena) 선율은 너무나 애달팠고, 김미연이 연주한 큰북 소리는 심장을 내려치는 듯했다. 코다에 바로 앞서 칸틸레나 주제로 크게 부풀리는 대목에서는 누구라도 울컥하는 느낌을 받았으리라.

5악장 마지막에 현이 부풀어 오르는 이른바 '알므슈!'(Almsh!) 대목은 말러답지 않게 너무 단순하고 뜬금없다고 느껴진다. 이것은 말러가 남긴 스케치에 그리 쓰여 있다고 하지만, 만약 오케스트레이션까지 말러가 완성했다면 이 대목을 조금 더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어떻게든 손을 보지 않았을까. 이날 지휘자는 크레셴도를 써서 성긴 이음매를 만들었으나 서울시향이 만들어낸 크레셴도가 썩 매끄럽지는 않았다. 루바토를 좀 더 쓰거나 해서 부드럽게 다스렸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말러 교향곡 10번은 4단짜리 약식 총보로는 말러가 끝까지 완성했으며, 데릭 쿡 등이 완성한 판본에서 오케스트레이션과 대위구 첨가 수준을 넘어 완전히 새로 쓰여진 곳은 없다. 이런 까닭에 글쓴이는 이 작품을 사실상 완성된 악곡으로 보는 관점에 동의해 왔다. 그러나 말러를 '음악적 모더니즘'의 아버지로 본다면 이 작품에 '음색'이라는 핵심 요소가 미완성이라는 사실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완성판 녹음을 남긴 지휘자가 대부분 '흰 건반 베베른' 계열 지휘자인 까닭 또한 음색에 빈 곳을 메울 아이디어를 그들이 나름대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1악장만 연주해야 옳다는 뜻은 아니다. 데릭 쿡 판본을 가장 정통성 있는 '원전판'(Urtext) 악보처럼 여기되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판본이 꾸준히 시도되고 소개되어야 한다. 악보를 파기하라는 유언을 남긴 말러가 이것을 어찌 생각할지는 또 다른 문제이겠으나, 그리 따지자면 죽은 작곡가가 쓴 일기와 편지 따위를 연구하는 일 또한 죄스러운 일일 터이다. 어차피 관음증적 욕망을 떨치지 못한 동반자 의식을 지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열린 텍스트와 열린 마음이다. 카펜터, 마제티, 바르샤이, 또 다른 판본은 어떨까?

2010년 3월 28일 일요일

R.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 하이든 첼로 협주곡 D 장조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 주연선 / 스테판 애즈버리 / 서울시향

2010년 2월 25일(목)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 Stefan Asbury
협연 : 주연선

R. Strauss, Till Eulenspiegels lustige Streiche
Haydn, Cello Concerto No. 2 in D
Shostakovich, Symphony No. 7 "Leningrad"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글쓴이는 스테판 애즈버리 팬이다. 현대음악 전문 지휘자라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을 뿐, 글쓴이는 그를 얀손스같은 스타 지휘자와 동급이라 여긴다면 믿으시겠는가? 이번 연주회에서 애즈버리가 얼마나 훌륭했는지는 첫 곡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에서부터 드러났다. 이 곡은 어지간한 유럽 지방 악단도 실황 음원을 들어보면 때때로 앙상블이 흐트러지기 일쑤일 만큼 연주하기 까다로운데, 이날 서울시향은 같은 기준으로도 썩 잘했다. 서울시향 솜씨가 그만큼 늘었기도 하겠으나, 이제껏 서울시향을 지휘한 사람 가운데 첫 곡에서 이토록 놀라운 소리를 뽑아낸 지휘자가 또 누가 있던가? 정명훈뿐이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길고 까다로운 곡이니만큼 앙상블이 살짝 흔들리는 일이 없지 않았으나, 애즈버리현대음악 전문 지휘자답게 음악 흐름에 가장 알맞은 음향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다스리는 남다른 솜씨를 보여주었다. 템포는 느린 편이었으며 3악장과 4악장 느린 대목에서는 템포를 몹시 느리게 잡아서 애달픈 느낌을 더했다. 그러나 빠른 곳에서는 악보에 있는 메트로놈 지시보다 오히려 빨라지기도 해서 굼뜬 느낌은 없었다.

가장 멋졌던 곳은 1악장 행진곡 리듬이 나오는 이른바 '침공(invasion)' 주제였다. 이 대목은 선율이 몹시 단순하고 유치해서 버르토크《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에서 패러디하며 잔뜩 비꼬기도 했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수룩한 선율이 아니라 작은북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차가운 음색이다. 이때 작은북은 마치 바이올린과 목관악기 따위가 행진곡 리듬을 연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끔 그 소리를 감싸 안아야 하는데, 애즈버리는 오케스트라 한가운데 바이올린과 비올라 사이에 작은북 한 대를 두어 자연스러운 음향을 이끌어 내었다.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가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긴 호흡으로 만들어가는 크레셴도에 마치 나치 시대 독일군이 멀리서부터 쳐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해 소름이 돋았다. 마디 365에서 심벌즈가 처음 나올 때 무대 뒤 작은북 두 대가 리듬을 이어받았으며, 에드워드 최는 이때 재빨리 무대 뒤로 가 셋이 함께 격렬한 총주와 어우러졌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던 곳을 말하자면, 이를테면 3악장 처음은 오르간 느낌이 나는 곳이나 이날 목관악기 소리가 조금 작아서 음향이 살아나지 못했다. 4악장에서 마지막 폭발을 앞두고 긴장감을 쌓아가다가 마디 566에 이르면 호른 독주가 나오는데, 이때 호른에 붙은 셈여림표는 포르테(f)이나 모든 현과 목관악기가 ff로 마치 울부짖는 듯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날 목관 악기 소리가 작아서 안타까웠다. 2악장에서 베이스 클라리넷이 선율을 이끌어가는 대목(마디 251)에서는 한 호흡에 부드럽게 이어 연주하지 않고 조각조각 끊어 연주했고 소리도 작았다. 이 대목은 악보를 보면 도대체 숨을 쉴 만한 곳이 없는데다가 이른바 '순환호흡'을 하더라도 음 하나하나가 길어서 매끄럽게 연주하기 어려워 보이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잘 연주하면 매우 멋진 곳이라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데 아쉬웠던 곳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체력이 모자란 탓이 아닐까 싶다. 금관악기는 그다지 큰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 곡이 트럼펫과 트롬본이 6대씩, 그리고 호른은 8대 또는 더블링(doubling)까지 생각하면 9대 이상 쓰이는 거대편성인 덕분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목관은 3관 편성이라 연주자들이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올해 서울시향말러 교향곡을 연주하겠다니 이참에 체력을 쌓아둘 필요가 있다. 그런데 대편성 곡을 연주하기에는 단원 수가 모자라 객원 연주자로 채워야 할 터이니 문제다.

시향 단원 가운데 이날 남달리 눈에 띈 연주자도 있었으니 E♭ 클라리넷을 연주한 임상우 부수석이다. 보통 '클라리넷' 하면 B♭ 또는 A조 클라리넷을 말하는데, 이날 클라리넷치고는 매우 높은 소리를 내던 악기가 바로 E♭ 클라리넷이며, 《틸 오일렌슈피겔》 악보에는 D조 클라리넷으로 나와있으나 요즘은 거의 사라진 악기라 보통 E♭ 클라리넷으로 연주한다. 이 곡에서는 B♭ 클라리넷보다 E♭ 클라리넷이 더 돋보이므로 채재일 수석이 아닌 임상우 부수석이 E♭ 클라리넷을 연주한 일이 이상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곡에 쓰인 무시무시한 고음은 플루트나 피콜로처럼 반짝여서도 안 되고, 오보에처럼 아련한 느낌이 들어서도 안 되며, 단단하면서도 날 선 송곳처럼 날카롭고 거침없어야 한다. 부드럽고 여린 소리를 누구보다 잘 내는 채재일이 이런 소리를 내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우며, 곧고 빈틈없는 소리를 내는 임상우야말로 이 악기에 알맞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에서도 임상우가 E♭ 클라리넷을 멋지게 연주했다.

하이든 작품은 딱히 독창적인 해석이 필요하지 않아서 연주자 기량이 민얼굴처럼 드러나므로 연주자에게는 오히려 가장 어렵다. 하이든 D 장조 첼로 협주곡을 협연한 주연선 또한 몇 군데 작은 실수를 해서 누리꾼 사이에서 혹평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 곡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터이므로 시향 수석 단원 솜씨를 뽐내려는 기획이라면 그다지 실속 없는 선곡이라 본다. 주연선이 연주하는 첼로는 비단결처럼 은은한 빛을 머금은 소리가 참으로 멋진데, 이것을 뽐내려면 19세기 곡 또는 애즈버리가 옌스 페터 마인츠와 협연해 음반을 남긴 윤이상 첼로 협주곡을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2009년 9월 3일 목요일

2009.02.19. 시벨리우스 포흐욜라의 딸 /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 / 버르토크 이상한 중국 관리 - 알렉산드르 가브릴뤼크 / 성시연 / 서울시향

2009년 2월 19일(목)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성시연
협연자 : Alexander Gavryluk (Pf)

Sibelius, Pohjola's Daughter, Op.49
Prokofiev, Piano Concerto No. 2 in g, Op.16
Bartok, The Miraculous Mandarin, Op.19

알렉산드르 가브릴뤼크(x) → 올렉산드르 가브릴류크(o) http://goo.gl/7Lmwm


성시연이 지난해 1월과 9월에 이어 세 번째로 서울시향을 지휘했다. 그가 나라 밖에서 걸어온 놀라운 발자취를 생각하면 그동안 한국에서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다. '나이 어린 여자'라는 약점 아닌 약점을 생각하면 꽤 훌륭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으나 그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를 그저 '지휘자 성시연'으로 바로 말할 때가 왔다. 이날 연주회에서 드디어 참된 솜씨를 제법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솜씨를 펼쳤다 하기는 어려우며 기대에 못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볼 때마다 한 걸음 나아간 모습을 놓치지 마시라. 성시연은 젊으며 앞날은 밝다.

지난 연주회보다 나아진 티가 가장 잘 드러난 곡은 시벨리우스 <포흐욜라의 딸>이었다. 첫 곡이라 그만큼 연습이 모자라기도 했겠거니와 때마침 수석 연주자들이 거의 자리에 없었는데도 제법 무난한 연주를 이끌어내었다. 앙상블이 이따금 흔들리다가 '알레그로' 대목에서는 '프레스토'에 가까운 아찔한 템포로 마구 달리는 바람에 더욱 삐걱거렸지만, 그래도 끝까지 큰 줄기를 놓치지 않고 '물량공세'로 뚝심 있게 밀어붙여서 이 곡이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실수를 눈치 채기 어렵게 잘 다스렸다. 지난 9월 연주회 첫 곡에 견주면 놀랄 만한 발전이다.

버르토크 <이상한 중국 관리>는 성시연서울시향을 지휘해 어디까지 소리를 뽑아낼 수 있는지를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악단을 확 휘어잡지는 못하지만 구석구석 열심히 다듬어 노력파 모범생 같은 연주를 이끌어낸 대목은 지난 연주회에서 보여준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음악 흐름을 탄탄하게 다스리고 템포와 리듬과 음색을 맛깔스럽게 다듬는 솜씨는 더 나아졌다. 때때로 결정적인 '한 방'이 아쉽기는 했으나 수석 연주자들 빈자리가 작지 않았음을 헤아리면 받아들이지 못할 바는 아니며 그 때문에라도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수석 연주자가 자리를 비운 틈에 솜씨를 마음껏 뽐낸 연주자도 있었으니 바로 클라리넷 부수석 임상우다. 채재일 수석이 따듯한 음색, 부드러운 레가토, 그윽한 소토보체를 곧잘 뽐낸다면, 임상우는 겉모습부터 딱 클라리넷 연주자처럼 생겨서는 그 소리 또한 곧고 매끄럽고 빈틈없는 클라리넷 그 자체다. 무엇보다 남자를 꼬드기는 대목에서 빠르고 어지러운 음형을 나무랄 데 없이 잘 다스렸다. 여자가 중국 관리를 처음 보고 두려워하는 대목에서는 지휘자가 중국풍 트롬본 소리를 일부러 줄이고 클라리넷 소리를 크게 하여 마치 카메라가 여자를 가까이 중국 관리를 멀리 잡은 듯한 원근감을 살렸는데, 이때 클라리넷 소리가 몹시 사나워서 마치 무서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부짖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했다.

이날 가장 돋보인 사람은 타악기 연주자들이었다. 시향 타악기 연주자들은 매우 뛰어난데도 현대 음악이 아니면 좀처럼 솜씨를 뽐낼 때를 만나기 어려운데, 이날 모처럼 오케스트라 음색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했다. 중국 관리가 집 안으로 들어서는 대목(Maestoso)이 가장 멋졌고, 쫓고 쫓기는 대목(Sempre vivace)에서는 지휘자가 긴 호흡으로 놀랍도록 폭넓은 크레셴도를 이끌어내는 동안 소리에 탄탄한 뼈대를 이루었다. 이날 연주된 판본은 초연과 출판 과정에서 지워진 대목을 모두 되살린 2000년 개정판으로 판단된다. 중국 관리가 숨 막혀 죽는 대목(Pesante)부터 어딘가 낯설다고 느꼈다면 바로 판본이 달랐던 탓이며, 인기 있는 음반이 대부분 2000년 이전 녹음이라 사정을 아는 사람은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을 것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타악기가 가장 훌륭했다.

트롬본은 수석 연주자가 빠졌어도 탄탄한 연주로 오케스트라 무게 중심을 잘 잡았다. 그러나 트럼펫은 소리가 너무 작을 때가 잦아 안타까웠다. 이를테면 중국 관리가 칼 맞는 대목(Ritenuto)에서 트럼펫은 약음기를 꼈어도 포르티시모로 연주해야 하지만 트롬본 메조포르테보다 훨씬 작게 들렸다. 죽지 않는 중국 관리를 여자가 안아준 다음에 나오는 트롬본 마르카토 음형은 뜻밖에 소리가 너무 작아서 갸우뚱했다. 아마도 지휘자가 목관악기 소리를 살리느라 일부러 트롬본 소리를 작게 한 모양인데, 중국 관리가 처음 나타나는 대목도 그렇지만 지휘자는 중국 관리를 조연으로 물리고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려 했나 보다. 그래서 성욕에 빠져 죽음마저 물리친 징그러운 중국 관리보다는 불쌍하게 이용당하는 여자에게 관객이 더 마음을 쏟기를 바랐나 보다. 지휘자가 여자이기 때문일까?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알렉산드르 가브릴뤼크는 큰 힘으로 두드려대면서도 루바토를 꽤 달콤하게 써서 음색이 차갑거나 딱딱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솜씨가 인상 깊었다. 그래서 프로코피예프 음악에서 스크리아빈이나 때로는 쇼팽 같은 느낌마저 우러나왔으며, 힘이 넘쳐도 우락부락하지 않았고 아찔한 테크닉을 드러낼 때에도 음악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었다. 힘과 테크닉을 음악 속에 갈무리할 줄 아는 훌륭한 연주자가 1984년생이라니, 우리는 이날 거장의 젊었을 적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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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9.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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