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많이들 아실 듯한 이 시는 이육사 선생의 ‹광야›입니다. 시에 담긴 '스케일'이 참 대단하지요. 음악 중에서도 이렇게 거대한 시공간을 담아낸 작품이 더러 있지만, 오스트리아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만큼 어마어마하게 광대한 세계를 담아낸 작곡가는 없을 듯합니다.
브루크너는 본디 교회 오르간 연주자이자 성가대 지휘자였습니다. 그래서 브루크너가 쓴 교향곡에서도 오르간 느낌이 물씬 나지요.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브루크너 교향곡의 느린 악장에서 긴 호흡으로 끌고 가는 방식, 그리고 빠른 악장에서 규칙적인 리듬으로 반복음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 등을 오르간의 영향으로 분석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두텁고 대담한 화성 진행과 관현악법 등에서 오는 음향 효과 또한 오르간 느낌을 만들어 내는 중요한 요인일 겁니다. 그 대담함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 갔는지는 한 가지 사실을 알고 나면 분명해 집니다. 브루크너는 브람스보다 9년 먼저 태어나 1년 먼저 죽었습니다. 브람스의 후대 작곡가가 아니에요!
브루크너의 음악 어법이 너무나 시대를 앞서갔던 까닭에, 그의 제자들은 브루크너 교향곡 악보를 출판하면서 동시대인의 눈높이에 맞게끔 악보의 세부 지시를 고치려고 했습니다. 성격이 똑부러지지 못했던 브루크너는 그걸 허락하고 말았지요. 그 결과로 브루크너 악보는 판본 문제가 매우 복잡합니다.
지휘자 지크문트 폰 하우제거는 1932년에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두 차례 잇따라 연주하는 특이한 공연을 열었습니다. 한 번은 페르디난트 뢰베가 1903년에 출판한 악보를 사용했고, 다른 한 번은 브루크너의 자필 악보에 충실했지요. 이 공연은 음악계에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때까지 브루크너의 의도가 얼마나 심각하게 왜곡되어 왔는지를 사람들이 똑똑히 알게 됐거든요.
브루크너 악보의 판본 문제에 가장 먼저 관심 가졌던 사람은 음악학자 로베르트 하스(Robert Haas)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하스가 수정한 판본마저도 작곡가의 의도를 왜곡했다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
"(로베르트 하스는) 소리를 좀 더 명료하게 하고자 의도적으로 브루크너의 아이디어를 바꿔 놓았다. 하지만 브루크너는 당대의 혁신적인 작곡가였고, 나는 브루크너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하스가 했던 것과 달리, 악보에는 어떠한 수정도 필요하지 않다고 믿는다."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가 브루크너 교향곡 9번 판본에 관해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루이지가 말한 '하스 판본'은 지크문트 폰 하우제거가 파란을 일으켰던 그 판본이 1934년에 출판된 것이며, 알프레드 오렐(Alfred Orel) 이 출판을 이끌었다고 해서 '오렐' 판본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음악학자 레오폴트 노박(Leopold Nowak)은 하스-오렐 판본의 오류를 고쳐서 1951년에 새로운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악보를 출판했습니다. 파비오 루이지가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녹음한 유명한 음반이 이 판본을 사용했지요. 루이지는 오는 10월 14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KBS교향악단과 함께 '노박 판본'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연주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귄터 반트 등 옛 거장 지휘자들이 브루크너 교향곡 9번 음반에서 저음을 중첩시켜 압도적인 스케일을 만들었다면, 파비오 루이지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이끌며 엄청난 다이내믹 레인지뿐 아니라 고음부의 총천연색을 살리는 일에 상당한 비중을 두어 독특한 음향의 건축물을 만들었습니다.
음악평론가 황진규 씨가 "대다수 지휘자가 3악장에서 시나이 산 꼭대기에 머무는 반면, 루이지는 '약속의 땅'에 과감하게 한 발을 들여놓는다."라고 극찬한 바 있는 파비오 루이지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통영에서 실연으로 들어볼 기회가 기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