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썼던 글인데 퍼옴:
http://blog.goclassic.co.kr/wagnerian/1210300499
그런 '낭설'이 나오게 된 역사적 맥락이 있습니다.
브람스파와 바그너파의 패싸움(?) 구도가 가열되는 가운데 어느 음악학자가 리스트, 바그너, 베를리오즈를 묶어 '이 시대의 진보적인 음악가' 운운했습니다.
진보 대 보수 대결 양상이 되어 논리가 궁해진 브람스파는 실내악이야말로 고수가 듣는 고급 음악이며, 실내악 작곡가인 브람스야말로 '본좌' 작곡가라는 논리를 폅니다. 브람스 중력권에 있던 '보수적인' 작곡가들이 모두 실내악을 많이 쓰기도 했지요.
사실 여기에는 베토벤 이후에 교향곡을 쓰기 두려워진 상황 있었던 거 많이들 아실 거라 봅니다. 베토벤이 해먹을 거 다 해먹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베토벤이 남긴 유산이 낭만주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다는 아이러니도 큽니다. '노래의 날개 위에'로 대표되는 '낭만적'이고 소품적인 선율이 베토벤식 주제 발전 기법과 맞지 않는다 이거죠. 이 아이러니를 해결하려고 19세기 작곡가들은 저마다 꼼수를 부렸는데, 그 가운데 특히 슈만 같은 사람은 참 다양한 꼼수를 눈물 겹게 부렸지요. 그런데 꼼수 부리기를 거부하고 베토벤의 유산을 극한까지 발전시켜버린 사람이 바로 브람스입니다. 덕분에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는 했는데, 그 대신 '보수파' 딱지가 붙어버렸습니다.
이때 '브람스가 왜 보수파냐, 브람스야말로 진보주의자(Brahms the Progressive)다'라는 주장을 내놓으며 패싸움 구도를 새로운 국면으로 바꿔놓은 사람이 바로 쇤베르크입니다. 브람스의 '발전적 변주(developing variations)' 개념을 처음 내놓은 사람도 쇤베르크지요. 브람스가 왜 진보주의자인지를 얘기하려면 발전적 변주 개념과 더불어 베토벤에서 쇤베르크로 이어지는 진보주의적 역사관, 계몽주의와 모더니즘 등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얘기가 길어지므로 여기서 대략 생략합니다. ㅡ,.ㅡa
나중에 붙임.
사람 이름 뒤에 'the 형용사' 꼴은 왕 이름을 꾸미는 말입니다. 태양왕, 용맹왕 이런 식이지요. 그러니까 "Brahms the Progressive"는 '진보왕 브람스'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1910년 즈음에 판이 바뀌었다. 실내악에 혁신이 일어나 무조성으로 옮겨갔으며 쇤베르크는 음악사학자들의 도발과 멸시에 맞서 "진보왕 브람스"라는 구호를 앞세울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변증법에 걸맞은 반전이며 1860년 즈음에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보수주의자들에게 실내악은 가장 뛰어난 음악 장르였고 (..) 그들은 역사의식보다는 미학 규범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그들이 두려워하고 꺼렸던 진보는 상대편에 넘겨버렸다. 그러나 1900년 즈음에는 (...) 교향시는 진부해질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슈트라우스나 시벨리우스가 아니었더라도 마찬가지다. 슈트라우스가 전통으로 돌아서고 나서 진보라는 횃불을 받아든 쇤베르크는 (...)"
- Carl Dahlhaus, Nineteenth-Century Music.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p.254-255. 김원철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