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학회 제39차 학술 포럼에 갔다 와서
이번 학회는
시작 시각이 이른 아침으로 바뀌고 나서 참석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수차례
있었던 공지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을 수도 있고(실제로 학회가 끝난 뒤에
학회장을 찾는 사람을 보았다), 어쩌면 학생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학문에 대한 의욕이 그 정도라는 얘기가
되니 안타까워할 일이다.
이번 학회의 주제는 브람스의 <네 개의 엄숙한
노래> (Vier ernste Gesänge), Op. 121이었다. 지난 학회의 경험을 살려
가사 번역과 주해 악보를 보면서 음악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은 참으로 유익했다.
그런데 4곡을 듣는 도중 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텍스트와 너무 동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하나의 텍스트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저마다 차이가
있고 모두 나름의 타당성이 있겠지만 이것은 정도가 심하지 않은가. 브람스와 나
가운데 누군가 틀린 것인가? 아니면 피셔-디스카우의 해석이 엉터리인가?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 산을 옮길 수 있는 /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신학적인 해석은 모른다. 그러나 때로는
디아스포라의 시선이 진리를 꿰뚫어보는 힘이 될 수도 있으니 모든 맥락을 버리고
텍스트를 그대로 들여다보자. 믿음을 통해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경천동지할 능력을 얻을 수 있단다. 여기서는 “믿음”의 진정한
의미보다는 그 결과로 얻을 수 있는 힘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준 힘을 생각해보자. 어떤 면에서는 성경 등에 묘사된 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가진 것이 현대인이다. 그러나 그 힘이 과연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있는가? 오히려
가진 힘만큼의 탐욕에 사로잡혀 서로 총부리를 겨누느라 고통받고 있지 않은가? 성경이
전하는 답은 바로 사랑이다. 니벨룽의 반지에 내린 죽음의 저주를 이겨낸 것도 두려움을
모르는 지크프리트의 신력(神力)이 아니라 브륀힐데가 희생을 통해 실천한 사랑이었다.
이렇게 깊고도 넓은 가르침을 담은 가사에 비하면 브람스가 붙인 음악은 너무 가볍지
않은가. 차라리 말러 교향곡 3번 6악장 “사랑이 내게 말하는 것”이 가사에 더 어울린다.
이날
발표된 두 편의 논문은 나의 의문에 대한 답이 되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아이디어를
주기는 했다. 브람스는 적어도 음악을 다루는 기법에서는 대가임이 틀림없고, 그가
모티프를 다루는 방식(김미영)이나 화성/조성을 다루는 방식(송무경·안소영)은
나름대로 가사와의 유기성을 드러낸다.
브람스가 전도서의 핵심용어인 “헤벨”을 음형화한 이 동기를 전 사이클의 모토 동기로 하고 있다는 것은 제 4곡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제 4곡의 주제는 진실한 사랑은 인간을 원초적 허무로부터 구원하는 신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이 음형은 제 4곡에서 성악성부가 “사랑(Liebe)”의 가사를 길게 노래할 때 밑의 반주성부에서 매번 울려져, 성악 성부가 흡사 허무한 세상을 감싸는 상성의 지속음과 같이 처리되어 있다. (38쪽)
‘헤벨(hebel)’ 모티프와 “사랑(Liebe)”의 관계에 대해 김원철식으로
이해하자면, 헤벨 또는 불교식으로 말해 무(無)나 공(空)의 의미를 깨달은 뒤에는
사랑의 가르침을 실천하라는 뜻이겠고, 이는 제1곡부터 제4곡까지 이어지는 가사의
내용과도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브람스는 ‘헤벨’ 모티프가 전달하는 다소 부정적인
심상이 “사랑(Liebe)”이라는 가사와 직접적으로 충돌하지 않게끔 모티프를 음악적
맥락에 따라 적당히 변형시켜 놓았다.
쉔커식 분석 이론의 교조성이 가지는
문제점과 그 해결 방안에 관한 정경영과 송무경의 문답은 쉔커식 이론에 비판적인
나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고(칼 샥터(Carl Schachter)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송무경이 제2곡의 음도 4를 선택한 과정 또한 같은 맥락에서 수긍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네오리만 변형이론은 짧은 소개만으로는 도저히 자세한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고 다만 화성/조성의 대칭구조가 있다는 내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