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1일 일요일

비발디: 사계

비발디: ‹사계› 제1번 ‘봄’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미메시스(모방)는 고전 예술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며,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는 음악적 미메시스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이전 시대 성악의 ‘가사 그리기’(word painting) 전통과 관련지어 ‹사계›를 분석하며 이 작품을 ‘마드리갈 협주곡’(Concerti Madrigaleschi)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타루스킨이 기악곡 ‹사계›를 성악 장르인 마드리갈과 관련지은 까닭은 성악 기법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발디는 ‹사계› 개별 악장에 상응하는 소네트(정형시)를 덧붙여 음악과 텍스트를 더욱 직접적으로 연결했다. 또한 소네트 특정 행과 악보 해당 부분을 정교하게 대응시켜 표제의 입체감을 극대화했다. 이 가운데 ‘봄’에 해당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악장: 봄이 왔다 / 새들이 즐거운 노래로 아침을 맞이하고, / 시냇물이 부드럽게 재잘거리며 / 산들바람이 불어온다. / 창공을 검은 망토로 뒤덮으며 / 번개와 천둥이 다가와 봄을 알리는 전령으로 선택된다. / 이들이 잠잠해지면 / 새들이 돌아와 다시 황홀한 노래를 부른다.

제2악장: 그리하여 꽃이 만발한 아름답고 평온한 초원에서 / 잎새와 나무가 정겹게 살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 염소 치는 목동은 충직한 개 옆에서 낮잠에 든다.

제3악장: 목동이 부는 흥겨운 백파이프(잠포냐) 소리에 맞추어 / 요정(님프)들과 목동들이 정겨운 보금자리에서 춤추네 / 봄이 찬란한 모습을 드러낸 계절에.

타루스킨은 미메시스가 자연을 직접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현상의 속성이나 그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정서와 심리까지 재현하는 개념이라 설명한다. 이를테면 저음 현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는 천둥에 대한 의성(Onomatopoeia)이며, 바이올린의 빠른 음형은 번개의 속성을 드러내는 환유(Metonymy)다. 제1악장 도입부의 민요풍 주제와 폭풍이 지나간 뒤 단조로 변하는 리토르넬로 선율은 정서적 미메시스다. 이때 솔로 바이올린이 조심스럽게 연주하는 반음계적 선율 조각은 마치 폭풍이 끝났는지를 새들이 살피는 듯한 심리 묘사다.

비발디: ‹사계› 제2번 ‘여름’

‘여름’은 피로와 탄식, 불안과 짜증, 재앙으로 이어지는 서사를 보여주며, 음악이 그러한 연속성을 뒷받침한다. 비발디가 남긴 소네트는 다음과 같다.

제1악장: 태양으로 불타는 혹독한 계절 아래 / 사람도 지치고 양떼도 지치며 소나무는 달아오른다. / 뻐꾸기가 목청을 풀고 그 소리가 울린다 / 산비둘기와 홍방울새가 노래한다. / 부드러운 서풍(제피로스)이 불어오지만, / 그에 맞서는 북풍(보레아스)이 갑자기 불어닥친다. / 그리고 목동은 탄식한다, / 곧이어 닥쳐올 사나운 폭풍이, 또한 자신의 운명이 두렵기에.

제2악장: 지친 몸이 휴식을 빼앗겼네 / 사나운 번개와 천둥이 두려워서 / 그리고 파리 떼와 날벌레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어서!

제3악장: 아, 두려움은 현실이 되었구나 / 하늘이 천둥과 번개를 내려치고 우박을 퍼붓네 / 곡식의 영글은 머리를 잘라버리네.

‘여름’의 서사적 연속성과 조응하는 것은 전곡을 관통하는 g단조 조성이다. 비발디 연구의 권위자 마이클 탈봇은 이것을 동일조성(Homotonality)이라 부르며 비발디 작품에 흔히 나타나는 특징으로 꼽는다. 그 당시 협주곡은 느린 악장에서 관계조로 이동하여 조성적 ‘휴식’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비발디는 ‘여름’을 구성하는 모든 악장에 같은 조성을 사용했고, 이로써 세 악장을 별개 장면이 아니라 필연적인 재앙으로 이어지는 단일한 드라마로 연출했다.

물론, 리토르넬로 사이사이에 배치된 솔로 에피소드가 조바꿈을 유도하고, 뒤를 잇는 리토르넬로가 바뀐 조를 확정하는 식으로 일시적인 조바꿈은 빈번히 일어난다. 이러한 조바꿈은 폭풍 전의 불안한 대기 상태를 표현하는 등 표제적 역할을 겸하며, 조바꿈이 쓸모를 다하면 g단조의 무겁고 비극적인 색채로 돌아온다.

리처드 타루스킨은 ‹사계›의 정서적 미메시스를 분석하며, 당시 오페라에서 흔히 쓰이던 ‘시밀레 아리아’(simile aria) 기법을 비발디가 ‹사계› 연작에 활용했다고 지적한다. 시밀레 아리아는 오페라 주인공의 감정 상태나 처한 상황을 자연 현상이나 특정 사물에 빗대어 시적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으로, 이 또한 미메시스를 심리적 차원으로 확장한 사례다. ‘여름’에서는 오케스트라가 비유 대상을 음향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독주 악기가 감정을 표현하며, 그로써 폭풍 전 두려움과 폭풍 후 안도감, 대자연 앞에서 느끼는 인간의 무력감 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비발디: ‹사계› 제3번 ‘가을’

‘가을’은 제1악장의 흥겨운 잔치 분위기에서 제2악장의 나른한 공기를 거쳐 제3악장의 역동적인 서사로 나아간다. 비발디의 소네트는 다음과 같다.

제1악장: 농부들이 춤과 노래로 즐긴다 / 풍성한 수확이 주는 큰 기쁨을 / 바쿠스의 술에 취한 많은 이들은 / 잠에 빠져 즐거운 시간을 마무리한다.

제2악장: 모두의 춤과 노래를 멈추게 하는 것은 / 기분 좋게 온화한 공기 /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이끌어 / 더없이 달콤한 잠을 즐기게 하는 계절.

제3악장: 사냥꾼이 새벽에 사냥을 나간다 / 뿔피리와 사냥총을 가지고, 개들을 데리고 나간다 / 짐승은 달아나고, 그들은 자취를 쫓는다. / 이미 굉음에 놀라고 지친 짐승은 / 총과 개들에게 상처 입고 위협당해 / 지친 몸으로 달아나지만, 기력을 다해 죽는다.

리처드 타루스킨의 미메시스 분석을 ‘가을’에 적용한다면, 제2악장은 심리적 미메시스를 대표하는 사례라 할 만하다. 이 악장의 핵심은 외부 사건이 아니라 의식이 느슨해지는 상태이며, 비발디는 이를 마치 오페라의 한 장면처럼 연출했다. 마이클 탈봇은 이를 구현하는 기법으로 하프시코드 분산화음에 주목한다. 그는 비발디 작품에서 하프시코드에 반주를 넘어서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 매우 드문 일이라 지적하며, 잠자는 사람들의 평온하고 몽환적인 상태를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장치가 바로 하프시코드 분산화음이라 보았다.

비발디: ‹사계› 제4번 ‘겨울’

‘겨울’에서는 제1·3악장의 맹추위와 칼바람이 제2악장의 안온함과 대비를 이룬다. 비발디의 소네트는 다음과 같다.

제1악장: 차가운 눈밭에서 몸이 얼어붙고 / 가혹한 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니 / 끊임없이 발을 동동거리고 / 극심한 추위에 이를 딱딱거린다.

제2악장: 난롯가에서 평온하고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네 / 밖에서는 비가 만인을 적시는 동안

제3악장: 얼음 위를 걷는다, 느린 걸음으로 / 넘어질까 두려워 온 신경을 곤두세워 나아간다. / 빠르게 달리다 미끄러져 땅바닥에 넘어졌네 / 다시 빙판에 올라 빠르게 달리네 / 얼음이 깨지고 갈라질 때까지. / 강철 문 너머로 소리를 듣노라 / 남풍(시로코)과 북풍(보레아스), 그리고 모든 바람이 서로 싸우니 / 이것이 겨울이다, 그러나 이처럼 기쁨을 주는 겨울이다.

마이클 탈봇은 ‹사계› 연작 중 ‘겨울’이 비발디 작곡 기법과 표제음악적 의도가 가장 정교하게 결합한 수작이라 평가한다. 특히 제2악장의 다층적 구성방식에 주목하며, 악보에 나타난 개별 성부가 단순히 화성의 일부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 각기 다른 묘사적 역할을 수행하고, 이들의 결합이 음악적 건축물을 이루어 복합적인 장면(tableau)을 창조한다고 보았다.

‘복합적인 장면’은 청각적으로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독주 바이올린의 서정적인 선율이 난롯가의 평온함을 전달하는 동안,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성부는 피치카토 기법으로 창밖에서 내리는 빗방울 소리를 형상화한다. 또한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는 밖에서 몰아치는 뇌우나 폭풍의 대기 상태를 희미한 음향적 배경으로 암시한다.

탈봇은 이러한 다층적 구성의 대표적인 사례로 ‘겨울’ 제2악장을 꼽으면서도, 이와 유사한 기법이 ‹사계› 전곡에 걸쳐 음악적 건축법 원리로 기능한다고 분석한다. 즉 ‹사계›는 묘사적 성격이 탁월한 작품이지만, 그러한 묘사는 자유롭게 삽입되는 것이 아니라 탄탄한 형식 구조 안에 배치된다.

탈봇은 또한 ‹사계›의 바깥 악장들이 어떻게 전통적인 리토르넬로 형식과 서사적인 표제를 조화시키는지 규명한다. 그는 리토르넬로와 반주부 반복음형이 안정적인 풍경으로 기능하는 가운데, ‘솔로 라인’은 새소리나 폭풍우 같은 구체적인 묘사와 서사적 전개를 맡으며 형식적 틀 안에서 유연하게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사계›는 기악의 전통적 형식 안에서 미메시스를 탁월하게 구현했다는 점에 그 독창성이 있다. 비발디의 독창성은 형식 자체에서도 드러나는데, 이를테면 음악학자 에리히 라이머는 비발디가 리토르넬로 형식 규범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했다고 평가한다. 타루스킨은 음악 작품이 일회성으로 공연된 뒤에 잊히는 대신 ‘스탠더드 레퍼토리’로 장기적인 생명력을 갖기 시작한 사실상 최초의 작품으로 ‹사계›를 꼽는다.

  • 용어 설명 - 리토르넬로 형식(Ritornello form): 바로크 시대 협주곡을 특징짓는 형식으로, 합주부가 연주하는 리토르넬로와 독주부가 연주하는 에피소드가 교차하는 구조이다. 리토르넬로는 반복될 때마다 정형화된 규칙에 따라 다른 조로 나타나다가 마지막에는 본래 조로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리토르넬로는 귀환 또는 반복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ritorno’의 지소형(작은꼴)이다. 14세기 이탈리아 소네트나 마드리갈의 후렴구를 뜻하던 ‘리토르넬루스(ritornellus)’에서 유래해 17세기 기악에 도입되었다. 짧은 기악 간주를 뜻하던 초기 형태가 정형화된 리토르넬로 형식으로 발전한 시기는 18세기이다. 18세기 후반에는 리토르넬로 형식이 소나타 형식에 흡수되면서 점차 쇠퇴했다.

2026년 10월 3일 토요일

마르티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보후슬라프 마르티누는 드뷔시의 화성과 관현악법, 스트라빈스키의 불규칙한 리듬과 박자, 체코 민속음악, 재즈, 가믈란 음악 등을 결합한 다원주의적 음악 언어로 20세기 전반에 높은 평가를 받은 작곡가이다.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의 경계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수학했고, 파리에서 유학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동안 다양한 음악 양식을 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뒤에는 드보르자크의 계보를 잇는 체코 작곡가로 명성을 확고히 했다.

그의 다원주의적 양식을 일컫는 다른 이름은 신고전주의다. 낭만주의가 추구했던 ‘숭고함’과 ‘파토스’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이것은 흔한 오해와 달리 옛 양식을 단순히 되살린 것이 아니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고전주의는 옛 양식의 복원이 아닌 ‘인용’이자 ‘메타포’이며, 음악적 ‘통사구조’(syntax)는 현대적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과거와 현재가 이질적으로 충돌하는 아이러니한 혼합물, 즉 혼성모방(파스티셰)의 형태를 띤다. 이러한 점에서 신고전주의는 모더니즘의 범주에 속하면서도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미학적 토대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은 작곡가의 미국 망명 시기 작품으로, 원숙기에 접어든 마르티누의 음악 언어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구조적으로는 전통적이고 명료한 형식을 취하면서도 음악적 표면은 현대적이며, 텍스처의 밀도가 높고 청각적 ‘정보량’이 많다. 이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청자가 편안하게 감상하기에는 다소 까다로운 음악일 수 있다.

제1악장은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을 따르고, 재현부에서는 제시부를 거의 그대로 반복함으로써 구조적 단순성을 보인다. 제1주제는 리듬이 비처럼 쏟아지는 토카타풍으로, 선율보다는 리듬과 화성이 음악을 이끌어 간다. 제2주제는 당김음과 불규칙한 리듬 속에 선율적 성격을 강화하여 제1주제와 대비를 이룬다.

제2악장은 리토르넬로 형식과 세도막 형식을 결합한 짜임새로 되어 있다. 피아노의 느리고 최면적인 카덴차풍 에피소드로 시작하여 목관악기를 중심으로 하는 서정적인 리토르넬로 주제가 뒤를 잇는다. 이후 이 두 요소가 교차하고 변형되며 음악이 전개된다.

제3악장은 론도-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된다. 토카타적인 제1주제와 변칙적인 리듬의 제2주제가 제1악장과 거울쌍을 이루며, 때로는 앞선 두 악장의 요소들이 등장한다. 재현부에서 제시부를 거의 그대로 반복하는 점 또한 제1악장과 상응한다.

2026년 9월 19일 토요일

베토벤: 교향곡 제5번 c단조

아라비아 숫자 5를 로마 숫자로 바꾸면 ‘V’이고, 이를 모스 부호로 옮기면 ‘• • • ―’가 된다. 이 리듬은 베토벤 교향곡 제5번 c단조의 유명한 시작 리듬과 일치하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승리의 V’ 캠페인의 일환으로 영국 BBC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승리의 V’는 연합국 전역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윈스턴 처칠이 즐겨 사용한 손가락 제스처와 더불어 오늘날까지도 흔히 쓰이는 상징으로 남았다. 이 과정에서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은 나치 독일에 닥칠 ‘운명의 문 두드림’이자 연합국의 승리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재해석되었다.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은 클래식 음악사에서 가장 상징적이며 인지도 높은 작품으로 손꼽힌다.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문호 E. T. A. 호프만은 이 음악이 언어의 한계를 초월하여 듣는 이를 “영원한 영적 세계로” 이끈다고 극찬하며, 그 세계의 지배자로서 베토벤을 신격화했다. 음악적으로 이 작품은 19세기 교향곡의 표준적 모델을 제시했고, 후대 작곡가에게는 반드시 넘어야 할 신화적 기준이자 예술적 도전이 되었다.

이 작품의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 제2악장은 이중변주곡 형식, 제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로 이루어지며, 멈춤 없이 이어지는 제4악장은 변형된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더 핵심적인 것은 구조가 아닌 ‘드라마투르기’다. 즉, 고뇌를 이겨내고 환희를 향해 전진하는 투쟁과 승리의 서사, 달리 말해 c단조에서 시작해 C장조로 나아가는 장대한 과정이다. 그러한 서사를 추동하는 힘은 이른바 ‘운명 모티프’, 더 정확히는 그 리듬에서 나온다. 음악학자 카를 달하우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로 이 리듬이 씨앗처럼 기능하며 집요하게 반복·변형·증식해 작품 전체를 형성하고, 나아가 “숭고한 통일성”을 부여한다.

첫 두 마디에 제시되는 ‘운명 모티프’는 여린박(아우프탁트), 즉 박절구조의 끝자락에서 기습적으로 시작된다. 이것은 지휘자와 연주자 모두에게 현실적인 난점이 된다. 문제는 지휘자가 예비박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다. 음악이 8분음표로 시작한다는 점을 근거로 그 길이만큼만 예비박을 주면, 비팅(beating)이 지나치게 날카로워져 악단이 이를 첫 박으로 오인하기 쉽다. 실제로 ‘사고’는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이를테면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지휘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한 연주에서는 바이올린 하나가 반 박자도 아닌 한 박자나 앞서 튀어나오는 돌발 상황이 실황 녹음에 고스란히 담기기도 했다. 지휘자에 따라서는 아예 예비박이 아닌 예비 ‘마디’를 세 마디나 두어 혼란을 피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 실용성에 비해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따따따 따안―’의 마지막 긴 음에는 늘임표(fermata)가 붙는다. 그렇다면 그 길이를 얼마만큼으로 해야 할까? ‘늘임표’라는 말에 맞게 적당히 감으로 늘일 수도 있고, 제시부 끝과 코다에서 비슷한 음형이 확장된 방식을 근거로 한 마디를 세 마디로 셈할 수도 있다. 음반을 들어보면 아예 늘임표를 무시한 연주도 있다. ‘운명 모티프’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호흡하느냐 하는 문제는 이번 공연의 흥미로운 감상 포인트 중 하나다. 물론, 더 본질적인 감상의 핵심은 이 모티프의 발걸음을 따라 투쟁과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에 동참하는 데 있다.

2026년 8월 27일 목요일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제1막 전주곡

예전에 썼던 글의 논지를 다듬어 새로 씀.


짝사랑을 앓아보았는가. 사랑하는 임과 어쩌다 눈 마주쳤을 때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아보았는가. 또는 연인을 처음 본 순간 머릿속에 벼락이 치는 듯한 느낌을 받아보았는가. 바그너는 그러한 눈맞춤의 순간을 ‹트리스탄과 이졸데› 첫 화음으로 나타낸 듯하다. 이와 관련해 바그너가 직접 언급한 일은 없다. 그러나 극 중에서 이 화음과 엮인 모티프는 눈맞춤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 이 모티프는 때때로 영화에서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 패러디되기도 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금지된 사랑을 다루고 있으며, 이야기의 흐름을 추동하는 갈망을 청자의 감각에 효과적으로 주입하는 장치가 바로 이 화음이다. ‘트리스탄 화음’(Tristan Chord)이라 부르는 이것은 음악이 이어지는 동안 형태를 달리하며 계속해서 나타난다.

트리스탄 화음이 서양음악사에 준 충격은 화음 자체의 낯섦보다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에 있다. 바그너는 불협화음을 통상적인 예비 없이 제시한 뒤, 마땅히 따라와야 할 해결을 끊임없이 유예함으로써 기존의 문법이 기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것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려면 화성법에 관한 선행 지식이 필요하다. 그것을 짧은 지면에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선행 지식이 없는 이는 다음 단락을 큰 흐름만 따라가며 흘려 읽어도 좋다.

트리스탄 화음은 F―B―D♯―G♯ 또는 단3도, 감5도, 단7도 음정으로 쌓거나 이것을 전위시킨 화음이며, 따라서 변종 반감7화음이다. 모차르트를 비롯한 이전 작곡가도 썼던 이것이 바그너의 발명품처럼 불리는 까닭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쓰인 맥락 때문이다. 음악이 으뜸화음으로 시작하지 않고 조성이 분명하지 않은 단선율로 시작하는 대목부터 문제다. 이것을 얼렁뚱땅 A단조로 보면 트리스탄 화음은 프랑스 6화음이라 할 수 있고, G♯ 음은 전타음이 된다. 그런데 전타음이 비정상적으로 길다. 더군다나 이 음이 해결되어야 할 A 음은 A♯ 음으로 가는 ‘경과음’처럼 쓰였다. 주객전도다. 게다가 이 화음과 얽힌 모티프는 딸림7화음으로 끝나지만, 어떻게든 해결되어야 하는 이것이 다른 조성 영역으로 곧바로 옮겨가 버린다. 같은 패턴이 되풀이된다.

조성을 A단조가 아닌 A♭단조 등으로 보면 트리스탄 화음은 또 달리 해석된다. 그러나 설명이 길어지니 여기서 줄이자. 중요한 것은 이 화음으로 말미암아 조성이 확립되지 않은 채로 화성이 선율 속을 둥둥 떠다니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반음계적인 조바꿈이 일탈이 아닌 본질처럼 바뀌었으니 음계음과 변화음, 화성음과 비화성음을 구분하는 일이 큰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 청자는 더 이상 음악이 흘러가는 방향과 도착점을 예감할 수 없게 되었다. 조성이 제공하던 안정적인 방향감이 흔들리면서 청자는 끊임없이 유예되는 욕망의 흐름 속에 놓인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이러한 상태를 ‘화성의 바다’(Sea of Harmony)라 부르며, 이것이 듣는 이를 최면적이고 초월적인 감정 상태로 이끈다고 분석했다. 훗날 무조음악으로 이어지는 흐름도 바로 이러한 균열 위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트리스탄 화음의 모호성은 연주 현장에서 흥미로운 미학적 선택을 요구한다. 화음이 전달하는 갈망의 여러 얼굴 중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여기에는 크게 보아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조성적 중심이 사라지고 화성이 둥둥 떠다니면서 나타나는 몽환적인 느낌을 살리는 해석이다. 음 하나하나를 서로 부딪히게 하기보다 차라리 부드럽게 스쳐 지나가게끔 하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트리스탄 화음은 불협화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꿈결을 신비로운 음향으로 나타낸 것이 된다. 이후로도 꿈처럼 어른어른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방향이 어울린다. 지휘자 대다수가 이 해석을 따른다고 할 수 있으며, 글쓴이가 판단하기에 가장 아름다운 꿈결을 빚어낸 지휘자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다.

둘째는 짝사랑하는 임과 어쩌다 눈 마주쳤을 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강조하는 해석이다. 강력한 불협화음에서 나오는 음향적 충격을 되도록 날것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목관악기의 어택(attack)을 날카롭게 살리고 그에 앞서 나오는 현악기의 크레셴도를 가파르게 다스린다. 이어지는 음악에서는 이졸데를 절정으로 이끈 노랫말처럼 “파도치는 물결 속에”(In dem wogenden Schwall) 몸을 내던지는 듯한 격정을 밀어붙인다. 이 방향을 택한 지휘자로는 카를 뵘, 한스 크나퍼츠부슈, 마리스 얀손스 등이 있다.

트리스탄 화음을 어떻게 연주하느냐 하는 것은 이 작품의 중요한 감상 포인트다. 아름다운 꿈결인가, 파도치는 물결인가. 그러나 트리스탄 화음의 힘은 바로 그 대답의 유예 속에서 해소되지 않는 욕망의 떨림을 붙들어 두는 데 있다.

2026년 8월 20일 목요일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장조 K. 364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란 하이든과 모차르트 등 고전주의 시대 작곡가들이 즐겨 쓰던 용어로, 교향곡과 협주곡의 중간 형태인 악곡을 말한다. 대개 독주 악기가 둘 이상이며, 독주 악기의 비중이 통상적인 협주곡보다 낮다. 또한 협주곡보다 규모가 장대하고, 18세기 이전 협주곡에서 흔히 쓰이던 리토르넬로 형식 대신 소나타 형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교향곡 성격이 짙다.

모차르트가 1779년에 작곡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E♭장조›는 독주 악기 두 대가 마치 오페라 이중창처럼 대화를 주고받는 짜임새가 돋보인다.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는 특히 제1악장 발전부를 레치타티보처럼, 즉 박자를 기계적으로 맞추기보다 유연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통일된 비브라토를 구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이며, 모차르트 이후 협주곡에서 표준적으로 쓰이는 이중제시부 기법을 선구적으로 드러낸다. 모차르트 협주곡 양식을 특징짓는 이것은 소나타 형식의 제시부를 오케스트라와 독주 악기가 이중으로 제시하는 기법이다. 이름과 달리 재현부와 코다에서도 유사한 이중 구조가 흔히 나타나며, 그에 따라 관현악과 독주 악기가 반복적으로 교차하는 패턴이 되어 전통적인 협주곡의 리토르넬로 형식과 유사성을 띤다. 이중제시부 기법은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즉 ‘아들’ 바흐) 등에서 선례를 찾을 수 있는데, 용어 자체는 19세기 말에 나왔다.

제2악장은 발전부가 생략된 소나타 형식이다. 쓸쓸한 선율 속에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서로를 다독이는 듯한 정서는 당당한 제1악장, 쾌활한 제3악장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오페라 이중창을 연상시키는 구성이 한층 더 두드러진다. 처음에는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서로 응답하듯 선율을 주고받고, 이어 각자의 선율이 교차하며 긴밀하게 얽힌다. 마지막에는 두 악기가 함께 노래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며 오페라적 서사 구조를 이룬다.

제3악장은 론도-소나타 형식이다. 주제 선율이 5개 이상 등장할 정도로 풍부한 선율적 아이디어가 돋보이며, 이를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의 장르 특성으로 꼽기도 한다. 이 선율들은 성격에 따라 크게 두 개의 주제군으로 묶을 수 있고, 제3악장은 이들 주제군이 교차하며 전개되는 짜임새를 보여준다.

2026년 8월 14일 금요일

칼리니코프: 교향곡 제1번 g단조

바실리 칼리니코프(1866–1901)는 35세 생일을 이틀 앞두고 요절한 비운의 작곡가다.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했으나 학비를 감당하지 못해 4개월 만에 그만두었고, 이후 모스크바 필하모닉 소사이어티 스쿨(현 러시아 공연예술학교 - GITIS)에서 수학했다. 차이콥스키 추천으로 모스크바 말리 극장 지휘자가 됐지만, 지병인 결핵이 악화해 2년 만에 활동을 접고 작곡과 투병으로 생의 나머지 시기를 보냈다.

칼리니코프는 차이콥스키로 대표되는 내면적 서정성과 러시아 5인조의 민족적 서사성을 결합한 ‘모스크바 서정-서사 작곡가’(Moscow lyrico-epic composers)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음악학자 알프레트 스반은 칼리니코프 음악의 외형적 틀이 보로딘, 글라주노프, 글린카 등의 영향으로 형성됐다고 분석한다. 또한 유려한 선율미와 관현악적 질감 등은 차이콥스키로부터 이어받았다고 본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풍은 차이콥스키의 서정성과 보로딘의 서사성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교향곡 제1번 g단조›는 칼리니코프의 대표작으로 러시아와 유럽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스반에 따르면 이 작품은 러시아적 감성과 민족적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유럽 청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탄탄한 교향적 구성과 내밀한 감정 표현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스반이 말하는 탄탄한 교향적 구성이 베토벤과 브람스로 대표되는 서유럽 음악과 비슷하다는 뜻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이 곡에서 칼리니코프는 주요 음 소재를 모자이크처럼 직조하는데, 그 기반은 러시아적 미학이며 서유럽 음악의 유기적 논리성과는 엄연히 다르다.

스반은 칼리니코프가 주제 선율을 다루는 방식이 ‘포드골로스키’(подголоски) 전통을 잇는다고 분석한다. 포드골로스키는 노래하는 듯한 주선율 주위에 다채로운 선율 변형을 모자이크처럼 배치하는 기법으로 글린카 음악에서 유래해 러시아 5인조가 확립했다.

리처드 타루스킨은 ‘드로브노스티’(дробность; 파편성) 개념을 빌려 러시아 음악의 형식적 특징을 설명했고, 같은 맥락에서 글린카와 글라주노프 등의 음악을 분석하며 주제 선율의 골격을 유지한 채로 음색, 화성, 리듬 등의 ‘배경’을 변화시키는 기법을 규명했다.

칼리니코프 교향곡 제1번은 음 소재를 파편적으로 변형하고 재배치하며 장대한 서사적 흐름을 구축하는 민족주의적 형식 감각과 차이콥스키적 서정성을 결합한 대표적 사례다.

제1악장은 소나타 형식의 표준적 조성 계획을 따르지 않는 점을 제외하면 깔끔한 소나타 형식을 취한다. 제1주제는 어딘가 비장한 민요풍 선율과 숙연한 호른 음형이 어우러지며, 호른 음형이 조성 변화를 주도한다. 제2주제는 차이콥스키를 떠올리게 하는 달콤한 선율이다. 발전부에서 사용한 푸가토는 앞서 설명한 모자이크적 직조 방식을 푸가에 적용한 것으로 서유럽의 논리적 대위법과 차이가 있다.

제2악장은 세도막 형식이다. 하프와 바이올린의 서늘하고 몽환적인 반복 음형으로 시작해 잉글리시 호른 등의 애수 어린 선율이 이어지고, 절정을 지나 처음으로 돌아가는 짜임새를 이룬다. 차이콥스키적인 서정이 가장 두드러지는 악장이다.

제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구성이다. 러시아 민속 춤곡 분위기의 활기찬 주제와 트리오 부분의 애수 띤 선율이 대비를 이룬다. 트리오 중간에는 슬픔을 애써 떨치는 듯한 해학이 나타난다.

제4악장은 제1악장 제1주제로 시작해 짧은 호흡으로 선율 변형을 거듭한 끝에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로 순식간에 변모한다. 이후 이전 악장들의 주요 주제를 변형된 형태로 잇달아 소환한다. 축제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앞선 음 소재들은 민족주의적 감성을 끓어오르게 하는 찬가풍 팡파르로 모습을 바꾸며,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도취적 흥분이 극에 달한다.

마지막 악장에서 이전 악장 주제를 순환적으로 활용하는 기법은 드로브노스티와 포드골로스키로 설명할 수 있는 형식 감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순환적 구성 자체는 리스트와 프랑크 작품에서 선례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칼리니코프는 이를 글린카에서 보로딘으로 이어지는 러시아적 미학 속에 녹여냄으로써 차이콥스키적 서정성과 보로딘적 서사성이 결합한 독자적인 교향적 세계를 창조했다.

2026년 8월 9일 일요일

이자이: 바이올린 소나타 제5번 G장조, Op. 27/5

외젠 이자이는 니콜로 파가니니와 더불어 연주법 측면에서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일종의 ‘통과의례’로 통하는 작곡가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 음악평론가 최은규는 그를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스승 비에니아프스키에게서 배운 강렬한 비브라토 주법을 더욱 발전시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독자적인 톤을 개발해 냈고 세 개의 손가락만으로 활을 잡는 변칙적인 운궁법으로 대담한 바이올린 연주를 선보였다.”

이자이가 남긴 바이올린 소나타 여섯 곡은 그의 연주법이 집약된 대표작으로, 형식보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중시하는 환상곡 전통을 따른다. 그 가운데 ‹소나타 제5번 G장조›는 드뷔시의 영향을 뚜렷이 보여준다. 음색을 구조적 요소로 활용해 음악적 서사를 구축하고, G음을 지속음(페달 포인트)으로 삼아 5도 음정 중심의 음 소재를 변형하는 기법 등이 다름 아닌 드뷔시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음악학자 제시카 리트슈티크는 이 곡에서 이자이가 베토벤식의 논리적이고 유기적인 변주 기법을 쓰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대신 음악적 맥락에 따라 느슨하게 응집된 소재를 모자이크처럼 확장한다. 실을 뽑아내듯 선율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포르트슈피눙’(Fortspinnung)이라 부르는 이 기법은 바로크 음악 전통에 뿌리를 둔다. 이 곡은 바로크 양식이 어떻게 드뷔시를 거쳐 이자이에게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제1악장 L’Aurore(새벽)는 어스름한 새벽녘에서 시작해 일출 후 밝은 태양으로 향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해 뜨는 과정의 빛의 변화를 음색 변화로 표현한 점은 드뷔시 ‹바다› 제1악장과 닮았다. 바이올린 하나로 오케스트라처럼 풍성한 색채를 내기 위해 다양한 연주 기법을 동원한다.

제2악장 Danse rustique(시골풍 춤곡)는 빠르고 생동감 있는 리듬으로 제1악장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대조를 이룬다. 제1악장에서 유래한 음 소재를 이어받아 한낮의 마을 풍경을 묘사하듯 서사적 연결을 유지한다.

2026년 8월 1일 토요일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

예전에 썼던 글을 내용을 보충해 완전히 새로 씀.


세자르 프랑크는 독일 음악의 영향에서 벗어나 프랑스 음악의 자부심을 되찾으려는 ‘아르스 갈리카’(Ars gallica) 운동을 이끈 작곡가다.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 패한 뒤 독일 문화에 저항감이 높아진 현실이 배경이었다. 그러나 프랑크가 독일 음악 전통을 무조건 배격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 유산을 계승하려 했고, 오페라가 지배하던 당시 프랑스 음악계에서 관현악과 실내악의 지위를 격상시켜 독일을 넘어서는 프랑스 기악 전통을 확립하고자 했다.

그러나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프랑크가 ‘아르스 갈리카’의 큰 스승으로 존경받으면서도 바그너 음악에 “무력하게 예속된” 작곡가였다고 분석한다. 프랑크가 프랑스 기악의 독자성을 추구했으나, 바그너라는 동시대 현실을 극복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특히 매혹된 프랑크는 무의식적으로 그를 표절하지 않도록 몹시 경계했다. 그럼에도 ‘바그너 전염병’의 일부라며 공격당하는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타루스킨은 특히 프랑크 음악의 화성 진행이 바그너적(Tristanesque)이라고 평가했다.

프랑크가 겪은 ‘바그너 딜레마’는 사실 ‘베토벤 딜레마’이기도 했다. 음악학자 카를 달하우스는 19세기 서양음악의 중심에 “베토벤이라는 압도적인 신화”가 있었으며, 그 신화 자체가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고 통찰한다. 베토벤은 고전주의 음악 양식을 확장, 완성하고 그 한계를 깨트려 낭만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으나, 문제는 그 유산이 낭만주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핵심 문제는 베토벤의 모티프 발전 기법을 낭만주의 음악 어법 안에서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였다.

“[…] 오케스트라 전체를 감싸는 촘촘한 그물을 형성하며 매 순간 그 구조를 결정한다. […] 이러한 그물은 베토벤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과 한 가지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즉 균형 잡힌 선율적 악절보다는 모티프의 논리에 의해 음악 형식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달하우스가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v)를 설명한 말이다. 라이트모티프는 특정 음악으로 인물·사건·감정 등을 떠올리게 하는 기법을 뜻한다. 달하우스는 이 기법의 표상적 기능 이면에 자리한 구조적 원리, 즉 모티프를 지속적으로 변형 및 재배치하는 기능을 설명했다.

이러한 구조적 기능은 프랑크에게도 중요했다. 사실 프랑크와 바그너 모두 프란츠 리스트가 내놓은 ‘베토벤 딜레마’ 해답에 의존했다. 주제 선율의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그물망처럼 엮어 바꿔나가면, 듣는 사람이 인지할 만큼 적당히 달라진 선율과 리듬이 되풀이되면서 음악의 뼈대를 형성한다. 이것이 리스트가 내놓은 해답이었다.

바그너와 프랑크는 이를 받아들여 각자의 음악 언어를 개발했다.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에 대응하는 프랑크의 해답은 ‘순환형식’(Cyclic Form)이라 부르는데, 이는 사실 라이트모티프에서 ‘드라마’를 뺀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프랑크 초기 작품에 나타나는 ‘해답’이 오히려 리스트보다 앞선다는 소수 의견도 있다.

프랑크가 순환형식 작곡 원리를 가장 원숙하게 구현한 작품이 바로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다. 서늘하고 쓸쓸한 바이올린의 독백이 피아노의 반음계적 화성과 어우러지고, 이것이 리듬과 화성, 음색을 달리하며 새로운 맥락 속에 새로워진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반복과 변형이 작품 전체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골격을 이룬다. 제1악장은 환상곡풍 소나타 형식, 제2악장은 소나타 형식, 제3악장은 환상곡풍 자유 형식이며, 마지막 제4악장은 론도 형식이다.

2026년 7월 22일 수요일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사회가 혼란에 빠져 개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예술가는 그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거나 적극적으로 폭력에 저항하곤 한다. 그러나 어떤 예술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내면의 동굴 속으로 숨기도 한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러시아를 뒤흔들던 시기,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는 캅카스 산맥과 볼가 강 일대를 여행하며 격변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로 이전 작품의 자극적이고 타악기적 성향의 음악 양식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었다.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의 분석에 따르면, 이 작품에 나타나는 불협화음과 그로 인한 긴장감은 쇼스타코비치의 경우와 달리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징후적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악곡의 정교한 조형적 틀을 수놓는 ‘빛과 그림자의 유희’이며, 그와 동시에 ‘고난 없는 서정성’(untroubled lyricism)이자 ‘서정적 해방’(lyrical release)의 성격을 보인다. 피아니스트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는 이 곡을 두고 “봄날 처음 창문을 열었을 때 거리에서 솟아오르는 소리가 갑자기 밀려드는 듯한 느낌”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서정성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음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작곡가가 몸을 숨긴 내면의 동굴 바깥에서는 러시아의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치며, 그 칼바람이 자꾸만 꿈결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동굴의 꿈결과 현실의 고통 사이에 형성되는 긴장 관계야말로 이 작품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소나타 형식으로 된 제1악장 제1주제에는 ‘꿈꾸듯이’(sognando)라는 나타냄말이 붙어 있고, 좀 더 격정적인 제2주제에는 ‘내레이션하듯이’(narrante)라는 지시가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는 작곡가로부터 “누군가를 설득하듯이 연주하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론도 형식으로 된 제2악장은 그로테스크한 스케르초이며, 느리고 몽환적인 제1악장·제3악장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음악평론가 마이클 스타인버그는 제2악장이 흉포하고 유쾌하며 무례하고, 때로는 악의적이고, 운동감 넘치고(athletic), 바이올린 기법 측면에서 기발하고 탁월하다고 평했다.

변주곡 풍의 자유로운 형식으로 이루어진 제3악장은 ‘꿈결’과 ‘현실’ 사이의 긴장 관계가 서서히 ‘꿈결’의 승리로 귀결되는 음악적 서사를 보여준다. 코다에 이르면 독주 바이올린이 제1악장 제1주제를 높은 음역에서 재현하고, 이어 목관악기가 제3악장의 주제를 이어받은 뒤, 마지막에는 마치 공기 중에 연기가 흩어지듯 사라진다.

2026년 4월 10일 금요일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예전에 썼던 글을 윤문 수준으로 수정함.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봄의 제전›은 20세기 서양음악사를 대표하는 걸작 중 하나로 변화무쌍하고 강렬한 리듬, 원초적이고 주술적인 분위기, 그리고 두 가지 이상의 조성을 병치하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음악 어법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1911년에서 1912년 사이에 스위스 클레랑스에서 작곡되었고, 작곡가는 처음부터 발레를 위한 관현악곡을 의도했으나 1912년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악보가 먼저 출판되었다. 관현악 편성의 발레는 1913년 니진스키의 안무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은 고대 사회의 종교적 제의를 묘사한 작품으로, 스트라빈스키는 다음과 같은 표제와 설명을 붙였다.

제1부: 대지에 대한 경배

– 도입부

– 봄의 조짐 ― 젊은 처녀들의 춤
봄을 기념하는 행사가 언덕에서 시작된다. 한 노파가 나와 앞날을 예언한다.
– 유괴 의식
젊은 처녀들이 강에서 한 줄로 다가와 “유괴의 춤”을 춘다.
– 봄의 론도
젊은 처녀들이 둥글게 돌면서 호로보트(러시아 원무)를 춘다.
– 라이벌 부족들의 의식
사람들이 두 패로 나뉘어 라이벌 부족들의 의식을 치른다.
– 현자의 행렬
신성한 행렬이 장로들 앞으로 이어지며, 그들을 대표하는 현자가 의식을 잠시 중지시키고 대지에 축복을 내린다.
– 대지의 춤
사람들이 땅과 하나가 되고자 열광적으로 춤춘다.

제2부: 희생

– 도입부

– 젊은 처녀들의 신비로운 모임
젊은 처녀들이 둥글게 돌면서 신비로운 행사를 시작한다.
– 선택받은 이를 찬양함
처녀 가운데 하나가 둥근 행렬 속에서 두 번 붙잡히며 ’선택받은 이’로 지명되고, 그 운명을 받아들여 춤을 춘다.
– 조상의 혼령을 소환함
처녀들이 짧은 춤으로 조상의 혼령을 깨운다.
–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
선택받은 이가 장로들에게 인도되며, 장로들이 제의를 수행한다.
– 희생의 춤
장로들이 입회한 가운데 선택받은 이가 “희생의 춤”을 추면서 죽음을 맞는다.

I. Stravinsky: Le Sacre du Printemps

One of the masterpieces of twentieth-century Western music, ‹Le Sacre du Printemps› boasts an ever-changing, intense rhythm, primitive and magical atmosphere, and uses highly unconventional musical language for the time, such as juxtaposing multiple tonalities. Completed between 1911 and 1912 in Clarens, Switzerland, Stravinsky intended it from the outset as a ballet for orchestra, but published the score for two pianos beforehand in 1912. The version for orchestra premiered with Nijinsky’s choreography in 1913. This piece describes a religious ritual of an ancient pagan society. Stravinsky added the following titles and descriptions to the piece:

Part I: Adoration of the Earth

– Introduction

– Augurs of Spring ― Dance of Young Girls
The celebration of spring begins in the hills. An old woman enters and begins to foretell the future.
– Ritual of Abduction
Young girls arrive from the river in single file and begin the “Dance of Abduction.”
– Spring Rounds
The young girls dance the Khorovod (a traditional Russian round dance), known as the “Spring Rounds.”
– Ritual of the Rival Tribes
The people divide into two groups in opposition to each other and begin the “Ritual of the Rival Tribes.”
– Procession of the Sage
A holy procession leads to the wise elders, headed by the Sage who brings the ritual to a halt and blesses the earth.
– Dance of the Earth
The people break into a passionate dance, sanctifying and becoming one with the earth.

Part II: The Sacrifice

– Introduction

– Mystic Circles of the Young Girls
The young girls engage in mysterious games, walking in circles.
– Glorification of the Chosen One
One of the young girls is caught twice in the perpetual circle, and is selected by fate to be the “Chosen One.”
– Evocation of the Ancestors
The young girls invoke the ancestors.
– Ritual Action of the Ancestors
The Chosen One is presented to the elders, who enact the ritual.
– Sacrificial Dance
The Chosen One dances to death in the presence of the old men, in the great “Sacrificial Dance.”

2026년 4월 8일 수요일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 f단조

예전에 썼던 글을 윤문 수준으로 수정함.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제2번 f단조

쇼팽 피아노 협주곡은 오케스트라 반주가 덧붙은 피아노 독주곡에 가깝다. 협주곡의 외형을 취하고 있으나, 오케스트라는 피아노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 머물며 음악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피아노에 있다.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은 제1악장이 소나타 형식, 제2악장과 제3악장이 세도막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쇼팽의 작품에서 흔히 그러하듯 이 곡의 구조를 세밀히 따지는 일은 학술적 목적이 아닌 한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이 작품은 쇼팽이 피아노로 써 내려간 시로서, 그 정서를 그대로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 특히 이 곡의 백미로 꼽히는 제2악장은 쇼팽이 당시 짝사랑하던 여학생을 떠올리며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가 남몰래 품은 사랑의 감정이 잔잔한 화성 위에 절절한 피아노 선율로 스며든다.

이 협주곡은 쇼팽이 파리에서 명성을 얻기 이전, 폴란드에서 활동하던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작곡 시기는 피아노 협주곡 제1번보다 한 해 앞서지만, 출판 순서로 인해 번호가 뒤바뀌게 되었다.

F. Chopin: Piano Concerto No. 2 in F minor, Op. 21

Chopin’s piano concertos are closer in spirit to piano solos with orchestral accompaniment than to concertos conceived symphonically. Although they assume the outward form of the genre, the orchestra remains largely in a subordinate role, serving primarily to set off the piano, which clearly retains the musical initiative. Piano Concerto No. 2 in F minor follows a conventional layout — the first movement in sonata form, and the second and third movements in ternary form — but, as is often the case with Chopin, detailed formal analysis offers limited insight beyond a strictly academic context.

This work is best understood as a piano poem, to be experienced directly through its expressive atmosphere rather than dissected structurally. At its emotional center lies the second movement, traditionally believed to have been inspired by Chopin’s unspoken affection for a young student, where the quiet intensity of concealed love permeates gentle harmonies and unfolds in a piano melody of poignant lyricism.

This concerto represents the period of Chopin’s career spent in Poland, before he achieved fame in Paris. Although it was composed earlier than the Piano Concerto No. 1 in E minor, its later publication resulted in the reversal of their numbering.

2026년 4월 7일 화요일

윤이상: 예악(禮樂)

예전에 썼던 글을 윤문 수준으로 수정함.

윤이상: 예악(禮樂)

선율과 리듬과 화성은 전통적으로 서양음악을 이루는 세 가지 요소로 꼽혀 왔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 ’음색’이 그 못지않게 중요해졌다. 전통적으로 음색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작곡 기법은 관현악법(orchestration), 즉 특정 선율·리듬·화성에 악기를 배정하고 이를 다른 악기와 섞어 소리를 빚는 방법이었다. 음악학자 카를 달하우스는 현대적인 관현악법의 가능성을 제시한 말러 교향곡 제1번과 R. 슈트라우스 ‹돈 주앙›을 가리켜 음악적 모더니즘의 뿌리라고 평가한 바 있다.

1960년대에 이르면 전통적인 화음 개념을 확장한 이른바 ‘톤 클러스터’(tone cluster), 즉 음 덩어리로 선율·리듬·화성을 사실상 해체하고 음색 또는 ’음향’을 전면에 내세운 음악이 등장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쓰여서(사실은 감독이 작곡가 허락 없이 도용해서) 더욱 유명한 리게티 ‹아트모스페르›, 그리고 음악보다 제목이 더 유명한 펜데레츠키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 같은 작품이 그 예다.

음을 덩어리로 쌓아 만든 ’음향’으로 음악을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작곡가 윤이상이 찾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을 응용해 동아시아 음악의 음향을 서양 악기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윤이상이 만들어 낸 ’음향’은 리게티나 펜데레츠키 같은 서양 작곡가들 것과는 사뭇 달랐다. 서양음악에서는 개별 음은 고정되어 있어 다른 음과 관계를 맺으면서 음악적 의미가 만들어지지만, 동아시아 음악에서는 음 하나만으로도 생명력을 지니고 스스로 움직이며 음악을 이룬다. 살아있는 음이 모여 살아있는 화음, 살아있는 음향층을 이루는 것이 윤이상 음악 어법의 핵심이다.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 작품이 ‹예악›(禮樂)이다. 1966년 독일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에서 이 작품이 초연되면서 윤이상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곡가로 떠오른다. 동양의 사상과 음악 미학을 서양 아방가르드 기법과 결합해 완성도 높은 음악 언어로 구현한 선구적 작곡가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작품 속에 녹아든 정중동(靜中動) 원리는 ’음 덩어리’를 조직하고 움직이는 원리를 고민하던 서양 작곡가들에게도 훌륭한 돌파구로 제시되었다.

윤이상 음악의 음향층은 주요음향 또는 중심음향(Hauptklang)이라 불린다. 이것은 그 구성요소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살리고 덜 살리느냐에 따라 한국 전통음악의 음향이 살아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점에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한국 전통음악을 모르는 서양 지휘자가 윤이상 작품을 지휘하면 서양음악 맥락에서만 이해되는 음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라는 움베르토 에코의 말처럼, 그 또한 정당한 해석일 수 있다.

다만, 독일 지휘자 롤란드 클루티히(Roland Kluttig)가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이 곡을 연주했을 때 글쓴이가 경험한 음향은 특히 인상 깊었다. 그가 구현한 음향이 종묘제례악이나 수제천에서 들을 수 있는 바로 그것이었던 까닭이다. 그것은 ’원류’를 모르고서는 만들어낼 수 없는 소리였고, 또한 내가 기억하는 가장 탁월한 ‹예악› 연주였다.

흥미롭게도, ‹예악›에 사용되는 국악기가 하나 있다. 한국 궁중음악에서 곡의 시작과 끝, 각 절의 끝에 연주되는 악기인 박(拍)이다. ‹예악›에서도 마찬가지로 곡의 처음과 끝, 그리고 주요 분기점마다 박이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한국 궁중음악에서 그러하듯이, 이 곡에서 박은 ‘공간을 가르며 침묵을 정주(停住)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악보에서 작곡가는 이것을 채찍을 뜻하는 ’Peitsche’라는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괄호 안에 ’Bak’이라고도 썼다.

Isang Yun: Réak (1966)

Melody, rhythm, and harmony have traditionally been regarded as the three fundamental elements of Western music. In the twentieth century, however, timbre emerged as an element of equal importance. In the conventional sense, the compositional technique most closely associated with timbre was orchestration — the art of assigning melodies, rhythms, and harmonies to specific instruments and blending them to shape sound. Musicologist Carl Dahlhaus described Mahler’s Symphony No. 1 and Richard Strauss’s ‹Don Juan› — works that revealed new possibilities in orchestration — as among the roots of musical modernism.

By the 1960s, composers began to expand the conventional concept of harmony into so-called tone clusters: dense aggregates of tones that effectively dismantled melody, rhythm, and harmony, placing timbre — or what might be called a “sound complex” — at the forefront. György Ligeti’s ‹Atmosphères›, made even more famous by its (unauthorized) use in Stanley Kubrick’s film ‹2001: A Space Odyssey›, and Krzysztof Penderecki’s ‹Threnody to the Victims of Hiroshima› — whose title is arguably more famous than the piece itself — are representative examples of this trend.

The idea of composing music through sound complexes built from tone clusters was precisely what Isang Yun had been seeking, for it allowed him to translate the sonic world of East Asian music into Western instruments. Yet the sound complexes Yun created differed markedly from those of Western contemporaries such as Ligeti or Penderecki. In Western music, individual tones are fixed, and musical meaning arises from their relationships with other tones. In East Asian music, by contrast, a single tone already possesses vitality: it moves, breathes, and unfolds on its own. Yun’s musical language is founded on this principle — vitalized tones gathering into vitalized harmonies and a vitalized sound complex.

‹Réak› was born from this context. Premiered in 1966 at the Donaueschingen Festival in Germany, the work brought Yun international recognition. Critics hailed Yun as a pioneering composer who brought Eastern philosophy and musical aesthetics into a fully mature synthesis with Western avant-garde technique. The principle of “movement within stillness” (靜中動) embedded in the piece was also embraced by Western composers searching for new ways to organize tone clusters within a musical work, offering them a breakthrough in tone-cluster technique.

The sound complexes in Yun’s music are often described by the term Hauptklang. Depending on which elements within this Hauptklang are emphasized or restrained, the sonority may evoke the sonic world of Korean traditional music — or not — thus allowing for a wide range of interpretations. When a Western conductor unfamiliar with Korean traditional music performs Yun’s works, the result may be music understood solely within a Western framework. Yet, as Umberto Eco famously remarked, “the author should die once he has finished writing”; such a reading, too, can therefore be considered valid.

That said, the sonic world I experienced when the German conductor Roland Kluttig led ‹Réak› with the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was particularly inspiring. What he realized was unmistakably the sound one encounters in masterpieces of Korean traditional music, such as ‹Jongmyo Jeryeak› or ‹Sujecheon›. It was a sound impossible to create without an understanding of the original source — and, for me, it remains the most outstanding performance of ‹Réak› I have heard.

Interestingly, ‹Réak› employs a traditional Korean instrument: the bak, a wooden clapper used in Korean court music to mark the beginning and end of a piece, as well as the close of each section. In ‹Réak›, the bak fulfills a similar role, appearing at the opening and conclusion and at major structural junctures. As in Korean court music, it functions as a device that “cuts through space and anchors silence.” In the score, Yun translated the instrument’s name into German as Peitsche (“whip”), adding “Bak” in parentheses.

2026년 4월 6일 월요일

모차르트: 피아노 사중주 제1번 g단조 / 드보르자크: 피아노 사중주 제2번 E♭장조

모차르트: 피아노 사중주 제1번 g단조

음악학자 데이비드 펜튼에 따르면, 피아노와 현악기 셋을 편성한 ’피아노 사중주’는 18세기 중반 이후 건반악기에 반주 악기를 더한 디베르티멘토(가벼운 파티용 음악)에서 유래했다. 또한 초기 형태의 건반악기 협주곡이 흔히 바이올린 두 대와 첼로 등을 사용한 편성으로 출판되던 관행과도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피아노 사중주는 18세기의 다른 실내악 장르와 마찬가지로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여흥을 위한 장르로 여겨졌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본격적인 피아노 사중주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사중주 제1번 g단조(K. 478)와 제2번 E♭장조(K. 493)가 사실상 최초라 평가된다. 모차르트는 이 두 작품을 아마추어용으로 쉽게만 쓰지는 않았고, 특히 피아니스트에게 당시로서는 고난도 테크닉을 요구했다. 출판업자 호프마이스터는 모차르트에게 피아노 사중주 세 곡을 위촉했으나 g단조 사중주의 연주 난도가 높다는 이유로 결국 출판을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모차르트는 출판 계약이 취소된 이후 피아노 사중주 제2번 E♭장조를 작곡해 아르타리아 출판사를 통해 출판했다.

제1악장은 비장한 주제로 시작해 밝고 어두운 분위기를 오가며, 제2주제가 등장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유쾌한 속임수가 인상적이다. 원조성인 g단조가 제2주제의 조성 영역인 B♭장조로 옮겨간 뒤, 제2주제가 아닌 제1주제의 변형이 먼저 등장해 가짜 제2주제처럼 제시된다. 그 뒤에야 진짜 제2주제가 짧게 나왔다가 곧바로 작은종결구로 이어진다. 재현부에서는 이 가짜 제2주제 대신 속임종지가 등장한 뒤 g단조로 제2주제가 나온다. 발전부에서는 앞선 음소재를 활용하면서도 새로운 주제가 c단조로 나타나 제1주제의 비장함을 심화시킨다. 발전부와 재현부가 통째로 반복되는 구성 또한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서정적인 제2악장은 소나타 형식을 기초로 하되 발전부를 대신해 제시부를 살짝 변형한 ’중간 부분’이 삽입된다. 제3악장은 론도-소나타 형식으로, 단조 영역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경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다가 발전부적 성격의 중간 부분에서 잠시 단조로 이탈하여 대비를 이룬다.

W. A. Mozart: Piano Quartet No. 1 in G minor, K. 478

According to musicologist David Fenton, the piano quartet — scored for piano and three string instruments — can be traced back to mid-eighteenth-century divertimenti — light social music — in some cases employing a keyboard instrument combined with accompanying strings in this specific instrumentation. It is also related to the contemporary publishing practice whereby early keyboard concertos were frequently issued in arrangements for keyboard with two violins and cello. Against this background, the piano quartet, like many other chamber music genres of the eighteenth century, was generally regarded as music intended for amateur enjoyment.

In the modern sense, however, the piano quartet is widely considered to have truly begun with Mozart’s Piano Quartet No. 1 in G minor, K. 478, and Piano Quartet No. 2 in E-flat major, K. 493. Mozart did not compose these works simply for amateur players; on the contrary, they demand a level of virtuosity — particularly from the pianist — that was exceptional for their time. The publisher F. A. Hoffmeister is said to have commissioned three piano quartets from Mozart, but ultimately declined to publish the G-minor work on account of its technical difficulty. After the contract was canceled, Mozart went on to compose the second quartet in E-flat major, which was subsequently published by Artaria.

The first movement opens with a tragic theme and alternates between light and dark moods, featuring a playful deception in the approach to the secondary theme. After the home key of G minor modulates to B-flat major — the expected key area for the secondary theme — a transformed version of the primary theme appears instead, functioning as a “false” secondary theme. Only then does the genuine secondary theme emerge briefly, followed immediately by a closing section. In the recapitulation, this false secondary theme is replaced by a deceptive cadence, after which the secondary theme finally returns in G minor. In the development, a new theme appears in C minor, derived from earlier motivic material and intensifying the tragic character of the primary theme. Also noteworthy is the large-scale repetition of both the development and the recapitulation in their entirety.

The lyrical second movement is based on sonata form, but instead of a full development section it inserts a lightly varied middle passage derived from the exposition. The third movement adopts a rondo-sonata form, maintaining an overall buoyant character in which the minor mode is scarcely felt, before briefly turning to the minor in a development-like central episode to create contrast.

드보르자크: 피아노 사중주 제2번 E♭장조

19세기 실내악은 18세기와 달리 더 이상 아마추어를 위한 장르가 아니었다. 특히 브람스 파벌과 바그너 파벌이 대립하던 시기에 브람스 진영을 옹호하는 논리로 ’고급 감상자는 실내악을 듣는다’라는 속설이 등장했으며, 이것은 오늘날에도 흔히 인용된다. 브람스를 멘토로 삼았던 드보르자크는 다양한 걸작 실내악을 남겼는데, 그중 피아노 사중주 제2번 E♭장조는 그의 성숙기에 쓰인 작품으로 브람스에 비견할 만한 치밀하고 복합적인 짜임새를 지닌다.

제1악장은 시작 직후부터 E♭장조를 벗어나 예상 밖의 조를 떠돌다가 한참 뒤에야 주조성을 확립하며,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흐름이 반복된다. 음악학자 브루스 아돌프의 분석에 따르면, 작곡가는 이 곡에서 E♭장조의 비화성음인 B와 G♭ 등을 ’돌연변이’이자 해결해야 할 ’문제’로 설정하고, 이를 원조성에서 멀리 떨어진 조로 이행하는 연결 고리로 활용함으로써 작품 전체를 조직한다. 제2주제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엉뚱한 조’인 G장조로 제시된다.

발전부는 마치 제시부가 반복되는 것처럼 시작하며, 반대로 재현부는 발전부가 계속되는 것처럼 출발한다. 발전부 직전에는 연쇄적인 감7화음과 여러 조를 경유하는 준비 과정으로 긴장감이 축적되며, 이어지는 발전부에서 제2주제는 자취를 감춘다. 재현부가 발전부의 연장이라는 인상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지점에서 제2주제는 B장조로 재현되는데, 이때 첼로가 홀로 일탈적인 하행 음형을 연주한다. 브루스 아돌프는 이것을 ’장조 속의 단조’이자 ’제2주제 속의 제1주제’로, 나아가 모차르트 피아노 사중주 제1번 g단조 제1악장의 이른바 ’가짜 제2주제’에 등장하는 비올라 솔로에 대한 오마주로 분석한다.

서정적인 제2악장은 발전부가 생략된 소나타 형식이며, 다채로운 춤의 향연인 제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 경쾌하게 질주하는 제4악장은 소나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악장은 모두 단순함과 복잡함 사이의 균형 잡힌 구조를 보여주며, 제1악장의 현란한 짜임새를 경험한 감상자라면 비교적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A. Dvořák: Piano Quartet No. 2 in E-flat major, Op. 87

Unlike in the 18th century, chamber music in the 19th century was no longer a genre intended primarily for amateur performers. During the period marked by rivalry between the Brahms and Wagner camps, chamber music came to be framed as “a genre for discerning audiences,” a notion that functioned as a rhetorical defense of the Brahmsian aesthetic and is still frequently cited today. Dvořák, who regarded Brahms as a mentor, left behind a rich body of chamber music. Among these, the Piano Quartet No. 2 in E-flat major stands as a mature work of remarkable density and complexity, worthy of comparison with Brahms’s own chamber masterpieces.

The first movement departs from E-flat major almost immediately, wandering through unexpected keys before establishing the home tonality only much later — a pattern that recurs throughout the movement. According to musicologist Bruce Adolphe, Dvořák structures the entire work by extensively featuring tones foreign to E-flat major — such as B natural and G-flat — which he treats as “mutations” and “problems to solve,” and further as pivots to remote key areas. In this context, the secondary theme is presented in the seemingly incongruous key of G major.

The development begins as if the exposition were being repeated, while the recapitulation, conversely, sets off as though the development were continuing. Just before the development, tension is carefully accumulated through a preparatory passage featuring chains of diminished-seventh chords and multiple modulations, after which the secondary theme disappears entirely from the development section. When the music finally breaks free from the sense that the recapitulation is merely an extension of the development, the secondary theme reappears in B major, at which point the cello stands out with a wayward gesture. Bruce Adolphe interprets this cello line as “reminding you that you were in minor,” as “bringing the first theme back,” and ultimately as a reference to Mozart — specifically, the viola solo that appears in the so-called “false secondary theme” of the first movement of Mozart’s Piano Quartet No. 1 in G minor.

The lyrical second movement is cast in sonata form without a development. The third movement, a showcase of various dances, is cast in scherzo-and-trio form, while the final movement, driven forward with exuberant energy, returns to sonata form. All three movements strike a fine balance between simplicity and complexity, allowing listeners — having navigated the intricate architecture of the first movement — to enjoy them with a sense of relative ease.

2025년 12월 19일 금요일

올해 읽은 최고의 논픽션 - 티모시 가이트너 『스트레스 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는 세상을 구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당사자의 시선에서 회고한 기록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했고, 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여파가 통제 불능으로 번졌다면, 전쟁을 포함한 전면적 혼란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금융과 관련한 전문적인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이를테면 『한자와 나오키』보다 내용 이해에 요구되는 금융 지식의 수준이 더 높다. 그러나 이 책은 전문가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며, 나만 해도 전문가가 아니라 일개 개미 투자자다.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면, 문명이 붕괴 직전까지 몰렸던 상황의 스펙터클을 이 책에서 경험할 수 있다.

책에 언급된 사람들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들, 그리고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읽다 보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은 위기 상황에서 곤경에 빠진 서민들을 구제하는 일에 큰 역할을 했다. 티모시 가이트너는 서민을 직접 구제하는 일보다 그들이 사는 세상 자체가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워런은 올바른 일을 하면서 많은 존경과 찬사를 받았지만, 가이트너는 올바른 일을 하면서도, 그 대가로 비난과 오해를 견뎌야 했다.

그래서 워런의 책 『싸울 기회』를 읽기에 앞서 가이트너 책을 읽어야 당시 상황을 올바로 알 수 있게 된다. 당시에 가이트너를 이해하고 신뢰한 사람은 극소수였고, 그 가운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있었기에 인류는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위기 초반에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가 의외로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유지했다고 한다.

레리 서머스는 탁월한 경제학자이자 가이트너의 멘토, 가이트너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며, 오바마가 가이트너를 재무장관으로 영입하려 했을 때 가이트너가 제안을 거절하며 대안으로 거론한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위기에 대응하는 일을 서머스가 가이트너보다 더 잘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지적 능력이 그런 역할을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성향의 인물은 세상 모두가 자신을 비난하는 상황을 묵묵히 견디며 올바른 일을 하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가이트너 대신 재무장관이 되었다면, 그는 더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대신 자신은 다치지 않게끔 ‘정치적으로 안전한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서머스에 관한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이렇다: “나는 “서머스는 백악관 내에서 멍청한 아이디어를 기각하는 담당으로 영구보직을 받아야 한다.”는 헨리 키신저의 유명한 발언을 인용했다(이 발언은 내가 몇 년 후 기자에게 말해준 이후 처음으로 널리 알려졌다). 서머스가 명석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그의 지적인 칼에 직접 난도질당해 봐야, 그가 얼마나 명석한지를 파악할 수 있다.”

레이얼 브레이너드는 당시에 차관보로서 가이트너 휘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듯하다. 그 이후에는 내가 기억하는 연준(FRB) 이사이자 연준의 핵심 브레인으로 활약했고, 팬데믹 위기 상황에서 신속하고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금융 붕괴에 의한 문명의 붕괴를 다시 한 번 막아내게 된다. 이후 유력한 차기 연준 의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는데, 만약 그것이 실현되었다면 여성 최초 연준 의장이 탄생했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기 전의 일이다.

리처드 쿠는 가이트너 책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지만, 당시 상황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데 그의 책 『밸런스시트 불황으로 본 세계 경제』가 도움이 된다. 나는 가이트너에 대한 그의 비판이 이론적으로는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장의 압박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학자의 입장에서나 가능한 비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긴급한 상황에서 위기 대응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 의회와 언론의 공격을 받아 실행이 좌절되는 답답한 일들이 가이트너의 책에는 여러 차례 나온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현실이 아닌 소설 속의 인물이 떠오르기도 한다. 『엔더의 게임』에 나오는 엔더 위긴이다. 동명의 영화에서는 엔더가 그냥 똘똘한 어린애로만 나오지만, 원작 소설에서 그는 끝도 없이 반복되는 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피로감에 시달리게 된다. 현실의 위기를 헤쳐나갔던 가이트너의 모습이 그랬을 법하다.

내가 만약 가이트너였다면 저 상황에서 이렇게 했을 텐데 싶은 순간이 있다. 재무장관 임명 직후에 있었던 연설이다. 이것이 대실패로 끝나면서 가이트너의 고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론의 뭇매를 피할 길은 어차피 없을 것이므로, 나라면 차라리 화끈한 쇼맨십과 더불어 내 쪽에서 먼저 그들을 도발할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지금 제가 들고 있는 봉투 안에는 제 사직서가 있습니다. 이 연설이 끝나는대로 저는 사직서를 제출할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언제든 원하시는 때에 이것을 수리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 저는 어떠한 비난과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제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할 것입니다. 자세한 계획은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월가의 탐욕스러운 금융인들 편에 서 있다는 오해를 부를 것이며, 금융인들은 제가 그들을 약탈할 혁명군 사령관이라 오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해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고 결과로 증명하겠습니다.”

물론 내 상상일 뿐이다. 가이트너가 책에서 설명한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금융위기 대응에 관련하여 불편한 진실은, 옳다고 생각한 행동이 종종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자연스러운 순리는 개입 전에 가능한 한 오래 기다렸다가 점진적으로 강화하고, 납세자들 손실을 줄이고, 지원에 엄격한 조건을 달며, 위기 원인 제공자를 징벌하며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언급하는 것이다. 즉 “실패한 회사들을 망하게 내버려 둬라. 호황기에 돈을 댄 채권자들이 대가를 치르게 둬라.”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시스템의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처방일 뿐이다. 일반 국민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정의, 즉 악한들에 대한 처벌을 원할 것이다. 도덕적 해이에 대해 전통적 근본주의자들은 “무책임한 행동은 보상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한다. 만약 정책결정자들이 이러한 말에 귀를 기울이면 재앙을 불러들이게 된다. 주요회사들이 실패하게 놔두고, 도덕적 해이를 피하며,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여야 한다는 압력이 강할 것이다. 그러나 이 압력에 굴복한다면 궁극적으로 정부의 개입을 더 요구하고 더 많은 도덕적 해이를 만들어 내는 큰 규모의 위기를 가져오는 공식이다.”

2025년 4월 24일 목요일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오리지널 버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오리지널 버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차이콥스키, 브람스 등과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1903년과 1904년에 걸쳐 작곡되어 1904년 2월 8일, 시벨리우스 자신의 지휘와 빅토르 노바체크의 협연으로 초연되었다. 하지만 초연 직전까지 작품이 완성되지 않아 협연자는 준비가 부족한 채로 무대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작곡가는 초연 이후 개정 작업에 착수하여 1905년에 악보를 출판했으며, 오늘날 보편적으로 연주되는 버전은 이 1905년 개정판이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서는 1904년의 초판이 연주된다. 시벨리우스 가문의 허락을 받아야 연주할 수 있는 이 판본은 국내에서는 지난 2023년 오스모 벤스케가 지휘한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핀란드 바이올리니스트 엘레나 베헬레에 의해 처음 연주됐다. 1904년 초판은 협연자에게 좀 더 높은 수준의 기량을 요구하며, 개정판에서 삭제된 선율을 일부 포함하고 있다.

제1악장은 변형된 소나타 형식이다. 길고 어두운 선율 속에 화려하면서도 으스스한 기운을 머금은 독주 바이올린이 제1주제를 이끌고, 오케스트라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문다. 목가적인 제2주제는 첼로와 바순으로 시작하여 클라리넷과 오보에, 플루트와 바이올린이 차례로 선율을 넘겨받는다. 뒤이어 독주 바이올린이 제2주제를 이어받아, 마치 울부짖는 듯한 어조로 변주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오케스트라가 다시금 선율을 주도하는 대목은 ‘작은 종결구’(codetta), 또는 관점에 따라 제3주제라 할 수 있다. 제1주제에서 제2주제로 넘어가는 길목에 카덴차를 연상시키는 빠르고 화려한 음형이 등장하는 것에 이어, 전통적인 소나타 형식의 발전부 자리를 길게 확장된 독주 바이올린의 카덴차가 온전히 대체한다는 점이 이 악장의 가장 큰 특징이다. 카덴차(발전부)가 끝난 뒤에는 제시부를 변형한 형태의 재현부가 이어지며, 짧은 종결구(Coda)와 함께 악장이 마무리된다.

짜임새가 복잡한 것은 제1악장까지다. 제2악장은 A-B-C 세 도막으로 되어 있고, 제3악장은 A-B-A’-B’-종결구 꼴이다.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어둠을 헤치고 빛을 향해 나아가는 음악적 서사를 따른다. 제1악장이 현실의 고통을 복잡한 구조 속에 담아냈다면, 제2악장에서는 서럽게 울부짖는 바이올린 소리가 카타르시스를 매개한다.

제3악장에서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빠른 음형으로 쉼 없이 빛을 향해 달려 나간다. 시벨리우스는 빛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했던 작곡가였다. 특히 이 악장에서는 북유럽의 자연을 연상시키는 서늘한 공기와 그 공기를 뚫고 쏟아지는 밝은 햇살이 음악으로 그려진다. 협연자의 화려한 기교와 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음색이 눈부신 풍경을 완성한다.

(2026. 3. 24. 수정)

J. Sibelius: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 (original version)

Sibelius’ ‹Violin Concerto› ranks among the most beloved works in the violin repertoire, alongside works by composers like Tchaikovsky and Brahms. Composed between 1903 and 1904, it premiered on February 8, 1904, with Sibelius conducting and Viktor Nováček as the soloist. However, the piece was not fully completed until just before the premiere, which meant the soloist had little time to prepare adequately.

After the premiere, Sibelius worked on revisions. The score was published in 1905, and this is the version most commonly performed today. However, for this performance, the original 1904 version is used. This version can only be performed with permission from the Sibelius family and had its Korean premiere in 2023 by the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Osmo Vänskä. The 1904 edition demands a higher level of skill from the soloist and includes some melodies that were removed in the 1905 revision.

The first movement follows a modified sonata form. The first theme is lengthy, dark, and dramatic, led by the violin solo, with the orchestra providing occasional support. The second theme, more pastoral in nature, begins with the cello and bassoon, followed by the clarinet, oboe, flute, and violin taking up the melody. The solo violin then reinterprets this theme in a mournful, pleading manner.

The passage in which the orchestra once again assumes control of the melodic line may be understood as a “codetta,” or, from another perspective, as a third theme. At the juncture between the first and second themes, a rapid and dazzling figuration evocative of a cadenza emerges. Most distinctive, however, is that the traditional development section of the sonata form is entirely supplanted by an extended cadenza for the solo violin. Once this cadenza — functioning as the development — concludes, a recapitulation appears in a varied form of the exposition, and the movement is brought to a close with a brief coda.

The structural complexity is mostly confined to the first movement. The second movement follows an A-B-C form, while the third movement adopts an A-B-A’-B’-coda structure. This concerto unfolds a musical narrative of journeying through darkness toward light. If the first movement encapsulates the struggles of reality within its intricate structure, the second movement serves as a cathartic release, carried by the violin’s sorrowful wailing.

In the third movement, the music surges forward relentlessly, propelled by rapid passages that race toward the light. Sibelius had an exceptional ability to depict light through music, and in this final movement, that quality shines with remarkable brilliance. The music evokes the crisp, cool air of the Nordic landscape, pierced by radiant beams of sunlight. The brilliance of the soloist’s virtuosity and the orchestra’s rich, varied colors further enhance this vivid musical imagery.

(Modified on March 24, 2026.)

2025년 4월 23일 수요일

드뷔시: 어린이 차지 (한스 아브라함센 편곡)

드뷔시: 어린이 차지 (한스 아브라함센 편곡)

‹어린이 차지›는 드뷔시가 3살짜리 딸 클로드-에마 드뷔시, 애칭으로는 ‘슈슈’(Chouchou)를 위해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이다. 악보에는 ’소중하고 귀여운 슈슈에게, 이어지는 내용에 대한 아빠의 다정한 사과의 마음을 담아’라는 머리말이 있다. 한스 아브라함센의 ‹어린이 차지›는 드뷔시 피아노곡을 관현악곡으로 재창작한 것으로, 드뷔시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네덜란드 라디오 체임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위촉으로 작곡되었다.

이 작품은 여섯 개의 소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곡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 박사’는 딸이 피아노를 익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은 ’파르나소스 산으로 오르는 한 걸음’이라는 뜻으로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과 통하는 바가 있다. 18세기 작곡가이자 음악이론가 J. J. 푹스는 같은 제목으로 음악이론서를 남겼고, 클레멘티와 체르니 등의 작곡가는 같은 제목의 피아노 연습곡을 썼다.

제2곡 ’짐보의 자장가’는 슈슈의 코끼리 인형 이름에서 따온 제목이며, 제3곡 ’인형을 위한 세레나데’는 슈슈가 아끼던 다른 인형을 소재로 한다. 제2곡이 코끼리의 묵직한 발걸음으로 묘사되는 것에 반해, 제3곡의 인형은 도자기 인형의 반짝이는 질감을 표현한다.

제4곡 ’눈송이가 춤춘다’는 창밖의 눈 내리는 풍경을 묘사하고, 제5곡 ’어린 양치기’는 양치기가 뿔피리 부는 모습을 목가적으로 표현한다. 제6곡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는 춤추는 인형을 묘사하며 래그타임 리듬이 두드러진다. 골리워그는 빨간 바지와 빨간 나비넥타이를 맨 흑인 인형이고, 케이크워크는 19세기 말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의 해학적인 춤이다.

C. Debussy: Children’s Corner (arr. by H. Abrahamsen for orchestra, 2011)

‹Children’s Corner› is a piano suite composed by Debussy for his three-year-old daughter, Claude-Emma Debussy, affectionately known as “Chouchou.” The sheet music bears the dedication: “To my dear little Chouchou, with tender apologies from her father for what follows.” Hans Abrahamsen’s ‹Children’s Corner› is a reimagining of Debussy’s piano pieces as an orchestral work, commissioned by Radio Kamer Filharmonie to celebrate Claude Debussy at 150 in 2012.

This work consists of six pieces. The first piece, “Doctor Gradus ad Parnassum”, depicts the daughter practicing the piano. “Gradus ad Parnassum” means “A Step to Parnassus,” symbolizing steady progress. The 18th-century composer and music theorist J. J. Fux wrote a seminal textbook with the same title, and composers such as Clementi and Czerny also wrote piano pieces under this name.

The second piece, “Jimbo’s Lullaby”, is named after Chouchou’s toy elephant, while the third piece, “Serenade for the Doll”, is inspired by another doll she cherished. While the second piece evokes the heavy footsteps of an elephant, the third captures the delicate, shimmering texture of a porcelain doll.

The fourth piece, “The Snow is Dancing”, depicts a snowy landscape outside the window, while the fifth, “The Little Shepherd”, presents a pastoral image of a shepherd playing a flute. The sixth piece, “Golliwogg’s Cakewalk”, portrays a dancing doll and is characterized by a lively ragtime rhythm. The Golliwogg was a Black caricature doll typically dressed in red trousers and a red bow tie, while the cakewalk was a dance that originated among enslaved African Americans in the Southern United States in the late 19th century.

2025년 4월 22일 화요일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 f단조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 f단조

차이콥스키는 서양음악 역사상 가장 탁월한 멜로디 메이커로 손꼽힌다. 문제는 베토벤에서 브람스로 이어진 교향곡 전통이 차이콥스키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은 음악적 씨앗으로 논리를 구축하고 발전시켰던 베토벤·브람스와 달리, 차이콥스키에게 중요했던 것은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의 말을 빌리자면) ’구조’가 아닌 ’드라마투르기’다. 그래서 베토벤과 브람스를 잣대로 비판받을 때면 차이콥스키는 심하게 자학하기도 했다.

교향곡 제4번은 차이콥스키가 그런 전통을 작정하고 무시해 버린 작품이다. 그는 짧은 모티프를 발전시키며 논리적 그물망을 구축하는 대신에 길게 이어지는 선율로 소나타 형식을 채웠고, 또한 춤과 노래로 음악적 서사를 구현했다. 1악장은 폭압적인 팡파르 도입부로 시작한다. 이것은 폴란드 춤곡인 폴로네즈 리듬으로 되어 있으며, 차이콥스키는 이 팡파르 주제를 ’운명의 주제’라고도 했다. 뒤이어 흐느끼듯 나타나나 음악적 서사의 주인공이 되는 제1주제는 왈츠 리듬으로 되어 있다. 타루스킨의 분석에 따르면, 폴로네즈는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왈츠보다 상류 계급을 암시했고, 쇼팽의 ‹군대 폴로네즈›로 알 수 있듯이 군악대와 친밀한 음악이었으며, 이 작품에서는 특히 비인간성을 상징하는 춤이다. 제1악장은 폴로네즈의 폭력이 왈츠를 굴복시키는 서사구조를 따른다.

제2악장에서는 소박하고 애상적인 춤곡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제3악장에서는 러시아 민속음악이 음악을 이끄는데, 후원자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곡가는 이렇게 말했다. “술을 마시고 얼큰히 취했을 때 […] 이것은 모두 잠자는 사람의 머리 속의 상상입니다. 현실과는 관계없는 혼란입니다.” 제4악장은 찬란하게 빛나는 음악이며, 러시아 민요 선율이 곁들어진다. 넘쳐 나는 환희는 서사적 논리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작곡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자신 안에서 기쁨을 찾을 수 없다면,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보세요. 어떻게 그들이 기쁨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며 향락을 누리는지 보세요.”

P. I. Tchaikovsky: Symphony No. 4 in F minor, Op. 36

Tchaikovsky is regarded as one of the most outstanding melody makers in the history of Western music. The problem, however, is that the symphonic tradition that ran from Beethoven to Brahms did not suit Tchaikovsky’s artistic temperament. Unlike Beethoven and Brahms, who built and developed logical structures from small musical seeds, what mattered to Tchaikovsky, as musicologist Richard Taruskin puts it, was not “structure” but “dramaturgy.” This is why Tchaikovsky would often harshly criticize himself when judged by the standards of Beethoven and Brahms.

‹Symphony No. 4› is a work in which Tchaikovsky deliberately ignored such traditions. Instead of developing short motifs into a motivic web, he filled the sonata form with long, flowing melodies and expressed the musical narrative through dance and song. The first movement begins with a brutal fanfare introduction. This fanfare is written in the rhythm of a polonaise, and Tchaikovsky referred to it as the “Fate theme.” Following this, the first theme, which becomes the protagonist of the musical narrative, emerges with a wailing character and is set in a waltz rhythm. According to Taruskin’s analysis, the polonaise, in the context of Russian society at the time, symbolized a higher social standing than the waltz. As seen in Chopin’s ‹Military Polonaise›, it was also associated with military bands and martial music. In this work, the polonaise specifically represents impersonality. The first movement follows a narrative structure in which the violence of the polonaise subjugates the waltz.

The second movement continues the story with a simple and elegiac dance. In the third movement, Russian folk music takes the lead, and in a letter to his patroness, Madame von Meck, Tchaikovsky wrote: “When you’ve had a drink and are tipsy […] all of this is the imagination of a person who is asleep. It’s a chaos that has nothing to do with reality.” The fourth movement is radiantly brilliant music that incorporates Russian folk melodies. While its overflowing joy does not possess narrative logic, Tchaikovsky explained it as follows: “If within yourself you find no reasons for joy, then look at others. Go out among the people. See how they can enjoy themselves, surrendering themselves wholeheartedly to joyful feelings.”

2025년 4월 21일 월요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 c단조

“그녀는 자신의 혀와 손에서 하얗게 뽑아져나오는 거미줄 같은 문장들이 수치스러웠다. 토하고 싶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 한강, ‹희랍어 시간› 중

“나는 무기력으로 마비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어떤 것에서도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 하루의 절반이나 소파에 누워 망가진 내 삶을 한탄하며 보낼 뿐이었다.” -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제1번› 초연이 대실패로 끝난 뒤 깊은 우울증과 슬럼프에 빠져들었다. 그는 약 3년 동안 단 한 음도 작곡하지 못하는 창작적 공백기를 겪었다. 이후 니콜라이 달(Nikolai Dahl) 박사의 최면 치료를 통해 다시 창작에 나설 수 있었고, 그 결실로 탄생한 작품이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다. 이 작품은 라흐마니노프가 달 박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헌정한 곡으로, 그의 음악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었다.

이 작품은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의 조성인 c단조로 되어 있다. 베토벤 작품 속에 운명에 맞서 투쟁하는 인간이 있다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에는 절망과 우울을 견디고 회복하는 인간이 있다. 제1악장에서 작곡가는 서럽게 흐르는 선율 속에서 힘겹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듯한 음악적 서사를 담았고, 제2악장에서는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선율과 화음 속에 마치 고통이 도취적 쾌락으로 승화하는 듯한 멜랑콜리가 돋보인다. 제3악장에서는 화려한 춤곡이 절망의 찌꺼기를 조금씩 떨쳐 내며 질주한다.

이 작품은 라흐마니노프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곡이다. 또한 에릭 카멘(Eric Carmen)의 ‹All by Myself›와 프랭크 시나트라의 ‹Full Moon and Empty Arms› 등 대중음악에 사용되었고, 권형진 감독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와 일본 TV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등장인물이 이 곡을 연주하여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S. Rachmaninov: Piano Concerto No. 2 in C minor, Op. 18

“Spun out white as spider’s silk from her tongue and by her hand, those sentences were shameful. She wanted to vomit. She wanted to scream.” – Han Kang, ‹The Greek Lessons›

“I was paralyzed with lethargy. I did nothing and found no pleasure in anything. I spent half of the day lying on the couch lamenting my ruined life.” – Sergei Rachmaninov

After the disastrous premiere of his ‹Symphony No. 1›, Rachmaninov fell into a deep depression and creative slump. For about three years, he was unable to compose a single note, enduring a period of profound creative stagnation. It was only through the hypnotherapy sessions of Dr. Nikolai Dahl that he regained his ability to create. The result of this recovery was his ‹Piano Concerto No. 2›, a work he dedicated to Dr. Dahl in gratitude. This composition marked a pivotal turning point in Rachmaninov’s musical career.

The concerto is set in the key of C minor, the same key as Beethoven’s ‹Symphony No. 5›. While Beethoven’s work portrays the human struggle against fate, Rachmaninov’s concerto reflects a journey of enduring and transcending despair and depression. In the first movement, the composer weaves a narrative in which a human seems to take arduous steps through sorrowful melodies. The second movement is characterized by a bittersweet melancholy, where the music seems to transform suffering into a numb euphoric transcendence. The third movement bursts into a dazzling dance, shedding the remnants of despair as it races toward a triumphant conclusion.

This work is among the most celebrated pieces in Rachmaninov’s oeuvre. Additionally, it has found a lasting presence in popular culture, resulting in derivative pieces such as Eric Carmen’s ‹All by Myself› and Frank Sinatra’s ‹Full Moon and Empty Arms›. It has also featured prominently in films such as ‹For Horowitz› (directed by Hyung-jin Kwon) and the Japanese TV drama ‹Nodame Cantabile›, where characters perform this iconic piece, further cementing its widespread appeal.

2025년 4월 17일 목요일

윤이상: 서곡 (Ouvertüre, 1973/74)

윤이상: 서곡

윤이상이 1973년에 작곡한 ‹서곡›은 윤이상 음악 양식이 큰 변화를 맞이하기 직전의 과도기적 작품이다. 윤이상은 ‘음향복합체’ 또는 ‘톤 클러스터’(Tone cluster)를 연쇄, 생장, 중첩시키는 과정에 음양의 대비와 조화, 정중동(靜中動), 제행무상(諸行無常) 등의 동아시아적 아이디어를 결합한 작품들로 1960년대에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는 1967년 동베를린 사건으로 한국에서 옥고를 치르고 1969년 추방되면서 그 경험을 작품에 녹여 내기 시작했으며, ‹첼로 협주곡›(1975/76)을 기점으로 더 한국적인 울림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음악 양식을 변화시켜 나갔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의 분석에 따르면, ‹서곡›은 ‹예악›(1966), ‹낙양›(1962) 등과 연속선상에 있는 음향복합체 시기의 작품이되 내용상으로는 자전적 성격을 보이며 암울한 분위기가 작품을 지배한다. 슈파러는 이 작품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주변적 맥락으로 초연 당시 나란히 연주된 베른트 알로이스 침머만의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모든 억압을 보았다›(1970)을 언급하기도 한다. ‹서곡›은 무지크페스트 베를린의 위촉으로 작곡되었으며, 한스 첸더가 지휘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의해 1973년에 초연됐다.

윤이상은 1974년 출판에 앞서 이 작품의 상당 부분을 고쳤으며, 로타르 차그로제크가 지휘한 졸링겐 시립오케스트라가 개정판을 초연했다. 이 작품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각 부분이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뉘는 짜임새로 되어 있다.

Isang Yun: Ouvertüre (1973/74)

Isang Yun’s ‹Ouvertüre›, composed in 1973, marks a transitional work written before a significant transformation in his musical style. During the 1960s, Yun achieved international recognition with works that combined East Asian concepts – such as the interplay and harmony of yin and yang, motion within stillness (靜中動), and the impermanence of all things (諸行無常) – with processes involving sound planes or tone clusters, characterized by succession, growth, and overlapping. Following his abduction and imprisonment in South Korea due to the East Berlin Incident in 1967 and his release and expulsion in 1969, Yun began to integrate these experiences into his compositions, eventually transitioning to a style more deeply imbued with Korean essence, as epitomized by his ‹Cello Concerto› (1975/76).

According to musicologist Wolfgang Sparrer, ‹Ouvertüre› belongs to Yun’s epoch of “Klangcomposition,” sharing continuity with earlier works such as ‹Réak› (1966) and ‹Loyang› (1962). Sparrer also notes that the piece reveals a more autobiographical dimension, with somber tones dominating the work. As a contextual reference for the work’s atmosphere, Sparrer mentions Bernd Alois Zimmermann’s ‹Ich wandte mich und sah an alles Unrecht, das geschah unter der Sonne› (1970), which was performed at the concert where ‹Ouvertüre› was premiered. The work was commissioned by Musikfest Berlin and premiered in 1973 by the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under the baton of Hans Zender.

Yun revised much of the work for its publication in 1974, and the revised version was premiered by the Solingen City Orchestra conducted by Lothar Zagrosek. Structurally, ‹Ouvertüre› is divided into four parts, each further subdivided into two sections.

2025년 1월 9일 목요일

소프라노 임선혜 2020년 인터뷰

제가 예전에 했던 인터뷰인데 공연이 성사되지 못해서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번에 발견해서 올려 둡니다. 인터뷰에서 말한 공연은 코로나-19로 인해 2020 통영국제음악제 전체가 취소되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외트뵈시 ‹시크릿 키스›는 2024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소프라노 소피아 부르고스 협연, 바스 비허르스 지휘 클랑포룸 빈 공연으로 한국초연됐습니다.


Q. 최근에 새 음반을 내시고 서울에서 쇼케이스도 하셨습니다. 음반 자랑 좀 해주세요.

A. 새 음반은 고대의 가장 슬픈 사랑의 운명을 가진 여인이라 할 수 있는 ‘다이도’(Dido, Didone 디도, 디도네)의 노래만으로 엮은 것입니다. 권력에 눈이 먼 남동생이 그녀의 남편을 죽이고 왕의 자리를 차지하자 다른 나라로 피신해 카르타고라는 왕국을 세운 영리하고 기지가 있으며 의기당당한 다이도. 그녀는 이탈리아로 가던 길에 이곳에 당도한 전사 아에네아스와 사랑에 빠지고 행복해하지만 그는 어느 날 자신의 목표를 상기하고는 한마디 말도 없이 배를 타고 떠납니다. 돌아오라는 외침에도 답이 없는 애인의 배신으로 슬픔, 절망, 치욕을 느끼는 사이 그녀의 왕국 카르타고는 불타기 시작하고, 그녀는 자신의 고단했던 운명에 이별을 고하며 불에 뛰어들고 맙니다. ‘버림받은 다이도’는 메타스타지오의 오페라 대본가로서의 데뷔작인데 당시 너무도 인기여서 무려 60편의 음악 작품이 탄생했다지요. 이 중 18세기 이탈리아 스타일로 쓰여진 곡들만 모은 것인데, 한 평론가는 ‘노래 시작 몇 초만에 감전된 듯’ 하다며 ‘전적으로 센세이셔널, 압도적이다’라고 음반에 호평을 했네요. 서독일라디오방송에서는, 덜 유명한 작품들로 이루어졌지만 가치 높은 작품들을 알게 한 이 음반은 노래와 반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라고 극찬을, 베를린라디오에서는 ‘선혜 임은 음들을 유연하게 파도타는 노련한 비치 서퍼’ 같다며, '15년 전 음반들과 비교했을 때 이제 더 이상 기교로 지저귀는 새가 아니라 서정적이고 내적인 것을 노래하는 새로운 깃털로 갈아입은 것 같다’라는 재밌는 표현을 선물해 주었네요. 20년 만에 털갈이 한 건가요? ^^ ‘비치 서퍼’라는 새로운 별명이 이제 더 맘에 듭니다! ^^

Q. 2015년 베를린 고음악 아카데미 공연, 2017년 뤼벡 합창 아카데미의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공연 이후 이번이 세 번째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하실 예정이신데요, 이번에 다시 한번 협연할 뤼벡 합창 아카데미는 임선혜 선생님께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A. 통영국제음악당은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외국 음악가들에게도 유명해진 공연장입니다. 두 번 다녀간 적이 있지만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또 다르고 특별한 기분인데요. 이제 그 역사와 전통을 조화롭게 이루어낸 이 음악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음악제로 외국에서도 유명해졌기 때문입니다.

합창에 열정이 대단한 롤프 백 지휘자님이 이끄는 이 아카데미와의 재회도 반갑습니다. 독일적 합창 전통을 이어가지만 여러 나라의 젊은 성악가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이어서 그 울림이 더 특별하지요. 더구나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드라마틱함 뿐 아니라 가사의 유머러스한 표현과 재치 있는 리듬을 선사할 ‘카르미나 부라나’로 함께 하게 되어 그들의 활약이 몹시 기대가 됩니다. 

Q. 뤼벡 합창 아카데미와 협연할 '카르미나 부라나'는 소프라노 입장에서 어떤 곡인가요? 이 곡을 전에 공연하셨던 경험도 궁금합니다. 

A. 늘 기회가 안 맞았다가 마침내 지난해 여름, 크리스토프 포펜(Christoph Poppen)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포르투갈의 ‘마르방 페스티벌’에서 역시 폐막 야외 공연을 했습니다. 저의 독일 스승 롤란트 헤르만(Roland Hermann) 선생님은 작곡가 칼 오르프의 많은 작품을 그의 지휘로 노래하고 녹음하고, 초연도 한 분이어서 이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그간 많이 들었습니다.

1936년 작품인 ‹카르미나 부라나›는 칼 오르프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임이 틀림없죠. 특히 이 작품의 첫 번째 악장인 ‘오 운명의 여신이여 (O Fortuna)’ 는 누구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만큼 영화나 TV 광고에 많이 등장하는데 영국 BBC 방송국에 따르면 2009년 말 기준으로 가장 많이 연주된 클래식 음악으로 꼽혔다는군요. 제목을 해석하면 ‘보이언의 노래’라는 뜻인데, 옛부터 베네딕토 수도원이 있는 곳의 지역 이름이 바로 보이언입니다. 11-13세기에 수도자들이나 음유시인들이 쓴 세속적인 노래를 슈멜러(Johann A. Schmeller)가 1847년에 ‘카르미나 부라나’로 엮었는데, 거기서 발췌해 오르프가 그 음악적으로 세팅을 한 것입니다. 가사는 현대 유럽인들에게도 익숙하지 않는 세속 라틴어, 중세 독일어, 고(옛) 불어로 되어있는데, 그보다 단순한 화성과 큰 다이내믹, 유머러스한 리듬으로 듣는 이로 하여금 그 분위기에 금방 젖게 하는 대중성을 가지고 있지요. 

소프라노는 '사랑의 뜰’이라는 악장부터 등장해서 남녀의 사랑 에피소드를 전하는데 마침내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스런이여, 아~ 나의 모든 것을 바치리!’ 하며 클라이맥스를 만듭니다. 그 전 넘버가 노래하는 사람도 어깨춤을 추게 될 만큼 유쾌하고 재밌는 곡이기에 갑자기 그 노래를 멈추고 사랑을 고백하는 이 4마디는 분위기상으로도 좀 급작스러운데요, 지금껏 중저음을 주로 노래하다가 '높은 레(high D)’를 내야 하는 소프라노에게도 그러하지요.^^ 그 네 마디 안에 도약이 큰 널뛰기로 올라간 고음에서 페르마타로 머물며 사랑하는 이를 부르고, 기품 있게 또는 빠르게 하강하는 셋잇단음표들, 그리고 스타카토로 조심스럽게 올라 마침내 고음에 도달하여 사랑의 탄성을 완성한 후 ‘내 모든 것을 주겠다’고 강조하면 마침내 그 임무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스릴 넘치는 4마디라고 해도 될까요! ^^ 물론 임무를 잘 완성한 다음의 카타르시스는 어마어마합니다!^^

Q. 리사이틀 프로그램 중에 윤이상 초기 가곡 중 '그네'와 '달무리'가 있습니다. 어떤 곡이며 이 곡을 부를 때 어떤 발성 원칙이 필요할까요?

A. 1994년 발간된 ‹윤이상 초기 가곡집› 첫 페이지에 윤이상 선생님께서 직접 쓰신 글이 있는데 이 글이 그 무엇보다 좋은 대답이 되지 않을까 싶어 적어봅니다.

“이 책을 내면서 나는 1950년에 부산에서 "달무리” 라는 가곡집을 출판한 바 있다. 책이 몇 군데 서울과 부산의 책방에 배부된 직후에 전쟁이 일어나 종적을 잃어버리고 이 곡들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 뒤에 한두 곡이 종합가곡집에 실린 일도 있으나 40년이 지난 오늘, 나는 이 5개의 가곡을 묶어 원형 그대로 출판하면서 다시 우리 민족 앞에 늦으나마 선보이고자 한다. 이 곡들 은 1945년을 전후하여 작곡되었으며, 우리 민족의 그 시기의 작곡적인 소재지를 모색,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곡들을 다시 냄에 있어서 내가 바라는 것은, 비록 성악가가 서양 발성법을 구사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약간의 우리 전통 음악이나 민요의 선적, 율동적, 색채적인 묘미를 가미해서 불러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1994년 6월 20일 베를린에서

윤이상"

“그네"는 통영 출신 시인 초정 김상억의 ‘추천(그네)’라는 시에 붙인 곡입니다. 동향인 두 분이 20대에 의기투합해 만든 다른 작품으로 ‘봉선화’ (비 오자 장독간에...)가 있는데, 남망산 공원에 그 시비가 있다고 하지요. 윤이상 선생님은 이 시를 “편지”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가곡집에 실었습니다.

시인은 시 “무궁화”를 발표한 후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함북 웅기로 유랑을 떠났다가 귀향해 ‘남원서점’을 경영하였고, 해방 후 김춘수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조직하여 예술운동을 했으며, 11월 삼천포문화동지회를 창립, 한글운동, 교가 보급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달무리”는 청록파 시인 중 한 분인 박목월의 시로 ‹청록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시인 박목월은 정지용 선생이 ‹문장›에서 ‘북에는 소월이 있었으니 남에는 박목월이가 날 만하다’라고 했을 만큼 주목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필명 중 ‘월’도 존경하는 소월에서 따왔다고 하니 그에게 더없는 찬사였겠지요. 윤이상 선생님은 “달무리” 외에도 이 시인의 시 중 역시 ‹청록집›에 수록된 “나그네”에도 곡을 붙였습니다. 이 시는 이번 리사이틀에서 정태봉의 가곡으로 부를 것입니다. 

평소 윤이상 선생님의 초기 가곡을 많이 불렀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이 곡에 클라리넷과 같이 연주해 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촉망받는 작곡가, 지휘자로 평가받는 윤한결의 편곡으로 클라리네티스트 김한과 같이 이 곡들을 이번 음악제에 선보이게 되어 기쁩니다.

윤한결은 곡 자체에 한국적인 요소가 많아 클라리넷의 유연함을 이용해 대위법적인 추임새를 추가해 보았다고 말합니다. 부디 우리 전통음악과 민요의 선적, 율동적, 색체적인 묘미를 강조하신 윤이상 선생님의 뜻에 후배들이 드리는 좋은 응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Q. 김순남, 이건우, 나운영 등의 가곡은 어떤 매력이 있나요?

A. 한국 근대 현대음악사에서 1988년 납·월북음악인의 작품규제 해제조치’가 있기까지 작품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월북 음악인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역사적 평가나 연주가 외면당한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예술성을 간과할 수 없는 김순남, 이건우 두 작곡가가 있습니다. 민족주의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이들의 작품은 표현주의적이고 현대적인데, 우리의 전통적 리듬과 선율을 담았다는 면에서 한국 가곡이 예술가곡으로서 갖는 가치를 새롭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11년 스위스의 한 가곡 페스티벌에서 윤이상, 김순남, 이건우의 작품을 연주했을 때 청중들은 우리의 전통적 리듬과 정서로 쓰여진 가곡들의 낯선 매력에 큰 관심과 흥미, 호응을 보인 바 있지요. 이번에는  같은 시대 남쪽에서 같은 지향으로, ‘선토착화 후현대화’라는 신념으로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한 독창성을 표현하기 위해 이론 정립과 창작을 병행한 작곡가 나운영의 곡도 같이 연주합니다.   

리사이틀에서는 이외에도 작곡가 정회갑, 전인평, 이영조, 정태봉의 작품을 노래하는데, 저 개인적으로, 현대적인 음악어법에 우리의 것을 한껏 담아내어 한국 가곡의 정체성에 있어서 그 계보를 잇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곡가들의 곡들을 뽑아본 것입니다. 머지않아 한국 가곡 음반을 내고픈 소망이 있는데, 그 꿈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아주 뜻깊은 작업이 될 것으로 여깁니다. (통영국제음악제의 이번 리사이틀을 위해 특별히 클라리넷, 피아노, 소프라노 곡으로 편곡해 주신 이영조, 정태봉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Q. 페테르 외트뵈시가 지휘하는 '클랑포룸 빈' 공연에서 페테르 외트뵈시 '시크릿 키스'의 내레이션을 맡으실 예정입니다. 악보를 받으셨나요? 이 곡은 어떤 곡인가요?

A. 이번 음악제 덕분에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현대 작곡가 중 한 명인 외트뵈시 선생님과 작업하는 기회가 주어져 좋은 긴장으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악보도 보지 않고 작곡가 이름과 요염한 작품 이름에 매료되어 얼른 수락을 했는데, 엊그제 악보를 받고는 하기로 한 것이 잘한 일일까... 잠시 고민을 하긴 했습니다. ^^;; 하지만 이 작품이 탄생한 배경들을 공부하며 저로서는 큰 경험이 없는 현대음악에 대한 호기심과 특별히 ‘내레이터’로서의 이 작품 속 역할에 큰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작가 알렉산드로 바리코(Alessandro Baricco)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한 장면을 17분 음악에 담은 이 작품은 프랑스인 종쿠르(Joncour)가 실크의 재료가 되는 좋은 누에고치를 얻기 위해 일본에 간 것으로 시작합니다. 마침내 누에고치 상인을 만나 차를 대접받은 그는 그 상인의 무릎을 베고 말없이 누워있는 여자를 힐끗 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당황해서 차를 들이키게 되는데, 이때 그녀가 말없이 그의 찻잔을 집어 들더니 정확히 그의 입술이 닿았던 곳에 입을 대고 차를 마신 것이죠. 이에 종쿠르 역시 그 찻잔을 들어 다시 그 자리에 입을 대고 잔을 비웁니다. 그야말로 아주 애틋하고 비밀스러운 입맞춤인 것이죠. 일본의 연극 ‘노’의 유일하다시피 한 여자 배우이자 현대음악과의 협업으로 이름이 난 료코 아오키의 의뢰로 작곡된 곡이라는데, 그 가사는 외트뵈시의 부인이 직접 골랐다고 하네요. 악보는 영어와 일본어로 되어있는데, 물론 지난해 초연은 모두 일본어입니다. 이번 음악제에서는 우리말로 초연이 되는데 가사가 궁금합니다! 유튜브에서 본 그녀의 연극 창법에 견주어 저는 한국말로 된 이 내레이션을 어떻게 생동감 있고 비밀스럽게 하게 될지 저도 그 공부가 기대됩니다. 친분 있는 현대 작곡가들에게 조언을 구하며 잘 준비해 봐야겠습니다.

Q. 안 해본 작품 가운데 해보고 싶은 것이 있나요?

A. 올해로 유럽 국제무대에 데뷔한 지 20년이 되는데, 안 해본 작품을 하는 것은 여전히 제 일상입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처음 무대에서 해보게 될 작품이 4편이나 되네요. 제가 주로 하는 고음악은 현대음악을 하는 것과 닮은 점이 있어서, 음반 등 레퍼런스가 많은 음악과는 달리 사람들 귀에 익은 잣대나 정석이 없고 그 해석이 자유롭지요. 그래서 공부하는 데에 시간이 좀 더 걸리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 실험적인 과정은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여전히 안 해본 곡이 많은데 그중에 그나마 알려진 곡을 말하라 하면 헨델의 ‹줄리오 체사레›를 꼽겠어요. 동양적인 매력을 가진 클레오파트라의 연기와 노래가 꼭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Q. 국내 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계획이 있나요?

A.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콘서트와 투어를 가을에 계획하고 있습니다. 데뷔 당시 2년쯤 이러다 말겠지 했던 것이 20년이나 바쁘게 무대에 오를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맘으로 그동안 제 음악을 아껴주신 많은 분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는 마음으로, 여러 면에서 아주 특별한 음악회가 되도록 준비하고 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

올해 일정 중 콘서트 작품을 극으로 만드는 흥미로운 작업을 두 작품 하게 되는데, 하나는 뉴욕에서 열리는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 레퀴엠을 극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헨델이 유일하게 독일어로 남긴 작품인 ‹9개의 독일 아리아›를 Songs of Nature 라는 부제로 무대에 올리는 것입니다. 상하이, 베이징 뮤직 페스티벌, 홍콩, 뉴욕, 암스테르담 등 큰 투어를 계획하고 있어 작품이 더 견고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협은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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