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파야 《삼각모자 모음곡 2번》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슈만 교향곡 1번 ― 알반 게르하르트 / 헤수스 로페스-코보스 / 서울시향

2010-09-10 오후 08: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헤수스 로페스 코보스 Jesus Lopez-Cobos, conductor
협연 : 알반 게르하르트 (첼로) Alban Gerhardt, cello

파야, 삼각모자 모음곡 2번 Falla, El sombrero de Tres Picos: Suite No. 2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 Tchaikovsky, Variations on a Rococo Theme
슈만, 교향곡 1번 "봄“ Schumann, Symphony No. 1 "Spring"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지휘자 헤수스 로페스-코보스는 마드리드 테아트로 레알 음악감독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그 레알, 축구 규칙도 잘 모르는 글쓴이도 익숙한 그 이름 탓일까. 글쓴이는 이날 서울시향 연주를 들으면서 로페스-코보스가 이끌어내는 음악이 어쩌면 축구 평론가들이 말하는 스페인 축구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파야 《삼각 모자 모음곡》 2번을 들을 때만 해도 그저 스페인 지휘자라서 스페인 음악을 잘하나 보다 싶었다. 게다가 지휘자가 쌓아온 경력이 만만치 않은 만큼 이날 연주는 객원 지휘자가 짧은 시간에 만들어낸 소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훌륭했으며, 정명훈라벨을 지휘할 때에나 들을 수 있는 정교하면서도 생기 넘치는 앙상블이 돋보였다.

그러나 슈만 교향곡 1번 연주는 그 단점까지도 스페인 축구와 닮아 있었다. 축구 얘기를 조금만 하자. 스페인에는 "멍청한 선수는 열심히 뛴다."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곳이 스페인이다 보니 열심히 뛰기보다 효율적으로 조금만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스페인 팀은 곧잘 상대편 체력을 갉아먹으며 경기를 지배하지만, 거꾸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생각이 많아져서 골로 연결하지 못할 때가 잦다고 한다.

이날 슈만 교향곡 1번이 그랬다. 대체로 앙상블이 깔끔하기는 했으나 결정적인 '한 방'이 빠져서 밋밋한 느낌. 이름값이 대단한 지휘자가 다스린 소리가 기대에 못 미친 까닭으로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서울시향과 상성이 맞지 않았다. 로페스-코보스는 중요한 곳에서 악단을 확 잡아끌기보다는 단원들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게끔 하는 듯했으나, 서울시향은 유럽 일류 악단과는 달리 아직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하며 지휘자가 잘 이끌어줄 때에만 유럽 수준에 근접한 연주를 들려준다. 정명훈이 더없이 소중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둘째, 슈만 교향곡 1번은 연주할 때 자칫 맨송맨송해지기 쉬우며, 로페스-코보스와 서울시향 조합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것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베토벤 이후 낭만주의 교향곡 역사를 알아야 한다.

베토벤고전주의를 넘어서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혔지만, 한편으로는 낭만주의적 선율과는 맞지 않는 모티프 변형 기법을 유산으로 남겼다. '베토벤 딜레마'를 어찌할까. 슈베르트베토벤을 닮은 도입부 선율을 발전부에서 앞세워 전개시키며 베토벤을 흉내 냈다. 멘델스존은 달콤한 가락을 대위법으로 겹쳐 베토벤을 이으려 했다. 리스트와 프랑크는 모티프 원형을 중심에 놓고 주변 요소를 네트워크로 묶어 바꿔나가는 기법을 개발했고, 바그너는 리스트를 흉내 냈다.

'모범답안'을 내놓은 사람은 브람스였으나, 슈만 교향곡 1번에는 그에 앞서 온갖 아이디어로 '사투'를 벌인 눈물겨운 흔적이 담겨 있다. 베토벤과 낭만주의가 어우러지게 하는 일에 슈만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반복되는 리듬인데, 슈만이 작품 곳곳에 심어 놓은 '아이디어'를 잘 살리지 않으면 이 리듬 때문에 음악이 지루해지기 쉽다. 로페스-코보스와 서울시향은 바로 이 덫에 빠졌다. 지휘자가 '너무 조금 움직인' 탓이다. 금관 등이 몇 차례 실수도 했다.

음악에서 '로코코'라 하면 뜻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지만, 보통 바로크 양식이 고전주의 양식으로 바뀌어 가던 18세기 초·중반 양식을 가리킨다. 대위법을 바탕으로 하는 바로크 양식을 벗어나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의 화성 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간결하면서도 밝고 우아한 양식으로 갈랑(galant) 양식이라고도 한다.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로코코 양식을 따르는 주제를 바탕으로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19세기 양식이며, 이러한 대목은 브람스하이든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닮은꼴이다.

협연자 알반 게르하르트는 '로코코' 양식보다는 낭만주의 느낌을 한껏 살려 연주했으며, 곳곳에서 루바토를 두드러지게 쓰거나 때때로 매우 거친 활놀림을 보이기도 했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인지 'A' 현 상태가 좋지 않은 듯 때때로 삐끗하는 소리를 내기도 한 대목은 옥에 티였다. 앙코르로 연주한 두 곡이 모두 저음이 많아서 'A' 현을 쓰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이것을 빼면 연주는 매우 훌륭했다.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이 특이했던 곳으로 이를테면 마디 32~33에는 하행 음형을 중심으로 '점점 세게―세게―점점 여리게―매우 여리게' 연주하라는 지시가 있는데, 게르하르트는 도돌이표를 타고 두 번째로 연주하면서는 셈여림 지시를 무시하고 여리게(소토 보체) 루바토 섞어 연주했다.

처음에는 글쓴이도 몰랐던 사실 하나. 슈만 교향곡 1번을 연주할 때 알반 게르하르트가 슬쩍 들어와 뒷자리에 앉아 일개 객원 단원으로 연주했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연주는 독주와는 달라서 수석 연주자가 정하거나 지휘자가 특별히 요구한 활놀림을 따라야 하는데, 그렇다면 게르하르트가 연습 때부터 이렇게 참여했다는 뜻이 된다. 참 성실한 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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