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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8일 일요일

R. 슈트라우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 하이든 첼로 협주곡 D 장조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 주연선 / 스테판 애즈버리 / 서울시향

2010년 2월 25일(목) 오후 8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지휘 : Stefan Asbury
협연 : 주연선

R. Strauss, Till Eulenspiegels lustige Streiche
Haydn, Cello Concerto No. 2 in D
Shostakovich, Symphony No. 7 "Leningrad"

언제나 그렇듯이, 무삭제판 ㅡ,.ㅡa


글쓴이는 스테판 애즈버리 팬이다. 현대음악 전문 지휘자라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고 있을 뿐, 글쓴이는 그를 얀손스같은 스타 지휘자와 동급이라 여긴다면 믿으시겠는가? 이번 연주회에서 애즈버리가 얼마나 훌륭했는지는 첫 곡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에서부터 드러났다. 이 곡은 어지간한 유럽 지방 악단도 실황 음원을 들어보면 때때로 앙상블이 흐트러지기 일쑤일 만큼 연주하기 까다로운데, 이날 서울시향은 같은 기준으로도 썩 잘했다. 서울시향 솜씨가 그만큼 늘었기도 하겠으나, 이제껏 서울시향을 지휘한 사람 가운데 첫 곡에서 이토록 놀라운 소리를 뽑아낸 지휘자가 또 누가 있던가? 정명훈뿐이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길고 까다로운 곡이니만큼 앙상블이 살짝 흔들리는 일이 없지 않았으나, 애즈버리현대음악 전문 지휘자답게 음악 흐름에 가장 알맞은 음향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다스리는 남다른 솜씨를 보여주었다. 템포는 느린 편이었으며 3악장과 4악장 느린 대목에서는 템포를 몹시 느리게 잡아서 애달픈 느낌을 더했다. 그러나 빠른 곳에서는 악보에 있는 메트로놈 지시보다 오히려 빨라지기도 해서 굼뜬 느낌은 없었다.

가장 멋졌던 곳은 1악장 행진곡 리듬이 나오는 이른바 '침공(invasion)' 주제였다. 이 대목은 선율이 몹시 단순하고 유치해서 버르토크《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에서 패러디하며 잔뜩 비꼬기도 했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수룩한 선율이 아니라 작은북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차가운 음색이다. 이때 작은북은 마치 바이올린과 목관악기 따위가 행진곡 리듬을 연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게끔 그 소리를 감싸 안아야 하는데, 애즈버리는 오케스트라 한가운데 바이올린과 비올라 사이에 작은북 한 대를 두어 자연스러운 음향을 이끌어 내었다. 타악기 수석 에드워드 최가 멋진 연주를 들려주었으며, 긴 호흡으로 만들어가는 크레셴도에 마치 나치 시대 독일군이 멀리서부터 쳐들어오는 모습이 눈에 보일 듯해 소름이 돋았다. 마디 365에서 심벌즈가 처음 나올 때 무대 뒤 작은북 두 대가 리듬을 이어받았으며, 에드워드 최는 이때 재빨리 무대 뒤로 가 셋이 함께 격렬한 총주와 어우러졌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던 곳을 말하자면, 이를테면 3악장 처음은 오르간 느낌이 나는 곳이나 이날 목관악기 소리가 조금 작아서 음향이 살아나지 못했다. 4악장에서 마지막 폭발을 앞두고 긴장감을 쌓아가다가 마디 566에 이르면 호른 독주가 나오는데, 이때 호른에 붙은 셈여림표는 포르테(f)이나 모든 현과 목관악기가 ff로 마치 울부짖는 듯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날 목관 악기 소리가 작아서 안타까웠다. 2악장에서 베이스 클라리넷이 선율을 이끌어가는 대목(마디 251)에서는 한 호흡에 부드럽게 이어 연주하지 않고 조각조각 끊어 연주했고 소리도 작았다. 이 대목은 악보를 보면 도대체 숨을 쉴 만한 곳이 없는데다가 이른바 '순환호흡'을 하더라도 음 하나하나가 길어서 매끄럽게 연주하기 어려워 보이니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잘 연주하면 매우 멋진 곳이라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데 아쉬웠던 곳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체력이 모자란 탓이 아닐까 싶다. 금관악기는 그다지 큰 문제를 드러내지 않았는데, 이 곡이 트럼펫과 트롬본이 6대씩, 그리고 호른은 8대 또는 더블링(doubling)까지 생각하면 9대 이상 쓰이는 거대편성인 덕분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목관은 3관 편성이라 연주자들이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올해 서울시향말러 교향곡을 연주하겠다니 이참에 체력을 쌓아둘 필요가 있다. 그런데 대편성 곡을 연주하기에는 단원 수가 모자라 객원 연주자로 채워야 할 터이니 문제다.

시향 단원 가운데 이날 남달리 눈에 띈 연주자도 있었으니 E♭ 클라리넷을 연주한 임상우 부수석이다. 보통 '클라리넷' 하면 B♭ 또는 A조 클라리넷을 말하는데, 이날 클라리넷치고는 매우 높은 소리를 내던 악기가 바로 E♭ 클라리넷이며, 《틸 오일렌슈피겔》 악보에는 D조 클라리넷으로 나와있으나 요즘은 거의 사라진 악기라 보통 E♭ 클라리넷으로 연주한다. 이 곡에서는 B♭ 클라리넷보다 E♭ 클라리넷이 더 돋보이므로 채재일 수석이 아닌 임상우 부수석이 E♭ 클라리넷을 연주한 일이 이상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곡에 쓰인 무시무시한 고음은 플루트나 피콜로처럼 반짝여서도 안 되고, 오보에처럼 아련한 느낌이 들어서도 안 되며, 단단하면서도 날 선 송곳처럼 날카롭고 거침없어야 한다. 부드럽고 여린 소리를 누구보다 잘 내는 채재일이 이런 소리를 내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우며, 곧고 빈틈없는 소리를 내는 임상우야말로 이 악기에 알맞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에서도 임상우가 E♭ 클라리넷을 멋지게 연주했다.

하이든 작품은 딱히 독창적인 해석이 필요하지 않아서 연주자 기량이 민얼굴처럼 드러나므로 연주자에게는 오히려 가장 어렵다. 하이든 D 장조 첼로 협주곡을 협연한 주연선 또한 몇 군데 작은 실수를 해서 누리꾼 사이에서 혹평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 곡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모르는 사람이 많을 터이므로 시향 수석 단원 솜씨를 뽐내려는 기획이라면 그다지 실속 없는 선곡이라 본다. 주연선이 연주하는 첼로는 비단결처럼 은은한 빛을 머금은 소리가 참으로 멋진데, 이것을 뽐내려면 19세기 곡 또는 애즈버리가 옌스 페터 마인츠와 협연해 음반을 남긴 윤이상 첼로 협주곡을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2007.11.06.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IV - 김호정 / 홍웨이 황, 진민호 / 프랑소아 자비에르 로트 / 서울시향

진은숙의 Ars Nova 4
2007년 11월 6일(화) 오후 8시
호암아트홀

지휘자 : François-Xavier Roth
협연자 : 김호정(첼로), 홍웨이 황/진민호(비올라)

Charles Ives(1874-1954), The Unanswered Question (1906)   5'
Giacinto Scelsi (1905-1988), Anagamin for 11 Strings (1965)    7'  
George Benjamin (1891-1945), Viola, Viola for two violas (1997) 12" Korean Premiere
Pierre Boulez (*1926)   Messagesquisse pour violoncelle solo et six violoncelles, sur le nom de Paul Sacher (1976)   8'
Chris Paul Harman       From the Cradle to the Grave for 16 strings   16' Asian Premiere
Uzong Choe (*1968) Love Song, chamber concerto for violoncello and strings(2006) 15'  (commission by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World Premiere)



아이브스는 <대답 없는 질문 The Unanswered Question>을 두고 "존재에 대한 해묵은 질문"이라 했는데, 제목이나 악곡 구성이 마치 20세기 음악사를 내다보는 듯해서 번스타인은 이 곡을 "조성적 갈등에 대한 생생한 묘사"라고도 했다. 조성이 흐릿한 트럼펫과 조성이 없는 플루트 앙상블의 '문답' 그리고 3화음을 쓰면서도 조성음악답지 않게 무심히 관조하는 듯 흘러가는 현 사이의 관계가 조성음악이 생명을 다한 20세기 서양음악이 맞이한 화두와도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지휘자는 플루트 앙상블이 무대 좌우 연주자 대기실 쪽에서 번갈아 또는 동시에 연주하게 하고 객석 2층에 자리한 트럼펫이 '질문'을 할 때마다 위치를 옮기게 하는 등 연극적인 요소를 더하여 '문답'을 더욱 뚜렷이 드러냈다. 또 트럼펫이 마지막에는 객석 앞으로 나오게 하여 마지 청중에게 이런 화두를 던지는 듯했다. 현악기로 어떻게 새 시대에 걸맞은 새 소리를 만들어낼 것인가?

자친토 셸시(Giacinto Scelsi, 1905-1988)는 요즘 뒤늦게 인기를 얻는 사람으로 작곡 기법이나 그 바탕에 깔린 동양 사상 등이 윤이상과 거울상처럼 닮았으면서도 또한 정반대다. 셸시는 그가 살았던 로마가 동서양의 경계라고 생각했으며, 인도와 티베트 등을 여행하면서 명상을 배웠다. 이른바 '단음 음악(Single-note Music)'이라 불리는 작곡 기법은 이름처럼 음 하나로 끝나지 않고 트레몰로, 비브라토, 글리산도, 미분음(microtone) 등으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으로, 그 원리는 윤이상의 중심음(Hauptton) 기법과 마찬가지로 정중동(靜中動)이다. 윤이상이 동아시아 음악의 음향 특징을 서양 악기로 표현하려고 중심음향(Hauptklang) 기법을 고안했다면, 셸시는 음 하나가 가진 배음(harmonics)을 원래 음으로부터 끄집어내 한 음이되 한 음이 아니게 했으니 이것은 윤이상과 닮았으면서도 또 다르다. 1965년 작품인 <아나가민 Anagamin>은 불교 수행 단계를 뜻하는 성문 4과(聲聞四果), 즉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多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 가운데 아나함이며, 사바세계의 모든 번뇌를 끊고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불래(不來)라고도 한다. 셸시가 그 속뜻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듣기로는 참된 아나함을 얻었다기보다는 깨달음을 눈앞에 두고 벼랑 끝에서 번뇌와 싸우는 듯했다. 그러나 작품 속 아나함은 <대답 없는 질문>처럼 음악 속에서 새 뜻을 찾을 수도 있겠다. 즉, 12음 기법으로 대표되는 주류 작곡 기법이 싫지만 조성음악으로 돌아갈 수도 없던 셸시가 마침내 찾아낸 돌파구를 그만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여 불래(不來)를 이룬 것이다.

조지 벤자민의 <비올라, 비올라>와 불레즈의 <메사줴스키스 Messagesquisse>는 '현 긁는 맛'을 잘 살린 곡이었다. <비올라, 비올라>가 투박하지만 담백한 비올라 음색을 잘 살리는 동시에 마치 도깨비 감투를 쓴 연주자가 옆에서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주하는 듯 신기한 음향을 만들어냈다면, <메사줴스키스>는 첼로 일곱 대가 현을 박박 긁어대는 박력이 피부로 직접 느껴질 듯 짜릿했다. 새삼 드는 생각이지만 박박 긁는 소리는 역시 첼로가 제맛이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근본적인 저음 한계 탓에 박력이 모자라며, 콘트라베이스는 악기가 너무 커서 굼뜨다. 서울시향의 연주는 썩 훌륭했지만 좀 더 미친 듯이 긁어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살짝 들기도 했다.

크리스 폴 하먼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우타>와 마찬가지로 만화 같은 과장과 풍자가 생생히 살아있는 작품이었는데, '하먼식 조각내기'에 웬만큼 익숙해져서인지 이제는 보통 변주곡을 듣는 듯한 느낌도 살짝 들었다. '조각 맞추기'를 하다가 엉뚱한 선율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여전했으며, 이를테면 오르간 음향에 얹은 바로크풍 선율은 제목을 의식한 탓인지 생일 축가를 떠올리게 했다.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것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음 덩어리(cluster)가 <전람회의 그림>의 '프롬나드'처럼 계속 변형되며 나타나는 것도 인상 깊었다.

최우정의 첼로 협주곡 <러브 송 Love Song>은 서울시향이 위촉하여 이번이 세계초연이라 더욱 뜻깊다. 그런데 '사랑 노래'라니 첼로 협주곡이라기에는 너무 통속적이고, 대중음악에 쓰기에도 낡아빠진 제목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흔한 사랑 노래와는 달리 그다지 달콤하거나 신파조이거나 하지 않았고, 대중음악에 어울리는 선율과 리듬이 이리저리 비틀려 있어서 남의 연애담 듣듯이 편하게 들을 수만은 없는 곡이었다. 중간에 박진감 넘치는 대목은 영화 <졸업>에서처럼 결혼식장에 쳐들어가 신부 납치라도 하는 듯했고, 또 어찌 들으면 싫다고 구박하는데도 열심히 쫓아다니는 바보스러운 사랑 같기도 했다.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우리 부모님들이다. 마침 이 곡 악보 첫머리에는 작은 글씨로 "à mon père"라고 쓰여 있다. 프랑스어로 '아버지께'라는 뜻이다. 작품 끝머리에 불안한 음형이 되풀이되다가 매우 여린(pppp) 16분음 스타카토 세 번으로 마치 시계가 멈춘 듯 끝나버린 것이 너무나 애틋해 나는 오랜만에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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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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