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3일 금요일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3)

머리말에서 프리메이슨이 프랑스 대혁명을 '기획'했다는 주장을 소개한 바 있다. 또 지난 시간에는 라모가 세운 근대 화성 이론이 프리메이슨의 '기획'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생각이 안 나시면 다시 읽어보시라.


☞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 머리말
☞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1)
☞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2)



화성법이라는 '밑밥'이 마련되었으니 본격적으로 '떡밥'을 만들 차례다. 다시 말해 화성법을 바탕으로 하는 '쉬운'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냥 내버려두기보다는 그 시기를 앞당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정과 교회 중심으로 돌아가던 음악이 시민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일이 갑자기 일어나기는 어려우니 그 중간 단계로 귀족이 중심이 되는 음악 문화를 만들어내는 게 좋겠다.

실제로 이런 일이 마치 짜맞춘 듯 착착 일어났다. 그러나 이것은 결과에 짜맞춘 논리일 뿐이며 여기에 프리메이슨이 개입했다는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 (프리메이슨이 에스테르하지(Esterházy) 가문을 끌어들인 뒤부터는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이때 이런 말이 필요하다. "아님 말고!"
초상권을 생각해서 김원철이 발로-_- 편집했음. 누군지 모르겠지? ㅡ,.ㅡa

어쨌거나,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이른바 '갈랑(Fr. Galant; It. Galante)' 양식 또는 '로코코 양식'이 나타나 퍼져 나간다.

자크 뒤플리(Jacques Duphly, 1715-1789) - La De Drummond

악보에서 왼손이 '라미도미 라미도미' 꼴로 죽 이어지는 음형이 바로 알베르티 베이스이다. 알베르티(Domenico Alberti, 1710-1746)는 갈랑 양식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나 유튜브에 마음에 드는 동영상이 없더라.


알베르티 베이스를 설명할 때 반드시 나오는 바로 이 곡,
모차르트 C 장조 소나타 K.545 1악장. 본격적인 고전주의 양식이다.


갈루피(Baldassare Galuppi, 1706-1785) A 단조 소나타

이밖에 레오나르도 빈치(Leonardo Vinci, ?1696-1730. '다빈치'가 아님에 주의), 페르골레시Giovanni Battista Pergolesi, 1710-1736), 하세(Johann Adolf Hasse, 1699-1783), 삼마르티니(Giovanni Battista Sammartini, 1700-1775) 등이 대표적이며, 작곡가이자 이론가였던 마테존(Johann Mattheson, 1681-1764)과 크라우제(Christian Gottfried Krause, 1719-1770)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요한 마테존. 이 양반 프리메이슨이지 싶은데 심증만 있지 물증이 없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작곡가이기도 한 그 루소다.
이 양반은 아무리 봐도 프리메이슨 아닐 리 없는데 마찬가지로 물증이 없다.

18세기 중반부터는 북부 독일을 중심으로 '표현 양식' 또는 '감정 과다 양식' (Empfindsamer Stil)이 나타났는데, 카를 필리프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 1714-1788, J. S. 바흐의 아들), 크반츠(Johann Joachim Quantz, 1697-1773), 그라운 형제(J. G. Graun, 1703-1771, C. H. Graun, 1704-1759))가 대표적이다.

갈랑 양식은 일차적으로 군주와 귀족을 위한 것이었고, 그들에게 음악은 즐거움을 제공하는 수단이었기에 깊은 내면을 움직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중산계급으로 그 향유 층이 확대되어가면서 갈랑 양식은 주관적인 감정을 충족시키고 표현하는데 적합한 양식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측정할 수 없이 솟아 오른 감정의 내적 분출을 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추구함으로써 "시민적 표현 양식"으로 그 성격이 바뀌었다. 그러나 갈랑 양식으로부터 표현적인 감정과다 양식으로의 변화는 뚜렷한 분기점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98쪽)

- 이경희, "18세기 후반 독일 감정과다주의 (Empfindsamkeit)." 『음악이론연구』(서울: 서울대학교 서양음악연구소, 1999), 제4권, pp.89-109.

그런데 중앙집권 국가인 프랑스나 영국보다는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쪽이 귀족 중심 음악 문화가 뿌리내리기에 더욱 좋은 곳이었다. 이 사실은 서양음악의 중심지가 프랑스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옮겨가게 되는 원인이 된다. 고전주의 성립에 이바지하여 18세기 음악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도시는 어디일까?

... 다음 시간에 알아보자. 더운데 글 쓰려니까 힘들다. C=C=C=┏( ̄▽ ̄)┛


다음 글 읽기:

☞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4)
☞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5)
☞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6)

글 찾기

글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