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0일 수요일

칼잡이 매키와 서푼짜리 오페라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상어의 이빨은 눈에 보이지만 / 매키의 칼은 숨겨져 있지 / 화창한 일요일에 누군가 시체 됐네 / 길모퉁이에 사라진 것은 틀림없이 매키 얼굴 / 부자들 몇 명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 칼잡이 매키는 돈이 많아졌다네

쿠르트 바일 ‹서푼짜리 오페라› 시작 부분에 나오는 노래 '칼잡이 매키'(Mackie Messer)입니다. 음악학자 이희경 선생의 번역을 인용했어요. 지난 2015년에 통영에서 공연했던 '우테 렘퍼'의 노래로 이 곡을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 듯합니다. 또 영어 가사로 번안된 노래 '맥 더 나이프'(Mack the Knife)는 루이 암스트롱, 프랭크 시내트라 등이 불러서 더욱 유명하지요. 저는 엘라 피츠제럴드가 부른 노래가 좋더라고요.

‹서푼짜리 오페라›는 1928년 베르톨트 브레히트 연출로 초연된 이후 1년만에 200개 넘는 극장에서 4000번 넘게 공연되었을 만큼 폭발적인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쿠르트 바일의 음악은 브레히트 극 이론에 따라 이른바 '거리 두기 효과'를 목적으로 줄거리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칼잡이 매키' 등이 생각 이상으로 어마어마하게 히트하면서 브레히트가 의도했던 '거리 두기 효과'는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네요. 이희경 선생은 ‹서푼짜리 오페라›의 대중적 성공 요인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1920년대 독일 사회의 현실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의 정서를 감각적으로 포착해 낸 브레히트와 바일의 세련된 노래들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시민사회가 곧 강도 사회와 같다는 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심각하고 진지하기보다는 소시민 청중이 하고 싶은 얘기를 거리낌 없이 발산해 풍자적이고 유쾌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바일의 새로운 음악 어법이 사람들의 감성을 곧바로 파고들었다."

쿠르트 바일은 정규 음악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면서도 작품의 대중성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이희경 선생이 쓴 글을 조금 더 인용하자면,

"바일의 음악은 모든 면에서 전통적인 클래식과 독일 오페라의 어법과 정서에 반하는 공격적인 것이었다. 그는 오페라와 오페레타를 풍자적으로 패러디하고, 당시 유행하던 재즈·탱고·블루스·장터 음악을 세련되게 끌어들였다. […]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음악은 존재 의미가 없다고 여긴 바일은 대중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예술 음악의 체계화된 어법 대신 당시 유럽 사회를 풍미한 대중적 음악 어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자신만의 특색을 찾아 나갔다."

‹서푼짜리 오페라›가 발표된 1928년은 쇤베르크가 무조음악 시대를 열어젖힌 지 20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두 가지 음악 양식의 격차가 극단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지요. 그런데 ‹서푼짜리 오페라›와 같은 '오락적인' 음악이 시대의 흐름이 되면서 그 쇤베르크마저도 시대상을 반영하는 작품을, 그러나 '12음 기법으로'(!) 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쿠르트 바일은 브레히트와 결별한 뒤에 미국으로 가서 뮤지컬의 아버지가 되었지요.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 스테판 프렌켈은 1929년에 ‹서푼짜리 오페라›의 주요 대목을 간추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편곡했습니다. 제1곡 사람의 노력 부족에 관한 노래 / 칼잡이 매키, 제2곡 무덤에서 부르는 소리, 제3곡 안락한 삶에 관한 발라드, 제4곡 폴리의 노래, 제5곡 뚜쟁이 발라드, 제6곡 해적 제니, 제7곡 대포 노래. 이렇게 7개 악장 구성이지요. 이렇게 간추린 노래가 얼마나 귀에 착착 감기는지, ‹서푼짜리 오페라› 내용을 몰라도 좋을 듯해요.

스테판 프렌켈이 편곡한 ‹'서푼짜리 오페라'에 의한 7개의 소품›을 11월 24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바이올리니스트 탄야 베커벤터와 피아니스트 페테르 너지가 공연합니다. 빌헬름 그로스츠 ‹재즈 밴드›, 그리고 드보르자크, 부조니, 힌데미트 바이올린 소나타 등이 연주될 이번 공연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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