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7일 토요일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1)

김원철의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은 18세기 서양음악사를 중심으로 하는 음모론이다. 그러나 그 뿌리가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정황을 포착하여 열심히 파 봤다. 12세기 음악과 음모론을 엮을 만한 키워드는 당연히 '템플러'다.


스타크래프트에도 나오는 이넘은 짝퉁으로 원래 템플러는 실존했던 기사단(또는 수도회) 이름이다.

파토님 글에서는 '성당 기사단'이라고 나오고 위키피디아에서는 '성전 기사단'이라고 나오며 또 누구는 '템플 기사단'이라고도 부르는 템플러를 모른다면 당신은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 머리말"을 안 읽었거나 대충 읽은 사람이니 다시 읽어보시라:


☞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 머리말



템플러가 중세 서양음악사에서 뭔가 중요한 역할, '음모론'에 걸맞게 뭔가 비밀스러운 역할을 했을까? 뉴그로브 사전(NGD2)에서 '템플러'로 검색해 봤더니... 결과는 시원찮더라. -_-;

그래도 기껏 파헤친 것들 버리기 아까워서 짧게나마 정리해 본다.

▶ 성 베르나르두스 (1090-1153)

그림 출처: 위키피디아

템플러 결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그분이다. NGD2에서는 'Bernard of Clairvaux' 항목으로 나온다. 성 베르나르두스는 12세기 중반 시토회 개혁에 앞장서면서 전례 음악이 유럽 기준에 맞도록 레퍼토리와 선율, 선법 따위를 엄격하게 다듬었다.

... 내용이 제법 길지만 이것 빼면 별 거 없다. -_-;;

▶ 키프로스

잉글랜드 사자심왕 리처드 1세(Richard the Lionheart)는 1191년에 키프로스를 점령한 다음 템플러한테 팔았다. 템플러는 키프로스를 다시 기 드 뤼지냥(Guy de Lusignan)한테 팔았다. 기 드 뤼지냥은 키프로스의 왕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키프로스에 프랑스 음악이 흘러들어 갔다.

기 드 뤼지냥이 템플러였다는 설이 있으나 정황을 보아 사실이 아닌 듯하다. 뭔가 있을 줄 알았더니... OTL

▶ Gace Brulé (1160-1213?)

이 양반 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모르겠다. 가스 브륄레? 아무튼 Gace Brulé는 프랑스 음유시인(트루베르 trouvère)으로 1212년 기록에 따르면 템플러와 거래관계를 맺었단다. 음유시인이니까 템플러가 자주 불러서 노래를 시켰나 보다. 이때는 템플러 세력이 어마어마할 때였으니 그만큼 이 양반이 노래를 잘했다는 얘기다.

... 끝. -_-;;

▶ 볼프람 폰 에셴바흐 (Wolfram von Eschenbach, fl c1170–1220 )

<신의 지문> 등을 쓴 그레이엄 핸콕은 볼프람이 템플러였다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학술적인 근거는 모자라나 볼프람이 신비주의적인 작품을 많이 남긴 만큼 신비주의 '본좌'인 템플러와 어떤 식으로든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볼프람은 1200년에 <파르치팔 Parzival>을 내놓았는데, 그레이엄 핸콕은 이 작품이 1187년 십자군이 살라딘 군대에 패하여 예루살렘 왕국이 함락된 일과 관련 있다고 주장했다. <파르치발>에 묘사된 배경은 아서 왕 시대가 아닌 십자군 원정 당시와 맞아떨어지며, <파르치발>에 묘사된 지리는 성궤(Ark)가 숨겨진 위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파르치팔>이 음악사에서 중요한 까닭은 나중에 바그너가 이 작품을 바탕으로 <파르지팔 Parsifal>을 썼기 때문이다. 바그너와 템플러 관계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라:

http://wagnerian.textcube.com/377
http://wagnerian.textcube.com/340

▶ Templer und die Jüdin

마르슈너(Heinrich August Marschner, 1795-1861)가 1829년에 내놓은 오페라 제목으로 '템플러와 유대인 아가씨'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 월터 스콧의 소설 <아이반호>가 원작이며, 템플러 부아-길베르(Brian de Bois–Guilbert)는 악당으로 나온다. 키프로스를 점령해서 템플러한테 팔았던 사자심왕 리처드 1세가 그 유명한 '흑기사'이며, 흑기사와 의형제인 록슬레이는 전설에 나오는 로빈후드이다. 리처드 1세는 원작 소설에서부터 매우 멋있게 나오지만, 사실은 당시 영국에 산적이 많았던 까닭은 리처드 1세가 세금을 무겁게 매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오페라는 독일에서만 200회 이상 공연되었고 피츠너(Hans Pfitzner, 1869-1949)가 1912년에 개작할 만큼 크게 성공한 작품인데 어째 음반을 찾아보니 서곡이 들어 있는 음반 달랑 하나 나온다.

▶ 포부르동(Fauxbourdon)

1337년부터 1453년까지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이른바 '100년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 전쟁을 계기로 영국 음악이 프랑스에 흘러들어 간다. 이때까지만 해도 음악사에서 '변방'에 속했던 영국에서는 대륙 작곡가들이 금기로 여기던 3도, 6도 음정을 자유롭게 쓰고 있었고, 이것이 프랑스로 건너가 이른바 포부르동 양식으로 나타난다. 포부르동 양식은 3화음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적인 호모포니의 씨앗이 되었다.

포부르동 양식이 유럽 음악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비교해 보자.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Machaut, 1300-1377) - <미사 노트르담>
가운데 '천주의 어린 양 Agnus Dei'
http://www.youtube.com/watch?v=bHRAYbgdxew


질레 뱅슈아(Gilles Binchois, 1400-1460) - De plus en plus
http://www.youtube.com/watch?v=Rh8553tK3go

교회음악끼리 비교해야 공정하겠으나 '근대적인(?)' 음향을 뚜렷이 느끼게 하려고 일부러 이 두 곡을 꼽았다. 첫째 곡은 14세기 이른바 '아르스 노바 Ars Nova' 양식을 따른다. 둘째 곡은 포부르동 양식이 나타나는 ☞롱도(Rondeau)이다. 둘째 곡이 더 '3화음스럽고' 더 '호모포닉'하며 더 쉽게 귀에 들어오는 게 느껴지시는가.

호모포니를 모르는 사람은:
http://wagnerian.textcube.com/386

포부르동 양식이 15세기 영국에서 비롯하였음에 주목해 보자. 필리프 4세가 템플러 수뇌부를 갑작스럽게 체포한 때가 1307년, 템플러가 공식 해체된 때가 1312년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템플러가 도망간 곳이 스코틀랜드이다. 그리고 100년 전쟁이 일어난 때는 1337년이다. 무언가 수상하지 않은가?

김원철의 음모론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어쩌면 템플러 잔당이 100년 전쟁을 뒤에서 부추기지는 않았을까? 포부르동 양식이 대륙으로 건너간 일에도 그들이 관여하지는 않았을까?

... 열심히 팠으나 근거는 없더라. OTL

무엇보다 템플러가 도망간 곳은 잉글랜드가 아닌 스코틀랜드였다. 이때는 아직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점령당하지 않았을 때였으며, 100년 전쟁 때 프랑스는 '이이제이' 전략에 따라 스코틀랜드를 돕기도 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음악이 잉글랜드와 닮은꼴이며 3도, 6도 음정을 자유롭게 썼는지 알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다음 시간에는 16세기와 17세기를 건너뛰고 프리메이슨이 활동하던 시대로 넘어가겠다.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다음 글 읽기:

☞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2)
☞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3)
☞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4)
☞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5)
☞ 재미로 보는 서양음악사 음모론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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