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5일(토)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자 : 정명훈
협연자 : 니콜라스 안겔리치(피아노)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in E-flat, Op. 73 "Emperor"
Tchaikovksy, Symphony No. 6 in b, Op. 74 "Pathetique"
정명훈이 서울시향을 지휘할 때면 앙상블이 갑자기 크게 좋아지곤 한다. 정명훈이 지휘를 잘하기도 하고 대가의 존재감 때문에 단원들이 열심히 연주하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름난 외국 악단에서 객원 연주자를 데려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객원 덕에 앙상블이 좋아졌으니 진짜 서울시향 실력이 아니라고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객원 연주자의 수준 높은 연주를 시향 단원들이 듣고 배울 테니 말이다. 서울시향은 그 뒤로도 '찾아가는 연주회' 등으로 같은 곡을 '복습'하면서 배운 것을 바로 써먹을 수 있다. 또 객원으로 왔다가 단원으로 눌러앉는 사람도 더러 있다.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나 팀파니 수석 아드리앙 페루숑이 그렇다. 옛날에는 시향 단원이 객원 연주자를 따라가지 못해서 객원들만 두드러질 때가 잦았지만, 요즘은 크게 나아져서 오케스트라 전체가 함께 성장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날 연주는 그 가운데서도 손꼽을 만큼 훌륭했다.
니콜라스 안겔리치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은 무척 낯설게 들렸다. 서울시향은 대편성으로 묵직하게 밀어붙였지만 안겔리치는 오케스트라에 팽팽하게 맞서지 않고 살짝 흘리면서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연주했다. 또 마치 쇼팽을 연주하듯 루바토를 과장해서 쓰고 곳곳에서 소토 보체(sotto voce)로 연주하는가 하면 페달을 너무한다 싶을 만큼 잔뜩 써댔다. 무대로 걸어나올 때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던 생각이 겹치면서 협연자가 몸이 아프지는 않은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엉터리 연주라고 화를 내야 할까. 생각 끝에 나는 참신한 해석이라고 좋게 여기기로 했다.
우리는 어쩌면 '황제'라는 표제 때문에 생각이 틀에 박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표제는 악보 출판업자가 장삿속으로 붙였을 뿐 작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작품은 그저 피아노 협주곡일 뿐이며 '황제'와 관련한 상상을 보태어 그에 걸맞은 웅장함을 바라는 것은 잘못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봐, 그래도 안겔리치는 너무하지 않아? 저게 쇼팽이지 어딜 봐서 베토벤이라는 거야?" 그 말대로 안겔리치가 한 연주는 베토벤답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꼭 베토벤다워야 할 까닭이 있는가? 움베르토 에코는 '작품을 내놓고 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라고 했다. 작가가 의도한 것만을 고이 받들어 모실 게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열린 해석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까지 알고 있던 '황제 협주곡'은 잠시 잊어버리고 연주자가 내놓은 색다른 해석을 기꺼이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연주는 오늘따라 더욱 뛰어난 서울시향의 앙상블과 '다크 포스' 넘치는 정명훈의 해석이 맞물린 명연주였다. 1악장에서 음악에 긴장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거대한 크레셴도를 만드는 솜씨가 훌륭했고 바순과 클라리넷 독주 또한 표정이 잘 살아있는 뛰어난 연주였다. 마디 161에서 터져 나온 총주는 어찌나 사나운지 바로 앞에서 울다 지쳐 잠드는 듯하던 클라리넷 소리를 갈가리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일부 러시아 지휘자가 남긴 녹음과는 달리 트럼펫을 앞세워 귀 따갑게 으르렁거리지 않고 악기 사이에 균형을 잘 맞췄다.
3악장에서는 빠른 템포로 달리면서도 앙상블이 흐트러지지 않은 점이 매우 훌륭했다. 긴장감을 조금씩 쌓아올리다 마디 229에서 크게 터트릴 때에는 특히 현이 몹시 날카롭게 끊어 긁어대며 섬뜩한 소노리티를 만들어내었다. 차갑게 비웃는 듯한 행진곡 리듬이 내가 이제껏 들어본 그 어떤 연주보다도 폭력적이고 무시무시했다. 마치 나치 시대 독일군 사열식을 보는 것처럼, 또는 스탈린 시대 러시아 군대처럼, 또는….
4악장은 슬프고도 슬펐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현이 울부짖지 않고 왠지 차갑게 가라앉은 것 같았고, 절망 속에서 처절하게 허우적거리는 대신 차분히 관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디 81에서는 게네랄파우제(Generalpause)를 생각보다 가볍게 다루어 바로 뒤이어 목놓아 울어대는 바이올린과 첼로에 무게를 실어주지 않았다. 곡이 끝날 때 콘트라베이스가 연주하는 셋잇단음 리듬은 심장이 조금씩 느려지다가 멈추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이날 연주는 여기에서도 생각보다 담담했다. 정명훈이 표현하는 절망이 이만큼밖에 깊지 않다고 믿기는 어렵다. 정명훈은 왜 그랬을까?
답은 앙코르에서 드러났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4악장을 앙코르로 연주한 것이다! (4악장을 통째로 연주하지는 않고 마디 60부터 148까지를 건너뛰었다.) 정명훈은 차이콥스키가 교향곡 5번 4악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짜 승리'라도 억지로 '5악장'으로 덧붙여 절망과 체념 속에 주저앉지 않으려고 했나 보다. 심벌즈를 세 대나 그러모아 요란하게 쳐댄 것은 더더욱 교향곡 5번 4악장 같은 역설을 만들어내었다. 그러고 보니 '앞선 악장'에서 정명훈이 절망과 체념 대신 담으려고 했던 것은 커다란 분노가 아니었을까. 정명훈이 옛날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요즘 들어 무슨 일을 겪었는지 궁금하다.
이날 연주가 끝나고 누리꾼 사이에 박수 예절을 놓고 논란이 되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3악장이야 워낙 '뿜빰빰'하고 법석을 피우며 끝나니 박수가 터져 나오는 일은 이제 당연한 일(?)이기도 하며 더군다나 알면서 일부러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4악장은 죽어가듯이 천천히 여리게 끝나기 때문에 여운을 주는 '침묵 악장'이 매우 중요하다. 이날은 잔향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박수가 터져 나오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잔향이 없어지고 채 5초가 지나지 않아 끝내 성급한 박수가 나왔다. 그때까지 지휘봉을 높이 들고 있던 정명훈은 김 샜다는 듯이 팔을 내리고 말았다. 잔향이 없어지기에 앞서 치는 손뼉을 '안다 박수'라고 하여 비꼬아 말하기도 하는데, 이날 박수는 '안다 박수'는 아니고 '깬다 박수'라고 하더라. 성급한 박수는 여운을 즐기려는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주니 곡이 조용히 끝날수록 조심하자.
김원철. 2008.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