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동호회에서 메시앙에 대한 얘기가 synesthesia라는 현상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그에 대해 실제로 synesthesia를 경험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댓글을 달았는데, 흥미롭게도 자신이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뚜렷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글쓴이의 요청에 따라 실명이 드러나지 않도록 편집했다.
궁금해서 그러는데.. |
|||||||
글쓴이 |
amina (amina) |
날짜 |
2005년 4월 8일 13시 11분 |
추천 |
1 |
조회 |
219 |
궁금해서 그러는데, 소리를 색깔로 느끼는 능력이 유전적인것이 맞나요? 저는 늘 그러는데 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요. 만일 뭔가 별다른 능력이라면, 그럼 다른 분들은 음악을 들으면서 그 소리의 색깔이 안느껴지신다는 건지..
그리고 이상한 점은 엘렌 그뤼모가 말하던 그 음악들과 그녀가 느낀 색깔들이 제가 느낀 색깔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예를 들어 그녀가 검은색이라고 말한 곡이 저는 황금색으로 느꼈거든요? 따라서 이런 것은 어떤 능력이라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단순히 주관적인 생각에 그치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이런 건 있습니다. 전 쇼팽의 곡을 들으면 언제나 연보라색이 느껴지는데 그 채도는 곡마다 다릅니다. 왈츠를 들을 때와 소나타를 들을 때, 그리고 협주곡을 들을 때가 다르다는 거죠.. 하지만 색깔의 느낌은 늘 연보라색- 혹은 보라색입니다.
* 참고로 메시앙의 음악도 제 의견과는 다르네요.. 전 오팔 보석색 혹은 푸른색-녹색 쪽이던데.. |
synesthesia, synesthete (수정) |
|||||||
글쓴이 |
김원철 (wagnerian) |
날짜 |
2005년 4월 12일 1시 31분 |
추천 |
0 |
조회 |
111 |
* synesthesia를 지각하는 사람은 'synesthete'라고 합니다. 실수인 것 같습니다만, 철자가 틀렸기에 괜히 딴지 걸어 봤습니다. |
amina님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
|||||||
글쓴이 |
김원철 (wagnerian) |
날짜 |
2005년 4월 12일 17시 52분 |
추천 |
0 |
조회 |
116 |
amina님께서는 제가 논문을 통해서만 알고 있던 'synesthete'이신 모양이네요.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신기한 마음에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바그너를 들을 때에는 어떠세요? 죄송합니다. 정말로 궁금하거든요! |
re: amina님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
|||||||
글쓴이 |
amina (amina) |
날짜 |
2005년 4월 16일 12시 06분 |
추천 |
0 |
조회 |
3 |
답변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1. 바그너를 들을 때
바그너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잘 기억은 안납니다만 짙은 남색과 황금색이 섞인 느낌이었던 것 같군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경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가사가 담긴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의 경우 가사가 없는 쪽이 색채는 더 잘 느껴집니다. 저는 오페라를 매우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가곡이나 오페라를 듣게 되면 내용에 집중을 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지만 가사에 집중을 할 수 없는 경우 (아예 못알아 들을 때, 내용에 대해서 전혀 모를 때)엔 색깔에 대해서 느낄 수 있습니다.
2. synesthetia
위에 언급하신 논문이나, 음악사적으로 유명한 작곡가의 발언이나, 두뇌 신경학적으로 말씀하신 것 모두 흥미롭습니다. 제 단순하고도 짧은 생각을 말해보자면,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tone colour에 대한 개념을 압니다. 주로 음악을 오랜 시간을 공부하면서 (그것이 악기이든 성악이든 작곡이든 간에) 이것에 대한 개념을 발전시키고 실기 또한 연마하지요. 전 그것이 확장된 경우 혹은 많이 발달한 경우가 아닐까 싶군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 몇가지를 말씀드려볼까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일기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리히터 연주)를 듣고는 '... 강렬한 빨간 색과 초록 색이 아른거린다..' 라고 썼더군요
그리고 초등학교 3학년 때 쇼팽의 왈츠 C#을 배우면서 '이 음악은 연보라 색이네'라고 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보다 더 이전인 초등학교 1,2학년경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희고 동글동글한' 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군요
이 때엔 분명 tone colour라는 개념을 배우기 전이거든요..
저도 음악은 '색채'다 라고 생각합니다. 메시앙과 같이요. 거꾸로 그림을 보면 음악을 떠올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지요. |
음색과 음고색 | |||||||
글쓴이 |
날짜 |
2005년 4월 16일 15시 41분 |
추천 |
0 |
조회 |
1 | |
답변 고맙습니다. 참고가 될까 해서 amina님과 다른 감각세계를 경험하는 사람으로서의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소리에 대한 어휘는 대부분 시각이나 기타 감각으로부터의 유추 또는 은유로부터 파생한 것들입니다. 소리가 높다/낮다, 크다/작다, 밝다/어둡다, 부드럽다/거칠다, 감미롭다, 선율이 상행 도약한다, 화성 진행이 크로마틱(chromatic)하다...
음색(音色, timber, klangfarbe)이라는 말 또한 소리의 어떤 특징을 색채와의 유추로 나타낸 것이고요. "tone color"라는 말은 "klangfarbe"라는 독일어를 번역한 것입니다(Webster's Third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English).
amina님께서는 "tone color"를 특정 음고(pitch)가 주는 고유한 느낌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pitch color" 정도로 말할 수 있겠군요. 절대음감(absolute pitch)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것을 알고 있고, 저처럼 절대음감이 없으면서도 음감이 좋은 편인 사람도 어렴풋이 이것을 느낍니다. 그도 아니면 특정 조성 및 화성적 맥락에서 음계음(절대적 음고가 아닌)이 주는 특징 정도는 음치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이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청각적 경험을 기술하는 어휘가 빈약함에서 비롯하는 단어의 의미확장으로 볼 수는 있어도, 실제의 감각과 지각이 그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찬란한 트럼펫 소리를 들을 때 '금가루가 똑똑 떨어진다.'라는 은유적 표현을 쓸 수 있을지언정 실제로 황금색을 지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물론 amina님 같은 특수한 경우도 있겠지만요.
synesthesia는 감각(sensation) 또는 지각(perception)의 차원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마치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 음고를 듣고 손쉽게 음이름을 알아맞히는 것처럼, 또는 색맹/색약이 아닌 사람이 빨간색을 보고 빨간색이라고 알아보는 것처럼 즉각적이고 자동적이며 일관된 능력입니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하는 '공감각(cross-modality)'은 인지(cognition)의 차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만, 특정 음고를 듣고 그 음이름을 썩 잘 알아맞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즉각적이지도 자동적이지도 일관되지도 않습니다.
다만, synesthesia를 경험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도 그 공감각적 비유 체계에 어느 정도 일관성은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높은 소리를 '밝은' 소리로, 낮은 소리를 '어두운' 소리로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험심리학적 증거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그너의 "트리스탄"이나 쇼팽, 모차르트 등의 음악에 대한 amina님의 색채 묘사에 대해 그것이 음악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트리스탄"에 샛노란 색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지요? 메타/바이에른 국립극장의 트리스탄 DVD에서 콘비츠니가 연출에 사용한 샛노란 소파를 보고 많은 사람이 그것을 '엽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밖에도 그 연출에 사용된 천연색 색채 디자인이 차라리 변태적(?)이라고 느낍니다. ^^;)
마지막으로, 저의 학사학위논문을 소개합니다. 구상부터 완성까지 보름 만에 졸속 작성했는데다가 실험 디자인에 치명적인 결함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흥밋거리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논문 받기)
도움이 되었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