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eitkopf & Härtel 건물 외관 |
유지원 | 2006.03.03 18:38 0 |
Breitkopf & Härtel, 브라이트코프 운트 헤어텔.
가끔 택시를 타면 좋은 점 중 하나는 대중 교통을 이용할 때나 걸어다닐 때와는 루트가 다른 골목길들을 지나다닌다는 점이다. 그래서 택시 안에서는 창밖의 풍경을 유심히 본다.
며칠 전 밤늦게 택시를 타고 오다가 기숙사 근처에서 이 Breitkopf & Härtel 건물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놀라서 튀어날아갈 뻔 했다.
Breitkopf & Härtel이 라이프치히에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집 근처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전혀 몰랐다니 황당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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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고전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 치고 Breitkopf & Härtel의 이름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지난 시대 가난한 음악 거장들의 편지에서 Breitkopf & Härtel의 악보 출판 계약에 관한 한숨과 안도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음악 전공자 치고 Breitkopf & Härtel에서 발행한 악보를 몇권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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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itkopf & Härtel의 상징인 황금곰은 이 회사의 설립연도인 1719년이 써있는 악보를 들고 있다. Breitkopf 아래 DVfM은 Deutscher Verlag für Musik, 즉 '독일 음악 출판사'의 약자이다.
DVfM은 본래 Breitkopf & Härtel과 다른 구동독 시절 라이프치히에 소재했던 독자적인 음악 출판사였는데 통일 이후 Breitkopf & Härtel에 병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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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오스트리아 빈이 '음악의 도시'였다면, 당대의 라이프치히는 '악보 출판의 도시'였다.
빈에서 당대를 풍미하고 역사에 길이 남은 음악 거장들의 악보 상당부분이 오늘날 고속 열차로도 무려 9~10시간이나 떨어진 이곳 라이프치히까지 굳이 와서 출판되었다.
이 회사 발행인들의 사업수단과 동시대 음악가들을 판별해내는 안목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역사란 어차피 편집되는 것이고 또 기록으로 전해지는 것이니 이 회사는 어떤 의미에서는 18~19세기 독일 음악사를 썼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 당시 독보적인 미디어였던 출판의 위상은 지대했고, 음악가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베토벤 및 그 이후 낭만주의 음악가들의 악보가 생전에 출판되었고, 그 유명한 모차르트의 쾨헬 번호(KV, Köchel Verzeichnis)가 이곳 편집자들의 역량을 거쳐 처음 체계화되어 나왔으며,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사후의 전집 악보가 출간되었다.
Breitkopf & Härtel은 편집디자인에 관한 사업 감각도 남달라서 이 회사를 위해 고안된 Breitkopf Fraktur 서체는 오늘날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우리 학교의 손조판 실습실에 구비된 프락투라형 서체 중 가장 가독성이 높고 짜임새있는 활자라고 일찌기 생각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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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기숙사에서 한 정거장 거리에 위치한 이 건물은 볼품없었다. 차라리 건물 배경으로 저녁놀 살포시 드리워지려는 하늘이 볼만한 것 같다.
1층은 독일의 대형 체인 슈퍼마켓인 Edeka에 자리를 내주었고 건물의 대부분은 은행인 Sparkasse가 차지하고 있다.
Breitkopf & Härtel은 그나마 볼 것도 없는 건물에서 한쪽 귀퉁이에만 작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입구도 삭막했다. 내실이야 어떨는지 알 수 없지만 어쩐지 비감한 기분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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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itkopf & Härtel 사무실 풍경 |
유지원 | 2006.03.03 18:03 0 |
Breitkopf & Härtel 사무실 풍경. 전면에 보이는 흉상은 프란츠 리스트이다.
1719년부터 전통이 이어진 Breitkopf & Härtel 라이프치히 본사 건물은 전쟁 중에 파괴되었다.
양차 세계 대전으로 독일만큼 손해 본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전쟁과 분단으로 라이프치히만큼 손해 본 도시가 또 있을까?
전후에 Breitkopf & Härtel은 구서독의 비스바덴으로 옮겨졌고, 독일이 통일된 직후인 1991년에 라이프치히가 본거지임을 기념하여 이곳에 지사가 설립되었다.
18~19세기 음악 거장들의 시대에, 당대를 풍미한 음악가들의 출판권을 거머쥐며 음악사를 써내려갔던 음악 인쇄 출판의 본거지 라이프치히에는 이제 Breitkopf & Härtel의 지사만이 건물 한 켠에 작게 남아있다.
마침 음표 및 악보 표기 디자인을 나의 주제 중 하나로 삼고 있었는데, 어쩌면 이 단촐하고도 산뜻한 사무실에 실무 노하우를 전수받으러 앞으로 가끔 드나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연한 발견이었지만 유용할 가능성이 있음에 기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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