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3일 목요일

윤이상: 서주와 추상 (Fanfare & Memorial)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북에 사용할 글입니다.


추상(追想)은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한다는 뜻으로 오늘날에는 잘 쓰이지 않는 말이다. 음악학자 볼프강 슈파러는 이 작품 원어 제목의 'Memorial'(추상)이 '회상'(Erinnerung)과 '경고'(Mahnung)를 이중적으로 의미한다고 풀이하며, 이 작품을 여는 섬뜩한 팡파르 주제는 지구의 종말을 경고하는 것으로 교향곡 1번을 예견하게 한다고 말한다.

주제를 제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음악을 이끌어 나간다는 점에서 '서주와 추상'(Fanfare & Memorial)은 윤이상 작품으로는 매우 이례적인 곡이다. 팡파르 주제를 이루는 개별음은 고정되어 있고, 그와 대비되는 현악기 음형에서는 개별음이 살아 움직인다. 금관 팡파르가 유럽적이라면, 살아 움직이는 현 소리는 동아시아적이다. 슈파러는 팡파르 주제의 '엄격함'이 동양적인 '부드러움' 속에서 조금씩 힘을 잃고 융화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해석한다.

윤이상의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이 작품은 동動-정靜-동動 세 부분으로 된 단악장 짜임새이다. 동서양을 대변하는 이질적인 음형들이 부딪치고, 타협하고, 상생하는 과정에 하프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특히 정적인 중간 부분에서 하프 독주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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