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쓴 상징주의 희곡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대단한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포레와 시벨리우스는 이 작품을 위한 극음악을 작곡했고, 쇤베르크는 같은 제목으로 교향시를 썼고, 드뷔시는 오페라를 내놨지요. 그 밖에 많은 작곡가가 이 작품에 영감을 받아 관현악, 오페라, 뮤지컬 등을 작곡했습니다.
그 가운데 드뷔시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음악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서, 클래식 음악 마니아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감상에 도전해 보곤 합니다. 문제는 프랑스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음악이라는 것이지요.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말하기를, 그래서 이 작품에 도전했다가 이내 음반을 중고 장터에 내놓고, 그 음반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änder) 신세가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기 일쑤라고 합니다.
제가 예전에 모 오케스트라 기획실에서 일할 때 포레, 시벨리우스, 쇤베르크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공연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때 원작 희곡을 여러 차례 정독하고, 짜임새가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쇤베르크 곡을 지휘자 선생님과 함께 분석하면서, 그러니까 사실은 지휘자 선생님의 분석을 뱁새 다리로 따라가다가 가랑이가 찢어질 뻔하면서, 원작 희곡과 쇤베르크 교향시 모두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깨닫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드뷔시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 다시 도전해 봐도 좋겠다고요. 바빠서 (또는 귀찮아서) 아직도 못 하고 있지만요. 다른 오페라도 사실 비슷합니다. 뻔한 줄거리인데도 가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이게 또 얼마나 흡입력이 대단한지를 몇몇 오페라를 직접 번역해 보면서 깨닫는 경험을 해봤지요.
그런데 노랫말이 만만치 않은 장벽이 되기는 국악도 마찬가지더란 말이지요. 판소리건 정가(正歌)건, 사전을 찾아 봐야 뜻을 알 수 있는 수많은 한자어 때문입니다. 전설적인 명연이라는 임방울의 판소리 음반을 들어 봐도 도무지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드뷔시 오페라 듣는 일이나 매한가지일 수밖에요.
제가 꼬마였을 때 '예솔아~' 하던 제 또래 꼬마 가수 이자람을 빼면, 제가 이자람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언젠가 TV에서 잠깐 봤던 《구지 이야기》 공연 실황에서였습니다. 저는 집에 TV가 아예 없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디 밖에 나갔다가 공연 일부만 우연히 봤을 터인데요. 전기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다가 현대 한국어로 판소리를 하던 모습이 참 신기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몇 해 지나 제가 모 오케스트라 기획실에서 일할 때, SBS 김수현 기자님이 ☞블로그에 쓰신 글을 읽고 이자람 공연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저렇게까지 열광하시나 싶어서, 나도 언제 한 번 가야겠다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드뷔시 《펠레아스와 멜리장드》에 언제 한 번 재도전해야겠다 생각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세상에 재미난 게 너무 많아서 문제입니다. 화제가 되는 영화도 봐야겠고, 보다 말다 하는 《스타트렉》 시리즈도 챙겨 봐야겠고, 그보다 최근에 입수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공연 실황을…
그러다가 일 때문에 이자람을 무대에서 보게 됐네요. 어제 리허설을 보고 받은 충격은 페이스북에 쓰고 이 글 처음에 임베드(embed)한 그대로입니다. 남미의 대문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원작에 담긴 강력한 내러티브,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이자람의 노래, 현대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가사가 어우러지니 '언제 한 번' 날 잡아서 공부해 가면서 감상할 필요 없이 그냥 이야기가 가슴에 와서 박혔습니다.
그리고 이자람의 신들린 연기력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라사라'가 울분에 차서 소리치는 대목에서는 제가 무슨 대역죄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마저 들더군요. 재미난 가사와 연기에 실실 웃던 저는 이때부터 가슴이 먹먹해져서는, 그만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본 공연 때에는 마음이 움직이는 곳이 좀 달라져서, 원작 제목이 뜻하는 바와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군요. 스포일러 천기누설을 할 수가 없어서 자세한 얘기를 못 드리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클래식 음악 작품을 얘기할 때에는 그 작품이 언제 어디서 초연됐는지를 중요하게 따지지요. 음반 산업이 발전하기 전에는 초연에 큰 의미를 두는 일이 자연스러웠겠고요. 그리고 걸작이 초연되던 날 있었던 일들은 그대로 역사가 됩니다.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초연 때 있었던 일들은 특히 유명하지요.
그런 역사의 현장에 제가 있었습니다. 훗날 음악학자들은 어제 공연과 관련한 사료들을 진지하게 연구하게 될 겁니다. 이자람 《이방인의 노래》 세계 초연. 2014년 8월 15일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 그들이 학자로서 연구하게 될 사건의 생생한 현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역사의 주인공입니다. 오늘 공연은 그 역사의 연장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