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6일(화) 오후 8시
호암아트홀
지휘자 : François-Xavier Roth
협연자 : 김호정(첼로), 홍웨이 황/진민호(비올라)
Charles Ives(1874-1954), The Unanswered Question (1906) 5'
Giacinto Scelsi (1905-1988), Anagamin for 11 Strings (1965) 7'
George Benjamin (1891-1945), Viola, Viola for two violas (1997) 12" Korean Premiere
Pierre Boulez (*1926) Messagesquisse pour violoncelle solo et six violoncelles, sur le nom de Paul Sacher (1976) 8'
Chris Paul Harman From the Cradle to the Grave for 16 strings 16' Asian Premiere
Uzong Choe (*1968) Love Song, chamber concerto for violoncello and strings(2006) 15' (commission by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World Premiere)
아이브스는 <대답 없는 질문 The Unanswered Question>을 두고 "존재에 대한 해묵은 질문"이라 했는데, 제목이나 악곡 구성이 마치 20세기 음악사를 내다보는 듯해서 번스타인은 이 곡을 "조성적 갈등에 대한 생생한 묘사"라고도 했다. 조성이 흐릿한 트럼펫과 조성이 없는 플루트 앙상블의 '문답' 그리고 3화음을 쓰면서도 조성음악답지 않게 무심히 관조하는 듯 흘러가는 현 사이의 관계가 조성음악이 생명을 다한 20세기 서양음악이 맞이한 화두와도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지휘자는 플루트 앙상블이 무대 좌우 연주자 대기실 쪽에서 번갈아 또는 동시에 연주하게 하고 객석 2층에 자리한 트럼펫이 '질문'을 할 때마다 위치를 옮기게 하는 등 연극적인 요소를 더하여 '문답'을 더욱 뚜렷이 드러냈다. 또 트럼펫이 마지막에는 객석 앞으로 나오게 하여 마지 청중에게 이런 화두를 던지는 듯했다. 현악기로 어떻게 새 시대에 걸맞은 새 소리를 만들어낼 것인가?
자친토 셸시(Giacinto Scelsi, 1905-1988)는 요즘 뒤늦게 인기를 얻는 사람으로 작곡 기법이나 그 바탕에 깔린 동양 사상 등이 윤이상과 거울상처럼 닮았으면서도 또한 정반대다. 셸시는 그가 살았던 로마가 동서양의 경계라고 생각했으며, 인도와 티베트 등을 여행하면서 명상을 배웠다. 이른바 '단음 음악(Single-note Music)'이라 불리는 작곡 기법은 이름처럼 음 하나로 끝나지 않고 트레몰로, 비브라토, 글리산도, 미분음(microtone) 등으로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으로, 그 원리는 윤이상의 중심음(Hauptton) 기법과 마찬가지로 정중동(靜中動)이다. 윤이상이 동아시아 음악의 음향 특징을 서양 악기로 표현하려고 중심음향(Hauptklang) 기법을 고안했다면, 셸시는 음 하나가 가진 배음(harmonics)을 원래 음으로부터 끄집어내 한 음이되 한 음이 아니게 했으니 이것은 윤이상과 닮았으면서도 또 다르다. 1965년 작품인 <아나가민 Anagamin>은 불교 수행 단계를 뜻하는 성문 4과(聲聞四果), 즉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多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 가운데 아나함이며, 사바세계의 모든 번뇌를 끊고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불래(不來)라고도 한다. 셸시가 그 속뜻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듣기로는 참된 아나함을 얻었다기보다는 깨달음을 눈앞에 두고 벼랑 끝에서 번뇌와 싸우는 듯했다. 그러나 작품 속 아나함은 <대답 없는 질문>처럼 음악 속에서 새 뜻을 찾을 수도 있겠다. 즉, 12음 기법으로 대표되는 주류 작곡 기법이 싫지만 조성음악으로 돌아갈 수도 없던 셸시가 마침내 찾아낸 돌파구를 그만의 것으로 완전히 소화하여 불래(不來)를 이룬 것이다.
조지 벤자민의 <비올라, 비올라>와 불레즈의 <메사줴스키스 Messagesquisse>는 '현 긁는 맛'을 잘 살린 곡이었다. <비올라, 비올라>가 투박하지만 담백한 비올라 음색을 잘 살리는 동시에 마치 도깨비 감투를 쓴 연주자가 옆에서 바이올린과 첼로를 연주하는 듯 신기한 음향을 만들어냈다면, <메사줴스키스>는 첼로 일곱 대가 현을 박박 긁어대는 박력이 피부로 직접 느껴질 듯 짜릿했다. 새삼 드는 생각이지만 박박 긁는 소리는 역시 첼로가 제맛이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근본적인 저음 한계 탓에 박력이 모자라며, 콘트라베이스는 악기가 너무 커서 굼뜨다. 서울시향의 연주는 썩 훌륭했지만 좀 더 미친 듯이 긁어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살짝 들기도 했다.
크리스 폴 하먼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는 <우타>와 마찬가지로 만화 같은 과장과 풍자가 생생히 살아있는 작품이었는데, '하먼식 조각내기'에 웬만큼 익숙해져서인지 이제는 보통 변주곡을 듣는 듯한 느낌도 살짝 들었다. '조각 맞추기'를 하다가 엉뚱한 선율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여전했으며, 이를테면 오르간 음향에 얹은 바로크풍 선율은 제목을 의식한 탓인지 생일 축가를 떠올리게 했다.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것처럼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음 덩어리(cluster)가 <전람회의 그림>의 '프롬나드'처럼 계속 변형되며 나타나는 것도 인상 깊었다.
최우정의 첼로 협주곡 <러브 송 Love Song>은 서울시향이 위촉하여 이번이 세계초연이라 더욱 뜻깊다. 그런데 '사랑 노래'라니 첼로 협주곡이라기에는 너무 통속적이고, 대중음악에 쓰기에도 낡아빠진 제목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흔한 사랑 노래와는 달리 그다지 달콤하거나 신파조이거나 하지 않았고, 대중음악에 어울리는 선율과 리듬이 이리저리 비틀려 있어서 남의 연애담 듣듯이 편하게 들을 수만은 없는 곡이었다. 중간에 박진감 넘치는 대목은 영화 <졸업>에서처럼 결혼식장에 쳐들어가 신부 납치라도 하는 듯했고, 또 어찌 들으면 싫다고 구박하는데도 열심히 쫓아다니는 바보스러운 사랑 같기도 했다.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우리 부모님들이다. 마침 이 곡 악보 첫머리에는 작은 글씨로 "à mon père"라고 쓰여 있다. 프랑스어로 '아버지께'라는 뜻이다. 작품 끝머리에 불안한 음형이 되풀이되다가 매우 여린(pppp) 16분음 스타카토 세 번으로 마치 시계가 멈춘 듯 끝나버린 것이 너무나 애틋해 나는 오랜만에 부모님께 전화 한 통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김원철. 2007.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