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 for Works: Asian Composers Showcase 2019
페친 가운데 작곡하시는 분들 주목해 주세요. ^^
페친 가운데 작곡하시는 분들 주목해 주세요. ^^
The Asian Composers Showcase was launched in 2013 by the Goethe-Institut together with the Tongyeong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TIMF), to promote the composition of New Music in North East Asia. For six years now, a total of twenty-five compositions by promising young composers have been premiered at TIMF.
‹에딕손 루이스와 꿈의 오케스트라 통영›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잊어먹고 있다가 뒷북으로 블로그 백업.
오늘의 개드립:
- 연주자 호텔 체크인 완료했심다.
- 이상 엔더스의 '이상'은 윤이상의 '이상'이 맞는 거임?
- ㅇㅇ
- (묘소에) 풀 좀 뽑으라고 하셈.
- 이상 엔더스의 '이상'은 윤이상의 '이상'이 맞는 거임?
- ㅇㅇ
- (묘소에) 풀 좀 뽑으라고 하셈.
Seungwoo Lee
도서출판 길에서 올해 다섯 번째로 펴내는 책은 『조율과 공명: 대중문화를 듣다』입니다. 국내에는 미학 가운데에서도 ‘음악’미학을 전공한 연구자가 별로 없는 편인데, 이 책의 저자 최유준 교수(전남대 호남학연구원)는 줄곧 이 분야에서 활동해온 소장학자입니다.
저희 출판사에서 처음 펴내는 음악 관련 책이기도 합니다. 이후 도서출판 길에서는 많은 것을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이나마 의미 있는 음악 관련 책들을 펴내려고 합니다.
이번 책의 특징은 아래와 같은 저자의 ‘맺는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저희 출판사에서 처음 펴내는 음악 관련 책이기도 합니다. 이후 도서출판 길에서는 많은 것을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이나마 의미 있는 음악 관련 책들을 펴내려고 합니다.
이번 책의 특징은 아래와 같은 저자의 ‘맺는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 다양한 독자를 고려하며 인문학이나 문화 일반에 대한 쟁점을 음악과 관련된 양식적 사고를 매개로 탐색하고, 반대로 음악에 대한 쟁점을 더 넓은 인문학 개념과 문화 연구의 비평적 담론의 형식 속에서 점검하고자 했다. 요컨대 이 책은 음악과 음악 아닌 것 사이, 나아가 음악과 또 다른 음악 사이의 접점과 경계 영역에서 이루어진 비판적 사유의 흔적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242쪽).
신국판 / 무선제본 / 246쪽 / 값 15,000원
피아니스트 김선욱 인터뷰
카를 바인: 피아노 트리오를 위한 '동네'(The Village)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E♭장조 Op. 70-2 / 라벨: 피아노 트리오 a단조
'악보의 넷플릭스' 구독형 악보 서비스 nkoda가 아이폰 및 안드로이드 앱을 내놨네요. 그동안은 아이패드로만 사용할 수 있었죠. 윈도우즈 및 맥용은 아직 개발중.
이거 보다가 중간에 두 번 빵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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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드 인-
+문화혁명 시절 피아노를 부셔서 땔감으로 쓰다가 지금은 세계 굴지의 스타인웨이 피아노 사를 차지하려고 드는 중국의 태도 변화에 대해 쓴 칼럼입니다. 장지영 Jiyoung Jang 기자님이 얼마전 쓰신 중국 국유기업의 스타인웨이 인수작업에 영감을 얻었습니다. 문화혁명 시절 고초를 겪은 중국 클래식 음악가들에 대한 더 자세한 얘기는 주 샤오메이가 쓴 <마오와 나의 피아노:모택동에서 바흐로>(종이와나무)와 (지금은 품절된) 부뢰의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나의 아들 부총에게>(민음사)를 읽으면 좋습니다.
+윤디 리도 그렇지만 랑랑의 급부상은 정말 극적이었습니다. 유니버설과 계약전 무명시절에 예술의전당에서 2-3회 내한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한족 전통의상에 더벅머리를 긁적거리며 입장하는 그의 무대 매너는 대단히 소박했죠. 콘서트홀 객석의 10퍼센트도 못되는 2백석도 못채운 청중을 앞에 두고 어마무시한 리스트를 치는 랑랑의 모습을 보고 같이 갔던 한 음악평론가가 '어머 너무한다. 중국인만 아니면 더 높이 평가받았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표했던 게 2003년인가 4년입니다. 1-2년 만인 2005년 에셴바흐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협연자로 내한한 그는 이미 유니버설 전속 아티스트였고, 더 이상 예전의 중국 시골 촌뜨기가 아니었습니다. 무스로 반짝거리는 머리에 세련되게 청중들에게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는 그는 뉴욕 상류계급의 몸짓을 따라하고 있었더랬죠. 물론 콘서트홀은 만석이었습니다.
+중국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는 인구가 현재 5천만이 넘는걸 고려하면 그중에서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로 성장한 비율은 사실 그리 높지 않습니다. 중국인들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도와 지식의 비중도 마찬가지고요 (영화관에서와 거의 다를 바 없는 중국 클래식 콘서트홀 매너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죠). 이런 걸 보면 국가에서 1도 안 도와주는데 자력으로 글로벌하게 성장한 한국 음악가들의 능력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바그너에게 책임을 묻는 그 행위를 확대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거론하는 지점까지 나아가야한다. 말하자면 나치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행하는 만행에 대한 책임을 묻는 행위와 함께 이루어져야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책임을 묻는다'는 윤리적 행위를 가능하게 만드는 정당성이다." http://wallflower.egloos.com/1958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