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엔코다'(nkoda)라는 전자악보 서비스가 지난 6월 8일 공식 출시됐습니다. 저는 처음에 영국의 악보 출판사 '부지 앤 호크스'(Boosey & Hawkes)가 자회사를 만들었다고 오해했는데, 알고 보니 그 출판사의 투자를 받은 신생 기업이 하는 것이더군요. 그래서인지 엔코다는 부지 앤 호크스가 아닌 다른 출판사의 악보도 서비스합니다.
엔코다는 놀랍게도 개별 악보를 구매하는 식이 아니라 정액 요금으로 엔코다에 등록된 악보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구독형 서비스입니다. 이용료는 월 9.99달러 또는 연 99.99달러에 첫 달 무료이고, 여러모로 애플뮤직이나 넷플릭스 같은 음원/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와 비슷합니다. 아직은 특정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태블릿 컴퓨터에서만 사용할 수 있지만, 나중에 다른 기기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네요.
현재까지 엔코다와 제휴를 맺은 출판사는 50개가 넘습니다. 그 가운데는 베렌라이터, 브라이트코프, 뒤랑, 리코르디 등 대형 출판사도 있고, 쇼트 뮤직, 헨레, 유니버설 에디션 정도가 아직 제휴를 맺지 않았더군요. 쇼트 뮤직은 노타피나(Notafina)라는 전자악보 사이트와 제휴해 범용 PDF 파일 형태로(!) 악보를 판매하고 있고, 헨레는 자체 전자악보 소프트웨어로 악보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베렌라이터 출판사는 자체 전자악보 서비스가 있으면서도 엔코다와 제휴를 맺었다는 점이 대단합니다.
엔코다의 투자자인 부지 앤 호크스 출판사는 윤이상 선생 작품의 판권을 가진 곳입니다. 그래서 윤이상 작품 대부분을 엔코다로 볼 수 있더군요. 다만, 오페라는 페이지 수가 워낙 많아서인지 아직 서비스되지 않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나비의 미망인› 보컬스코어가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진은숙 선생의 악보도 상당수 있고,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전곡 악보가 없는 대신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아시아 초연된 ‹퍼즐 & 게임 모음곡›이 있습니다.
현대 작곡가의 작품 상당수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악보를 판매하지 않으며 연주단체가 일회성으로 대여하는 것만 가능하지요. 엔코다는 이런 악보들도 누구나 태블릿 컴퓨터로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현대곡이 아니더라도 출판사에서 각종 오류를 바로잡은 최신 편집본을 볼 수 있고, 오케스트라 총보뿐 아니라 악기별 파트 악보를 골라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기존 전자악보 서비스로는 가능하지 않던 커다란 혁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악보를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만큼 불법 복제를 방지하는 장치도 확실합니다. 악보를 띄운 상태에서 화면 갈무리(캡처)를 하면, "화면 갈무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3회 이상 화면 갈무리를 하면 계정이 정지됩니다."라는 경고 메시지가 뜹니다. 문제는 태블릿 컴퓨터 화면을 외부 디스플레이에 연결하는 일마저 불법 복제를 위한 '꼼수'로 보고 금지하더라는 겁니다. 앞으로 외부 디스플레이 연결은 가능하게 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제 계정은 이미 정지돼 버려서 곤란하네요. 이것 참!
유저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 즉 작동 방식의 편리함이 포스코어(forScore)와 같은 전자악보 소프트웨어의 압도적인 편리함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단점입니다. 특히 메모 기능이 아직 많이 불편해 보여요.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교 작곡과의 데이비드 맥도널드 교수는 엔코다의 메모 기능에서도 장점을 발견했는데, 메모가 레이어(계층) 단위로 저장된다는 것과 메모를 다른 사용자와 공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합창 지휘자가 필요한 '레이어'만 합창단원에게 공유하는 식으로 연습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요.
저작권이 소멸한 악보를 공짜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IMSLP라는 웹사이트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악보 출판사들이 이곳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2011년에는 영국 악보 출판사 협회에서 저작권법을 악용해 IMSLP 사이트에 사실상 테러 행위를 저질렀다가 대중의 거센 항의를 받고 꼬리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영국) 악보 출판사들이 디지털 시대 외부 충격에 대처할 의지도 능력도 없음이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며, 이들이 몰락하는 시점은 아마도 구글, 애플, 아마존이 결정할 것이라 논평했었습니다.
7년이 지나 상황이 변했습니다. 음악 출판계에서 '넷플릭스' 수익 모델을 받아들였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그리고 엔코다는 앞으로 음악 출판 시장에 태풍을 일으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