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7일 일요일

리스트 단테 소나타, 물 위를 걷는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코, 노르마 회상, 스페인 랩소디 등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 해설입니다.

리스트: 《순례의 해》 중 첫 번째 해 제4곡 '샘가에서'

리스트 《순례의 해》는 다양한 피아노곡을 '여행'이라는 주제로 묶은 '음악 여행기'입니다. 프랑스어로 된 원제 Années de pèlerinage는 괴테의 장편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프랑스어 초판 제목을 가져다 쓴 것이고, 따라서 문자 그대로 번역한 '순례의 해'보다는 '편력시대'가 제목으로 더 적절할는지 모릅니다.

《순례의 해》 중 첫 번째 해 '스위스'는 리스트가 마리 다구 백작부인과 함께 스위스로 밀월여행을 떠났을 때를 추억하며 쓴 곡으로, 제4곡 '샘가에서'는 《나그네 앨범》이라는 피아노곡집에 실었던 곡을 재창작한 것입니다. 악보에는 실러가 쓴 시 「도망자」(Der Flüchtling) 중에서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는 대목을 인용했습니다. "속삭이는 청량함 속에 / 젊은 자연이 / 놀이를 시작하니,"(In säuselnder Kühle / Beginnen die Spiele / Der jungen Natur,).

리스트: 《순례의 해》 중 세 번째 해 제4곡 '에스테 저택의 분수'

에스테 저택 또는 '빌라 데스테'(Villa d'Este)는 이탈리아 티볼리에 있는 저택으로, 르네상스 양식으로 된 건물과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하며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리스트는 악보에 요한복음 중 한 구절을 인용해 놓았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리스트: 《2개의 전설》 중 '물 위를 걷는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코'

제1곡 '새들에게 설교하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제2곡 '물 위를 걷는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코'로 되어 있는 《2개의 전설》은 자식을 잃는 등 괴로움을 겪으면서 종교에 경도된 리스트가 신부 서품을 받기 몇 해 전에 쓴 곡입니다. 뱃삯을 낼 수 없었던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코가 겉옷을 벗어 물 위에 띄워 타고 물을 건넜다는 전설을 음악으로 담은 제2곡 '물 위를 걷는 파올라의 성 프란치스코'는, 찬가풍 선율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발밑으로 물살이 지나가는 듯한 음형이 맞물리고 조금씩 종교적 고양감을 키우며 음악적 스펙터클을 만들어 가는 짜임새가 압권인 작품입니다.

리스트: 《순례의 해》 중 두 번째 해 제7곡 '단테를 읽고: 소나타 풍 환상곡'

'단테 소나타'라고도 부르는 이 곡은 단테의 『신곡』을 음악에 담은 작품으로 빅토르 위고의 시에서 제목을 따왔다고 합니다. '악마의 음정'이라 하여 전통적으로 금기시되었던 증4도(또는 감5도) 음정과 파격적인 불협화음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지옥을 그리고, '지옥' 음형을 평화로운 느낌으로 변형해 대비시키는 짜임새로 20분 가까이 이어가며 오늘 공연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걸작입니다.

베를리오즈: 《파우스트의 겁벌》 중 실프의 춤 (리스트 편곡)

베를리오즈 《파우스트의 겁벌》(La damnation de Faust)은 파우스트가 끝내 지옥으로 끌려간다는 점에서 괴테 『파우스트』와는 내용이 조금 다른 오페라입니다. '실프의 춤'은 메피스토펠레가 파우스트를 잠재운 뒤 꿈에 마르가리타, 그러니까 괴테 소설의 '그레트헨'을 보여주고, 그동안 공기의 요정인 실프가 파우스트 주위를 돌면서 우아하게 춤추는 대목입니다. 생상스는 《동물의 사육제》 중 '코끼리'에서 '실프' 음형을 더블베이스로 연주하게끔 패러디하기도 했지요.

바그너: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사랑의 죽음 (리스트 편곡)

바그너는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영감을 받았는데, 이 책을 읽기 전과 후의 작품 세계가 결정적으로 달라질 만큼 그 영향이 컸지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그것이 표면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바그너는 비극적인 사랑 얘기 속에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담아내고자 했는데, '사랑의 죽음'은 마지막 장면으로 바그너 자신은 이 장면을 "이졸데의 변용"(Isoldes Verklärung)이라 했습니다. 이졸데가 '열반'에 이르는 마지막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파도치는 물결 속에, / 소리치는 울림 속에, / 세상 숨결 불어오는 / 우주 속에 / 빠져들어, / 가라앉아 / 나를 잊으리라 / 더없는 기쁨이여! (이졸데는 변용된 듯 브랑게네 품에서 트리스탄 몸 위로 부드럽게 쓰러진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넋을 잃고 바라본다. 마르케는 주검에 축복을 내린다. 막이 천천히 내린다.)

벨리니: 《노르마》 회상 (리스트 편곡)

리스트는 베토벤 교향곡 전곡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피아노 곡으로 편곡했지요. 그 중에는 오페라의 주요 대목을 따서 환상곡풍으로 재창작한 곡도 있는데, 리스트는 이런 작품에 회상(Réminiscences)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노르마》 회상이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으로, 무시무시한 난이도와 극적인 짜임새로 피아니스트에게 도전이 되는 작품입니다. 벨리니 원작 오페라 《노르마》 줄거리를 여기서 설명하지는 않을게요. 사랑과 배신, 갈등과 희생이 리스트의 편곡에 잘 드러나니 음악을 들으면서 상상해 보세요!

리스트: 스페인 랩소디

이 곡은 17세기 또는 그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면서 수많은 작곡가가 인용했던 '라 폴리아'(La Folia) 주제를 따온 변주곡입니다. 변주 중간에 스페인 민요풍 음형이 에피소드처럼 나오는 것이 독특합니다. 그런데 지난해 화제가 되었던 TV 드라마 《밀회》에서 이 곡이 매우 비중 있게 나온다지요. 집에 TV가 없는 저는 소문을 들은 것이 전부라 자세한 맥락은 모릅니다. 기회가 되면 언제 한번 보고 싶기는 하네요.


▲ '라 폴리아'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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