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연주회 팸플릿에 실은 작품 해설입니다. 기록 차원에서 제 블로그에도 올려 둡니다. 표기법과 내용을 일부 고쳤습니다.
윤이상, 클라리넷과 파곳, 호른, 현악오중주를 위한 8중주
Yun Isang, Octet for Clarinet/BassClarinet, Basoon, Horn, String Quintet
라디오 프랑스의 위촉으로 1978년 4월 10일 파리에서 초연되었다. 윤이상의 후기 양식이 잘 나타나는 이 작품은 동動-정靜-동動 세 부분으로 된 단악장 짜임새이며 정중동(靜中動)이라는 동아시아적 개념이 윤이상의 작곡 기법인 이른바 '중심음(Hauptton)/중심음향(Hauptklang)' 기법 속에서 잘 나타난다.
중심음 기법이란 동아시아 전통음악에서 음 하나하나가 정지되어 있지 않고 유연하게 흐르듯 변화하는 특징을 서양음악에 옮겨온 기법을 말하는데, 윤이상은 이와 관련해 동아시아 음악과 서양음악의 차이를 붓글씨와 펜글씨의 차이에 비유한 바 있고, 실제로 이 곡에서는 국악을 연상시키는 음형과 연주법 등이 나온다.
중심음이 모여 음향 덩어리를 이룬 것이 중심음향이며, 이것이 동아시아 음악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음색을 서양음악으로 재현하는 핵심 장치가 된다. 그리고 중심음향이 변화하는 핵심 원리가 바로 ‘정중동’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뵈니슈, 클라리넷 사중주
Josef Bönisch, Quartet for Clarinet
요제프 뵈니슈(1935―)는 독일 작곡가이자 플루트 연주자이다. 바이마르 콘서바토리와 라이프치히 음악대학을 졸업했고, 여러 오케스트라 및 앙상블 단원으로 활동했다. 독일 할레에 있는 헨델 콘서바토리 교수로 있으면서 실내악과 관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을 다수 작곡했다. 뵈니슈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곡가는 아니지만, 뵈니슈가 작곡한 많은 곡이 콩쿠르 지정곡으로 쓰이거나 작곡상을 받는 등 전문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뵈니슈는 어려운 현대음악이 아니라 듣기 쉬운 작품을 쓴 작곡가이다. 뵈니슈의 클라리넷 사중주는 처음 듣는 사람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곡으로, 클라리넷 여러 대가 화음을 연주할 때 들을 수 있는 음색이 특징적이다. '식물성 사운드'라고 이름 붙일 만한 담백하면서도 탱글탱글한 소리를 내는 클라리넷, 그리고 비슷한 음색으로 낮은 소리를 내는 베이스클라리넷이 어우러지는 독특한 음향은 마치 마법의 세계를 보는 듯한 신비로움을 느끼게끔 한다.
지브코비치, 하나를 위한 삼중주
Nebojša Jovan Živković, »Trio per Uno«
네보이샤 요반 지브코비치(1962―)는 세르비아 출신 작곡가이자 타악기 연주자이다. 20세기 이후로 클래식 음악계에서 보기 드물어진 '연주자 겸 작곡가'로 활동하는 지브코비치는 현존하는 가장 독특하고 표현력 있는 음악가이자 최고의 마림바/타악기 독주자로 평가받는다. 독일 만하임 음악대학과 슈투트가르트 음악대학에서 작곡, 음악 이론 및 타악기를 전공했다.
지브코비치는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미국, 일본, 대만, 한국, 남미, 러시아, 스칸디나비아 지역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타악기 연주자로서 슈투트가르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뮌헨 심포니 오케스트라, 하노버 방송교향악단, 보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오스트리아 체임버 심포니 오케스트라, 빌레펠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핀란드 투르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베오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코스타리카 국립 오케스트라, 리투아니아 국립 교향악단 등과 협연했다.
《하나를 위한 삼중주》는 타악기 삼중주곡이며 연주자 3명이 타악기 10여 가지를 연주한다. 3악장 짜임새로, 1악장과 3악장은 마치 원시적인 종교의식처럼 사납고 박진감 있으며, 2악장은 차분하고 명상적이다. '하나를 위한 삼중주'라는 제목은 3명이 연주하는 여러 타악기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 마치 한 가지 '타악기 세트'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리게끔 작곡가가 의도했음을 뜻한다.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8번 c단조
Dmitri Shostakovich, String Quartet No. 8 in c Op. 110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8번 c단조》는 1960년 작품으로 쇼스타코비치는 악보에 "파시즘과 전쟁 희상자에게 바친다"라고 썼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작품을 쓰기에 앞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드레스덴 시와 유대인 학살 현장을 러시아 정부의 요청으로 둘러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작곡가 개인의 삶을 담은 작품으로도 볼 수 있으며, 정부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어야 했던 작곡가의 삶을 돌이켜볼 때 이 주장은 강한 설득력을 얻는다. 쇼스타코비치는 훗날 이 작품과 파시즘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고, 쇼스타코비치의 친구였던 레베딘스키(Lev Lebedinsky)는 이 작품이 작곡가의 묘비명 같은 곡으로 이 당시 쇼스타코비치가 자살을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느리고 어두운 애가(哀歌) 풍이 두드러지는 이 작품은 작곡가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DSCH' 음형으로 시작하여 이 음형이 작품 전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DSCH' 음형이란 D(레)-E♭(미플렛)-C(도)-B(시) 음으로 된 음형을 가리키며, D, S, C, H를 독일어 식으로 읽으면 독일식 음이름과 각각 일치한다.) 5악장으로 되어 있으며 5개 악장이 한 악장처럼 이어서 연주된다.
헨델-할보르센, 파사칼리아 g단조
Händel-Halvorsen, Passacaglia in g
헨델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제7번 g단조 6악장 '파사칼리아'를 노르웨이 출신 작곡가이자 지휘자 요한 할보르센(1864~1935)이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이중주곡으로 고친 작품으로, 원곡보다 할보르센의 편곡이 더욱 유명하다. 헨델의 원곡은 애절하고 격정적인 선율과 화성이 하프시코드의 날카로운 음색으로 나타나는 작품이며, 할보르센은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날카로운 음색으로 원곡 느낌을 잃지 않으면서도 현악기의 매력을 잘 살리도록 편곡했다.
현악기 한 대로 두 음 이상을 동시에 연주하는 이른바 '더블 스톱'(double stop) 주법이 반복적으로 사용되었고, 이에 따라 바이올린 한 대와 비올라 한 대만으로 현악사중주와 같은 풍부한 소리를 내도록 쓰였다. 이러한 까닭에 이 작품을 연주하려면 난이도가 매우 높은 테크닉이 필요하다.
파사칼리아란 변주곡의 한 종류를 일컫는 말로 때때로 ‘샤콘느’와 혼용되기도 한다. 17세기 스페인 춤곡에서 유래했고, 주로 저음에서 반복되는 음형과 3박자 또는 부점 리듬이 특징적이다. 헨델-할보르센의 파사칼리아 이외에 널리 알려진 파사칼리아 작품으로는 바흐의 오르간을 위한 파사칼리아 c단조 BMV 582, 브람스 교향곡 4번 4악장, 베베른의 파사칼리아 등이 있다.
빌라로부스, 쇼루스 제7번
Heitor Villa-Lobos, Chôros No. 7 for winds, violin and cello
에이토르 빌라로부스(Heitor Villa-Lobos, 1887~1959)는 브라질 작곡가로, 《브라질 풍의 바흐》 연작과 《쇼루스》 연작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쇼루스'(Chôros)는 포르투갈어 '쇼루'(chôro)에서 온 말이며, '쇼루'는 '울다' 또는 '탄식하다'를 뜻하는 동시에 브라질 대중음악 양식을 가리키기도 한다. 19세기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 길거리 음악에서 유래한 쇼루는 낱말의 본디 뜻과는 다르게 빠르고 경쾌한 음악을 포함하는 기악 음악이다.
빌라로부스의 《쇼루스》 연작은 악기 편성을 달리하는 16개 작품으로 되어 있는데, 드뷔시 · 라벨 · 스트라빈스키 등의 영향과 브라질의 토속적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 《쇼루스 제7번》은 바이올린, 첼로와 목관악기 등을 위한 곡으로 흥겨운 분위기 속에 은근한 우울함이 숨어 있어 독특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