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6일 금요일

[인터뷰] 피아니스트 박종훈 ― ②

글: 김원철 · 정리: 박희은


※ 앞선 글 보기:

☞ [인터뷰] 피아니스트 박종훈 ― ①


어렸을 때 피아노 치고 놀았고, 바이올린은 싫어했어요

김원철: 어린 시절 얘기를 좀 해 보죠. 어디서 태어나셨나요?
박종훈: 태어난 건 서울이요.
김원철: 서울 어디요?
박종훈: 어느 병원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요. (웃음)
김원철: 초등학교는 어디를 나오셨나요?
박종훈: 초등학교는 저기 은평구에 예일초등학교를 나왔고요, 부모님은 아직도 그쪽에 사세요.
김원철: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그 때 기억나는 게 있어요? 어린 시절 어떻게 보냈다던가.
박종훈: 뭐 그냥 평범…했어요.
김원철: 평범? 말썽도 안 피우고? 허허허…
박종훈: 잘 뛰어놀고… 근데 다른 애들보다 피아노는 많이 쳤죠.
김원철: 피아노는 언제 시작하셨어요?
박종훈: 피아노는 아마 다섯 살 정도부터…
김원철: 입학하기 전부터 역시 시작을 하셨군요.
박종훈: 바이올린을 먼저 시작했어요.
김원철: 바이올린은 언제 시작하셨어요?
박종훈: 세살 때.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김원철: 아, 기억이 잘 안나시는군요. 그렇다면 바이올린은 역시 부모님이 시켜서…
박종훈: 그쵸. 예.
김원철: 피아노도 그랬나요?
박종훈: 피아노도 그랬겠죠. 피아노가 있었어요. 근데 피아노 앞에서 이렇게 피아노를 치면서 노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곡도 만들어보고, 다른 악보 있으면 쳐보기도 하고.
김원철: 세 살짜리가 피아노를 치기는 어려우니까 바이올린으로 단련을 시켜놓고 피아노로 유도를 하신거군요?
박종훈: 바이올린은 아무래도 작은 게 있으니까.
김원철: 부모님이 음악을 하셨나요?
박종훈: 아뇨. 부모님은 안하시고 저희 작은할아버지가 바이올리니스트셨어요.
김원철: 작은할아버지가 음악을 어렸을 때 하도록 유도를 하셨나요?
박종훈: 그랬겠죠 뭐. 저는… (웃음)
김원철: 오 그래서…
박종훈: 친할아버지는 아니고 친할아버지의 동생. 작은할아버지.
김원철: 작은할아버지에 대해서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어렸을 때 기억.
박종훈: 글쎄요, 저는 바이올린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김원철: 역시 시켜서 하면 싫어하는군요. 허허허…
박종훈: 레슨하기 싫었던 기억.
김원철: 근데 피아노는 좋아하셨고.
박종훈: 피아노는 되게 좋아했어요.
김원철: 바이올린은 안 맞고 이 피아노로 갈 운명이었군요. (웃음)
박종훈: 반대로 바이올린이 싫었기 때문에 피아노가 좋았을 수도 있죠.
김원철: 그러면은 예원을 가셨나요?
박종훈: 예원은 안 갔고요. 예고.
김원철: 중학교까지는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그렇게 가셨군요.
박종훈: 예, 저희 부모님이 되게 평범하게 키우고 싶어하셨는데, 예고는 어쩔 수 없이… 예고까지 안 가면 그건 좀 힘들것 같애서.
김원철: 예고를 갔을 때는 인제… 피아니스트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셨겠네요.
박종훈: 그럼요.
김원철: 나는 음악을 하겠다고, 직업적으로 음악을 하겠다고 처음 결심한 게 언제쯤일까요?
박종훈: 글쎄… 그거는 뭐 하고 싶다는 거는 항상 있었고… (한 동안 생각) 그때쯤이라고 봐야겠죠? 뭐 예고 갈때쯤? 아무래도 그러니까 예고를 간 거겠죠.
김원철: 음, 역시 입시가 사람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다함께: 와하하하하…

슬럼프로 힘들었던 줄리어드 유학 시절

김원철: 예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음대를 가셨어요. 그 다음에 졸업하시고 줄리어드로 가셔서 세이모르 리프킨한테 사사를 하셨는데, 거기서 뭘 배웠나요?
박종훈: 가장 줄리어드에서 배운거는 어…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 (웃음)
박희은: 하하하.
김원철: 아 그 뭐, 민감한 거는 (편집) 처리해도 되니까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박종훈: 아뇨. 그냥 열심히 하면 다 좋은데 음악을 대하는 자세라 그럴까? 근데 리프킨 선생님이 되게… 그분도 굉장히 예술가였어요. 근데 굉장히 학생한테 뭐를 강요를 하고 시키고 그런 걸 잘 안 하세요.
김원철: 어, 그런 거를 그럼 그냥 냅두는군요.
박종훈: 얘기는 많이 해주시는데, 결국은 니가 해야된다 이렇게…
다함께: 오~
박종훈: 그래서 그걸 적응을 못했어요 처음에.
박희은: 한국은 좀 시키는 편이니까요.

박종훈: 글쵸. 시키면, 막 시키면 뭔지 모르고 따라가다가 되는건데… 그래서 리프킨 선생님은 니가 알고 하는게 아니면 의미가 없고, 니가 다 해야되고, 내가 강요한다고 되는게 아니고, 그런 분이신데 그걸 제가 모르니까 첨에는. 첨에 딱 줄리어드 가서 첫 시험에서 되게 잘 쳤어요. 그래서 굉장히 그 때 성적이 굉장히 좋았는데, 그때는 이제까지 한국에서 해오던 게 남아 있었을때고, 그 다음 해에 완전히 죽을 쒔어요. 그니깐 그 1년 동안 제가 그 선생님 밑에서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발전이 없었던 거죠. 그걸 계기로 인제 좀 달라졌죠.

박희은: 그럼 그때가 약간… 일종의 슬럼프 비슷한 그런 시기였네요.
박종훈: 예. 슬럼프같이… 그래가지구 무대공포증도 생기고.
박희은: 음…
박종훈: 피아노 그만둘려고 생각도 했었었고.
박희은: 어, 극복할 수 있었던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박종훈: 계기는 없고요. 음… 굉장히 진지하게 생각했었었어요. 그래서 피아노를 그만두고 선생님한테도 얘기하고… 별 말씀 안하셨는데 그냥… 잘못된 생각이라고만 말씀하시더라고요.

줄리어드와 면도칼 괴담

김원철: 줄리어드의 교육체제를 보면 그… 경쟁, 나쁘게 말하면 경쟁지상주의.
박종훈: 예.
김원철: 살아남아야 되고. 그런 것도 영향이 있었을까요?
박종훈: 그게 그래서 그… 리프킨 선생님이 좀 다른 선생님들과 좀 달랐어요. 리프킨 선생님 원래는 커티스에서 오래 가르치신 분이고, 그쪽 분위기가 좀 더 유럽 쪽이죠. 또 이경숙 선생님도 커티스 나오신 분이고.

(미국 유학파 음악가는 보통 줄리어드 출신 아니면 커티스 음대 출신이다. 박종훈은 이경숙 선생님이 아끼던 제자.)

박종훈: 그래서 리프킨 선생님… 몇몇 다른 선생님 중에 한분이었는데, 그 경쟁… 말도 못하게 심해요. 신경전, 학생들 사이에… 옛날에는 피아노 사이에 이렇게 면도칼 숨겨놨었다는…
김원철: 허허허…
박희은: 예, 들었어요.
김원철: 그게 진짜… 소문으로만 그런 건지…
박종훈: 모르겠어요 진짠지 아닌지는… 그래서 어쨌든 그런 경쟁도 있고, 뭘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슬럼프에 빠져서 준비를 한 거 같은데, 무대만 올라가면 다 엉망이 되고… 그만두고 싶죠 그러니까.
김원철: 줄리어드를 겪어보니까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뭔 거같아요?

박종훈: 좋은 점은 역시 좋은 선생님들, 좋은 학생들이 몰려있다는 거. 그래서 자극을 받고, 퇴보할 틈이 없어요. 근데 또 지금이랑 옛날은 또 다르고, 그 옛날이랑은 제가 다닐 때랑 또 다른고 그런데… 나쁜 점은, 여유가 없어요. 굉장히 경쟁이 심하고 할 게 많고 이러다보니까 여유있게 음악을 느끼고 좀… 예술가가 될 시간이 없어요. 항상 뭘 쫓겨서 해야되고, 이겨야 되고, 점수 더 받아야 되고, 그러다 보니깐 일단은 음악인데, 예술인데 느껴야 되잖아요. 그게 먼전데 그럴 여유가 없고, 시간이 없고 정말…
박희은: 눈앞에 있는 경쟁만 보이고.
박종훈: 예. 학교 아직도 생각나는게 딱 9시에 가서… 엘리베이터가 딱 두 개가 있어요. 딱 타면 진짜 분위기가 살벌해요.
김원철: 허허허…
박종훈: 그거를 매일 느끼면서 학교를 다니는데, 게다가 좀 약간 라이벌… 그런게 있는 선생님들이 탄다든가, 학생들이 탄다든가, 그러면 분위기가 싸~해져요. 그 사람 많은 엘리베이터가.
박희은: 아하하하…
박종훈: 그래서 그걸 느끼면서 예술을 한다는게 좀… (웃음) 그런 점이 되게 안좋은 거 같아요.
박희은: 비서구권 학생들에 대해서 눈에 안 보이는 차별이라든가 그런건 없었나요? 뭐 쟤보다 얘가 분명히 더 잘 쳤는데 떨어졌다든가.

박종훈: 어… 그거는 잘 모르겠고요. 일단 줄리어드는 유대인 파워가 세기 때문에 유대인이냐 아니냐가 일단 중요하고, 유대인 선생님이냐 아니냐가 중요하고 (웃음) 그런 거 같아요. 그 쪽이 더 심해요. 그니까 동양 사람이더라도 굉장히 유대인 선생님이 아끼는 학생이면 전혀 그런 거 없어요. 동양 사람이기 때문에, 단지 그거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별로 없고, 단지 일본에서 온 학생들은 돈이 있다, 이런 인식이 좀 있어서 장학금 안 줄라 그래요. (웃음)

라자르 베르만에게 배운 것들

김원철: 줄리어드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요. 그 다음에 이탈리아로 가서 이몰라 피아노 아카데미, 여기를 나오셨군요. 라자르 베르만을 사사하셨어요. 이 대목에서 오오오~
다함께: 하하하.
김원철: 라자르 베르만 선생님 겪어보니까 어떠세요?

박종훈: 뭐 특별한 사람… 선생님으로 타고난 사람같지는 않은데, 그래서 레슨받고 실망하는 사람 되게 많아요. 자세하게 설명을 안 하는… 근데 저는 물론 학교에서도 배웠지만 굉장히 가까운데서 살았어요. 그래서 돌아가실 때까지 옆에 있었는데… 매일 매일 그거를 본다는 게 제겐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옛날에 이런 말씀 하셨는데 뭐냐면, 요새 학교가면 50분 레슨 1주일에 한 번… 1주일에 매주 한 번씩 50분씩 봐가지고 뭘 배우냐는 거죠. 근데 옛날 사람들 보면, 그 (요제프) 호프만 자서전 읽어보면 자기가 어떻게 배우는지가 나오는데, 처음에는 선생님 집에 가서 청소만 했대요. 청소하고 다른 학생들 잘하는 학생들 꺼 듣고 일 도와주고, 그러다 가~끔 레슨 한 번 받고. 그러다가 조금씩 조금씩 인정받고 수제자가 되면 확 밀어주는… 그런 과정이 결국은 도사 밑에 들어가서 도 닦는… (웃음)

김원철: 도제 시스템의 장점이 분명히 있기는 있죠.

박종훈: 근데 뭐냐면, 중요한 건 뭐냐면, 웬만큼 잘 치는 사람 100명 만드는게 목적이 아니거든요. 정말 뛰어난 연주자가 서너 명이 나오는 게, 나와야 돼요, 예술은. 그래야지 이게 천재의 계보가 이어지고 위대한 연주, 위대한 음악이 계속 태어나는건데, 근데 학교는 체계적으로 배우지만, 그니까 예술가의 삶, 생활이라는 건 별로 틈이 없어요. 그니까 그거를 대가가 있으면 대가를 옆에서 보고, 음악이라는 거는 말로 해서만 되는 게 아니라 그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근데 그거를… 그런 거를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었어요. 그래서 연주 할 때도 따라가고… 그 마지막 연주 하실 때까지… 뭐랄까, 엄청 떨고 진짜 너무너무 진지하게 준비를 하고, 솔직히 뭐 라자르 베르만 되가지고 마지막에 이제 은퇴 연주 하시는데, 어떻게 쳐도 솔직히 사람들이 좋아하잖아요. 근데 그 마지막 연주까지 한 마디 한 마디 해석을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시고, 마치 콩쿠르 준비하는 애들마냥 긴장하면서 연습을 하고, 그리고 또 무대에 나가서… 그런 거를 옆에서 이렇게 보면서 되게 많이 배운거 같아요. 말씀을 많이 하신 게 뭐냐면 그… 잘 치는 사람은 많은데 잘 전달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그니까 무대에 나가면은 자기가 준비한 걸 보여주러 나가는 게 아니고, 음악 그런걸… 자기가 느끼는걸 전달하러 나가는건데, 그걸 뭘 하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냐도 중요하잖아요. 근데 전달을 하면 이 사람은… 자기 거로만 끝나면 예술이 아니죠 그거는. 잘 아는 사람이면 책을 쓰던가 녹음을 하던가, 녹음과 연주는 또 다른거고… 그래서 그런 걸 좀 많이 배운 거 같아요.

라자르 베르만 선생님 돌아가실 때

김원철: 음, 라자르 베르만 선생님 돌아가실 때까지 있었다고 했는데, 돌아가실 때 옆에 혹시 있었나요?

박종훈: 돌아가실 때 옆에는 없었고요. 돌아가실 때는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갔는데… 어… 그참 제가… 제가 배웠지만 나이가 들고 연주 활동을 하면서 레슨 안가잖아요. 그걸 되게 섭섭하게 생각하셨어요. 선생님이 보시기에는 애지, 내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래서 오랜만에 그래서 좀 예의상… (웃음) 베토벤 연주할 게 있어가지고 들고 갔어요. 그래서 연주를 했는데, 레슨을 받았는데… 굉~장히 막 트집을 잡는 거예요.

다함께: (웃음)
박종훈: 그래서 저도 화가 나죠. 나도 이제 나이가 거의 40이 다 됐는데… 어우… 그래서 싸웠어요.
김원철: 허허허…
박종훈: 말도 안되는 걸 서로 우기면서 막 싸우고 분위기 안좋게 레슨 끝나고, 그래 내일 모레 한 번 더 듣자 그러고… 나왔는데 몸이 안좋으시다고.
김원철: 어…
박종훈: 그게 좀 아쉽, 아쉽다기보다도 좀 찜찜해요. 마지막이 그래가지고…
박희은: 선생님은 이제 자주 안 찾아오시니까 섭섭하셔서 그러셨던 건데.
박종훈: 음…

김원철: 박종훈 선생님이 보시는 피아니스트 라자르 베르만은 어떠세요?
박종훈: …솔직한 사람.
김원철: 인간 라자르 베르만이 아니라 피아니스트 라자르 베르만 연주가 어떻다…

박종훈: 그러니까 연주가 이런 거 있어요. 그러니까… 물론 굉장히 그 치밀한 면도 많이 있고 해석도 주의깊게 하고 하시지만, 무대에 올라갔을 때, 느끼는 걸 솔직하게 다 표현을 해요. 그니까 이거 이렇게 하면 너무 심할 텐데, 이런 생각을 안 하는 거죠. 그래서 사실은 나쁜 말을 듣기도 해요. 근데 머리로 해석을 하고, 가르치고, 아니면 뭐 녹음을 한다던가, 책을 쓴다던가, 그거랑 연주는 다른 거예요. 연주는 있는걸 그대로 표현을 해야지 연주지. 그니깐 굉장히 계산적인 연주를 싫어하셨어요. 계산은 물론 준비과정에서는 하고, 다 하지만, 무대에 올라가서까지 머리로 그걸 계산하고 있으면 안된다… 그런 면에서 솔직하게 연주를 하시는거죠. 지나치다 이런 얘기는 많이 들었었죠.

김원철: 그런 점에서는 폴리니랑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박종훈: 아우, 폴리니를 되게 안 좋아하셨어요. (웃음)
다함께: (웃음)

※ 이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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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피아니스트 박종훈 ―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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