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9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4일간 열리는 '조성진과 친구들' 페스티벌의 티켓이 예매 개시 당일 순식간에 매진된 일이 최근 화제가 되었습니다. 지난 2017년에 있었던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 때도 올해와 마찬가지로 1분여 만에 매진됐었고, 한발 늦게 문의 전화를 주시는 분도 많았지요.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인기가 참 대단합니다.
2017년 리사이틀에서는 조성진이 곡마다 선보인 연주법이 애호가와 전공자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기억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드뷔시 '영상'(Images) 2권 중 '잎새로 흐르는 종소리'(Cloches à travers les feuilles)입니다. 어떤 연주자는 이 곡의 '종소리'를 매우 또랑또랑하게 살리기도 하지만, 이날 조성진은 흔히 생각하는 종소리답지 않고 흐릿하게 들리게끔 했지요. '잎새로 흐르는 종소리'의 프랑스어 제목이 청자와 종 사이에 있는 나무가 종소리를 걸러낸다는 뉘앙스를 주는 까닭일 겁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2번 F장조 K. 332 연주에서는 조성진의 장식음 사용이 화제가 됐습니다. 이 곡을 연주해 보았거나 음반을 여러 차례 들어서 음 하나하나가 귀에 익은 관객은 이날 조성진의 연주에서 예상치 못한 음이나 짧은 멜로디가 때때로 나왔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을 텐데요, 19세기 이전에는 연주자가 임의로 악보에 없는 장식음을 추가해 연주하곤 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악보에 있는 음만을 연주한다는 사고방식은 19세기 중반에 나타났고, 20세기에 이것이 완전히 굳어졌다가 20세기 후반에 고음악을 재발굴하는 과정에서 장식음을 사용하려는 연주자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조성진이 모차르트 연주에 장식음을 사용했다는 것은 한때 '원전'(原典) 또는 '정격'(正格; authentic) 연주라 불렸고 요즘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또는 '역사주의 연주'라 부르는 학구적 흐름을 조성진이 일부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이 흐름은 초기에 심한 저항을 받았지만, 음악학자들이 제시하는 객관적인 증거가 쌓이면서 요즘은 고음악 전문 연주자가 아니더라도 그 성과를 일부 받아들이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조성진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를 야니크 네제세갱이 지휘한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한 음반에서도 악보에 없는 장식음이 2악장에 다채롭게 나오지요. 지난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나간 조성진이 같은 곡으로 악보에 있는 음만을 연주했던 것과 견주면 완전히 달라진 연주입니다. 그리고 조성진은 이 곡을 오는 9월 22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협연하며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지휘를 겸할 예정입니다.
장식음은 연주자가 미리 계산해서 연주하기도 하고, 그냥 즉흥적으로 연주하기도 합니다. 조성진은 이것을 어찌했는지 궁금해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 때 물어봤었습니다. 답이 그럴싸하더군요.
"(장식음을) 미리 계획하지만 연주할 때마다 상황에 맞게 변화를 준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은 피아노의 상태이고, 그래서 필라델피아에서 공연했을 때는 음반 녹음 때와는 조금 다른 장식음을 썼다. 예를 들어 스타카토 소리가 예쁘게 나지 않으면 그 대신 스케일이나 트릴을 쓰는 식이다."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자인 로버트 레빈은 음반을 녹음할 때에도 언제나 장식음을 즉흥적으로 연주하고, 협주곡의 카덴차도 즉흥적으로 연주하기로 유명합니다. 또 고음악 전문 지휘자이자 건반악기 연주자인 리처드 이가는 올 초 서울시향을 지휘 및 협연했을 때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 c단조 K. 491의 카덴차를 즉흥으로 연주했고, 장식음 사용은 물론 연주 시작에 앞서 짧은 전주를 붙이거나 악장과 악장 사이를 즉흥연주로 연결하기도 했다지요. 요즘은 콩쿠르에서 악보에 없는 장식음을 과감하게 연주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던데요.
악보에 있는 음만을 연주한다는 사고방식이 20세기에 완전히 굳어졌다고 앞서 말씀드렸지만, 이 말은 사실 틀렸습니다. 재즈와 대중음악은 즉흥성을 지켜 왔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