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3일 오후 8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지휘자: 박치용
협연자: 김영미/sop 유소영/sop 박은주/alt 송기창/bar 김현정/org
Mendelssohn - ‘Magnificat(한국초연)’ ‘Psalm42 op.42’ ‘Hör mein Bitten’
홍성지 - 〈귀천〉, 《Missa 'Lumen de Lumine'》 가운데 〈Gloria〉
박성춘 - 〈눈이 오는 밤〉, 〈바람의 시〉
※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연예술창작기금지원사업으로 기획한 국민평가단 평가 자료를 겸하는 글이며, 평가서 항목에 맞추어 썼음을 밝힙니다.
▶ 공연작품의 예술적 수월성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외국 일류 합창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합창단이 아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가장 훌륭한 합창단이라 할 수 있고, 열악한 환경까지 생각하면 이런 훌륭한 합창단이 20주년을 맞았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이날 연주회는 국내 합창단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 내에서 가장 훌륭한 연주회였으며, 박치용 지휘자의 뛰어난 역량이 돋보였다. 그러나 일부 창작곡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 공연계획 실행의 충실성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은 음향이 제법 훌륭한 연주회장이다. 그러나 홍성지 작품은 일반적인 연주회장이 아니라 잔향이 긴 성당에서 연주했더라면 좋았겠다. 멘델스존 작품도 종교곡인 만큼 잔향이 길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하며, 전자오르간 소리는 성당에서 울리는 진짜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박성춘 곡은 음악 양식이 다른 작품과 어울린다 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연주회 내내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서 짜증이 났다. 관객이 그랬으리라 믿기는 어렵고 합창단 또는 연주회장 관계자 아니면 기자였을 터인데, 합창단·연주회장 관계자라면 반성이 필요하겠고 기자였다면 감히 '기자님'을 나무라기는 어려웠을 터이니 합창단 측에 위로를 보낼 일이다.
▶ 공연성과 및 해당분야 발전에의 기여도
합창단이 자생하기 어려운 국내 환경을 고려할 때 더 많은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서울시향처럼 독립 재단 형태로 지원하는 것이 가장 좋겠으나 예술위원회 차원에서도 서울모테트합창단은 공연창작기금을 지원할 가치가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
▶ 총평
작곡가 홍성지는 서울시향이 7개 악기를 위한 〈Beethoven Frieze〉와 피아노 협주곡 〈Prismatic〉을 연주한 일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호감을 느낀다. 홍성지 작품에서는 마치 공기 속에서 빛 알갱이가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하는데, 마침 프로그램을 보니 인용해 놓은 평들이 모두 '빛'과 관련이 있다. 이날 연주된 〈귀천〉과 제목부터 빛이 나는 듯한 《Missa 'Lumen de Lumine'》 가운데 〈Gloria〉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네 곡 모두 '빛깔'은 제각각이었으며, 〈귀천〉이 무지갯빛 뿌연 알갱이가 구름 위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라면 〈Gloria〉는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들어온 빛이 요정처럼 교회 안을 날아다니는 듯했다.
〈귀천〉과 〈Gloria〉는 원래 합창곡이 아니라 각각 여성 4명과 3명이 부르도록 작곡되었으며, 음악 양식을 보면 잔향이 긴 교회 음향에 알맞다고 할 수 있다. 이날 연주회 주체가 서울모테트합창단이므로 합창단이 이 곡을 부른 일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연주회장이 교회가 아니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이었던 점은 못내 아쉽다. 이곳은 잔향 시간이 관현악곡에 알맞게 맞춰져 있어서 마치 영화관에 햇볕이 쏟아지는 듯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또 작품이 주는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에는 합창단 기량이 모자라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특히 〈귀천〉에서 여린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 대목이 답답했다. 나는 국내 합창단이 'pp'(매우 여리게)를 제대로 내는 모습을 본 일이 없는데, 〈귀천〉은 'pp'보다 더 여린 'ppp'를 정교하게 다스리지 못하면 절반은 실패한 연주라 본다.
매우 느린 템포(♪ = 80) 때문에 길어진 호흡을 합창단원들이 견디지 못하는 듯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는 있는 듯 없는 듯했고, 여린 음을 제대로 내지 못해서인지 모두쉼표(Generalpause)는 무시되었다. 곡을 끝맺는 음에서는 셈여림표가 ppp인 마당에 몇몇 사람이 중간에 숨을 쉬었다 새로 부르는 바람에 '만득이 현상'마저 나타났다.
이런 문제는 일차적으로 합창단원 개개인에게 원인이 있다 하겠으나 더 따지고 보면 결국 돈 문제, 시스템 문제다. 성악 전공자가 실력이 어느 이상 되면 합창을 하건 오페라 가수로 나서건 유럽으로 가려고 할 뿐 한국에 머무르려 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들에게 매력적인 직업이 한국에는 없기 때문이다.
〈Gloria〉에서는 여린 음과 느린 호흡보다는 리듬과 화음이 중요한 까닭에 〈귀천〉과 달리 약점이 드러나지 않고 합창단 솜씨가 돋보였다. 이 곡은 만약 14세기 교회 음악 양식이 새로운 기법을 매우 보수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중세·르네상스 양식에 현대음악 어법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데,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안정된 화음을 바탕으로 화려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장식음들을 잘 살렸으며, 이날 연주회를 통틀어 이 곡이 가장 인상 깊었다. 옥에 티 한 가지만 말하자면, 마디 52―66에서 종소리를 흉내 내도록 지시하고 있으나 이날 연주에서는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나중에 고침: 2010년 4월 26일 최종 수정. 박성춘 작품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썼으나 다음과 같은 사정으로 내용을 지웠습니다. 〈바람의 시〉 등은 서울시구립여성합창단에서 의뢰한 작품으로, 합창단에서는 대중성 있는 조성음악을 의뢰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합창 음악 수요가 매우 적은 현실을 고려할 때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창작곡이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저 또한 진심으로 공감하며, 그러한 사정을 헤아리고 나면 박성춘 작품은 흥행성 있는 작품이라고 판단됩니다.
제가 비평문을 쓸 때에는 이러한 맥락을 알지 못했으므로 음악사에 비추어 작품을 판단할 때 양식적·기법적·미학적으로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어 예술적 가치가 낮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박성춘 작품과 다른 합창 음악에 대해 판단 기준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단락 전체를 지웁니다. 다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는 이미 삭제되지 않은 전문을 전달했음을 밝힙니다.)
소프라노 김영미는 발성과 딕션이 매우 뛰어나서 반가웠다. 음색이 깊고 어두우며 이탈리아 오페라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는데, 요즘 유행하는 역사주의 연주와는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라서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고, 목소리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다면 바그너를 하면 좋겠으나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소프라노 유소영은 김영미 같은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으나 알토 박은주 목소리가 너무 작고 부드러워서 상대적으로 '강성' 이미지처럼 두드러졌다. 둘이 맡은 성부를 생각할 때 그 반대보다는 훨씬 낫다 하겠으나 좀 더 균형 있는 앙상블이 아쉬웠다.
바리톤 송기창은 묵직하면서도 맑고 단단한 목소리로 멜리스마(melisma; 모음 하나에 장식적인 음형이 길게 이어지는 선율)를 날렵하고 깔끔하게 살려서 매우 인상 깊었다. 소프라노 김영미와 마찬가지로 폭발적인 에너지는 없어서 바그너를 부르기에는 알맞지 않아 개인적으로 아쉬웠으며, 모차르트를 부르면 매우 멋질 듯했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는 이름에서 짐작게 하는 탄탄한 재정 때문인지 연주력이 웬만한 지방 시향보다 나아 보였다. 트럼펫과 팀파니가 매우 돋보였고 다른 관악기도 훌륭했다. 단점 하나만 말하자면 현악기 연주자들이 숫자에 적당히 묻어가려는 이른바 '안전빵 보잉'을 들 수 있겠는데, 이것은 한국 오케스트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