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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1일 토요일

홍성지 《Vernal Equinox》 ― TIMF 앙상블

5월 20일 (금) 저녁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건반의 변주 (Keyboard Variation)

CPE BACH_ Fantasie in C major for fortepiano H291 Wq61/6

MOZART_ Sonata for fortepiano in Bb major K333

멜빈 탄 Melvyn Tan (FortePiano)

LISZT_Mephisto Waltz No.1 S.514

김영호 Youngho Kim (Pf)

INTERMISSION

SUNGJI HONG_'Vernal Equinox' for oboe, violin, viola and cello
(Grand prize winner of the 1st SSF Composition Competition)

통영국제음악제(TIMF) 앙상블 Tongyeong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TIMF) Ensemble
김현수 Hyeon Su Kim (Cond), 임수미 Su Mi Lim (Ob), 정호진 Ho Jin Jeong (Vn), 강주이 Jui Kang (Va), 오주은 Joo Eun Oh (Vc)

SAINT-SAËNS_ Caprice-Valse 'Wedding Cake' for piano and strings op.76

김영호 Youngho Kim (Pf), 배익환 Ik-Hwan Bae (Vn), 김현아 Hyuna Kim (Vn), 김상진 Sang-Jin Kim (Va), 송영훈 Young Song (Vc), 이창형 Chang-Hyung Lee (Bass)

SMETANA_ Piano Trio in g minor Op.15

피어스 레인 Piers Lane (Pf), 엘리나 베헬레 Elina Vähälä (Vn), 조영창 Young-Chang Cho (Vc)


Vernal Equinox. '봄'을 뜻하는 라틴어 'vernalis'와 '균등한(equal) 밤(night)'을 뜻하는 라틴어 'aequinoctium'에서 온 말. 밤과 낮이 길이가 같아지는 주야평분점(Equinox) 가운데 봄에 오는 것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춘분'(春分)이다. 우리말로 하면 말맛이 달라져서 시(詩)적인 느낌이 먼저 든다. 음악을 들어보니 작곡가 홍성지도 '춘분'이라는 말 느낌을 더 살린 듯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괴로운 마음을 달래려고 이 곡을 썼다고 한다.

바이올린 등이 하모닉스 주법으로 페달 포인트(pedal point)를 길게 이어 연주하는 대목이 얼핏 말러 교향곡 1번 도입부와 비슷했지만, 곧이어 현악기를 마치 가야금이나 거문고 뜯듯 연주하는 소리가 더하니 차라리 윤이상이 생각났다. 그러나 윤이상 작품에 나타나는 이른바 '중심음 기법'(Hauptton-Technik)과도 조금 달랐다. 중심음이 딱히 '붓글씨를 닮은'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았고, 중심음을 둘러싼 음들이 이루는 음향층은 차라리 자친토 셸시(Giacinto Scelsi)를 더 닮았다. 나중에 프로그램 책자를 얻어다 읽어 보니 작곡가 스스로 '중심음'이라는 말을 썼던데, 윤이상셸시 가운데 누구를 더 의식했을까?

오보에로 같은 음을 운지법을 바꿔가며 연주하는 이른바 '음색 비브라토'는 서울시향이 홍성지에게 위촉한 피아노 협주곡에서도 쓰인 바 있다. 서울시향 연주를 들으면서는 그저 특이한 연주법을 썼구나 싶었지만, 《Vernal Equinox》에서는 윤이상을 닮은 텍스쳐(texture) 때문인지 마치 대금이나 피리를 부는 듯하기도 했다. '음색 비브라토'가 아니더라도 때때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현악기 글리산도 음형이나 한 음에서 이리저리 가지를 뻗어 나가며 얽히는 소리가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서처럼 꽃이 피고 풀이 쑥쑥 자라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동화적·마법적인 분위기에서 레드제플린 《Rain Song》이 떠오르기도 했다. 봄 느낌.

2010년 12월 16일 목요일

TIMF앙상블 〈한국작곡가의 밤〉 연주회 짧은 감상

TIMF앙상블 〈한국작곡가의 밤〉
2010년 12월 15일(수) 19:30
영산아트홀

홍성지             Tempestuous (2010) *  
이홍석             Sempre mormorando für Flöte und Klavier (2010) **  
신나라             Echo (from Scene1) (2009)  
배동진             Stille suchen für Klavier, Vibraphone und Violine (2006/07) *  
나실인             Pilgergesang für Flöte, Violine und Violoncello (2010) ***  
박용빈             3 Toccatas and 2 Interlude for Large Ensemble (2010) ***

(***TIMF앙상블 위촉 세계 초연  **세계 초연  *아시아초연)

공짜 표를 준다기에 날름 신청했는데 대부분 모르는 작곡가다. 딱 한 사람, 홍성지는 내가 연주회 ☞리뷰를 쓴 일도 있어서 익숙한 이름이다. 서울시향이 홍성지한테 위촉한 피아노 협주곡이 가장 좋았는데 이제 보니 내가 리뷰를 안 썼나 보네. 아무튼, 제목 같은 것 다 잊어버리고 팸플릿도 없이 그냥 들었다.

※ 나중에 붙임: 알고 보니 첫 곡이 홍성지 《Tempestuous》였다고 한다. 급하게 준비한 탓에 연주가 썩 잘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내가 가장 좋게 들었던 곡은 신나라 《Echo (from Scene1)》였다. 이에 따라 내용을 고쳤다.

첫 곡이 피아노 독주곡이었으니, 홍성지 《Tempestuous》였나 보다. 화음 또는 클러스터를 퍼붓는 대목이 퍼니호우(Ferneyhough)랑 비슷했으나 그보다는 조금 얌전하다 싶었다. 이런 음악은 악보를 보면 몹시 복잡하겠으나 막상 귀에 들리는 소리는 차라리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이런 곡은 크지 않은 방에서 연주하면 제법 그럴싸할지도 모르겠지만, 영산아트홀이 생각보다 커서 피아노를 마구 두드려대어도 그에 걸맞은 음량이 나오지 않는다. 차라리 근접 마이킹(miking)해서 스피커로 쏴 주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전자음악 별거 있나.

이홍석 《Sempre mormorando für Flöte und Klavier》는 웬만하면 평범한 연주법을 쓰는 얌전한 음악이어서, 현대음악 맥락을 떠나 그냥 듣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딱히 조성이 드러나지도 않고 선율이 귀에 쏙 들어온다거나 하지도 않아서 조금 지루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음악이 참 길기도 하더라. 무엇보다 얌전하기만 하고 제대로 때려 부수는 '한 방'이 없어 불만이었는데, 나중에 제목을 보니, 음… 속삭이는 음악이라는데 어쩔껴…-_-; 3악장(?)이었나, 피아노가 재즈 리듬에 저음군과 고음군이 대략 유니슨으로 연주하는 대목이 재미있었다.

신나라 《Echo (from Scene1)》는 이날 연주된 곡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으며, 홍성지 곡으로 잘못 알았다가 나중에 바로 알고 작곡가 이름을 기억해 두기로 했다. 가사를 한두 단어씩 끊어서 툭 툭 던지듯 말하는 대목은 딱히 낯설지는 않았지만, 가사가 우리말이다 보니 그 뜻에 자연스럽게 집중되며 뭔가 새롭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처음에는 음악 속에 묻혀서 잘 안 들리는 가사에 열심히 귀를 기울여야 할 듯한 강박감이 생기기도 했으나 곧이어 그럴 필요 없음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베토벤 교향곡 9번에서도 몇몇 단어만 두드러져 들릴 뿐 모든 가사를 알아들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음악학자 주대창이 한 말을 빌자면, 이 곡에서 가사는 승화적(昇華的)으로 전달된다. 이렇게 한두 단어씩 끊어지는 가사 내용은 초현실적이었고, 그에 걸맞게 살짝 헤테로포닉한(?) 음악과 맞물려 마치 숨 가쁘게 교차편집된 영화를 보는 듯했다.

배동진 《Stille suchen für Klavier, Vibraphone und Violine》는 타악기 따위를 쿵 두드렸다가 재빨리 소리를 죽였을 때, 살짝 남은 소리가 악기 울림통 속에서 울리고 연주회장을 한 바퀴 돌며 또 울리다 마침내 귀에 들리는 소리를 잘 살린 대목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나중에 제목을 보니 "Stille suchen"이라, 제목 참 잘 지었다. 곡이 끝날 무렵 비브라폰을 손으로 두드려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저음에서 고음으로 꾸준히 올라가는 대목도 재미있었다. 이날 연주된 곡 가운데 두 번째로 마음에 들었던 작품.

나실인 《Pilgergesang für Flöte, Violine und Violoncello》는 들으면서는 참 잘 쓴 곡이라 생각했지만, 어째 집에 와서 기억에 남은 게 거의 없다. 결정적인 '한 방'이 없었기 때문일까. 현을 활로 두드리고 박박 긁거나 글리산도로 왔다갔다하는 등 현 소리를 다채롭게 살린 대목이 훌륭했다.

박용빈 《3 Toccatas and 2 Interlude for Large Ensemble》는 처음에 화음 또는 클러스터 하나를 계속 물고 늘어지는 대목이 홍성지 《Tempestuous》와 비슷했으며, 이거 혹시 유행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곧이어 음악이 요란해지는 대목부터는, 귀로 듣기에는 참 좋았지만… 어째 존 애덤스랑 너무 닮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앞에 나온 화음을 가지고 변주 비슷하게 했나 싶기도 한데, 그건 악보를 봐야 알 수 있겠지. 그런데 연주 끝나고 인사할 때 보니 참 어리다. 혹시 학부생? 곡을 짜임새 있게 이끌어 가는 솜씨와 음색을 맛깔스럽게 살리는 솜씨가 매우 훌륭하던데, 기억해 두어야 할 이름이다.

2009년 10월 18일 일요일

2009.10.13. 홍성지 〈귀천〉 / 〈Gloria〉-《Missa 'Lumen de Lumine'》 etc ― 박치용 / 서울모테트합창단 /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2009년 10월 13일 오후 8시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

지휘자: 박치용
협연자: 김영미/sop 유소영/sop 박은주/alt 송기창/bar 김현정/org

Mendelssohn - ‘Magnificat(한국초연)’ ‘Psalm42 op.42’ ‘Hör mein Bitten’
홍성지 - 〈귀천〉, 《Missa 'Lumen de Lumine'》 가운데 〈Gloria〉
박성춘 - 〈눈이 오는 밤〉, 〈바람의 시〉


※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연예술창작기금지원사업으로 기획한 국민평가단 평가 자료를 겸하는 글이며, 평가서 항목에 맞추어 썼음을 밝힙니다.

▶ 공연작품의 예술적 수월성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외국 일류 합창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합창단이 아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가장 훌륭한 합창단이라 할 수 있고, 열악한 환경까지 생각하면 이런 훌륭한 합창단이 20주년을 맞았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 이날 연주회는 국내 합창단이 보여줄 수 있는 한계 내에서 가장 훌륭한 연주회였으며, 박치용 지휘자의 뛰어난 역량이 돋보였다. 그러나 일부 창작곡의 예술적 가치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 공연계획 실행의 충실성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은 음향이 제법 훌륭한 연주회장이다. 그러나 홍성지 작품은 일반적인 연주회장이 아니라 잔향이 긴 성당에서 연주했더라면 좋았겠다. 멘델스존 작품도 종교곡인 만큼 잔향이 길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하며, 전자오르간 소리는 성당에서 울리는 진짜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박성춘 곡은 음악 양식이 다른 작품과 어울린다 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연주회 내내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서 짜증이 났다. 관객이 그랬으리라 믿기는 어렵고 합창단 또는 연주회장 관계자 아니면 기자였을 터인데, 합창단·연주회장 관계자라면 반성이 필요하겠고 기자였다면 감히 '기자님'을 나무라기는 어려웠을 터이니 합창단 측에 위로를 보낼 일이다.

▶ 공연성과 및 해당분야 발전에의 기여도

합창단이 자생하기 어려운 국내 환경을 고려할 때 더 많은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 서울시향처럼 독립 재단 형태로 지원하는 것이 가장 좋겠으나 예술위원회 차원에서도 서울모테트합창단은 공연창작기금을 지원할 가치가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

▶ 총평

작곡가 홍성지는 서울시향이 7개 악기를 위한 〈Beethoven Frieze〉와 피아노 협주곡 〈Prismatic〉을 연주한 일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호감을 느낀다. 홍성지 작품에서는 마치 공기 속에서 빛 알갱이가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하는데, 마침 프로그램을 보니 인용해 놓은 평들이 모두 '빛'과 관련이 있다. 이날 연주된 〈귀천〉과 제목부터 빛이 나는 듯한 《Missa 'Lumen de Lumine'》 가운데 〈Gloria〉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네 곡 모두 '빛깔'은 제각각이었으며, 〈귀천〉이 무지갯빛 뿌연 알갱이가 구름 위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라면 〈Gloria〉는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뚫고 들어온 빛이 요정처럼 교회 안을 날아다니는 듯했다.

〈귀천〉과 〈Gloria〉는 원래 합창곡이 아니라 각각 여성 4명과 3명이 부르도록 작곡되었으며, 음악 양식을 보면 잔향이 긴 교회 음향에 알맞다고 할 수 있다. 이날 연주회 주체가 서울모테트합창단이므로 합창단이 이 곡을 부른 일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연주회장이 교회가 아니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이었던 점은 못내 아쉽다. 이곳은 잔향 시간이 관현악곡에 알맞게 맞춰져 있어서 마치 영화관에 햇볕이 쏟아지는 듯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또 작품이 주는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에는 합창단 기량이 모자라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특히 〈귀천〉에서 여린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 대목이 답답했다. 나는 국내 합창단이 'pp'(매우 여리게)를 제대로 내는 모습을 본 일이 없는데, 〈귀천〉은 'pp'보다 더 여린 'ppp'를 정교하게 다스리지 못하면 절반은 실패한 연주라 본다.

매우 느린 템포(♪ = 80) 때문에 길어진 호흡을 합창단원들이 견디지 못하는 듯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는 있는 듯 없는 듯했고, 여린 음을 제대로 내지 못해서인지 모두쉼표(Generalpause)는 무시되었다. 곡을 끝맺는 음에서는 셈여림표가 ppp인 마당에 몇몇 사람이 중간에 숨을 쉬었다 새로 부르는 바람에 '만득이 현상'마저 나타났다.

이런 문제는 일차적으로 합창단원 개개인에게 원인이 있다 하겠으나 더 따지고 보면 결국 돈 문제, 시스템 문제다. 성악 전공자가 실력이 어느 이상 되면 합창을 하건 오페라 가수로 나서건 유럽으로 가려고 할 뿐 한국에 머무르려 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들에게 매력적인 직업이 한국에는 없기 때문이다.

〈Gloria〉에서는 여린 음과 느린 호흡보다는 리듬과 화음이 중요한 까닭에 〈귀천〉과 달리 약점이 드러나지 않고 합창단 솜씨가 돋보였다. 이 곡은 만약 14세기 교회 음악 양식이 새로운 기법을 매우 보수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만큼 중세·르네상스 양식에 현대음악 어법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데, 서울모테트합창단은 안정된 화음을 바탕으로 화려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장식음들을 잘 살렸으며, 이날 연주회를 통틀어 이 곡이 가장 인상 깊었다. 옥에 티 한 가지만 말하자면, 마디 52―66에서 종소리를 흉내 내도록 지시하고 있으나 이날 연주에서는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나중에 고침: 2010년 4월 26일 최종 수정. 박성춘 작품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썼으나 다음과 같은 사정으로 내용을 지웠습니다. 〈바람의 시〉 등은 서울시구립여성합창단에서 의뢰한 작품으로, 합창단에서는 대중성 있는 조성음악을 의뢰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합창 음악 수요가 매우 적은 현실을 고려할 때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창작곡이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저 또한 진심으로 공감하며, 그러한 사정을 헤아리고 나면 박성춘 작품은 흥행성 있는 작품이라고 판단됩니다.

제가 비평문을 쓸 때에는 이러한 맥락을 알지 못했으므로 음악사에 비추어 작품을 판단할 때 양식적·기법적·미학적으로 그다지 새로운 것이 없어 예술적 가치가 낮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박성춘 작품과 다른 합창 음악에 대해 판단 기준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단락 전체를 지웁니다. 다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는 이미 삭제되지 않은 전문을 전달했음을 밝힙니다.)

소프라노 김영미는 발성과 딕션이 매우 뛰어나서 반가웠다. 음색이 깊고 어두우며 이탈리아 오페라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였는데, 요즘 유행하는 역사주의 연주와는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라서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고, 목소리에 폭발적인 에너지를 담아낼 수 있다면 바그너를 하면 좋겠으나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소프라노 유소영은 김영미 같은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으나 알토 박은주 목소리가 너무 작고 부드러워서 상대적으로 '강성' 이미지처럼 두드러졌다. 둘이 맡은 성부를 생각할 때 그 반대보다는 훨씬 낫다 하겠으나 좀 더 균형 있는 앙상블이 아쉬웠다.

바리톤 송기창은 묵직하면서도 맑고 단단한 목소리로 멜리스마(melisma; 모음 하나에 장식적인 음형이 길게 이어지는 선율)를 날렵하고 깔끔하게 살려서 매우 인상 깊었다. 소프라노 김영미와 마찬가지로 폭발적인 에너지는 없어서 바그너를 부르기에는 알맞지 않아 개인적으로 아쉬웠으며, 모차르트를 부르면 매우 멋질 듯했다.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는 이름에서 짐작게 하는 탄탄한 재정 때문인지 연주력이 웬만한 지방 시향보다 나아 보였다. 트럼펫과 팀파니가 매우 돋보였고 다른 관악기도 훌륭했다. 단점 하나만 말하자면 현악기 연주자들이 숫자에 적당히 묻어가려는 이른바 '안전빵 보잉'을 들 수 있겠는데, 이것은 한국 오케스트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다.

2009년 8월 19일 수요일

2006.10.17.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 色다른 베토벤

LG 생활건강과 함께하는 서울시향 정기연주회 진은숙의 Different Beethoven
2006년 10월 17일 (화)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P.D.Q. 바흐/ P. 시켈레, <음악 감상의 새로운 지평>
J. 티엔슈, ‘오보(또는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 샘플러/테이프를 위한 <베토벤의 무덤>’
홍성지, 7개의 악기를 위한 <베토벤 프리즈>
브레트 딘, <전원 교향곡>
M. 카헬, <루드비히 반> (영상물 상연)
 
뤼디거 본(Rüdiger Bohn) 지휘



베토벤은 흔히 고전주의 양식을 완성하고 낭만주의 시대를 열어젖힌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음악은 후대 작곡가들에게 경전과도 같았지만, 동시에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 되었다. 음악학자 달하우스(Karl Dahlhaus)는 특히 베토벤 이후의 교향곡의 역사는 "단계적인 진화의 과정이 아니라" "각각의 주요 작품들이 베토벤이라는 단 하나의 중심축과 직접적인 연관을 가질 뿐"이라 했다. 이 주장은 물론 20세기 이후의 음악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色다른 베토벤>에서 소개된 작품들은 베토벤을 단지 하나의 소재로써 각자의 방식으로 '발칙하게' 다루었다.
 
시켈레(Peter Schickele), 또는 그가 내세운 P.D.Q. 바흐라는 가공의 인물의 작품 <음악 감상의 새로운 지평 New Horizons in Music Appreciation>은 베토벤 교향곡 제5번 C단조에 TV 개그 프로에나 어울릴 법한 해설을 덧붙인, 음악이라기보다는 행위예술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개그맨 강성범이 나와서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연주회 실황 영상이 나오는 동안 스포츠 중계를 하듯 코믹한 해설을 덧붙였다. 만약 시켈레의 의도가 베토벤의 음악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대하려는 사람들의 태도를 비웃는 것이었다면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이런 식의 '스포츠 중계 음악 해설'이 TV 쇼 프로그램에 고정적으로 등장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음악을 학구적으로 대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지겠지만, 클래식 음악이 어렵고 따분한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당의정 효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학술적인 내용마저도 쇼 프로그램의 외형을 가지는 것이 요즘의 세태가 아니던가!
 
티엔슈(Jukka Tiensuu)의 <베토벤의 무덤 Tombeau de Beethoven>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연극에 가깝다는 점에서 시켈레의 작품과 통했다. 베토벤이라는 소재를 다소 코믹하게 다루었다는 점도 비슷했다. 피아노 주자는 무대에 불이 들어오기 전에 입장하여 세 번의 발구름 소리를 냈고, 이어서 스피커를 통해 베토벤의 교향곡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첼로 주자가 연습 시간에 지각한 오케스트라 단원, 또는 수업에 늦은 학생처럼 헐레벌떡 첼로를 들고 입장했다. 그리고 오보에 주자는 공주병 환자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맨 마지막에 등장했다. 그리고 스피커와 세 명의 연주자가 교대로 또는 엉성한 앙상블을 이루어 베토벤의 여러 작품을 단편적으로 연주했다. 연주자들은 음악으로 만담을 나누는 듯했으며, 첼로 주자가 베토벤 교향곡 5번의 피날레 부분을 뽐내며 연주하는 동안 나머지 연주자가 가까이 다가와 손가락질하며 웃는 등의 행동을 하기도 했다.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과는 달리 티엔슈의 <베토벤의 무덤>은 추모하는 방식이 너무 가볍다. 거인 베토벤이 아닌 인간 베토벤을 추모하려는 뜻이었다고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그것이 바로 현대 사회가 베토벤을 소비하는 방식이라고?
 
홍성지의 <베토벤 프리즈 Beethoven Frieze>는 클림트의 그림에서 제목과 아이디어를 가져온 작품이다. 클림트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홍성지는 클림트의 그림을 소재로 작곡을 했다. 그래서 이 곡의 내적 구조는 베토벤을 닮았지만, 외적 음향은 클림트를 닮았다. 하프의 투명한 울림이 현악기 및 목관악기의 길게 여운을 주는 소리와 어우러져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으며, 클림트의 그림 가운데 '적대적인 힘' 부분에 대응하는 악곡의 중간 부분에서도 베이스 클라리넷의 저음이 텍스처의 무게중심을 차지하여 전체 악곡에 일관된 '식물성 음향'을 유지했다. 클림트가 베토벤의 교향곡에 세기말적 퇴폐성을 담았다면, 홍성지는 클림트의 그림에 마치 요정의 마을에 온 듯한 신비감을 담았다. 예술가의 시선에 따라 결과는 이렇게 달라지는 것인가 보다.
 
브레트 딘(Brett Dean)의 <전원 교향곡 Pastoral Symphony>은 베토벤의 교향곡 제6번 "전원"과는 달리 파괴되어가는 현대의 전원을 표현하고 있다. 프로그램에 나타난 작곡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찬란한 새 소리, 그것이 직면한 위협, 손실, 모두가 사라진 뒤에 우리에게 남겨진 영혼 없는 소음을 다룬 것이다." 몸살을 앓는 자연을 새가 겪는 위협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와 닮았다. 샘플링된 새 소리는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가" 애처로운 울음이 되고,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울음은 점점 절규로 변한다. 성북동 비둘기는 그나마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鄕愁)를 느끼"는 여유라도 가지지만, 브레트 딘의 새들은 총포처럼 쏟아지는 각종 타악기 소리에 당장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 사람들은 문명에 익숙해져 새들의 고통에는 무관심하며, 단지 일그러진 재즈 리듬에 흥이 날 따름이다. 그러나 인간의 오만함은 결국 인간의 목숨마저도 위협하는 법. 타악기 소리가 다른 악기들을 압도해 나가다가 곡이 끝날 무렵에는 새 소리 대신 심판의 날에 나타날 법한 양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마침내 거대한 폭발이 곡을 마무리한다. 이런 식의 경종이 회색빛 빌딩과 회색빛 하늘에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서울 시민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까. 2006년의 서울에는 1968년의 서울이나 2000년의 오스트레일리아에 살았을 새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공원에서 과자 부스러기나 주워 먹는 '닭둘기'들만이 있을 뿐이다. 한편, 무거운 메시지를 떨쳐버리고 나면 타악기와 약음기를 낀 트럼펫 등을 앞세운 자극적인 음색이 독특한 매력을 준다.
 
카헬(Mauricio Kagel)의 <루드비히 반 Ludwig van>은 현대에 살아서 나타난 베토벤의 시선을 담은 1970년 작 영화다. 배경에 깔린 음악들은 엽기적인 편곡으로 유명한 유리 케인(Uri Caine) 앙상블의 연주 같았는데, 잔뜩 뒤틀린 베토벤의 음악이 냉소적인 영상과 어울려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 감독의 영화처럼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신발 속의 돌과 같은" 불편함은 베토벤의 집을 복원한 설치 작품에서는 보고 있기 끔찍한 것이 되었고(이때부터 관객들은 하나둘씩 연주회장을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절정은 욕조에 가득한 베토벤의 석고 두상을 하나씩 꺼내는 장면이었다. 물에 부풀어 나병 환자처럼 문드러진 석고상을 하나씩 꺼내는 장면이 끔찍하도록 지겹게 이어지는 동안 흘러나온 음악은 역설적이게도 바이올린 곡으로 편곡된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0번 3악장(Andante, molto cantabile ed espressivo)이었다.
 
연주자의 몸에 여러 가지 기록장치를 달아 실험하는 장면에서는 실제 기록장치 대신에 조악하고 우스꽝스러운 모형을 사용하여 예술에 과학의 메스를 들이대는 것에 대해 신경질적인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음악학도인 나로서는 이에 대해 반론을 펴고 싶은 유혹을 떨칠 수 없다. 누구나 자신만의 개똥철학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음악을 이루는 여러 부분이 나누어 생각될 수 있으며 다른 부분과 비교될 수도 있다. 시켈레는 베토벤 교향곡 5번의 저 유명한 모티프를 작품 자체로부터 "떼어내어" 기업이 마케팅에 사용하는 오디오-로고와 "비교"했으며, 전체 교향곡이 그 모티프로부터 나왔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시켈레는 베토벤 교향곡 5번을 "분석"한 것이다. 음악학자 김연은 "음악분석은 하나의 완성된 음악작품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보다 단순한 부분들을 나누어보고 그 관계들을 연구하는 일"이라 했다. 또 그로브 음악 사전에 따르면, "음악분석의 대상은 그것이 악보인지, 또는 악보가 지시하는 소리의 심상인지, 작곡가가 떠올렸던 소리의 심상인지, 해석을 바탕으로 한 연주인지, 또는 청취자가 연주를 들으면서 가지는 일시적 경험인지 결정되어야 한다. 이 모든 범주들이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음악과 관련된 모든 것은 분석될 수 있으며, 분석된 결과를 음악 자체와 혼동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음악을 더욱 다채롭게 이해하고 즐기는데 큰 도움이 된다. '오프사이드'가 무엇인지 몰라도 축구 경기를 즐겁게 볼 수는 있지만, 각종 축구 용어와 규칙, 경기에 참가한 선수와 감독의 면면을 이해하는 사람은 축구의 묘미를 더욱 잘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섯 명의 작곡가들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냈고, 나도 여기에 글로써 내 목소리를 보탰다. 다른 관점은 대상의 색다른 면을 알 수 있게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을 보기 위해 기존의 것으로부터 눈을 돌릴 수 있는 열린 자세다. 당신은 색다른 경험을 할 준비가 되었는가?

2006년 10월 28일 씀.
2006년 10월 30일 고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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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철. 2006.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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