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즉흥곡 c단조 D. 899 No. 1
슈베르트는 죽기 한 해 앞서 즉흥곡(Impromptu)이라는 이름으로 피아노 독주곡을 8곡 썼습니다. 그 가운데 4곡은 생전에 출판되었는데, c단조 즉흥곡은 그 가운데 첫 곡입니다. 변주곡으로 볼 수 있는 짜임새이지만, 일반적인 기악 변주곡과 달리 마치 유절 가곡 같은 선율을 성악적으로 변형시키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런가 하면 중간에 소나타 형식의 '발전부'와 비슷한 짜임새가 있기도 하지요. 또 슈베르트가 이 곡에서 '노래'를 반복하고 변형시키며 고독을 씹는 방식은 바로 뒤에 설명할 독특한 작곡 기법을 예견하게 합니다.
현악오중주 C장조 D. 956
"그러나 그것은 반복이 아니라 다시 반복되면서 앞의 기억들이 증폭되는 감정의 순환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재현부에 이르면 주제는 선율이 아니라 계속적인 반복을 통해 또 다른 생성을 향해 나아간다. 이는 마치 숫자 1이 1을 만나 2가 되는 것이 아니라 1이 자가증식을 통해 2가 되는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 그것들이 반복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자학하고 싶지도 않고, 스스로를 값싸게 위로하고 싶지도 않게 된다. 다만 조용히 그의 외로움에 동참하고 싶어질 뿐이다."
음악칼럼니스트 이정엽은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B♭장조 D. 960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반복되는 '기억'으로 음악을 이끌어 가는 기법은 슈베르트가 마지막으로 남긴 걸작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지요. 이것이 피아노 소나타 D. 960에서 "고독의 자가증식"(이정엽)으로 나타난다면, 현악오중주 D. 956에서는 삶에 대한 '갈망의 자가증식'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두 작품 모두 슈베르트가 죽기 두 달 전에 쓴 걸작입니다.
'기억'은 반복될 때마다 다른 빛깔로 변화합니다. 그리고 비음악적 요소인 '기억'이 조바꿈과 화성 진행을 매개하면서 전통적인 음악 어법과 궤를 달리하는 파격이 나타납니다. 이 글에서 이론적인 내용을 자세히 쓸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기억'이 변화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일이 이 곡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씀은 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1악장은 길게 늘어지는 C장조 으뜸화음으로 시작합니다. 딱히 귀에 들어오는 선율과 리듬이 없어서 얼핏 도입부로 착각할 만한데, 사실은 이것이 제1 주제예요. 소나타 형식의 경과구가 나와야 할 자리에는 마치 도입부에 이어지는 제1 주제 같은 음형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경과구에 마땅히 일어나야 할 조바꿈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짜 제1 주제'이자 '가짜 경과구'이지요. 이처럼 제1 주제가 이상한 방식으로 무력화되어 있습니다.
▲ 1악장 제2 주제
제2 주제는 본디 C장조의 딸림조인 G장조라야 소나타 형식 논리에 맞지만, 여기서는 E♭장조로 나옵니다. 전통적으로 거룩한 음악에 쓰이던 조성이지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자인 파울 바두라스코다는 이 주제와 함께 반복되는 '기억'을 "평화의 환영"으로 풀이합니다. 그리고 종결구에 슬쩍 나왔던 음형이 발전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요주제가 아닌 것을 발전부에 활용하는 기법은 베토벤의 음악 어법을 슈베르트식으로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이곳에서 '기억'은 '평화의 환영'을 갈가리 찢어버립니다.
2악장에서는 아름다운 선율과 평화로운 화음이 이어집니다. 바두라스코다는 이것을 '별이 빛나는 밤 천상의 환영'으로 풀이했는데, 또 어찌 들으면 이것은 슬픔이 극한에 이르러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에서 떠올린 행복한 옛 기억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조바꿈과 함께 목놓아 울부짖는 듯한 선율이 나타났다가 되돌아 왔을 때, 행복했던 추억은 또 다른 빛깔이 되어 있습니다.
3악장에서는 강렬한 화음으로 박박 긁어대는 현이 마치 1980년대 록 음악처럼 느껴집니다. 이 곡은 특이하게도 현악사중주에 첼로가 더해진 편성이지요. 그렇게 첼로를 둘로 늘림으로써 강력해진 저음이 이곳에서 과격한 음향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조바꿈과 함께 템포가 느려지면서 폭력적인 '기억'에서 잠시 멀어졌다 되돌아오는 짜임새는 2악장과 거울상처럼 닮았습니다.
4악장은 헝가리풍 춤곡 선율을 저음 현이 마치 기괴한 왈츠처럼 받아치는 주제가 특징적입니다. 바두라스코다는 이것을 '목숨을 건 발구름'으로 풀이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삐 풀린 스케르초 뒤에 달리 무엇이 올 수 있을까?" 이것이 코다에 이르면 자꾸만 빨라지는 템포와 더불어 3악장보다 더한 '악마의 쾌(快)'가 됩니다. 이쯤 되면 슈베르트야말로 '헤비메탈의 아버지'라 할 만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