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글 쓰신 분과 달리, 저는 엘자 역을 맡은 서선영 씨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물론 정통 바그너 가수와는 다른 이탈리아 오페라스러운 발성이었고, 딕션 등 문제 삼을 곳도 많았지만, 그걸 감안해도 훌륭했다고 생각해요. 엘자 역이 바그너 작품치고는 이탈리아 오페라스러운 데가 있다는 다른 분의 반론에 더해서, 저는 사실 예전부터 서선영 씨 목소리가 바그너를 해야 할 목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그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했고, 서선영이 부르는 '이졸데'를 듣고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졸데라는 '캐릭터'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 여성인데, 그런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바그너를 할 만큼 묵직한 목소리이면서 부드럽고 여린 목소리를 기막히게 낼 수도 있는 가수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사실은 제가 예전에 말러 교향곡 4번을 협연할 가수를 찾다가 원하는 가수가 모조리 일정이 안 맞아서, 서선영 씨를 후보로 고려한 적도 있습니다. 그 당시 대표님께 보낸 이메일을 보니 '이졸데에 어울리는 목소리'라는 평가를 그때도 했었네요. 그래도 말러 4번을 하려면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이번 공연에서 그 가능성까지 확인했습니다. 정통적인 해석과는 거리가 있을지라도 말이 안 되는 선택은 아니겠다고요.
그리고 김석철 씨. 역시 옛날부터 바그너를 해야 할 목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김석철 씨를 처음 알게 된 게 2009년 TIMF앙상블의 말러 《대지의 노래》 공연 때였는데, 쇤베르크와 라이너 린이 소편성으로 편곡한 판본을 협연했죠. 그때 블로그에 뭐라고 썼지 싶은데 찾을 수가 없네요. 기억에 의존해서 당시 느낌을 되살리자면, 탁월한 바그너 가수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컨트롤'에 문제가 있더라,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 그 단점을 제대로 극복한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이 정도면 십수 년 안에 바이로이트에서 한국인 지크프리트를 볼 날을 기대해도 좋겠다 싶을 정도. 십수 년을 내다본 것은 바이로이트 시스템과 한국인 페널티를 고려해서입니다. 사무엘 윤 선생이 바이로이트에 진출했을 때도 십수 년을 내다보고 '예언질'을 했었는데, 행운이 따라서 그보다 일찍 거물이 되셨죠.
쓰는 김에 생각난 것 하나. 3막 간주곡(사열식 장면)에 나오는 브라스 대폭발을 오프스테이지 밴드로 처리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적 사실감을 높이려면 그게 옳을 수도 있겠지만, 음악적으로는 그게 아니라고요. 결혼식 합창 때도 그렇고, 백스테에지에서 지휘자 예비박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되었는지(비디오 카메라가 있었을 텐데 이상합니다) 자꾸만 박자가 어긋난 문제도 있었지만, 그보다 간주곡 때는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듣자 하니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악장과 금관 연주자 등을 데려왔다는 모양이던데
생각난 김에, 나님 경기필에 있으면서 이거 공연에 올릴 때 금관 (객원) 화력이 절망적인 수준이었던 것을 구자범 샘이 마지막 순간까지 연주자들을 집.요.하.게. 괴롭혀서 그나마 들어줄 만한 수준으로 만들어 놓은 현장:
여기까지만 씁니다. 연출 얘기는 안 할게요. 좋았다는 얘기 다른 분들이 많이들 했으니까요. 아참, 저는 마지막 날 공연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