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웹진에 실은 글입니다.
원문: http://g-phil.kr/?p=1429
▶ 사랑의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쳄린스키
인어공주는 왜 사람이 되려고 했을까요? 사랑 때문이라면 마녀를 찾아갔을 때 다른 것을 부탁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안데르센이 쓴 원작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인어공주가 참말로 원했던 것은 영혼이기 때문이랍니다.
구자범 지휘자 선생님은 쳄린스키가 교향시 《인어공주》를 쓰면서 '영혼' 얘기를 음악에 담았다고 생각해요. 쳄린스키는 알마 쉰들러를 짝사랑했지만, 알마는 구스타프 말러와 결혼했죠. 그런데 '알마'(Alma)는 스페인어 또는 옛 이탈리아어로 '영혼'이라는 뜻이래요. 라틴어 '아니마'(anima)에서 온 말이고요.
그러니까 영혼을 갈구하는 인어공주는 알마('영혼')를 사랑했던 쳄린스키 자신과 닮알습니다. 끝내 영혼을 얻게 되는 인어공주처럼, 쳄린스키도 끝내 알마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작품을 썼던 것이지요.
원작에 나오는 영혼 이야기가 잘 기억나지 않으세요? 이참에 진짜 줄거리를 제대로 알아 볼까요?
바닷속 왕국에서 살던 인어공주는 언니들에게 말로만 듣던 물밖 세상을 동경해요. 그리고 15살 생일을 맞아 드디어 물밖으로 나옵니다. 물위에 배가 떠있고 사람들이 춤추고 불꽃놀이도 해요. 사람들 가운데 왕자님이 가장 멋져요. 그런데 밤이 되면서 폭풍이 몰아치고, 왕자님은 물에 빠져 죽어가고, 인어공주가 왕자님을 구해서 바닷가로 데려가요. 그리고 가까운 신전에서 온 아가씨가 나타날 때까지 왕자님을 지켜 봐요. 정신을 잃은 왕자님은 그때까지 인어공주를 보지 못해요.
인어공주는 할머니를 찾아가, 사람들은 물에 빠지지만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느냐고 여쭈어요. 할머니는 이렇게 말해요. 300년을 사는 인어와 달리 사람은 훨씬 일찍 죽어요. 그런데 인어는 죽으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지만, 사람은 죽으면 영혼이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아요.
인어는 왕자를 그리워하고 사람의 영혼을 부러워한 나머지 마녀를 찾아가요. 그리고 인어 꼬리를 사람 다리로 만들어 주는 약을 얻는 대신 혀를 잘라 주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어요. 마녀는 이렇게 경고해요. 사람이 되면 다시는 바다로 돌아올 수 없어요. 약을 마시면 다리가 생겨서 누구보다도 멋진 춤을 출 수 있지만, 걸을 때마다 칼에 꿰뚫리는 듯한 고통이 뒤따라요. 영혼을 얻으려면 진실한 사랑을 찾아 입맞춤을 하고, 사랑을 얻고, 그 사람과 결혼해야 해요. 그러면 그 사람의 영혼 일부가 인어공주에게 흘러들어가요. 만약 그 사람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다음날 아침 해뜰 무렵 인어공주는 죽어서 물거품이 돼요.
인어공주는 약을 마시고 다리를 얻어 왕자를 만나요. 왕자는 인어공주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인어공주는 고통을 참고 왕자와 춤춰요. 그러나 왕자의 아버지는 왕자한테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하라고 말해요. 왕자는 처음에는 내켜하지 않지만, 물에 빠졌다가 깨어났을 때 만났던 여자가 그 공주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바꿔요.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요. 인어공주는 절망에 빠져 동트기를 기다려요. 그때 인어공주의 다섯 언니가 찾아와 이렇게 말해요. 다섯 언니는 마녀를 찾아가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잘라 주고 마법이 깃든 칼을 얻었어요. 인어공주가 그 칼로 왕자를 찔러 죽이고 피를 다리에 적시면 다시 인어가 되어 바다로 돌아갈 수 있어요.
인어공주는 끝내 왕자를 죽이지 못하고 바다에 몸을 던져 물거품이 돼요. 그런데 인어공주는 여전히 밝은 햇살을 볼 수 있었어요. 햇살 사이를 투명한 모양으로 떠다니는 공기의 딸들(Luftens Døttre; daughters of air)이 어리둥절해 하는 인어공주에게 이렇게 말해줘요. 인어공주는 영혼을 얻고자 온 마음을 다 바쳐 노력했기 때문에 공기의 딸이 되었어요. 앞으로 300년 동안 착한 일을 하면 영혼을 얻어 하늘나라에 갈 수 있지요. 그리고 착한 아이를 찾을 때마다 영혼을 얻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한 해씩 줄어들고, 나쁜 아이를 만날 때마다 흘려야 하는 눈물 한 방울에 하루씩 기간이 늘어난답니다.
▶ 청년 말러가 좌절을 딛고 일어선 이야기
쳄린스키가 그토록 원했던 '알마'라는 여인은 다름 아닌 말러와 결혼했습니다. 말러는 마흔이 넘어서 꽃다운 알마와 결혼한 행운아였지만, 그런 말러도 쳄린스키 나이 때에는 실연으로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교향곡 1번에는 그런 경험이 녹아 있지요.
구자범 지휘자 선생님께서 어떤 모임에서 말러 교향곡 1번에 관해 강연을 해주신 일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쉽게 간추려서 제가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릴게요. 교향곡 1번은 말러가 직접 가사를 쓴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라는 연가곡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말러는 교향곡 1번 악장마다 표제를 붙였다가 없애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도 있습니다.
제1악장 : 동틀 무렵,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풍경처럼 몸 속 깊은 곳까지 시원해지는 오스트리아의 산과 들이 보입니다. (악보에는 "자연의 소리처럼"이라는 나타냄말이 있습니다.)
뻐꾸기 소리가 들리고, 꽃들이 노래하고, 멀리서 기상나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때 트럼펫이 무대 밖에서 연주합니다. 그리고 좀 있다가 조용히 무대에 입장하지요. 연주에 지각한 사람이 아니니 오해하지는 마세요.)
청년 말러가 나타납니다. 이때 말러의 연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가운데 "아침 들판을 걸었네"에 쓰였던 선율이 나옵니다. 풀잎에 이슬이 반짝이고 새들과 초롱꽃이 "안녕하세요! 아름다운 세상이에요!"하고 인사하는 그곳에서 청년 말러는 사랑을 잃고 홀로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이제 나의 행복이 다시 올까? 아니! 아니! 다시는 내게 행복이 꽃피지 않으리!"
그러나 찬란한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것을 본 말러는 새로운 희망을 얻습니다. 이제 그 여인을 잊을 수 있을 듯합니다. 가슴을 활짝 펴고, 산을 내려가자! 뛰자! 뛰자!
2악장 : 랜틀러(ländler)라는 형식의 춤곡입니다. '땅'을 뜻하는 영어 'land'와 말뿌리가 같지요. 시골 사람들이 춤추며 즐기는 장면입니다. 오늘은 결혼식이 있는 날. 산에서 마을로 내려온 청년 말러는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사내와 혼례를 올리는 모습을 보며 또다시 가슴 아파합니다.
호른 소리와 함께 청년 말러의 추억이 현실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미뉴엣과 짝을 이루는 '트리오'(Trio)입니다. 여기서는 '랜틀러'와 짝이지요.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 사랑에 빠져 행복했던 추억이 절로 떠오르는 음악입니다. 이윽고 호른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한 현실이 되돌아옵니다.
3악장 : 청년 말러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더블베이스가 약음기를 끼고 괴상망측한 음색으로 흐느낍니다. 그런데 선율이 어째 익숙하지요? "자크 수사님"(Frère Jacques)이라는 동요입니다. 독일어권에서는 "마르틴 수사님"(Bruder Martin)이고, 영어권에서는 "요한 수사님"(Brother John)이지요. "아 유 슬리핑, 아 유 슬리핑" 하는 영어 가사를 기억하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말러는 이 유명한 동요를 교향곡에 쓰면서 선율과 리듬과 음색을 고약하게 비틀어 놨습니다. 즐겁게 놀 때 부르는 노래를 장송행진곡처럼 만들다니, 지독한 반어법이지요. 이 선율을 오케스트라가 부풀립니다. 이때 악보에는 "뻔뻔하게"(Keck) 같은 괴상한 나타냄말이 나옵니다.
이렇게 일그러진 동요 선율이 흘러 서글픈 음악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싸구려 길거리 음악, 서커스 광고, '뽕짝'(?) 음악이 끼어듭니다. 청년 말러의 의식세계가 현실과 뒤섞이고, 뒤틀리고, 일그러지는 대목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절망에 빠져서 방황하는데 마침 길거리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요.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자~ 애들은 가라!" "기임~밥!" 청년 말러는 세상에서 홀로 버려진 듯한 기분에 사로잡힙니다.
삶의 희망을 잃었던 청년 말러는 보리수 그늘에서 문득 깨달음을 얻습니다. 마치 싯다르타처럼요! 이때 연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가운데 "내 연인의 푸른 눈동자"에 쓰였던 선율이 나옵니다. "길가에 보리수 한 그루 있어, 그곳에서 처음으로 단잠을 잤노라! 나에게 꽃 뿌리는 보리수 아래서 삶을 잊었노라. 모든 것이 다시금 좋아지리라! 사랑도, 고통도, 세상도, 꿈도!"
그러나 비틀린 동요 선율이 다시 나타납니다. 청년 말러는 아직 참된 평안을 얻지 못했습니다.
4악장 : 폭풍우가 몰아칩니다. 금관이 마치 아가리를 벌린 지옥 입구처럼 으르렁거리는 이 대목은 사실 바그너가 《파르지팔》에서 썼던 '성배' 음형, 또는 리스트가 여러 작품에서 썼던 '십자가' 음형을 비틀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 말러는 지옥을 벗어나 다시 깨달음을 얻고, '지옥' 음형이 살짝 바뀌어 '천국'의 성스러운 찬가가 됩니다. 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고양감이 음악을 뒤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과장된 고양감'만큼이나 거짓된 승리, 불완전한 깨달음입니다.
1악장에 나왔던 "자연의 소리"가 다시 나옵니다. 그러나 이내 잔뜩 뒤틀린 '현실'이 반격해 옵니다. 몇 차례에 걸친 작은 깨달음이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빛이 바래는 모습은 마치 불교의 가르침 같습니다. 깨달음에는 수많은 단계가 있으니 참된 깨달음을 얻으려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고요.
청년 말러의 참된 깨달음은 '천국' 음형과 함께 나타나되, 앞선 거짓 승리와 달리 과장되지 않습니다. 악보에는 "승전가"라고 나옵니다. 호른 연주자들과 일부 트럼펫·트롬본 연주자가 말러의 지시대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승리의 팡파르를 연주합니다.
▶ 거인(Titan)과 초인(Übermensch)
말러 교향곡 1번에는 '거인'(Titan)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족을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구자범 지휘자 선생님은 그보다는 정신적인 의미,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뜻한다고 생각하시더군요.
이렇게 생각하면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한 초인(Übermensch)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음악에 나타나는 '깨달음'의 성격이 좀 다른 듯하기는 하지만요. (박순영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의 설명을 빌자면, "니체가 말하는 독일어의 위버멘쉬(Über-mensch)는 다른 차원으로 이행하는, 저편으로 넘어가는(Über- gehen), 자신을 극복하려는 사람"이며, “어린아이처럼 자기 자신의 고유한 가치와 목표를 향해 몰입하는 단계”가 참된 깨달음의 단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