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 현악사중주 29번 G장조 Op. 33-5 Hob. III:41
하이든은 1781년에 작곡한 현악사중주 6곡을 작품번호 33번으로 묶어 파벨 페트로비치 러시아 대공에게 헌정했다. 이에 따라 흔히 '러시아 사중주'라 불리는 Op. 33 연작 가운데 G장조로 된 제5번 사중주는 'How Do You Do'(반갑습니다) 사중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별명은 1악장 시작 부분이 마치 당시 귀족들이 한쪽 발을 내밀고 다른 쪽 발을 뒤로하여 무릎을 굽히는 정중한 인사법을 연상시키는 것에서 유래했다. 음악적으로 이 음형은 곡을 끝맺을 때나 나올 법한 것이라는 점에서 18세기식 유머라 할 수 있는데, 현대 한국인이 약 250년 전 서양 유머에 굳이 웃을 필요는 없으며 그저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노래 시작했다, 노래 끝났다' 같은 낡은 유머와 통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따라갈 수 있다. 제1주제와 제2주제의 구분이 명확하고 발전부에서 주제가 확장된다. 다만, 재현부에서 제시부를 단순 반복하기보다 추가적인 '발전'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2악장은 느리고 우울한 단조 선율이 음악을 이끌어가며 마치 오페라 아리아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음악학자 도널드 토비 등은 글루크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 나오는 아리아를 인용 또는 표절한 것으로 본다. 3악장은 흔히 미뉴엣이 올 자리에 스케르초를 쓴 선구적인 사례라 할 수 있고, 4악장은 복잡하지 않은 변주곡 짜임새로 시칠리아풍 선율이 음악을 이끌어간다.
보로딘: 현악사중주 2번 D장조
보로딘이 아내에게 헌정한 곡으로, 일설에 따르면 아내와 만난 지 20년이 되는 해를 기념하며 아내와의 추억을 음악에 담았다고 한다. 베토벤의 영향이 뚜렷한 현악사중주 1번과 달리 이 작품은 1악장부터 매우 서정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발전부가 제시부의 반복에 가깝고, 그 대신 제2주제가 세 도막으로 확장된 것이 독특하다. 조성구조상 제2주제의 시작에 해당하는 선율은 제1주제와 그다지 뚜렷한 대조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제2주제 둘째 도막이 '진짜 제2주제'처럼 들린다.
2악장은 간소화된 소나타 형식으로, 발전부는 1악장과 마찬가지로 제시부의 반복에 가깝다. 가장 유명한 3악장은 달콤한 선율이 변주되던 끝에 '사랑의 2중창'을 연상시키는 돌림노래로 변하는 대목이 백미라 할 수 있다. 소나타 형식으로 된 4악장은 바이올린이 묻고 비올라와 첼로가 답하는 듯한 짧은 도입부에 이어 빠른 음형으로 신나게 달리며 흥분을 더해 나가는 짜임새이다.
차이콥스키: 현악사중주 1번 D장조
차이콥스키는 서양음악 역사상 가장 탁월한 멜로디 메이커로 손꼽힌다. 문제는 이전 시대의 거인이었던 베토벤이 남긴 음악 유산이 차이콥스키의 체질에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작은 음악적 씨앗으로 논리를 구축하고 발전시켰던 베토벤과 달리, 차이콥스키에게 중요했던 것은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의 말을 빌리자면) '구조'가 아니라 '드라마투르기'다. 그래서 베토벤을 잣대로 비판받을 때면 차이콥스키는 심하게 자학하기도 했다.
현악사중주 1번은 차이콥스키를 비판한 사람마저도 인정했을 만큼 뛰어난 형식 논리를 보여주는 예외적인 작품으로, 특히 유려한 선율 뒤에서 현란하게 변화하는 박절 구조는 규칙적인 네 박자의 단조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이 작품은 젊은 차이콥스키에게 출세의 발판이 되어 주었는데, 다만 후기 걸작들과 견주면 단점이 사라진 만큼 장점이 함께 억눌려 있다고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이 곡에도 차이콥스키의 탁월한 선율이 위력을 보이는 대목이 제법 있으며, 특히 2악장은 초연 당시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이 선율은 우크라이나 민요를 인용한 것이라고 전해지며 중간 부분의 선율은 차이콥스키가 새로 작곡한 것이다. 2악장뿐 아니라 다른 악장 또한 그냥 선율을 귀로 듣고 따라가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굳이 형식을 따지자면 1악장과 4악장은 소나타 형식, 2악장은 세도막 형식, 3악장은 스케르초와 트리오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