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9일 토요일

특급 오케스트라와 1급 오케스트라의 차이

한산신문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


네덜란드 방송교향악단(Radio Filharmonisch Orkest)은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에도 더 바르트, 야프 판 즈베던 등 유명 지휘자가 이끌었던 명문 오케스트라입니다. 지금은 독일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가 이끌고 있지요. 네덜란드는 한때 유럽 음악의 중심지였을 만큼 전통 있는 음악 강국이고, 네덜란드 방송교향악단은 특급 악단인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에 비할 바는 아닐지라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라 할 만합니다. 힐베르쉼이라는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지만,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에서도 자주 공연하지요.

지난 8월 23일, 콘세르트헤바우에 가서 이 악단의 연주를 듣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영국제음악당 음향을 세계 최고의 음향을 자랑하는 콘세르트헤바우와 견주었을 때 생각보다 차이가 작더라는 말을 지난번에 했었지요. 오케스트라 수준 차이도 비슷했습니다. 그 작은 차이를 좁히려면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모르는 바 아니고, 이만큼이나 차이를 좁히는 기적적인 성과를 올린 국내 모 오케스트라가 요즘 큰 어려움에 빠져 있기도 하지만, 이만한 오케스트라와 국내 오케스트라 사이에 요즘 하는 말로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있었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래도 '목적지'가 가시적인 거리에 있다는 생각에 뿌듯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로베코 서머나이트'라는 도심형 페스티벌이 열리던 암스테르담에서 여름 휴가를 보냈는데요, 앤드루 리튼이 지휘한 노르웨이 베르겐(Bergen)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으면서는 앞서 말한 '차이'가 더 작게 느껴졌습니다. 체임버홀에서 열린 셰리든 앙상블(Sheridan Ensemble) 공연도 흥미로웠지만, 공연 성격이 달라서 이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할게요. 이 공연이 끝나고 저는 연주자 대기실로 찾아가 제 명함을 주고 왔는데, 셰리든 앙상블을 통영에 초청하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네덜란드 방송교향악단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을 협연한 라르스 포그트는 명불허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작은 소리도 밀도 있게 전달하는 공연장에서 극단적으로 여린 소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솜씨가 압권이었지요. 그런데 베르겐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요즘 뜨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가 뜻밖에 수준 이하라 놀랐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태반이었던 그곳 관객은 웬만하면 기립박수를 보낼 만큼 열정적이었는데, 이 협연자에게 기립한 관객은 절반이 채 안 될 정도였지요. 저는 그 절반을 이해하기 어려웠고요. '업계인'으로서 그 이름을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스타프 말러 유겐트 오케스트라는 '유겐트'(Jugend)라는 말이 시사하듯 청소년 오케스트라이지만, 어지간한 국내 오케스트라를 넘어서는 놀라운 합주력으로 유명합니다. 거장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창단했고 마리스 얀손스, 피에르 불레즈,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등 거장들이 지휘해 왔지요. 실제 공연장에서 들어본 연주는 음반과 영상물만큼 대단하지는 않았고 역시 애들이다 싶었지만, 냉정하게 말해 어지간한 국내 오케스트라보다 낫겠다는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새하얀 눈썹이 멋졌던 노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가 이 놀라운 아이들과 멋지게 어울리더군요.

한국으로 돌아오기에 앞서 마지막 날, 저는 베를린으로 가서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에 갔습니다. 짧은 기간에 4개 오케스트라 연주를 집중적으로 들으니 자연스럽게 수준이 비교되었는데, 베를린필과 다른 오케스트라의 수준 차이가 상상 이상으로 커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더니, 이 정도일 줄은 참말 몰랐지요. 에마뉘엘 파위, 알브레히트 마이어, 벤젤 푹스, 슈테판 도어 등 이름과 얼굴이 익숙한 연주자를 보면서, 또 100명이 10명처럼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이제는 제법이라며 우쭐했던 마음이 이날은 싹 사라졌습니다. 100년을 투자해도 이런 악단을 만드는 일은 가능할 것 같지 않았고,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 나중에 고침: 베르헌 → 베르겐. 노르웨이 오케스트라를 네덜란드식으로 표기하는 실수를 저질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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