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24일 화요일

다름슈타트 여름 현대음악 강좌에 가다 ①

▶ 다름슈타트로 간 까닭

여름휴가 때 유럽에 가려고 연주회 일정을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이때쯤이면 공연 단체 대부분이 시즌 끝나고 쉽니다. 하긴, 예술가들도 휴가 가야죠. 그런데 휴양지에서 공연이 열리면? 놀러 가서 돈도 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열리는 음악 축제는 휴가철 특수를 노리는 곳이 많습니다. 대관령 국제음악제가 비슷하지요.

바이로이트로 갈까요? 제 휴가 기간이랑 살짝 어긋나네요.
런던으로 갈까요? BBC 프롬스가 열립니다. 로열 알버트 홀 음향 나쁘다던데.
루체른은 8월이나 돼야 개막하는데다, 올해 페스티벌은 뭔가 삐걱거리는 게 영…
잘츠부르크로 갈까요? 일정도 안 맞는데다, 여기에 가느니 바이로이트 갑니다.

고민 끝에 다름슈타트로 결정했습니다. 현대음악이야말로 실연을 들어 봐야 제맛을 알 수 있거든요. 국내에서는 서울시향이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 시리즈로 한 해 두 차례 현대음악을 연주하고, 또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를 지향하는 TIMF 앙상블도 훌륭하지만, 저는 한 번쯤 세계 최고 수준의 현대음악 공연을 직접 감상하고 싶었습니다. 마침 앙상블 모데른(Ensemble Modern)이 개막 공연을 맡았습니다.

다름슈타트 여름 현대음악 강좌(Internationalen Ferienkurse für Neue Musik Darmstadt)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아방가르드 음악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행사입니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이 비꼬아 쓴 말을 빌자면 "특허청으로 달려가는" 온갖 혁신적인 음악들이 초연되며 인정투쟁을 벌여 왔던, 불레즈 · 슈토크하우젠 등 거물 작곡가가 살벌한 의견 대립을 벌여 댔던, 그래서 20세기 음악사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행사입니다. 다름슈타트는 그야말로 현대음악의 성지라 할 수 있지요.

▶ 오후 4시 33분에 열린 엽기 개회식

올해 다름슈타트 여름 현대음악 강좌는 존 케이지 특집이었습니다. 탄생 100주년이라고요. 4시 33분이라는 특이한 개회 시각은 《4분 33초》라는 작품을 패러디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텔레비전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도 소개되었다지요? 그런데 《4분 33초》는 드라마 속 '강마에'와 달리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지휘자 구자범 선생님 말씀을 들어 볼까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2012년 7월 14일 토요일. 이번 개회식은 시작 시각만 특이했던 것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 시작하겠습니다' 하는 뻔한 인사말이 없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고요. 홈페이지에는 마틸다 언덕(Mathildenhöhe)이라는 곳에서 공연이 있다는 얘기 말고는 별다른 정보가 없는데다, 그 '마틸다 언덕'이라는 곳은 알고 보니 무슨 공연장 같은 곳이 아니라 건물 여러 채 있는 개방된 곳이었습니다. 행사와 무관한 전시회 부스를 찾아가 물어보고 그곳 광장에서 열린다는 것까지는 알아냈는데, 무슨 현수막 하나 없어요.

시간이 되니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웅성합니다. 바람이 쌩쌩 붑니다. 행사장 이곳저곳에 빨간 줄 같은 것을 달아 놔서, 그 줄이 바람에 날리면서 시끄러운 소리를 냅니다.

"웅성웅성…"
"여기가 거기예요?"
"맞지 싶기는 한데…."
"웅성웅성…"

…아오, 진짜 여기 맞아?

시계를 쳐다봅니다. 4시 33분을 가리키는 순간!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들립니다. 어딘가 싶어서 쳐다보니까 시계탑에서 웬 여자가 확성기로 뭐라고 떠듭니다. 랩(rapping)인가?

그리고 오른쪽 난간에서 웬 남자가 타악기를 연주합니다. 좀 있으니 더 오른쪽에서 동양계 여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합니다. 바람이 붑니다. 빨간 끈이 바람에 나부끼며 윙윙 뿌지직(?) 소리를 냅니다. 바이올린 소리가 잘 안 들립니다. 처음에는 멋졌는데, 조금씩 지루해집니다.

…뭐야? 이게 개회식?

주위를 둘러보니 한구석으로 사람이 몰리고 있습니다. 뭔가 싶어서 가보니 몇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바람에 끈 나부끼는 소리 때문에 잘 안 들립니다. 또 어딘가에서는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트롬본을 연주하고, 바이올린을 연주합니다. 마치 학회 포스터 발표회 같은, 또는 박람회 부스 같은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진짜 주인공은 바람과 빨간 끈입니다.

…뭐, 존 케이지니까. 그러니까 나는 숙소로 돌아갑니다.

▶ 엽기 개회식에 이은 엽기 전자음악 공연

다음 공연은 다름슈타티움(Darmstadtium)이라는 곳에서 있었습니다. 저 유명한 '앙상블 모데른' 연주회가 본 공연이고, 그에 앞서 로비에서 "달리는 라디오" 앙상블이 무료 공연을 했습니다. 작품 제목이 《네 곡짜리 라디오-카논, 그리고 메타케이지》(Vier Radio-Kanons und ein metaCage)라고요. 제목은 그럴싸한데…

'치―' 하는 라디오 백색소음이 아주 작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약 3분에 걸쳐 조금씩 커집니다. 사람들 시선이 완전히 몰리는 순간 멈춥니다. 박수. 여기까지는 멋졌어요. 그 뒤로 타악기 소리가 살짝 곁들여진다거나 하는데, 처음이랑 별로 다를 게 없습니다.

…님들아, 그게 전부임? 너네 왜 그러냐능?

본 공연 표 사려고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저도 재빨리 표를 샀습니다. 입장권에 좌석이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먼저 자리 찜 하는 사람이 임자입니다. 엽기 전자음악을 뒤로하고 공연장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앙상블 모데른. 이 공연부터가 진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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