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6일 목요일

2009.10.10. 코다이 《갈란타 춤곡》 /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 베토벤 교향곡 7번 ― 호칸 하르덴베리에르 / 디에고 마테우스 / 서울시향

디에고 마테우스는 '대타' 지휘자였다. 본디 미코 프랑크가 지휘를 맡기로 했다가 갑자기 아파서 지휘자가 바뀌었단다. 그런데 '대타'치고는 솜씨가 너무 뛰어난데다가 개성이 매우 뚜렷했다. 코다이 《갈란타 춤곡》에서는 악보에서 지시한 메트로놈 값에 견주어 터무니없이 느린 템포로 한 걸음씩 차분히 걷는 듯했으며, 이를테면 마디 180에서 트라이앵글과 글록켄슈필 소리가 아기자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또 느린 템포를 업고 클라리넷 수석 채재일이 루바토로 잔뜩 멋을 낸 독주를 뽐내기도 했다.

저런 템포로 나중에 가서 어쩌려나 걱정이 들었으나 웬걸, 제대로 빨라지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만한 곳, 이를테면 마디 209나 마디 236 등에서는 템포가 악보 지시에 맞게끔 아무렇지도 않게 슬쩍 바뀌었다가 다시 마디 336에서 도로 크게 느려졌다. 그러면서 곳곳에 나오는 리타르단도, 아첼레란도, 악센트 따위를 맛깔스럽게 살리는 솜씨가 매우 인상 깊었다. 번스타인이 울고 갈 '고무줄 템포'라 하겠는데, 그래서 작품에 나타나는 처절한 파토스가 빛이 바랜 대신에 블랙 코미디 같은 익살이 살아났다. 글쓴이는 이날 첫 곡만 듣고도 디에고 마테우스를 미코 프랑크보다 윗줄에 놓기로 마음먹었다. 미코 프랑크는 배 좀 아플 테다.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을 협연한 호칸 하르덴베리에르는 거친 트럼펫 소리를 부드럽게 다듬는 솜씨가 매우 훌륭했으며, 짧은 프레이즈만으로도 기품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진줏빛으로 그윽하게 울리는 소리 빛깔은 금빛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트럼펫다운' 소리와는 조금 달라서 트럼펫이 아니라 오보에나 클라리넷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1악장 처음에 마치 오블리가토 악기처럼 주선율을 거든 대목이 색달랐고, 2악장에서는 템포가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는지 티 나지 않게 짧은 긴장을 만들어 오케스트라 템포를 끌고 가는 솜씨가 인상 깊었다. 앙코르로 연주한 피아졸라 《Oblivion》에서는 하몬 뮤트(harmon mute)를 써서 마일스 데이비스를 닮은 소리를 뽐내기도 했다.

이날 연주회 주제를 하나만 꼽으라면 '트럼펫'이라 할 수 있겠는데, 베토벤 교향곡 7번에서 트럼펫이 돋보이는 곳은 4악장이다. 그러나 눈에 띄는 트럼펫 솔로 악구는 없고 A, E, F♯ 음이 대부분으로, 베토벤 시대 트럼펫은 구조적으로 낼 수 없는 음이 많았다. 그런데도 트럼펫이 중요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 곡에서 트럼펫은 선율이 아니라 리듬을 이끌어가며, 그 때문에 관악기보다 타악기에 가깝다. 4악장 내내 되풀이해 나오는 '♬♪' 리듬과 여린박에 붙은 스포르찬도를 곡이 끝날 때까지 깔끔하게 살리는 일은 일류 오케스트라 단원에게도 쉽지 않다. 명반으로 소문난 클라이버―빈필 음반은 알고 보면 트럼펫 리듬을 숨긴 '편법'에 빚지고 있다.

이날 트럼펫을 연주한 단원은 Jeffrey Holbrook과 Niels E. Heidoe였는데, 모든 곳에서 고른 소리를 내지는 못했으나 전체적으로 매우 훌륭한 연주였다. 지휘자가 4악장 템포를 몹시 빨리 잡고 신나게 달려대는데도 '♬♪' 리듬을 깔끔하게 다스렸으며 스포르찬도 리듬 또한 매우 훌륭했다. 다만, 도돌이표가 있는 마디 12에서는 '♬♪' 리듬을 또렷하게 살리지 않고 전략적으로 팀파니 뒤로 숨는 듯해서 조금 아쉬웠고, 스포르찬도 음형에서는 이따금 센박이 너무 세서 스포르찬도한테 덤비기도 했다.

Jeffrey Holbrook은 빠른 음형을 깔끔하게 연주하는 솜씨가 매우 뛰어난 연주자인데, 그러나 매우 큰 소리는 잘 내지 못하는 듯해 아쉽다. 이를테면 마디 219에서는 호른과 팀파니 소리에 밀려 빛을 잃었고, 마디 341에서는 '♬♪' 리듬도 팀파니와 목관 등에 기댔다. 마디 402에서는 모든 악기가 크레셴도를 하는 동안 트럼펫이 결정적인 '한 방'을 터트리지 못했고, 셈여림표가 마침내 'fff'에 이르렀을 때에는 'ff'에서 한 계단 더 올라서지 못했다.

지휘자 디에고 마테우스는 《갈란타 춤곡》에서 보여준 과장벽을 베토벤 교향곡에서는 함부로 내보이지 못하다가 4악장에서야 참았던 '끼'를 터트렸다. 템포가 빨라도 너무 빨라서 오케스트라가 티 나지 않게 버벅거렸으나 끝까지 큰 실수 없이 호흡을 놓치지 않고 잘했으며, 단원들 얼굴에는 쫓기는 표정이 아니라 신나 하는 표정이 나타났다. 앙상블만을 말하자면 3악장이 가장 훌륭했으나 '감동'을 말하자면 4악장이 앞선 악장을 압도했다.

고백하건대 글쓴이는 이날 지휘자가 바뀌었음은 알았으나 바뀐 지휘자가 누구인지는 몰랐다. 연주를 들으면서 언뜻 번스타인과 두다멜을 떠올렸는데, 디에고 마테우스가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교향악단 악장이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고 깜짝 놀랐다. 이날 연주회에 숨은 주제를 하나 더 말하자면 '춤곡'이라 하겠는데, 베토벤 교향곡 7번이나 코다이 《갈란타 춤곡》은 알고 보면 라틴 댄스였던 것이다. 이쯤 되면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교향악단이 앙코르로 즐겨 연주하던 곡을 떠올려야 한다. 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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